서울에 30여년만에 최저 기온을 기록한 매서운 한파가 몰아칠 때, 제주도 남쪽 서귀포 쪽 해안을 걷고 있었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비교적 따스한 날씨 속에서. 하염없이 걸었다. 어제 저녁에 서울에 돌아온 이 후. 4일간 길에서 보고 만났던. 모든것이 눈에 선하다. 이 추억은, 아직도 뻐근한 다리와 어깨의 피곤에 모두 담겨 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각오?를  다짐하는, 한 껏 부푼마음으로 여행의 의미부여를 했다. 그러나 기분좋은 여행을 하고 왔다해도. 삶은. 출발선과. 종료점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일상은 마음가짐에 따라. 여행자의 기분이기도 하고. 감옥이기도 하다. 어디서건 현재에 충실한것이 중요하지만. 여행은 그 현재를 색다른 것으로 꽉 채운다. 경험의 수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 여행의 순기능이 아닐까. 


 제주도를 3번째로 여행하는 것이라. 공항을 내렸을 때의 공기와 야자수나무의 신기함은 무뎌졌지만. 한라산이 정 가운데에 떡 버티고 있는 제주도의 설레임은. 언제나 영원할 것이다. 오고 가는 여정의 이동 시간 외로 온전한 2일간의 시간을 한라산 등산과. 올레길 한 코스를 걷는데. 쓰자는 계획 밖에 없었다.
 
 첫 날. 도착하자 마자. 공항에서 돌하르방 식당을 검색해서. 버스 타고 찾아갔다. 오기전 고등어회를 먹어보란 추천의 식당이었다. 허름한 식당안에는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이 식당은 점심 시간만 장사하는데래서. 3시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 고등어회가 이미 다 팔렸는지. 고등어회는 안 되고. 식당의 대표음식인. 각재기국을 시켰다. 밥과 국이 나오기전. 고등어 조림 두도막과. 갈치젖. 오징어회 무침. 푸짐한 배추잎등이 나왔다. 식당안의 오래되고 허름한 운치를 감상하는 동안. 국이 나왔는데. 허연 국물에 익은 배추잎이 한 가득이었다. 수저로. 내용물을 휘젓다 희고 맑은 국물속에서 생선머리와 몸퉁아리가 둥~ 떠올랐다. 어릴적.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의 미역국 속에서 하얀 갈치가 떠올랐던 기억이 났다. 무지 비려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라서, 내심 움찔했지만. 이 각재기국의 국물맛은 기가막히게. 시원하고 맑았다. 배추와. 된장푼물, 그리고 각재기란 생선과 기본 양념만으로, 이런 국물맛을 내다니..역시 소문난 맛집 다웠다. 그러나 맛집의 기준이, 진한맛과. 깔끔하고 정갈한 것에 두는 분들은. 이 맛집이 의아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오래되어. 지저분해 보일 수 있다. 뚝배기 그릇도 오래되어. 때 탄듯 보이나. 그런 투박함 속에. 오묘한 맛과 향취가 살아났다. 고등어회를 못 먹어 봤지만. 이 집의 대표음식인 각재기국 한그릇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가격 또한. 6000원에 넉넉한 반찬..여러모로 배부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저녁에 올 친구를 기다리려. 제주시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걸어서 민속 박물관에 갔고. 또 걸어서, 국립박물관을 갔다. 보통 여행와서. 잘 걷지 않는 도심의 거리와 박물관을 가게 되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의외로 박물관은 모두 공짜. 기억 남는 것은 별로 없으나. 국립박물관의 티겟팅 하던 젊은 여자가 나를 보던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 전형적인 이방인을 보는 시선이었는데, 뭐랄까. 삶의 무료함이 큰 귀와 작은얼굴의 귀여움속에 한가득이었다. 큰 배낭과. 등산화. 중절모를 쓴 전형적인. 여행자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되는, 그녀의 답답함은. 내게 전달이 됐다. 배낭보관 때문에 여러차례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친절은 하지만. 뭔가 의욕이 없다. 여기서 일년 동안 교사일을 한 친구의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주도민. 특히 젊은층의 삶이 육지 사람들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경쟁과 물질적 성공에 내몰리지 않은 삶의 의식이 주로 자리잡지만. 반면에 꿈과 목표등..삶에 대한 의욕이 서울 사람에 비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게 없고. 그냥 섬생활에 안주하며 사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하나..아무튼 잘은 모르겠지만. 육지와는 다른 섬나라? 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는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봐도..제주도민의 피해의식은. 충분히..공감이 간다.

 그나저나. 관람을 마치고. 나가면서. 나를 관찰하던 무료한 눈과 마주쳤을 때, 속으로..이따 저녁에 한잔 하실래요..라고 상상했다. 마치. 홍상수 영화의 배우 김상경이 되고 싶었으나, 영화는 영화 일 뿐. 상상은 자유이다.. 이틀 후. 영화를 연출할뻔 했다. 그러나..
 친구와의 접선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디를 가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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