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우 감독을 음란서생 때문에 좋아하는 편이나, 그 후로의 작품들은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이 영화도 그냥 그런 축에 들, 범작이 되버린게 아닌가 싶다. 항상 기획과 시도는 좋으나 작품이 되지 못하는 이 뭣한 기능은 뭘까. 이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배우가 극중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오는 어색함. 영상은 화려하고 감각적이지만 물안에 기름을 떨군거처럼, 융화되지 못한다. 배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영화다. 신인 여배우는 캐릭터상 그런 어색함이 어울린다 쳐도 송승헌의 캐릭터는 관록있는 배우가 맡았어야 했다. 캐스팅 미스.. 영화속 그런 복잡다단한 감정의 은밀함을 표현하기에는  역량부족이었다. 


  대표적으로 군용 지프 안에서의 베드씬이 그렇다. 되게 신선하고 색다른 구상인데, 뭐지 이 나무젓가락 같은 연기는 ㅜㅜ 좁은 공간에서 그런 연기를 해야하는 노고는 알겠으나 계속되는 머슥함. 배우들도 그렇지만 연출도 이 부분만은 봉만대 감독의 자문을 구했어야 한다. 송승헌은 색.계를 보며 양조위를 카피라도 하지. 아무튼 이 영화는 주연 외의 조연들의 캐릭터와 연기가 의외로 주옥같았다. 조여정의 연기와 캐릭터의 심리는 흥미로웠다. 관사 부인네들끼리의 권력관계나. 주인공 여자와 시엄마, 친정 엄마의 관계등. 은근 도발적인, 색다른 면을 제공한다. 


  시대물인 만큼 의상.미술은 훌륭했고 김대우 감독 영화의 수준 높은 스타일한 조명은 여전했다. 

 여자 주인공인 신인 여배우는 앞으로 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모든것을 송승헌 으로 몰아가기에는 억울할 듯 싶다. 감독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본지 오래 되어서 마지막 그 대사들이 기억이 안 난다. 수작이 될 수도 있는 영화였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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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 참 재밌는 영화였다. 영화지만 남의 고통을 보며 즐거움을 얻는 건, 참 잔인한 취미고 변태적 감각인 것 같다. 이 영화는 통감각에 호소하는 영화다. 대단히 사실적인 총격전, 그 와중에 주인공들이 낭떨어지 산악에서 떨어져 바위에 튕기고 구르며 나무에 찢기고 꺽이며 만신창이가 될 때, 그 충격의 소리와 중력의 가혹함은 가상현실에 실재성을 부여해 관람자의 심신이 동참하게 한다. 


  총격전의 진수랄까. 총격전의 미학?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영화다. 또다른 영화로는 '히트'가 생각나는데, 도심 총격씬의 압도적인 소리는 충격이었다. tv방송 '멋진 사나이'에서 헨리가 처음 사격할때, 실제 총소리에 놀라 겁먹던데, 그만큼 실제 총소리의 위압감을 영화 '히트'에서 잘 잡아내었다. 도시와 필드, 산에서의 총소리가 다르겠듯이, 빌딩벽들 사이로 콘크리트를 울리는 총소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영화의 처음 장면은 다큐 영상으로 UDT/네이비씰 요원들의 극악한 훈련 모습을 보여준다. 신체가 겪을수 있는 한계의 극한상황을 견디어내어 최고의 인간 병기가 된 요원들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세력의 핵심 인물을 제거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실제로 이 '레드윙' 작전은 미군 특수부대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다고 한다. 정찰조 4명중 3명이 죽고, 한명이 극적으로 구출되는 과정. 그 와중 지원조의 치누크 헬기가 로켓탄에 피격돼 추락. 전원 사망하게 되니, 총19명의 특수전 대원들이 사망한.. 미국내에선 2005년 이 사건때문에 시끌벅적 했다고 한다. 그걸 영화로 만든것이고, 개봉하고 나서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고 한다. 



  문제의 시작은 위 상황부터다. 4명의 정찰조가 잠복중, 양치기 현지인들(노인1,아이1,청년2)에게 우연찮게 발각돼, 그들의 처리를 놓고 토론하는 상황이다. 교전수칙의 매뉴얼 대로 라면, 민간인은 죽일수 없다지만, 그냥 풀어주면 적들에게 알려지는건 시간문제. 나무에 묶어 놓고 가자와, 죽이자 까지 세가지 선택을 두고 대원들은 설전하지만, 최종 결정은 나중에 살아남게 되는 (마크 월버그)의 뜻대로 그들을 풀어준다. 아마도 이 결정은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겠지만 특수부대원의 명예와 자부심으로 그들은 자만했다. 


  아무리 험준한 산악지역이고, 자신들이 최정예 요원이라도, 원주민의 신출귀몰함을 간과해선 안됐다. 궁지에 몰려 쫏기며 어떻게 저렇게 빨리 자기들을 추적할 수 있는지 놀라한다. 총격전이 시작된 후 부터는. '블랙 호크 다운' ' 에너미 라인스'를 섞은 듯한 전개가 펼쳐진다. 대원들이 죽는 몇몇 장면에선 '플래툰'의 한 장면 오마주 같기도 하고, 영웅주의적 미국 만세처럼 볼수도 있으나. 내가 보기엔 그래도 최대한 다큐적으로 연출 한 것 같다. 


  치누크 헬기의 지원 병력이..헬기 레펠 막 하기 전 지네들끼리 으쌰으쌰 하는 찰나 로켓탄에 피격 되는 장면은, 요즘 말로 웃펐다. 너무나 어이없는 순간에 개죽음 당함. 

  이 영화는 너무 정치적인 접근으로 심오하게 보기 보단, 영화의 가장 강력한 기능인 대리 체험 정도로 즐기면 좋은 거 같다. '블랙 호크 다운'이 그런것 처럼.. 어쨌든 초인적 미국 특수 부대원의 안쓰런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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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원스 만큼 좋다. 뉴욕에 입성해 화려한 명배우들과의 작업은 우려와는 달리, 날익은 듯 그 풋풋함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매우 매끈한 듯 보이고, 전형적인 헐리웃 로맨틱 영화 같기도 하나 그 안에는 전작 원스의 감성이 서려있다. 


 내게 음악 영화는 다 좋지만, 유독 완전 사랑스런 음악 영화다. 일단 배우들이 너무 좋다. 키이라 나이틀리 와 마크 러팔로. 그 이상, 더 좋은 캐스팅을 생각할 수 없다. 키이라는 원래 좋아하는 배우였지만, 이 영화에서 그녀의 노래. 특히 목소리 음색은 가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 목소리로 내게 막 욕을 해대도 좋다고 헤벌쩍 할 듯 싶다. 영화를 보고 나면 OST 음반을 안 사고는 못 베길듯. 물론 키이라의 외모도 무척이나 매력적인건 누구나 공감할듯? 난 이런 자연미인이 좋다. 그녀가 양악 수술을 했다면 안중에도 없는 배우였을 거다. 그런 단점 조차도 있는 그대로 아니 더 부각되어보이는 자연스런 매력 발산은, 진짜 아름다움의 완성은 기꺼이 솔직히 드러냄에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영국식 억양과 턱발음. 노래 할때의 음색은 정말 황홀하다. 


 마룬5의 보컬 애덤 리바인? 이 나오는데, 연기는 잘 하는것 같다. 노래도 무척 잘 하지만 나는 그의 음색과 팔색조 같은 기교가 마음에 안든다. 동시대 같은 미국 밴드라면 마룬5 보단, 더 킬러스를 좋아한다. 

 위 사진 클립의 장면도 좋지만 (하염없이 맨하탄 거리를 거닐며 Y 케이블로 서로의 스마트폰의 음악을 같이 공유 감상하는) 나는 아래 이 장면이 되게 좋았다. 



  자기가 쓴 새노래를 남자 친구와 초연 하는 장면인데 키이라의 노래도 좋았지만, 카메라의 움직임과 연출이 되게 풋풋했다. 많은 장면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공간 조명을 활용한 거 같다. 원스에서 처럼. 조명이 너무 없어서 어둡침침한 정도는 아니지만, 최대한 인위적인 조명 느낌이 아닌, 되도록 앰비언스 조명을 활용한 거 같다. 원스 때 보다는 암부를 표현하는 영상 기술이 더욱 발전했으니..


  영화속 두 주인공이 브로드웨이가 관통하는 야간의 유니언 스퀘어 공원 낮은 계단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을 등 뒤에서 잡아 보여주는데, 좀 신기했다. 예전에 똑같은 위치에서 밤에 자주 그러고 앉아 있어서.. 있는 그대로의 뉴욕의 경관들을 잘 잡은거 같다. 


  아주 헝그리하게 야외에서 녹음 하는 장면도 정겨웠다. 테이프로 둘둘 감은 붐 마이크나. 스타킹으로 마이크 앞 팝 스크린을 만든것도.. 선망의 마틴 기타를 연주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아아아 너무 좋구나... 집에와서 가사라도 써볼까 끄적대다 보니, 이건 뭐 중2병..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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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 는 내 학창시절의 고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감수성에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호아킨 피닉스의 형으로 더 화자되는데 1993년 10월 31일 리버 피닉스의 죽음은 당시에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겼다. 조니 뎁 과 키아누 리브스를 보면 리버 피닉스도 생각난다. 이 셋은 절친이었다고 한다. 셋 다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의 밴드를 하는등.. 음악에 대한 열정도 그랬고, 아웃사이더의 삶과 태도는 연기 이상의 진정성을 보여줬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로 분연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대타로 연기해 그 또한 나쁘지 않았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이 영화는 리버 피닉스의 삶 자체에 대한 은유 같이 돌아갈 곳 없이 길 위에 선 자의 공허를 잘 담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투영된, 그러니까. 영화와 실제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거란 반증이 그의 죽음으로 말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면발작증 (순간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한 마비와 수면에 빠지는) 때문에 도로에 경직되어 쓰러져, 지나가는 차량이 그의 소지품을 강탈하고, 또 마비된 몸이 차에 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 처럼 실려 뭔 일을 당할지 모르는 채로 끝나는 장면은 슬프고 의미심장하다. 2년후, 조니 뎁이 운영하는 LA의 바이퍼 룸이라는 가게 앞 길에서 마약 과용으로 인한 쇼크사로 사망하게 되는,, 그렇게 23살의 나이에 촉망받던 배우가 요절함으로써 제임스 딘과 마찬가지로 청춘의 신화 같은 존재로 대중들에겐 울겨먹혔다. 


  그의 가정사는 히피 부모님을 둔 덕에 어릴적 남미를 전전하며 살았고, 미국에 정착하고선,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며, 자신이 겪은 삶과 가장 비슷할듯한, 출연작이자 그의 대표작인 '허공에의 질주' 와 '아이다호'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모스키토 코스트' 에서, 공허와 상실, 정체성의 탐구를 조숙한 눈빛으로 그려내었다. 또래의 배우보다 깊은 눈매와 진지한 자세는 뭔가 촉망받는 차세대 헐리우드 스타보다는 인디록 뮤지션의 삶과 태도와 더 어울려 보였다. 실제로 뮤지션을 더 꿈꾸었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멤버들과 친구였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플리가 조연으로 출연한다. 아마도 그들과 어울리며 마약에 손을 댓을거 같은데, 특히 존 프루시안테 와도 여러모로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사족을 더 하자면, 어제 신촌에서 퀴어 페스티발이 열렸단다. 얼마전 우연한 기회로 초면의 21살의 대학생과 공감 공연을 보게 됐고 치맥을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을 가장 좋아하고, 여러가지 예술 문화적 소양이 깊어서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통했었다. 자기가 거의 레즈비언에 가까운 양성애자인걸 당당하게 밝히고 퀴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때 내가 지은 표정이 어땠을까? 나 조차도 너무 궁금하다. 이미 그런거에 익숙했던지 상대의 반응에 별 신경을 안 쓰는거 같았고, 되려 당당하게 아무렇지 않게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또래에 비해 남다른 21살 이었고, 그런 솔직한 면들이 부럽기도 했다. 자유롭게 자기 행복을 찾는 모습, 부모의 영향으로 비틀즈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을 일치감치 향유했고, 영화 감독을 꿈꾸며 신호등도 무시한채 당돌하게 걸어가는 그 아이를 보며 진짜 진보적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차 많은 여성과 깊은 사랑도 경험해 봤고 그런 것들을 부모도 알고 인정한다고 하니, 내 딴에는 난 조선시대에 살았나 하는 혼란스러움..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로 거대 유산을 상속받기로 되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철없는 반항으로 거리에서 창부 생활을 하는 스콧 (키아누 리브스) 은 기면발작증으로 어디서나 쓰러져 정신줄 놓아 버리는 마이크 (리버 피닉스)를 도와주며 그가 형을 만나고 엄마를 찾아 나서는 길에 동행한다. 잠에 빠질때 마다 엄마의 영상은 끊임없이 마이크의 마음을 갈구하고, 쓰라린 가정사의 아픔을 묵묵히 간직한채, 거리에서 몸을 판다. 여자를 만나면 긴장으로 기면발작증이 오니 남자를 더 상대하게 된 그는 자상한 스콧에게 고백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뿐 아니라, 어떠한 멜로 영화의 고백 장면도 이만큼 순수하고 진정성 있다고 느껴지질 않는다. 리버 피닉스의 이런 연기는 정말 가슴을 찌른다. 이 영화를 계기로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는 절친이 됐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키아누 리브스가 현재도? 방랑 생활을 하는 것과도 뭔가 이 영화와 닮아 있다. 










  형이라고 여겼던 자가 자기의 생부이고, 엄마는 자기를 버렸고, 근원적 고통은 자기를 옭아매어 점멸하는 신호등 처럼 삶의 순항하는 그린 라이트는 수시로 꺼진다. 옆에 있어줬던 스콧은 엄마를 찾아서 이태리 로마 까지 동행했지만 이내, 인생을 함께할 여자를 만나 마이크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다시 포틀랜드. 스콧의 아버지가 죽고. 거리생활을 청산한 스콧은 거리에서의 대부를 매몰차게 대하고, 길에 쓰러져 자고 있는 마이크를 외면한다. 공교롭게도 진짜 아버지와 거리의 아버지인 밥의 장례식이 같은 공간에 치뤄지고, 극명히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다시 길 위에선 마이크. 길의 감식가라 자처하는 그의 독백. 점멸하는 의식으로 그의 몸은 또 어디로 가게 될지. 그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마이크는 또다시 길 위에 쓰러진다. 




  

  처음 봤을때보다, 나이 들어서 보니 더 울림이 컸다. 사진작가 필립 로카 디 코르시아의 남자 창부를 찍은 작업이. 이 영화의 영감인지. 아니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이 그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인다. 몇몇 장면에선 연출적 센스가 탁월하다. 게이 잡지 커버에서 그들이 말하는 장면이나 성애 장면을 정지 동작으로 표현한것, 소리로 흥분하는 변태 아저씨의 몽타지 시퀀스 등.. 1991년도 작품 치곤,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앞서 간 것 같다. 단순한 내러티브를 쫏기 보단 그 인물들의 감정에 빠져 보면 이 영화의 진면목을 알아 볼 수 있다. 길위의 고독한 여정에 이런 영화들은 위로가 된다. 내 마음속의 저런 풍경이 꺼내졌기 때문에 더 애틋하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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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음.


  어른들의 치유와 성장 이야기란 점에서, 영화 '머드'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영화가 생각났다. 개봉때 극장에서 보았고, 영화가 너무 좋아서 원작 소설까지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도 훌륭했다. 영화는 나름 각색을 잘했다고 본다. 당연히 명배우들의 소소한 표정 연기를 보는 재미가 더 강렬했다. 음악의 사용은 또 얼마나 감각적인지 레드 제플린과.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노래가 나오는 부분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당시 같이 봤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 남는데, 상영 내내 너무나 지루해 했다. 이렇게 너무나 상반된 영화 관람도 처음이었다. 끝나고 듣자하니 자기는 드라마 영화는 잘 못 본다고 했다. 환타지 액션 블록버스터 취향의 사람한테 로맨스 코미디물을 가장한 조금은 작가주의적? 영화를 골랐으니 사전 파악도 안하고 대뜸 이 영화를 고른 내가 나쁜놈 이었다. 


  더 나쁜일은 그 사람의 몸매를 인지했던 순간인데 아직은 이도 저도 아닌 마음 상태에서 키만 큰 사람이라고 여겼다가 두꺼운 외투를 벗고 원피스 차림으로 직접 커피를 가지러 가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본의아니게) 세상에나. 그렇게 아름다운 몸매는 본 적이 없다. 연예인이나. 몸매 좋다는 패션 모델들 조차도. 심지어 av배우도 그런 비율과 아찔한 골반가..각... 칵 소리나게 충격받았고 이내 혼란스러웠다. 내 눈엔 그리 이쁜 얼굴은 아니어서 반신반의의 마음이 돌연 그리스 석고상을 대하듯 새하얗케 됐다. 너무나 시각 중심적인 반향에 짐짓 속물같은 자신을 질타했지만, 그러나 이게 남성의 자연적 본능인걸 뭐 나더러 어쩌라구. 얼굴과 몸의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겪으면서 초반 이성과의 관계에서 시각적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이 스스로 말을 한다는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란 표어는 이때 쓰는 건가. 그러나 어쨌던간 여러모로 통하는게 없었다. 여기까지 말하고 싶지만, 짐작하듯이 설레발 치다가 망쳐버렸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이날 다시 그 사람을 만난거는 어른들의 공작이었다.


  나중에 다른 경험과 맞물려 이런 생각의 정리를 하게 되었는데, 외양에 빠진다는건 상품에 눈이 돌아가듯 소유욕의 발현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들의 만족일 뿐이다. 아직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믿고 보는 것에 사랑이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도 모르는건 마찬가지지만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에는 진정한 소통은 없었다. 얼핏 이미지를 떠나 진정한 소통의 즐거움을 알것도 같으나 그마저도 좌초 된건가. 인정하기 싫지만.. 예전엔 눈은 높고 마음의 장벽도 높았는데, 지금은 눈도 낮고 마음의 높이도 낮아진게 문제다. 마음이 문제다..


  쓸데없는 잡담이 길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명배우들의 출중한 연기와 가족애, 마지막 댄스 경연 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며 마무리 짓는걸 보면 언듯 또다른 명작 '리틀 미스 선샤인' 이 생각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의 이상한 로맨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서로의 상처를 통해 부딪히고 치유하면서 성장과 사랑을 이룬다. 라는,, 현 상태는 시궁창이지만 긍정적인 태도로 살아가다 보면 구름뒤 밝게 빛나는 태양이 희망을 예고하듯 언젠가 구름의 가장자리에서 한줄기 빛을 받아 더 높이 삶을 살아보려는 자들에게 보내는 용기다. 


  주인공 팻 (브래들리 쿠퍼) 이 왜 정신병원에 7~8개월 있었고, 현재도 불안정한 상태를 설명해주는 그 열불나는 씬은 영화에선 초반에 보여주지만. 소설에선 나중에야 (내 기억으론 결말에) 말한다. 각각의 장르에 맞게 이 사건 발설의 전개 방식은 알맞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에 팻의 시점샷으로 자신의 집 샤워실에 부인이 다른 남자와 나체로 얽켜있다면 그것도 직장 동료인, 어느 누가 꼭지가 돌지 않겠는가. 폭력을 행사하다 못해 살인 까지 저지르고도 남을,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이 눈 앞에서 펼쳐졌고, 그는 폭행의 결과로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아내를 잃고, 직장을 잃었지만, 자신이 부인을 사랑하고 앞으로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는 붕괴된 멘탈을 위태롭게 다스린다. 일면 아내의 외도 행각을 발견하고 파탄이 났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아내를 잊지 못하는 팻의 무모함은 언듯 이해되지 않으나, 그는 단순히 그날의 사건 이전에, 자기의 조울증으로 결혼생활의 위기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괴감에 벌어진 현실을 부정하고 더더욱 과거의 행복했던 한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정신적 충격으로 퇴행단계와 분노장애와 조울증 까지, 치료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보호로 집에 돌아온 그는 다시 전부인과 합칠 수 있다는 희망적 착각에 빠져있다. 그런 상태로 가족과. 지인들과의 첨예한 관계는 무릇, 되게 심각한 상태로 치닫지만 이 영화의 기본적 톤은 어둡지 않다. 슬픔을 위트로 승화시키는 힘. 연출자의 능력도 좋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최상이다. 좋아하는 배우 브래들리 쿠퍼의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다. 아픈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사랑과 배려의 눈길을 끝까지 보내는 엄마를 보면 이 영화가 특정한 서양의 가정 문화를 넘어 보편적인 가족애를 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 로버트 드 니로의 캐릭터와 연기도 무척 인상 깊은데, 아버지와 아들은 핏줄이 그러하듯 별개가 아니다. 아버지의 광적인 미식축구에 열정은 미신과 스포츠 도박에 빠지게 하고, 각종 강박증. 편집증. 경기장 폭행사건으로 영구 입장 금지등.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애비에 그 아들이다. 


  새벽에 감정이 붕괴된 팻이 결혼식 비디오를 찾으며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때, 흐르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날카로운 샤우팅 창법의 노래가 흐르며 본의 아니게 팻은 엄마를 치게 되고. 아빠를 때리고 자기도 맞는 장면은, 그 상황과 영화속 캐릭터들에 심하게 감정 이입이 되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 로버트 드 니로가 옆집의 정신병 인터뷰 하자는 학생 집에 가서 독설을 내뿜는 장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성기 때 성격파 배우의 카리스마를 여실히 볼 수 있었다. 늙었고 이제 노인 역할을 주로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왕년의 아우라가 내비쳤다. 연기에 있어 로버트 드 니로만의 자기 영역이 있는 거 같다. 어떤 영화속 캐릭터든.. 

  다음날 아버지가 형에 비해서 너한테 사랑을 많이 못줬다며 어렵게 말을 꺼내고 눈물을 훔칠때, 의외로 감동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다 그러하듯? 깊이 들어가면 지금의 성격이나 어떤 문제는 본인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어머니의 헌신적 노력외에 아버지의 표현 못했지만 속마음을 내보이는 점이 뭉클 했다. 

  쓰레기 비닐을 땀복 조끼처럼 둘러 입고 그는 열심히 동네를 조깅한다. 단 하나의 목표인 전부인을 다시 만나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그러다 여주인공 티파니가 끈질기게 따라오고, 이상한 데이트를 하게 되고. 서로간의 거래가 오가면서, 이야기는 흐르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 영화의 제목에 대본 또는 각본의 의미인 플레이북 이 들어가는 이유를 어림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친구는 이 영화를 보고 무슨 환타지성 연출같다고 생각보다 별로 라고 했는데, 팻의 정신병동 친구 (크리스 터커) 가 개연적이지 않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도 그렇고, 티파니가 팻의 조깅 시간을 알고 끈질기게 쫒아가는 것도 영화만 보면 개연성이 없다. 소설에선 팻의 엄마가 시켜서 한 거로 나오는데, 어쨌거나 제목의 플레이북의 의미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팻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주변인들의 짜여진 각본처럼. 팻의 성장을 돕고, 서로가 치유함으로써 깨진 조각은 퍼즐처럼 맞추어 간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인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과거의 상처에 붙잡혀 이상한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한 팻과 티파니. 이 둘의 만남은 흥미진진하다. 통후추의 화끈함과 깨알같은 재미가 공존한다. 티파니 역의 제니퍼 로렌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연기를 잘 했지만, 큰 상을 너무 일찍 받은게 아닌가 싶다. 

  둘은 열심히 춤을 연습한다. 팻에겐 어떠한 책 보다도 춤을 추며 땀을 흘리고 상대와 교감하는 것이  

중요했다. 춤 경연의 중간에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경쾌한 록 음악이 나올때 막춤 추듯한 그들의 모습은 가슴을 뜨겁게 했다. 마무리 동작에서 이상야릇하게 된 것도 웃기고.. 감정의 극단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그렇게 춤과 편지로 서로를 이해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결정적으로 조언하는 것도 인상깊었다. 누군가 손을 내밀려 할때, 마음을 알아채는게 중요하다고 ~ 지금 여기 이순간에 찾아오는 인생의 큰 변화에 마주서야 된다고.. 서로의 광기가 어떻게 조화로워지는지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사랑스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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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린 이랑 표적이 개봉하고 있을때, 역린의 평이 너무 극과 극이라. 그냥 안전빵으로 표적을 보기로 했다. 나름 재밌게 보았다. 영화 '아저씨'에서의 액션이 너무 인상적 이었던지라, 이제 왠만한 액션씬은 평균 이상의 짜릿함을 주는 것 같다. 내용은 프랑스 영화가 원작이라던데, 나오는 배우들의 연기가 힘있고 강렬해서 두시간 동안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들 너무 힘을 준게 작정하고 이건 영화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류승룡은 한국판 리암 니슨이 될 것인가. 도회적인 느낌보다는 영화 '활'에서의 몽고군 같은게 더 잘 어울려 보인다. 유준상의 악역 연기. 잘 하지만 게리 올드맨 정도엔 못 미친다. 


 역린은 뭐랄까. 되게 공들여 찍은 티가 많이나 왠만해선 좋게 봐주고 싶은데, 감독의 연출과 편집이 그러니까. 영화 전체의 리듬과 호홉이 너무 무드 잡는다고 할까. 드라마 pd인데 처음 영화 연출작이라 영화적 호홉이 아니었다. 마치 20부작 드라마의 스페셜 편집본 같은 영화가 되 버렸다. 인터넷서 이 영화에 대해 극명한 호불호가 양쪽 다 이해가 된다. 아무튼 내겐 너무 빤해 보이는 영화였다. 그래도 현빈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고, 정재영이나 조재현의 연기는 급이 남달랐다. 조재현의 '길티. 길티'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 동안 급박하게 돌아가는 암살의 서스펜스나 스릴러가 밍숭밍숭하다. 총제적인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한마디로 보이는 형식과 외관은 화려한데, 영화의 맥을 못 잡은 모양새. 이 감독은 다음 영화 작품을 찍을 수 있을까..


  방황하는 칼날은 더 많이 아쉬운 영화였다. 문제적인 소재로 묵직한 주제의식으로 나아가기엔 연출이 버거워 보인다. 중반 이후로 영화는 질질 끌려다니는 느낌이다. 초반의 강력한 충격과 아버지의 동기는 점점 자포자기식으로 흘러간다. 실제로 정재영이 연기한 아버지는 죽음의 사투를 벌이며 복수를 위해 차츰 나아가는데, 별로 긴장감이 들거나 하지 않고. 그냥 안쓰럽고, 답답하고. 참담하고 그렇다. 이런 사건이 그렇듯이.. 영화도. 뭔가 명쾌하지 않고, 답보상태인것 같다. 그러나 문제제기, 법적.사회적 인식 재고에 있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으키기에는 좋은 의도의 영화였다. 정재영의 연기는 참 고생했겠다 라고 단번에 느껴진다. 가해자 청소년의 심리도 파고 들었으면.. 너무 욕심인가. 그러나 좋은 영화는 악인의 캐릭터 조차도 다면적인 차원으로 그리는 것에 있다. 이 영화의 질문의 방향은 느껴지지만 설익다 만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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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터의 캘리그래피가 정말 가관이다. 캘리와 폰트의 혼합 사용도 영 이상하고, 포스터가 구리지만 영화는 정공법적으로 한 실존한 인물의 열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그 연세 노인의 경이로운 결과는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다. 단 하나의 목표. 5분여 동안 최고의 속도를 내고자 하는 열망에 모든 삶을 걸었다. 


  1920년대의 인디언 이란 이름을 가진 오토바이로.. 직접 부품을 만들어가며, 50마일 대의 최고 시속인 오토바이를 200마일 이상의 속도를 내게한다.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자기의 인생을 걸고 그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목표에 대한 열정과 진심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는 한계를 넘어서 달리고 쓰러진다. 그 스피드의 자유가 참 아름답다. 


  잰체하지 않은 노인의 따듯함이 배어 있다. 소박하고 온화하고 순수한 노인을 연기한 앤소니 홉킨스는 성격파 연기의 이미지를 초월해 버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런 연기와 연출이 감동을 배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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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


  주옥같은 영화다. 이것은 남자들의 성장에 관한 영화다. 사랑에 대한 믿음에서 벌어지는 상처와 그것의 극복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의 초반부 두 소년 ( 엘리스 와 넥본 ) 이 머드 (매튜 매커너히) 를 무인도에서 처음 만날 때, 감독의 연출이 인상깊었다. 아직 이 영화의 장르나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모르는 입장에서 머드의 심상찮은 등장은 마치 범죄 스릴러 물 일꺼란 긴장을 조성한다. 하지만 머드는 겉보기완 다르게 내심 순수한 사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어 기사도 정신과 사랑에 대한 믿음을 가진 엘리스는 그의 진심을 알아본다. 

 

  머드는 어릴적 독사에 물린 자신을 살린 여인 주니퍼 (리즈 위더스푼) 에게 헌신했다. 다른 남자에게 가버렸어도 그는 사랑의 맹목성에 빠져 그녀를 지켜주고자 어쩔수 없이 살인을 저질러 강가의 무인도에 숨어 있다. 어른이지만 내면의 성장이 어느 순간 멈춰버린 사람. 그런 그를 엘리스는 영원한 사랑의 가치를 믿는 순수함으로 믿고 따른다. 하지만 이 둘의 자기 자신의 믿음은 성장의 장애물이고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는걸. 힘들게 깨닫게 되는데, 그런 두 인물의 주변부의 남자들의 조언이나 묵묵한 도움은 자기 안에 갇힌 사랑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사랑의 행태로 보인다. 머드를 잡아 복수하려는 악당의 아버지도 또 아들이 죽어나가자 자기 믿음에 대해 놓아버리게 되고, 여기 나오는 모든 남자들은, 변화의 양상을 통해 어떤 성장의 과정을 밟게 되는 면면을 보여준다. 


  자기 안에 갇힌 믿음. 영원한 사랑에 대한 허상을 깨우친 자들이 갇게 되는 자유가 영화의 마지막에 의미심장하게 보여진다. 엘리스는 새로 이주한 도시의 아파트에서 여자의 눈길에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고, 머드는 자기 앞에 펼쳐진 드넓은 강인지 바다인지를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이 깨어지고 난 후,어떤 새로운 삶을 살지가 탁 트인 강은 말해준다. 


  사랑은 내가 믿고. 우러르고 좋아하는 대상에 있지 않다. 그건 자기가 만든 이미지에 불과하지, 그런 믿음에 자기가 잡아먹힌다. 영화에서 뱀의 상징성이나. 뱀에 물린 엘리스를 머드가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살리는 장면은 꽤나 의미심장하고 사랑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 같다. 주니퍼가 머드를 사랑안했다기보다 여자는 어쩔 수 없는 여자인, 어쩌면 이 영화는 철저히 남자 입장에서 바라본. 마초 영화 일 수 있다. 언어로 다 말할 수 없는 남자들의 성장 이야기는 요즘의 내게 너무 큰 귀감이 되었다. 


  p.s. 이 영화는 왠지 여러 가지 영화나 소설을 떠오르게 한다. 일단 수상가옥과. 강. 두 소년이 나오니까. 허클베리 핀이 생각나고, 스티븐 킹의 원작인 영화 '스탠 바이 미' 에서의 소년들의 모험과 성장. 넥본으로 출연한 소년 배우는 '스탠 바이 미'에서 리버 피닉스의 모습을 빼 닮았다. 마지막 탁 트인 강에 대한 심상은. '데드맨' 과. '모스키토 코스트' 에서와의 여운과 비슷하고, 무튼 여러 가지를 오마주로 환기시키는 느낌이 강했다. 미국 시골의 공간 배경은 유럽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내가 본 미국 시골의 이미지와 닿아 있어, 아련하게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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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나눴던 이야기 중에, 이 영화가 말해졌다. 아 딱 지금쯤 다시 이 영화를 볼 타이밍이구나. 얼마전엔 영화 르누아르를 보고 혹해서 그 영화의 촬영 감독이 화양연화를 찍은 사람이란 걸 알고, 집에 있는 화양연화 디비디를 넣으니 자꾸 뱉어냈다. 그래서 아쉬운 찰나에 이 영화라도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명배우, 장만옥의 대표작 아닌가! 아마도, 20대 초중반 무렵, 본 '아비정전' 이나 '첨밀밀' 등에서의 장만옥의 이미지가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 각인 되었나 보다. 당시. 배우 추상미를 좋아했었고, 복학 하자마자 본 어느 후배에 반하게 되었는데 장만옥과 추상미를 섞은 듯한 얼굴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끌렸던 얼굴형은 턱이 작아 동그랗거나, 정 반대로 길쭉한 얼굴형의 여인들을 번갈아 가면서 좋아했던거 같다. 직구와 변화구의 엄청난 차이만큼, 내 이상형의 기준 같은건 들쑥날쑥 폭투에 가까웠다. 단지 웃는게 예쁘면 그게 다였다. 




 장만옥과 여명의 오랜 사랑이 주된 이야기지만, 그 주변부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식도 꽤 감동적이다. 세월의 흐름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다양한 사랑을 나누고 지켜가는지.. 장만옥과 살게 되는 조직 보스의 남자다움이 유독 마음에 들었다. 미키 마우스 문신, 다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포용력 등. 그리고 중국의 발전하는 시대상 속의 욕망을 엿볼수 있었다. 대륙에서 홍콩으로 그리고 뉴욕으로 이어지며 좀 더 잘 살기 위한 사람들의 인연. 아무리 돈이 최고라 해도 힘들때 진심으로 곁에 있어주며 마음을 내주는 사이가 진짜 사람이다. 


 한참 후에 다시 볼 만한 영화였다. 그나저나 화양연화를 봐야 하는데.. 


 등려군의 그 노래와 자전거 타는 장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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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기질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어서인지 몰라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경향이 많다. 뭐 냄비 근성이라는 말 고깝게 듣지 말고 반성적 자세로 숙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절대 잊지 말고 ! 분노 하자 ~~ ! " 연대와 공감을 통한 창조적 분노 만이 이 썩은 의식을 타파 할 수 있을 것이다.  " 재벌 타도 " 는 " 독재 타도 " 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재벌의 해악은 광범위하며 교묘하게 침투해왔다. 잊지 말고, 개개인이 꾸준한 자발적인 운동만이라도 행하자. 탐욕스런 승자독식에 맞서 최소한의 행동이라도 하자. 삼성과 현대가 떡하니 찍힌 상품만이라도 거부하자. 국민을 봉으로 아는 그들의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왜 자꾸 그것들은 사는지..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가 최소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묵묵히 되새겨 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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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참 예쁘다. 만신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 이라고 한다. 인간세계에 우리와 같은 몸으로 태어났지만 인간과 신의 다리 역할을 하는, 만가지 영혼들에 제 한 몸 내주어 이승의 회환을 몸소 감내하는 기구한 운명을 가진 무당에 관한 픽션 다큐멘터리다. 


  감독이 박찬경 이라고,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다. 이 사람은 원래 미술가로 이름이 더 알려졌었다. 사실, 내게는 영화로서는 그다지 재미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 인물 다큐멘터리에, 사실을 기반한 과거의 상상적이고 몽환적인 연출을 접목시켜 김금화란 무당의 삶을 다각도로 펼쳐보이는 방식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문소리의 연기는 한여름 비오는 날의 개구리마냥 신내린 무당 배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지금은 무형 인간 문화재로 나라의 무당인 그녀의 삶의 이야기는 개인의 애환을 넘어서 이 나라의 우여곡절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한의 역사, 무당에 대한 대중의 모순된 정서, 전통 문화의 말살과 계승의 다채로운 담론거리를 제시 한다. 무당에 관한 찝찝한 호기심을 넘어 민족 문화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이성적 논리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재인식, 재발견 이었다. 


  박찬경 감독의 역량은 무당을 통해서 우리의 한을 신명의 정서로 나아가게 한다. 무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첨예하게 노니는 종합예술인의 면모로 굿(축제)를 벌인다. 수없이 억울하고 어이없이 죽어갔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남은 자들의 화합을 도모했다. 떠난자의 영혼을 달래고, 남겨진 자의 위로와 즐거움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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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익 감독의 영화중엔 이 영화만 좋다. 왕의 남자도 나쁘진 않았지만, 정말 좋다는 영화는 이 영화 뿐이다. 황산벌. 그 재밌는 영화적 소재를 가지고 그렇게 밖에 연출을 못하다니, 라디오 스타가 흥행에 성공했고 이 영화가 야심작임에도 흥행에 실패했다는건 취향의 문제라기 보단 대중의 눈높이가 낮다.라고 말하면, '재수없는 놈, *나 잘난체 하네~. 니가 영화를 만들어 봐라.' 등등등. 말 안해도 안다.ㅎ 실은 여성,여심 마케팅에 실패한 대표적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시대극에 드러나는 가부장적 태도와 그것에 어쩔수 없이 내몰린 여인의 삶은 기구하게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자들의 욕망 속에서 흘러가며 자아가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남성적인 시각에서 진행된다. 주체적인 자유가 없고, 선택지가 없는 여인의 답답한 삶과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이 남자들한테는 어떤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여자들이 봤을땐, 한없이 짜증나고, 공감하기 힘들며, 불쾌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일면적으로 보이는, 사랑하지 않은 남자를 그렇게 집착하듯 찾아나서는 과정에 감정이입도 안 되거니와, 마지막 장면의 끝맺음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부채질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여인의 속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내몰린 절망감, 타의에 속박되어 묵묵히 울분을 인내하며 사랑도 희망도 없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 심정을 우리는 감정의 저 밑바닥에서 찾아야 한다. 이 여인의 표상은 우리의 역사속 한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나라를 잃고, 주체적 독립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의 슬픈 숙명같이, 돈을 위해 피를 흘리고 돈을 위해 웃음을 팔고, 돈을 위해 양심을 팔아야 하는 기구한 아픔이 스며있다. 

 절박한 전투가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들의 해후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자들의 말못할 탄식이 울분에 넘쳐 진한 여운을 남겼다. 개인의 사연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가 가진 말도 안되는 상황말이다. 내몰린 여성들이 가야했던 그 길 들 말이다. 


  이야기의 이면에 깔려있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은 대형 제작비의 상업 영화와는 안 어울리겠지만,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은 작품을 만들려는 욕심을 부린듯 하다. 그런 의욕이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를 불러왔겠지만, 나름 의미있는 시도이고, 다양한 국물 맛을 우려낸 듯한 성과가 있다고 본다. 물론 작위적인 장면들도 많긴 하지만, 주인공 여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가져오는 쓸쓸한 여운은 파장이 크다. 음악의 힘과 배우 수애의 힘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좋은 작품이라고 여긴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냥 묻혀지긴 아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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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감상하고 리뷰를 바로 써야지, 조금 지나서 쓰려고 하니, 막 보고나서의 할 말 많음이 어디론가 쏙 들어가버렸다. 

  매튜 매커너히가 당연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만 했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디카프리오도 잘 했지만, 이 영화에서의 매커너히는 연기에 관해서 범접할 수 없는 지존의 경지에 오른 듯 하다. 그리고 '더 울프~' 에서의 짧은 조연 연기도 무척 인상깊었고, 원래 이 글에 앞서 리뷰를 쓰려 했던 영화 '머드(2012)'도 무척 좋았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배우는 포텐셜이 터지고 대운이 들어오는 시기가 맞물린게 아닌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 의 연기와 필적하는 명배우의 반열에 들었다. 

 언젠가. 전성기 때,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를 찬탄했던 어떤 글이 떠오른다. 역할에 따라 살을 찌우고 빼고 그런 노력을 넘어서 같은 시기에 완전 극과 극의 정신적,심리적 벡터를 가진 인물의 연기를 완벽하게 오가는 거에 탄복한다는 요지였다. 나도 동의했다. 성격파 배우로의 이미지가 큰 그가 되게 가벼운 연기조차 영화에 완벽히 녹아드는 걸 보며 정말 남다른 배우로구나를 여실히 통감했다. 위에 말한 매튜 매커너히의 일련의 최근작에서도 이런 완벽한 배우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주인공 우드로프가 로데오 경기에 출전한다. 성난 소의 등 위에서 중심을 잡는 그의 모습이 순간 정지되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기존 제도와 권력에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그에 저항함으로써 사회적 진보를 이루게 한, 한 실존 인물에 대한 연대기 이자, 방탕한 탕아였던 자기 자신의 성장담이다. 영화의 감동은 주인공 우드로프의 변화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인간애의 발현이다. 나만의 고통이나 이익이 아닌, 다수에게 되돌려지는 일종의 자비적 행보는 큰 울림을 준다. 그건 그가 전혀 도덕적이거나 평범한 사람의 가치에 준하는 삶이 아니라, 그야말로 쓰레기라 불릴수 있는 타락한 카우보이의 삶을 살던 텍사스 마초맨 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소가 갇혀 대기하는 밀폐된 공간에서 쓰리썸으로 떡치는 우드로프의 동물적 모습이다.(저런 질낮은 표현을 쓴것은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그 장면에 대한 인상의 사실적이자 제일 적합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_부디 저질이라고 치부하지 않기를.) 그 공간이 마지막 장면에서의 우드로프의 로데오 경기를 내다 보는 카메라의 시점이고 소 등위에서 중심을 잡는 우드로프를 순간 정지하여 보여주며 끝내는데, 공간을 통한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순환고리는 이 한편의 영화를 통해 한 인간 삶의 변화를 감동적으로 응축하고 있다. 개인의 쾌락.이기를 넘어선 공통의 가치에 투신 했던 자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아래 부턴 스포일러 포함 

  텍사스 카우보이 오리지널 마초 우드로프는 전기기술자로 일하며 술,마약,섹스,도박 등등 방탕한 삶을 일삼는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몸에 사건 사고가 터지면서,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병원에서 30일 시한부 삶을 선고받는다. 항 HIV 바이러스 치료제로 아직 임상실험중인 AZT란 약을 몰래 빼내어 복용하지만 상태만 악화 된다. 절박하게 직접 이 병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멕시코의 한 의사를 찾아 가게 되는데, 그 의사에게서 들은 말은, AZT의 부작용의 심각성과 그 대안으로 비타민, 아연, 단백질 등의 약제를 추천받는다. 미국 식약청(FDA)에 승인이 되지 않은 약품에 아직 규제가 없던 시절, 그는 대량으로 약품을 가져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이란 명칭으로 모텔방에 사무실을 꾸리고, 자기 처럼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에게 판매를 한다. 여기서 병원과 제약회사가 어떻게 공모하여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돈을 벌어들이는 더러운 공생관계를 볼 수 있고, 그것에 반하는 운동? 을 우드로프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이제는 에이즈가 공포의 병이 아닌 잘 관리하면 오래 살 수 있는 병이 된 것이다. 


  
  에이즈에 걸리기전 그의 삶은 너무나 난장판이자 동성애,여성성에 대한 극단의 혐오를 가진 악한 자로 보이지만, 시한부를 선고 받고 자신이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가 겪는 변화는 은근 감동적이다. 대놓고 휴머니즘적 환골탈태가 아니라, 그 따듯한 본성이 드러나는 몇몇 순간들이 그렇다. 비지니스 파트너인 트랜스젠더 레이언(자레드 레토. 남우 조연상 수상)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대표적으로 마트에서 벌어진 일) 여자 의사와의 정서적 관계나, 경찰관 친구에게 보내줬던 약품 등등, 일면 더럽고 거친 그의 삶에 보석같이 빛나는 선한 본성의 발현이었다. 막판에는 식약청과 법원의 압박에도 자기 사비를 털어 아픈 사람들에게 옳은 약을 구해주고자 하는 자비심까지 엿보인다. 같이 일한 동료들이 나열해서 그에게 고마움과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장면에선 감동이 몰려왔다. 


   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 80년대 내가 꼬맹이 시절때에, 이 에이즈란 말은 공포 그 자체였다. 70~8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을 위시해 전세계적으로 번진 희기병. 혈액에 면역 체계가 없어지는,, HIV 바이러스 자체가 규명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도 그려지듯이, 내 몸안의 특정한 세포나 바이러스를 죽이는게 아니라,(AZT는 좋은 세포도 다 죽임) 면역 체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물질을 섭취하고, 자연적인 섭생을 함으로써 관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드로프가 레이언과 마트에서 장 볼때, 가공식품 먹지 말고 유기농 채소 위주로 담고, 마약은 면역을 떨어뜨린다느니, 자신이 에이즈가 걸림으로서 완전 다른 삶 의 차원으로 들어간다. 병이 완벽한 인생 변곡점의 동기가 되고, 공부를 함으로서 자신이 투신해야할 가치를 찾았다. 

  이 에이즈 란 병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과도한 정기의 남용으로 인한 필연적 과정으로 보인다. 60년대 성혁명 이후로 급진적인 성의 행태는 마약의 환각과 어울려 자연의 정기를 고갈시키는 쾌락으로만으로 치달았다. 히피들의 자연을 사랑하고 사랑과 평화를 외치는 건, 실상 개인의 극단적인 쾌락만 추구했을 뿐, 결과적으로 허세어린 치기의 공허한 모순이었다. 그들이 추구해야 할 건, 아메리카 땅의 인디언들의 전통과, 기상을 이어받는 자연과의 합일 이어야 했지, 동물적 쾌락의 무분별한 추구는 결과적으로 80년대 에이즈의 창궐을 비롯해, 수많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잉태되고 사산되고,, 그러한, 잘 알려지지 않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포스트모던의 가치를 두가지로 수렴한다면 다양성과 자율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90년대 중반 이후로 어쨌던간 이런 흐름 속에 기존의 의식, 가치들이 와해되고 해체되어 다양성의 수렴 과정이라고 불 수 있는데, 나한텐 아직 동성연애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니까 게이들에 대한 본질적 반감 보다는 그들의 사랑의 행위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이 있다. 그건 당연히 조물주나, 자연에 반하는, 정상이 아닌 것이다. 요즘 같이 비주류, 소외계층, 음지문화에 대한 관대한 시선과 드러냄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넘어 자부심까지 가지며 거리 축제를 벌이고 그러는데 솔직히 말하면 못마땅하다. 사회적 억압에 맞서, 동성애자 운동가들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가되나, 자칫 그것이 당연한 거고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헤게모니의 전도는 위험하다. 일례로 모임에서 어떤 젊은 여성이 에이즈와 동성애, 동성연애의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고 피력하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진보적 분위기에 매몰되, 그것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무식한 꼰대나 갖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는데, 나는 이런 것이야말로 무지의 소산이고, 그런 비주류 문화의 오도 인 것 같다. 어쩌면 그녀가 레즈비언만 생각해서 그럴지도 모르는데, 나는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애널섹스의 위험성이 가진, 더 큰 쾌락을 위한 자연적이지 않은 무리수가 피의 오염을 불러오는지 일갈해 버렸다. 

  사랑의 다양한 행태가 사랑의 본질을 우선할 순 없다. 자율성을 존중하지만 극단적인 감각의 쾌락 추구는 위험해 보인다. 자신의 남자친구가 남자와 바람이 났거나, 여자친구가 흑인과 바람이 났다면, 절대 이전으로 돌아 올 수 없다는 우스개 말은, 너무 육체적 쾌락에 집착한 시각이고, 그게 요즘 욕망 벡터의 전부다. 자연, 모든 사물과 교감 할 수 있는 정기를 보호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영화속에서, 데이빗 보위와 함께 글램록의 양두산맥 이었던 T-REX의 요절한 천재 마크 볼란의 사진과 음악이 끊임없이 노출되어진다. 우드로프의 동업자인 트랜스젠더 레이언의 우상으로, 글램록의 특성상 그 분위기가 다분하지만 마크 볼란이 동성애자인 건 처음 알았다. 영화속에서 듣는 데이빗 보위와 티렉스의 노래는 너무나 좋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주루룩 나오는 주옥같은 음악이 티렉스의 마크 볼란 노래다. 

  1991년에 에이즈로 죽은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 를 통해 동성연애의 실상과 에이즈의 공포를 상징적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오랬만에 에이즈에 대한 어릴적 공포의 추억과 다양한 상념들을 불러왔고, 지금의 다양한 면역 계통 병들을 생각해 보면, 병은 어떤 대가 라 생각된다. 자연.환경.생명의 위기에 대한 대가의 변화.
  에이즈와 동성애에 대한 더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여기서 줄여야 겠다. 이런 주절거림이 영화의 감동의 본말을 주객전도 하는 것이니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성찰하게 하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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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시네큐브에 갔다. 옛날에는 썰렁한 곳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들로 북적대는게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다. 언제라도 아무 영화를 골라 보더라도 믿고 감상할 수 있는 수준작을 상영하는 이곳이야말로 감성의 안식처이자 내가 조금이라도 바뀌는 계기의, 성찰의 제공처였다. 발길 가는대로 계획에 없던, 시간되는대로의 영화 관람에서 이런 재미와 감동을 주는 영화의 발견은 완벽한 하루를 이루게 했다. 


 일본영화의 전형적인 특성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상영 시간이 길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나릇한 연출 스타일은 요즘의 영상환경에 역행하지만, 일상에 기반한 삶의 이야기는 사소한 행동이나 의미없어 보이는 마주침에서도 현실을 이루어가는 퍼즐을 제공한다. 시간과 공간의 압축으로 일상의 소중한 의미부여는 우리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쓰이는 단어에 상징적으로 녹아있는 것을 들춰낸다. 


 그렇게, 일상에 쓰이는 언어(단어)를 수집하고 그 뜻을 길어올려 정의하는 일을 하는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서를 그리고 있다. 

 때는 1995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과도기에, 하나의 종이책 사전을 만들기 위해 장장 15년의 각고의 노력끝에 완성되는 과정은 투철한 장인정신이 뭔지를 보여 준다. 이런 점이 일본성.일본 문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의 계승. 남의 시선이나 시대의 유행을 넘어서, 오래 남을 가치있는 일에 투신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전에 감명 깊게 보았던 장의사에 관한 일본 영화 '굿,바이'에서의 감동과 비슷했다. (히로시에 료코나 아오이 유우 나오는 영화는 이제 설레였던 추억이 아로새겨진 느낌이다.)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주인공 하지메(성실)은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켜켜히 책에 둘러쌓여 있는 하숙집 방과 흡사한 허름하고 옹기종기한 사전 편집부에 영입 되어 단어를 수집하고 정의하는 일을 한다. 처음 그를 영입할 때, 전임자와 오다기리 조가 오른쪽을 설명해 보라고 했는데, 그의 말과 행동은 다른이와 달랐다. 단어, 질문을 대하는 진지함과 사전을 찾는 행동은 묘하게도 인상 깊었다.  감정 표현에 서투른 그가 하숙집 할머니 손녀 에게 한눈에 반해, 어설프지만 몸소 실천하고 깨달아 가며 사랑을 정의하게 된다. 하나의 단어, 글자의 의미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유용되어 한 인간이 발전하는지를 침착하고 유머스럽게 그려낸다. 


 그런 과정에는 사무실 동료와 하숙집 할머니 등의 조연들의 활약이 주를 이룬다. 감초 연기의 핵심은 오다기리 조의 역할이었다. 그는 실로 대단한 배우같다. 주인공 비중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이루었다. 어깨의 힘을 쭉 뺀 능청스러움은 따듯한 동료애를 느끼게 한다. 그의 연인으로 출연하는 배우는 '조제 호랑이~ '에서 장애인 여주인공 이었던, 살짝 푼수 같은 연기가 참 좋았다. 그리고 계약직 사원 아줌마의 센스 작살. 하숙집 할머니의 밝은 웃음과 태도, 편집장의 올곧음과 그 부인의 온화한 미소, 나중에 합류하게 되는 신참 여직원의 새침한 외모와 태도 변화는 하나하나가 재미와 감동을 준다. (오다기리 조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이 웨이'는 치명적 인 것 같음. 히로카즈 감독의 '기적'과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딱 좋은거 같다.)




 일례로 하지메가 하숙집 손녀딸에게 사랑 고백 편지를 써서 오다기리 조한테 봐달라고 하는데, 아마 전부 한자로 쓴 붓글씨에 경끼 하는 장면에선, 요즘 내가 붓글씨를 연습하는 입장에서 너무 웃기고 히껍하는 마음이 와 닿았다. 그렇게 인간관계에 있어 도통 어설픈 하지메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어쩔 수 없는 영화적 비약으로 압축 되었지만, 당사자들의 상징적인 말들과 태도가 참 인상 깊었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니까..가능한 일. 소심한 캐릭터의 과장은 극적인 해결의 감동을 배가시키나 너무 비약된 감이 없지 않다. 

 그렇게 부부가 되고, 서로 무릎을 꿀어 앉아 밥먹는 모습에서 정중한 태도의 일본 문화를 엿 볼 수 있었다. 이런 일본적 태도는 영화 곳곳에서 뭍어난다. 시대의 흐름 만큼 신조어의 등장과 그것을 수렴하는 일은 현재에 충실하며 다른 한편으론 일본 전통의 가치를 역설하게 만든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들을 지금의 관점에서 재정의 하고, 그들 각자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의는 한권의 사전에 인생을 담은 것이다. 


 선배와, 동료, 부부에 대한 예의를 보며 타인을 존중하는 몸에 배인 일상적 태도를 가늠해 보게 된다. 또, 종이를 고를때나 5번이나 교정작업을 하는 일 등에서 세심한 완벽주의는 자신의 일에 인생을 걸은 자의 열정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이렇게 사소한듯 삶의 중요한 가치들이 많이 녹아 있는 영화였다. 사실 극장의 맨앞에 보아서 인지 초반에 깜박 의식이 잃었으나 필름의 자글자글한 입자감이 아주 푸근하게 감싸 왔다. 다시 한번 섬세하게 본다면 새롭게 보일게 많은 영화였다. 일본 영화 중에서도 매우 수작인 아주 좋은 영화였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 '배를 엮다'도 읽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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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상 충격에 집중력이 최고조 였다. 모든 장면들이 명화를 감상하듯 경건해졌고, 아름다웠다. 빛과 색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섬세한 카메라 이동과. 미장센의 조화는 그야말로 생동하는 미술관 이었다. 표면적인 내용은 노년의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일상적 작업의 묘사가 주를 이루나, 늙음에 도사리는 육체의 비애는 엄숙하게 만들었고, 그 이면은 평범한 생노병사, 희노애락의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노년의 르누아르가 작업하는 주제는 찬동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여러번의 붓터치의 반복적인 행위로 승화시키는 듯 하다. 젊고 아름다운 생명의 기운을 잡아 채어 캔버스 위에 재현하며 굳어가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매력적인 누드 모델 데데의 등장으로 더욱 활기를 띤다. 그러던 와중 전쟁에서 부상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 장 르누아르 또한 데데의 매력에 빠져든다. 데데는 이미 유명한 말년의 화가와 아직은 젊은이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유명한 영화 감독이 될 장 르누아르 에게 예술적 뮤즈였던 것이다. 젊은 장 르누아르가 데데 때문에 찬물과 더운물을 오가며 전전긍긍하자, 아버지 르누아르는 여성의 존재를 긍정하는 말들을 한다?. 뭐랄까 아름다운 여성을 통해 예술의 동기와 영감을 얻는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르누아르는 아직 제길을 찾지 못한 불안과 사랑에 흔들리지만, 삶을 마무리 하고 있는 늙은 르누아르는 무심히 아름다운 여인의 몸과 자연을 화폭에 담을 뿐이다. 부자의 대비를 통해 여러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삶과 예술. 그리고 여자. 참 불가분의 오묘한 요소들이다. 


 이야기는 밋밋할 수 있어도 정말 아름다운 영상과 차분한 전개에, 꽤 심상에 많이 남는 작품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보게 되는 명작은 정말 삶의 선물이었다. 이대 후문의 필름 포럼 이란 작은 영화관 이었는데, 스크린은 작아도 공간이 작은 만큼 몰입이 잘 되었다. 뭔가 인디적 분위기 물씬 풍겼다. 주차도 운이 좋아서 특급 자리였다.ㅎ  또 언제 가보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이날의 영화 감상은 정말 훌륭했다. 


 촬영감독이 '화양연화'를 찍은 사람이었다. 코닥 필름의 따스한 느낌과. 필름만의 진득한 색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오전이나 오후의 늬웃한 태양의 각도와 선명히 맑은 대기 때의 날만 골라서 촬영 했는데, 그런 인내와 정밀한 장인 정신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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