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대중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이 영화는 무척 재밌을 것이고, 더더욱 연애에 신통치 않거나, 꿈과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고, 일상의 굴레에 갇혀있다면 무척이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음악광에 레코드 가게 사장이니까, 영화의 밑바탕엔 음악이 깔려있고, 제목 또한 음향에 관련된 것이다. 음질 관련해서 하이 파이. 로 파이 할때..그 High Fidelity. 직역하면 고 충실도. 은유해서 촘촘히 메워진 삶의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아닌 사람들의 성장기 이다. 


 근데 한글 제목은 손발이 오글거릴 유치한듯 하지만 또 언뜻 좋게 생각해보면 영화를 잘 함축한 것도 같다. 그러나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한글 제목 때문에 영화가 평가절하 되거나 홍보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듯 하다. 


 좀 예전에 봤었고, 당시 닉 혼비의 원작 소설도 읽었었다. 그런데 근래에 다시 본 이 영화의 주인공에 대한 생각은 예전에는 그 캐릭터에 공감이 많았다면, 지금은 왜이리 찌질하고 미성숙한 인간으로 보이는지, 내가 그동안 변한건가.. 아님 그런면을 부정하려는 관점의 차이인가.. 


 닉 혼비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항상 그와 같다. 몸의 나이는 어른이지만, 정신은 어린이와 같아서, 그것도 모른채 자기 세상속에서 어린 왕자로 평생을 살아가려는 어른의 환타지와 현실의 충돌속에서 한발짝 성장한다는 이야기. 대표적으로 이 영화와. '어바웃 어 보이' '페버 피치'가 그랬다. 작가 본인이. 음악광이자, 아스널 축구팀 광팬으로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있고, 현대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모든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와 주제이다. 각자의 섬에서 벗어나 세상과 타인과의 교류속에서 삶은 있는거라고..


 원작 소설 보다야 못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참 므흣해진다. 주인공 존 쿠삭도 좋지만. 레코드 가게의 점원인.. 대머리 소심남과..마초 또라이 잭 블랙의 감초같은 연기. 그리고 무수한 음악 이야기들. 단역으로 팀 로빈스 나 캐서린 제타 존스. 그리고 존경할만한 록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등장도 반갑다. 

 

 영화의 시작은 존 쿠삭의 애인이 이별 통고를 하고 떠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음악이나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것일 수 있는, 순위 매기기.. 자신의 옛 연애를 처음부터 되집어 보는 주인공. 자기의 인생은 뭐부터가 잘 못 됐을까.. 이별의 경험은 성장을 위한 발판이고, 그는 생각만이 아니라 직접 그녀들을 찾아나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존 쿠삭은 직접 카메라를 향해, 관객에게 말을 한다. 자기애가 투철한 사람들이 하는 작법이다. 우디 앨런의 연출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찰하는 존재로서의 한 소심한 인간을 코믹하게 잘 그려내었다. 질투하고, 이율배반적이고, 비참한 인생을 노래하는 음악에 저당잡힌 이상한 남자들. 음악을 통해 진일보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영화의 첫부분 대사.."불행해서 노래를 듣는 걸까? 아님 노래를 듣고 불행해지는 걸까?". 요 는 변화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능과 무지이고, 현재의 삶을 개선시킬 비전의 부재와 안주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좋은 여자이다. 자신의 무능을 증명해줄 거절이고 찌질함을 밝혀줄 거울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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