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친구 어머니 발인 날이 설날 다음날이라.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가방에는 몇권의 책을 넣어들고 고즈넉한 정동길을 걸었다. 그날 따라 축축한 대기 하며 한적함에 더욱 외로워 보이는 길이었다. 3일째 고생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떡 한접시를 먹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다음날 아침까지. 이 장례식장을 기점으로..시간을 보내야 했다. 다른 친구들은 몇 시간 후에나 온다고 한다. 바로 옆에 있는 극장 씨네 큐브가 생각이 났다. 축축한 도로를 가로질러..텅 빈 빌딩 속으로 들어갔다. 영화 두편이 하고 있는데..정확히 6시 45분 딱 그 시간에 시작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새 영화 환상의 그대를. 표를 끊고 들어가자..첫 화면이 시작했다. 매우 다행이다 싶었다. 설날 치곤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우디 앨런 영화 답게..대사와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 그의 대표작 이랄수 있는 애니홀 을 최근에 다시 봤는데..대단한 센스를 가진 사람이 분명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한다는 일..어떤 창조에서든지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이 많지만. 적절한 곳에 등장하는 촌철살인의 대사들은..허를 찌르는 재미도 있지만..깊은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아이러니 의 삶속에서. 뼈있는 위트. 수다스럽게 삶을 음미하는 맛이 그의 영화에는 있다. 전작 비키 크리스티나 바로셀로나 에 이어. 이 영화도. 초반부터 내심 기대가 되었다. 오랬만에 영화에서 보는 배우들의 모습도 반가웠고. 나오미 왓츠의 쏙쏙 잘 들리는 영국식 영어도..반가웠다.

 이 영화를 매우 유쾌하게 봤음에도 불구하고..마지막에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안난다. 결말이 기억이 안나는 영화는. 톡특하게도..그래도 좋았다 라는 인상을 남긴다. 아마도 뻔한 서사 구조의 영화가 이끌어 가는 힘은..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힘 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개성 강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조 인것도 같다. 특히나 이 영화는 개성 있는 캐릭터들의 향연이다. 그 캐럭터들이 충돌하는..재밌는 대사와. 상황들에 푹 빠져서 보게 되었다. 우디 앨런식 아메리칸 뷰티 같은 이 영화는. 사는게 뭐 다 그렇지..라는..환상과 욕망의 좌절을 위트있게 보여준다.

 나오미 왓츠의 엄마와..남편이 가장 재밌는 캐릭터 였고. 그 둘의 티격태격은..심각한 상황에서도..웃음을 유발한다. 엄마가 점쟁이에 홀려...전생과..환상등을 믿고..미신에 몰두 하는 모습은..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서양인에 대한 생각이..우리네와 다름없다는. 친근함을 보여준다. 이상하게도 나오미 왓츠도 전형적인 서양인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그 이전부터..친근한 이미지 였고..정장 입은 모습이 참 멋졌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에서 "삶이란 바보가 들려주는 우화,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래서 일까. 이 영화의 의미가 잘 모르겠다..순간 순간 재미있었을 뿐..

우디 앨런 답게 그는 이 영화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와는 달라도 한 참 다르다..ㅋㅋ
“인생이란 고통스럽고 악몽 같고 무의미한 경험의 연속이죠.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니체, 프로이트, 유진 오닐도 그렇게 말했어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한 커플은 스스로를 속이고 멍청한 사람들과 어울려요. 아무튼 그게 저보다는 행복하죠.”

 영화가 끝나고..안개에 쉽싸인 설날의,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도심을 걸었다. 광화문 앞은..몇몇 관광객들이 보일뿐 이었다. 집에 돌아갈 생각없이..이렇게 하염없이..시간을 보내는 것도 색달랐다. 촛불집회때 이후..다시 도시와 친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배회한뒤 다시 장례식장에 들어가. 친구들과 조우했다. 몇 번 도시의 공기를 음미하며..새벽 세시에 겨우 불편한 잠을 들었다. 아니 눈만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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