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소설 읽는 맛인거야 ! 대단한 흡인력,  이야기를 풀어내는 입담이 대단했다. 책을 잡으면 400페이지의 분량임에도 하루안에 읽게 된다. 

 단편 소설 하나만 발표했고, 첫 장편소설인데 이 정도라니 역시 소설가는 타고난 뭔가가 있어야 되는듯. 요즘 이 작가의 수식어가 희대의 이야기꾼이던데 꽤 수긍된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계기는 소설가 박민규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소개팅녀와 책 이야기를 하다 박민규를 좋아하시면 천명관의 고래를 꼭 읽어보시라고 강추했고, 헤어지고 의례 하게되는 안부인사도 잊은채 나는 그 책 만은 잊지 앉으려 노력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몇년전에도 대학선배로부터 똑같은 이유로 추천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고래는 그렇게 무의식의 수면을 박차고 나는 이야기가 가진 힘에 무참히 매혹되었다.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소설속의 한 문장이다. 


 소설의 본질이 무얼까. 문자시대에서 소설은 문학의 위치에 예술작품이 되었고, 지금의 인터넷 시대에선 꽤 고전적인 장르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인터넷의 발달은 문자문화에서 구술문화로 역진화되었다. 구술문화의 액기스는 이야기이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은 소설이 제격이었다. sns가 점령한 우리의 문화에서 소설은 새로운 틀을 갖고 다시 태어난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양상. 그것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

비문학의 원초성에 기댄다. 관념의 묘사보다는 행위를 기술하는 상황의 전개는 영상시대에 맞게 빠르게 흘러간다. 작가의 감성은 최대한 배제되고,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변사가 되어, 구수하고 걸쭉한 입담을 과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으로써의 소설이기 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이 붙는 이야기의 법칙이었다. 

 


 소설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 여인들의 인생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소설읽기의 감동은 타인의 삶의 경험을 내재화 시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라도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자신을 성찰할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역사를 통찰하는 경험이자   심심한 삶에 재미와 상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수시로 여러가지 ~의 법칙이었다.가 등장한다. 그것은 기존의 관념에 조롱을 하는 작가만의 재치였고 전체적으로 이 작품으로 소설의 법칙을 해체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복선이 깔리고 인물의 성격이 묘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것에서 벗어나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입담 좋은 변사가 살을 붙여 너무나 재밌게 이야기 해서 언뜻 무협지처럼 술술술 읽혀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진 않을까 의심할 수 있으나, 그렇게 가볍게 재밌고 말 성질은 아니다. 기욤 뮈소 같은 대중적 소설과는 다른 차원이다. 묵직한데 해학적이라고 할까.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뒤의 심사평만 보아도 평론가와 기존 소설가의 호평과 질투가 드러난다. 


 여인들을 통한 인간의 덧없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판타지 였다. 성적인 표현도 얼마나 구수하고 정겨운지 시각적인 매력뿐만이 아닌 미묘한 후각 혹은 육감으로 전하는 농밀한 성적 표현이 와 닿았다.

이것은 재미난 사람의 법칙이었다. 아무튼 특별하게 재밌었다. 


 소설속의 한 문장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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