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쯤에 우연한 여행을 갔다왔다. 친구들이라 부르긴 성급하고. 동료와. 동료 후배들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동료 후배는 처음 보는 분들인데..남.녀 각1명씩.
 요즘들어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꽤 즐기는것 같다. 남자와는 자전거와 일본 여행 이야기를 많이 했고.(들었고,) 여자와는 영화이야기,그녀의 남친이야기를(철학을 전공하고 진보신당당적을 가진) 많이 했다.
 새벽에 만나. 내 차로. 포천쪽의 산정호수로 출발했다. 운전하기 딱 좋은 흐리고 대기가 청명한 날씨였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설레임이..아침내내 계속됐다.

 산정호수는 초등학교때..여행으로 왔던 기억이 분명 있지만..그 이미지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어릴때라..비교적 먼 거리여서 차멀미로 고생해서..기억을 잊었을 것이다. 산정호수 옆 명성산은 작년 가을에 한 번 왔었다. 정상 부근에 드넓은 억새밭으로 유명한데..유명세 만큼 멋지고 사람이 많았었다..

 우리가 하루 묵을 펜션은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보라색 파마 머리의 60정도 되 보이시는 분인데..보헤미안 예술가 분위기가 물씬 풍기셨다. 인상이 범상치 않으신..보살의 미소를 품고 계셨다. 해가 늬웃한 저녁에 강아지를 데리고 풀밭을 선책하는 모습은, 꽤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좋은 인생을 사신 분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서 이 펜션을 검색하다가..다른 블로그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과거를 엿듯게 되었는데.. 미혼이고..일본에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엎어져서. 한국으로 돌아와. 도를 닦는 수행을 하셨나..암튼 그렇다고 했다. 저녁에 몇번 집게류를 빌리려..내려갔을때 마다. 온화한 미소와 친절함에 마음이 어리둥절 전염되었었다.


 펜션 뒤에는 넓적한 풀밭의 중간 크기 축구장과..족구장 이 있었고.. 그 뒤는 안개에 휩싸인 명성산이 병풍처럼 펼쳐져있었다. 무엇보다..공기가..상상을 초월한다. 

 다음날 아침에 찍은 펜션뒤 명성산의 모습..저 풍경..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라....


 짐을 풀자 마자. 바로 명성산으로 향했다. 다들 등산엔 관심 없으니..나만 가벼운 걸음으로..산으로 산으로 줄행랑을 쳤다. 등산로 입구에. 군인들이 여럿이 모여있었는데. 가까이 가니. 코흘리개 이등병이..군대 포 사격 훈련으로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인상을 썻었나.?  곧 소대장으로 보이는 중딩스러운 청년이 좀 더 느끼하게 말했다. 또렷히 쳐다보는 내 눈빛에서 등산에의 욕구를 읽었는지..내가 별 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입산 통제에서..가능으로 바뀌었다. 다만 어디 폭포 까지만 갔다 오시라는.. 후훗 미소를 날리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서..간헐적으로 대포 소리가 났다.


 계곡을 걸을때만 해도..비가 오다 말다..흐린 날씨였는데.. 계곡을 벗어나 탁 트인 평원에 나서자..비 구름은 자취를 감추고..쨍쨍한 햇살이 내비췄다. 이미 어디 폭포까지만 가라는 말은 잊은지 오래였다.


 산속엔.. 나 혼자 뿐이었다..오늘 나만을 위한 명성산 이었다. 명성산의 이름은..우리말로는 울음산 이고..영어로는. Cry Sound Mountain. 국사를 잘 모르지만..왕건과 궁예와 관련된 산이라고 한다. 이름 자체에도 드러나듯이 뭔가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산이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처음 만주벌판에 당도해. 사나이로써 한껏 울어볼만 하구나. 라며. 통곡했듯이..나도 그런 기분에 젖어 보고 싶었지만..울지는 않고 오히려 음탕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이 산속을 에덴동산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데..이렇게 혼자라니..
 어렸을적 영화 '블루 라군'을 보고, 사랑하는 여인과 단둘이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환타지를 자주 상상했었다. 아마 영화를 보기 이전에도 그랬던듯 싶다. 아담과 이브의 원초적 자유. 욕망이 우리안에 조금씩은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하지 않나. 가장 완벽한 유토피아.


 궁예 약수터 였나..이 나무 범상치 않다..


구름이 만들어 가는 대지의 빛과 그늘..


 사진속 왼쪽편에 보이는 정자에서 오래 쉬면서. 희망을 품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에 생의 발랄함이 충전되었다.  따스한 햇살에 풍요로운 마음은 외로움을 몰랐다.


 내려오는길,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모래의 질감과. 나무사이로 떨어지는 부서질듯한 햇살. 몸을 휘감는..부드러운 물길. 순간 완벽한 자유가 내게 도래했다. 내 몸엔 아무것도 걸쳐있지 않았고. 정신 또한..아무런 걸림이 없었다. 모든게 완벽했고. 자연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산속의 요정들과 함께..기쁨의 춤을 추었다.


 산에서 내려와..산정호수를 좀 걸었는데. 계곡과 폭포의 모습을 보다가 갇혀있는 호수는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숙소에서..TV영화를 보다가, 저녁에..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맑은 공기는 모기 조차도 없애 버렸나 보다. 술을 자제할려고..와인만 마셨는데..결국..가져온 모든 술을 다 마시게 되었다.. 산의 정기를 받아서 인지..술이 안 취했다..이야기를 계속하다..다들..술에 먼저 떨어져 나갔다. 베란다에 나가...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정말 까만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거리와 공간감이 없이..수놓아 있었다..제일 큰 별을 손으로 잡아보는 시늉으로..마음속에 담았다..별은 그리움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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