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밤, 잠 자기전 물먹으로 내려간 사이, 잠시 TV를 켜니 EBS방송에서 하고 있었다. 한번 본 영화였지만 일어날수가 없었다. 그동안 영화로 많이 보았던 홀로코스트 내용이지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만나고 알아보는 타이밍이 맞았다고 할까. 고등학교때 쉰들러 리스트의 감동보다도 지금의 이 영화의 여운의 깊이가 진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처한 상황 안에서 보느냐, 제3자의 관찰로 홀로코스트를 보느냐의 차이인것 같다. 실제 경험과 사실 기록의 재현은 엄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그 당시에 가족이 몰살당했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는 폴란스키 감독만이 할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영화 이상의 작품이 되었다. 


 전쟁상황하의 절대폭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게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는지, 다시한번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을 느끼게 한다. 벌레가 된 인간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미약한 생명을 이어갔는지,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주어 참 숙연해진다. 한 예술가의 살기 위한 처절한 과정은 대단한 영웅주의를 말하는게 아니라 인간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가 다른 동지들이 저항하고 반란하며 죽어갈 때 조차 숨어서 바라보는 그의 행동에 돌을 던지지만 나는 그가 그답게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독일군 장교와 맞닥뜨려 피아노를 연주하는 순간..그는 예술로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의 용기였다. 한줄기 빛이 그의 머리에 비춰지고 그는 구원받았다. 



 어릴적 개미를 관찰하며 간혹 일개미들을 손가락으로 짖눌러 죽이듯이 게토안에서 독일군은 맘내키는대로 유대인을 죽인다. 그런 상황안에서 영화 내내 주인공이 어떻게 발각될지, 먹을게 없어 삐쩍 말라가는 모습을 보며 스릴러 영화 같은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담담한 긴장인데, 후반부에 와서 저 말끔한 독일군 장교를 맞딱드릴땐, 내 심장이 멈추는듯 요동쳤다. 마지막 순간일 수 있는 그의 연주는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 영혼의 순수한 결정체 였고, 그리고 희망의 빛이 그를 비춘다. 





 어떻게 저런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어 냈는지, 영화 예술의 진면목 이었다. 그는 살아서 80이 넘어 죽었다. 모든 황폐함은 삶의 의지를 꺽을 수 없었다. 운명과도 같은.. 


p.s  어릴적에 나찌 독일군들의 군복과 군장맨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선전,선동의 대가이며 군대를 선망할 수 있는 미적 이미지를 높이기위해  미대 출신인 히틀러의 지시 아래 휴고 보스의 디자인 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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