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고향 아이다호 는 내 학창시절의 고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감수성에 영향을 끼쳤다. 지금은 호아킨 피닉스의 형으로 더 화자되는데 1993년 10월 31일 리버 피닉스의 죽음은 당시에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안겼다. 조니 뎁 과 키아누 리브스를 보면 리버 피닉스도 생각난다. 이 셋은 절친이었다고 한다. 셋 다 악기를 연주하고 자신의 밴드를 하는등.. 음악에 대한 열정도 그랬고, 아웃사이더의 삶과 태도는 연기 이상의 진정성을 보여줬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로 분연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대타로 연기해 그 또한 나쁘지 않았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이 영화는 리버 피닉스의 삶 자체에 대한 은유 같이 돌아갈 곳 없이 길 위에 선 자의 공허를 잘 담고 있다. 그의 삶 자체가 투영된, 그러니까. 영화와 실제 삶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거란 반증이 그의 죽음으로 말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면발작증 (순간적인 긴장과 스트레스로 인한 마비와 수면에 빠지는) 때문에 도로에 경직되어 쓰러져, 지나가는 차량이 그의 소지품을 강탈하고, 또 마비된 몸이 차에 태워지는 것이 아니라 물건 처럼 실려 뭔 일을 당할지 모르는 채로 끝나는 장면은 슬프고 의미심장하다. 2년후, 조니 뎁이 운영하는 LA의 바이퍼 룸이라는 가게 앞 길에서 마약 과용으로 인한 쇼크사로 사망하게 되는,, 그렇게 23살의 나이에 촉망받던 배우가 요절함으로써 제임스 딘과 마찬가지로 청춘의 신화 같은 존재로 대중들에겐 울겨먹혔다. 


  그의 가정사는 히피 부모님을 둔 덕에 어릴적 남미를 전전하며 살았고, 미국에 정착하고선,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하며, 자신이 겪은 삶과 가장 비슷할듯한, 출연작이자 그의 대표작인 '허공에의 질주' 와 '아이다호' 그리고 하나 더 꼽자면 '모스키토 코스트' 에서, 공허와 상실, 정체성의 탐구를 조숙한 눈빛으로 그려내었다. 또래의 배우보다 깊은 눈매와 진지한 자세는 뭔가 촉망받는 차세대 헐리우드 스타보다는 인디록 뮤지션의 삶과 태도와 더 어울려 보였다. 실제로 뮤지션을 더 꿈꾸었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멤버들과 친구였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플리가 조연으로 출연한다. 아마도 그들과 어울리며 마약에 손을 댓을거 같은데, 특히 존 프루시안테 와도 여러모로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사족을 더 하자면, 어제 신촌에서 퀴어 페스티발이 열렸단다. 얼마전 우연한 기회로 초면의 21살의 대학생과 공감 공연을 보게 됐고 치맥을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을 가장 좋아하고, 여러가지 예술 문화적 소양이 깊어서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통했었다. 자기가 거의 레즈비언에 가까운 양성애자인걸 당당하게 밝히고 퀴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때 내가 지은 표정이 어땠을까? 나 조차도 너무 궁금하다. 이미 그런거에 익숙했던지 상대의 반응에 별 신경을 안 쓰는거 같았고, 되려 당당하게 아무렇지 않게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또래에 비해 남다른 21살 이었고, 그런 솔직한 면들이 부럽기도 했다. 자유롭게 자기 행복을 찾는 모습, 부모의 영향으로 비틀즈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예술을 일치감치 향유했고, 영화 감독을 꿈꾸며 신호등도 무시한채 당돌하게 걸어가는 그 아이를 보며 진짜 진보적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이차 많은 여성과 깊은 사랑도 경험해 봤고 그런 것들을 부모도 알고 인정한다고 하니, 내 딴에는 난 조선시대에 살았나 하는 혼란스러움..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로 거대 유산을 상속받기로 되 있지만 아버지에 대한 철없는 반항으로 거리에서 창부 생활을 하는 스콧 (키아누 리브스) 은 기면발작증으로 어디서나 쓰러져 정신줄 놓아 버리는 마이크 (리버 피닉스)를 도와주며 그가 형을 만나고 엄마를 찾아 나서는 길에 동행한다. 잠에 빠질때 마다 엄마의 영상은 끊임없이 마이크의 마음을 갈구하고, 쓰라린 가정사의 아픔을 묵묵히 간직한채, 거리에서 몸을 판다. 여자를 만나면 긴장으로 기면발작증이 오니 남자를 더 상대하게 된 그는 자상한 스콧에게 고백을 한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 뿐 아니라, 어떠한 멜로 영화의 고백 장면도 이만큼 순수하고 진정성 있다고 느껴지질 않는다. 리버 피닉스의 이런 연기는 정말 가슴을 찌른다. 이 영화를 계기로 키아누 리브스와 리버 피닉스는 절친이 됐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을 거 같다. 키아누 리브스가 현재도? 방랑 생활을 하는 것과도 뭔가 이 영화와 닮아 있다. 










  형이라고 여겼던 자가 자기의 생부이고, 엄마는 자기를 버렸고, 근원적 고통은 자기를 옭아매어 점멸하는 신호등 처럼 삶의 순항하는 그린 라이트는 수시로 꺼진다. 옆에 있어줬던 스콧은 엄마를 찾아서 이태리 로마 까지 동행했지만 이내, 인생을 함께할 여자를 만나 마이크를 버리고 떠나버린다. 다시 포틀랜드. 스콧의 아버지가 죽고. 거리생활을 청산한 스콧은 거리에서의 대부를 매몰차게 대하고, 길에 쓰러져 자고 있는 마이크를 외면한다. 공교롭게도 진짜 아버지와 거리의 아버지인 밥의 장례식이 같은 공간에 치뤄지고, 극명히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다시 길 위에선 마이크. 길의 감식가라 자처하는 그의 독백. 점멸하는 의식으로 그의 몸은 또 어디로 가게 될지. 그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마이크는 또다시 길 위에 쓰러진다. 




  

  처음 봤을때보다, 나이 들어서 보니 더 울림이 컸다. 사진작가 필립 로카 디 코르시아의 남자 창부를 찍은 작업이. 이 영화의 영감인지. 아니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이 그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는지..모종의 관계가 있어 보인다. 몇몇 장면에선 연출적 센스가 탁월하다. 게이 잡지 커버에서 그들이 말하는 장면이나 성애 장면을 정지 동작으로 표현한것, 소리로 흥분하는 변태 아저씨의 몽타지 시퀀스 등.. 1991년도 작품 치곤,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앞서 간 것 같다. 단순한 내러티브를 쫏기 보단 그 인물들의 감정에 빠져 보면 이 영화의 진면목을 알아 볼 수 있다. 길위의 고독한 여정에 이런 영화들은 위로가 된다. 내 마음속의 저런 풍경이 꺼내졌기 때문에 더 애틋하게 보았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론 서바이버 (2013)  (0) 2014.08.21
비긴 어게인 (2014)  (0) 2014.08.15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2012)  (2) 2014.06.06
요즘 본 한국영화 단평  (0) 2014.06.04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2005)  (0) 2014.06.04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을 읽고 나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구입했다. 동화와 희곡을 주로 썼던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동성애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나와 곧 변변치 않게 죽었으니, 비운의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옥중기'문고판도 함께,


 펭귄클래식 책을 사려고 했는데, 더클래식이란 출판사에선. 원서와 번역서를 합본으로 절반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예술지상주의, 탐미주의를 대표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원문을 번역과 비교할 수 있으니 당연히 선택은 이쪽. 하지만 글의 형식적인 측면보다, 내용적인면에서 탐미주의란 것이지. 

 어쨌든  책의 서문 부터 강렬한 예감이 왔다. 이 책은 천천히 정독을 해야겠다는. 

 대부분 야외에서 책을 읽었는데, 수시로 모서리를 접어 놓은 페이지가 촘촘해졌다. 


 예술에 관한 자신의 입장표명인 서문의 글은 촌철살인의 비수를 드러내면서 마지막 문장의 반전은 결국 이 작품 전체의 주제와. 동시에 오스카 와일드 삶 자체의 비극을 유추하게 한다. 


 내가 원빈이나 젊은날의 정우성 처럼 생겼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상상만해도 즐겁구나. 껍데기의 아름다움 때문에 인생이 평탄치 않을지라도, 내가 저렇게 생겼더라면 이란 상상은 외모 지상주의의 시대에 강렬한 욕망을 대리하게 한다. 


 내가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해 인지한 경험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학교 근처 화장품 가게에 붙은 광고 사진이었다. 멍하게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 같은반 여자아이 둘이 웃으며 뭐라고 말하고 지나갔는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성의 미모에 대한 첫인상을 그렇게 시작했고, 


 

남자의 미모에 대한 첫인상은 배우 리버 피닉스(1970~1993)가 효시다. 당시 로드쇼나. 스크린 같은 화보 많은 영화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은 너무나 이상적인 아름다움 이었다. 사춘기의 방황과 반항을 살아있는 조각으로 현현한 그의 얼굴을 보며, 미를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출연한 수작 영화들인 '스탠드 바이 미''모스키토 코스트''허공에의 질주''아이다호''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등은 여전히 청춘의 아름다움을 봉인한 아련한 작품들인 것이다. 제2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고, 그가 살아있었다면. 디카프리오, 조니뎁, 브래드 피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텐데..하지만 이런 아름다움 이면엔 마약으로 길거리에서 요절한 시대의 아픔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최고의 영화 '아이다호'처럼..

 이 소설을 읽으며, 상상하게 된 도리언 그레이의 이미지는 리버 피닉스 였다. 

 검색해보니 영화도 있었는데, 주연배우는 벤 반스다. 이전에 영화 벨아미를 보고나서, 주인공이 벤 반스 였으면 하는 아쉬음을 토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도리언 그레이 역을 했었군.




 리버 피닉스 이 후 내가 빠지게 된 남자 이미지는 커트 코베인 이었다. 음악도 그렇지만 그의 초상 사진에 오랜 기간 감동을 하게 된 것이다. 27살 최고의 명성과 부를 가졌고, 갓난아이의 아빠였던 그가 자신의 얼굴을 엽총으로 날려버렸단 슬픈 사실. 


 20대 청춘의 나이에 죽어버린 그들의 초상 이미지는 아련하게도 부서지지 않는 청춘의 화석이 되버렸다. 세월에 의해 늙어간다는것, 인생의 풍파에 시달린 초췌한 얼굴을 삶의 나이테처럼 고스란히 간직한 얼굴을 우리는 대표적으로 에단 호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리버 피닉스와 함께 아역 배우로 출연한 것 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뽀송한 얼굴을 거쳐, 지금까지. 그는 있는 그대로 삶의 아름다움을 간직했고, 리버 피닉스는 멈춰버린 청춘의 아름다움을 영원한 상징으로 간직했다. 


 이런 청춘의 아름다움을 유예시키고픈 욕망. 내 삶의 도화지로써의 얼굴이 아니라 그냥 아름다움(쾌락) 그 자체에 대한 감각적 탐미를 도리언 그레이의 욕망을 통해서 보여준다. 


( 이 책은 도서관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커트 코베인 박물관 같은 책이다. 팝업북 형식으로 다양한 자료와 아이템들이 수두룩, 수록된 사진들도..이제까지 못 봤던 희기한 사진이 많다. 표지 사진은 생전에 커트 코베인이 좋아했던 사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생일선물로 받으면 상당히 기쁠듯, 소장가치 만땅인 특이한 책. 이전엔 못봤던 사진을 좀 더 보자면.)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 바질 홀워드의 애정 아래, 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의 치명적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런 과정중엔 화가의 친구인 헨리 경의 젊음을 찬미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상에서 깨닫게 되어. 이러한 욕망을 발원한다. 

' 나는 항상 젊은 채로 있고 이 그림이 나 대신 늙어 가면 좋을 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다 바칠 수 있는데,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줄 수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팔더라도, 영원한 젊음을 가지고 싶다는, 자신이 저지르는 부도덕함이나, 매정함등이 얼굴에 쓰여지고, 또 자연스런 노쇠화의 추한 흔적은 초상화 그림의 변화로 투영된다. 그러나 자신의 젊음은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쾌락 속에서 그는 점점, 양심의 가책도 없는, 뻔뻔한 탐욕을 행하게 된다. 그 세 인물들의 대화는 희곡처럼 진행되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대단히 예리하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내면은 이 세 인물의 정신에 투영되어 드러나는데, 백여년전 세기말 도적적 위기나 지금의 외모지상주의, 감각, 쾌락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의 딜레마는 인간의 삶의 가치,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의 본질적 질문을 이끌게 한다. 화가를 통해 예술의 본질이 뭔지, 도리언 그레이와 헨리 경을 통해선  쾌락주의 유미를 일갈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던 존재이며, 헨리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화가 바질 홀워드는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304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신적인 자유의 쾌락 보다는 젊음을 온전히 향유하는 감각적 쾌락을 찬미하는 헨리 경의 말들엔 이건 아니다라고 완벽히 반박할수 없는 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선과 악을 다루는 뻔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시각과 감각적 쾌락에 대한 피상적 욕망을 솔직히 고민해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마무리는 어쩌면 교훈적 반전으로 끝나긴 해도, 헨리 경의 이론과. 그것에 동조되는 도리언 그레이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은 반추하게 된다. 누구나 젊어지고 싶은 욕망에 대해. 지나가 버린 젊음의 특권적 쾌락을 향수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겉모습만을 중시하는 세태에 대한 냉소와 모호한 욕망은 오스카 와일드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도덕성의 경계를 넘어서 예술이 무엇인지 한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이다. 



뭔가 기묘한 표정의 저 얼굴. 80년대 영국의 명 밴드 스미스의 보컬이자 가사가 시 예술인. 모리세이가 그토록 추앙하는 오스카 와일드.  파리에 간다면. 같은 공동 묘지에 묻혀 있는 짐 모리슨 묘비와 함께. 꼭 들려보리라. 2년 동안 감옥에서 중노동을 하고 썼다는 옥중기는 또 어떤 생각을 보여줄지..심히 기대된다. 


 발췌할 양이 많아 나중에.. 대신 커트 코베인의 초상으로 마무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