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실망인걸. 김영하의 글은 단편집과. 수필들만 접했더라도, 와 대단히 글을 잘 쓰는군. 하며 그의 재능에 놀라워 했다. 그래서일까. 기대에 만족하지 못한 뭔가 설익은 이 뒤끝은 뭐지.  


 약속시간이 남아돌아 서점에 들어갔고,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김영하 였으니까. 앞뒤 재보지도 않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40~150 페이지 정도에서 끝이 났고, 어떤이의 해설글이 시작되었다. 


 짧은 단문들이 수월수월 읽히고 책을 잘 안 읽는 요즘 세대들을 위한 스타일인지 짧게 단락으로 나뉜 미니멀한 문장들은 더더욱 빨리 읽히게 되어있다. 


 그런데 불조절 실패한 코펠의 설익고 푸석한 밥 같은 이 느낌. 책 끝에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이 소설을 쓸때, 순탄하지 않았단 일들을 고백한다. 어떤날은 하루에 두 문장 쓰기도 힘겨웠다고, 그렇게 수얼수얼 읽히는 글들을 쓰던 작가가.. 


 작가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 심란했던듯, 습작시절 밤늦게 자고 정오에 일어나는 아들의 수북한 재떨이를 묵묵히 치워주던 아버지의 자상함을 상념한다. 


 소설의 내용은 서서히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린 왕년의 연쇄살인범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딸.(사실은 예전에 자신이 죽인 부부의 딸) 을 또다른 살인자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분투하는 내면을 보여주는데 나중엔,,그 뒤죽박죽된..치매걸린 노년의 살인자의 영혼은 당연하게도 뒤끝이 깔끔하지 못하다. 상황의 공감이나 영혼의 스릴러도 찾기 어려움. 뭔가 불교 경전의 문구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좀 와닿지 않는다.. 해설을 읽으니 좀 더 파악이 되긴 해도, 대중성과 작품성..이도저도 아닌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어. 김영하의 다른 장편소설도 읽어봐야겠단 욕구가 생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란 책인가..암튼. 대표작이니 와우~ 하겠지..




 문화센터에 다닐 때, 강사가 미당의 시를 가지고 수업을 했다. '신부'라는 시였다. 첫날밤 뒷간에 가는 신랑의 옷이 문고리에 걸렸는데, 신랑은 신부가 음탕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달아났다가 40년인가50년 후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들러보니, 신부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앉아 있더라는. 그래서 툭 건드렸더니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더라는 얘기. 강사부터 수강생들까지 정말 아름다운 시라며 난리를 피웠었다.

 나는 그 시를, 첫날밤에 신부를 살해하고 도주한 신랑 이야기로 읽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시체. 그걸 어떻게 달리 읽겠는가.?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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