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비록 그가 나와 닿지 못하는 서로 다른 장소에 있더라도 나와 같은 시간에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에겐 어떤 외로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반향적인 현상인 것 같다. 그 감정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 대개의 경우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없이도 다른 이들과 즐기고 있을 때만 우리에게 되비쳐지는 감정이다. 삶에 있어 아예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그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여인을,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여인을 생각할때, 또는 자신이 아닌 다른 동료들과 함께 있는 다른 누군가를 생각할때뿐이다. _ 12월 24일 일기 마지막..

 저 부분이 이 책의 모든걸 집약하고 있다. 2달여의 모스크바 체류동안. 사랑하는 여인 아샤 라리스와의 감정의 연극. 한 지식인의 유약하고 섬세한 감정들.. 아마 전영될까봐..후다닥 읽었다.
 이 책의 원제는. Catching the Big Fish : Meditation, Consciousness & Creativity 이고 우리말 부제는 컬트의 제왕이 들려주는 창조와 직관의 비밀. 이다. 

 컬트 영화..하면..데이빗 린치가..대표적으로 떠오른다.. 그의 첫 작품. '이레이저 헤드'의 독특한 포스터 속..인물.. 그 후..꽤 이상하고. 기묘한 영화들 속에 간간히 아주 휴머니티한 작품들.. 이 사람의 대표적 걸작..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독특한 매혹적인 마력.. 20대 때. 독특한 영화의 예술적 체험을 선사해준..이 데이빗 린치 감독..내공의 힘은.. 명상 이었다. 정확히 말하면..초월명상..

 이 미국 감독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된것은..학창시절..(아마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쯔음.) KBS2 에서 방영한 TV판 트윈픽스 시리즈 였다. X파일 시리즈가 방영되기 이전에..KBS 에서, 꽤 의외적으로 컬트적인 미국 드라마를 방영해준 셈인데. 어릴때..밤 11시 이후로..이 기괴한 드라마를 볼때나..지금 다시 생각해도..KBS와는 어울리지 않는..기묘함이 있었다. 그 때는 영화나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의 매력에 금방 빠져버렸다.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겠지만..뭔가 TV브라운관과..작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것은..표면적인 의식의 감각이 아니라, 좀 더 내밀한 자아의 어떤 곳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내용은 잘 몰랐지만..그 분위기에 취했다. 어쩌면 영상 매체의 첫 예술적 경험이었다. 원래 쭉 봐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간혹 한주를 빠트리면..이건.뭐..이상의 시를 맞딱뜨리는 심정이었다. 결국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으나..그 당시. 나름..이 드라마의 팬층을 유지했다고 들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많은 영화들을 탐닉했는데. 그 동안 못 보았던. 수많은 명작들을 비디오로 섭렵했다. 그 당시 '광란의 사랑'과 '블루 벨벳' 은 성횡하던 비디오 방에서 보았고.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극장에서 보았는데..이 두 작품이 내겐..데이빗 린치 영화의 진수처럼 다가왔다. 내러티브 구조는 해체되고..시적 이미지들의 몽환적인 충격이..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극장을 나설때의 그 얼떨떨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영화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때의 공간. 분위기. 내 존재의 각성 같은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서 친구와 나름 심도있는 분석과. 감상평은..제대로된 예술의 소비, 향유 라고 생각된다. '로스트 하이웨이' 같은 경우..명보극장에서..평소 영화를 잘 안 보는 친구를 데려가 보았는데.. 그 친구도..묘한 체험이었다고..나 아니었으면..이런 영화, 평생 접하지도 않았을 거라 했다..미안함이..조금은 덜어진 기분이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경우..삼성역 코엑스에서 보고 나와서..친구와 토론하던..그 밤을 잊지 못한다. 서사 구조의 분석을 시도했으나..논리적인 구축이 안되는 영화였다.. 이 책 빨간방을 보면서..그때 친구와 영화에 대해 토론했던..그 해석이..데이빗 린치 감독이 말하는..좋은 영화의 해석이고..감상이었다.

 데이빗 린치가 기괴한? 영화만 만든것은 아니었다..'앨리펀트 맨'과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아주 따듯한 감성의 휴먼 스토리였다.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인데..이 실화라는 것은..탄탄한 연출력과 맞았을때,,대단한 감정의 반향을 일으킨다..이 두 영화를 보고는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체험이었다. 

 헐리우드 영화로 대표되는 미국영화라지만..미국 영화의 힘은 이런 다양성에 있었다..데이빗 린치. 짐 자무쉬. 코엔 형제. 워쇼스키 형제. 구스 반 산트, 리챠드 링클레이터. 데이빗 핀처, 샘 멘데스. 등등등.. 그 중에서도..데이빗 린치가 이룬..성공은.. 작가 감독들의 이정표와도 같은 것이다. 데이빗 린치가 치열한 영화계에서 실패와 좌절을 맛보면서..그 에너지를 잃지 않고..작가 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던...핵심은..초월명상 이었다.. 33년간 쉬지 않고..아침 저녁으로 명상을 행해온.그는 영화 뿐만 아니라..자신의 삶을 건져내었다. 첫번째 장편영화 '이레이저 헤드'를 5년간 찍으면서..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명상은 삶의 구원이었다. 또.거대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듄'이 쫄닥 망하면서도..그를 좌절에 빠트리지 않은 것은..명상 이었다. 이 책은 명상의 중심에, 자신의 영화 이야기가 펼쳐진다. 글은 짤막하나..핵심은 강력하다. 짧고 간결한 말투..군더더기 와도 같은 상념이 배제된 글은.. 명상을 오래한 사람의 깨끗한 정신과도 같다. 명상을 통한 한 예술가의 여정은 창조력의 핵심이..명상을 통한 자아긍정과..열정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다 잘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대응방식에서..긍정과..집중과..직관은..훨씬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한 두 시간 이면..읽는 짧은 글들이지만.. 이 감독의 핵심적인..생각들이 들어있다. 몇년전 이책이 나왔을때..우연히 서점 진열장에서 보구..서서 다 읽었는데.. 다시 도서관서 빌려와..집에서 차분히 읽어보니..어쨌거나 명상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나의 명상법과..그가 말하는 초월명상 법의 차이가 궁금했고..통일장 이란 것에 대해..얼핏 느낌은 오지만.. 그 상태가 잘 모르겠다..어쩌면..이 초월명상이란 것은..간화선(화두참선)의 실질적인 면이 강조된 것이 아닐까 한다. 좀 더 현실의 삶에 도움이 되는 그런 다이제스트 적 성격인 명상법이 아닐런지..결국. 명상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니까..우리 각자가 어떤 계기로든..시도해 봤으면 좋겠다. 명상의 모든 기본은 복식호홉이라는것. 요가나. 위빠사나 명상이나..단전호홉. 참선. 초월명상. 모두..명상의 조금씩 다른 이름이다. 어떤 것을 하던 호홉이 흐트러지면..말짱 꽝..
아주 두툼한 책이다. 그래서 다른 목적으로도 책이 쓰일 수 있다..목침이 아니라..지침? 베개로 삼기 딱 좋은 두께다..양장본 이지만 본문 종이가 재생지 여서..딱딱하지 않고..적당히 푹신한 감도 있다. 아마 내가 구입한 책들중..가장 두꺼운 책 일듯 싶다. 보통 두꺼운 책들은 사놓고 읽진 않는데. 이 책은..처음 부터 쭉 읽어야 하는 책 이 아니라..동.서양의 철학자들을 각각의 주제로..배치해 놓고. 한 주제에 두 철학자가 어떻게 사유하는지 보여준다. 철학의 역사서는 아니지만..워낙 다루는 철학자가 많아서..다 읽고 나면 큰 주요한 흐름은 궤뚫을 수 있을것 같다. 강신주 선생님의 다른 저서와 마찬가지로..대단히 친절한 문장이다. 전혀 어렵지 않고..몰랐던 철학자들에게..벌써 친밀한 느낌마저 든다. 책 속의 이 많은 철학자들을 공부한 저자의 지적 범위에 대해 놀라게 된다. 대중을 위한 쉬운 철학책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저자 본인이..철학의 어려움을 사유하고.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 를 고민한 결과이다. 이 분 강좌를 하나 듣고 있는데..오늘..저자 싸인을 받아두려..이 책을 들고 나오는 걸 깜박 잊었다. 오늘이 마지막 강의 인데..

 다음글은 시골의사 박경철 님의 리뷰. 참조 바랍니다..

철학 vs 철학’(그린비 펴냄)의 저자 강신주는 우리가 접하는 모든 학문의 근본이 수학과 철학이라고 말한다. 수학은 과학적 구조를 가진 모든 학문의 기초다. 이를테면 과학기술이나 건축, 설계, 기계공학, 심지어 계량경제학 같은 분야 말이다. 이렇게 수학적 지식이 바탕을 이룬 학문의 발전은 탑을 쌓아올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누군가가 쌓아올린 지식과 이론이 부정되면 누군가는 다른 돌을 얹어간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탑의 높이는 점점 더 까마득해진다. 소위 과학문명의 발달이다.

 

반면 철학을 바탕으로 한 학문의 특징은 수평적이고 산발적이다. 문학, 사학, 철학 같은 인문학이 그러하다. 데카르트를 알아야 칸트를 알고 칸트를 알아야 헤겔과 라캉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데카르트, 칸트, 소쉬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모두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미적분을 모르면 로켓을 발사할 수 없지만, 데카르트를 몰라도 데리다를 논할 수 있다.

 

인문학의 존재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첨탑만 쌓아올리면 정작 이 탑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용도가 무엇인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 그저 높이, 더 높이만 외친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사유의 힘이고 통찰이다. 결국 수학적 학문과 철학적 학문의 교집합만이 높이와 넓이 이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인 셈.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당위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과학기술의 경쟁에 내몰려 통찰과 안목이 소멸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의 첨탑 쌓기 경쟁이 전부가 되면서 문명은 이성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과학 우위의 시대에 철학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문학을 논하기 전에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물리학을 위해 수학이 필요하듯, 인문학을 하려면 철학부터 접해야 한다는 사실. 인문학 특강을 듣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들이 호텔에 몰려봐야 철학적 바탕이 없으면 헛일이다.

 

철학적 사유를 도외시한 채 인문학을 논하는 것은 인수분해를 모르면서 혜성의 궤적을 추적하는 것만큼이나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철학으로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이다. 철학을 논하는 언어들은 생경하고 철학자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는 불편하다. 이런 철학적 사유와 언어들에 쉽게 접근하는 방식이 바로 철학사를 읽는 것이다. 난해한 철학자들의 개별적 사유를 공부하기에 앞서 철학의 조류가 변하는 과정과 배경을 이해하고, 그들 철학의 논점과 요지를 이해한다면 자신에게 적합한 철학자를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

 

한데 철학사 책을 읽다 보면 미로의 입구 찾기는 고사하고, 도처에서 미궁에 빠지고 만다. 연대기적 구성을 중심으로 한 천편일률적 형식의 철학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갈증이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만한 역저가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고민들을 논제로 내세워, 이 논제에 대립적인 또는 비교될 만한 논지를 전개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병렬로 배치했다. 어떤 주제에 대한 철학적 사유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철학에는 정답이 없는지, 정답이 없음에도 우리는 왜 철학을 가까이해야 하는지를 철학자 간의 논리싸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철학사 책에서 느끼게 되는 갈증을 일거에 해소한 걸작이자, ‘철학사의 아이폰’이라 하겠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철학사의 주요 논점이 현대의 화두로 변신해 부활하는 실상을 목도하고, 인류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간파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철학 입문자뿐 아니라,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 구름 위에서 고아한 단어들만 쏟아내며 철학을 ‘그들만의 학문’으로 끌어안던 철학자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출처] 철학대 철학|작성자 시골의사


 강신주 선생님의 모든 책을 읽고 있지만, 이 책은 그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것으로..학위논문으로 쓰여진것을 대중을 위해 쉬운 글로..풀어쓴 것이라 한다. 모든 책들이 다 명저이지만 이 책은 초기 저작으로써..한 철학자의 큰 테마와. 대중과의 소통으로써의 글쓰기의 모범을 여실히 보여준다. 타자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써의 철학. 그럼으로써 진정한 주체성의 회복이 친절한 글쓰기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책의 처음. '장자'를 읽는 이유와 그 의미 라는 장의 첫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을 읽는 의미에 대한 글이므로, 귀감이 된다.
 "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책만큼 시간과 생성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없다. 지금 내 앞에 방금 서점에서 구입한 책이 있다고 해보자. 이 책은 우리에게는 미래의 시간이자. 나를 이러저러하게 다르게 생성시킬 수 있는 잠재성이다. 이 책의 20페이지를 읽고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에게는 이 책을 통해서 이미 읽은 19페이지들이라는 과거와 지금 펼쳐져 있는 20페이지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그 많은 미래가 생성된다. 그러나 사실 이미 읽었다는 이 19페이지들도 흘러간 과거라기보다는 어느 때이든 미래로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읽었던 앞 페이지들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책이 열어 주는 다층적인 시간 속에서 자라왔고, 또 자라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자라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이 이런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책들은 그저 한 장 한 장 넘겨지고는 끝내 잊혀지게 되는 운명에 빠져 있다. 이렇게 책에는 다시 넘겨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넘겨지면 잊혀져 버리고 마는 책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매번 넘기고 다시 넘기는 책, 나아가 세대를 거쳐서 다시 또 넘겨지는 책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고전은 덧없는 세상에서 영원성을 확보한 행복한 책이다.~~"

장자. 사실 모든 동.서양 철학자들의 이름은 수시로 들어왔지만. 그들이 말하는 생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인간 사유의 역사를 모르고 나의 존재와 세상을 알 수 있겠는가. 최소한 몇몇 철학의 봉우리들은 올라가봐야 한다. 높은 곳에서 관조하고. 나의 삶과 어떻게 접목시킬지 궁리하고 행동하고. 실천해 봐야한다. 그 중의 동양 철학의 관심사 중에 하나가 장자 였다. 이전에 장자를 독파해 보려고..시도해 보려 했지만..너무나 많은 책들과..너무나 많은 해석들..속에서..우왕좌왕 했고. 솔직히 원문의 의미와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형식의 고전은. 많은 해설서 들이 나왔나보다.    
 저자들의 해석이나 주장이 다양한데. 내가 시도해보려 했던..묵점 이란 호를 가진 노학자?의 장자에서는, 현재 나온, 장자에 관한 책들은 거의 쓰레기 라며, 입에서 말하기 조차 민망한 단어를 책에 써가며 혹평해댔다. 뭐든지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은 무서운법. 고전의 해석은 정답은 없는법 아니겠는가..어떻게 현실에 접목시켜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공부여야 하지..누군 맞고 틀리고 가 어디 있나..장자가 오늘의 나비가 되어..비웃을 일이다. 

 제목 그대도..저자는 장자를..타자와의 소통을 직접적으로 문제삼고 있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사유하였으며, 나아가 이런 소통을 몸소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p.15
 장자철학의 고유성은 바로 자신의 철학체계에 타자를 도입했다는 데 있다. 타자는 사유라는 사변적 공간에서가 아니라 항상 삶이라는 실천적 공간에서 문제가 된다. p.16
 타자. 타자성의 중요성은 많이 들어왔어도, 그것을 몸소 사유하고, 실천하기는 만만치 않았음을 시인한다. 너를 진정으로 알려는 의지와 노력이 사랑의 다른 이름 일수도 있다.
 아무래도..아직은 나의 견해보다는. 책을 요약해 새겨두고 실천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 
 
 
 요약 _ 사유와 존재의 일치를 서양에서는 진리 (Truth) 라고 한다면 동양에서는 이것을 도 라고 한다. 사유와 존재의 일치는 사실 주체와 타자의 일치라는 근본적인 경험을 전제로 해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p.230

 결론장 _ 우리가 진정으로 타자와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유아론적 꿈으로부터 깨어나야만 한다. 문제는 꿈과 깨어남이 주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 꿈꾸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깨어있는 것이냐.' 의 문제는 주체로부터 결정될 수 없는 것이다.
 꿈과 깨어남을 결정하는 기준은 주체라기보다 타자 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자에게는 꿈이 '주체가 스스로에게 닫혀 있음' 을 의미한다면, 깨어남은 '주체가 타자에게로 열려있음' 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개가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타자와 소통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비약을 (Salto mortale) 수행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비약에 실패해서 주체와 타자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타자와 소통하려면 우리는 이런 심연을 건너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주체 형식의 변화는 조우한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장자가 권고하는 자유는 우리가 타자와 소통함으로써 부단히 자신을 극복하고 새롭게 생성될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유가 실현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주체가 새로운 타자와 소통해서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정 이야기에서 _ 마음을 수양해서 인칭적 자의식을 제거하려는 노력도 타자와 잘 소통하기 위해서다. -~ 도대체 왜 마음을 수양하는지 망각한 채 마음만을 수양하게 된 것이다.
 타자와 관계하지 않는 허심이나 소를 자르지 않는 날카로운 칼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은 단지 편집증에 지나지 않는 자기도착의 결과물에 불과한 것이다.
 삶의 공간은 우리가 매번 예기치 않던 타자의 타자성과 마주치게 되는 공간이다.

 철학은 기존의 삶의 형식에 대한 비판과 수양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철학은 기존의 삶의 형식과 질적으로 다른 주체 및 타자 형식, 즉 주체와 타자를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서야 이념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철학의 진정한 역할이 완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장자로부터 배우게 되는 마지막 교훈일 것이다.
 새로운 체계, 새로운 의미, 나아가 새로운 주체를 우리의 힘으로 구성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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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20대 중 ~후반 쯤에 김규항 님의 글을 처음 접했다. 이 글은 김규항의 글을 읽으며 내 자신의 변화에 대한 관찰이자. 기록이다. 자서전적 글쓰기에 대해 마음속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책이 내 삶을 변화하게 하는 동력이었기 때문에, 애정과 향수를 가지고 뒤돌아 본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지인의 도움으로 반년의 뉴욕 생활을 했다. 그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의 경험을 위해서, 뛰어들게 되었지만 즐겁지가 않았다. 뉴욕의 환상도 곧 여지없이 깨졌고, 내 일과. 도시의 일상 모두 에서 마음이 흩어졌다. 군중속의 고독인 외로움과. 자본이 지배하는 뉴욕의 본질을 호홉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두워져 갔다. 두려웠고 고독했고. 뉴욕이 갑갑했다. 그래서 무모하게. 홀로 무작정 서부로 달렸다. 첫 운전이고, 모든게 생소한 길이었지만, 죽을 사고를 겪지않고, 10여일 만에 다시 맨하튼으로 들어오는 홀랜드 터널을 지나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미국의 광활한 대지를 접하면서 외로움의 밑바닥을 훝었다.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것은. 상투적 표현일지라도, 사람은 혼자만의 섬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외로움의 공포가 몸을 마비시킬 정도였으니..(화이트샌드에서..) 그때의 공진 상태가.. 내가 서서히 바닥을 치고 변화하게 되는 변곡점이라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연인을 잃은 지인(선생님)과 서울에 돌아온지 한달 반만에 만나 북한산에 올랐다. 그동안 그분은 금강산을 비롯한 전국의 산을 돌며 마음을 다잡고 계셨고. 나는 여전히 공진상태에 있었다. 그날 처음 등산을 경험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분은 내게 뉴욕을 선사하려 했었지만. 결국 산을 내게 전해 주었다.  형제봉의 바위에서. 그분은 내게 물었다.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계속 공진상태 였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몰랐다. 내 자신조차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난감했지만. 어떻게든 말해야 했기 때문에..박명* (당시 유명했던 광고회사 사장) 같은 사람을 언급하며. 단지? 돈많이 버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공허한 메아리 조차 되지 않은, 헛소리 였다. 운명은 내 말을 조롱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운명은? 그 당시 내게 김규항의 글을 접하게 했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나. 선불교의 가르침을 선사했다. 그러는 사이, 내 욕망과 두려움은. 병을 얻어 더욱 악취를 풍겼다. 그것에 대한 반발로. 나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좀 늦게 가더라도. 병은 내게 삶을 뒤집을, 여건을 만들어줬다.  점점 공부를 하며 나의 무명無明 ([명사] <불교>십이 연기의 하나.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를 이른다.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 과. 정신과 육체의 악취를 벗어나갔다. 

 김규항의 글은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했다. 뭔가 어렴풋하게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잘못된 사회의 통념들과 위선을 들추어냈고, 진짜 민주주의, 사회와 개인의 가치를 말해주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논리정연함과..리듬은. 주제를 통찰하는. 예리함이 덧붙여, 내 의식을 뻥 뚫어주었다. 그리고 다른 지식인 들과는 다르게..현실의 삶이 녹아있었다. 진중권과 박노자의 글처럼 통렬함은 없을지라도. 타인의 삶. 좀 더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뭍어났다. 

 이 책. B급 좌파는 그의 첫 칼럼집이다. 98~2000 사이 씨네 21에 기고한 글을 모은 것인데. 그의 첫 글쓰기 행보였다. 두번째. 칼럼집은 그의 블로그 글의 모음집인 '나는 왜 불온한가' 였고. 곧 세번째 칼럼집이 나온다고 한다. 2번째 칼럼집 보다는 이 책은 잡지 기고 글이어서. 한 주제에 글의 양이 일정한 꽉 짜여진 틀이 있다. 자유로운 산문도 좋지만. 이렇게 지면이 제한된 여건에서 한 주제를 풀어내는 그의 글솜씨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의 글의 강점은 유학을 갖다온 공부 많이한 사람들이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가져다 들먹이고, 수사를 남발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삶 속에서 건져올린 올올한 글들이 공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지나친 감상 혹은 시적 은유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논리와. 리듬으로 예리한 미문을 만든다.
 그는 예수님 외에 다른 학자들의 말이나 이론을 들먹이지 않는다. 확실한 사상적 기반이 예수를 믿는 만큼 급진적이고 투철하다. 그가 낸 '예수전'은 글이 너무 정제된 느낌이라, 이 칼럼집을 읽는 만큼 한번에 확 와닿지 못했지만. 수시로 차분히. 음미해 볼만한 책이었다. 

 예수를 따르는 좌파 지식인으로써, 그 사상의 의지는 내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다. 내 삶과 환경이 여전히 미명에 쌓여있긴 해도, 그 만큼 확실한 신념?이 쌓이진 않다 해도. 내 마음속 지향하는 세상을 위해 나도 전진한다. 
 김규항의 첫 책인 이 책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 어줍잖은 말이지만 지식인이란 '내가 지향하는 바' 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그 숙명적인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발악하는 것일 뿐,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선택했고 그런 삶의 발악이 더러는 (거의 가능하지 않지만) 세상에 진짜 유익을 주는 일도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내 삶을 전진한다.

 -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김규항.

 세번째 칼럼.산문집인. B급 좌파.- 세번째 이야기가 방금? 나왔다. 목차를 보아하니..그 동안 블로그에서 읽어왔던 글 이긴 해도. 책으로 다시 읽고 음미해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그 처럼 지식과 삶이 유리 되지 않도록 발악을 하며. 오늘도. Believe Yourself Strongly !



 

 조영남 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글은 시원하고 솔직해서 마음에 든다. 잰체하지 않는 어른의 글은 삶을 통속적으로 유미하는 여운을 남긴다.

 몇 년전? 이 책이 나왔을때, 서점에서..서서 읽었다. 그 때. 절반 가량 읽고 (윤여정 씨와의 이혼 부분 까지.)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어느날 사랑이' 이 말 자체의 흡인력이 얼마나 강한것인가. 어느날 갑자기 사랑이 찾아오듯 어느날 갑자기. 어떤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이 나오기전. 아마 조영남씨의 일본에 관한 책인가..발언으로..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던 걸로 기억한다. 모든 방송 활동을 접고, 출판사의 권유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환 회의 내지 향수로 사랑에 관한 자기 삶의 경험과. 성찰 혹은 생각을 펼쳐 보인다. 

 일본에 관한 그의 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의 현대미술에 관한 책과. 예수님에 관한 책은 아주 유익하게 읽었었다. 이 체계나 나이에 구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에게 호감이 가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사랑에 관해서..한 가장의 남편이자 부모로써..그는 나쁜 남자이다. 그는 젊은 여자에 사족을 못썻고. 욕망에 충실해. 그가 가장 사랑해야할 가족에게 뿌리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쩌면 이 책은 상당히 뻔뻔한 자의 이야기 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거나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고. 장년의 나이에 뒤늦게 깨달은 사랑에 관한 성찰을 심도?있게 펼쳐 놓는다.

 무릎팍 도사에 나온 윤여정 씨 편을 너무나 재밌게 봤었다.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중견 여자 배우 였는데. 역시나 삶의 아픔을 간직하고. 넘어선 그녀의 말과 재치는 나이든 한 여인이 아름다워 보이기 까지 했다. 아마 윤여정 씨가 이 책을 읽었다면. 정말 코웃음 쳤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의 얼굴이 이 책 한권의 구구절절한 사랑에 관한 상념보다도 더 의미있고. 함축적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주름  하나하나가 삶과 사랑의 비밀을 간직한듯하다. 아마도. 무릎팍 도사에 조영남씨가 나온다면. 그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과..엄청난 파문이 일지 않을까. 어쩌면 무료한 세상. 그의 사랑관. 인생관은 흥미있다. 

 그래도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사랑의 행적에 대해 반성한다. 여자 독자 입장에선 여전히 뻔뻔하다고 여길수 있지만 말이다. 내가 다시 읽은 부분은 책의 중간 부분인. 2번째 부인과의 만남과 이혼 부분인데..젊은 여자래서 그런지..윤여정 씨 때와는 다르게 참 쿨하다.. 이혼 하고 나서..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 예를 들자면.. 그녀가 다른 남자와 교제하는데..조영남씨가..친 오빠 처럼.(친 오빠도 안그럴꺼 같지만.) 코치하는 모습들.. 우리나라 정서와는 다른..서구적 자유연애 주의? 가 많이 느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사랑에 관한. 의미.철학을 탐구하는데. 그가 공부한 예수의 삶과. 에리히 프롬등의 사상가 이야기로 정리해 나간다. 그리고 친구들과 의 사랑. 삶의 이야기 가 펼쳐진다. 아버지뻘이 되는 분들, (김민기. 송창식. 이장희..윤형주. 김세환. 이윤기.등등등..) 이 나라 처음의 자유주의자. 보헤미안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현재의 삶들이 너무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랑이 남녀간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은 친구와의 사랑. 우정에 까지 드러나고. 더 나아가. 예수님 말씀처럼. 타인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라는 진리가 사랑의 궁극이라는 점까지..말한다. 자신은 타인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지는 못할꺼라고 고백하면서. 통속적인 교훈과 계몽의 글로 마무리 하지 않는다. 나름..각자의. 사랑의 의미를 솔직히 생각해 보게 하는 점이 이 책의 백미다. 너무..자신의 일생이 쿨하게 드러나 있어. 이 책의 의도가 곡해될 여지가 많지만 말이다.

 사랑에 관한 테마의. 철학수업을 듣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과.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을 읽고 있다가. 좀 더 현실적인 경험의 사랑을 다룬 이 책을 보니, 암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제 주말 드라마 글로리아를 보다가 내가 이쁘다고 생각하는 배우, 소이현 씨에 대해..극중 김용옥 할머니가 한 대사(충고)가 잊혀지지 않는다. 저런 여자는 남자 혼 빼놓게 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만들 여자라고..조심하라고..ㅋㅋ 여자들은 조영남 같은 남자를 조심해야 하나..

 조영남 씨는 남들이 자기를 카사노바 형이라고 보는데..자신은 카사노바 형과..베르테르 형의 중간 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가지 면이 다 있지만.. 어느 편이 더 강하냐가 자신의 이미지가 규정되는 것일 게다. 나는 카사노바 베르테르 에다. 프루스트를 추가해야 할 듯 싶다..ㅎ 


  최근에 짐 자무쉬의 근작 '리미츠 오브 컨트롤'을 보고 스페인의 풍경에 매료되었었다. 요즘 스페인이 대센가..월드컵도 우승하고.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인.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등이 있고, 무엇보다도, 그 정열과 순수의 태양이 있는 나라 아니던가. 물론 가보진 않았다. 그래 보인다는 것이고. 간접으로도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온도가 변했는지. 예전에는 스코틀랜드나..북유럽의 흐리고 뿌연 안개와 서늘한 날씨를 그리워했는데. 이젠 정반대다. 뜨거운 태양과 강렬한 색상이 좋다. 
 
 이 책은 어제 더위를 피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빨리 읽으려다. 글이 순진하고, 소박한 재미의 여행기 래서 그냥 보통 속도로 다 읽어나갔다. 여행기를 잘 읽진 않지만. 이 글은 초반에 저자의 신체적 고통과 아픔이 잘 전해져서. 뭐랄까. 응원하는 마음으로. 차례대로 읽어나갔다. 30살을 맞이한 여자들의 삶의 경험이. 각 세권에서 펼쳐졌지만 개인적으론. 이 책의 저자한테 가장 마음이 간다.

 산티아고. 내가 이 명칭을 들어본게..파올로 코엘류의 소설.'연금술사'에서 들어봤을 것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파올로 코엘료의 책과 삶에서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신간 코너의 책들 중 이 산티아고 가 눈에 들어왔고, 하나를 뽑아들고. 다른 한 책은 표지에 산티아고 길. 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와. 뽑아들었다. 한 권은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을 위한. 정보책이었다. 다른 한권은 그 순례길을 여행한 30대 여인의 기행문 이었다. 표지엔 저자가 찍은 본인의 모습이 있는데, 참 착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우리나라 제주 올레길을 만든 어떤 여성분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길을 만들고자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단 이야기가 기억에 났다. 아 또 생각해보니 코엘류도 이 순례길을 걷고서 뒤늦게 깨우쳐 소설가가 되셨나..잔잔한 수면위에 붕어 꼬리가 살짝 때리듯이 산티아고에 대한. 기억의 상념들이 떠오른다. 산티아고.. 왠지..언젠가 낮설지 않은 명칭이 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저자 역시. 8년전 .'연금술사'의 감동에 산티아고 길을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병을 가지고 있는데 한쪽 발목의 극심한 통증이 있어. 오래 걷거나. 오래 서 있지도 못하는 원인 모를 병을 20년째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증상은 있는데. 현대 의학으로는 원인이 발견되지 않은 이런 난치성 병이 되게 많은걸로 알고 있다. 나도 20대 중후반에 어느날 갑자기. 다리 정맥혈관에 염증이 생겼는데. 아무런 원인, 병명을 못 찾았었다. 매우 아픈것이 아니라. 발이 부어서 한동안 걷는 것이 불편하고. 기력이 소진됐었는데, 그런 경험때문에 이 책 저자의 아픔이(조금일지라도) 더 마음으로 공감되었다. 나 또한 불편을 무릅쓰고..더 산행을 다니고..그러면서. 휘청했던 건강을 찾은것 같다. 그런데 나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어느날 순식간에 죽음으로 몰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증상에 대한 의심으로 많은 의학 정보를 찾아보았다. 아마도.스트레스,흡연,알콜 등에 의한 몸의 이상 반응인데, 면역체계가 자기 몸을 공격하는 이런 양상이 나처럼 다리쪽 표피 정맥에만 그치지 않고 머리혈관이나 복부장기에 영향을 미친다면. 생명에도 위험할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처럼. 원인모를 극심한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을 알았었다. 젊은 나이에도. 순식간에 원인모를 병으로 급사할 수 있는 그런 냉엄한 현실. 스트레스..참 무섭다.

 저자의 또 다른 아픔은. 어릴적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슬픔은 평범한 가정의 내가 가늠하기 어렵다. 리버 피닉스가 주연한 '아이다호' 의 느낌을 생각해 봤는데, 동시에 '파리 텍사스' 도 생각났다. 영화속의 감동을 되살려보며. 내면의 슬픔을 느껴본다.
 길위에 서라, 산티아고로 가라. 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그녀는 화답한다. 그러나 등산화를 구하는 과정부터가..참..고통이 전해진다. 초반부터. 그런 몸을 가지고 어떻게 장거리 도보 여행을 해 나갈까 걱정되기도 하고. 응원의 마음으로..책에 몰입하게 된다.
 글이 그날 그날 현장에서 쓴 일기여서. 솔직한 그 순간의 느낌이 잘 살아있다. 여행 후. 나중에 여행을 회고하며. 겉 포장을 싼 느낌이 아니어서 좋다. 그리고 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밝음과. 유머가 글 속에 있다.

 8일째 파리. 영화 '비포선셋'에서 두 주인공이 만났던 서점 이야기가 나온다. 이 고서점 2층 다락에서 그녀는 글을 쓴다. " 갑자기 주먹만한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 다락과 바퀴벌레는 정말 잘 어울린다. 50년이 훌쩍 넘은 곳이니 바퀴들이야말로 이 서점의 산 증인이다. 이 바퀴벌레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제임스 조이스와 헤밍웨이가 여기서 책 읽고 토론하는 모습도 보았을 테지. 시인과 작가 들의 공간, 이곳의 평화롭고 자유로운 기운을 내 몸과 마음과 영혼에 한 가득 담아가고 싶다. "

 알베르게 라 불리는 순례자 전용 숙소에서 다른 이의 노래소리에 그녀는 엠피쓰리에 담아온.'옴마니 반메훔'을 들으며 밤새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쓴다. 내겐 이런 부분이 되게 웃기다.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는 믿지만. 종교는 없는 상태인데. 종교나 철학은 그 신에 다가가는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도 같고.,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이 느껴지면서도..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길 위에서 만나는 각국의 수많은 천사들의 이야기 가..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이 길의 여정 자체가..인생의 축소판 이라고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도. 아니면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며. 그녀는 길위에서 울고 웃는다. 대부분. 여행객들로부터 그녀는 천사로 불리운다. 오카리나 라는 피리를 불러주는 그녀는 상상만해도..아름답다. 

 그리고..항상 따라다니는 발의 물리적 고통과..식중독..등..생생하다. 발의 고통은. 20대 초반 신병훈련소에서 마지막 행군 할때. 겪었던 고통을 생각나게 한다. 전투화의 바닥에서 올라온. 못과 발바닥 전체의 물집으로 인해..고통으로 절뚝대며 완주했던. 그 기억..그 당시에는 정말 끔직했다. 이를 악물고 완주했지만..그 후 손가락 까닥하지 못할정도로 기운이 빠졌고. 그 날 밤. 오한과 헛소리에 몸을 벌벌떨며 잠을 못 이루다..새벽녁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어떤 빛나는 사람을 보았다. 강한빛과..환환 웃음을 가진 생생한 사람이었는데.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지만..또. 어느 누구와도 닮았다. 완벽한 미소. 완벽한 형상이었고. 나는 편안해졌다.  그리고 아침에 기상했을때..그렇게 아프던 몸이 말끔히 나아 버려..참..신기했던 적이 있다. 나는 분명..신을 보았던 것이다..지금도 생생하다. 그 신이 내안에.. 혹은 외부에..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각각의 선한 마음 자체가 신이다.
 옆의 동료가..내 걱정을 했는지..밤에 장난아니게 몸을 떨더라며..물어보았다..나는 몸이 개운해져..이상한 농담을 했었는데,, 대략..." 꿈속에서 히메나 선생이 홀딱 벗고.,흔들어줬어.." 뭐 이런.. 군대니깐..   또 나의 잡설이 길었다.

 55일 째 글에서.런던에서 온 던킨 아저씨에게.." 혹시 성이 도넛? " 하고 물었다가 한 대 쥐어박혔다.  저자의 외모가 30을 훌쩍 넘은 나이치고는 너무 동안인데.. 참 순수한 구석이 많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신이고 천사였다는 깨달음을 얻고..그녀는 이 여행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속에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소박하고 순수한 글들이 마음을 움직인다.. 



 
 

 이 책 또한 신간코너에서 재빠르게 읽어버려. 저자한테 좀 미안하다. 왜이리 집중력이 높아진건지.

 저자는 나랑 같은 성씨를 가져서 일단 우호감이 가는데. 책 앞날개에 나온 사진은  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쁘다. 아니다. 를 떠나서 그냥 내 취향과. 사진에서 느껴지는 셩격의 유추 면에서. 잠시 상념에 들었다. 쉬크한 첫 인상의 변화에 대해..

 젊었을때. 파리에 가서. 언어를 배우고. 공부해서. 현지 회사에 다니며 정착한 전형적인 패셔너블한 파리지엔 이다. 패션지 통신원 으로  인터뷰 하고 글 쓰는 기자일 도 병행하는데. 아무튼 좀 화려해 보이는 삶 같다. 서른 살이 되던해 프랑스 회사의 직장상사와 사랑에 빠지고 머지 않아. 유방암을 선고 받고..투병기를 거쳐, 삶의 한 단락을 마치고, 삶은 계속 이어진다. 새로운 사랑도 찾아오고..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암이라는 인생의 위기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대처하고. 이겨내서. 어떤 강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과장스런. 감정이나. 문체가 아니라, 아주 솔직하고. 담담한. 내면의 묘사다. 그녀의 연인 이자 직장 상사인 마크 란 사람이 첫 프로포즈 부터. 그녀는 왠지 마냥 행복해하지 않는다. 투병기 동안 곁에 있어준. 연인은 그녀가 완치된 순간. 서로 티격태격 멀어져간다. 예정된 수순처럼.. 그럼 삶의 굴곡을 넘어서. 그녀에게 찾아오는 일상은 거대한. 변화나 깨달음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그대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병을 이겨내고 더욱 나은 사람이 되었다느니.. 대단한 삶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감상 보다는. 병(자신)과의 싸움과. 실연에서. 애써 감정을 억누른 듯 보인다. 그래서 더. 저자의 감정이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 이태리 남자인. 에리코 였나. 큰 병마를 겪은 그들의 사랑이 왠지 잘 될거 같은 느낌이다. 그 남자의 직설적인 면이 인상이 깊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의 하루하루가 덤 같은 선물의 날들 이라. 마음에 가는건 뒤로 미루지 않는다는..그는 조르바 같은 면이 보인다.

 저자는 글을 소설처럼 잘 쓴다. 생소한 의료 경험에 대해 설명하는 글은 흡인력이 있다. 부분 부분. 아주 괜찮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너무 빨리 읽어서 아쉽기도 하다.
               

 동네 도사관에 피서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쓴 북한산 산행기 에서 언급했던. 나의 욕망이 아니던가. 허니문 히말라야 트레킹. 원래는 발터 벤야민 책을 한 권 완독하려고, 가져갔다가, 신간 코너에 있는 책들을 수두룩 뽑아서 자리에 앉았다. 누군가의 말대로. 여기가 내 서재라고 생각하니, 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에어컨도 가장 빵빵하고. 집중이 잘돼, 짧은 시간, 책을 여러권 읽었다.

 속독으로 도서관에서 읽어서 저자들 한테는 미안하다. 공들여 썻을 문장들을 후루룩 읽어버리는 내 입장은. 사실 다른 공부(학술적인)를 해야하는데, 덥다는 핑계로 정신에도 휴가를 주는 심정이었다. 크게 보면 타인의 삶을 들여봄으로써 내 삶을 깨우치기 위한 공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게 인문학의 목표 아니던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가지고  좀 더 인간의 품위를 가지고 잘 살아보자는..그런..

 저자는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근무하다, 서른 살에 그만두고. 유럽과 동남아 여행을 다니고. 2차로. 네팔등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광고회사 디자이너 라면, 내 학부 졸업장에 찍힌 데로 사회에 진출했다면..나도 그런 길을 걷다가..내 피와 단물 다 빨아먹히고.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건강에 이상이 와, 비실거리며 변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어떤것이던, 광고회사에 다녔더라면, 나의 존재는 후퇴했을 것이다. 그당시. 나의 상태로 봐서는. (패션과 감각에 치중했던 나로써는)  자본주의의 욕망의 늪에 허우적 댔을 것이다.

 그 분야를 잘 알기에. 저자의 선택에 공감이 많이 갔다. 사실 내가 겪어보지 않아도. 학교 동문. 동기 들이 많으니까..사실. 일의 강도나..비젼 문제라기 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다. 광고란게. 자본주의의 꽃이라 한다. * 광고의 목적은 생산과 사용 사이의 어떤 안내가 아니라 생산과 사용 사이의 모든 현혹이다. 결국. 자본가를 위한..현혹을 위한 삶. _  저자의 선택(변화)에 같은 분야를 공부했던? 내게 큰 공감이 되었다. 책에선 이 부분이 아니라 그 후의 삶과 여행에 괸해서 지만.  이상하게 사설이 길었다.

 여행을 하며, 또 사회단체에 참여를 하며. 만나게 된. 남편은 그녀보다 5살 연하인 목수 였다. 남편은 20대 초반부터 산에서 살다시피 한 멋진 남자 인거 같은데. 그런 둘이 만났으니,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자가 솔로일때, 신혼여행 커플이 가득 찬 동남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같이 히말라야를 걷고. 시골에서 같이 살 남자를 꿈꿨다고 했나? 아무튼 그녀의 바람대로.  지금은 속리산 근처의 시골에서 마을 도서관을 운영하며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시는듯 하다.

 신혼여행 20일 중 반은 네팔 도시의 이야기 이고. 나머지 10일은 진짜 트레킹 이야기 이다. 저자가 처음 혼자 왔을때와..시간이 흘러..변화된 혹은 변화되지 않은 모습을 이야기 한다. 속독했기 때문에 아주 자세히 읽진 않았다. 변명 하자면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기 때문에, 남의 경험을 내 경험처럼 간접 체험 하기 좀 그랬다.
 트레킹 중. 여행 스타일 이 다른 남편과의 갈등이나. 마음속의 증오.가 아주 재미있다. 사랑해서 결혼했겠지만. 상대의 어떤 사소한 부분이 그 사람을 여행중에 버리고 싶을 정도로 꼴뵈기 싫다가도, 때로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결혼 잘 했다고 흐믓해하는 저자의 모습이, 솔직하며 내심 부럽다. 이런 신혼여행의 목적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서로 힘들고. 짜증날때. 서로 보듬어주고 .감싸줄수 있는 능력..마음의 확인이. 앞으로 그들의 삶에 동반자로써 큰 힘이 되어주리란. 사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 많이 알려진 안나푸르나 트레킹도. 매우 힘든 모양이다. 5000미터 베이스 캠프에 가보는게 꿈이었는데, 3000미터 이상으론 고소증의 위험이 있으니..사랑하는 사람이. 괜히 나따라 고생하는 모습은 더 가슴아플거 같다. 이 책보고. 아이러니 하게 마음이 바뀌었는데, 그냥. 내가 너무 외롭게 여행했던. 사랑하는 사람과 꼭 다시 와야지 하고 다짐했던. 스페인풍의 펜시한 도시 산타페 같은데 가야겠단..소심한 생각이 든다..

 책은 참 담백하고. 좋다. 이런 귀농 부부의 효시(대중매체로써)라고 할 수 있는 '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의 그 부부가 생각난다. 부인 이름이 장씨 였는데. 참 인상이 인상깊었는데.. 다들 계속 행복하시기를..

 여담이지만. 작년에 등산 모임에 광고회사 다니는 선배가..회사 인턴을 데리고 나왔다. 광고홍보학과를 갓나와, 마케팅 전문가를 꿈꾸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정도 높은 곳에서 술과 음식으로 회포를 풀다가, 자기는 시골에서 소박하게 자기좋아하는 일 하며 사는게 꿈이라고 했었다. 광고회사 인턴과 그 얘기가 너무 매치가 안 되어..더 이상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런게 막연한 동경이나 유행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 김규항 B급좌파.'프로'에서 인용.>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두번째 이야기로 처음 박경철 님의 책을 접하고. 감명을 받아. 곧이어. 나머지 (의사로써의 이야기인) 두권을 읽어보았다. 먼저 읽었던 두번째 이야기 편에서 어느 정도 감정의 복받침이 올라왔었는데, 이 두 권을 마저 읽으면서. (8월 어느 주말의 폭염을 피해 동네 도서관에서) 감정이 터졌다. 눈물이 눈에 고여, 뺨에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꾸 고개를 쳐들고..눈을 깜박이며..다독였다. ( 다행히도, 에어컨이 빵빵해 잘 마른다.) 이런 독서 체험..예전엔 언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핏 기억나는건. 초딩때 본 김윤희의 소설 '잃어버린 너' 또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죽은 시인의 사회' 정도..성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감동을 받는 것은. 삶과 죽음사이의 진솔한 삶의 경험이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필체로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조금 시간이 지났기도 하고. 책에 소개된 이야기들 한편한편이 모두 다 감동적이어서..글에 대한 자세한 상념이 떠오르지 않지만. 책을 보는 내내, 달리기를 가슴터져라 뛰고 싶은 욕구가 수시로 솟구쳤다. 내 장기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게 너무 감사했고, 시험해 보고 싶었다.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내달리는 그 느낌, 심장이 호홉가쁜 폐를 울리는 그 느낌이 너무나 환기되었다. 외과 수술에 대한 자세한 묘사들이 살 떨리게 하지만, 마음만은 안쓰러움이 가득하다. 솔직히 당장 내가 그런 상황이 아니어서 행복한 것도 있지만, 인간은 희노애락의 감정속에서 모두다 죽는다.(고통,병사) 라는 사실이 가슴아프게 한다. 나와 우리 부모님..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조차. 언젠가는 병이 들어 떠난다는 미래의 사실이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서...오늘 하루 하루..건강하고, 성실하게 사는 단순한 삶이 너무 축복이다. 라는 진리를 얻게 된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 보단. 현재의 가슴 뛰는 현실에 집중하자..타인의 삶에 따듯한 동정을 가지고..
 타인의 고통은 내가 짊어져야할 고통을 그들이 대신 감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들)은 몸과 마음이 퍽퍽해질때, 잠시 꺼내 읽어보면. 자신의 현존재를 각성하는 계기를 불러올수 있다. 서가에 비치해 놓고. 남녀노소. 언제라도. 타인의 삶과. 한 의사의 뜨거운 가슴을 느껴보자.
  

 너무 착한 독후감을 쓴건지 모르겠다.사실. 현실속에서 이런 마음을 가진 의사를 보기란 참 어려울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봐도 그렇고. 누구든. 실제 의료 현실에선, 하나의 병든 약자일 뿐이니까..
 의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의사친구들을 둔 친구의 말들이나, 누나가 병원 행정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작태나..실상을 여지 없이 들어왔는데, 정말 정상(인간의 품위)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왔다.   최근에는 의사와 결혼하는 주변 여자들의 노예정신을 목도하면서..어처구니 없었다. 인간의 상식 이란게 의사란 직업과 연관된 이야기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현실을 자주 보면서 씁쓸했었다. 이 전 독후감에서도 의사에 대한 솔직한 경험과 .감정, 주변의 이야기를 썻다가 다 지웠었다. 이 책의 저자. 의사 박경철 님 같은 진짜 의사에게는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출판사 측에서 정한 부제인 모양인데? 매우 매력적이다. 당장 읽어보고 싶게끔 유혹하는 문장이다.

 발터 벤야민의 책은 불행하게도? 정확히 말하자면 게을러서 지금에서야, 첫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이 문장을 쓰면서, 내 손은 떨고 있다. 해야할. 공부 (텍스트)를 그동안 방기한 죄, 

 내가 찾은, 찾으려 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리는 책이 발터 벤야민과..롤랑 바르트 였다.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과 바르트의 '밝은방' 은 너무 빈번히 인용되고 언급되어서 읽어보지 않아도. 핵심은 파악한? 한마디로 식상해져, 읽으려는 의지가 상쇄된 것이었다.

 변명일까? 아님 벤야민과 바르트 책과의 시절인연이 지금인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믿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 무식했었고, 표면성에 머무는 감각쟁이 였다. 운명일까? 나는 번지르한 가면을 깨고. 맨얼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우주공간속의 작은 위성이 목표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나비모양으로 유영해 목표에 접근하듯. 이제서야 벤야민과 바르트와 접선했다. 두렵고도. 흥분되는 일이다.

 제목이 '일방통행로' 인 만큼 이 책은 저자의 몽타지 적 글쓰기. 산문. 아이디어. 단상..같은것이 담겨있다. 책으로써의 완결성 이 뚜렸하기 보다는. 벤야민을 접근하는데 있어. 머리 풀기 와도 같은 책이다. 요리로 치면. 전채(에피타이저)요리.. 어찌보면 현대의 블로그적 글쓰기와도 닮아 있으나, 이 저자는 20세기 사상가중. 가장 빼어난 산문가 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사람의 일생은 불운했는데, 50이 채 되기도 전에 비극적 자살로 삶을 마무리 했다. 독일계 유태인으로써 나찌를 피해 국경을 벗어나려다. 지레 겁먹고? 좌절해서 성급한 죽음에 이르게 됐다. 들어보니 굳이 죽을 필요 없이 무사 통과 됐을 거라는.  지식인 특유의 통찰. 예견하는 능력(회의로써) 이 자신을 잡아먹었던 것이다. 이 사람의 저작물들은 나중에, 한 1970년대에 이르러.. 친구..바타유? 였나..유품에서 원고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발간이 이뤄졌다, 그가 죽기전 까지 매달렸던 대작,, 아케이드 프로젝트 도. 미완성 인 채로..출간되었다.

 현대성을 사유하는데 있어 그의 사상. 생각은 시발점을 이룬다. 그의 방대한 사유와, 연구의 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목도한 파리의 모습은 환등상(판타스마고리아)으로써,현재의 문명도시와도 궤를 이룬다.
 그 동안 유행처럼 죄다 벤야민~벤야민~ 하는게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누구나 하는, 누구나 가는 길에 반골적인 성향을 가진 내게는..
 이제서야 차분히 들여다 봐야겠다..변명인가? ㅎ 

 책 시작의 짧은 문구는  역시 사랑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는 그런 글귀..

 이 거리 이름은
아샤라시스 가
이 길을 저자 안에서
엔지니어로서
개척한 사람의 이름을 기리며 

_  아샤라시스는 벤야민이 사랑했던 여인인데, 이 여인이 공산주의에 빠져있어. 벤야민 또한 공산주의로 향하게 됐다고 한다. 역시 사랑의 힘이란...

 회전 예배기 p.93.

오직 마음속에 그려진 이미지만이 의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에 반해 단순한 말은 기껏해야 의지에 불을 지필 수 는 있지만 그 후에는 연기만 피우며 탄내만 요란하게 낼 뿐이다. 이미지를 정확하게 상상하지 못한다면 건전한 의지도 있을 수 없다. 신경 자극 없이는 상상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호홉이 신경 자극의 최고로 섬세한 제어 장치가 되어야 한다. 주문 소리는 이러한 호홉법의 하나의 기준이 된다. 성스러운 음절에 맞추어 호홉하며 명상하는 요가의 수행법은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요가의 전능함도.

 계단 주의! p.56.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맞추는 직물적 단계.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 지나가도록 하지 말 것. 메모장에 노트를 할 때는 관청들이 외국인 등록부를 기록할 때처럼 엄격하게 할 것.
 너의  펜이 떠오르는 착상에 대해 까다롭게 굴도록 할 것. 그러면 펜은 자석과 같은 힘으로 그것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는 데 있어 신중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그것은 한껏 펼쳐진 채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말(이야기)은 생각을 정복하지만 문자(글쓰기)는 생각을 지배한다. p.66.

 마담 아리안느, 좌측 두번째 안뜰 p.162.

 여자 점쟁이에게 미래에 대해 묻는 사람은 다가올 사건들에 대해 내면에서 예감하고 있는 것, 그러한 여자들에게서 듣게 될 것보다 천 배나 더 정확하게 예감하고 있는 것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포기해버리게 된다. 그가 여자 점쟁이에게 가는 것은 호기심보다는 태만에 이끌려서이며, 그러한 사람이 자기 운명이 밝혀지는 것을 지켜볼 때 보여주는 순종적인 둔감함보다 더 용감한 자가 미래에 손을 댈 때의 과감하고도 민첩한 손놀림과 닮지 않은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임기응변은 미래의 정수 자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 저 먼 미래를 예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전조,예감,신호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신체 조직을 물결들의 파동처럼 통과해 간다. 그것들을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이용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중략 ~

 ~ 매일 아침 우리 침대 위에 깨끗이 빨아놓은 셔츠처럼 하루가 놓여 있다. 이 비할 수 없이 섬세하고 촘촘한 직물, 이 순수한 예언의 직물은 우리 몸에 딱 맞는다. 이어질 24시간 동안의 운은 잠에서 깰 때 우리가 그것을 손에 쥘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머리가 무거울때 가볍게 읽으려고 빌려놨다 계속, 다른 책에 밀려 못 읽고 있었다. 한 사람의 수필이기에 꼭 읽어야겠단 의지 보다는, 타인의 삶을 잠시 엿보는 그런 가벼움 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박경철 님은 이제는 전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해 지셨는데. 내가 이분의 강의를 접하게 된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2008년 아주대 에서의 강연이었는데. 매우 유익하고. 감동적인. 정말. 100분동안의 완벽한 강연이라고 생각했다. 2번을 보고 음미하며, 이 분을 더 알고 싶어졌다. 유명인사 래도 그 사람의 말과 글속에, 특히 얼굴에 인품이 다 드러나는데. 무릅팍 도사에 나온 모습만 봐도. 이 분은 참. 진실하구나 라고 느껴졌다.

 책은 예상외로..내 마음을 급격히 적셨다. 짜투리 시간이나 무료할때. 짬짬이 읽으려고 했는데. 한 번 읽자 마자,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 책에 몰두해서 빨리 읽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 문단을 읽어내려갈때마다, 좀 먼 곳을 응시하다. 또 읽고.. 잠시 또 마음의 쓰림을 음미하다..그런..독서 체험을 선사했다. 왜냐면.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농축된 삶의 파편들이 꼭꼭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한편의 감동이 아니라, 진짜 삶의 아픔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그것도 20편 이상의 다양한 감정이 몸을 휘감았다. 

  저자가 겪은 인생속에 (외과의사로써) 마주치는 타인의 삶과 죽음. 동료들의 삶과 운명들이 정말 찐하게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 너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궤적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삶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프게 만들며. 내 삶을 소중히 들여다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또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과..애정이 내 삶에 스며든다. 우리는 각각의 자아 이지만. 이 현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운명 공동체 이기도 한 타인에게서 삶의 강한 긍정을 엿볼수 있다. 책을 통해 또다른 삶의 경험을 해 보고. 자신의 삶에 감사하고, 긍정과 의지로의 발걸음에 내딛게 되는, 그런 값진 책이었다. 

 
  소설을 두루두루 많이 읽진 못했다. 친구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내가 그동안 소설. 고전류의 책에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쳣다. 친구는 20대 초반에 책을 좋아하는 여친을 만났는데, 만나면 이야기 할게 없어서, 한마디로 여친과 대화가 안 통해서 그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전에는 마냥 축구만 하는 소년 이었다고.. 여친을 통해서 독서의 문을 열고 들어온 셈이니, 참으로 긍정적인 이성관계 였다 라고 생각된다.

 그는 고전소설류, 역사서 등을 좋아하는데, 내가 별로 접해보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에 항상. 동경의대상 이었다. 당장 생각나는 책들만 해도,(내가 곧 읽고 싶어하는) 마르케스-백년동안의 고독.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들.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 외.. 밀란 쿤데라. 보르헤스. 발자크, 조정래의 대하소설 등등..

 책을 좋아한 소년 이었지만. 그리 영혼을 살찌우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고전류의 소설이래 봤자. '폭풍의 언덕'과 '채털리 부인의 사랑' 정도.. 당연히 청소년기에 '채털리~'는 성적 호기심에서 였고. 생각보다 시시했음. ( 영화 '더 리더'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불쾌해하던 장면이 떠오르는데, 지금 다시 보면 어떤 감상인지 궁금해 졌다.) '폭풍의 언덕'은 설명하지 못할.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리는 느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책을 읽음에도. 책과의 인연의 때가 있는 것 같다. 누구는 10대 때 도스토옙스키 의 작품을 읽으면 자칫 삶이 허망해질수 있다고.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책과의 만남도 시절인연이 존재 한다고 믿는다.. 자신의 상황이나 근기에 맞게 작품이 다가온다. 내가 보는 세계관에 따라, 내가 밡아 가는 길에 뿌려진 꽃잎처럼. 책과의 인연은 존재한다..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읽은건 단편집 '카스테라'. 이 것으로 한 번에 뻑 갔다. 문학이라는 거대한 고담준론에 가하는 엿먹임 같은 거라 할까..그의 소설은 독특했고, 은유와 상징은 수시로 인식의 확장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문장 읽기가 재미가 있었다. 소설이라는 형식의 고정 관념을 해체하는 다양한 상상력에 감탄했다. 소설이라는 예술작품의 묵직함, 진중함을. 우리 일상속의 키치적 요소로 끌어내려 비틀고 새롭게 보게 한다. 그러나 우리 삶의 현실에 동떨어지지 않은,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2004년 대상인가? 김훈의 <화장>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대단한 작품이어서. 나머지 우수상 작품들은 시시해서 읽지도 않게 된, 이 2010년 작품집도. 그런점이 눈에 띈다. 초반에 대상 작품인 박민규의 아침의 문과..작가 추천작인 딜도가~를 읽고 나면..나머지 작품들은 읽을 의지를 잃고 만다. 

 이 두 단편 소설에 대해 딱히 내가 평할수 없다. 역시 박민규다.란 말이 절로 나오는..그런 심정이고. 대상 작품인 아침의 문 의 경우는 책 뒤에 문학평론가가 쓴 글이..너무 분석을 잘 해 놓았다. 책의 후반부에 작가의 수상소감과..문학적 자서전 이란 글이 인상 깊었다. 

 박민규가 말하는 좋은글.
1> 노인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
2> 소년의 마음으로 쓴 노인의 글
 공부는 불쌍한 인간이 스스로 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공양 이다.

그는 글을 쓸때. 휠체어 에 앉아서 쓴다고 한다. 역시 독특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왈..
" 이 의자에는 인간을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간이라는 장애를, 인간은 언제나 장애로 가득 찬 존재임을 _ 휠체어는 말없이 자신의 전부를 통해 나에게 전달해 준다. 압니다. 알고 있습니다. 늘 고개를 끄덕이는 기분이 되어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이 한 줄의 문장이 얼마나 하물며 쓰여지는 것인지를

나의 재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를...이 의자는 늘 실질적으로 나에게 충고하고 일러준다. 눈과 귀보다도..머리보다도..빨리 몸은 기억하고 습득한다. 나는 머리보다 몸을 믿는 인간이고, 아무튼 이 습관을 통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절약하고 있다. 마음가짐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관건은 시간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독일인이 쓴 록음악에 대한 사회학적인 고찰인데.. 대단히 재미없다. 유머도 애정도 없는 그저 우중충한 독일 하늘 아래의 저자 모습이 연상된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이 보인다던데..딱 그러하다. 고지식한. 감정이 메마른, 록음악의 정열과. 매력은 온데 간데 없고, 논문 같이 딱딱히 분석, 의미부여 할 뿐이다. 

 크림 파스타를 먹을때. 반 이상 먹으면 아주 강렬히 김치가 땡기듯히, 이 책을 보면서 아주 간절하게 빌 브라이슨 이 생각난다. 빌 브라이슨 이 록음악 이란 주제로 책을 내면 정말 재밌을텐데..

 번역이 엉터리 인것 같진 않지만. 옮긴이의 말 도 없고. 옮긴이 자체가 칸트 철학 공부한거 같은데. 아무 애정 없이. 그냥 돈벌이로 번역한 것 같은 느낌.. 일단 이 책은 1987 년에 나온 책인데. 이제 번역되어서 나온. 좀 퀘퀘묵은 사회학적 책이다. 가격은 보통책의 두배..

 1 장 롤 오버 베토벤 : 예술의 새로운 경험.
 4 장 마이 제너레이션 : 록음악과 하위문화.
 7 장 아나키 인 더 유케이 : 펑크의 반란. 은 비교적 나중에 참조 가능함..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을 생각하며. 서핑 USA 를 줄창 듣는게 나음..
책은 이렇게 쓰면 안된다는 귀감..학술적인 형식과..근본적 커뮤니케이션 에 대한 생각들..
 알다시피, 글쓰기 관련 책을 읽는 다고  바로 글을 잘 쓰게 되진 않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글쓰기 관련 책은, 글이 나쁜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한 문장 하시는 분들이 이런 책을 내니, 글쓰기 관련 책은 어느 정도는 공신력이 있는 셈이다. 최소한 문장에 관해선..

 이 책의 저자는 매우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가 이다. 내놓는 소설들 마다 히트치고 영화화 되는, 매우 유명한 작가. 그의 소설은 한 번도 읽어 본적이 없지만,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한 영화는 몇 개 보았다. 제일 대표작 영화 라고 할 수 있는게.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 샤이닝 ' 과 ' 돌로레스 클레이본 ' ' 스탠드 바이 미 ' 정도가 내가 본 스티븐 킹 원작 소설의 영화 였다. 이것 말고도 영화화된 작품이 많은데 대단한 이야기 꾼이 아닐 수 없다. 소년기의 리버 피닉스를 볼 수 있었던 ' 스탠드 바이 미 ' 의 경우 핫도그 많이 먹기 대회, 회상 이야기 에서 토하는 장면은 왜이리 웃긴지..아직도..영화속 장면과 깔깔대며 웃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책은 정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보여준다. 정말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이 연실 절로 나온다. 글은 솔직하고. 문체는 경쾌하며. 술술 잘 읽힌다. 과하지 않은 담백한, 유머가 곁들인 비유는 틈틈히 읽는 재미를 배가 시킨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글쓰기 인생을 농축해 놓은 감동과 교훈이 있다. 좀 미국적인. 위트와 함께..포장하지 않은 작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첫 부분은 이력서 란 장으로 자신의 삶이 자서전 처럼 쓰여있는데. 이 부분은 좀 빨리 넘겼다. 어럴 때 부터 만화와 이야기들을 탐닉했고. 꾸준히 습작을 거쳐. 투고하고. 거절당하고. 투고하고..그런 반복을 거쳐. 점차 성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열정이 있었고. 꾸준한 노력과. 헌신등. 성공하는 사람의 고정 레파토리는 벗어나지 않는다. 또 성공하는 작가에게 꼭 없어서는 안될 중요점이.. 완벽히 내조하는 친구와 같은 부인의 존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도 그랬었고..대다수의 성공한 작가들은 역경과 고난을 같이 헤쳐나가는 현명한 부인이 있었던것 같다. 아닌 경우가 더 많을래나..?

 가난과 고난의 시기를 거쳐, 1974년 장편 '캐리'로 화려하게(인생역전) 등단한다. 그 후 내놓는 작품마다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성공과 함께..알콜중독..마약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런 자신의 경험과 함께. 샤이닝. 과 미저리 등에서 작가의 삶이 투영된 정신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중독 상태에서도. 역시 투철한 작가여서 인지. 글쓰기는 멈추지 않는다. 코카인 때문에 흐르는 코피를 솜으로 막고 맥박이 130번이나 뛰는 상태에서도 자정까지 일할 때가 많았다. p. 118

 하룻밤에 맥주 한 박스를 마시고 '쿠조'란 소설을 썻는데. 어떻게 썻는지 기억도 안 난단다. 그냥 막 쓰면 작품이 되는 글쓰기의 경지인가..자랑투로 한 말은 아니지만..많이 부럽다. 이 장의 마지막에 그는 " 우선 이것부터 해결하자. 지금 여러분의 책상을 한구석에 붙여놓고, 글을 쓰려고 그 자리에 앉을 때마다 책상을 방 한복판에 놓지 않은 이유를 상기하도록 하자.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p. 124

 그리고 이어지는 본격적인 글쓰기에 관한 내용인 연장통과 창작론의 챕터가 이어진다.
낱말의 사용. 어휘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다. 평이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쓰라고..낱말이란 의미를 담는 그릇일 뿐이다.  간결한 문체를 쓰라고 강조한다. 수통태 문장을 피하고. 부사를 최대한 쓰지 말라고 한다. 주어 동사로 충분하다고. 한마디로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써야 한다고..그리고 문단의 사용은 글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단계라고 말한다.

 창작론 " 나는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상상하고, 낑낑거리며 힘겨운 노동에 몸을 바칠때. 뮤즈는 존재한다. 자신이 직접 땅으로 내려가. 뮤즈의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

" 독서가 정말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독서를 통하여 창작의 과정에 친숙해지고 또한 그 과정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작가의 나라에 입국하는 각종 서류와 증명서를 갖추는 셈이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언젠가는 자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는 어떤 지점에 (혹은 마음가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남들이 써먹은 것은 무엇이고 아직 쓰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진부한 것은 무엇이고 새로운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지면에서 죽어가는 (혹은 죽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하여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여러분이 펜이나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쓸데없이 바보짓을 할 가능성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p.183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플롯 보다는 직관. 상황에 빠트림..이야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과정..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눈여겨보는 일, 그리고 본 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일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 그러나 일단 기본적인 스토리를 옮겨적은 뒤에는 그 스토리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수정 작업을 하면서 여러분 자신의 결론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각각의 이야기를 여러분만의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비전을 작품 속에서 (그리고 결국 여러분의 독자들에게서) 빼앗는 일이다. " p.257

 인생론 " 궁극적으로 글쓰기란 작품을 읽는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아울러 작가 자신의 삶도 풍요롭게 해준다.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도중에 작가는 아주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러번의 큰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치면서 그는 부인의 사랑. 결혼 생활의 혜택 (우리가 다음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여 머뭇거릴때 거뜬히 판가름을 내준다는 사실) 과 글쓰기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말해준다. 글쓰기는 마술과 같다고..

 이 책은 딱딱해지기 쉬운 글쓰기 이론서와는 다르게 작가의 삶 속에서 건져낸 솔직한 이야기 속에, 글쓰기의 의미와 방법, 목적이 이루어진다.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강의 까지 청강하는 그런 기분이다. 글이 쉽고 매끈하다. 정말 잘 쓰는 작가다. 이 사람의 원작 소설은 영어 공부 할겸 원서로 읽어봐야 겠다. 이 사람의 문장론을 봤을땐. 영어를 익히는데 아주 탁월할 것 같다.
 글쓰기 관련 책은 글쓰기에만 국한된게 아니라. 예술. 더 나아가 인생사용설명서에 가까운 느낌이다. 좋은 글쓰기는 유혹이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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