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역습은 맑은 하늘을 없애 버렸다. 몸과 마음이 텁텁해진다. 기나긴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3월의 첫날임에도 마음이 울적하다. 맑은 공기 밝은 햇살의 그리움. 봄 비가 간절해진다. 담배를 피우나 안피우나 마찬가지라고 누군가 그랬다. 이미 대기가 담배연기의 해악 만큼 오염되었는데, 금연해서 뭐하냐.의 자포자기 투의 씁쓸함. 가뜩이나 이 꼴같지 않은 정부에 떨어질 정도 없는데, 심지어 이 국토의 아름다움을 더러운 먼지가 감춰버렸다. 운동을 못해서 그런가, 공허하다. 토요일 밤의 한가로움이 일요일 밤의 후회어린 적막함 같다. 이런 날은 일찍 자버리는게 상책일 듯 하다.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며.. 


 몇일전 카드재발급과 여타 일로 은행에 다녀왔다. 은행원들은 친절하지만, 그들의 모니터속에 내 속속들이 정보들이 까벌려지는게 내심 불편하다. 미용실에 앉아 안경 벗고 헤어컷팅 당할때의 느낌과 비슷한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서비스적 특권으로 무방비로 보여지는 신체와 개인 정보.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치과나 여자들이 산부인과 갔을때가 가장 기분이 더럽겠단 생각에, 은행에서의 찜찜함은 축에도 못 끼는구나 라고 허탈해진다. 


 그래서 어쨌거나 은행 창구에 은행원과 대면하고 앉아 있으면 나는 무뚝뚝하다. 딱히 시선을 둘때가 마땅치 않아 그들의 빠른 손놀림에 내심 감탄하며 앉아 있다. 명찰의 이름도 한번 보고, 내 쪽에서 부담스런 시선을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속으로 저 여자는 나이가 몇 살일지 유추해 보는 사이, 이래저래 여기저기 이름과 싸인을 요구하는 안내가 이어진다. 어느샌가 일단의 업무는 끝나고, 모바일 뱅킹에 가입안하셨다고, 직접 내스마트폰에 설치를 해주고 자세히 알려준다. 집중해서 설명을 듣고 있자니 노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나쁘다는건 아니다. 대리 직책을 달고 있는 이 직원은 아가씨라고 부르기엔 연로했고, 아줌마라고 불리기엔 조금 억울해 보였다. 


 예상치 않게 폰뱅킹 안내를 받느라 예금 상품 상담까지 오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 가늠못할 나이의 은행원은 능수능란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나는 구몬학습 받는 초딩처럼 공손히 듣고 있었고, 여전히 무뚝뚝했다. 굳이 나까지 화대에 응대하면 너무 가식적인 살기 좋은 나라의 장면 아닌가.. 


 그 직원이 나와 동갑이라고 밝혔을땐, 좀 의아해했는데 아마도 어떤 나이 제한 상품 설명에서, 이 요건 안에 드니 적극 추천하며 말했던 것이었다. 동갑의 고객에 어떤 동질감을 느꼈을까. 상담이 조금 길어지며 어떤 친밀감이 조금 형성된건, 직원의 나이가 나랑 같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그동안의 무표정을 버리고 쓴 미소를 지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 지금 내 나이의 여자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자조섞인 미소. 매일보는 나 자신의 노화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동년배들을 통해 '아 내 나이듦은 이 정도 구나' 라고 느끼는 이젠 흔한 충격. 아가씨도 아닌 아줌마도 아닌 뭔가 규정할 수 없는 나이때의 오묘함 이었다. 그 사람의 손에 반지가 있었는지를 볼 생각도 없었고, 어땠는지를 모르니 나이를 떠나서 전혀 안 끌렸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나이에 완전 아줌마로는 안 보였으니 미혼인것 같았다. 동갑보다 미혼의 동질감이 더 컸다.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땐, 속으로 꿋꿋히 골드미스로 잘 살아나가기를 기원했다. 저주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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