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지만. 지금 당장이나. 적어도 5년안에,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선다면,  분명 슬플 것이다.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죽으면 내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공포가 있는 것 같다. 사는게 고통이라지만 내 몸과 영혼이 사라지는건 더 큰 공포일 것이다. 현재의 삶. 근미래에 도래할 삶들이..없다면.. 점차 늙어가는 세월을 만끽하지 못하고 삶이 갑자기 단절 된다면,, 슬픔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심정이 쓰나미 처럼 밀려올 것이다.

 27살의 젊은 청년이 희기암을 선고 받는다. 사느냐 죽느냐의 반반의 확률, 이 병마를 견디어내는 과정을 가슴 따듯하게 그린 영화다. 결론은 해피앤딩 이지만. 영화는 차분하고.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와. 주변인의 감정에 쉬이 이입되어, 대리 경험을 해주게 한다. 내가 만약 주인공의 입장이라면..

 고1 여름방학때, 엉덩이에 딱딱한 혹이 잡혔었다. 딱딱한 무언가가 몸속에서 잡힌다면.. 먼저 암 종양을 생각하고 혹시나 하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동네 의원에서 그것을 떼고 조직검사가 나오는 근 한달 동안, 정리할 것도 없는 삶을 정리했다. 이때의 기억은 그냥 기름 덩어리를 떼어낸 것에 불과해 희박하지만,  스물 후반때의 병원 경험은 이 영화를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 새록 기억 났다. 증상은 있는데 진단이 안 나오는 그래서 병명도 없는 그런 소위 현대병에 몸과 마음이 매우 날카로와 졌었다. 대학병원 진료실 앞에서.. 빽빽한 노인들 틈에 섞여 앉아 대기하는 그 심정은 정말 슬프다. 이 때의 경험은 삶을 변화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스트레스와 생활습관을 고치면서, 몸이 좋아져 증상이 사라지는. 그런 경험은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했다. 어떤 병, 증상은 하루아침에 오는듯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내가 언젠가 혹은 곧 죽는다는 생각은. 현재를 겸손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삶의 기로에 서 있는, 매일매일이 죽음과의 사투인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는 경이로운 작용들 속에서, 삶의 항상성을 유지한다. 균형과 조화. 그리고 온기. 이것이 무너지면. 죽음은 한 발짝 다가 선다. 그리고 스트레스라는 거대한 폭포속 소용돌이.  죽음을 인정하면..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집착과 탐욕 조차. 죽음 앞에선 별 거 없다. 메멘토 모리는 좀 더 무명을 깨우기 위한 정언명령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색다를게 없지만, 타인과의 소통에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자아낸다. 친구와 부모와의 감정적 실타래, 그리고 새로운 사랑의 출발점.. 삶의 위기는, 그것의 극복을 통해, 새로운 지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패트릭 스웨이지가 죽었단. 사실을 알았고, 천재소년 두기에 대한 언급은 예전을 추억하게 했다. 동시에 케빈은 13살이나. 천재소년 앤드류 또한. 24살 박사과정 의사는 업 인 디 에어 에서 나온 아가씨인것 같은데, 많이 이뻐졌다. 그녀의 쓰레기장 차를 보니..내가 아는 여자의 아반떼가 생각났는데, 아무래도 여자들은 차를 좋아할 지 모르는 것 같다. 겉이 더러운건 상관없는데, 내부가 그런 것은..용납하기 힘들다. 정말 싫은 남자를 떼어내는 방법중 하나일 것 같다.  

 인상깊은 장면들이 많다. 처음 자신의 병을 선고 받을때 나오는 라디오헤드의 노래, 하이 앤 드라이는 사는것의 고독한 우수를 영상과 함께 잘 표현해 준다. 또 마지막 엔딩에 나오는 펄잼의 옐로우 레드배터 는 얼마나 감미로운지. 사실, 그 정도 수술을 했다면, 장애를 갖게 되는게 더 사실적 일 것 같으나. 역시나 영화는 그것도 헐리우드 영화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극복한 자의 새로운 발걸음.. 사랑은 언제나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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