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하루의 목적지인 세석평전(위사진)을 보기위해서 장장 14시간여를 악전고투속에 걸어왔다. 가운데 세석대피소와 평전이 펼쳐지자, 마음속에 기쁨의 희열과 안도가 뿜어져 나왔다. 3년전의 종주 경험 과는 천지차이인 이날의 산행은 최악의 산행기라고 각인될 것이다. 능선으로 부는 한점의 바람도 없이, 막 비가내리려고 후덥지근한 환상적인 습도가 마치 2차대전의 과달카날 섬에 끌려온 조선인 청년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벽소령..까지도 무척 길고 힘들게 느껴졌다. 3년전엔 이렇게 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그때도 힘들었지만,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는 경향 때문에 좋았다고 느끼는 건가.. 아니다. 분명 그때는 가을의 쌀쌀함이 능선을 타고 넘나들며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초심자에 대한 행운의 친절도 있었을 것이고, 나름 대비를 했었던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지리산을 얕봤다. 뭐, 세석 까지 하루에 갈 수 있겠는걸..  생각보다 널널하던데.. 하는 자만심이 문제였다. 


 습기에 미끌미끌해진 바위는 등산화의 접지력을 무마시켜 시도때도 없이 미끌어졌다. 아마도. 무릅과 발목의 힘이 풀어져 점점 다리가 제멋대로 휘청이고, 머리위에 분수대라도 달렸는지. 땀이 쉴새없이 떨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배낭속에 든 식량이 고갈되면서 무게가 가벼워져야 하거늘, 더 무거워지는 것은, 땀이 배낭의 어깨와 등판의 패드에 스며들어, 전혀 가벼워지질 않았다. 그래서 고가의 배낭은 이런점을 개선시켜서 나오는 것인가..써보질 않았지만 왠지 비싼게, 장땡이구나. 라는 생각.


 연하천에서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내 또래의 젊은 남자가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발가락은 시퍼래져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이어 헬기가 이들을 찾으려 상공을 한참동안 선회했다. 남의 불운 속에 경각심이 정신을 깨웠다. 실족하면 안돼.. 산에서의 한 순간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간다. 


 벽소령 까지, 힘겨이 도착했다. 3년전에는 여기서 1박을 했는데, 4시간 정도의 길을 더 가야 한다. 근데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너무나도 힘겨워 했다. 바람한점 없는 날씨가 몇 배는 더 체력을 고갈 시켰다. 다시는 한여름에 이런 장거리 산행은 절대 하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 벽소령 부터 세석 까지는 더욱.. 꽤 많이 걸을 것 같은데도.. 표지판에는 겨우. 0.6 키로 밖에 안 왔네.. 예전 같으면 이미 목적지 까지 다왔을 체력을 쏟았음에도. 채 절반도 못 오고, 아아.. 산신령님의 장난이 너무 심하시군요.. 그러다 다리에 힘이 다 풀릴 무렵, 오후 6시 반. 위 사진의 세석 평전이 펼쳐졌다. 땀을 너무 쏟아서..나올 눈물도 메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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