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영화중엔 이 영화만 좋다. 왕의 남자도 나쁘진 않았지만, 정말 좋다는 영화는 이 영화 뿐이다. 황산벌. 그 재밌는 영화적 소재를 가지고 그렇게 밖에 연출을 못하다니, 라디오 스타가 흥행에 성공했고 이 영화가 야심작임에도 흥행에 실패했다는건 취향의 문제라기 보단 대중의 눈높이가 낮다.라고 말하면, '재수없는 놈, *나 잘난체 하네~. 니가 영화를 만들어 봐라.' 등등등. 말 안해도 안다.ㅎ 실은 여성,여심 마케팅에 실패한 대표적 케이스가 아닐까 싶다. 


  시대극에 드러나는 가부장적 태도와 그것에 어쩔수 없이 내몰린 여인의 삶은 기구하게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자들의 욕망 속에서 흘러가며 자아가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남성적인 시각에서 진행된다. 주체적인 자유가 없고, 선택지가 없는 여인의 답답한 삶과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이 남자들한테는 어떤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여자들이 봤을땐, 한없이 짜증나고, 공감하기 힘들며, 불쾌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일면적으로 보이는, 사랑하지 않은 남자를 그렇게 집착하듯 찾아나서는 과정에 감정이입도 안 되거니와, 마지막 장면의 끝맺음은 개운치 않은 여운을 부채질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여인의 속 마음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내몰린 절망감, 타의에 속박되어 묵묵히 울분을 인내하며 사랑도 희망도 없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 심정을 우리는 감정의 저 밑바닥에서 찾아야 한다. 이 여인의 표상은 우리의 역사속 한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나라를 잃고, 주체적 독립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의 슬픈 숙명같이, 돈을 위해 피를 흘리고 돈을 위해 웃음을 팔고, 돈을 위해 양심을 팔아야 하는 기구한 아픔이 스며있다. 

 절박한 전투가 벌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들의 해후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자들의 말못할 탄식이 울분에 넘쳐 진한 여운을 남겼다. 개인의 사연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가 가진 말도 안되는 상황말이다. 내몰린 여성들이 가야했던 그 길 들 말이다. 


  이야기의 이면에 깔려있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은 대형 제작비의 상업 영화와는 안 어울리겠지만,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은 작품을 만들려는 욕심을 부린듯 하다. 그런 의욕이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를 불러왔겠지만, 나름 의미있는 시도이고, 다양한 국물 맛을 우려낸 듯한 성과가 있다고 본다. 물론 작위적인 장면들도 많긴 하지만, 주인공 여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래가 가져오는 쓸쓸한 여운은 파장이 크다. 음악의 힘과 배우 수애의 힘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좋은 작품이라고 여긴다.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그냥 묻혀지긴 아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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