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근래에 개봉했던 한국영화들에 대해 글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개인적 기억의 내밀한 면을 건드리는 그런 영화는 타자화시켜 보지 못하고,  말과 글로 말하기가 어려운 지점에서 나는 감성의 어두운 층에 침잠한다. 영화 은교는 요즘의 그런 망설임을 무릅쓰고 감정의 수면위로 떠올린다. 


 별 정보도 없이 개봉날인가 그 다음날인가에 보았다. 소설이 원작이라길래..그리고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이래서.. 무작정 좋겠거니 했다. 영화가 괜찮아서, 바로 원작 소설책도 사서 읽었으니, 내겐  둘 다 좋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보통의 관객에겐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 것 같다. 보편적인 사랑이나 감정을 이야기 하는게 아닌. 인간의 내밀한 욕망, 늙음의 두려움과 사회적 금기의 상충된 감정은 개개인에 파급되는 영향이 극과 극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름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홍보를 대중의 원초적 자극에만 집중하는 듯 하다. 은교를 연기한 김고은 이란 배우의 베드씬은 노출 수위와 묘사는 영화에서 필연적으로 녹아있는 것임에도, 그것만 자꾸 이슈화하는 것은 왠지. 앞으로 미래가 창창할 신인배우에게 상처나 부담이 될 거 같다. 그런 자극적 이슈를 떠나서 분명 좋은 영화였다. 


 노인과 여고생의 사랑?. 그 노인의 시선이 궁금했다. 왜냐면, 요즘 나의 시선은 분명 노인의 감정과도 비슷할,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청명한 봄날의 대학가의 싱그러운 젊음을 나는 부러워한다. 질투일지도 모르겠다. 30대 중반의 시선이라기 보다, 노인의 탄식 처럼 기쁜 한숨을 짓는다. 내 안엔 60대의 시선과 아이의 천진난만한 시선이 동시에 존재한다. 마치 애늙은이 같은 감정의 시선이 펼쳐져있다. 때묻지 않은 동심을 지켜가면서 그 깊이를 만드는 일 이 어쩌면 나의 일이다. 


 박해일이 연기한 70대 노 시인, 이적요의 안타까운 마음이 이입되었다. 껍데기가 늙어도 마음만은 찬동하는 생명력에 탄복해 끌리게 되는 그런 순간들.. 하지만 이 자연스런 감응은 너를 육체적으로 갖고 싶다라는 욕망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면서, 회한과 탄식의 지점에 놓이게 된다. 육체의 감각을 가진 우리의 죄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늙음이란 가능할까. 마음만은 청춘인데, 육체는 썩어가는 고동나무 같다면., 그건 비극이다. 연소되지 않은 청춘은 언젠가 파멸로 이끈다. 




 머뭇거림은 그래서 위험하다. 이 순간의 젊음을 오롯이 즐기는 거야 말로 진짜 삶이다. 우리는 계속 늙어가고 있으니까.. 생의 한 복판에서 나는 이제 현재의 충실에 집중한다. 그리움과 불안은 내 것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그래도 일말의 아쉬움은.. 초반부, 박해일의 노인의 음색과 대사 처리가 생뚱맞게 느껴졌지만.. 나중엔 영화에 빠져들면서 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의 사용이 과하거나 우스꽝 스러운 점은 좀 그렇다.  촬영과 색감등도 좋긴 하지만. 디지털의 날라가 버린 색감 보다는, 필름의 생생하고 깊이있는 색감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특히 위 사진속 장면은. 피부의 하얗고 뽀얀 묘사가 가볍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것도 감독의 의도인지도. 금방 사라져버릴 한때의 찬란한 아름다움 같은..


 주인공 세사람의 심리가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게 다가왔다. 분명 소설엔 좀 더 디테일 하지만, 영화가 글 처럼 다 묘사할수 없는 점을 상상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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