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 않고 끝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다 봤다. 그런데 뭐가 남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렵다. 어려우니 재미없다. 하지만 뭔가 내밀한 것들이 꿈틀대는데 그걸 잘 모르겠다. 무의식 내지 트라우마,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대해 말하는것 같다. 프로이트나 융. 라캉, 사이언톨로지? 신흥종교등에 대해 좀 알면  좀 이해할수 있으려나. 


 당연히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찾아 읽으려고 검색해 보니 헤매지 않고도 떡하니 이런 리뷰가 있었다. 


 네이버 마스터 검색에 처음 뜨는 리뷰.


 http://blog.naver.com/cerclerouge/40192928281


 자세히 해설한 이글을 읽으면서 색다른 체험을 했다. 장면장면마다 퍼즐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글로써 영화의 다시보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저 감독의 통찰이 깊다. 인간의 얄팍한 속과 관계들의 내밀함이 잘 모르겠는 어떤 지점을 찌른다. 그것은 관계맺음과. 자아의 자립 같은걸 말하는 것 같다. 


 꽤 지적인 작품이래서 영화의 재미보다는 어려운 공부를 한 느낌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선희 (2013)  (0) 2013.09.23
아티스트 봉만대 (2013)  (0) 2013.09.21
관상 (2013)  (2) 2013.09.14
잡스 Jobs (2013) : 나의 애플 이야기  (0) 2013.09.01
그해 여름 (2006)  (0) 2013.08.31


공부에 흥미를 붙인다는 건, 역사에서 재미를 얻었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역사엔 무식하리 만치 모른다. 애써 공교육 탓 보다는 그저 관심이 없었고 공부를 못했다. 태정태세문단세 란 음귀만 입에 맴돌뿐. 

 그래서 광해를 보고나서도 선조,인조,광해군 등을 검색해보며 알아가는 기쁨을 맛봤다. 


 문종. 단종. 세조 시대로 거쳐가는 시대 배경(역사)을 몰랐기에, 나름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것 같다. 누구나처럼,수양대군이 반역에 성공에 세조가 되는 역사를 알았더라면, 결말을 알으니 재미가 반감의 반감이 됐을거 아닌가. 


 광해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위 세명의 왕과, 영화속 중요한 인물들인. 김종서,한명회 등을 검색하며 조선의 역사에 흥미를 붙였다. 또 얼마전에 우연히 들린 노량진 사육신공원이, 이 때의 일들과 관련된 사당이래서, 아~! 착착 궤를 맞춰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인터넷 서점으로 기웃거려 보고 있으니, 평소에 사극을 안 좋아했던 내겐 어쨌거나 이 영화가 좋은 발단이 된 것 같다.  


 일단 2시간이 넘는 영화임에도 재미있게 봤다. 중반 넘으면서 조금 지루한 느낌이 살짝 들었긴 해도, 호화로운 배우진과. 탄탄한 연기, 왠지 포근한 조선시대 배경은 기분좋은 집중을 유발했다. 광해랑 비슷한 느낌이나, 조금 못 미치는 감 이다. 영화적인 허술한 점이 몇몇  눈에 띄긴 해도, 대형스크린을 통해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에, 그런 자잘한 것들은 상쇄되었다. 


 역시. 배우로써 이병헌이 광해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송강호는 꼭 조선,한국인의 초상의 아이콘 같은 친근함 속에 명연기를 선보인다. 초반 조정석과의 연기 호홉은 명콤비 배우를 탄생시켰다. 그 둘의 연기가 초반 영화 감상의 흡인력을 제공했다. 


 잠깐, 미신이라 치부하는 것들에 썰을 풀자면.. (영화 이야기와는 그다지 상관 없는)

 관상. 얼굴의 생김새를 보고 과거와 미래를 알아본다. 서구 과학의 시대를 거쳐 살아오고 있는 우리들에겐 주역이니,명리학이니, 관상, 풍수지리 등을 아주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미신이라 여기고 어리석은 인간들이나 그런걸 믿는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증명할수 있는 것만 믿기엔 세상은 너무 크고 답하지 못한._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서구의 이분법적 체계가 세밀히 나누어 들어가 원자핵을 쪼개고 또 쪼개어 존재의 신비를 풀고자 했다면 동양의 우주적 관점은 현상에 즉답하는 차원이 아닌, 거대한 순환 궤를 통찰하고 그 이치를 터득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닌, 세상을 정확히 그리기 위해선 밑바탕을 그리는 부채꼴 붓과 세밀한 묘사를 하는 세필붓이 필요하듯이, 서양과 동양의 관점과. 그 차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과학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동양의 중추 사상들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미신의 수준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명리학만 해도 사주팔자란 말만 나와도 인생의 노력을 할 생각않고, 미래의 운명론에 깃대 헛된 망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인( 凡人)들은 그렇게 협소한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어리석게 믿지만, 존재의 이치에 대한 탐구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획기적인 것이 된다. 나와 남을 우주적 존재로 여기며 더욱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이치를 터득하는 일일 것이다. 


 오장육부의 우주적 타고난 기운이 천성을 좌우하고, 그 기운의 다양한 배치들이 삶을 조종하고 관상을 움직인다.? 그 밑바탕에는 유전자의 영향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선 신의 창조물이란  절대 믿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미립자 세포들로 구성된 기계(하드웨어)에 불구하고, 태어나는 순간, 그 순간의 우주적 기운이 신체에 스며들어 타고난 팔자를 만든다는(개개인의 소프트웨어 버전)역학의, 증명하기 힘든 점을 조물주 신의 작용으로 환원시키는듯 하다. 분명 우리가 보거나 체감할수 없는 현상들. 즉, 음과 양의 순환, 모든 것은 생성하고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며 그 조화의 균형이 무너졌을때, 변화하게 된다는 원리들은 물리학과도 통한다고 한다. 관상은 내 기운의 배치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 보면 될 듯 싶다. 살아온 흔적과, 살아나갈 흔적을 몸 이라는 현재의 표상을 통해서 예측할 수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본다면, 얼굴은 마음의 도화지일 것이다. 


 사진의 초기 역사를 보면, 빠르게 묘사할 수 있는 사진술을 이용해, 다양한 얼굴의 특징을 분류 도감해, 범죄인의 관상을 밝혀내고자 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이러한 면면들은 우생학으로 이어져 인종학살 같은 전쟁 범죄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심리학 과는 다르게 유사과학으로 평가되었고, 결국 도퇴되었다. 

 그렇다고, 관상을 미신으로만 폄하 하기엔 좀 아쉽다. 동양의 관점은 표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민간의 야매 과학 정도가 된 얼굴의 지도는 좀 더 바르게 살고자 하는 표식의 조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역사적으로 이런 것들은 특권 계층에게만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지금도, 전국의 명당자리는 전부 재벌귀족들의 소유이고 대중들에겐 그런 집착은 우매한 짓거리라고 한다. 토정 이지함의 비결은 한갓 저잣거리의 재미로만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책이라는 주역, 동의보감 등의 혜안을 어쩌면 너무 간과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서구의 과학과 기독교관 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갈등의 축과 긴장의 핵심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란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에 기초에 몰락한 양반가 인물인 천재 관상학자 등장은,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가져오지만 관상의 운명론적 관점과. 사실을 기초로한 권력암투의 장에서의 연관성은 조금은 아쉽다. 전반부의 영화의 톤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중반을 넘어서 부턴, 무겁게 확 변한다. 관상의 운명론에 대한 성찰이, 나중에 파도만 봤을 뿐, 그것을 움직이는 거대한 바람을 보지 못했다란 회심의 깨달음으로 정리가 되지만. 그 과정이, 이 영화의 제목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아쉬움. 권력암투 보단. 몰락한 양반인 자신을 통해서 계급투쟁에 대한 운명론으로 다가섰으면 어땠을까 싶다. 


 수양대군 이마에 점 세개를 만드는 씬은 연출이 너무 아쉽다. 가장 긴장과 스릴을 유발하고 관상에 대한 어떤 관점을 잘 드러낼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 씬은 전개가 너무 쌩뚱맞다. 전체적으로 상영시간을 줄여야 하는게 맞지만. 이 씬에서만큼은 디테일 했어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이정재의 악역이 훌륭하다고 하나. 나는 좀 반대의 생각이다. 신세계에서도 칭찬을 많이 하던데, 물론 잘 하긴 하지만 난 뭔가 좀 부족하단 느낌이 계속 든다. 예전에 '태양은 없다'의 양아치 깜냥이 이정재에겐 가장 알맞은 역할인 것 같다. 이 배우의 목소리나 인상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현이 울릴때 twang 한 공명이 깊지가 않은듯. 뭐 어쨌거나 배우들에 호불호는 당연히 있게 마련. 이병헌은 싫던 좋던. 천상 배우란 각인이 확실히 됐었다. 박해일도 마찬가지고, 이정재는 더 봐야겠음. 

 여하튼, 영화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광해 만큼 흥행은 안 될 것 같다. 


 조선은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 문화의 나라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팔만대장경.등은 얼마나 찬란한가. 하지만 그 수많은 좋은 글귀들이 민중에게 전승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은 당시 지식인의 언어인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갖지 못한 근본적 원인은 무수한 당쟁과 암투의 탁상공론속 부패의 폐단이나, 외세의 침략에 의한 도탄 보다는, 우리의 다채로운 기록문화의 전승 단절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몸속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p s  초반에 송강호가 조정석 보고 너는 목젖이 나와서 욱하는 성질을 조심하라고, 화를 당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후로 계속 내 목젖을 어루만지며 봐야만 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티스트 봉만대 (2013)  (0) 2013.09.21
마스터 (2012)  (0) 2013.09.19
잡스 Jobs (2013) : 나의 애플 이야기  (0) 2013.09.01
그해 여름 (2006)  (0) 2013.08.31
세편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단상  (2) 2013.08.25



 애플 제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던, 스티브 잡스를 알던 모르던, 이 영화는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잡스의 개인사의 트라우마와. 회사의 창업기,성장기, 그리고 잡스의 몰락. 다시 복귀해서, 화려한 성공. 이른 죽음. 등등. 그 자신의 일생이 마치 영화의 각본 처럼 드라마틱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물자체가 평면적이거나 일차원적 성격의 캐릭터가 아니라, 다면성의 인간적인 호오를 비교적 객관적 평가와 시선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스마트 세대들에게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게 된 과정부터 아이폰,아이패드(영화에서는 처음에 2001년 아이팟 발표하는걸 시작으로 하지만)출현 까지 대략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한 인물의 전기 영화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개인용 전자기기의 혁명적 역사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훌륭한 전기 영화는 이름을 남긴 인물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다양하게 그 인물을 받아들이게 만들면서, 시간의 압축을 통해 인물의 삶 뿐만 아니라 시대의 역사를 인지하게 해야 좋은 (전기)영화라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나서 그 두꺼운 전기책이 나왔는데, 그다지 읽을 생각이 없었다. 전기 영화는 좋아하지만, 대부분 두꺼운 전기책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의 대부분 한마디 평은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란 평이 지배적인데, 어쨌거나 그 책을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없던 내겐 이 영화의 개봉은 단비 같은 것 이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애쉬턴 커쳐가 잡스 역을 맡았다. 



 말년의 잡스 보단, 젊었을 때 머리 기른 잡스의 모습과 애쉬튼 커쳐의 모습은 정말 흡사하다. 살짝 펄잼의 에디 베더의 분위기도 엿 보이는데, 특히 대학 교정을 맨발로 다니거나 인도 여행과 자연 속에서 영감의 기를 받는 장면등. 70년대를 배경으로 흐르는 클래식 록 음악이 너무나 좋다. 비틀즈 보단 밥 딜런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영화속에 삽입된 밥 딜런의 노래가 너무 좋았다. 나는 70년대의 미국 차들과 음악들이 왜이리 좋은지..푹 빠져서 넋놓고 영화에 몰입했다. 


 이 사람의 근본 뿌리가 버려진 아이 였다는 것에서 출발한 결핍의 내면성이 어떻게 발현되어 성공했고 좌절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출생은 그랬지만 좋은 양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인생의 절대 동반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은건 일대일생의 운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이 막 진행될 무렵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기자 철저히 버리고 그 슬픔과 번뇌를 일로 매진하며 승화시켰던 듯 싶다. 나중에 그의 딸 이름을 따서 리사 프로젝트에 올인 하는 모습도 자신이 못다한 아버지로써의 역할을 대신해 새로운 컴퓨터 창조에 집착을 보였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존재 였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기계의 가치에 몰두 했다고 여겨진다. 


 리사 프로젝트가 좌초되고, 궁여지책으로 매킨토시 팀에 가담하게 됐고, 가격이 높게 출시되면서 애플은 하향세를 걷게 된다. 경영 이사진에 의해서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쫒겨나게 된다. 그런 성공과 몰락의 와중에. 워즈니악을 비롯해 처음의 친구들도 잃게 되고, 명예는 실추됐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 결국. 자신의 신념과 제품에 대한 가치 창조의 예술가적 외골수의 기질과 열정이. 사람도 잃고 자신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영화 이야기와는 번외로 애플의 침체기에 나의 컴퓨터 역사를 뒤돌아 보며 실제 애플의 역사를 체감해 본다.

 나의 첫 컴퓨터가 1990년 삼보 트라이젬 흑백 XT 컴퓨터였는데, 이건 지금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DOS 시스템이었다. 문자 명령문으로 실행하고 파일을 이동하는 그런것.. 당시 다니던 보습학원(영어,수학,컴퓨터_도스나 GW베이직 을 배우는)에 컴퓨터 관련 잡지의 광고를 보며, 어떤 컴퓨터를 살까 알아보던중 애플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는데, 본체가 피자박스 같이 넓적한 어떤 모델이었다. 그때 그걸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대세는 아니어도 윈도우 95가 나오기 전, 애플의 선구적인 GUI를 맛볼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처음 GUI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잡스가 매우 만족하며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걸 베낀 빌 게이츠에게 엄청난 분노를 하는 장면도. 암튼 마이크로소프트 도스 시절에 최고의 추억어린 게임은 페르시안 왕자 였다. 학원 원장이 텔넷,초기 인터넷을 접속해 보여주며 여기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던 일. 중1짜리 눈엔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컴퓨터 강사의 보기드문 엄청나게 큰 가슴에 혹 했었지. 그 아가씨에게 찝적대는 원장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었고..


 그러다 잊혀져 가고 있던 애플 컴퓨터를 다시 인지한 것은 미대를 들어가고서 부터다. 대학 1학년땐, 수강신청도 종이 문서로 하고, 수업중엔 콤파스나 자와 샤프로 제도 수업이 있었으니, 아직 포토샵의 존재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군대 휴학을 했고, 97~98년 사이에 우연히 동기 누나를 만나 학교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애플 컴퓨터를 500만원 넘게 들여서 구입했고, 포토샵이나 전자 편집 프로그램인 쿼크에 대해서 이야기 해줬다. 당시 500만원이면 엄청 큰 돈 이었다. 미대에서 매킨토시를 많이 쓰는 이유가 충무로의 전자 출판. 실무 쪽엔 전부 쿼크를 쓰고 있으니, 그렇게 비싼 애플 컴퓨터를 써야 했던 것이었다. 원래 애플이 비싼것도 있지만, 당시 엘렉스 컴퓨터란 총판업체가 비싸게 공급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애플은 지금의 애플을 상상 못할 정도로 정말 몰락한 회사였다. 


 95년인가 96년에 신촌의 구,신영극장에서 본 '토이 스토리'도 잊을 수 없다. 엄청 재미있고 신기했던 그 작품이 스티브 잡스의 재기의 발판인 것도 몰랐지만, 2000년 초반 다시 학교에 가니, 애플의 컬러풀한 모니터 일체형 누드 아이맥과. 특이한 디자인의 매킨토시 G3가  동기들의 자취방에 종종 보였다. 당시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은 대부분 잘 사는집 자제들이었다. G3를 가진 동기형이 오양 비디오를 비롯해 여럿 동영상 창을 열고 동시에 플레이하는 신공?을 보이며 자신의 매킨토시를 자랑하던 일이 기억난다. 사실 이런 성능 보다는 아이맥 디자인의 혁신 같은거에 감탄했다. 영화에서도 지금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와 스티브 잡스가 아이맥의 가치와 혁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창조적 영감을 발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제품을 실제 처음 보았을때, 그냥 이쁘기만한 물건이 아닌 이걸 만든 사람의 철학이 스며있는, 예술 작품을 본 듯한 묘한 감흥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난 국내 엠피 쓰리 플레이어 업체인 새한 엠피맨의 제품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최초의 엠피 쓰리 플레이어를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 이었을 것이다. 당시 휴게실에서 선배들이 허리에 찬 플레이어를 보고 만보기냐고 우스개 섞인 질문을 던지던 일이 기억난다. 곧 애플에서 아이팟을 공개했고, 소니 워크맨의 혁명을 잇는 문화적 사건이 되었다. 엠피 쓰리 플레이어의 이런 과정을 보면서, 애플의 전략을 여실히 느낄수 있었는데, 그들은 물건을 파는 기업이지만. 단순히 물건만을 파는게 아닌, 그 제품을 통해 문화를 일구거나 재편하는, 즉 더 큰 가치창조를 하는 기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대 최고의 뮤지션인 U2의 보노를 만나, 음원제공을 약속받고, 그럼으로써 디지털 음원의 유통과 확산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이후 디지털 음원의 확산 과정에 대한 호불호는 제외하고서라도) 




 나의 첫 애플은 결국 2011년 말 맥북프로 인데, 쓰다보니,나같은 경우는 자잘한 것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일체형의 은색의 바디에 정밀하고 세밀한 작은 스피커 구멍들. 잠자기 모드일때. 본체 앞쪽에 마치 사람이 숨쉬는듯 작고 하얀 LED 불빛이 점멸하는 모습은 사람같이 살아있는 영혼을 느끼게 한다. 이런 소소한 것들 까지 신경써 디자인한 물건은 단순한 제품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무형의 감각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 내 정신과 손 끝의 설명할 수 없는 작용. 그리고 이 터치의 촉감은 단순한 사물성 이상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말하니 애플 추종자 처럼 들리겠지만, 난 카메라, 컴퓨터, 자전거, 자동차, 악기 등등의 사물에 어느 정도의 페티시즘이 있다. 자본주의하의 물신숭배의 의미가 아니라, 나랑 밀접한 관계의 사물엔 단지 무생물이 아닌 사물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 습성이라 할까..

 여하튼 2000년대 이후 최초의 아이맥, 아이팟 이래로 애플은 승승장구 하며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애플. 스티브 잡스의 탁월함은 전자기기 제품만을 파는 회사가 아니었단 점이다. 제품과. 소프트웨어의 일체. 그리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통해. 인간의 삶을 혁신하는데 선도했다는 점이다. 그 의도가 비즈니스 차원 뿐이라고 해도,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개척했다. 그 성공과 실패의 고단한 삶에서, 나는 무엇에 확신을 갖고 열정적으로 추구할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간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곳에 매진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기업의 가치를 드라마틱하게 일구었던 스티브 잡스의 일종의 자화상인데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선구적 가치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음 좋겠다. 이익창출 + 플러스 뭔가를..


 p.s> 처음 아이맥을 본 감탄의 여파를 이어 당시 애플의 주식을 샀었더라면, 이란 가정이, 요즘 경제 관련 책을 많이 보다 보니.. 자연스레 떠올랐다. 영감이 왔으면. 바로 해야해.. 곧 이 될지. 나중이 될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깐..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스터 (2012)  (0) 2013.09.19
관상 (2013)  (2) 2013.09.14
그해 여름 (2006)  (0) 2013.08.31
세편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단상  (2) 2013.08.25
감시자들 (2013)  (0) 2013.08.25


 내겐 어느해 여름에 대한 추억이 딱히 없다. 좋던 싫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쥐어짜봐도 여름은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나태한 폭염에 대한 원성이었고,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야 안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미천한 여름 추억은 배제하고, 이 영화속 주인공들의 풋풋한 여름 이야기에 웃음짓고, 가슴아픈 사연에 뭉클해 지는 것이다. 극장 개봉할 때도 그랬었지만, 간만에 한웅큼 그렁그렁 눈물을 움켜지고 가슴으로 꿀컥꿀컥 삼켰다. 아주 좋은 영화임에도 당시 흥행은 별로였던듯. 거의 텅빈 극장에서 왜그리 울음을 참았는지.. 


 아마도 비슷한 시기였을거 같은데,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도 이 영화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안타까운 청춘의 사랑을 그렸던것 같다. 이 영화는 후반부 두 주인공들이 처하게 된 상황을 배제하면 초중반 까지는 일반적인 풋풋하고 순수한 로맨스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농촌에 농활을 간 일군의 대학생중엔, 부유한 집 아들이자 시국상황에는 별 관심없는 주인공(이병헌)이 있었고, 시골에는 너무나도 청초한 수애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풋풋한 감정은 마치 내가 이병헌으로 빙의된듯이..완벽히 수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힐링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녀의 웃음에는 모든게 힐링이 되어 욕망의 억압과 슬픔의 광기는 스르륵 무너졌다. 여자들이여. 수애처럼. 웃어라..그럼 남자가 생길것이다. 이병헌이 수애한테 빠지게 된 계기, 노래, 허벅지?, 환한 미소는 나 또한 설레임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ㅜㅜ 거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압권은 간이 영화 스크린 반대편, 학교 창문에서 단둘이 앉아 영화 보는 장면 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이 서울로 온 그들에겐 시련이 급격히 다가온다. 손을 놓지 않았어야 하는 안타까움. 시대의 아픔은 그들의 사랑을 평생 갈라놓을 운명으로 뒤바꿔 놓는다. 두 배우의 출중한 연기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폭풍감동은 아니었을 거다. 두 배우의 눈물을 머금은 웃음은 연기이지만 아름다움의 비수 같았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편백 나무의 향기가 궁금해졌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상 (2013)  (2) 2013.09.14
잡스 Jobs (2013) : 나의 애플 이야기  (0) 2013.09.01
세편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단상  (2) 2013.08.25
감시자들 (2013)  (0) 2013.08.25
더 그레이, The Grey (2012)  (0) 2013.08.11


근래에 본 세편의 프랑스 영화들은 일련의 다양한 상념들을 일으키게 했다. 먼저 더글라스 케네디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빅 픽처'는 상당히 실망스런 작품이었다. '리플리' 같은 작품을 기대했었는데, 그냥 평범한 범작이 되어 버렸다. 특히 초반부의 주인공 내면의 상황 묘사들이 되게 피상적인데, 아마도 그런 여피족 삶을 살고 있던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렇겠지만, 그 큰 사건 전후로 벌어지는 묘사 들은 한결같이 심도깊지 못하고, 벌어진 일의 압축 언급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큰 변화에 선 주인공의 내면의 양상이 큰 공감이나, 스릴러적 긴장을 유발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또다른 삶. 그러니까 진정한 삶이긴 하나, 진정일 수 없는 딜레마에 갇힌 사진작가의 삶을 공감어리게 보여준다. 차라리 처음 소설을 읽을때 연상했던 배우, 브래들리 쿠퍼 주연으로 헐리웃에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감독은 구스 반 산트나 알렉산더 페인, 샘 멘데스 중에서.. 


 원작을 읽지 않았으면 또 어떤 감흥이었을까가 궁금해지지만 소설의 기억이 남아있는 나로써는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는 영화였다. 그런 면에서 영화 '리플리'는 얼마나 대단한가..배우들의 탁월한 매력과, 정체의 탄로를 앞둔 그 긴장감은..



 왕년에 천재 감독으로 추앙받던 레오 까락스 감독이 아주 오랬만에 돌아왔다. 4번째 작품 폴라X 를 종로3가 단성사 극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리뉴얼 하기 전이라 스크린이 작고, 관객석이 길쭉한 그 관은 홍상수 감독의 첫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이상한 영화적 체험을 하며 보던 기억이 있다. 영화와 현실의 이상한 조우의 느낌이라 할까. 현실의 삶처럼 영화도 계속 이어질거 같은..  난생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난, 이상한 체험이었다. 좋은 영화 작품은 그런 생경한 체험을 작던 크던 던지는 것일 게다. 레오 까락스는 첫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나쁜피''퐁네프의 연인들'로 이어지며 대단한 영화적 감각을 일깨워줬다. 그러다 (마지막 이었던) 네번째 작품 폴라X 이후로 잊혀진 감독이었다. 예전의 단성사 극장이었으니, 정말 오래된 잊혀진 기억들을 헤집고 근래에 다시 레오 까락스란 이름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감독의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이란 배우도 함께.


 사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말할지 감감하다. 대단히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며, 아름답고, 추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트와 광기. 그런걸 느꼈으나 감독이 말하려는 의도나 의미를 읽기에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다. 영화는 구체적 현실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는 모호한 추상의 지점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란 매체에 대한 감독의 헌사 같은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도.. 모션 픽쳐에 대한 성스러운 다면성을 현실과 영화, 실제와 가상의 삶, 가상속의 가상에 대해서 어지럽게 관통한다. 재미있다기 보다 흥미로웠는데, 영화 매체에 대한 감독의 탐구가 대단한 걸작 같다가도 다른면에선 작의적 허세 같기도 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영화였다. 고로. 진짜 예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시 본다면.. 글쎄.. 난 미국산 예술영화인 데이빗 린치 감독이 떠올랐다. 



 일본에 젊은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프랑수아 오종이 있다. 그들의 모든 작품들은 섭렵해도 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수아 오종은 '스위밍 풀''5X2''타임 투 리브''시트콤'등등의 작품으로 이름을 인지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정도로 그만의 색깔이 있었다. 문학적인 면이 영화의 저변에 깔려있다고 느꼈다. 이 작품 또한 글쓰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한 가정의 인물들을 관찰하고 글쓰기를 통해서 상상과 허구의 나래를 펼치는 지점이 영화속의 글쓰기. 이 영화적 허구..상상..관음적 관찰의 욕망등..다양한 상념을 불러온다. 이런 것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다.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야기속에 풀어 내는 능력이 전작들에 비해 범접할수 없는 경지에 오른듯 하다. 프랑스 영화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오랜 편견을 오종 감독은 특유의 감각으로 타파한다. 글쓰기와 닿아있는 이야기로써의 영화에 대한 엿봄을 통한 상상적 허구에 대한 욕망을 위트 있게 그려 낸다. 사실 가장 재밌는 부분에서 갑자기   졸음인지 모를 순간 의식이 끊겨서 다시 한번 봐야 할 것이나, 영화의 매 순간들이 흥미롭게 몰입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정신이 깜박했을까나.. 현대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많이 나와 여러가지 모로 예술. 창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다시 이 영화를 보고 곰곰히 음미해 봐야겠다. 글쓰기에 대한 소재의 영화였던 구스 반 산트의 '파인딩 포레스터'에 비교하면 이 영화는 참으로 발칙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스 Jobs (2013) : 나의 애플 이야기  (0) 2013.09.01
그해 여름 (2006)  (0) 2013.08.31
감시자들 (2013)  (0) 2013.08.25
더 그레이, The Grey (2012)  (0) 2013.08.11
더 테러 라이브 (2013)  (0) 2013.08.10



 이 영화가 개봉했을때는 주연 배우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챙겨 보질 않았다. 아주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배우들의 트리오 였다. 뒤늦게 이 영화를 보고나니, 작년부터,베를린-신세계-감시자들-더 테러 라이브 를 잇는 한국형 액션영화?의 수작들을 편성하게 된 것 같다. 

 이 영화의 꽉 짜여진 만듦새는 마치 헐리웃 영화의 흥행작을 본 듯한 몰입과 재미를 주었다. 


 경찰의 지휘본부와, 작전차량안을 빼고 모두 서울의 로케이션 촬영을 한 것도 인상깊고 고무적이었다. 희뿌연 공해로 텁텁한 서울의 겨울 경관들과 거리나 골목,지하철,편의점 등등. 현실의 서울의 있는 그대로의 공간들은 일상 생활속에서 암암리에 감시자들의 활약이 이뤄지고 있다는, 즉,영화속과 현실의 실상을 단절시키지 않고 익명의 군중속 시선의 감각을 일깨운다. 


 특수범죄와 특수경찰들의 세밀한 작전들은 꽤 흥미와 재미를 제공한다. 제목 그대로 경찰들의 감시망을 더 세밀하고 집중적으로 보여주지만, 악역인 정우성의 지능적 계획(범죄전 설계)도 좀 더 디테일 하게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그 캐릭터의 비밀(사연)같은게 좀 더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었으면 하는..한마디로 악역의 캐릭터가 심층적이었다면 이 영화는 특수전문직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를 넘어서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심리(감시와 폭력,선과 악)를 표출할 수 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 같은 지점에 놓였을거다. 너무 욕심이 큰가..어쨌거나 이 영화는 500만이 살짝 못 미치는 관객이 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최뭐시기 감독의 도둑들 보단 훨씬 잘 만들고 좋은 영화였다. 감시자들의 후속작도 나올수 있을 거 같은데, 좋지만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본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해 여름 (2006)  (0) 2013.08.31
세편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단상  (2) 2013.08.25
더 그레이, The Grey (2012)  (0) 2013.08.11
더 테러 라이브 (2013)  (0) 2013.08.10
설국열차 (2013)  (0) 2013.08.06



 더위와 습기의 끈적거림에 머리가 더이상 어떠한 사고과정에 태업했을때, 영화 한편을 보는 것은 아주 훌륭한 휴식이 되어준다. 이렇게 아무런 정보 없이, 마음 다 비우고 그저 눈과 귀에 현실의 더위를 잊게 하는 감각의 집중을 제공한다. 좋은 영화는 알게 모르게 마음의 각성을 불러온다. 몰입의 재미로 끝나는게 아니라, 이 순간, 오늘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바꾸게 한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인간을 통해 삶을 대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우연찮게도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 알라스카 혹은 시베리아의 극한 자연환경의 배경에, 소름끼치도록 무서움을 보여주는 늑대무리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어떠한 좀비, 공포물 보다 더 이러한 자연의 재앙 앞에 진짜 공포가 있는 것이다. 

 예전에 눈보라 치는 설악산의 늦은 오후에 인적드문 곳을 걷고 있자니 막막한 두려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스멀거리는 느낌을 상기해 본다. 또 외계의 땅 같은 화이트샌드 사막에 홀로 선 그 기분, 결국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던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속 같은 지경은 아니어도 대자연의 공포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영화속 추위를 보다보니, 이런 더위쯤이야 라고 읊조리게 된다. 하지만 빤스만 입고 있어도 너무 덥구만..


 주인공 리암 니슨 (오트웨이) 은 극지에서 석유 시추하는 회사에 고용된 안전 요원이다. 저격용 총을 들고 늑대들의 습격으로부터 직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늑대들이 사람을 향해 전광석화로 달려드는 과감함에 기존의 늑대에 대한 상식보다, 훨씬 더 무섭다. 영화를 보다 보면 늑대들의 그런 용맹함과 끈질김은 자기들의 영역 싸움에도 기인하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그런 오지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에서 오는 듯 하다. 


 영화의 시작, 주인공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성찰적인 자아를 들려준다. 그는 슬픔과 절망에 쉽쌓인채 글을 쓰고 있고, 떠나버린 옛 연인의 사진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자세한 사연은 모르지만 사랑하는이에게 버림받은, 혹은 잃은 상처가 지금 이런 극한의 오지에서 철저히 고립된 채 살아가게 만든 것이다. 자신의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 소리에 다시 한번 더 삶 속으로, 두려움에 맞서 최고,최후의 전투를 향해 오늘 살고 죽을것이다.라고 읊조린다. 그가 쓴 글은 상처받은 영혼에 신념이 되어주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을 때, 어떤 부적 처럼 그에게 힘을 준다. 인생의 위기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념이었다. 


 그를 포함해 노동자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 살벌하게 실감난다. 예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얼라이브'에서 처럼. 눈보라 치는 설원에 갈갈이 뿌려졌다. (영화속 생존자들이 '얼라이브' 영화를 언급하는데, 재미있다.)


 심각한 부상으로 죽어가는 동료에게 주인공이 편히 죽게끔 인도하는 과정이 인상깊다. 리암 니슨의 무게감과 카리스마가 물씬 느껴지는데, 제목(회색) 처럼 흑과 백, 삶과 죽음의 중간의 찰나에서 사실을 인식시키고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 자연스럽고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들이 생존을 도모할때, 추위와 배고픔 보다 더 큰 위기는 늑대들의 공격이다. 이때 부터 늑대와의 사투가 펼쳐진다. 사운드 디자인으로 연출한 늑대의 소리는 공포를 배가시킨다. 

 한명씩 죽어가는 와중에 그들은 이런 상황이 닥친것에 대해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교환한다. 주인공 오트웨이는 신, 천당을 믿지만 그의 신념은 철저히 실존주의에 입각해 있다. 현실에 처한 이 순간의 진실이 오로지 진리란 신념. 어떤이가 자기 딸에 대한 추억을 체념하며 말하자. 그는 좋던 나쁘던 어떤 기억들이 네가 1분이라도 더 살고 싶게 한다고, 삶을 위해 싸우게 한다고 말한다. 

 어릴적 아버지와의 추억을 말하며. 아버지가 쓴 단 네 줄의 시를 읊는다. 

 " 다시 한번 싸움 속으로

   내가 맞이할 최후, 최고의 전투를 향해

   오늘 살고 또 죽을 것이다. 

   바로 이날을 살고, 또 죽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이 독백투로 쓰던 글의 요지다. 



 마지막 장면, 그는 홀로 늑대굴의 우두머리 늑대를 눈앞에 두고 최후의 싸움을 준비한다. 손에 미니 양주병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테입을 둘둘말아 고정시켜 싸움을 준비하며 다시 한번 네 줄의 시를 읊는다. 처음에 스스로 죽으려 했던 자가, 끝까지 생사의 악전고투에서 포기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 기억에 남을 엔딩씬 이었다. 이 영화의 감동은 삶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나름 숙고하게 만든다. 지금 현재에 철저히 집중하고 시시각각 당도한 난관을 헤쳐나가는 길의 숭고함을 보여준다. 처한 상황에 대해 절망은 할 수 있으나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홀로 남게 될 때 까지 인상깊은 씬들이 많지만, 글이 더 늘어질까봐, 여기서 줄인다. 

 자막이 끝까지 다 올라가고. 마지막 짧은 영상은 강렬한 울림을 준다. 신의 존재와 삶에 대해 숙고할 여운을 길게 남겨 놓는다. 대단히 인상깊고 마음을 요동치게한 영화였다. 이렇게 우연한 걸작을 만나다니. 이런 한여름의 폭염에 축복이었다. 개새끼들의 오싹함이란..ㅎㄷㄷ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편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단상  (2) 2013.08.25
감시자들 (2013)  (0) 2013.08.25
더 테러 라이브 (2013)  (0) 2013.08.10
설국열차 (2013)  (0) 2013.08.06
비포 미드나잇 (2013)  (2) 2013.05.31



 설국열차에 이어서 이 영화 또한 참 재미있게 봤다. 영화 초반부 부터 긴박하게 막 달려나가는데, 그 긴장과 몰입도는 감독의 연출을 포함한 편집의 감각과. 배우 하정우의 연기에 기인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짧은 컷 편집의 리듬 가지고 관객의 감정의 집중을 쥐락펴락하는 경지. 폐쇄된 공간안에서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머릿속 갈등상황을 하정우는 한 치의 흐트럼 없이 연기한 것 같다. 이런 편집 기법이라면, 같은 연기를 무수히 반복했을 텐데, 아님, 디지털 환경의 변화로 여러대의 카메라를 돌렸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하정우의 연기, 특히 목소리는 초반부터 끌림과 집중을 제공한다. 


 사람들이 '폰부쓰' 와 많이 비교하던데, 그래도 나는 이 영화가 더 좋은것 같다. 테러범의 이유, 사연이 개인적 원한 보다는, 사회적 부조리함에 대한 공감 내지 안쓰러움이 깔려서 일까. 이상하게도, 이 영화나 폰부쓰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안 난다. 몇일전에 봤음에도 이 영화는 더더욱.. 워낙 몰입을 해서 그런지. 결말에 긴장이 확 풀어지면서 기억이 안 나는듯..


 


 하정우의 전성기가 롱런했으면 좋겠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시자들 (2013)  (0) 2013.08.25
더 그레이, The Grey (2012)  (0) 2013.08.11
설국열차 (2013)  (0) 2013.08.06
비포 미드나잇 (2013)  (2) 2013.05.31
고령화 가족 (2013)  (4) 2013.05.26



 좀 아쉽긴 해도 재밌게 보았다. 아마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너무 기대가 큰 것도 있을 것이다. 봉준호의 작품에는 아쉬운게 더욱 크게 보이는 점은 그만큼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이 인정받았고 전작들을 넘어서는 뭔가를 기대하기 때문이리라. 더더욱 내놓아라하는 서양 배우들과 스탭진들, (한국자본으로 만들어진 한국영화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다른 비주얼, 김지운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박찬욱은 근본적으로 내 취향에 안맞고, 봉준호 감독의 이 영화만큼은 무척 기대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영화는 의미있고 재미있게 잘 보았지만 봉준호이기 때문에 아 !!


 초반부 설정이나 그들이 처한 구조적 상황들이 상당히 몰입이 잘 되었다. 레 미제라블의 미래형 기차버전 같아, 그들이 어떻게 혁명을 이루어 갈지가 무척 고무되었다. 주인공 배우가 존 푸르시안테 외모 같아서 친근한 느낌이고, 그의 심복인 젊은 아이는 어디서 많이 본 배우였는데,?? 그러다 송강호와 그의 딸 고아성이 나오고 우리말이 나오면서 뭔가 타이트한 긴장감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송강호의 특유의 한국말 대사와. 그 환각물질에 쩔은 캐릭터가 좁은 기차안 꽉 막힌 상황의 답답함을 어느 정도 숨통을 틔여준 느낌이다. 그의 역할도. 그런 것이고(문 따는 사람), 매트릭스에서의 키메이커 같은 느낌.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송강호의 캐릭터는 뭔가 긴박하고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있으나 마나한 느낌의 부록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영화를 표면에 드러난 대로 너무 현실의 구조적 계급론에 입각해서 보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감독도 딱히 그것을 의도하지 않은 듯 하다. 그랬었다면 중간계급이나 상류층의 구조적인 묘사들이 더 있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영화는 교조적으로 흘러갔을테고, 유치한 프로파간다가 될 듯. 영화는 영화인거고 영화를 통해서 어떤 혁명의식을 도취시키는 프로파간다도 아니고. 현재의 영화는 오락으로써의 역할이 더욱 큰 것이니까. 다만 이런 설정, 의도를 통해서 조금은 우리의 삶과 시스템에 대해서 성찰하고 의심을 가져보는 건 의미있다고 본다. 표면적인 상징을 넘어서 재미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담론을 이끌어 내는데 어느정도 성공한 느낌이다. 그것이 조금 허무할지라도, 뻔한 틀과 상징과, 교훈적 태도를 벗어나는 어떤 디스토피아적 위트가 숨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느껴졌다.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야외 생물체 북극곰과의 조우라니.. 어린아이들이 코카콜라의 광고를 보고 북극곰을 사나운 맹수가 아닌 우리의 친구라고 느낀다고 하는 마주침.


 초반부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기차의 앞으로 갈수록 마무리에 대한 기대와 걱정속에 결국은 뭐랄까. 퍵퍵한 투수전 와중에 깊숙한 파울플라이 아웃으로 3루에 있던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기여이 1점을 뽑은 느낌이다. 이걸 보고나니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 1,2 는 다시금 너무 완벽한 영화같단 생각이..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그레이, The Grey (2012)  (0) 2013.08.11
더 테러 라이브 (2013)  (0) 2013.08.10
비포 미드나잇 (2013)  (2) 2013.05.31
고령화 가족 (2013)  (4) 2013.05.26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Redux  (6) 2013.05.25


달달한 로맨스는 사라지고 현실의 리얼함만 남았다. 뭐 나쁘다기보다 3부작의 마지막을 진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끔 했다. 

 이 비포~ 시리즈는 두 남녀가 무수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비포 선셋 이후로 결혼 8년차? 인 그들은 여전히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나는 이 점이  그들이 어떤 문제에 봉착했든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살아갈수 있는 것이고 어떠한 난관에도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청춘의 환상적인 로망스였던 비포 선라이즈(1995)는 세월에 의해 무참한 추억으로 묻혀졌지만, 시간과 공간의 예술인 영화가 담는 생의 어느 한떄를 통해 많을 걸 유추하며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들의 삶의 궤적, 실제 시간의 흐름만큼 가상의 그들 삶은 상징적으로 관계의 문제를 첨예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그들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에 중간이후 잠깐 졸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호텔방에서 줄리 델피가 상반신을 노출한 모습에 좀 놀랬다. 꺼리낌없는 아줌마의 자태가 물씬, 비포 선라이즈 에서의 줄리 델피의 몽환적인 프렌치 쉬크는 현실의 여편네로 등극. 서로 애무하다가 또 잠깐 졸았는데, 다시 깨나고 보니 둘이 싸움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주 본질을 꿰뚫어가며 돌직구를 마구 날렸다. 좀 심각해 보였는데 난 그래도 그렇게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그들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남자입장에선 좀 피곤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것도 사랑의 과정이 아닐까.  

 그들이 막 싸울때, 에단 호크의 퍽퍽한 얼굴을 보다 보니, 실제 부인이었던 우마 서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건 영화와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라는 증명같기도 하다. 이런점이 다른 비포 시리즈에 비해 이 영화만의 강점인것 같다. 그래도 난 비포 선라이즈의 설렘이 더 좋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테러 라이브 (2013)  (0) 2013.08.10
설국열차 (2013)  (0) 2013.08.06
고령화 가족 (2013)  (4) 2013.05.26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Redux  (6) 2013.05.25
남쪽으로 튀어 (2013)  (0) 2013.04.07



 천명관의 원작 소설 만큼이나, 재밌게 영화를 관람했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딱 그런 인물들이 완벽한 캐스팅과 연기로 구현됐다. 특히 박해일은 연애의 목적 이후로 정말 연기를 잘한다 라고 느꼈다. 

 이런 막장스런 찌질한 가족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 우리가 너무 삶의 이상향이나 환타지에 가까운 환상 속에서 타인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고 재단하며 결핍의 불행을 느끼며 살아왔다면, 평범함 이하의 가족의 삶을 통해..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는 것인데, 나 혼자만 불행하다고 느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어진 삶에 최대한 행복을 느끼며 살자 라는 취지가 있다. 이런 가족의 삶도 있는데 용기를 잃지 말고 네 삶을 살아가라.. 이거 써놓고 보니. 결말에 박해일의 나레이션이 이런 얘기 였던 거 같다.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세상살이에 이래저래 치이고 다시 엄마 집으로 모인 자녀들을 위해 군소리 없이, 잘 먹이려고 삽겹살..된장찌게를 열심히 해다 먹이는 모습..그리고 치고받고 하다가도..엄마의 상 앞에선 아주 맛있게 먹는 가족들.. 한 핏줄도 아닌 콩가루 집안이지만, 식구란 것은 같은 찌게를 떠먹는 관계가 진정한 가족이란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삽겹살이나 된장찌게 뿐만 아니라 피자.. 짱구 과자 등등..먹는 장면에 너무 군침이 흘렀다. 생각해 보니..남쪽으로 튀어 에서도 섬의 시골집에서 가족이 오순도순 밥먹는 장면에서 오롯한 평화를 느꼈듯이, 밥을 같이 먹는 관계의 행복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뛰어난 배우들이 연기가 자잘한 재미를 불러온다. 윤제문과 박해일의 천연덕스런 백수 연기는 인간의 고귀함과는 상종할 수 없는 수준이다. 박해일은 그나마 나은데, 미용실 아줌마 꼬실때, 이 인간의 진가가 드러난다..이런 사소할듯한 말투와 표정에서 영화는 현실의 암울함에서 벗어나 소소한 삶의 재미를 불러온다. 윤제문이 중학생 조카의 팬티를 뒤집어쓰고, 자위하다가 식구들한테 걸릴때, 최악으로 치닫지만 또 식구가 위기에 쳐했을땐, 살신성인의 자세로 몸을 버리며 구한다. 을왕리 해수욕장에 놀러가 횟집에서 밥먹을때, 다른 일행과 자녀들이 치고받고 싸울때, 어머니의 멍한 표정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이 장면만은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이..비장함을 드러내 준다. 여하튼 있는 그대로, 얼마나 한심한 인생이던, 자신의 품으로 보듬을 수 있는 어머니의 힘은 위대했다. 





  걸작 이라 불리는 작품은 세월이 흘러도 계속 새로운 울림을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한번의 감상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나이가 듦어감에 따라 새롭게 보인다. 예전에 보았던 작품도 완전히 새롭게 재인식되는 경험. 걸작은 계속 말을 건다. 그런 작품과의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다. 미래의 언젠가 이 영화를 보며, 20살 무렵 처음 봤을때, 몽환적으로 졸다 말다 반복했던 어느 나른한 토요일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과정에 어떤 인식 차원이 변해왔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묵시록..은 계속 진화 한다. 


 비디오 테잎으로 처음 보았을땐, 2시간여 분량이고, 꽤 지루한 영화였다. 그러나 3시간 20분여의 리덕스 판이 나오고 다시 보았을 땐, 이 영화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었다. 

 대부 1,2로 성공을 이뤘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영문학의 명작이라 불리는 조셉 콘래드의 소설을 'Heart of Darkness'(1902) 각색해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원작 이상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의 뼈대는 단순하지만, 커츠 대령을 만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들 속에 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철학적인 상념을 불러오게 한다. 원작은 모더니즘 초기 식민지 야욕의 서구의 광기어린 탐욕과 비이성을 그려내었다면, 지옥의 묵시록은 1975년 종전한지 얼마 안된 베트남 전쟁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한 반전영화의 명작으로 여기는것 이상으로 평가받는 요소는 전쟁의 비판의식을 넘어, 인간이 가진 선과 악, 전쟁의 의미, 일상의 광기와, 자유에 대한 생각등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원제목속의 Now의 의미가, 계속 현재의 우리의 삶에도 적용해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우의 의미가 지옥인지. 어떤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삶의 관점과 태도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씬은 대단히 유명하다. 영상과 사운드의 편집 효과와, 음악의 조화는 아주 함축적으로 광기어린 인간내면의 몽환성을 그려내었다. 60년대 후반 히피즘과 싸이키델릭 음악의 대표적인 밴드 도어스의 노래 'The End'가 시작되며, 슬로우 모션으로 정글의 모습이 드러나고, 흙먼지가 불며 UH1헬기가 기우뚱하게 날아간다, 정글에 엄청난 화염이 일고, 뒤집힌 윌라드 대위(마틴 쉰)의 얼굴이 중첩된다. 슬로우 모션과. 디졸브의 이중,삼중 효과는 음악과 함께 혼돈으로 치닫는다. 천정위에 돌아가는 선풍기의 소리와 헬리콥터의 소리가 비슷하게 오락가락 중첩되며 실제와 전쟁의 환상이 오간다. 몽롱한 영상과 음악이 점차 먹먹한 선풍기 소리에서 창밖의 뚜렷한 헬기소리로 변하고, 주인공은 호텔 창문의 블라인드를 제쳐 거리를 바라보며, 독백으로 '사이공'이라 말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나면. 노래의 제목 같이.. 끝과 처음이 구분이 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Horror..Horror 하며 죽는 커츠 대령의 미친 모습과, 처음 윌라드 대위의 정신 분열적 모습은 다르지 않다. 선풍기 팬이 돌아가는 모습과 소리. 영화에서 계속 나오는 헬기의 로터 소리는 지옥에 갇혀 돌고 도는 어떤 공포를 말하는 듯 하다.  


 이 오프닝씬은 영상 편집과 사운드 디자인, 음악과 영상의 조합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교과서로 불린다. 위에서 말했듯 전체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 처음의 이 씬을 생각하고, 제목의 의미와 호러..호러의 불쾌한 여운까지 생각한다면, 한편의 장대한 시를 보고 들은 느낌이 난다. 생의 소름의 시..


 영화의 제작 과정은 이 영화의 내용과 별 다를게 없이 묵시록 적 이었나 보다. 필리핀 정부의 지원하에 촬영이 진행됐는데, 일정대로 헬기와 조종사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촬영 기간이 장기간 지속되었고, 주연 배우. 마틴 쉰의 심장 발작과, 무더운 날씨에 지쳐가며 신경 쇠약까지 왔다고 한다. 한마디로..점점 전쟁의 광기에 미쳐가는 영화속 이야기가 현실의 촬영 환경 또한 실제로 그러한 극악의 상황으로 전개 되었다고 한다. 강력한 태풍이 와. 촬영 장비 세트를 다 날려버리기도 하고, 코폴라 감독은 당시 금액으로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자기 집을 담보로 빛을 져가며 충당했다고 한다. 영화 제작의 내부적 갈등이. 영화 내용과 주제와 일치한다는 점이 신화적으로 들린다. 코폴라 감독은 이 영화에 너무 진을 쏟은 나머지 그 후에 별다른 작품이 없었다. 


 

 미국이 전쟁을 하는 방식대로 촬영을 했고, 그러한 환경속에서 지옥을 맛보는 배우와 스탭들의 노고가 영화 보는 내내 양가 감정으로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물량의 전쟁의 스펙터클 속에서 오락을 느끼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끔직한 살육의 풍경에 몸서리쳐진다. 초반부의 헬기 기동부대가 평화로운 베트콩 마을을 폭격하는 씬은 게임을 하듯 닥치는 대로 폭탄과 총알을 쏟아붓는 장관?을 보여준다. 히틀러가 찬양했던 바그너의 행진곡 풍의 음악은 정말 그런 일방적인 전쟁의 모습에 위풍당당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미국의 무지막지함은 실제 F5 전투기 편대가 네이팜 탄을 투하해 엄청난 화염을 토해내는 장면으로 화룡정점을 이룬다. 미친 전쟁에 대한 감독의 화려한 응답같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실제 베트남 전쟁은 말도 안되는 거짓의 어거지로 이루어진 참상이었다. 그런 수치스러운 전쟁에 우리나라 군인 30여만명이 파병되었고, 사망자 수를 공식적인 자료로 밝히진 않지만 대략 8만여 명의 국군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 군인들의 활약상이? 악명 높다. 언젠가 친구가 참전군인이었던 택시 기사의 무용담을 듣고 이야기 했는데, 토가 나올정도로 인간의 탈을 쓴 동물들이 혐오스러웠다. 그런 살육을 아무렇지 않게 추억으로 토해내고 정당화하는 미친놈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그런 더러운 피를 흘린 대가로 이 나라가 경제 부흥을 일구었단 역사도 수치스럽다. 


 1975년에 종전했으니까 이 영화는 종전하고 거의 바로 제작된 셈이다. 60년대 후반의 여러 사회 변혁기를 거치면서, 전쟁을 거친 개인의 묵시록적인 내면성은 시대의 초상으로 대중들에게 섬뜩한 자각을 심어주게 한다. 전쟁을 바라보는 인간의 양가 감정. 파괴에의 욕망과 삶의 일상성의 욕망이 충돌한다. 후반부 커츠의 왕국에 아무렇지않게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과 천진한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은 이성의 판단이 모호해지고, 원주민의 제의식에 바쳐져 도끼로 죽음을 맞는 물소와 커츠 대령의 죽음은 윤리를 넘어서는 신성한 감마저 든다. 현실에 남겨져 지옥의 굴레를 돌고 도는 삶의 모습은 다시 처음의 오프닝으로 되돌아가 몽롱한 의식으로 되풀이 된다.   


 걸출한 전쟁 영웅이 밀림으로 들어가 적과 아군의 구분이 사라진 곳에서 왕노릇하며 널부러진 살육의 배경속에서 진정한 자유에 대한 철학적 상념을 뱉어낸다. 미친놈이지만 우리 또한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런 걸출한 인물을 맞닥뜨린 윌라드 대위. 과연 그는 임무대로 그를 처단하고 전쟁의 광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처음과 마찬가지로. 도어스의 '디 엔드'가 주술적으로 흐른다. 



 

 (코폴라 감독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쓸 때는 어떤 착각으로 죽은지 알았네요.)

P.S.  코폴라 감독이 죽었을때, 엠비씨에서 이 영화(리덕스 판)을 더빙해서 방영하는 걸 찜질방에서 잠시 본적이 있다. 이 위대한 감독에 대한 예우였을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리 심야라지만. 3시간이 넘는 걸. 더빙 까지 해 줬으니. 도어스의 음악적인 리더 였던. 키보디스트. 레이 만자렉 옹이 몇일 전에 돌아갔다고 한다. 영화학도 였던 짐 모리슨의 끼 를 알아보고 중용해, 시대의 전설을 만들었고, 싸이키델릭 음악의 큰 발자취를 남긴, 호탕한 지성인 이었던 사람이었다. 짐 모리슨에 비한다면 참 오래 살았다... 위대한 예술가님들의 명복을 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포 미드나잇 (2013)  (2) 2013.05.31
고령화 가족 (2013)  (4) 2013.05.26
남쪽으로 튀어 (2013)  (0) 2013.04.07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하이 피델리티 High Fidelity (2000)  (0) 2013.03.26
피아니스트 (2002)  (1) 2013.03.10



 우연히 본 이 작품에 왜 이렇게 마음이 동요되는지, 봄을 맞아 나의 유토피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 소식을 들은적 있다. 감독이 촬영 현장을 이탈한 사건. 그게 이 영화였다. 자세한건 모르지만 주연배우 김윤석 과의 갈등이라고 들었다. 배우의 월권행사가 심했었던듯. 영화를 보면 알겠지지만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 아버지 캐릭터에 너무 빠져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영화의 크레딧 시나리오에 김윤석의 이름이 올려져 있는거 보니, 막판에는 김윤석의 주도로 찍었다는게 얼추 신빙성이 있어진다. 


 사실 이런 내분의 분파를 겪으면서 좋은 작품이 절대 나올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작품은 예외다. 원래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 소설이 훌륭한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잘 살려낸 연출과 감초들의 자잘한 연기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후반에 삐걱거렸을지 몰라도 애초에 준비를 많이 한 영화라는게 느껴졌다. 아무튼 흥행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무리가 잘 되었고, 나는 이 영화의 이상한 매력에 빠져들어 원작 소설까지 후두룩 읽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의 눈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도 안하고, 여행이나 다니며 집에서 뒹글거리기나 하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과는 한참이나 멀다면 얼마나 열등감이 많을까. 또 국가의 모든 제도의 강제를 거부하는 투사적 면모 때문에 어디서건 분란을 일으킨다면, 꽤 심정이 복잡할 것이다. 주된 시선은 이 중학생의 시선으로 본 나와. 우리가족의 성장기 같은 것이다. 거기엔 우리가 잊고 살지만 중요한 인간의 가치들이 속속들이 스며있다. 


 아버지의 아나키스트적 행보는 극단적이긴 해도 심히 공감된다. 국가, 국민에 대한 거부. 겉만 번지르르하고 그럴싸한 말이나 생각만이 아닌, 실천과 행동은 이 작품의 전체를 올가메며 재미와 감동을 준다. 극단적인게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추구는 사회나 국가의 일반적인 통념과 충돌하기 마련인거고 자신의 삶을 타협하지 않는, 현대자본주의 생활의 (은퇴한) 체 게바라 같은 인물이 나온것이다. 


 그러한 아버지 밑에서 세남매의 아이들은 평범한 가정을 소원하지만, 아버지의 굳은 신념과 가치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고, 아이들도 점차 무엇이 옳고 좋은 삶 인지를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이미 어머니는 그러한 아버지를 사랑했던거고, 어떠한 역경에도 함께 의지하며 같이 한다. 내겐 이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깊었다. 진짜 부부란 이해타산이나 해야만 하는 결혼의 제스처가 아니라 이렇게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서로를 보완해 주는 관계일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들섬으로 이사한 가족이 전기도 안들어오는 낡은집을 수리해서 사는 모습이었다. 천혜의 자연속에서 평온하고 자급자족의 삶은 유토피아란 이런것이다 라고 말해 준다. 아마도 이런 장면들이 주는 무언의 메시지들이 좋은 삶, 행복한 가족은 무엇이란 것을 상기시킨다. 


 


 


    서양 대중음악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이 영화는 무척 재밌을 것이고, 더더욱 연애에 신통치 않거나, 꿈과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고, 일상의 굴레에 갇혀있다면 무척이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음악광에 레코드 가게 사장이니까, 영화의 밑바탕엔 음악이 깔려있고, 제목 또한 음향에 관련된 것이다. 음질 관련해서 하이 파이. 로 파이 할때..그 High Fidelity. 직역하면 고 충실도. 은유해서 촘촘히 메워진 삶의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진정한 어른이 아닌 사람들의 성장기 이다. 


 근데 한글 제목은 손발이 오글거릴 유치한듯 하지만 또 언뜻 좋게 생각해보면 영화를 잘 함축한 것도 같다. 그러나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한글 제목 때문에 영화가 평가절하 되거나 홍보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듯 하다. 


 좀 예전에 봤었고, 당시 닉 혼비의 원작 소설도 읽었었다. 그런데 근래에 다시 본 이 영화의 주인공에 대한 생각은 예전에는 그 캐릭터에 공감이 많았다면, 지금은 왜이리 찌질하고 미성숙한 인간으로 보이는지, 내가 그동안 변한건가.. 아님 그런면을 부정하려는 관점의 차이인가.. 


 닉 혼비의 소설속 주인공들은 항상 그와 같다. 몸의 나이는 어른이지만, 정신은 어린이와 같아서, 그것도 모른채 자기 세상속에서 어린 왕자로 평생을 살아가려는 어른의 환타지와 현실의 충돌속에서 한발짝 성장한다는 이야기. 대표적으로 이 영화와. '어바웃 어 보이' '페버 피치'가 그랬다. 작가 본인이. 음악광이자, 아스널 축구팀 광팬으로 본인의 이야기가 녹아있고, 현대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모든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재와 주제이다. 각자의 섬에서 벗어나 세상과 타인과의 교류속에서 삶은 있는거라고..


 원작 소설 보다야 못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면 참 므흣해진다. 주인공 존 쿠삭도 좋지만. 레코드 가게의 점원인.. 대머리 소심남과..마초 또라이 잭 블랙의 감초같은 연기. 그리고 무수한 음악 이야기들. 단역으로 팀 로빈스 나 캐서린 제타 존스. 그리고 존경할만한 록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등장도 반갑다. 

 

 영화의 시작은 존 쿠삭의 애인이 이별 통고를 하고 떠나는 데에서 시작한다. 음악이나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것일 수 있는, 순위 매기기.. 자신의 옛 연애를 처음부터 되집어 보는 주인공. 자기의 인생은 뭐부터가 잘 못 됐을까.. 이별의 경험은 성장을 위한 발판이고, 그는 생각만이 아니라 직접 그녀들을 찾아나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존 쿠삭은 직접 카메라를 향해, 관객에게 말을 한다. 자기애가 투철한 사람들이 하는 작법이다. 우디 앨런의 연출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찰하는 존재로서의 한 소심한 인간을 코믹하게 잘 그려내었다. 질투하고, 이율배반적이고, 비참한 인생을 노래하는 음악에 저당잡힌 이상한 남자들. 음악을 통해 진일보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영화의 첫부분 대사.."불행해서 노래를 듣는 걸까? 아님 노래를 듣고 불행해지는 걸까?". 요 는 변화할 노력조차 하지 않는 무능과 무지이고, 현재의 삶을 개선시킬 비전의 부재와 안주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남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좋은 여자이다. 자신의 무능을 증명해줄 거절이고 찌질함을 밝혀줄 거울같은 마음이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Redux  (6) 2013.05.25
남쪽으로 튀어 (2013)  (0) 2013.04.07
피아니스트 (2002)  (1) 2013.03.10
식스핏 언더 Six feet Under _ 2001~2005  (0) 2013.03.03
늑대소년 (2012)  (1) 2013.01.23

어제밤, 잠 자기전 물먹으로 내려간 사이, 잠시 TV를 켜니 EBS방송에서 하고 있었다. 한번 본 영화였지만 일어날수가 없었다. 그동안 영화로 많이 보았던 홀로코스트 내용이지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작품을 만나고 알아보는 타이밍이 맞았다고 할까. 고등학교때 쉰들러 리스트의 감동보다도 지금의 이 영화의 여운의 깊이가 진하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처한 상황 안에서 보느냐, 제3자의 관찰로 홀로코스트를 보느냐의 차이인것 같다. 실제 경험과 사실 기록의 재현은 엄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그 당시에 가족이 몰살당했다고 한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는 폴란스키 감독만이 할 수 밖에 없는 특별한 영화 이상의 작품이 되었다. 


 전쟁상황하의 절대폭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하게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리는지, 다시한번 인간의 나약함과 잔인함을 느끼게 한다. 벌레가 된 인간들이 어떻게 죽어가고, 미약한 생명을 이어갔는지,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주어 참 숙연해진다. 한 예술가의 살기 위한 처절한 과정은 대단한 영웅주의를 말하는게 아니라 인간이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가 다른 동지들이 저항하고 반란하며 죽어갈 때 조차 숨어서 바라보는 그의 행동에 돌을 던지지만 나는 그가 그답게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독일군 장교와 맞닥뜨려 피아노를 연주하는 순간..그는 예술로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의 용기였다. 한줄기 빛이 그의 머리에 비춰지고 그는 구원받았다. 



 어릴적 개미를 관찰하며 간혹 일개미들을 손가락으로 짖눌러 죽이듯이 게토안에서 독일군은 맘내키는대로 유대인을 죽인다. 그런 상황안에서 영화 내내 주인공이 어떻게 발각될지, 먹을게 없어 삐쩍 말라가는 모습을 보며 스릴러 영화 같은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담담한 긴장인데, 후반부에 와서 저 말끔한 독일군 장교를 맞딱드릴땐, 내 심장이 멈추는듯 요동쳤다. 마지막 순간일 수 있는 그의 연주는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 영혼의 순수한 결정체 였고, 그리고 희망의 빛이 그를 비춘다. 





 어떻게 저런 사실적인 영상을 만들어 냈는지, 영화 예술의 진면목 이었다. 그는 살아서 80이 넘어 죽었다. 모든 황폐함은 삶의 의지를 꺽을 수 없었다. 운명과도 같은.. 


p.s  어릴적에 나찌 독일군들의 군복과 군장맨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선전,선동의 대가이며 군대를 선망할 수 있는 미적 이미지를 높이기위해  미대 출신인 히틀러의 지시 아래 휴고 보스의 디자인 이었다고 한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쪽으로 튀어 (2013)  (0) 2013.04.07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하이 피델리티 High Fidelity (2000)  (0) 2013.03.26
식스핏 언더 Six feet Under _ 2001~2005  (0) 2013.03.03
늑대소년 (2012)  (1) 2013.01.23
레미제라블 (2012)  (1) 2013.01.1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