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인간 존재는 인정받고자 하지 않으며 오히려 부인되기를 원한다. 인간 존재는 존재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때로 자신을 부인하기도 하는 타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 결과 인간 존재는 자신이 될 수 없다는, 즉 자기 또는 분리된 개인으로서는 존속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의식하게 만드는. 상실의 체험 속에서 존재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인간 존재는 자신을 항상 미리 주어진 외재성으로, 여기저기 갈라진 실존으로 체험하게 된다. _ 블랑쇼. '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타자의 발견은 항상 자신의 선입견이 좌절되는 경험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타자와 마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타자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존재이다. 이 말은 결국 타자가 자신의 선입견으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p.104

 유아론이란 타자가 배제된 담론 일반을 가리킨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유아론적 사유에서도 타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아론 속에서의 타자란 진정한 타자, 즉 타자성을 가진 우연한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때 타자란 주체의 생각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관조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장자에게서 '꿈' 이란 자신이 특정한 시스템에 제한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그 시스템을 모든 것에 적용시키려는 환상을 의미한다. 그에게 꿈은 하나의 성심을 통해 모든 타자와 관계하려는 일종의 '형이상학적 착각'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꿈을 꾸고 있는 유아론자라고 해서 그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더 자주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을 생각하곤 한다. 장자의 말을 빌리자면 유아론자는 "꿈을 꿀 때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꿈꾸고 있으면서 꿈속에서 꾼 어떤 꿈을 해석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는 오히려 꿈을 꾸면서도 꿈속의 다른 꿈을 해석할 정도로 과도하게 사유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결국 그의 사유는 또 다른 환상의 한 종류일 뿐이다. 
 마침내 꿈에서 깨어나야만 한다는 장자의 주장은, 타자를 관조의 대상으로 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따라서 어떤 타자와도 직대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 아니다. 관조의 세계와는 달리 삶의 세계에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무수한 타자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p.125

 철학적 문제들의 해결은 마술의 성에서 마술적으로 출현하는,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것을 대낮에 밖에서 보게 된다면 단지 보통의 철조각(또는 그런 어떤 것)일 뿐인 동화 속의 선물과도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_ 비트겐슈타인, ' 문화와 가치 '

 이상(ideal)이 우리의 생각 속에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은 그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다. 당신은 언제나 되돌아와야만 한다. 바깥은 없다. 바깥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 이러한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마치 코 위에 있는 안경과도 같아서, 우리는 무엇을 볼 때 그것을 통해서만 본다. 우리는 그것을 벗어 버리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_ 비트겐슈타인, ' 철학적 탐구 '

 나의 삶에는 한계가 있지만 앎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는 삶으로 한계가 없는 앎을 따른다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 앎을 추구한다면 더욱 위태로워질 것이다. _ ' 양생주 '장자.

 6장.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건한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내지만, 이 동물은 이제 그 반대 능력, 즉 기억의 도움을 받아 어떤 경우, 말하자면 약속해야 하는 경우에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을 길렀던 것이다. _ 니체 ' 도덕의 계보 '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선,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했던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_ 니체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남곽자기가 탁자에 의지하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짝을 잃어버린 것과 같아 보였다. 안성자유는 그 앞에서 시중을 들면서 서 있다가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어찌된 일입니까? 몸은 진실로 시든 나무처럼, 마음은 꺼진재처럼 만들 수 있습니까? 오늘 탁자에 기대고 앉은 사람은 어제 탁자에 기대고 앉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자, 남곽자기가 대답했다." 자유야, 현명하게도 너는 그것을 질문하는구나!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잃었는데 너는 그것을 아느냐? _ '제물론' 장자.

 사람은 누구나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로 삼는다. 단지 고요한 것만이 고요해지려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 _ '덕충부' 장자.

 마음으로 하여금 타자를 자신의 수레로 삼아 그것과 노닐 수 있도록 하고, 멈추려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에 의존해서 중심을 기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_ '인간세' 장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