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관념이고 환상이래지만 평생에 한번이자 마지막일 이렇게 확실한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표현할까. 이렇게 멋지고 가슴저민 이야기는 사랑을 책이나 영화로 탐닉하지 말자라는 나의 기조를, 흔들리게 한다. 언젠가 무심코 무장해제되어 들이닥칠 사랑의 파급을 조금은 대비라도 하듯 허구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느끼고 상념하게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는 내 나이가 파릇파릇한 꽃청춘의 계절, 중년의 우중충할 듯한 불륜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에겐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어디 줄리 델피 같은 여자 없나, 중구난방 기웃거리던 시절. 어느새 서른이 넘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을 섭렵하면서 보게된 이 작품에 늦게 서야 큰 감명을 받았다. 줄리 델피의 큐트함 보다 메릴 스트립의 깊은 미소와 눈매에 찡한 감동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성숙?해 가고 있었다. 


 한 여인의 삶 속에서 결혼, 사랑, 가족, 희생 같은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숙고하게 한다. 삶의 선택과 그 행동에의 용기는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내 일상. 나를 구성하고 있는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 사랑을 위해 변화를 위해 발걸음을 나서기란 너무 가혹한 선택. 상대를 100%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겨진 가족을 위한 가슴아픈 배려이자 희생이었다. 어머니란 말에 함축된 그 지고지순한 사랑은 나의 욕망을 취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회쳐서 자식과 남편에게 바치는 일식집의 정찬 테이블 같은 것이었다. 


 프란체스카의 선택은 자신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개인을 넘어 사회의 통념에서는 칭찬받을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삶에서 행복이란..그리움과 추억속에 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이고, 자신이 되어야할 존재로서 변화가 아닌 되어야 만 했던 존재로의 고착은 인내의 삶을 숙고하게 된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녀에게 짧지만 강렬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사랑의 선택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보다는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매순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대단히 매력적인 남자이자 본받아야할 남성상이다. 특히 이 장면. 프란체스카가 2층에서 가방을 꾸리는 동안 그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녀의 눈으로 그녀의 전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듯 하다. (대사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지만 대사가 없는 이 부분이 특히 감동 받았음)



 이 영화의 구조는 '그을린 사랑'과 거의 똑같다.두 남매가 막 죽은 엄마의 과거의 일을 알아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점점 진실을 깨닫고, 한 여인의 강렬한 인생 경험으로 사랑과 깨달음으로 충만해지는 삶의 유산을 전수한다. 근데 이 작품은 진부하고 뻔한 불륜이라는 금기에 돌을 던질수가 없다. 그 안에는 사랑과, 결혼.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평생에 올까말까하는 사랑의 진면목을 간접적이나마 느낄수 있다. 주인공의 해피한 사랑의 결말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가 숭고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 마음에 품고 죽을수 있는 그런 사랑은 어쨌든 행복한 것 아닌가..




 영화의 초반 뚜껑이 있는 다리를 안내하러 같이 갔다가 로버트가 들꽃을 뽑아 주려고 하자 프란체스카가 태연하게 '그거 독초인데요' 라고 장난치니 바로 경끼하며 떨어뜨리는 로버트. 서로 파안대소하며 웃음으로 통하는 순간.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여자의 마음세계를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내면의 감정에 따라 변화 무쌍해지는 그녀의 연기는 대단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분명 이 영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전해지는 감동이 무한할 영화이다. 한 5년후에 다시보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걸 이 영화에서 새롭게 깨우칠 수 있을까 더욱 궁금해 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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