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감흥이 기억이 안나서 그냥 약간의 발췌만. 


코드와 메시지


 이렇게 생각해 보자. 소통이 가능하려면 수신자와 발신자는 코드(code)를 공유해야 한다. 가령 러시아어 문장을 한국어 사용자가 이해할 수는 없잖은가. 매체의 시장에서는 이렇게 발신자(작가)와 수신자(대중)가 공유하는 코드로 작성한 문장만이 상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우 수신자나 발신자가 자기들이 공유하는 코드 안에 영원히 갇혀버린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철학이나 예술의 과제는 바로 그 코드 자체를 반성하는 데에 있다. 71


 익숙한 것은 편하다. 하지만 익숙함 사이에서의 삶은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새로움이 없는 반복뿐이다. 그러나 익숙한 것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낯설게 바라볼 때, 의식하지 못한 것을 의식할 수 있게 된다. 삶과 죽음 같은 가장 기본적 문제마저 차가울 만큼 낯설게 성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193


세계의 유미화


루키즘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점증하는 유미화 현상이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소비자는 상품이 아니라 기호를 소비한다. 즉 상품 자체가 아니라 상품과 상품의 ‘차이’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디자인, 이미지, 브랜드 등이다. 나아가 현대소비자는 상품을 일종의 내러티브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것은 상품의 생산과 소비를 물리적 현상에서 미학적 허구로 바꿔놓는다. 일찍이 벤야민은 이를 “무기물의 섹스어필”이라 불렀다. 231


얼굴은 풍경이다. _고흐의 자화상.


“ 얼굴과 풍경의 상보성 안에서 하나를 다른 것으로 구성하라. 그것들을 채색하라. 그것들을 완성하라. 얼굴과 풍경의 교본들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 건물, 마을이나 도시, 기념물이나 공장 (...) 이것들은 건축이 변형시키는 풍경 안에서 얼굴로서 기능한다. 회화는 얼굴에 따라 풍경을 위치시키고, 하나를 다른 하나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운동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영화의 클로즈업은 얼굴을 하나의 풍경으로 취급한다. “ (들뢰즈-가타리,<천개의 고원>) 287


예술의 진리 


예술은 아름다움만이 논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에 이름을 알린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행적과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바꿔주었다. 전체에 휩쓸리거나 지시에 끌려 다니지도 않았다. 작가 이름과 작품명을 줄줄 외워대는 ‘지각’으로 예술을 대하지 말라. 송곳 같은 ‘감각’을 되살려 예술의 숨어 있는 진리와 마주하라.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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