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설 기미가 안 보이는 새 해 첫주 한파속에서 일주일간. 춤 워크샵에 참여했다. 어제 끝났지만. 여전히 근육들은. 생소한 스트레치의 긴장에 뻐근하며. 떨고 있다. 짧은 시간동안. 아주 강렬한 몸의 체험과. 인식의 전환 이었다. 몸을 통해서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값진 경험이었다.
 예술과 놀이의 경계 사라짐. 나와 타인의 몸의 경계 사라짐. 공간과 중력과 친해지는 법. 몸으로 할 수 있는 즐거움과 한계를 여실히 느낀. 일주일 이었다. 

 예전에 대학 교양체육 시간으로 댄스스포츠를 2번 수강했었는데, 그떈. 스포츠에 가까웠다면. 이 번 워크샵은. 몸으로 깨우치는 철학에 가까웠다.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나의 몸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 당혹감. 단순히 숨쉬고 걷는것 조차. 새로운 인식으로 다가오는 체험속에 선생님의 외마디 조언들은. 촌철살인의 비수 였다. 

 안무가 정영두 선생님의 이 워크샵 소개는 이런 글로 시작한다.
 
이론과 실천은 늘 상호보안하며 발전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한쪽은 늘 다른 한쪽보다 우월(열등)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상호보완하기 보다는 상호배척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지려 합니다.

늘 이론이 전제하고 실천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 후에 이론이 따르기도 합니다.

스스로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있다고 생각된다면 이 워크샵이 도움을 줄 것입니다.

한명의 과학자가 하나의 이론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만큼 한명의 무용수가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는데 또한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춤은 움직이는 행위(실천)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만큼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늘 피상적인 사고와 언어, 문자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발전시켜왔다면 새해에는 근육의 떨림이나 땀방울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발전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입니다. 

 자세한 설명.

- 다른 매체를 빌리지 않고 직접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하는 장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영감이 떠오르거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반드시 움직이는 행위를 전제로 합니다.
오늘 거기 가야지? 라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과 직접 몸을 움직여서 거기에 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춤은 오늘 거기 가야지? 라는 개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직접 행위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머릿속에 머물뿐입니다. 그러므로 춤을 춘다는 것은 오늘 거기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반드시 거기에 가는 행위가 뒤 따를때 춤이 되는 것입니다.

 - 춤을 추거나 볼 때 이야기를 만들어가면서 추거나 보면 훨씬 이해가 빠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에 갇혀서 상상력의 한계를 불러옵니다. 이야기라는 것은 언어나 테스트로 전환되기 때문에 나, 개인이 해석하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아도 수동적으로 받아드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했다, 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춤은 다른 장르와 다르게 언어와 텍스트로 부터 자유로워지게되면 무한한 상상력이 열리게 됩니다.
동시에 사물을 개인이 시간을 두고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춤은 꼭 언어를 탈피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 이후에 찾아오는 질문들도 많습니다. 늘 질문이 먼저 있고 그 질문을 해석하기 위한 행위가 뒤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성적으로 이론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몸을 움직여보면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 "느낀다"는 것은 막연한 감정이 아닙니다. "느낀다"라는 것은 내가 살아온 날들과 내 몸과 기억으로 형성된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무언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학습을 통해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과 다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은 언젠간, "몸의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삶을 결정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몸의 무게와 중력을 이용한 스트레칭과 움직임>

 

- 스트레칭에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몸의 무게와 중력을 인식하게 되면 그것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이완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체 각부분들의 무게를 이용하여 좀 더 효과적인 스트레칭이 가능합니다.
아주 쉬운 예로 가방을 어깨에 손에 들었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방의 끈이 가방의 무게로 인해 아래로 팽팽하게 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가방안에 무게를 지는 물건과 중력으로 인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억지로 다른 한손으로 잡아당긴다던가 하지 않아도 가방의 끈이 아래로 늘어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의 근육도 억지스러운 힘이 아니라 신체의 무게와 중력을 이용해서 좀 더 자연스러운 스트레칭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게 되면 춤을 출 때도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집니다. 

      
   <호흡 통해 알아보는 움직임>

- 호흡과 움직임은 아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흡 할 때마다 가슴과 배가 수축과 이완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흡은 늘 온 몸을 움직임이는데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거운 것을 들때나 점프를 할때 숨을 참는지 아니면 내뱉는지 아니면 들이마시는지 생각해보십시오.
본인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어떤 동작을 할때마다 거기에 어울리는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을 한번 뻗더라도 숨을 어떻게 쉬는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 호흡을 통해서 움직임과의 관계를 깨닫고 더 완성도 있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움직임에 있어서의 공간과 방향>

- 우리도 느끼지 못하지만 공간과 방향은 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어느 공간이던지 내가 심리적으로 편안한 공간이 있고 또 편하게 느끼는 방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의 움직임을 결정하게 됩니다.
춤을 출 때 공간과 방향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무언가 느끼게 되면 휠씬 움직임에 확신을 얻게 됩니다.

출처 자유예술대학 |작성자정영두.


 하루하루 수업이 끝난후 관찰 일지를 쓰는게 과제였는데. 나는 이런 글들을 썻다.

 1/3  생소한 장소에서. 처음 보는 분들과의 만남. 새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는 인연만으로도 얼굴의 표정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혹은 댄스 플로어 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더더욱. 몸을 통한. 접촉은. 타인이 더 이상 타자가 아닌. 나의 연장선에서 힘을 주고 받고. 호홉의 리듬을 공유하는 내 안의 또다른 힘으로 느껴졌다.

 사소한 마음의 반향이 육체의 행위에 미치는 즉각적인 반응에 놀랐다. 상대의 몸을 내 몸 같이 배려하는 마음과. 몸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꼈다. 힘의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이 상대를 말 없이, 온몸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경험을 주었다.

 몸으로 사고하는 그런 경험은. 점점. 무표정의 얼굴도 변화 시킬듯 하다. 


 1/4, 1/5  시간이 지나면. 생소한 몸의 경험은 퇴색되기 마련이므로.. 이 느낌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술이 취해서인지. 화요일 수업과. 수요일 수업이..별로 구분이 안 간다. 내 삶의 역사가 되어버린. 생소한 몸의 충격은. 그제나 오늘이나 동일했다. 화요일 수업. 경우. 본격적인. 박자에 대한. 몸의 적응이 안 되어. 몸의 동작. 리듬.등이 총체적 난국 이었다면. 그 연장선에서 오늘은. 몸의 뻣뻣함이..심각할 정도로. 나를 슬프게 했다. 그래서 스트레칭을 하는 거 겠지만.. 다리를 찟고 벌리는 과정에서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스트레칭만 제대로 해도. 근력운동이 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 수긍되었다.

 평소. 등산과. 자전거. 달리기를 즐기는 나에게.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우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다리 근육을 혹사하고 부풀리기에만 집중했지만. 스트레칭은 그 뭉쳐진 근육들을 효과적으로 달래고. 안정화 시키는 작업이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결국. 나의 몸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계기이고. 시작이자 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모든? 예술, 혹은 생활의 기본이 되는 박자.   심지어. 사무라이 검법의 기본이 되는 '오륜서' 에서도 박자가 기본이 된다는 글을 읽었었다. 그러나 내 몸이 박자를 탈려면. 행동의 두려움과 강박에서 벗어나. 그 순간 시간의 흐름과 내면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 우리는 생소한 동작을 배웠고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박자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박자와 동작을 잡으려면. 그 둘중 하나를 완벽히 습득해야 하는데, 아직은 둘다 어설픈 상태. 그러나 이 내적 충돌을 느끼는 충격도. 즐거울 따름이다.

 기타를 처음 배울때. 나는 내가 박치인가..하는 좌절감에 쌓였다. 당연히 코드를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박자까지 맞추는건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눈 감고도 코드 체인지를 제대로 하는, 손의 감각이 발달하자. 그제서야 박자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합주가 아닌 이상. 내 마음 대로 들쑥 날쑥 이지만. 상대의 박자와 나의 박자를 맞추려는 노력은 음악 이던 춤이던 모든 예술과 삶의 활동에서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한마디로 동작을 완벽히 숙지 해야 하지만. 아직은 몸의 행동이 수줍다..

 그리고, 오늘. 댄스 플로어를 마구? 뒹글었더니..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든다. 공간이나. 사람이나..

 에필로그.

 예술의 우위를 가리기는 좀 유치하지만. 그래도 난 음악과. 무용이. 가장. 높은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재현예술이 아닌. 예술 행위와 감상의 동시적 예술 체험은. 좀 더 근원적인 순간의 희열을 느끼게 한다. 글과 이미지로써. 나는 그 순간을 회상한다. 댄스 플로어에서 일상의 습관화된 행동의 패턴을 벗어난 일탈은. 강력한 몸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룻바닥을 구르며 마주쳤던 타인의 아름다운 눈빛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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