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을 생각하면, 내가 미쳤지. 미친놈이지.. 그 폭염속에 지리산 종주를 하다니.. 

 산에 다니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듯이, 이날 오후부터 난 내가 얼마간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산을 저주하며 길을 걸었다. 향후 한 2년간은 산에 가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내 몸의 모든 수분이 후두둑 이마로 떨어져, 반바지와 팬티까지 홀랑 다 적시는 축축함 속에 넋을 놓고 걷고 걸었다. 사람이 그렇게 많은 땀을 하루에 쏟아도 죽지 않는다는걸 알았다. 새벽 4시 40분 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걷는 동안,  대략 4리터의 물을 마시고. 그 만큼의 땀을 흘린것 같다. 


 위 사진은 막 동이 트고 있는 와중의 노고단 대피소에서의 본격적인 종주 길을 알리는 거리 표지판과 나의 장비들이다. 천왕봉까지 25.9 키로미터. 오늘 내가 자야할 세석 대피소까지는 약 20키로 미터. 3년전 가을에 2박3일 코스로 종주를 처음 해봤었는데.. 생각보다 쉬워서 이번에는 1박2일로 축소 시켜, 새벽에 성삼재에서 시작해..세석까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산을 얕보면 이날과 같이 생고생길이 열린다. 그것도 한여름의 산은 더더욱, 역시 산은 어떤 가르침을 준다. 만만히 보거나 경솔하지 말라고..스텝 바이 스텝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원래는 등산을 하지 않는 친구 2명을 데려가려 했으나 대피소 예약문제와 이런저런 장비문제로, 좀 급작스레 나혼자 구례구행 심야기차를 타게 되었다. 데려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 내 계획에 동참시켰더라면 향후 몇년간은 욕을 솔찬히 쳐드시고 수명이 더 늘었을 것이다. 

 여수 엑스포의 영향인지 밤 10시 40분에 용산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영등포에서 만원기차가 되었고, 자정을 가르며 남쪽으로 달렸다. 아주 오랬만에 기차를 타서 잠을 제대로 못자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거지에 눈길이 갔는데, 어느 건장한 남자의 등산복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옷과 신발을 최고급으로 두른것은 둘째치고, 대형 배낭의 크기와 포스가 라인홀트 메스너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다 쌔삥. 체격의 건장함과 장비의 번쩍번쩍함에도 불구하고..  어슴푸레 동이트는 와중의  노고단 대피소에서 주먹밥과 사과를 먹는사이, 이 남자가 올라오는걸 보았는데, 털퍼덕 앉는 모양새가 그 큰 배낭의 무게에 벌써 지친 모습이었다. 성삼재에서 시작한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보게 마련인데..이 남자는 그 후 한번도 못 봤다. 


 이삼일을 버틸. 식량과 물..등을 꾸리다 보면. 배낭 무게가 어깨를 거쳐 폐를 압박해 온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루를 단축하며, 버너와 코펠을 안 꾸리고. 하루치 먹을 주먹밥을 만들었다. 사실. 대피소 취사장에서 밥을 해먹는것도 몸이 힘드니까 귀찮음. 여럿이서 가면 밥을 지어먹는것도 재미고 추억이겠지만, 난 산에서 삼겹살에 진수성찬 반찬을 꾸려와 해먹는 아저씨들 보면 좀 이해가 안됨. 지금은 더더욱 산에서 풍기는 삼겹살 냄새는 증오스러움. 내가 준비한 식량은 야구공 크기의 현미 주먹밥 7알. 사과 4개. 에너지바 4개. 홍삼엑기스 4봉. 햇반 4개, 물 2리터. 구운검은콩 한되. 말린 현미쌀. 한되. 3년전 처음 배낭을 꾸릴때 보단, 훨씬 가벼워졌다. 여름이라 옷도 많이 챙길필요도 없고, 취사장비가 없으니..오전까지는 뭐 이까짓거..하며 널널한 심정이었다. 



 7월3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본 일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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