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책,  책,

내 생활 공간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책들을 보면 간혹, 애증의 심리가 솟구친다. 언젠가 읽었던 책들과 읽다 만 책들, 그리고 사 놓기만 한 책들이 불편한 모양새로 내게 불만을 토로하는듯 하다. 특히나 요즘은 도서관서 빌린 책들이나, 서점에서 원_나잇 스탠드 하는 책들 에게 밀려서, 먼지만 쌓이고 종이 들의 시체 처럼 보일 뿐 이다. 내 방에 안착한, 그러니까 내가 소유한 책 이란 명제 에서 오는 나태함과 허영심 어린 책들이 내게 묘한 압력을 주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과 지적인 탐구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작용한다. 언젠가는 먼지를 털고 콧 기름 발라가며 손 때 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소유되지 않은 책 과의 외도가 더욱 짜릿하다. 왜냐하면 서점에서 보는 책은 몸이 편하지 않으며, 빌린 책은 날짜의 한계가 있으므로 절박하게, 더욱 집중해서 한 숨에 읽기 때문이다.

 서점에서의 책 읽기는 편하지 않음에서 오는 긴장과 집중이, 삶에서 몰입의 희열을 깨닫게 해준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진리에 다가서기 어렵다는걸 비교 체험으로써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고 서점에서 쟝 보드리야르나 롤랑 바르트 등등의 학자들의 책을 읽진 않는다. 새로나온 에세이, 사회비평 등등이 서점에서 읽기가 딱 좋다. 최근에 장영희, 한비야, 홍세화 님의 새책을 읽었다. ( 제목은 적지 않겠다.) 책을 좋아하다 보면 책 고르는 안목이 좋아지는데, 역시 위 세 저자들의 책은 아주 뛰어난 문장과 함께, 탁월한 감수성과 통찰을 보여준다. 한비야 님의 책은 그동안 일부러 거부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 책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뻔한 내용일꺼라 짐작한, 제목도 마음에 안 들었던,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를 보고 편견이 사라졌다. 또 무릎팍 도사에 나온 그녀의 모습을 보고 글의 진정성이 더욱 느껴졌다. 문장을 읽으면서 상상한 저자의 어투와 호홉이 실제 모습(방송에서지만.) 과 대단히 비슷하단 느낌이 들었다. 한 마디로 솔직하고 경계에 얽매이지 않은 시원시원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배울점이 많은 분이라 생각한다.

 홍세화 님의 책은 두고 두고 곱씹어 볼 사회 비평서 인데, 개인적인 이유에서 책 구입은 망설여 진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소유에 대한 정체라고 할까.. 지식,비평은 흘러서 소통돼야 하는데 한 번 읽었던 책들이 결국, 방안의 책장에 종이들의 성전이 되가는 꼴이 이제는 싫어졌기 때문이다. 대학을 지식 혹은 지성의 상아탑 이라고 하는데, 공부는 쌓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쳐가는 것이고 오히려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전에 전기류의 책들을 ( 브레송,만레이,트뤼포,헬뮤트 뉴튼 자서전 등등..) 개인 직거래로 팔았다. 다른 중고 거래와는 달리 책의 직거래는 묘한 정서적 희열이 있다. 내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풀어 놓음으로써 오는 작은 해방감과, 책을 받은 사람의 얼굴에 퍼지는 설레임이 교차하면서 그 책은 사명을 다 한 것이다. 떠나보냄으로써 드디어 내 영혼에 각인 되었다.

 반면에 이외수 님의 ' 하악하악 ' 류의 책들은 딱 서점에서 읽을 용 이라 생각한다. 작가 이외수를 싫어하진 않는다. 그의 글 에서 성찰과 영감을 얻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상업적인 냄새가 난다. 고급 종이에 이쁜 칼라 일러스트와 짧고 농축된 문장들, 지면의 여백, 보기에 좋지만, 비싼 책 가격에, 한 시간 정도에 읽히는 분량은, 왠지 출판사 사장 배불려 주는 꼴 인 것 같다. 이외수 님 이름으로 이런 책들이 꽤 많다. 그러니 책의 좋음을 떠나서 펜시 상품으로써 밖에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출판 시장이 불황이라면서, 왜 파주 교하의 출판단지의 출판사 사옥들은 그렇게 멋지고 으리으리 하게 지으셨는지, 화천 감성마을엔 그 멋대가리 없는 콘크리트 벙커의 집을 지으셨는지, 모를일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선 돈이 공기와도 같은 것인데, 파주나 강원도 좋은 공기에서 돈 냄새 많이 맡으셨는데 뭐라 탓 할 일이 아니다. 선택은 내 몫 이니까.

  더 할 얘기가 많지만, 책 하나만 추천하고 마친다. 김중혁의 단편 소설집 ' 악기들의 도서관 ' 참 재밌게 읽었다. 젊은 작가의,  현대인의 감수성을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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