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란 형용사는 이 영화와, 이것을 감상하는 모든 제반 상황속, 삶의 시간을 통칭하는 말 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끔찍하게 아름답다.
심장이 이렇게 먹먹해지는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다.
가족을 위해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며 생존하고 대를 이어 나가는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씁쓸한 송가 같다.
딸에게 biutiful 이라고 잘못된 철자를 가르켜 주는 그는, 자본주의 삶의 문법에서 벗어난 자신의 고단한 삶이 죽음을 선고 받음으로써, 그 가난과 핍박이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은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잘못된 철자를 발음하는 그대로 쓰면 돼..하는 그의 삶은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질 거란 슬픈 비유다. 자신의 아버지가 불운한 삶을 살다 죽은 것 처럼..자신도 그랬고,, 과연 남겨진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불운의 삶을 타파할 것인가.
주인공 아버지(욱스발) 외에. 세네갈 이민자와.. 중국인 불법 노동자의 삶들은 모두 이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가족.가정의 붕괴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욱스발이 거의 죽음에 당면했을때, 세네갈인 이헤 에게 자신의 집과... 모은 돈을 내 주면서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달라고 간청하는데.. 이헤가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씬은.. 짐을 꾸리고 어느 터미널 역에 당도하는 것이었다. 열린 결말이지만. 이 씬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절망 이지만, 왠지. 이 영화는 그래도 일말의 희망이 엿보인다. 흑인인 이헤가 두 백인 아이를 학교 앞 까지 멀찌감치 떨어져 걷다가 다른 사람의 눈에 신경이 안 쓰일 때 쯤 같이 걷게 되는데.. 인종과 계급문제가 극명히 드러나는 점이지만.. 그들의 자잘한 눈빛과 시선은 차츰 희망적으로 보였었다.
아버지로써 최선을 다했던..욱스발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 자신의 젊은 아버지와 해후하는데.. 영화를 관통하는 이 부분은 고된 삶을 마친 자의 어떤 안식 같은게 포근하게 느껴졌다. 이냐리투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명시했다. 이 세상의 고군분투하는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가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의 삶은.. 이것이 인생인가.. 사람 저마다의 팔자소관이란 말인가.. 그래도 슬프지만 긍정어린 영화였다..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 에서의 파렴치한 금융 사기꾼들이 생각났다.
욱스발이 피오줌을 쌀 때, 요도가 좀 아팠는데.. 병원이라도 가야할까..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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