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개봉시 보았을땐 삐딱한 심정으로 봐서 그런지 지루하고 겉멋든 영화라고 느꼈는데, 다시보니 이 영화 참 괜찮다. 늦게 깨달은 수작 영화의 면모는 이해가 아닌 그냥 스며들어 느껴야 하는 감성의 산물이었다. 


 다수의 여자들이 하정우를 멋지게 생각하듯이 남자들은 탕웨이에게 어떤 본능적 끌림이 작용하는것 같다.(나만 그런가?) 그 사람만의 분위기. 여성의 외면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의 복잡다단에서 올라오는 이미지는 남자들이 여성을 대상화할때 성녀와 요부, 어머니와 창녀라는 극단적인 스탠스를 무마시키는 지점에 서있다. 


 탕웨이와 감독이 열애설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탕웨이를 위한 영화였고, 탕웨이에 의한 영화가 되었다. 상처받은 여인의 내밀한 영혼을 소통하면서 마음을 나누니, 어찌 안 통했겠는가. 


 김태용 감독은 이윤기 감독의 뒤를 잇는듯, 세말한 감성 로맨스를 추구했다. 대사나 플롯 보다는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감정의 무드가 중요했다.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에서의 3일간. 서로를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수도 없지만 옆에 있어주고, 깊은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언어의 소통이 아닌 마음의 보듬어줌이 사람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근본적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어머니마저 죽고 잠시나마 마음을 기대 쉴 곳 하나 없는 여인의 내면은 심연의 안개에 빠진 적막한 시애틀의 풍경과 닮아있다. 3일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하는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고 이 지구상에  홀로 남겨진 고독과 외로움은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맞물려 가장 휑한 영혼을 보여준다. 몸으로 먹고사는 현빈의 캐릭터는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상처받고 외로운 자에게 등불이 되고 싶고 기댈수 있는 말뚝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 아닐까. 현빈의 캐릭터를 통해 많은걸 배울수 있었다. 사랑이란 꺼져가는 상대의 등불을 어떻게 비추어 밝혀주느냐. 

 되새길수록 그는 고차원적인 제비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를 기다리는 그녀는 그가 안올지라도 그의 마음만은 간직하며 언젠가를 기약하며 살아가겠지. 왠지 그가 못와도 그녀의 달뜬 기분이 내심 여운이 많이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멋진 하루'와도 비슷한 감흥의 영화였다. 두 영화 다 소리의 섬세함도 무척 훌륭하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 서걱거리는 옷깃의 소리, 꾹꾹 눌러담은 탕웨이의 음색 등등. 암튼 가을비의 스산한 감성으로 느껴보아야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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