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동네 도서관에 나들이를 나갔다. 간혹 아무런 계획 없이 그저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책을 여러권 뽑아들고 읽을 만한 책을 가려 낸다. 어떤 책은 10분 짜리..어떤 책은 30분 짜리..쓸데 없는 책들의 인연은 잠시 뿐이다. 그 중에 두 권이 오른쪽에 남았다. 후지와라 신야의 '황천의 개' 와 바로 이 책. 

 처음 제목만 보고선..좀 뻔한 책이라 여겼다. 그러나 책 날개에 ( 보통 저사 소개 하는 부분 ) 요약된 저자의 삶은 흥미로움 그 자체 였다. 90년대 중반에 한국의 교도소에서 수감했던, 20대 미국 청년의 이야기였다. 일반 교도소 수기도 흥미로울텐데, 미국인 백인 청년의 한국 교도소 수기 라니.. 아마 그동안 미국인 수감자는 많아도..이런 책을 낸 사람은 처음 이지 않을까..

 이 책의 원제는 Brother One Cell 1방 형제. 2006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 되었고. 미국에선 2007년. 한국어는 2008년에 출간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3년 한국의 영어 강사로 입국한 그는 필리핀에서 해시시를 밀수한 혐의로 체포되어 한국에서 7개월의 영어 강사 기간과..3년 6개월의 교도소 생활을 끝으로 추방된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타국의 감옥에서 그가 겪은 고난을 통한 성장을 이야기 한다.
 1993년 ~ 1997년 사이,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과. 한국인의 습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저자의 균형잡힌 시각에 있다. 한국에 대한 무지나 편견. 몰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열린 마음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이해하고..안 좋았던 경험을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데 발판이 되었다는데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한국에 대해..그는 가감없이 이야기 한다. 

 20대의 초중반을 한국의 감옥에서 지낸 저자는 그 젊은 혈기 만큼. 다채로운 감정을 회고한다. 시간이 지나 이 책을 쓸때는 그 때의 경험이..자신의 인생에서 큰 기둥이 된 사실을 인정한다. 그 시간을 현재 담담한 감정의 상태로 글을 써.. 글을 읽는 독자에게 외국인의 감정적 치우침이 아니라..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작은 깨달음에 공감을 산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 이기도 한 그의 문체는..대단히 흡인력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것도. 감옥에서 얻게된 그야말로 갱생 의 효과이지 않을까. 문체나 시각이..격앙되었거나. 치우쳤다면..나는 이 책을 이렇게 제대로 끝까지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닌..그가 회고하는 솔직함과. 초월된 삶의 나아감을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스콘J버거슨 같은 작자의 배설에 가까운. 격앙된 반응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 사회 이면의 깊숙한 바닥 까지 내려갔다온 그의 발언은 설득력이 있다. 처음에 한국에 올 때는 타 문화에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그냥 뻔한 미국인 이었을지 몰라도. 유교적 공동체 기반의, 더더욱 특수한 교도소 사회에서 변화되어가는, 한마디로 문화의 충돌 속에서 겪는 자아의 성장이다. 이 책의 주된 느낌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결국 삶이란..남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 테니..3년 6월의 감옥 체험은 자신과..타인에 대해서 극한으로 부딪히는 시간 이었을 것이다. 
 
 내가 예민한 감수성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던 그 시절의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같은 땅 위 그가 겪었던 회한를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을 생각해 본다. 음..얼마나 걸어왔나..벗어나 왔나..내겐 극한 체험은 없었다. 어른이 되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노력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참 아름다운 책이다. 사진책에 관한 사진책인데 내 기준엔 책의 모든 면이 완벽하다. 디자인, 편집.과 함께, 완전히 펼칠수 있도록 한 특수 제본.. 질 좋은 재활용 종이 사용.. 등등 소소한 면까지 큰 만족을 준 책 이었다. 당연히 글은 말 할 것도 없다. 간만에..글을 읽고 있기만 해도..심신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우리말 지킴이 로써 우리가 평소에 잘 안 쓰는 단어들을 쓴다. 저자가 제 깜냥껏 새로 지어서 쓰는 낱말인데, 그 자체가 신선하고. 정겹다. 단어의 사용만으로도 이 사람의 마음씀의 따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에 관한 용어 뿐만 아니라.. 부인을 옆지기 라고 하는 것이나. 학교옷과 헤엄옷을 입힌 모습으로~ 등등.. 수많은 신선한 낱말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 처음엔..익숙치 않으나..이내. 책 속의 글과 어우러져서 저자의 마음씨에 감동한다. 

 

“아는 만큼 본다지만 사는 만큼 본다고 해야 맞다고 느낍니다.
내가 살려고 하는 만큼 느끼며 보는구나 싶습니다.
내가 살아가려는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내가 꿈꾸고 바라는 삶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진감이 나오고 사진작품이 나온다고 느낍니다.” 
                 _ 책 속에서  뒷장.


 저자는 고향인 인천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운영한다. 자전거를 열심이 타고. 심신이 아픈 부인과. 어린 딸과 함께..삶을 분주히 살아가는, 치열하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삶을 이야기 한다. 나이가 나 보다 그리 높지 않은데, 참..어른이구나..하는 존경스런 마음이 생긴다.
 잡지에 연재 했던. 글을 모은 것인데, 저자 본인의 삶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고.. 헌책방에 관한 이야기와 거기서 구한. 사진책을 소개하는 글들이다.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삶과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 본인도 사잔작가 이면서..책에 대한 사랑과..헌책방에 대한 애정으로 사진으로 기록하고.. 또 골목길을 기록하는 작업도 한다. 사진의 제일 큰 본질인. 기록.. 사라짐에 대한. 정지 작업이..이 저자의 사진 작업의 핵심이다.

 한 사람이 ' 한 사람이 되는 흐름' 을 잘 여미거나 붙잡을 수 있다면, 한 사람이 '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 을 놓칠 일이 없습니다. 허튼 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얄궃은 데에 흘리지 않습니다. 속 좁거나 비틀린 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 한 사람으로 서 있을 자리' 를 놓친다면, 한 사람이 ' 한 사람으로 자라나는 바탕' 을 내버린다면 우리 삶터는 엉망진창이나 뒤죽박죽이 됩니다. 갖가기 불평등과 푸대접과 따돌림이 판치게 됩니다. 온갖 다툼질과 시샘과 꿍꿍이가 넘치고 맙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 나 또한 이 땅에 고운 빛줄기 하나 부여잡고 태어난 아름다운 목숨' 임을 깨달을 떄와 못할 때에는 크게 다릅니다. 많이 벌어집니다. 기나긴 나란한 금을 달립니다. 나부터 사랑스러운 목숨임을 느낄 때에 비로소 나다운 사진이란 어디에 있고, 나다운 사진을 펼치는 자리는 어디이며, 나다운 사진을 누구하고 나누면 좋을까를 시나브로 곰삭입니다. _ 69

 바라보는 목소리를 넘어 살아내는 이야기로 글과 사진을 아로새길 수 있기를 바라는 일은 아직 어려울 수 있습니다. 남 이야기를 하기 앞서 저부터 스스로 옳고 알차게 해내지 못하면서 바라기만 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을 살아내자고, 이 사람을 부둥켜안자고 하는 땀방울이란 '펜굴림'으로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진기 쥠'으로도 이루지 못합니다. 펜을 붙잡은 손을 넘어서는, 아니 펜을 붙잡는 손을 아우르는 발걸음과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진기를 쥔 손을 넘어서는, 아니 사진기를 쥔 손을 어우르는 손품과 몸놀림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담는 손에서 지식을 다루는 손이 되었다면, 지식을 녹여내어 지식을 살아내는 몸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_ 292

 멋진 책이다. 마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책을 읽는 듯한 기분.. 사진과 책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딱 좋을 책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책은 기분 좋게 한다. 더더욱 글들이 마음을 정화시키고, 사진책들에 호기심을 더해주니..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사진책을 많이 안 사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내 삶의 편함에 가슴이 찔리기도 한다. 나는 도서관의 사진책을 열심이 보고 있다. 소유는 정체다 란 생각 아래..ㅎ
 


 후지와라 신야 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봤다. 낯설지가 않아. 기억을 더듬어 보니..언젠가 '메멘토 모리' 라는 얇은 책을 본 적이 있다. 사진과 아주 짧은 글 귀로 이루어진 책 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어느 노처녀 분의 블로그에서 이 책의 매혹에 극찬했다. 흥미가 가지 않을 수가 없다..나도 짧았지만. 아메리카 기행을 했었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  다른 이는 아메리카에 대한 어떤 인상을 받았을지..그 들여다 봄의 깊이를 만끽하고 싶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 라는 책은. 번역된 책이 난해해서..읽기 쉽지 않았다면..일본 작가의 일본어 글의 번역은 기대해도 좋을 듯 했다.
 책 날개의 저자의 약력을 보니. 미대를 중퇴하고..아시아 각지를 여행하고..책을 저술하고. 그 뒤 많은 책을 냈다. 사진가 이면서.작가 인 듯 하다. 

 작가는 1980년대 7개월간 혼자서 모토홈( 캠핑카 ) 를 몰고 주로 로스앤젤레스 부터 뉴욕 까지의 여정 속에 자신이 본 미국의 풍경과 속내를 펼쳐보인다. 나는 10일 남짓 뉴욕에서 무작정 서부로 내달려..라스베가스 까지만 찍고 다시 돌아왔는데..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나의 여행과 비교 안 할 수 없었다. 이동하는 집인 캠핑카 라니..나의 여행을 기억해 보니..눈물난다.

 나는 이런 기행문..여행기는 아주 빨리 읽는다. 타인의 여행 경험과 시선이 너무 내게 침식하려 드는걸 경계하는 것 같다. 기대했던 것 만큼의 문장은 아니었지만..시시껄렁한 잡문의 여행기와는 격이 다르다. 단락과 행간에 내가 음미할 여운이 있다. 아마도 좋은 책은. 일방통행로 가 아닐 것이다. 독자의 사색을 이끌어 내는 책..그런 기행문이..정말 좋은 책 일 것이다.
 빨리 읽어서. 그런 여유가 좀 없었지만. 저자의 여행은 배고픈 고행의 여행의 아니라.. 고독의 여행 속에서..미국의 허상을 들추어 내어. 직시하는 힘이 있다. 1950년대 스위스 태생의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 가 사진으로 했던 것처럼.. 단순한 여행기 라기 보다. 현대 문명에 대한 고찰이다. 현재 우리의 삶의 실체를 30년전 아메리카 라는 본토에서 체험한다. 미국화..미국의 본질을 쉽게 술술 흘러가는 여행문 속에..햄버거 고기 처럼 들어가 있다. 

 이 작가가 느꼇을 고독과 풍경이.. 내 눈에도 선하게 연상되어..더더욱 빨리 읽을 수 있었나..나도 기억을 되살려.. 이런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노처녀 누나는..이 책을 애인발견 이라고 하던데..

 좋은책은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지금 현재를 각성하게 한다. 어떤 열정이 필요할 때, 자기만의 길을 꼿꼿이 걸어간 예술가의 삶의 이야기는 꽤 많은 자극을 준다. 내 안의 열정을 일깨우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확신에 찬..신념과. 예술관..삶에 대한 태도는 고만고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한다디로 삶을 그럭저럭 견디어 내는 우리들에게..자신의 삶을 저벅저벅 끊임없이, 진짜 현실에 발을 내딛고 살아가라고 충고한다.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확신과 신념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본인의 톡특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냉철한 통찰과 비판은 일본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도 매우 타당하다. 특히, 소설가를 비롯한 한마디로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큰 지침이 된다.
 책의 처음. 한국의 독자에게 보내는 말에서도..처음 하는 말이. 무절제한 생활 태도에 대해, 염려하고. 엄격한 생활 태도를 격려한다. 나는 예전에 이미 그러한 것을 깨달았지만. 인간은. 감각과 쾌락에 나태해지기 쉬운 동물이므로..수시로..자신을 체크해야 한다. 이런 책을 읽고..저자의 따끔어린 호통에..심신을 다잡는다. 

 이 책의 저자는 23살에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소설가의 길로 인생 전환을 한다. 읽다 보면. 이 작가는 진짜 남자다..여성과..여성성을 극도로 지양한다. 남성적 강한 문체와. 확신이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직시하여 표현된다. 화려한 수식. 감성. 연약함은 철저히 배제된다. 고독하고. 숭고하다.
 그 후. 문학판의 그렇고 그런 클리쉐에 쉽쓸리지 않고..자신만의 작가의 길을 위해. 시골에서 오로지. 소설로써만 먹고 살아간다. 진정한 작가. 예술가의 길은 이런 것 이라고. 정답을 보여준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지만..내가 보긴엔 참 멋지다. 그의 소설이 많이 궁금하다. 그의 단호한 문장이. 나를 좀 더 굳건하게 한다. 많이 반성도 하면서. 적극 동조한다.

 첫번째 글이 '이미지의 세계' 라는 글인데. 사진(이미지)의 세계에 치중하는 내게 있어서 많은 귀감이 되는 글이었다.
( 이건 좀 다른 얘기 일 수 있지만, 몇일전에 교보문고에 가서 놀랐던게. 진열 전시된 책들의 표지에..또다른 홍보 문구가 덧대기로 끼워져 있었는데..책의 표지를 거의 다 가려버리는, 참 열받는 작태였다. 책의 얼굴인..시각적인 정보를..무참히 짓밞는 그 띠 에는..유명인사?들의 이 책의 추천인들이 이름이 나열된..참 역겨운 짓거리였다. 출판사들은..이제 책의 가치를 유명인? 들에 기생하게 하는 한 낫 초라한 장사치들로 밖에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쓰다보니. 내가 본 그 코너에서만 그런게 아닌가 하는. 소심한 의심이 든다. 그 날..전체를 돌아본게 아니어서.. 아무튼. 책들의 얼굴을 덕지 덕지 가리지 말자..누가누가 추천했다고..첵을 사는 병신같은 독자들이라고 하찮게 보지 말아라..)

 ' 한 시대나 국가가 붕괴할 때는 젊은이들부터 형편없어진다는 설이 있다. 고대 로마가 그랬고 청나라도 그랬다. 먼저 젊은이들이 거역을 모르게 된다. 무기력해지고, 호모나 정신적인 호모가 급증한다. 자기 주변에 있는 일이 아니면 흥미를 잃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닳고 닳은 어른들이 제멋대로 날뛰어 세상은 혼란해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 p142

 저 짧은 단락속에서 무서움이 느껴지지 않나. 요즘의 주말 저녁에 홍대앞 놀이터. 수노래방 앞을 가보라..누군가 그 이미지를 소돔과 고모라? 라고 했다. 나는 성경을 잘 모르지만..왠지..썩 어울리는 비교라고 생각했다. 홍대앞 문화는 양아치들과. 강남의 자본가들에 의해서 망쳤다.

 ' 새로운 문학을 생산한다는 것은 자신의 체질에 적합한 새로운 문체를 개발하여 체득하는 일이며, 새로운 문체는 곧 인간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란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오 년에 승부를 내리란 생각은 옳지 않았다. '

시간이란 모름지기 훔치는 것
 이미지 그 자체가 사상이며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절제된 문장으로 시각적인 소설을 지향한다. 
 자신의 마음을 질책하고 싶을 때는 육체를 질책하는 길이 최상이다.

 ' 현실을 바라보는 용기를 밑바탕 으로 하는 꿈이나 이상이라면 몰라도,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소도구로 문학이 존재한다면 나는 거부하고 싶었다. 자신을 단련하지 않고 감수성에 휘말린 채, 인간은 약한 존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이에 작가는 여장 남자가 되고 말 것이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 p189

 ' 그래도 나는 감히 몸을 쫙 펴고, 강인한 삶을 자처한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시도한다. 성격에 맞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다. 모양새가 나쁘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따위의 수많은 구실과 핑계로 사방을 가로막고 그 안에 틀어박힌대서야 사는 보람이 없지 않은가.
 인생의 최대의 감동은 자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컨대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예전에는 결코 할 수 없다며 포기했던 일을 지금은 할 수 있다니, 이만한 감동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과거의 내가 그랬으니 미래의 너도 그럴 것이라는 발상으로는 그런 감동을 절대로 자기화할 수 없다. 나는 미지의 존재이며, 앞으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빛을 발하고 충만해지는 것이며, 또한 영원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펼쳐나가는 강인함이 필요하다. 마음의 명령 따위에 일일이 따를 수가 없다.
' p208

 다음 이 부분에선..깜짝놀랐다. 여성분들은 분노 할 것이다.

' 나 역시 남자니까, 여자가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여자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제2의 어머니에게 매달리듯 여자에게 구속당하기 싫다. 정신까지 모두 바칠 정도의 상대는 아니다.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눌 만큼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만큼 골치아픈 생물에게 빠져 혼신을 다해 쫓아다니다 휘둘림을 당하고는 급기야 너덜너덜한 신세가 되는 남자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여자가 이러니저러니 잔소리가 많을 때에는 한 방 주먹이라도 날려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 필요 이상으로 여자에게 빠지는 남자는 대개 마더 콤플렉스의 소유자인 동시에 매저키스트다. 정신적으로는 호모나 다름없다.  ' p215

 여성부?에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지 않을까...대단한 마초다. 한방 주먹을 날려야 한다는 말에선..영화 '피와 뼈' 에서의 기타노 다케시가 연상됐다..

 ' 도대체가 현실성이 없는 꿈만 좇고 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무절제한 나날을 보내는 그의 입에서, 현실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이 튀어나오다니 가소롭다. 그가 성공한 유일한 일이란 마누라로 하여금 돈을 벌어오게 했다는 것 정도가 아닌가. 요컨대 이 사나이는 겁보에다 교활하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서도 유치한 허구와 유치한 미의식에 머리를 처박고, 아무런 진보도 없이 마구 미끄러져나간 것이다. 그는 도피 공간을 마련해 줄 책만 읽으면서 이윽고 전형적인 가짜 문화인이 되었다. 현실과의 싸움에서 도피한 까닭에, 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파악하지 못한다. 아니 허구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243

' 원고료를 제때 지불하지 않는 출판사가 있으면 쳐들어가 받아온다. 노후에 대해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열심히 분투하고 있는데,일단은 객사할 각오까지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 같은 안정된 노후에 대한 욕구가 예술가를 망쳐놓은 예는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만약 소설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우선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문학 또한 얼마만큼 개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결정난다. 불안이나 고독에서 슬픔과 분노가 태어난다. 그 벽을 돌파한 곳에 나 자신의 혼이 있다. 거기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까 불안과 고독이야 말로 창조하는 자들의 보물이다. ' 333

 소설은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것이다. 몸 전체를 깨끗하고 예민한 레이더로 만들어라. 그 때, 소설가는 이미지의 송수신기가 된다. 그것이 바로 영화를 능가하는 새로운 소설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어찌 소설에만 국한하랴.. 이 사람의 진짜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 자신의 삶에 철저한 소설가의 작픔은 어떤지..정말 궁금하다. 소설을 보고 말해야 하지만..이 산문만 보고도 이 사람은 진짜 예술가다..






 이 책을 다시 읽었다. 2007년 초에 나왔었고. 그 때 인상깊게 읽은 후로. 몇년만에 또 읽었어도 여전히 그 특유의 통렬함이 시원하다. 마치 일년 묵은 귀지를 파내는 쾌감 이랄까..들리는 것은 같아도 뭔가 공기의 흐름이  걸림없이 내 귓속을 흠치고 달아나는 느낌이다. 또다른 비유로는 좀 지저분하지만. 어릴적. 배꼽에 낀 때를 후벼파는 듯한 희열이 있다. 

 이 책에선 한국인의 신체 습속을 거침없이 파헤친다. 그 꼬랑내 나는 습속에 나는 왜 하필 배꼽때를 생각했을까..그 만큼 애매한 곳에 깊이 틀혀박혀진 고정된 신체인양 구는 배꼽때는 성숙된 몸과..위생 관념을 가질 수록..더 이상 기생하기 어려워진다. 그와 같이. 이러한 책을 읽고 우리가 평소에 못 느끼며 살았던..우리의 잘못된 습속을 낯설게 보기를 통하여. 사회 전반의 의식수준을 높여야 한다. 

 진중권 교수는 차이의 시선을 제시한다. 하지만. 어떤 주의, 주장을 관철하려 하지 않는다. 인덱스의 역활을 통해. 우리에게 새삼 느껴보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조금씩 습속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아마도 이 책이 나온 후에 진중권 교수의 수업을 들었었는데, 이 책의 문체와 거의 흡사했다. 군더더기 없는. 냉철한 깔끔함..좀 인정이 없어 보이긴 하나. 학문의 엄정함이나. 줏대 같은게 확실해서. 그때까지 들어본 강의중 가장 사족 없는 시원한 강의 였다. 그 때 이 책에 싸인이나 받아둘껄.. 다른 박사 아줌마들은 그러던데.. 그 땐 왠지. 그러기가 싫었다. 

 학자들의 강의를 듣다보면, 그 사람이 공부한 나라의 분위기(스타일)이 포착된다. 진중권 교수는 딱 독일 스타일인. 2차대전 독일의 육중한 천하무적 타이거 탱크 같기도 하고. 또 급강하 폭격기 수투카 같기도 하다. 감정의 소통보다는 잘 만들어진..아주 우수한..기술력(지식)이 거침없이 땅. 과 하늘을 누비며.. 내 머리에 당도한다. 
 반면 프랑스에서 박사를 딴 사진평론가..최봉림 교수나..최근에 박상우 선생 같은 경우는. 프랑스 전통의 유미적 엄정함이 서려있고, 지식의 내용이 엘레강스? 하다고 할까. 말투도 격정적이기 보다. 좀 느린듯한 쌀쌀맞음이 있다. 마치 제플린(비행선) 같다고 할까..

 내가 최고로 치는. 선생님은 역시나 코디 최 선생님의 스타일이다. 미국 스타일. 지식과..유머가 적당히 섞여.. 단지 지식을 뱉고 마는게 아니라..그 열정이..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보잉 747 점보 제트기 일등석에 탄 기분이다.(이 기분은 추측이 아니라..진짜 타봤기 때문에..ㅋ)  아무튼 앞으로 나의 강의는 위 세분의 강의를 벤치마킹 하여.. 나만의 스타일을 가꾸어 가는게 관건이다.

 사실..이 책을 읽으면서..나의 이 사족이 많은 .. 삼천포 스타일의 사유와 . 감성..들을 진중권 교수 처럼. 순도높은 참기름 같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자극했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 이 통찰력과. 그 깔끔한 표현은 독자에게 쾌감을 준다. 현재의 나 한테는 글을 이렇게 쓸 필요가 있다. 언문일치 에서 보다 더..진보된..치고 도려내고..문질러서..입의 표현과는 다른.. 좀 더 궁극의 텍스트를 완성해야 한다. 이 책 처럼..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진 교수도.. 책이나 구술이나..비슷했던거 같다. 책 같이 말하니..얼마나 군더더기 없는 말들인가.. 아마도 그 해 여름 방학때. 100분토론의 디워 파장이..대단했었다. 마치. 배꼽때를 마구 후벼파는 통렬함이..얼마나 큰 쾌감인가..ㅋ 
 박노자씨의 글 보다는 훨씬 좋고..홍세화님의 글과는 또다른..맛이 있는 이 책. 다시 볼 만 했다.


 이 사진집의 부제목은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 이다. 자신의 첫 딸이 태어나서 시집 가는 날까지의 사진이 담긴 책이다.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고. 윤미 라는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다. 사진을 찍은 아버지의 사랑은. 세월의 흔적 속에 영원히 뭍어 나고, 이 사진집을 감상하는 우리들에게. 무언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사진이 취미였던 토목공학 교수 였던 전몽각 씨는 자신의 가족을 사랑의 열정을 담아 꾸준히 기록 함으로써. 그 어느 프로 사진가 보다 더 사진의 본질에 도달했다.
 이 사진집이 처음 나온 것은, 책의 주인공이 결혼하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 간 직후 라고 한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얼마나 값진 선물인가.. 1990년. 당시 1000부 만을 찍었고. 20년 동안 이 사진집은  헌책방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희기 아이템이 되었다. 사진집의 감동은 끊임없는 입소문을 타. 결국. 작년에 재출간 되었다. (오른쪽 표지) 그리고 올해 초 한미 사진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나는 최근에 이 사진집을 처음 제대로 감상하면서.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타 가족의 내밀한 일상과. 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사진의 시선에 담긴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의 감동과 함께, 감상자 우리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며..부모의 사랑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사랑을 꿈꾸는 데 있다.
 사진은 생의 순간 순간을 기록한다. 이 개인의 역사가. 그 어느 예술 사진 보다 감동을 주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 자신의 삶과 사랑을 기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반 가족 사진 보다 더.. 더 적극적인 사진의 열정은..사춘기 딸의 미묘한 심리가 감지되고..딸의 데이트 현장을 따라가서도 찍은 아버지의 주책을 보여 주기도 한다.  
사진과 가족의 사랑에 대한 아버지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흔한 가족사진을 넘어서, 감상자에게까지 전해 지는 진한 감동이 있다. 

 이 책의 재출간과 함께. 마이 와이프 부분도 같이 실렸다. 저자가 암으로 투병중.  부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처음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할머니가 된 모습까지.. 그는 투병중에..그 동안의 필름등을 정리해서..인화까지 손수 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는 그 열정..그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던 사람 같다. 취미였던 사진을 통해서 영원한 사랑을 남겼다.

사진. http://blog.naver.com/hiphoprm?Redirect=Log&logNo=60117214199

저자 홈페이지. http://dannygregory.com/

집중은 자신감에서 오고
자신감은 연습에서
연습은 약속에서 온다.

 교보문고에서 아이 쇼핑하다. 눈에 들어온 책이었다. 그림 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을 아주 많이 자극하는 책이다. 아니 더 나아가..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데 강한 동기와. 용기를 불어 넣는 책이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의.. 그림책 버전 이랄까..근데..아티스트 웨이란 책도 읽다 말아서..음.. 이 책은. 그림과..글이..자유롭게 편집되 있어..부담없이..접근할 수 있다.
 펜과 종이만 있다면..언제 어디서든..음..

 무엇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랑하도록 하자. 성공하려면 뭘 해야 할까보다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걸 어떻게 성공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자. 세간에 떠도는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사람처럼 애처롭고 따분한 것도 없다. 그런 건 이미 '아메리칸 아이돌' 같은 데서 하고 있지 않나.? 자기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나 말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 말이다. 진정한 자신. 내면의 자신을  계속 표현하도록 노력하자.

 명심하자. 예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서로 나누고 교감하여 보는 사람이 새로운 감정과 통찰력에 다다르고 창조할 수 있도록 불을 붙이는 것이다. 기타를 배워서 골드 레코드 상을 받겠다는 것도 열성팬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다. 기타를 처음 집어든 사람이든 블루스를 기막히게 연주하는 사람이든 진짜 목표는 같다, 바로 진정한 자신이 되어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건 당신을 명예의 전당으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끌 것이며 인간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끼게 해 줄 것이다. p193

 " 당신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 위대한 꿈을 가지고 희망과 성취의 정신으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다." - 우드로 윌슨.

 창조력은 상상에 관한 것이지만 사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본다는 건 현재를 주의 깊게 살피고 거기에 반응하는 거다.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상상의 나래는 설득력이 없다. 한마디로 아는 걸 쓰라는 거다. 독자들은 항상 공통의 기반에서 출발하길 기대한다. 작가가 자기 세계에만 몰입해 버린다면 아무도 그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저 혼란스러워하고 정떨어져 하겠지. 관찰력이 예민하고 섬세하면 할수록 독자들을 더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다.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이고, 연기 잘하는 배우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도록 세심한 관찰을 통해 맡은 캐릭터를 구체화시키는 사람들이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 노래를 쓰는 뮤지션은 판에 박힌 노래나 만드는 곡 제조기일 뿐이다.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일수록 '상처 입거나' 오래되고 비바람을 견뎌 온 게 많다. 실제 얼굴은 주름살도 있고 뭔가 비뚤기도 하고 움푹 들어가 있기도 하다. 그런 것들에 얼굴 주인의 경험이 녹아 있기에 그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완전한 미모는 만화에서나 가능한 거고 보톡스는 인생을 지워 버린다. 작품의 진실성도 마찬가지다. 초보자달은 모든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어떤 이상적인 완벽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처럼 정확하게 똑같이 그리고 싶어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술은 작가의 이상이 투영된 개별성에 관한 것이다. 관찰한 것들이 종이 위에서 선으로 바뀌면서 자신만의 독특함이 묻어나게 된다.

 어느 누구도 나와 같지 않다. 진정한 나 자신이 될 때 특별해질 수 있다. 당신이 관찰한 것에서 독특한 관점을 뽑아낸다면 작품도 독특해진다. 사람들은 그런 걸 원한다. 그렇게 될 수 있게 용감해지자. 신념을 갖자. 만족할 결과가 있을 테니.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진정한 나 자신에게 다가가야 한다. 나를 덮고 있는 집착을 벗겨내고 감각을 열어 스스로를 명확하게 바라봐야 한다. 내 본질을 흐리는 모든 선입견. 달콤함, 인공색소를 없애야 한다. 알맹이만 증류해서 순도 백퍼센트의 진정한 내가 돼야 한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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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작년에 읽었는데. 매우 얇은 책이지만. 많은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좀 시간이 지난 후에 글을 써보려 했는데. 밑에 올린 신경숙 님의 글을 읽고, 당분간 또 다시 마음에 담아 둬야 겠다. 
Why not? 안될게 뭐 있으랴..
 

「D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소설가  신경숙   


어떤 자리에 갔더니 돌연 화제가 이혼으로 모아졌다. 이혼한 사람들의 사례들이 쏟아졌다. 반응들도 여러 가지다. '좀 참지'에서부터 오죽하면 그렇게 했겠느냐, 잘했다.. 등. 분명한 것은 이제 이혼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일단은 비판적이었던 예전에 비하면 이혼도 정당하게 평가받는 분위기다. 주변에서도 근 1~2년 사이에 이혼한 사람이 여럿 늘었고 나부터도 이젠 누가 이혼했다고 해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럴 만해서 그랬겠지 싶다. 대화 주제도 이제는 이혼 자체보다도 이혼 후의 삶으로 옮겨가는 성숙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어느 사랑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앙드레 고르가 쓴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겨우 89쪽짜리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세 번이나 책상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뭐랄까 마음이 아플 지경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 앙드레 고르는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이며 언론인이다. 16세 때 독일군 징집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하고 사르트르를 만나 그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실존주의 현상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파리로 이주해 '미셸 보스케'는 이름으로 기자생활을 하기도 한다. 생태주의와 노동이론의 선구자이기도 하며 60년대 68혁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며 사르트르에게서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인물이다.

 

고르가 아내 도린을 만난 것은 스위스 로잔. 고르는 도린에게 첫 눈에 반했다. 이주에 이주를 거듭하며 불안한 삶을 계속했던 고르와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늘 사랑이 결핍된 채 지냈던 도린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각각 스물넷과 스물셋의 나이에 결혼하게 된다.

 

어머니가 떠나버린 상태의 계부 아래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영국 출신 도린은 훗날 프랑스 국적을 얻고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창간한 지성인이기도 하다. 사교적이고 늘 밝은 표정이었던 도린은 늘 삶이 불안했던 고르가 최상의 저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도우며 살았다.

 

1983년 도린이 '거미 막염'이라는 치명적인 병을 얻게 되자 고르는 자신의 모든 활동을 접는다. 고르는 도린을 위해 파리를 떠나 보농이라는 시골에 집을 얻고 20여 년을 아내 도린을 간호하며 지낸다. 고르는 '아내 도린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보았고 '그 본질을 위해 비본질적인 것'을 포기한 것이다. 보농에서 그들의 삶은 '검소한 살림, 유기농으로 자급자족, 여유로운 시간 갖기, 나무 가꾸기, 진솔하게 대화하기, 저술활동, 친교활동'으로 재구성되었다. 역으로 도린의 병이 오히려 그들에게 그들이 이론적으로 추구했던 '완전한 삶'을 살도록 해준 셈이다. 고르는 자신의 생태주의 이론을 도린을 간호하며 삶의 방식으로 직접 살아내게 된다.

 

'D에게 보내는 편지'는 아내 도린을 향해 쓴 사랑의 고백이면서 유서에 가까운 글이다. 이 책 속의 도린을 향한 고르의 사랑은 경이롭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까지 이르는 글을 읽어가다 보면 그 신성함에 숨이 멎을 듯하다. 그들은 작년에 평화롭게 죽은 채로 시골집 침대 위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에게 알려달라는 메시지가 문에 붙어 있었다. 그때 그들의 나이가 여든셋과 여든둘이었다. 죽음까지도 함께한 완전한 삶이었다.

 

부부간의 이혼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일이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쿨'해진 이 현실에서 'D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오직 당신뿐"이라는 사랑의 감정에서도 순정이나 아름다움보다는 상대를 억압하는 스토커 분위기를 더 느끼게 되는 이 현실이 부추기는 고독이 한순간 덮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대사회는 예전과 달리 다양한 인간관계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행복한 사람보다 고독한 사람이 늘어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서로의 실패와 상처와 폐허를 받아들이는 깊은 관계가 성립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고르와 도린 같은 경이로운 사랑이 가능했던 것은 우선 두 사람이 서로를 자신의 삶의 중심으로 받아들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르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도린이라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에 아픈 도린과 끝까지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아픈 도린으로 인해 고르의 삶도 평화롭고 아름답게 완성된다.

 

죽음까지도 함께하는 그들의 삶이 감동으로 밀려들었던 것은 헤어짐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는 이 현실에서 의지할 수 있는 인생을 느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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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뎐. 심청뎐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점선뎐 이라니. 대단한 자서전 제목이다. 범상치 않은 제목처럼. 이 화가의 삶 또한. 예사롭지 않다. 환갑을 조금 넘은 나이에 암으로 숨진. 김점선 화백은. 자신의 마지막 삶들을 이 책을 쓰며 죽음을 맞이한다. 암의 고통 조차도 자신의 삶으로 적극 수용하는 그녀의 호쾌한 기상은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호쾌하다 못해. 때로는 예술가 특유의 아집과 고집이 지나쳐 보이고 예술의 열정과 미친년의 경계에 오락가락 하지만. 그녀는 뜨거운 열정으로 삶과 예술을 자신과의 부단한 부딪힘으로 몰아 붙인다.

 내가 이 화가를 알게 된 것은. 아마. TV에서 문화지대인가 하는 방송에서 얼핏 본것 뿐이다. 성 정체성이 모호한 남자 같은면에..좀 거부감이 들었지만. 또..잠깐인데도..아이 같은 순수 무궁한 천진함에 천상 예술가이구나 했다. 
 이 책은. 그녀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 이었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 관습과. 타성에 이끌리는 삶을 버리고 자기 주체대로의 삶을 살아간. 파란만장의 이야기. 유교적 가부장사회가 엄연히 뿌리깊이 남아 있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위악적으로 표출했지만. 모난 돌에 폭력적으로 가하는 사회의 생리를 파악하곤 제일 빠른 해결책으로 제일 빠르게 결혼을 해버린다. 그리곤 자신의 세계에 몰두할수 있는 평화를 쟁취한다. 

 특이한 결혼 과정 만큼이나 정말 이 화가의 대단한? 기를 느낄수 있는 부분이..남편과의 싸움중에 화장실 갈 동안의 중단이 싫어. 그 선 자리에서 오줌을 싸 버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듯한 행동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평범치 않은 화가의 엄청난 기 는. 굶주림에 맞서며. 자신의 그림 세계에 파고 든다. 그러나 사실. 첵에서나. 인터넷에서 본 그녀의 그림은..잘 모르겠다. 원본 작품 앞에서 감상했을때에라야. 그녀의 그림 세계를 제대로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엿들어 보는 자서전의 매력은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는 단순한 감흥을 넘어. 그가 영향을 받았던. 삶의 가르침과. 주체적이고 독특한 삶의 발걸음이. 점이 되고 선이 되어. 결국 우리의 삶 속에까지 연장된다. 삶의 다양성을 열린 마음으로 보는 시각과 함께. 누구처럼이 아닌, 자신의 독보적인 삶의 창조를 위한..
 그게 김점선의 점선뎐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점과 선의 점선뎐이다.
 몇주전? 쯔음에 네이버 오늘의 책 코너에 이 책이 소개될 때..이 책을 읽고 있었다. 김영하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데에 있어 단편 모음집은 딱 적당해 보였다. 이미 박민규의 카스테라에 꼿혀서..그 만 하겠어 하는 심점이었다. 비교적 젊은 작가이고..말랑말랑해 보이는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느날 우연히 티비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는데..나긋하게 말하는 것이, 여자좀 꽤 홀렸겠군 하는 나름 질투의 감정과 함께..내가 제일 안 좋아하는 남성상인..성시경 같은 가식 같은것도 좀 보이는듯 해서..싫었다. 뭐, 작가는 글로 평가해야 하는 당연한 입장에서..김영하의 작품에 첫 발을 내딛었다.

 성공할만 했다. 아주 독특하진 않지만. 글의 문체나 리듬..등이 술술 잘 읽히면서..문제의식이나 통찰력도 좋아보인다. 박민규 보다더 대중적인 매끈함이 있다. 현실적인 도시성이 뭍어난다. 내가 좋아하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느낌도 나면서..또 너무 그렇게 퍽퍽하진 않다. 우리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서, 삶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작가의 담백한 시선으로 묘사한다. 너무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은 지점에서..작가는 인간의 풍경을 제시한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엿보는 것은, 체험하지 못한 삶의 경험을 대리한다. 소설의 순기능일수도 또는 역기능일수도 있지만..자신과 타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몸이던 관념이던..더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소설..특히 단편소설의 재미는 짧은 시간에 다양한 느낌과 생각을 가지게 한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책속의 작품중. '보물선' 과 '너를 사랑하고도' 가 기억이 남는다. 사회를 보는 문제의식과..현대적인 감수성이, 잘 녹아있다. 아마 이러한 점이 이 작가의 특징 인듯 하다. 앞으로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틈틈이 읽어 볼, 식량을 저축한 기분이다. 암튼 글을 참 잘 쓴다..부럽다..

 p.s. 어제 박민규의 새 소설집 더블을 주문했다..오늘 저녁 홍대앞 거리를 걷다보니..벽 곳곳에 더블의 홍보 포스터가 도배질 되어있어..출판사의 공격적 마케팅에 놀랐고, 그러면서 작품의 질이 더욱 궁금해졌다. 박민규니까.. 아마 김영하도..그 정도는 되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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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lahodong?Redirect=Log&logNo=20104979732

 평소에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건축물을 혐오 했었다. 서울에서도 한 때 우후죽순으로 이 노출 공법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노출 콘크리트 와 외관이 녹슨 철판 건축물 등등. 보기엔 심플하고 멋져 보였지만. 왠지 차갑고..정이 안가는, 자연에 반하는, 그야말로 도시성의 극치였다. 건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공간의 조형물이라는 점에서..나도 한마디 품평하자면 심하게 말해..자연에의 테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친구와 대화중 피력하자, 건축과 교수였던 아버지를 둔 친구는 내게 안도 다다오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내가 혐오했던 건축 공법의 세계적인 건축가 였다. 또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작가.아라키 노부요시의 어떤글을 통해 이우환을 알게 되었듯이 이우환의 글을 통해 안도 다다오를 듣게 되었다. 아라키-이우환-안도 이렇게 셋은 친구인 것이었다. 일본을 발판으로 하는 세계적인 사진가. 미술가,건축가인..그들의 예술 세계는 우리의 자각과 함께 큰 용기를 가져다 준다. 일본.혹은. 동양을 벗어나..세계로 뻗은 그들을 보면서. 개개인의 예술적 재능과 노력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발판으로 삼은 사회의 문화적 역량의 뒷받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라는 경제 대국의 백그라운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바라볼때..일본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

 책 속엔 아라키 노부요시가 찍은 안도 다다오의 인물 사진이 많다. 특히 표지 사진은 안도 다다오의 인생관인 빛과 그림자.를 잘 함축했고. 그의 강인한 뚝심과 고집을 잘 드러내 주는, 눈의 표정이 강렬히 표현되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프로복서였다가. 진로를 바꿔 20대 부터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28살에 친구와 단 2명으로 건축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현재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그 과정이 짐작하겠듯이,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역경과 시련을.. 타고난 완강함으로 분투하는 삶의 이야기다. 

 " 매사 처음부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뭔가를 시작해도 대개는 실패로 끝났다.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애오라지 그늘 속을 걷고, 하나를 거머쥐면 이내 다음 목표를 향해 걷기 시작하고 그렇게 작은 희망의 빛을 이어나가며 필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p.418

 책의 처음 한국어판에 부치는 짧을 서문을 읽는 순간부터..이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 보였다. 짧고 간결하고..모호함이 없는, 간결 명료함이 그의 건축 철학과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진속 외모에서 풍기듯..강인함과 인내력은 그의 전매특허 처럼 보인다.

 " 우리는 지휘관 한 사람과 그의 명령을 따르는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다. 공통된 이상을 내걸고 신념과 책임감을 가진 개인들이 목숨을 걸고 움직이는 '게릴라 집단'이다. 소국의 자립과 인간의 자유 평등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어디까지나 개인을 주체로 기성 사회와 투쟁하는 삶을 선택한 체 게바라 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 " p.19

 " 추상적인 언어로 아는 것과 실제 체험으로 아는 것은 같은 지식이라도 그 깊이가 전혀 다르다. 첫 해외여행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았다. 지구의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는 감동이 있었다. " p.64 

 안도 다다오는 20살 무렵 독학으로 건축 공부하던 시절.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보고..강한 영향을 받는다. 르 코르뷔지에도..역시 독학으로 성공한 건축가 이며. 기성 체제와 싸우며 길을 개척한 사실을 알고, 단순한 동경을 넘어선..존재가 되었다. 
 건축 사무소를 개설하기 전 그는 무수히 해외 건축 여행을 다니면서. 실제적인 감각과..비전을 키웠다. 그는 20대의 여행 기억이 자기 인생에 둘도 없는 재산이라고 말한다. 
 60년대의 시대정신인 기성의 것들을 부정하고 현재에 반역하는, 그럼으로써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자는 정신으로..그는 건축으로 사회의 불합리에 저항해 나가는 자기 나름의 투쟁을 하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은 스미요시 나가야.. 주택사이에 위치한. 협소한 10평 남짓한 땅에..아주 혁명적인? 주택을 지었다. 현재에 봐도..꽤..극단적일 만큼..주책으로서의 기존 관념을 뒤집어 엎는다. 그러나 안도 다다오는 이런 급진적인 집을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만든것이었다. 편리함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생각하에..냉.난방 시설도 없고. 부엌과 방을 건너갈때..중간은 지붕이 뚫려..(중정?) 비올땐 우산을 쓰고 이동해야 하는..자연과의 대화를 최우선에 둔 결과 라고 한다. 그리고 건축주 부부에게 집을 넘길때. " 이 집은 보통 집에는 없는 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살기 불편한 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운 여름에는 옷을 하나 벗고 추운 겨울에는 하나 더 껴입고. 최선을 다해서 생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부부는 30년후 "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작은 집의 매력입니다." 라고 하며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p.332


 " 삶의 터를 잡고 산다는 것은 때로는 힘든 일일 수가 있다. 나에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완강하게 살아 내겠다는 각오를 해 주기 바란다." 누군가가 집을 설계해 달라고 찾아오면,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하며 '스미요시 나가야'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보통 별종에 속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짓는 주택의 건축주가 된다고 한다. p.95 
 이 글 처음에 이야기 했듯 나는 콘크리트 공법 자체를 싫어했으나..건축가의 저런 자연에의 철학과. 뚝심은..내 선입견을 내려놓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저 좁고 길다란 땅에..나름 마당 이라고 할수 있는 쉬크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르 코르뷔지에의 장식을 배제한 모던의 실용과 기능을 바탕으로한 건축과..일본의 전통 정신인 무無 와 간間의 미학..과 함께 물질성을 배제한 종교적인 간소함이 드러난다.
 평소에 내 집에 대한 상상을 간혹 하게 되는데.. 나 또한 그런 무 와 간의 미학에 영향이 있는지..공간을 가구나 잡다한 설비로 채우는 것 보단..책상과 식탁과 의자 2개, 부엌과 옷방 외로.나머진 그냥 바닥에 그냥 쌓아두는 좀 생뚱한 생각을 했다. 왠지 헌책방 스타일이 될 둣 하다.

 "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면 우선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생각만 한다. 실제적인 문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종종 의뢰받은 대지뿐만 아니라 이웃 대지에 지을 건물까지 설계해서 모형으로 만들기도 한다." p.268

 그는 '일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 이라는 생각으로. 평소에 돌아다니다가..공터를 발견하면 '나라면 이곳에 이런 건물을 짓겠다' 라든지 '여기가 이렇게 개발하면 재미난 풍경이 되겠다.'라는 식으로 자유롭게 스케치 한것을 땅주인한테 제시하면 보통..다 귀찮아 하지만..간혹..나중에..일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면 전부 자신한테 맡기라는 고자세로..짓고, 그 애착으로..유지 보수의 책임을 다 졌다고 한다. 그런 방문 수리를 상대가 미안해 할 만큼 성실하고 끈기 있게 계속 하면서. 차츰..건축주의 신뢰를 얻으며, 확장해 나갔다. 

 그는 자신을 키운 오사카 정신과..일본만의 정신에 대해서도 애착과 관심을 보인다. 자기 고향과 조국에 대한 애착이 자기가 잘나서 성공했다 라는 자만심이 아닌..겸손함과..사회적인 분배의 기능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고베 대지진 이후..건축에 대한 관념과..일본에 대한 분석과 애정의 확인에 대해서도..  개인의 역량이,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로 작용되는 큰 가르침 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건축 철학과 삶의 철학을 엿 볼 수 있었다는 데에 큰 만족과 자극이 되었다. 

 " 그 장소 그 시대가 아니면 불가능한 건축. 현실의 도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건축의 배후에 있는 의지가 얼마나 굳은가 하는 것이다. " p.144

" 현실 사회에서 자기 이상을 진지하게 추구하려고 하면 반드시 사회에 충돌하게 되어 있다. 십중팔구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며 연전연패의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건축가의 삶이다. 포기하지 않고 온힘을 다해 계속 달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환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을 믿는 강인한 마음과 인내력이야말로 건축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 p.404

' 청춘이란 인생의 한 철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말하느니..' 청춘._ 사무엘 울만..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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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트셀러 책을 그다지 신뢰하지도 선호하지도 않지만, 이 책 만큼은 꽤 구미가 당겼다. 사진가의 이야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책의 표지 일러스트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한 장의 그림이 함축하고 있는 것이 적절했고. 표지 광고 카피도. 꽤 어필이 된다. 우리나라에 첫 소개되는 더글라스 케네디 라는 작가의 책이 이렇게 큰 호응을 얻게 되는 시발점이 책의 외관, 적절한 패키지의 성공이라고 일단 생각된다.
 그리고 내용이..전형적인 대중 소설의 강한 흡인력과 적당한 생각거리를 남겨 준다. 문체는 짧고 간결하며, 스피드한 전개와. 각 장이 넘어갈때. 드라마 에서 스릴러도 넘어가는 국면등이, 소설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조금은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금방 읽어버리게 만든다. 소설의 기본적인 기능인, 이야기가 이끌어 나가는, 몰입과 재미, 결과의 궁금함. 독자를 성찰하게 효과. 등이. 적절히 포진해 있다. 이 책은 올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되었지만. 원작은 1997년 작이다. 소설속. 사진작업의 주 프로세스는 필름의 시대다. 주인공이 구입하는 최고의 카메라는 캐논 EOS 1N rs (필름 카메라 시절 최고 기종)  로 소개되고..필름과..암실작업(현상. 인화, 밀착 프린트 프리뷰등.) 이 묘사된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선..복고적이고 전통적인 사진 과정이래서..어떤 아날로그적 향취가 뭍어난다. 그런데 좀 이상한건..어떤 부분에선..라이카 M9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현재 발매되는 최고가 디지털 레이지파인더 카메라 인데..번역자가..M6를 바꿔서 번역했는지..좀 의외다. 사소한 옥의 티 랄까.

 주인공이 사진가를 꿈꾸고..사진가를 하는 이야기래서 내겐 사소한 재미가 솔솔했다. 주인공이 카메라 가게에서 알바할때. 손님으로 리차드 아베돈이(이미 故人) 필름사는 장면이나. 애니 레보비츠. 다이안 아버스 등등. 사진가들의 언급, 또는 카메라 장비나 필름 이야기 등등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소설속 묘사되는 뉴욕의 월 스트리트나..주인공이 사는 뉴욕 외각의(기차로 통근하는) 고급 주택단지..그리고 주인공이 도주 할때, 서부의 여러 고속도로들..요트등은 내가 직접 경험한 풍경들이라..좀 더 소설속 묘사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 책의 전반부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고 감명깊게 본 작품 리차드 예이츠의<레볼루셔너리 로드> 와도 닮았다. 뉴욕 외각에 거주하는 중산층 이상의 평범한 백인 가정의 내면의 곪음..을 묘사한다. 누구나 보아도 괜찮은 인생인 그들의 삶은. 이루지 못한 꿈과..욕망에..잠식당한다. 그런 생활의 안정은 내면의 자유를 가두는 옥쇄로 작용한다. 삶에 자잘한 시련이 없다면..가정의 결속도 헤이해 지는듯. 부인은 옆집 사진가 지망생과 바람피고, 통속적으로 그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 그 때 부터. 사회적으로 안정된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삶의 촘촘한 묘사는, 급진적 사건으로..짧고 긴박한 스릴러 장르로 나아간다.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끝까지 중산 가정의 내밀한 심리를 파고 헤쳐 들어갔다면. 이 소설은 대중이 좀 지루해 할 듯한 시점에..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한다. 이 부분부터 독자들은 주인공과 동일시 되어..자기 이야기 인양..몰입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과거를 버리고..완전히 다른 사람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는.. 누구나..환상적으로 갖고 있는 몽상을 실현해 보인다. 그러나 과거가 없는 삶은 미래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현재속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첨예한 자각이 서슬퍼렇다.. 사실 현재의 삶이란것은 과거와 미래가 뭉틍거려서..끄을고 나가는 것인데, 자신이 꿈꾸는 사진사로써 성공을 이뤘다 해도..그것은 자신의 성공이 아닌 것이며, 더더욱. 새롭게 과거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영화 '리플리'나 '본 아이덴티티' 에서 맷 데이먼의 내면 구조와 비슷한 생각이 든다.

 누구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현재의 삶이 고루해도..어쨋든 당신이 선택한 길이다. 선택을 했든 안했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인생이다. 현실의 맥락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한다면, 한마디로 목숨을 건 비약. 을  위해 한껏 발버둥 쳐보는게 의미있는 삶이 아닐까.. 소설속 주인공 처럼 우발적인 사건으로 휘몰리지 않고.. 좀 더..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한다. 우연이나 환상에 내맡겨진 삶이 아닌, 실존적 각성의 상태..너무 크게 웃을일도..화날일도..슬플일도 없는 그런 상태..그것은 자유일까..감옥일까..카메라를 들고 길 위에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자는 자유일까..감옥일까..그런 관념 자체가 없다는 게 답 인지도..순간을 꿰뚫어 과거속으로 보내버리는 남자를 위하여..나날이 과거를 지운다.  현실의 목표와 꿈을 혼동하지 말자. 목표와 실천이 없다면..꿈도 허망하다. 

 사람은 자신이 목숨을 걸만한 것을 찾지 못하면 죽게된다. 빌 게이츠가 했던 말인가..ㅋ

 4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가볍게 읽힌다.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한다는데.. 내용은 헐리웃과 더 어우릴 듯 싶다. 소설 읽으면서..영화 ' 콘스탄트 가드너' 에 나오는 배우 랄프 파인즈가 계속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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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우환 이란 미술가를 알게 된지는 몇 일 이 되지 않는다. 요근래 심정적인 동요가 있었고, 나는 그 끝에서 사진을 생각했다. 상대가 찍어준 나의 초상을 보고 싶었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했으나 작업을 해야겠단 생각이 그동안의 텍스트의 무게를 감당할 만하게 커졌다. 


 오랬만에 사진관련 사이트에서 글 을 읽었다.유명한 사진 작가인 아라키 노부요시의 어떤 일화를 읽다가. 그와 친분이 있던. 미술가 이우환 과의 만남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젊은 시절 유학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는 철학을 전공한. 미술가 이자. 일본대학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가 라고 한다. 몰랐으나. 이제 문득 알게 되었으니.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무수한 현대미술의 파편들 속에서 그는 일본 모노파의 창시자 라고 한다. 아직은 그의 미술 세계를 감상. 파악하지도 못했지만, 캔바스 화면에 점을 찍는 그의 작업은 뭔가 이미 내게 한발짝 성큼 다가선 듯 했다. 

 1936년 생인 이 작가는 노년이 된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 알져진 건지도 모르겠다. 이건 내가 현대 미술에(작가들에) 대해 무지함의 고백일수 도 있지만..대략..리뷰를 흩어보니..나처럼..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직감은 적중했고, 이 책은 어제 오늘.. 마음을 이상한 무게감에 쉽싸이게 했다. 그동안 많은 산문을 읽어왔지만..이만한 글과 감각과 통찰을 어우른 글은 흔하지 않았다. 책장에 모셔져 있는 아직 읽지 않은 김수영 전집 2 <산문> 이라면 모를까.. 

 음악과 여자. 와인과 흙을 좋아하는 예술가의 삶은. 어떤 환상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과 똑같은 듯 하지만. 그 섬세함과 예리함은 남다르다. 글은 담백하고 소소한듯 하지만. 그 이면엔 첨예한 여운이 길게 남는다. 짧은 글들 속에 이렇게 응축된 감성은, 흰 캔바스 앞에선 미술가의 고뇌가 서려있다. 그는 또 철학적이며..문학적이다. 형이상학으로 관념속에 머물지 않고. 삶의 맥락에 닿아 있으면서 자신의 작업을 한다. 성공한 예술가의 소설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삶속의 예술이다. 거창하게 삶을, 예술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지만..어느새 나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80년대 후반에 일본에서 나온 책을 번역자가 번역해서 나온 책이다. 이전에 번역되어서 나온적이 있는데..요번에 다시 출간하게 된 것이었다. 이 책속의 글들은 일본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단다. 현대문학 이란 출판사에 이 작가의 책들이 나오는 모양인데 책이 참 정갈하다. 같이 구입한. 작가의 시집 ' 멈춰 서서'는 겉장의 종이 재질이..쉬폰 케익을 만지는 듯한 촉촉함이 뭍어있다.
 때가 탈까 조심스레 만진다. 이 모든 행동의 마음이 책속의 내용과 어우러진다. 양장본의 금색 인덱스 띠 조차 이 책과 너무 잘 어울린다. 책의 내용과 함께..책을 만지는 촉각적 감각과 물질의 정서는 나를 곱씹게 만든다. 시간의 여울은 그렇게 흔들거렸다. 시간의 여울은 또 이렇게 지나가버린다. 시간의 여울은 무언가를 남기고 사라진다. 시간의 여울은 춤이 된다. 그런 몸짓들이..애면글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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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된 글은 올해 2월에 쓴..나의 리뷰..2010/02/04 - [책] - 보통의 존재 _ 이석원 



기대 없이 시간이나 때워 볼 생각으로 들렀던 여의도의 작은 서점에서 이 책을 만났다.

노란 표지가 마음에 들었고 제목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드커버가 아닌 것도 좋았고.

중간 토막에서 몇 문장을 쓱 읽다가 <구매>를 결정했다.


저자가 이사한 이야기였다.

가세가 기울어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일상의 과정과 감성을 말갛게 써 내려간 문장을 보자 마음이 쿵하고 움직였다. 마음이 움직이면 지갑이 열리는 법이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나는 그저 기억 속에 뭍어두고 세월에 풍화되길 기다렸던 시린 경험이 어떻게 '글'이 되는지 궁금했다.



'그래, 너는 어떻게 했다고?' 하는 심정.

저자에 대해 나는 아무 정보가 없었다.

그가 소설가인지 시인인지, 뭐해 먹고 사는 사람인지 상관없었다.



책 날개에는

1971년생

나이탐험가

라는 짧막한 자기소개가 있었다.



나이 탐험가?

좀 꼴꼴나네...

딱히 하는 일이 없으면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지...라고 생각했다.



그건 엄밀히,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질투’다.



나는 살아가는데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여리디 여린 감수성, 폐쇄적인 성향, 집단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톨이 기질, 다른 사람의 눈빛이나 말투, 하다못해 구사하는 ‘조사’에도 민감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자친구들은 늘 내 앞에서 ‘말조심, 개조심’을 해야 했다. 내가 워낙 토씨하나에도 민감하게 신경을 곤두세워서 그랬고, 워낙 ‘개’를 좋아해서 개를 비하하거나 홀대하거나 식욕을 느끼는 일을 금했기 때문이다.(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도 참 힘들었겠다) 하여간 총체적으로 '*랄맞은'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그런 ‘슈퍼 마이너리티적인 기질’을 무릅쓰고, 온갖 명분과 동기부여에 매달려 별볼일 없는 ‘월급쟁이’로 근근이 살아가는데, 나랑 유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캐릭터로 ‘아트’ 혹은 뭔가 ‘창작적인 일’로 자리매김을 하고 사는 모습을 보면 질투를 느낀다. 물론 ‘창작’의 밑거름이나 자양분이 되는 ‘고통’의 댓가는 어마어마할거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다 창작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부러울 수밖에.



이틀 동안 꼬박 이 책을 붙들고 읽으면서 혼자 낄낄 거리고, 한숨 쉬고, ‘아이고 이 바보 같은 놈!’이라고 탄식하고, 치가 떨리는 소심함에 ‘너 울트라볼드대문자 A형이지!’라고 호통치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왈칵 눈물을 쏟고, 아문 줄 알았던 상처가 덧나서 쩔쩔매고, 미련 곰퉁이 같은 처사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고양이 발톱 수술한 에피소드/ 260p),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정을 내려 놓느라 허둥대고, 솔직 담백한 표현에 파안대소하고, 머리에서 뜨거운 열이 훅 올랐다가 손발이 저렸다가….

헤어진 연인의 편지를 불로 태우면서 옆에 소화기를 두었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쓰러졌다.(361P) 본인이 그것을 ‘조심성’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더 더욱.(그건 소심함에 가깝다)



암튼 별짓을 다했다.

내 옆에 앉은 애가 ‘저 여자가 미쳤나?’ 하는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작가는 내가 차마 ‘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디테일한 감수성을 이쑤시개로 콕콕 찔러대듯이 건드렸다. 좋게 표현해서 ‘디테일’이지, 사실 초라하고 궁상맞기 그지 없는 인생의 단상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눈물겹도록 진실한 것’들이다. 너무나 여리고 소심한 감수성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했다는 어떤 고군분투기보다도 공감의 폭은 스펙타클했다.



인터넷을 뒤져 작가의 얼굴을 보니, 좀 칙칙하긴 하다.(농담농담)

글쓴이의 얼굴을 알고 ‘내 이야기같은 남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친구의 편지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랑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이런 남자랑 연애를 하면 어떨까?’ 공상도 해봤다.(정말 별 짓 다했다)

내 인생이 대박으로 패가망신할 거라는 결론이 들자, 달콤한 공상은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나 하나만으로도 버겁다. 특히 이 작가는 서점을 매우 좋아해서 허구헌날 서점에서 데이트하자고 할거 같은데, 나는 서점이라면 질색이다. 나는 사람이건 물건이건 떼로 모여있는 곳을 무서워한다.



오늘은 심산스쿨에서 명로진 선생님의 오픈 강의가 있는 날이다. 몇 주 전부터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기다려온 일인데, 출발해야 할 시간이 되자 또 마음이 갈팡질을 시작한다. 이 작가의 표현을 빌어 설명하자면, 나는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싫어 전쟁처럼 자기 자신과 싸우며 미루고 미루다 죽지 못해 나가는 사람’이다(377P)



나와 그(작가)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지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쪽이고, 작가는 지각을 하는 쪽이라는 거.(그러니 내가 사는 게 좀 더 피곤하지 않겠는가? / 89P <고통이 나에게 준 것> 패러디)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이 어렵다.

‘사람을 만나는 일’, ‘멀리 가는 일’이 진땀 나게 어렵다. ‘좋다’, ‘싫다’가 아니라, ‘어렵다’. 그래서 점점 약속을 잡지 않게 되고 어쩌다 약속이라도 잡으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 할까 봐 혼자 별 쇼를 다 하면서 전전긍긍한다. 그 ‘약속’의 대상이 친구이거나 미용실 예약이거나 마음 상태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혼자 세우고 혼자 접은 약속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건 정말 약도 없는 강박증이다.



사람 많은 곳은 특히 난감하다. 게다가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은….

전철을 타고 신촌까지 갈 수 있을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도 않다. 오랜만에 명선생님을 보고 싶어서, 꼭 가겠다고 혼자 다짐을 하고 다이어리에도 써놓았는데, 몸도 마음도 무겁게 가라 앉는 걸 보니 오늘도 글렀다.  



그래도 오늘은 혼자가 아니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너무 닮아서 불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나와 비슷한 ‘보통의 존재’가 있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 하려고 했는데,

이것도 무리 지으려는 습성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외로움’마저도 군집을 이루면 위로가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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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만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우연은 대상과의 인연의 시발점이다. 우연을 소중하게 여겼을때. 흘러가버릴 시간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우연이 당연이 되고 .필연이 되었을때, 인드라망의 거울구슬같이 삶의 예기치 않은 인연은 존재를 각인시킨다. 각각의 존재는 부딪힘 속에 성장한다.
 도서 수거용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이 책은. 내가 먼저 시선을 건넸다기 보다. 책이 나를 보았다.

 시애틀. 90년대 초반을 쉽쓴 얼터너티브 록의 고장이자. 지미 헨드릭스의 고향. 학창시절. 영화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을 보고 왠지 미래의 어느날..나도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고..딸 아이 하나를 외롭게 키우고 있을꺼 같단. 상상들..(영화속에선 아들이었지만.) 스타벅스를 위시로한 커피..가 어울리는..비오는 항구 도시. 맥가이버의 배경 도시..
 우체부. 요즘엔. 우체부 라는 명칭 보다는 그냥..택배 기사로 다 통칭되는 느낌이다. 우체부란 단어는.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는 기분이 든다. 택배기사가 아닌. 우체부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는. 클래식한 자전거를 타고. 커다란 브라운색 가죽 가방에 편지를 수북히 넣고 다니는 우체부 (집배원) 아저씨가 연상된다. 어렸을때. 그 커다란 가죽 가방이 참 멋졌었다. 

  우연한, 시애틀 우체부 란 제목이 당연하게도. 머릿속에 기억을 불러왔고, 필연적으로 집어들게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국 이민 1세대의 시애틀에서 우체부로 살아가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다. 이민을 가. 현지 사회에서 어떻게 고생했고. 방황했고. 결국. 지금의 직업을 구해.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담담한 친절의 글로 이야기 해준다. 문장속에서 이 분의 인품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책속 저자의 사진을 보아하니..전형적인 술 좋아하는 한국 아저씨의 모습. 그러나. 미소지은 표정은. 달랐다. 인간의 품위와 행복이 보인다. 
 행복은 물질적 부와 풍요가 아니라. 타인과의 정과 사랑. 관심과 배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맨날 하는. 듣게 되는 얘기 일 수 도 있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 엄연한 지침이 되어준다. 조금씩만 변한다면..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아주 빨리 읽히고. 잔잔하지만. 여운은 길다. 공부하다 잠시 한 조각 행복의 케익을 먹은 기분.
 이런 소박한 삶의 이야기가 진정 행복 전도사 가 아닐까..

p.s. 이 책을 읽으면서 홍세화 님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가 생각났다.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책. 둘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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