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합시다!

대학가에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유령이. 새누리당과 국정원,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언론, 일간베스트저장소는 이 유령을 퇴치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지만 유령은 계속하여 다양한 형태로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거나, 관심이 있었더라도 표명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등, 그야말로 재 위에 앉아 옷을 찢는 회개의 행렬이 이어지는 실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최근 7천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을 직위해제한 코레일에 대한 규탄과,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정부에 대한 불같은 분노 역시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 동안 안녕하지 못했던, 누구도 대표해주지 않았던 얼굴 없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한국 현대사 역시 비극으로 시작되었고, 지금은 그것이 다시 희극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딸이, 서북청년단에 대해 일간베스트저장소가, 1972년의 유신에 대해서는 국정원 사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리고 공안정국으로 이루어진 정세 속에서 바로 그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숭배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숭배의 열화 버전으로 서울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계속 공안 정국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면, 언젠가 국립 5.18 민주화 묘지는 한낱 역사적 희생양들의 공동묘지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은 한국사회의 시계를 30년쯤 뒤로 돌린 듯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이후로 계속 자신과 똑같은 정통성을 부여받은 야당과도 성의 있는 대화나 합의를 시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정권 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인사파동은 이러한 통치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산적한 정치 현안들, 특히 국정원 선거개입과 같이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고장난 축음기처럼 아무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여,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박근혜 정권 이후 본격화된 공안통치와 종북몰이를 보면 이 나라가 정말 권위주의 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박 대통령이나 그 하수인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원주의(Pluralism)를 그 기반으로 합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3대 절대 자유’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곧 다원화된 사회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론 분열’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특정한 ‘국가관’이나 ‘안보관’따위를 가져야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특정한 국가관, 특정 사안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모든 시민이 공유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로 비판적 발언에 대해 ‘국론분열 용납하지 않겠다.’ ‘조국이 어디냐.’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는 ‘열린 사회의 적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념을 동원해 시민들을 둘로 나누고, 그 절반의 지지에 기반하여 나라를 통치하려는 전략을 정치학에서는 ‘두 국민 전략(two nations strategy)’이라고 합니다. 두 국민 전략은 권위주의 정권들의 전형적 수법입니다. 이들은 시민 다수의 다양한 정치적 판단을 ‘우리편이냐, 아니냐’는 단순한 질문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정치적 사유를 위축시키는 자기 검열을 강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종국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인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자신의, 그리고 곁에 있는 동료 시민들의 안녕하지 못함에 분노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일은 분명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은 국론 분열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전체주의적 엄포를 가증스럽게 늘어놓고 있지만, 우리의 다른 목소리야 말로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원동력입니다. 확신에 찬 하나의 의견만 있다면, 안녕한 자들의 목소리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상의 독재국가 내지는 천상의 신정국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나 안녕하지 못한 다른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죽은 반인반신이 다스리는 위대한 목적의 왕국을 거부하겠다는 살아있는 시민들의 민주적 의사 표명입니다.

하지만 함께 분노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고백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과연 안녕해질 수 있을까요? 잠깐 이야기를 돌려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해 봅시다. 얼마 전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끔찍한 차별 속에서 안녕하지 못한 흑인들의 안녕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분노하고 이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의를 실현한 의인으로 칭송받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현실은 전혀 정의롭지 못합니다.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안녕하지 못하며, 빈곤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하나의 악을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을 지속적으로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해서는 손을 쓰지 못하였고, 자신의 동료들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확립하지 않아 그들의 부패와 타락을 막지도 못하였습니다. 결국 말년의 만델라는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안녕을 가장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는 처지라는 평가에서부터 백인들로부터 평화의 사도로 인정받기 위해 흑인을 팔아먹었다는 비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흑인을 아파르트헤이트에서 구원하고자 했던 만델라의 시도는 실패하여 결국 다음 세대의 과제로 남게 되었으며, 흑인들은 여전히 압제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만델라의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금 여기의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 내지는 새누리당, 국정원, 보수언론과 같은 암흑의 핵심만을 타도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돕는 안녕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생각 역시 착각에 가깝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이 없던 시절에도 대추리와 각지의 크레인과 굴뚝 위에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과거의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였던 인물들 역시 모두의 안녕을 지켜주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좋은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일은 더욱 풍부하고 심도 있는 참여와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이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며, 악에 대한 순수한 분노 대신 타협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질문은 현재 우리가 좋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는 자극제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단순히 집단적 고해성사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미학적인 거부감을 표출하는 정념 발산에 그친다면 이는 힐링 열풍의 좌파적 버전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안녕하지 못한지, 어떻게 해야 안녕해질 수 있는지 질문을 확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서로의 안녕을 물으며, 안녕하지 못한 현실과, 그 현실을 만든 대표자로 지목된 개인이나 집단에게 분노는 표출하는 일은 쉽고 통쾌합니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은쟁반에 여왕의 목을 담아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안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 시민들을 안녕하게 만든 것은 찰스 1세의 목이 아니라, 전후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은 베버리지 리포트였습니다. 원수에게 도끼를 내려치는 통쾌한 일과, 통계와 씨름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재미없고 골치 아픈 일 중 어떤 일을 할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구약성서의 다윗왕은 좋은 통치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왕인을 절멸시키고 원수를 자신의 손에 붙여줄 것을 더욱 자주 기도하였습니다. 그만큼 명쾌한 악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모든 사고의 책임을 말소시키며 분노만을 발산하는 것은 엄청난 유혹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을 확인하고 타도하는 데에 몰두하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의 실현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적과 전쟁을 벌이며 피와 살육 속에서 지고의 쾌락을 느끼는 발할라의 광전사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안녕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화두는 누군가에 대한 반대와 투쟁을 넘어,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비단 정부 뿐 아니라 일각에서도 철도노조의 파업과 집회에 기성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며, 연속된 자보에도 학생운동단체들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순수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이는 정치는 순수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반정치주의에 편승한 비난으로 명백히 민주주의와는 배치되는 주장입니다. 타협과 양보 혹은 갈등이라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결여된 '순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는 전체주의 체제밖에 없습니다. 순수함은 정치에서 결코 바람직한 가치가 아닙니다.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타협과 양보를 요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우회하여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신의 목소리만이 정치에 반영되길 원하는 투정에 불과합니다.

어떤 정치적 주장에 대해 순수성을 원한다면 모든 정치과정을 부정하고 반민주주의 무장투쟁을 하거나 수도원에 홀로 들어가 참회록을 서술하며 고고한 삶을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이들의 주장과 같이 수많은 '외부세력'의 참여를 부정한다면, 나의 행동이 타인의 의사에 의해 제한되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가 지적했다시피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입니다. 나아가 민주주의는 혼종과 다양함을 그 본령으로 하며, 집단적 결정은 항상 타협과 양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혼종과 다양성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사회적 목소리로 만들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사적 관계에서 힘을 가진 기득권자들의 승리만을 보장하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들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주의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실한 구심점이 없는 거리의 정치는 그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안정적으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조직된 목소리에 한정됩니다. 현재진행형 상태인 '대자보 운동'이 어떠한 경로로 귀결될 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운동이 당장에 조직된 정치세력으로 결속되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에는 여러 제약요인이 따를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의 안녕하지 못함'에 공감을 표했던 수많은 청년들 역시 저마다 다른 정치적 이상을 지향하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그들의 호소에 부응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보다 넓고 관용적이고 자유로운 정치적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우선 청년들에게 정치적 삶을 되찾아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일차적인 책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신에게 악인이 흥하고 선인이 고통을 겪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표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문호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우리를 속이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가 보기에 최소한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의에 대해 여러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운동으로 조직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번 ‘안녕들하십니까’ 자보는 그러한 조직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정국은 결코 안녕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베버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강조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안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안녕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안녕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갑시다. 그러므로 저희도 역시 다시 한 번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 인문·사회과학회 목 하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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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적 추석에 대한 느낌은 서늘하던가 쌀쌀했더라면, 지금은 한낮의 더위가 가을이라 말하기엔 뭣하다.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는게 실감된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 일년에 두번 보게되는 친인척들과 하나마나한 담소는 5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도 없고, 대신 무럭무럭 자라나는 초,중등생 조카뻘 친척 아이들의 반년새 변해버린 키를 보고 있자니, 무력한 나의 청춘의 소멸이 눈앞에서 참수당하는 심정이 된다. 더디고 더딘 청춘의 유예. 


 극도로 개인화 되고 자본화. 서구화 된 일상의 삶에 일년에 두번 명절은 그나마 잊고 있던 전통 관습에의 접속 같다. 예전의 가족의 개념과. 지금의 가족의 의미는 큰강과 실개천의 차이만큼 굉장히 지엽적이고 협소화 되었다.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의 해체라는 담론은 가족의 해체, 파편화된 일상을 예고했다. 어쩌면 이런 명절 풍습도, 이미 구색맞추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름의 절충. 급격한 변화의 아이러니. 


 예전엔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절하고, 제삿밥 먹고, 산소에 가고 했는데, 요즘에 들어 느껴지는 단상은 이 모든 것이. '귀엽다'. 조상의 영혼에게 진수성찬을 드시라고 상을 차리고, 영혼을 기리며 절을 하고, 산소에 가서 술한잔, 안주 한점 올리고,, 그 의미. 그 행동을 되새길수록. 졸라 귀엽다..

어쩜 이리 귀여운 일들을 예전엔 그토록 기계적으로 행했나. 조상님들에게 부끄러워진다. 순수한 영혼들에게 미안해진다. 이제서라도 뭔가에 접속한 느낌이 드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갖가지 색깔의 코스모스 꽃에 정신줄 놨다. 노란색. 흰색. 자주색. 분홍색. 파란색. 곱디 고운 색 들의 향연에 마샤 튜더 할머니의 심정이 새겨졌다. 아리따운 꽃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꽃밭에 자유롭게 노니고  있는 나비와 벌 이 내심 부러웠다. 작은새는 벌처럼 유영하며 한동안 꽃에 날갯짓으로 시원한 바람을 보냈다. 꽃은 고마워 진한 향기를 내뿜었고 앉을수 없는 작은새는 그 기억을 간직하며 대양의 바람을 맞서 어디론가 떠났다. 


 작렬하는 햇빛 아래, 고개숙인 볏삭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도정된 쌀은 식물의 열매였다. 가녀린 줄기에 가지런히 줄줄이 영글어 있는 단단한 작은 열매. 토양은 매년 반복되는 수확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생명의 정수는 곡기에 달려있다. 쌀과 밀. 밥과 빵. 엄청난 생명의 신비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려는 논밭이 사랑스러워보였다. 태양에 달구어진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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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물리친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자,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어둑어둑하게 드리워진 낮은 구름들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새벽을 내달리는 운전은 고요하다. 저마다 무미건조한 고독을 한웅큼 쥐고 질주한다. 질주의 명상이라고 할까. 노면의 먹먹한 마찰음은 마치 귀에 물이 들어갔을때, 울리는 내면의 웅얼거림 같이 차안과 바같을 나눈다. 그것이 너무 단조로워 경계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내린다. 바람의 파동이 넘실대어 고요한 기분에 흥을 돋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런 새벽은 얼마나 지속될까. 이 새벽이 가고, 구름이 걷히면 오늘은 얼마나 아름다운 햇살이 맞이할까. 


 여전히 모든 사물이 회색빛을 드리울때, 내 왼편 차로,(버스 전용 차로)로 큰 버스가 공기압을 전달하며 서서히 내 차를 앞서려고 했다. 창유리가 투명해 미군들이 제각각 불편한 자세로 꼬꾸라져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가 앞서가며, 버스 후미에 앳된 미군 병사와 눈길이 닿았는데, 그는 서서히 뒷걸음 치는 내차를 맞이하려 인사를 준비한듯이,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올려 봤을때, 이미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맑은 그 병사의 웃음은 새벽의 고독을 깨뜨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큰 버스를 옆에 두고 평행으로 달릴 수 없어, 일단 내가 속도를 높여, 첫번째 인사는 얼떨결에 마무리 됐고, 조금 후에, 다시 버스가 앞서가며, 그 병사의 해맑은 미소를 또 보게 되었다. 금새 버스가 앞서가며, 그 병사는 몸을 돌려 멀어져가는 내 차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너무나 밝은 미소와 함께.  앞유리창을 통해서 크게 손짓의 답례를 안할수가 없었다. 


 기묘했다.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는 그의 얼굴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부풀어 희망으로 점철된 밝디 밝은 웃음을 지었다. 19,20살이나 됐을까. 미네소타나, 다코타, 혹은 아이오와 의 시골에서 자랐을것 같은 순박한 청년은 한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는 청년이었을 것 같다. 


 내가 짧은 미국 자동차 여행을 통해 본 광활한 풍경 속, 인간의 모습은 내겐 대자유의 가슴 뻥 뚫림 같은 거지만. 그들에겐 지독한 무력감 내지, 지극한 소외와 고독을 느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느 이름 모를 황량한 곳에 위치한 작은 주유소 매점에서 일하는 백인 청년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쟤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어딜가서 들끊는 청춘을 풀까.  이런 곳에선 신 아니면 악당만이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적 기괴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도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조디악'이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은 어떤가. 허허벌판 대륙의 황망함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낳게 했다. 


 나는 그 미군 병사의 고향이 어딜지를 상상했다. 아마도 그는 바다를 직접 못 봤을 내륙의 토박이 일것 같다. 그는 무료한 고향의 소소한 삶을 벗어나 세상을 보기 위해, 군인 직업을 선택했고, 바다를 그리워한 심정으로 다들 널부러져 잠자는 와중에,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창밖을 구경하며 내게 웃음을 건넸다. 마치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해외로 전출되어 기지로 이동중인것이겠지. 그는 호기롭게 분쟁지역인 한반도를 선택했고, 진짜 군인이 되기 위해 사명을 다할 것이다. 그의 군인의 길에 행운과 축복을 빌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이 웃음을 상쇄시킨다. 갖가지 끔찍한 미군범죄들..이 떠오르고, 불공평조약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군에 대한 양가감정은 종속된 땅의 숙명일까. 


 어린 병사의 순진한 미소가 자꾸 떠오른다. 도로에서 그런 웃음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부디 이 땅에서 별일없이 좋은 추억을 가져가길 바란다. 미군은 반갑지 않지만 한 인간으로써 그런 인사를 건네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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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길을 가다 보면 겨울에는 눈 오는 게 믿어지지 않고, 먼 꿈 얘기 같고

겨울에 길을 걷다 보면 꽃피는 것이나 여름의 신록은 기억 나지 않는다.

같은 장소라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


 단 하나의 노래만을 반복해서 듣고 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게 아니라 견디는 것일게다. 비틀즈의 삶의 하루를 여러번 들으며 부유하는 나의 하루를 가늠해본다. 

 몇일전 비가 오는 심야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쏟아지는 졸음과 싸워가며 비에 번질거려 희미해진 차선에 필사적으로 꿰어맞추며, 의식과 무의식을 오갔다. 기합을 넣어가며 다독였다. 매몰차게 나를 몰아부치지 못한것을 후회하며 위험천만하게 질주했다. 반수면 상태는 고통스러웠다.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을때, 나는 쓰러졌고 아침까지 이어졌다.  삶에 뒤척이며 무의식의 무언가가 나를 부디끼게 한다. 그것은 욕망과 기대가 불러온 부서진 부스러기와도 같다. 진정한 꿈이 없었다는 사실이, 바람처럼 내옆을 스치며 흘러가는 삶에 사뭇, 부끄러워진다. 아마도 확고한 꿈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를 하루를 견디며 번뇌하는거 아니겠는가. 내게 새로운 멜로디가 넘실대어 흘러나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꿈을 깬다. 그리고 A Day In The Life 를 살아간다. 


 당신의 진짜 꿈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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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에 자주 가는 목욕탕이 하나 생겼다. 이 목욕탕에 발길이 가는 이유는 다른곳 보다도 뿌연 수증기 안개가 많기 때문이다. 탕에 들어서면 온탕과 열탕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로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은 안개에 쉽싸이게 된다. 습하고 따스한 증기 안개에 체감적으로 포근한 안정감을 얻는다. 뜨거운 온탕에 앉아있다 보면 근원적인 회기 성향이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기 때문에 목욕탕을 오게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뱃속 따스한 양수의 포근함을 그리워 하는거 아닌가 하는.. 여하튼 반신욕을 하며 안개에 싸인 공간을 둘러보다 보면 이 뿌연함이 나를 보듬어 주는 것을 느낀다. 안개속에서 나는 '유레카'를 외치기 위해 반어적으로 생각을 비우고 다시 정렬한다. 


 안개속에서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읽는 한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목욕탕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몇 번 그 남자를 보았다. 책을 읽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는 남자였다. 내가 냉탕과 온탕, 사우나를 들락거릴 동안, 남자는 지긋히 앉아서 책에 빠져들었다. 뽀얀 안개 속에서 들어앉은 그의 뒷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풍경이 떠올랐다. 내 눈에 그 이미지가 각인되었다. 사진을 찍을 순 없고, 그저 그 풍경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흔 중반은 되어보이는 그는 책을 읽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살아있는 그림이 되었다. 


 언젠가 뉴욕의 겨울밤, 뉴욕대 건물이 밀집한 워싱턴 스퀘어 공원 쪽의 브로드웨이 상에 위치한 조그만 서점을 구경했던 일이 있다. 반스앤노블 같은 쾌적함은 없지만, 작지만 꽤 깔끔했다. 여든살은 너끈할 정도의 백발의 백인 노인이 쭈글쭈글한 손으로 문장들을 짚어가며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인상을 받았다. 어떤 위시감 이랄까. 온화하게 집중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평온해졌다. 그가 입은 낡은 회색 스웨터는 평생 소박한 삶을 추구했던 자의 증명과도 같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왠지 유명한 석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언젠가는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어느날 아침 자동차로 방랑하며 보았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맑고 건조한 공기속에서 아침 태양이 빛을 비추었고, 영화속에 나올법한 집들과 한적한 거리의 풍경들. 이른 아침에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중년 여자의 모습이었다. 차에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이었지만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 날 아침 방랑의 여행에서 고독을 메만져주던 풍경이었다. 

 책을 읽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설레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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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를 생각해보니, 비와 바람이 변화의 기운에 생동하는, 하지만 왠지 모를 처연함이 가득한 한 주 였다. 아마도 비바람이 몹시 불던날 보았던 건축학개론의 여파가 컸고,  오랜 지인의 갑작스런 수술 소식도 있었다. 초기에 암을 발견해서 떼어냈기에 다행이지만, 왠지 몸이 아픈것 보다..마음이 더 아파 보여 걱정되었다. 갑상선 암은 어떤 징후가 있어서 병원에 가는 것 보다. 우연히 종합검진에서 발견된다니.. 대부분 스트레스가 원인이란다.. 그 분 같이 독실한 종교인에..술과 담배는 전혀 안하고..운동과 여가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도 그런데, 그것도 미혼이시고.. 근데 미혼이기 때문에 그런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병은 자신을 변화하게 만든다. 몸의 어떤 절박한 신호가 병이 아닐까..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게끔하는 불청객이지만 그것조차 긍정하는 힘을 기르는게..관건인것 같다. 

 반면에 사업을 시작해 열심히 살아가는 후배의 만남과 이야기, 사귄지 천일이 지났지만, 한쪽 부모의 반대로 진퇴양난에 빠졌던 커플의 극적? 타계, 오래 알고 지낸 후배와의 오랜만의 만남.. 그리고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소개팅 주선.. 사실. 건축학개론을 보고나서. 감성적으로 변화무쌍해졌었다. 바람이 그렇게 미친듯이 불듯이.. 내 기억의 밑바닥에 숨겨놓았던 어떤 수치스럼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기억의 봉인이 풀어질때마다, 이제는 화해의 손길이 내 마음속에 인다. 그래서 이 바람이 핡퀴고 자나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겹겹을 풀어헤치는 것이 되었다. 

 봄의 비와 바람은 한겨울 같이 매몰찼지만,  새로운 탄생의 번영을 위해선 인고해야할 시간. 한강물이 동해바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걸, 자전거 페달을 온 힘을 다해 밟아도 정지 상태인 것은 바람의 힘이었다. 순풍과 역풍의 드라마틱함을 몸으로 체감하다 보니 잡념이 사라져버렸다. 4월의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제 여름일거고.. 4월 이야기는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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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가장자리에 섰을 때,  여기 아니면 더 이상 발 디딜곳이 없을 때,  발 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발없는 새와도 같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비상의 날개짓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을 바라보며 날 수 있을까, 의심과 불안에 떨어본들 넘어지지 않을 날개짓은 비상의 날개짓엔 턱도 없다. 중심을 잡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기를 모아 공기를 잡아라. 서서히 날개짓을 가늠한다. 날개를 펼치고 움직여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바람이 너를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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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수터의 물을 한바가지 벌컥발컥 마셨다. 살아있는 물이었고, 맛이 좋았다. 생각해보니 일상에선..끌인 물만 먹게 된다. 생수를 사먹지 않는 이상. 간만에 살아있는 물의 여운을 음미했다. 그러다 곧, 그 앞에 있는 표지판을 보게 되었다. 떡하니 음용부적합 이란 경고내지 공고가 걸려있었다. 윽. 살아있는 물은..정말..어떤 균들이 득실대고 있었나 보다. 돌이킬 수 없는 일. 그 사실을 알기전. 이미 맛있게 물을 먹었고, 내겐 약수였다. 좀 뜨악 하는 심정 때문이었는지..그 순간 뱃속이 한번 꿈틀대더니. 이내..원효대사의 해골 바가지 물 일화가 생각났다. 그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비슷한 경우이기도 하고.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마음이 편해졌다. 뱃속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그 균의 이름이 대장구균이었던 것 같다. 마음의 약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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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유령이 우리집에 떠돌고 있다. 이사라는 유령이. 요즘 집에 들어가면..매일 무언가가 없어져 있다. 엊그제는 쌀통. 그제는 어항. 오늘은 무엇이 내 놓아져 있을까. 이사를 하려면 내년은 되어야 할텐데. 아무래도 부모님도 버리는 즐거움을 알은 모양이다. 내가 중2때 이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어언..음..암튼) 꽤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쌓였을래나.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역사가..이 집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제는 버리고 시간의 낙인을 음미해봐야 할 때이다.

 떠나야 할 시간이 있으니, 매일 한결같았던 집의 느낌이 새롭다. 구석구석에 녹아든 체취속에, 나의 역사가 담겨있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때, 부모님은 차곡차곡 모아 집을 한 채 더 늘리시는 거였다. 지금은 정말 보잘것 없지만. 그 때는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의 집 이었고. 3층으로 신축된 집이었다. 이사를 하는 날은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이사를 안 해도 벼락치기 공부여서..이사와 상관없었겠지만. 문제는 지금 내가 쓰는 3층에 올라갔을때였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친구와..어마어마한 잡지가 쌓인 방을 발견했고. 대부분. 자동차생활. 일본..논노.그리고 여성지들. 그 와중에..별천지를 보았는데. 미국판 펜트하우스 였다. 처음으로 포르노그래피 사진을 보았고, 많이 얼떨떨했다. 그때는 너무 적나라한 충격에. 사진의 퀄리티를 볼 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당대 최고의 포토그래퍼 들이 찍은게 분명했다. 완벽한 테크닉과..조형성 이었다..바디 아트와 바디 페인팅등..예술적인 사진도 많았다. 다만 적나라한 음부가 문제라면 문제였지..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 보다는, 훠얼씬 아름다웠다.
 예전에 부기 나이트와 래리 플린트 란 미국 포르노그래피 산업에 관한 영화의 기억을 유추해 보면, 내가 본 펜트하우스는 가장 그 산업이 왕성했을때. 나온 잡지 같았다. 여러모로 스펙타클 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상한 충격과 흥분에. 그리고 밤새 여성지를 뒤적거린 끝에..벼락치기 시험은 쏠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 한동안 자동차와..여성잡지를 탐독했다. 아마도 이 때 나의 조형성과..미적 감성은 자리 잡지 않았을까. 명작들의 영향이 아닌. 일본판 논노 잡지의 취향은 유니크한 것을 좋아하는 특이함으로 발전했다. 중1때 본 소피 마르소 라는 환상의 천사가..포르노잡지와 여성지 섹스 정보에 의해..무참히 깨졌다. 펜트하우스가 어느정도 지겨워 졌을 무렵. 섹스 환타지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학교에 가져갔다..종이에 땀자국이 베기도록 돌아다니다가..결국. 이 책의 최후는. 친구네 집 5층 짜리 아파트에서..한장한장 종이 비행기가 되어..지상에 착륙했다. 엄마와 손잡고 지나가던 꼬마가...종이 비행기를 펼쳐보고서 얼마나 놀랬을까.. 친구와 나는 그 여러 놀람들을 키득거리면서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이 포르노 잡지책을 통해서 불상사나운 일은 생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포르노 사진 종이 비행기 행위는 예술적 퍼포먼스라고 여겨진다. 
 또 발견한 책이 피터 드러커의 성공하는 법칙 ~ 같은게 있었는데, 아마 그 때, 이 책을 진중하게 읽었더라면..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을래나..

 이사를 한 후. 나의 삶은 급류 처럼 흘러갔다. 물론 지금에 와 뒤돌아 봤을때. 그렇단 말이다. 우리집과 함께 영원할 것 같은..그 나른한 청소년기가 어느덧 청춘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사이 누나 둘은 결혼해서 지금은 어린 조카들이 집안의 계단을 오르락 거리는 즐거움을 맛본다. 나는 이집을 통해서 독립하지 못했고. 여전히 뭍혀간다. 내년이면..변화의 조짐이 왕성해지는 시기일듯 싶다. 집과 함께. 내 삶의 또다른 챕터가 넘어간다. 
 이 집에 처음 왔을때. 옥상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눈에 선하다..주변엔 다 1층 단독주택이었고. 언덕위 3층이라. 멀리..여의도 넘어 한강까지 보였던.. 그 장쾌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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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전시를 마무리하고 오늘까지 하루종일 피곤했다. 그동안의 긴장이 확 풀려서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다시 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내일 부터 다시 뛰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의 선거 결과도 긍정적이다. 내 전시 성과 또한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내일이 희망차다. 대부분 재미있다. 위트있다..란 말들이 많았다. 마지막 날에는 학교강의때문에 부모님과 누나가 자리를 지켰는데, 직접적으로 내 작품에 대한 호의들을 느낄 수 있었나 보다. 외국인들이 작품 가격을 많이 물어보았다던데. 내가 없었기 때문에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마지막날 관람객들이 부모님에게 좋은 에너지를 선사한듯 하다. 평소에 내가 말하지 못하는 걸.. 자연스레 체득하게 했다.

 짧은 전시 기간이었지만, 꽤 인상깊에 감상하고.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분들이 기억난다. 진지하게 바라봐준 그들에게 고맙다. 오랬만에 얼굴을 본 친구들. 동료..지인들..다 고마운 마음 가득이다. 3층까지 올라와준, 생각보다 많았던 일반 관람객들 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입구


 큰누나네 가족사진인데..작품속 사진과 함께 기이한 가족사진이 되었다. 작품속 아이는 둘째 누나 아들이고.. 사진의 사진속 사진은 아버지의 군시절 사진인.. 이상한 가족사진이다.


 다음 제목도 구상해 두었다. 방명록에서 작게나마나 소통한 소중한 결과이다. 어떤 이름들이 보이질 않아 슬프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마음으로 느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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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 3F  2011  10. 19 ~ 10. 24   www.insaartcenter.com
 

사진 작업 <조선 블루스> 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각성에서 시작 되었다. 나의 문화적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의 역사적 전통성은 어떻게 되었나. 이런 질문에서 비롯해, 동시대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의문과 비판적 풍자를 통한 본인의 발언이다.

  지금 우리가 입고 먹고 즐기는 모든 것들, 모든 사회 제도와 원리는 200여 년 전 서구의 산업혁명을 통한 모더니즘(근대화)의 영향아래 놓여 있다. 고유한 민족의 풍습과 정체성은 급격히 서양화로 귀결되었다. 특히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지난 100년의 근대화의 역사는 실로 우울하기 짝이 없다. 19세기 중 후반 조선이라는 오랜 전통의 왕조는 망조의 길에 들었다. 수운 최제우에 의해 동학(東學) 이라는 민족의 자발적 종교와 농민 운동이 있었지만, 꺼져가는 마지막 불씨를 되살려 보려는 노력에 불과했다. 일본에 의한 전략적 근대화를 거쳐, 한국 전쟁으로 모두 쓰러진 이후, 우리는 미 군정에 의해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에 놓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서구가 모더니즘을 거쳐 6_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에 들어선 것에 비해, 우리는 자발적인 근대화의 과정을 겪지 못했고, 독재와 한국식 근대화인 개발열풍에 일관했다. 90년대에 들어 문화의 개방화에 포스트모더니즘 까지 유입되면서. 우리의 삶과 문화는 뒤죽박죽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100여 년 전의 전통문화는 말살 되었고, 뿌리 없는 수생 식물 같은 돈만을 위한 미국식 문화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서구의 브랜드와 아이콘이 우리의 정체성을 대신하고 있다.

  본인은 이러한 현실을 역사인식 속 자각에서 찾고, 록(대중음악)의 저항적 태도로 문화와 사회적 코드를 상정해 담론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작업의 제목인 <조선 블루스>는 우리나라의 역사 인식과 블루스라는 1900년대 초반 흑인들의 노동요에 비롯한 대중음악의 뿌리인 슬픔과 비애의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은 블루스에서 로큰롤으로 진행했듯이. 록음악의 저항 정신과 분노의 열정에 가치를 두고 있다.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던 힘은 순응이 아닌 반항에 기초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본인은 그러한 punk 펑크적 태도를 작업을 통해 견지하고자 한다.

  신토불이나 민족주의를 옹호 하려는게 아니다. 이미 문화는 다중 중첩의 혼재된 상황이다.

몸은 동양인(한국인) 이지만 정신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대한국적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의 모습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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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학-조선 블루스  (가나아트스페이스 3F 2011 10.19~10.24)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전통이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날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 또는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이라고 정의된다. 전통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영향력의 지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행과 다르고, 완전히 소화되어 주체적 인식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유산과 구분되며, 비주류내지 제야까지 망라하는 범위의 포괄성에서 고전과 구분된다. 역사적으로 전통은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재해석되고 변형되며, 때로 새롭게 창출되기도 하는데, 이는 기존의 가치체계로 현실을 해석할 수 없는 인식론적 위기에 대한 능동적 대응의 성격으로 파악된다. 주체를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매개되고 구축된 것으로써 파악하면서 근대적인 주체 개념의 해체를 주장하는 푸코의 논의와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권력적인 것이며, 타자를 소외시킴으로써 스스로의 힘과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법론이라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은 최근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논의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 그에 따라 근대화의 역사적 필연성에 내재한 여러 문제점과 모순을 인식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한국적 정체성 논의의 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전통, 정체성, 한국적인 것이냐를 가지고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하거나 상투적 도상에 기대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읽어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배동학은 자신의 문화적 뿌리가 무엇이며 우리의 역사적 전통성은 무엇인가를 사진작업으로 질문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인한 것이리라. 사진작업을 자신을 해명하거나 자신의 의식을 하나의 결정적 이미지로 답하는 행위로 여기고 있음을 본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연기를 해서 찍은 이 셀프포트레이트 형식의 작업은 갓과 상투에 한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전자기타 등이 소품으로 반복 등장한다. 초상사진, 박제된 꿩, 버드와이저 맥주병, 스타벅스커피 컵, 록음악 씨디케이스, 놋 밥그릇과 수저, 젓가락, 타오르는 불 꽃 등이 또한 함께 개입한다. 광고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의 형식과 유사성을 지닌 사진이다. 한국의 전통적 기물과 이미지 그리고 서구문화의 여러 오브제들이 혼거하고 중첩되는 장면연출이다. 아마도 그 오브제들은 작가의 현재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자 자신의 혼재된 의식의 초상을 보여주는 상징들일 것이다. 그는 그 사물들과 함께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전통과 서구문화 사이에서 혼돈스러운 동시대 한국인, 자신의 삶을 연기해보이거나 제시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의 제목은 <조선 블루스>다. 조선과 블루스의 혼거는 분열적이면서도 중첩되고 착종된 현재 우리 문화와 의식, 삶의 모습을 지시한다. 이 언어적 지시를 그는 사진으로 뒤따른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 의식의 저간으로 심층적 탐사를 시도하는 일이면서 결국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타자들을 소환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부정할 수없는 한국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서구문화의 세례를 깊이 받은 이이고 블루스와 록음악에 깊이 매료된, 서구문화의 취향을 내재화한 이다. 그러나 그의 취향은 동시에 우리 전통과 분리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심상적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 이질적이고 상충된 취향은 분리되기 보다는 얽혀있거나 무의식의 배후에 기이하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의 불우한 근대화의 역사와 블루스, 록음악의 저항 정신을 겹쳐놓았다.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단절된 전통과 그로인해 착종된 한국의 모더니즘, 박제된 전통과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던 혁명적이고 반항적인 힘에의 주목 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구 블루스와 록음악은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 블루스는 우울과 저항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한편 블루스가 흑인의 고통을 표현한다면 록은 젊은이의 고통을 대변해왔다. 세상이 절망과 어두움, 억압으로 가득할 때 그리고 우리의 세상이 온전치 않은 것이라는 인식은 록과 블루스를 통해 표현되었는데 사실 젊음의 음악은 늘상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 문학도 미술도 마찬가지다. 특히 젊은 이의 사회의식이 깃들어있고 시대를 직시하는 눈이 자리한 록큰롤은 흔히 ‘젊음의 영혼’으로 불린다. 배동학은 그 블루스와 록에 깃든 저항정신, 혁명성과 함께 우리의 동학 정신을 떠올린다. (그의 이름도 동학東學이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당시 지속되는 정치의 부패, 조세 수탈의 가중, 계급적 모순의 심화, 흉년과 질병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삶을 지탱해가던 조선 사회의 기층민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녔다. 기존의 부패한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제시한 동학은 반봉건, 반침략투쟁의 기치 아래 이루어졌다. 작가는 그 지점에서 우리 근대의 중요한 의미, 정체성 모색의 정신을 찾는다. 혁명과 반항의 정신을 찾는다. 그렇게 그는 블루스와 록, 그리고 동학을 동일선상에서 파악한다.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던 그 정신, 혁명성을 되살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근대성, 정체성에 대한 반성과 회복의 단서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진은 그 시도의 일단을 펼쳐 보이는 작업이다.   /

 

Donghak Bae- Joseon Blues

Youngtaek Park (Art Critique, Professor at Kyonggi University)

Tradition is defined as “a way of thoughts, customs or behaviors that has been passed on from the past held in a certain group or community of people, or the core spirit of them.” Tradition differs from fashion in that it holds continuous leverage beyond its generation; it is different from heritage in that it is completely digested and thus involves subjective realizations; it is also separated from classics including non-mainstream and even anti-mainstream. Historically, tradition is to be reinterpreted and modified over time and space, and is often reborn or recreated, of which the purpose is conceived as an active response to the crisis of perception when the previously held system of values fails to interpret reality. Foucault’s argument that the modern understanding of the subject has to be revised by viewing the subject not as an autonomous agent, but as a mediated and constructed self and Edward Said’s point that any attempt to define an identity is basically political and can serve as a tactic to obtain one’s own power and identity by excluding others give us a new perspective toward the recent discourse on the identity and traditions. Thus, identifying various problems and contradictions in the course of Korea’s inevitable modernization will be a good starting point for discussing the identity of Koreans today. I think we need to read our cultural reality in the concrete rather than brooding over hard questions to solve like “What is tradition?” or “What is identity?” or “What is truly Korean?” or by relying on hackneyed images.

In his photography, Donghak Bae questions what his cultural root is and what our Korean tradition is. In the end, these questions must have arisen from the very matter of the artist’s own identity. Bae’s photography is considered to be an act of explaining himself or answering to his consciousness through critical images. Mostly self-enacted and self-portrayed, the series repeatedly includes a man with sangtu (topknot, a traditional Korean hair style of a married man) and a gat (a type of Korean traditional hat) wearing Hanbok (traditional Korean clothes) and an electric guitar. Photographic portraits, a stuffed pheasant, Budweiser beer bottles, Starbucks coffee cups, CD cases of rock music, a set of old brassware with a spoon and chopsticks and a burning flame are included as well. In style, the approach is similar to that of advertising photography or illustration. The scenes are filled with a mixture of traditional Korean objects, juxtaposed with those from the West. The objects are conceivably things that comprise the artist’s current life and are also symbols of his own portrait of mixed consciousness. Through the muddle of people and objects from different origins, Bae is reenacting his life and at the same time presenting us with the confused image of contemporary Koreans stuck between traditional culture and Western influences. Perhaps this is the reason the title of this solo exhibition is “Joseon Blues.” The concoction of the Korean modern state, Joseon and blues refers to our contemporary culture, consciousness as well as our lives which are schizophrenic, overlapping and adulterated. Such linguistic reference is used within Donghak Bae’s photographs. In there, we see the artist trying to make in-depth research on his roots and the basis of his consciousness and at last to digest the others that are shaping part of his current self. He is undeniably Korean, but has been baptized by Western culture since his youth and thus has a taste of foreign culture and is deeply fascinated by blues and rock music. But at the same time, his liking these Western influences doesn’t separate him from his native culture and is in fact connected to it on his subconscious level and through visual memories. Such a taste of mixed, contradicted influences is intertwined and lies in his deeper mind rather than being separate from one another.

Moreover, in Bae’s work the ill-fated history of Korea’s modernization overlaps the defiant spirit of blues and rock music. It seems that the artist wants to express our disconnected, taxidermy tradition as a result of abrupt modernization and consequent adulteration, and the revolutionary and unbent power of will that pulled the advance of history. For Bae, Western blues and rock are the spirit of resistance and defiance itself. Blues, the music of African slaves who were forced to move from their homelands to America, contains the blues and the element of defiance in it. Whereas blues expresses the pain of African Americans, rock music speaks for the pain of the young. The two became the means of expressing the awareness that the world is not perfect when the time was filled with despair, darkness and oppression. However, as a matter of fact, any music for youth always starts from pain. So does a piece of literature and artwork as well. Rock and roll music especially, is usually called “the soul of youth,” imbued with a social awareness of the young with a sharp eye looking directly into the times. The photographs by Donghak Bae are reminiscent of the spirit of “Donghak” as well as the defiant, revolutionary spirit of blues and rock and roll. (The name of the artist happens to be Donghak of which the Chinese letters (東學) are even the same.) Donghak, literally meaning Eastern learning, is a Korean religion or movement founded in 1860 by Chewoo Choi, whose teaching appealed greatly to Joseon commoners who were struggling in anguish and pain from political corruption, tax burdens, deepened gaps between social classes, and famine and diseases. Fighting against the reality of corruption and suggesting the ideal future, Donghak was anti-feudalism and anti-foreign invasions. On this point, Bae is searching for the significance of Korea’s modern period and the spirit of our true identity. He’s looking at the spirit of revolution and resistance. Likewise, he acknowledges blues, rock, and Donghak on the same level. Recalling the very spirit and its revolution that led to the advance of history, Donghak Bae tries to find a clue to reflect and regain our true modernity and identity. I would say the series of photographs by Bae in this exhibition is turning the first page of such endeavors.




 오늘 아침 박영택 선생님으로부터 전시 서문을 받았다. 글이 참 마음에 든다..너무 잘 쓰셨다. 전시야 일주일 만에 끝나지만..도록에 실릴 글과..사진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이 글과 사진을 잘 편집해서 갈무리 해야겠다. 작가노트를 굳이 안 실어도..될 듯하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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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내내 대청소를 했다. 과장하자면 걸레에 씻겨 내린 먼지가 1킬로그램에 육박하지 않을까..내 마음의 먼지가 그 정도 무게는 덜어진 느낌이다. 그동안 버리는데에 있어서는 소심했다. 마치 내 일부가 소실되는 것이라 여겼다. 갖은 물건과.책들. 끄적거린 노트들.. 사용하다 만 여러 수첩들..나는 왜 이런것들을 껴안고 있었을까.. 추억이라는 이름하에, 삶의 의미를 과거의 나로 두려 했을까..십여년 전의 일기들, 대학때의 노트들을, 읽었다. 하지만 유치한 감성들만 확인 했을뿐. 과거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각성을 찾을 수 없었다. 넓게 보지 못하고 감성의 우물에 갖힌 글들. 그 끄적거림 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차없이 버렸다.

 오래된 책들..다시 찾아 보지 않을 책들을 시원하게 내 던졌다. 버릴 박스에 차곡차곡 쌓이는 만큼 기분이 이상하게 좋아졌다. 소비의 즐거움 만큼..버리는 즐거움도..만만치 않다. 버려서 비워진 자리엔. 새로 왔으나 자리가 없어. 여기저기 바닥에 산재해 있던 것들이 채워졌다. 그래서 바닥에 떨구어진 것들이 모두 비비고 틈에들여 섞였을때..어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방의 매무새는 견고해지고. 조직적으로 변했다. 

 방의 표정은 나의 심리를 바꾼다. 환경의 영향은 무시 할 수 없다. 방은 살아있는 유기체 같다. 내가 애정으로 눈길이 가지 않는 구석에 시선을 주면, 그곳은 새로운 인상을 드러낸다. 청소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 먼지들을 살아있게 만든다. 안주하지 않을 삶을..끊임없이 생명력으로 유동하는 그런 가치를 말해준다.

 잡지류는 더이상 사지 말고. 고전류의 엄선된 책이 아니고선 함부로 사지 말고. 문서류는 제깍제깍 처치한다. 언젠간 필요하겠지 라는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삶은 스크랩이 아니니까...
 오늘도 변화무쌍한 구름속에..비가 내렸다. 다행히도 눅눅한 먼지는 치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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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글을 쓴다는 것은 일상의 소소함을 오롯히 기억에 남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본 것. 듣고. 느낀 것은 기억의 층위에 차곡차곡 쌓여..차츰 그 무게에 눌려 망각으로 유실된다. 그 소중했던 삶의 순간들을. 너무 쉽게 망각으로 흘려보내는 걸 방지하고자. 한편으로는 그 시간들에..특별함을 부여하고자. 우리는 일기를 쓴다. 일상의 순간들은 글을 씀으로써 재 맥락화 된다. 기억에 태그 를 붙임으로써. 언제든 뽑아낼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사진은 즉각적이고 함축적이며 시적이지만. 글은..내면의 정서에 의해 좀 더 주관적이고..묘사적이다. 글은 쓰여지는 과정에서. 재맥락화 되..고정되지만. 사진은 나중에 그 걸 다시 볼 때. 재 맥락화 된다.

 근래의 파편화된 기억이 넘실 댄다. 곧 소멸될 기억들은 추억이 되고 싶어 한다. 나는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것은 현재의 나를 정의 하는 것일 수 도 있다.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나아간다. 사실 지금 현재는 없다. 시간과 숨은 정지 할 수 없다. 지금 여기 부터 과거..와 다가 오지 않은 과거만 있을 뿐이다. 
 
 저번주, 아주 오랬만에..기억에서 잊혀졌던 감성이 떠올랐다. 충무로의 카메라샵 쇼윈도 앞에서 나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들은 뚫어지게 쳐다 봤다.  그 아름다운 카메라들은 나를 과거속의 어떤 나 로 이끌어 주었다. 순진하고 소박한. 꿈과 열정을 가진 어떤 지점으로..
 카메라는 행동의 동기를 점화 시킨다. 모더니즘 미학의 극치인  명품 필름 카메라들은 마지막 사진 시대의 자존심을 피력한다. 주류가 아닌 필름 카메라들은 여전히 고고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카메라들을 보면..그 설레임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걸 쥐고..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상상해 본다.

 동시에 사진집을 파는 작은 서점에 들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 작가 브루스 데이비슨의 아주 큰 박스셋이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비싼..구하기 힘든..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집인 East 100th street 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가격을 물어보니...35만원..흠.. 인터넷 서점에서 알아보니..24만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 비싸서 선뜻 구입하기 힘들지만. 그 사진집을 감상하는 미래를 생각하니. 행복해졌다. 아마 돈이 없기 때문에 오는 작은 행복이다. 마구 펑펑 쓸 수 있어 언제든 뭐든지 소유 가능하다면..그건..아무 의미없는, 삶의 버려짐이다.

 책을 네권 주문하면서 그 사진집은 다음을 기약했다.
요즘.. 드라마 파스타를 간간히 보아왔다. 물론 공효진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고..더 나아가선..파스타 요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좋은 드라마는 피로 회복제 같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의 미소를 보는 건..나 또한 미소 짓게 만든다. 파스타에 나오는 공효진을 보다 보니.. 누구의 인상이 자꾸 떠올랐다. 첨엔 몰랐는데..되새겨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공효진 보다 젊고 미인이여서 더욱 미소 짓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회상 할 뿐이었다.

 아열대 기후가 된 것처럼 비가 계속 왔다. 추억은 비를 타고 주룩주룩 내린다. 돌아갈 곳 없는 추억을 구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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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에 엄마가 한가득..마늘을 쌓아놓고 까고 있었다. 불안했다. 미련하게도 엄마들은 그런 일에 목숨 건다. 몇 일이 걸려도 쉬엄 쉬엄 하면 될 것을, 앉은 자리에서 돌부처 처럼.. 끝까지 다 하는 그런 습성. 나는 화가 난다. 옆에서 도와 주지 않을 망정..이런 화나 내고 있는 나는..우라질 자식이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평소에..건강에 대해서..습관에 대해서 누누히 말했지만, 어른들은..좋던 싫던, 자신의 습속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 모르겠다. 최소한 나는 내가 안 좋다 생각하는 습관을 최대한 고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되던 안되던 그것이 인간의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60년 넘게 살아온 삶의 습속을 어디 그리 고치기 쉽나..하지만..여생의 건강을 위해서 작은 노력이라도 한다면..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걸..내가 강조 하는 것은..식사를 천천히 하시라.. 꼭꼭 오래 씹어 드시라.. 제 시간에 챙겨 드시라..김치에 물에 말은 밥 같은거 드시지 말고 골고루 드시라..등등등.. 내가 보기엔 별거 아닌 노력이지만..어른들에겐. 세월의 무게 만큼 작은 것도 바꾸기 힘든 모양이다.
 어쩜 우리 부모 세대들은 자기몸 건사하지 않고..무한한 희생에 몸 바쳤던 것이다. 자식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사실은 역사의 부끄러운 놈들)
 
 그날도 틈틈히 스트레칭 하시면서 하라고..간곡히? 잔소리 했다. 여러번 겪어 봤기 때문에, 요번에 알아서 제 몸 챙기시겠지..했지만. 또 무리하셨고, 허리가 도지셨다. 전부터 그렇게 누누히 강조했지만.. 순간 부아가 치밀었고, 곧..그 화가 나를 공격했다. 

 내 유년기의 슬픈 기억은, 엄마의 허리 아픔에 대한 것이다. 나중에 좀 더 커서..그 고통이 나를 낳고 산후조리를 잘 못해서 일꺼라고 확신했다. 어릴적엔 허리 아픔, 지금은. 간혹 찾아오는 어지럼 증상..그 사이에.. 무릎 관절. 고혈압. 위장 장애. 등. 입원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이러저러한 증상을 달고 사셨다. 지금도 그 날이 또렷히 기억나는데.. 고등학교때..중간 고사를 보러 가는 아침..엄마가 구급차에 실려 갔던, 그 순간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무기력한 존재의 현실..그래서 대학을 가서..별 볼일 없는 지식도 쌓지 못했고, 정신의 허영 속에서 번뇌하기 위해.. 그렇게 학교를 다녔나.. 하는 그런 자괴감. 
 
 생각과 현실의 실천은, 소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허리아픔에 기운이 달려 어지럼까지 온 엄마를 위해. 죽을 끌이고 있었다. 소고기 야채 버섯 죽.. 요리하는 법이야 별것 없지만. 재료를 잘게 준비하는게 오래 걸렸다. 소화가 잘 되기 위해..최대한 재료를 잘게 썰었고, 쌀이 잘 풀어지게..뜨거운 열기 속에서 잘 저어줬다. 이제는 보살펴야할 부모가 된 현실이, 슬프고도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엄숙함이 있다.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먹기도 하고, 한국인 이라면..절대적인 마늘이 사람 잡을 뻔 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부모를 잡을 뻔 했나. 그들의 무식한 인고에 감탄하는 바이나. 과거의 삶의 서사는 간혹 현실을 왜곡한다. 허리의 어긋남은 지금 여기 현실의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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