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뜨거워진다. 1920~30년대 격동의 동아시아. 나라 잃은 조선인 청년 김산(본명 장지락)의 삶은, 노래 아리랑의 감흥만큼이나 뭉클했다. 이 뜨거운 감동은 민족의 비애 속에서 체념하고 타협하는 삶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길에 투신한 자의 순수한 열정과 고난의 길에서 걷어올린 숭고함 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독후감을 쓰려는 이 시점에서 내가 사진을 표면적인 이미지의 표상을 넘어서서 바라보게된 계기가 다시금 생각났다.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 첨부된 어느 작고 조악한 화질의 독립군 사진들 이었는데, 멍하게 이 사진들에 빠져들었다. 그 사진은 역사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관문이었다. 종종 책을 펼칠때마다 그 독립투사의 초췌한 모습에 전율이 들며, 사진 찍기 이전과 이후의 삶을 상상해 보았다.(한편의 영화 같이) 그들이 처한 상황은 한장의 사진에 응축돼 있었다. 이것을 해제해 버리면 내 가슴속엔 나만의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이 경험은 백과사전 첨부 사진에서 보고 느꼈던 이국적인 공간,풍경, 이색적인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선, 타인의 삶을 내 안으로 체화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간혹 홍난파 선생이나 원효대사 초상에 낙서로 영구 이미지로 둔갑시켜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역사 교과서 사진이야 말로 사진의 진수였다.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의 책 '희망'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일제시대 조선 혁명가의 이야기에 매혹당한 그의 소개는 이 책의 발견만으로도 마음을 떨리게 만들었다. 

 개정판 표지의 사진을 보면서 위에서 말했던 학창시절의 감흥이 떠올랐다. 한장의 사진은 그 삶에 대한 호기심을 낳게 만든다. 

 김산의 삶의 이야기는 미국인 여성 작가 님 웨일즈 (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에 의해 1941년에 아리랑의 노래란 제목으로 첫 출판되었다. 그러나 얼마후 이 책은 이념 대립의 매카시즘으로 대변되는 반공 열풍에 쉽쌓여 공공 도서관에서 폐기되고 개인 소장 자체도 탄압을 받게 됐다고 한다. 이 책으로 인해 미지의 나라 조선이 알려지고 서구의 정치인들에게도 조선 문제를 이해시키는 단초가 됐다고 한다. 일본의 탄압이 알려지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의 혁명과 항일 투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통해 역사적 자료의 가치도 있다. 또한 혁명가의 치열한 삶은 광풍의 역사속 한 인물의 인간적 면모를 통해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지 않는 신념과 실패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정신의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책은 헬렌 포스터 스노가 김산을 수십차례 인터뷰한 구술을 바탕으로 엮어낸 전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김산을 만났을 때는 30대 초반의 그였지만 여러차례의 죽을 고비와 고문으로 인해 몸이 망가져 있었고, 실제로 얼마후 처형 되었다. 34살로 파란만장한 혁명가의 삶은 막을 내렸지만, 그의 이야기를 통해 암울했던 우리의 역사와 아리랑 노래의 한맺힌 구슬픔을 상기해 볼 수 있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던 조선의 민중은 만주, 사할린, 일본, 미국, 남미 까지 살기 위해 떠나야 했다. 김산 또한 11살에 집을 나온 이후로, 격동의 동아시아 한복판에 있었다. 그의 입을 통해서 1923년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의 전모를 알 수 있었고, 중국의 공산당 혁명의 얼레를 알 수 있었다. 그 소용돌이가 근대화된 서구 열강의 식민지화 광풍이 대외적인 요인 이었다면 어느 나라건 계급 투쟁과 토지의 분배 문제를 둘러싼 이념 싸움이 더 큰 불씨 였다. 중국 혁명에 투신한 김산의 삶을 통해 중국의 파란만장한 근대사에 흥미가 생겼다. 리영희 선생의 글을 통해 대만의 역사와 문제를 알았듯이, 젊은 모택동과 장개석의 활동에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역할은 민족문제를 넘어선 부조리한 계급, 노동자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인류애적 행동 이었다. 

 이 책을 읽고 든 의문과 나의 추측은 1919년 3.1운동 이후에 한반도에서 항일 투쟁이든, 좌.우의 이념 대립이든 유혈 투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대부분 만주나 상하이에서 독립 운동을 했고, 한반도 에선 왜놈을 몰아내기 위한 적극적 항쟁이 없었다. 민중을 이끌 수장들은 김산처럼 중국을 떠돌다 죽어갔고, 민중들은 1800년대 이래 수많은 농민운동. 전란을 통해 제 일신 하나 보위하자는 마음이 앞서지 않았을까. 우리의 자원이 고스란히 수탈당하면서도 바라만 보거나 동조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국과 마찬가지로 1910~1945,49 년 사이 내부적으로 계급 투쟁과 토지의 분배 문제의 이념 전쟁이 점진적으로 벌어지며, 항일 유혈 투쟁을 했더라면, 6.25 같은 타의에 의해 총동원된 이념 전쟁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6.25는 어짜피 거쳐야 할 과정이 터지지 않고 크게 곪아 터진 경우가 아닐까 싶다. 양반과 노예가 존재하는 뿌리 깊은 계급 사회에 마르크스 주의는 너무나 혁명적이었고 나라가 망하고 급변하면서 억압되었던 계급의식의 표출이 식민지된 현실에 봉쇄되고, 타의적으로 독립을 당하게 되자, 그제서야 터지게 된 본노의 폭발 같다. 이 계급 투쟁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역사가 말해 준다. 중국의 문화혁명. 스탈린 정권의 대숙청. 크메르 루즈의 학살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죽어갔는가. 인간의 평등과 분배의 문제가 얼마나 큰 폭력을 야기할 수 있는지 숙고해 보아야 한다. 


 다시한번, 이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 문제가 얼마나 우리나라를 좀먹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친일파의 아들놈이 국회의원으로 뽑히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를 만들게 하고 국민을 농간케 하는 이 현실. 이념을 넘어서 왜놈과 왜놈의 동조자를 처단하는 의열단이 중국땅이 아닌 이 땅에 활동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민족은 너무 착한 걸까. 그동안 하도 수탈을 당하니 그냥 체념 했던 것일까?. 왠지 반도 나라의 숙명 같기도 하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서 책의 중 후반부를 넘어가면서, 혁명가의 내면적 고충이 인간적으로 와 닿았다. 젊은 남자로서 이성 문제에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 순수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혁명가에게도 사랑이 찾아오고 먹고 살아갈 당면한 경제적 고뇌에, 시대를 막론하고 가정을 꾸리는 생존의 문제는 인간의 가장 큰 관건이다. 뭘 믿든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김산은 젊음을 다해 투쟁했지만 그만큼 일찍 생명을 담보잡혔다. 그가 처형 당하지 않았더라도, 고문으로 인한 건강의 훼손은 치명적으로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운명을 자각이라도 했을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헬렌 포스터 스노 와의 대화는 우리에게 큰 선물같은 결과로 남겨졌다.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고향을 떠나 죽어갔는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아마도 임진왜란,병자호란 때의 부끄럽고 참혹한 왕실의 행태와 그 이후로 가진자들의 횡포에 대한 민중의 한맺힌 예언이 아닐까. 잊지말고 분노하자. 

 아리랑의 기원의 이야기는 이 책 60~61페이지 참조,

 김산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대변동 속으로 내던져진 한 명의 민감한 지식인이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지만 또한 변화와 진보를 확신하였다. 고통과 패배는 그의 꿈을 없애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사상이 한층 깊은 의미를 지니고 타오르도록 만들어 주었을 뿐이다. 그는 객관적인 사실의 주인공이었지 주관적인 언어의 노예가 아니었다.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김산은 이 약점을 극복하였으며, 그래서 지식인적 패배주의라는 질병에 희생되지 않았던 것이다. 48

 인간은 자기 욕망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욕망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나는 판단하였다. 인간은 지적의지와 사상을 가질 때에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그 점에서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인간의 정신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자연에 대한 통제력뿐만 아니라 자기 육체도 통제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물성에 반대되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에까지 도달할 수가 없을 것이다. 183

 오류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오류란 심지어는 진리를 드러내는 데 유익하기도 하다. 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 아닐까? 왜 회의나 걱정 따위로 자신을 괴롭혀야만 하는가? 세상에는 자기에게 괴로움을 주는 적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어차피 인생은 생명을 내놓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목숨을 잃을까봐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애태워서는 안 된다. 역사는 언제나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승리를 얻는 것이다. 396

 꿈꾸지 않고 자는 것은 행복하다. 자기 먹을 궁리나 하고 타인의 생활방식이나 삶의 목적을 묻지 말 것. 지켜보기만 하고 호기심을 품지 말 것. 

 너무나 진리에 가까운 질문을 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질문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자신에게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위험하다. 자기가 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신념과 오류를 지닌 채 행복하게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어라. 근본적인 질문으로 타인의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자기가 원하는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해답을 찾도록 내버려두어라. 397

 나는 내 과거의 경험을 분석하고 가혹한 자기성찰을 철저히 하였다. 401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의 경우를 비교하면서 나 자신의 삶과 오류와 지혜를 음미해 보는 동안 나는 자신에 대하여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느꼈다. 그 때 이후 나는 한 번도 이 신념을 잃어본 적이 없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꺾인 일이 없는 용기와 힘을 지녀왔다.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내 의견과 능력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일단 어떤 과제에 마음을 쏟기만 하면 그 일을 반드시 해낼 수가 있다. 나는 내 결정이 올바르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할 수 있게 해주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추리를 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이리저리 동요한다든지 방향을 잃는 일이 절대로 없다. 결단력도 가지고 있다. 당면한 것과 역사적인 운동을 구별할 수도 있다.  

 무엇이 올바르고 참된가 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 뒤에는 어떤 외부적인 바람도 그것을 흔들어 놓을 수가 없다. 403


 인류 역사의 전통은 민주주의적이요, 이 전통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 천부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한테서 그것을 도둑질해 가는 자도 있다. 물은 사람을 빠뜨려 죽이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한다. 오늘날 인간사회는 고요한 마을 연못이 아니라 성난 홍수이다. 사람은 반드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14살 때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결코 물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나는 몇 차례나 스스로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파괴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은 깊고 어두우며 행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소곤거리는 소리와 침묵의 웅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개인과 집단들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리하여 그 때문에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지 큰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이 작은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손에 총을 잡는다. 마을 노파 한 사람의 긴박한 속삭임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정한 지도력은 날카로운 귀와 신중한 입을 필요로 한다. 민중의 의지에 따르는 것만이 승리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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