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정황의 팩트, 연출의 의도가 어떠한지에 대한 비판적 분석 보다, 딱한 처지에 놓인 인간의 안쓰러움을 먼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측은지심.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근본 도리이자, 가장 큰 가치라 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자신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존중에서 우러나온다. 현대물질만능 사회의 위기는 점차 개인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부족이 근본적인 듯 싶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 해 질 때, 우리는 점차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마음 보단 머리가 비대해진 사람들. 자신의 사리분별판단을 앞세워 논리로 위장한 이기적 자아.. '나만 아니면 돼.'의 마음이 각별한 자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부정을 갖다 붙이기 할까. 

 이 영화가 일관적으로 비판 하고 있는 정부, 관료주의의 안일한 작태에 대한 공격에 양심에 찔려 영화에 대한 반감을 그렇게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의 본질을 망각하고 철밥통의 벼슬아치로 군림하며, 돈과 권력에 사대하는 양반의식이 이 나라를 망쳐왔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란 걸.


 너무 거리두기의 시선에 익숙한 나머지 차가운 돌처럼 굳어버린 마음에 물어보자. 자기안에 갇힌 겁쟁이를 몰아내자. 정말. 안쓰럽고 화나지 않어?.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단순히 불쌍히 보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보다 높은 차원의 인간애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직업을 가졌건 어떤 일을 하던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엄연한 픽션이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게 있다. 모르고 한 일 이라는 그녀의 범죄보다. 더 개탄스러운 이런 자들이 군림하는 이 나라. 무지 보다 더 큰 악은 알면서 하지 않는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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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 대한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 갔는데, 상영 시간이 무려 3시간이어서 생각지도 못한 스릴을 느꼈다. 영화 시작부터 들고온 커피를 마셔댔더니 보통 영화들이 끝날즈음에 아랫배가 묵직해졌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끝날 기미가 안보이고 나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자세를 뒤틀어가며 오줌보의 압박을 분산시켰다. 예전에 '아이 엠 러브'란

2011/02/09 - [영화] - 아이 엠 러브 (2009)

영화를 볼 때의 식은땀 흐르는 복통과도 견줄 수 있는 긴장이었다. 그냥 화장실 갔다 오기엔 영화의 감상 뒤끝이 개운치 않았던 경험이 있다. '킹콩'을 볼 때 그랬는데, 그 땐, 동행인이 있었기에 소지품을 신경안쓰고 갔다올수 있었다. 하지만 요번엔 감상의 개운찮음 뿐만 아니라 나 홀로 였기 때문에,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기필코 (분출을) 사수하겠음. 이란 결연한 각오로 영화를 감상했다. 막판엔 과잉행동장애(ADHD)의 징후가 드러나 이 나이에 이게 뭔 꼴인가 하는 자조섞인 한 숨이, 더욱 복부를 압박했다. 아마도 그 때 내 배가 칼에 찔린다면 영화 '킬 빌'에서 피가 뿜어나오는 것 처럼 멀건 물줄기 분수쇼의 웃지못할 장관이 연출됐을 것이다. 


 상영시간이 길다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탓할 수도 없다. 왜냐면 감독의 그러한 의도가 '왜'일지 알 것 같고, 그것이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리뷰를 보아하니 긴 상영시간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데, 그들의 바람대로 이 영화가 보통 영화 시간이었다면, 영화속 일면에 매끈하게 드러나는 주인공들의 쾌락 놀음에 혹해 본질을 망각했을 것이다. 바보 같이 '나도 돈 많이 벌어서 저렇게 즐기며 살고 싶다.' 라고 호도 될 수 있다. 영화속 상 똘아이들의 광적인 쾌락 놀음을 세시간여 동안 무한 반복되다싶이 보다 보면, 쾌락의 동경이 아니라 '구역질과 역겨움에 인간이 아닌 승냥이들 짓거리.' 라고 개탄하고 분노해야 마땅한 것이다. 후반부에 주인공 조던 벨포트(레오 디카프리오)가 마약을 너무 많이 해 뇌성마비 단계를 꽤 길고 엽기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감독의 그러한 의도의 단적인 예 라고 보여진다. 대저택과 페라리 스포츠카, 헬리콥터, 섹스와 마약의 황홀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저게 인간이니?' 라고 묻고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속도감있게 광적인 그들의 상태를 보여준다. 사무실에서 사람(난쟁이)을 던져 다트 과녁에 맞추는 게임을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그들은 나찌 독일군의 살인 놀음을 연상케 한다. 여자 직원이 현금 다발 앞에 자신의 여성성의 상징인 금발 머리를 내놓아 가차없이 바리깡으로 밀리는 장면은 돈의 욕망에 굴복한 인간 광기의 처연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곤 영화는 실제 인물이었던 조던 벨포트(레오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주식 시장에서 굴러먹었고 떼돈을 벌며 어떤 난장질의 삶을 살았는지 연대기적으로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 디카프리오(주인공)에게 주식시장판의 생리를 가르치던 (배우)매튜 매커너히의 영혼없는 눈이 인상깊었다. 그의 말과 모든 행동들이 '눈뜨고 코 베인다'라는 약육강식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무기나 힘이 있는 것도 아닌, 인간의 탐욕에 기댄 허구의 가치를 말로 사기쳐먹는 이 월가의 파렴치한 행태. 주식을 해서 개인이 돈을 번다는 건, 보통 아버지들이 누누히 강조 하시는 경구인 '보증 서는 놈은 낳지도 말라?'는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이렇듯 영혼없는 눈을 가진 뜨악한 인물들이 떼거지로 나온다. 그중의 압권은 수차례 등장하는 디카프리오의 사무실 연설 장면이다. 나찌의 집회를 방불케하기도 하고, 참된 신앙이 아닌 돈을 신으로 모신 광신도 집회 같은 모습은 괴벨스나 대형 교회의 동태 눈깔 목사에게 현혹되어 돈의 탐욕에 눈이 먼 광기의 면면을 보여준다. 또 갖가지 난교 파티, 공적인 곳에서 거침없는 성행위 등등이 당혹스럽게 하는데 그중, 디카프리오의 동업자 도니가 보통 파티의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발기된 칵을 꺼내 그 짓하다 제지당하는 장면은 정말. 암튼 '어~휴 '하는 장면들 많다. 


 마지막 부분에 FBI 던햄? 요원이 보여준 바른 신념과 그의 눈을 통해서 보여준 지하철의 가난에 지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은 잠깐이지만 큰 울림을 준다. 영화가 여태 계속 보여준 장면들과 너무 큰 대비여서 순간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만, 헛된 욕망의 눈을 내려놓고 본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현실이다. 주인공이 맥도날드 점원으로 일하는 평범한 인생을 최대의 수치로 여기는데, 화려한 언술로 남 등쳐먹어 배부른 그가 더 낫다고 어찌 말 할 수 있겠는가. 최악의 인간은 그처럼 남 꼬득여 눈물 단물 다 쪽 빼먹는 사기꾼들인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게 관객들에게 묻는다. 이 사기꾼의 농간에 또 당할거냐? 그에게 현혹되는 순진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비친다. 그게 우리다. 무엇을 팔아야 하고 사야하는 이 자본주의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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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있음 -


 상상이 (미래의) 현실에 바탕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회피기제로 환상에 빠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망상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월터 미티는 수시로 망상에 빠져든다. 20세기의 유명한 사진매체 잡지 '라이프'지에서 16년간이나 네가티브 필름 편집인으로 일한 그는 마흔 두살의 무기력하고 소심한 사내이다. 그가 일하는 공간은 어두컴컴한 필름 라이브러리. 사진작가들이 전세계의 다채로운 삶의 모습들을 찍은 필름을 현상,인화,관리하는 그의 삶은 현실의 굴레에 꽁꽁 갇혀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엄마와 여동생을 부양하는 그는 너무나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다. 직장과 일이 여태 그의 삶의 전부였다. 특별한 삶의 경험이 전무하다. 여행조차도 만무하다. 그렇게 현실의 퍽퍽한 삶에 갇힌 순수한 그의 유일한 낙은 상상에 빠져드는 일. 병적인 망상은 이 영화의 주연이자 감독인 벤 스틸러의 장기대로 너무나 스펙타클하고 코미디스럽게 잘 연출되어 재미를 주지만 망상에서 돌아온 월터 미티는 대인관계에서 너무 자주 멍때리는 자로 위험해 보인다.

 

 좋아하는 여직원 앞에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망상의 공상에 빠지는 그에게 현실의 위기가 닥치는데, 기존의 잡지책 '라이프'지는 폐간 되고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직장을 잃을 위기다. 구조조정을 위한 신출내기 CEO 앞에서도 멍때리다가 "그라운드 콘트롤, 메이저 톰" 이라고 (데이빗 보위의 명곡 'space oddity'의 가사중, 나중에 선택의 결정적 순간에 직접 이 노래가 감동적으로 흐른다) 조롱을 받는데, 정작 그는 상상속에서나 해소할 뿐이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마지막 호 표지에 쓰일 사진 네가티브 원본의 행방을 모른다는 거다. 마지막호 인쇄를 2주 정도 앞두고 단서를 가지고 백방으로 뛰어보지만 모두 다 허사, 그는 직접 전설적 사진작가(숀 펜)를 찾아 나선다. 상상의 벽을 깨부셔, 실제적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그의 결단은 숭고해 보였다. 그는 비로서 '라이프' 잡지의 모토인 이 문구 대로의 삶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사진작가의 행방을 쫒아 그린란드-아이슬란드-히말라야(아프가니스탄)의 환상적인 풍경속에서 그는 다채로운 경험을 한다. 상어가 우글거리는 북해의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화산 폭발을 만나기도 하며, 자신의 장기인 스케이트 보드를 정말 멋지게 탄다. 


(넥타이를 반으로 잘라 양손에 돌멩이를 묶고 곡선 주로에서 스케이트 보드의 중심을 잡고 달리는 이 장면이 내겐 어떤 스펙타클한 장면보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 또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그린란드의 펍에서 술취한 헬기 조종사 때문에 포기하려 할 때, 상상으로 좋아하는 여직원(쉐릴)이 나타나 기타치며 '스페이스 오디티' 노래를 부르면서 용기를 북돋는데, 그가 헬기에 뛰어들며, 데이빗 보위의 오리지널 곡 '스페이스 오디티'가 흐른다. 이 노래를 몰랐던 사람도. 이 장면에서 노래가 너무 좋다는 걸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그런 행동의 용기는 상상속 사랑의 힘 이랄까. 이때 부터 상상을 압도하는 현실속에 빠져들면서 월터의 상상은 멈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의 망상 보다는 현실의 경험들이 영화를 아름답게 채우면서 월터 미티의 변화 만큼이나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희열을 느끼게 된다. 결국 전설의 사진작가(숀 펜)를 찾게 되고 그에게서 삶의 정수를 듣게 된다. 정말 아름다운 순간은 목적의 집착이 아닌, 순간순간 직접 뛰어들어 가슴 뛰는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바로 저기와 여기, 이 순간에 머무는 일 뿐이라고.이 장면에서 누구는 닭살스런 교훈 같이 허세어리게 보던데, 나는 이 작품의 핵심이 여기이고, 이런 진리를 이렇게 풀어내는게 좋았다. 


 라이프지 마지막호 커버 사진으로 쓰일, 삶의 정수가 담겼다는 한장의 필름을 찾지 못했고, 직장에서 해고되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삶의 경험들이 그의 인생에 채워졌다는게 중요했다. 새로 쓰는 이력서에는 짝 매칭 사이트에서 공란으로 두었던, 해본 것, 가본 것, 특별한 것을 자신감있게 쓸 수 있었다. 상상속의 자신이 아니라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신을 찾은 것이다. 둘다 직장에서 짤렸지만 좋아하는 쉐릴과의 관계도 친밀해진다. 그리고 못 찾을 줄 알았던 삶의 정수가 담긴 문제의 25번 사진 컷이 자신이 지니고 있었으나 알아채지 못했던 지갑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그 사진은 많은 울림을 자아내게 했다. 


 디지털 세상의 변혁에 못이겨 직장은 사라졌고 실직했지만, 일에 몰두하며 그 순간에 머물러 있는 월터의 사진이야말로 삶의 정수이고, 월터 같은 모든 현대인에게 바치는 헌사 같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결혼할때 엄마에게 선물했다는 그랜드 피아노를 처신 하는 자세나, 물성을 가진 작은 필름을 찾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게, 다 어쩜 디지털 세상의 시대착오적인 고독한 모습으로 볼수도 있지만, 벤 스틸러 감독은 이런 아날로그 감성의 가치에 향수어린 애정을 부여하고 있다. 

 녹록치 않은 경제적 현실속에서도 가족애를 잃지 않는 모습은 가슴 뭉클했다. 더불어 좋아하는 쉐릴과의 상큼한 결말도 상상이 일구어낸 희망이 현실의 위기를 돌파하는 듬듬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마치 오손 웰즈 감독의 걸작 '시민 케인'에서 의문의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였던 것 과도 같았던, 그 문제의 사진 한장을 찾는 과정이 이렇게 감동적일줄이야. 극장 상영 끝물에 봐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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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이다. 새로 나오는 영화 소식을 수시로 챙기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영화가 지나쳐 버리는게 요즘의 극장 환경이다. 뜬금없이 짐 자무쉬의 신작을 알게 되었고, 바로 달려가서 봤다. 평소 길눈이 그리 어두운건 아닌데, 지하 주차장에서 만큼은 엘리베이터를 찾거나, 다시 내 차를 찾을때 꽤나 헤매는 타입이다. 그래서 광고 시간을 지나, 영화가 조금 시작한 지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거 되게 싫어하는데, 차타고 편하게 온게 시간절약 보다는 시간 관념을 상쇄 시켰고 결국, 그렇게 주차장에서 소비된 시간들은 현대 생활의 아이러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짐 자무쉬 영화이고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는 것만 알고 들어가서 바로 앞 줄 빈 자리에 앉으니, 뮤지션으로 보이는 퀭한 남자가 고풍스런 음악 작업실에서 멋드러진 기타들을 상대 남자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기타를 매우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나 설레이는 장면인 것이다. 주인공이 그레치 기타의 챗 에킨스 모델을 꺼내 설명하고 튕길 때에는 이미 영화속으로 무한 몰입 됐다. 


 짐 자무쉬의 영화들이 그렇듯, 느릿한 템포, 한량의 호홉속에 깨알같은 재미가 녹아 있다. 음악과 문학, 예술에 대한 탐미적인 애정의 시선 뒤에는 그것에 대한 조롱과 냉소의 함의가 깔려 있다. 어쩌면 감독의 내적 자화상 같이 느껴진다.


 이건 추측인데, 주인공 아담의 캐릭터의 모티브는 잭 화이트

2012/05/28 - [음악] - Jack White 잭 화이트

에서 나온것 같다. 배경이 디트로이트이고 빈티지 악기와 아날로그 음향 장비에 둘러쌓인 뱀파이어 뮤지션. 이전 작품인 '커피와 담배'에서 잭 화이트가 출연하기도 했고, 톰 웨이츠나 이기팝 같은 뮤지션의 출연이나 음악 사용, '데드맨'에서의 닐 영의 영화음악 등등으로 봤을때, 짐 자무쉬의 음악 취향이 유추된다. '리미츠 오브 콘트롤'에서는 기타에 대한 애정을 엿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잭 화이트의 창백한 얼굴과 천재적 음악 재능을 보면서 '저 사람은 뱀파이어가 아닐까?' 란 상상의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특히 음악 분야에서 외계인이나 뱀파이어 일 것 같은 천재가 많이 포진해 있는거 같다. 이런 생각들이 영화 보는 동안 의식의 저변에 흐르는 도중, 너무나 반갑게도 진짜로 잭 화이트가 언급되는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 아담이 애인 이브(틸다 스윈튼)에게 자동차로 디트로이트 를 구경시켜주는 장면에서 작고 평범한 어느 미국 주택을 가리키며 '저기가 잭 화이트의 어릴적 집이다. 저 곳에서 7번째 아들로 자랐다'고 이브에게 설명해 준다. 그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나만의 감동이겠지만, 짐 자무쉬 감독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말 나온김에 하나 더 말 해 보자면, 이브의 동생 에바가 아담의 집을 깽판쳤을때, 1902년산 깁슨 L2 란 어쿠스틱 기타가 부서졌는데 이브가 부서진 기타를 주워들고 무심히 보다가 '기타 보디 안 쪽 의 디자인이 너무 아름답다'라고 뜬금없이 찬탄 하는 장면에서 진심으로 감독을 존경 했다. 저런 애정어리고 능청스런 은은한 유머는 짐 자무쉬 만의 개성 이다. 


 이 영화의 일면은 이렇듯, 나를 매혹시키는 것들로 포진 돼 있다. 아니 문학과 음악, 예술에 관심있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어떤 로망같은 존재로 뱀파이어 주인공들은 그려진다. 그들은 인간세계에 있지만 현재의 삶에서 유리된, 먹고 사는 일에 빗겨나 있는 매우 나이브한 예술 탐미주의자들이다. 

 아담은 하루종일 전위적 음악을 작곡하고 이브는 독서에 빠져있다. 뱀파이어의 본능인 피에 굶주려 사람을 포악하게 잡아먹는 생존을 추구하지 않는다. 고정 거래처에서 편리하게 돈주고 사먹는 피도 앙증맞은 잔에 빼갈 마시듯 흡입하고 마약에 취한 모습을 보인다. 또 피로 만든 아이스바를 먹는 장면도 밥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엿볼수 있다. 아담과 이브란 이름에서 유추되다싶이 오랜 영생을 누린 뱀파이어의 정체성은 염세적인 고상함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뱀파이어의 원초적 본능인 피에 대한 욕구는 어쩔수 없이 반응하게 되는데, 그들에겐 사람을 직접 잡아먹는 짓은 천박한 것이다. 




 예술과 역사에 달관한 그들에게 현재의 삶은 가치없는 무상함 이다. 그래서 철저히 인간을 좀비라 부르며 현재의 삶의 행태를 저주하고, 과거속의 예술의 영광에 빠져 지낸다. 특히나 아담의 집 배경의 유명 예술가들 사진들이나, 모든 소품들을 보면 노스탤지어의 추구가 물씬 풍겨난다. 시간이 가진 흥망성쇠의 아련함을 깊이 천착한 그는 역사의 유명한 뮤지션들이 그랬듯 자살을 꿈꾸며 유일한 인간 조력자에게 나무로 만든 탄환을 세세히 설명해 가며 주문한다. 자기 음악의 팬이 집앞에 서성이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인간의 클럽에서 썬글라스와 가죽장갑으로 우스꽝스럽게 스스로 유리시킨다. 점점 나를 매혹시켰던 영화속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의문이 가기 시작한다. 


 아담과 이브의 이러한 여러 정황들이 현실의 본능에 충실한 이브의 동생 에바의 등장으로 극명히 대비되는데, 그들의 삶의 행태가 예술가, 지식인들의 허세어린 표정들이란걸 점점 깨닫게 해준다. 그것의 확실한 단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제목과는 상반되는 장면이 연출되며 영화가 끝나는걸로 확인된다. 

 에바가 죽인 인간의 시체를 처리하고, 어쩔수 없이 모로코로 돌아온 아담과 이브는 이브에게 피를 공급했던 뱀파이어 조력자 말로가 상한 피를 마시고 죽어버리자, 정말 대책없어진다. 남은 돈을 아담에게 줄 악기를 사는데 써버리고, 허기져서 기운 없어진 그들 앞에 키스를 나누고 있는 인간 연인의 사랑스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그들 본래의 모습으로 화면은 정지되고 영화가 끝나는데, 여기서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속물근성이 들통난 기분.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의도했던 지점이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의 허세와 진짜 삶의 문제를 자기도 각성하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진짜 사랑은 현실의 삶의 사랑이지, 예술속의, 책을 따라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기름종이의 이면 같이 빤히 보이는 원초적 욕망은 예술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가 살고자 하는 욕망 앞에선 모두 다 허세에 불과한 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예술을 부정하고 폄훼하는게 아니라, 예술에 내포된 위험성을 말하는 것이다. 실존의 문제를 망각한 삶의 모습은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순혈의 생명성을 강조하는것 같다. 언어유희의 수수께끼 같은 결말, 역시 멋진 작가다. 


 자칫 이 영화의 나른한 분위기에 취해 감독의 메시지를 놓칠 수 있었다 라는게 내겐 함정이었다.

 너무나 재밌는 영화 관람이었다. 틸다 스윈튼의 외모를 유독 감탄하며 보게 되었다. 얼굴의 골격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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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 감상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감독의 주된 테마는 가족인데, 일관되게 각 작품마다 가족의 여러 양상을 다룬다. '아무도 모른다''걸어도 걸어도''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리고 이 영화까지, 이젠 세계적인 명품 영화 감독이고 정말 멋진 작가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극찬했다던데, 실로 그는 21세기의 오즈 야스지로가 된 것 같다. 일본 만의 영화적 전통과 뿌리가 내심 부럽다. 구로사와 아키라,오즈 야스지로,기타노 다케시 등등등..서양의 거장들이 찬탄해 마지않던 명맥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어가고 있다. 


 물론 나는 한국 영화의 자부심도 크다. 90년대 중반 이후로의 한국영화의 과정을 상기해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영화의 질과 양적 다양성 면에서 그야말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다만 그 전통의 맥의 중심에 임권택 감독만이 상징적으로 존재하는것이 못마땅하다. 군바리 놈들이 정권을 잡고, 모든 문화,예술계가 암흑기 였듯이, 그 단절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비롯한 그 이전 시대 여타 영화들에 전통의 끈이 닿아있질 않다. 이런 영화들을 발굴하고 계속 알리며 끈을 이어야 한다. 프랑스에선 누벨바그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상영한다고 하던데, 그런점이 부럽다.


 102번째 작품이라는 멍청한 수사를 붙여가며 한명의 거장을 만들게 아니라 한 두 작품 이라도, 시대성을 잘 보여주는 것 이라면 끊임없이 연결고리로써 상기시켜야 한다.  참고로 최근에 임권택 감독의 1981년작 '만다라' 를 봤는데, 괜찮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옛날 영화에서 보여지는 도심의 배경과 벌판의 풍경은 그 자체로 아련해진다.




 이 영화는 성별이나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은근히 혹은 꽤 저릿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아들.딸 들 이었고, 또 아빠나 엄마가 될 것이고, 됐을 것이며 그렇게 가족으로서 사랑의 정을 내리 받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뻔한 과정에서 내리사랑의 의미와 방법을 가슴아프게 전환하게 될 결정적 계기가 온다. 주인공 료타가 받게 되는 전화는 언뜻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신파의 전형적 소재이나,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건네지는 여러 상념은 생각 외로 강렬하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우린 누군가의 자식들 이었고, 부모의 관점. 아이의 관점. 다른 경제적 기반의 환경은 사랑의 방법.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의 소통에 대해서 많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6년이나 키운 내 자식이, 내 아이가 아니라 남의 자식과 바뀌었다는 한통의 전화, 참 아침마당의 기구한 사연 같은 소식이다. 

 영화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주인공 부부의 삶의 모습과 내면의 동요를 뒤따르고 관찰하며 감상자의 내면에 공감의 동요를 불러온다. 일본 영화, 아니 일본 국민성의 특징인, 감정의 북받친 표출이 아닌, 그걸 내면으로 삭이며 함구하듯한 타자와의 관계는 장단점이 있을것이나, 한국 영화. 한국성의 특질과는 참 비교가 많이 된다. 이런 경우 우리의 경우는 감정의 극단으로 치달아 뭘 어떻게 표현하든 격앙된 양상이 전개됐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국민성, 사회의 헤게모니의 밑바탕에는 먹는 음식의 영향이 크지 않나. 란 의문이 든다. 원래 자극적인 음식이 많은 한국음식문화인데 점점 현대로 올수록 매운맛에 대한 엽기적 추구는 삐뚤어진 사회성의 반영이고, 스트레스의 과잉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점이 드라마틱하게 상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현대 한국 영화라 본다. 

 최근에 본, 전혀 다른 가족이야기인 '화이'와 이 영화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무교동 낙지나 아구찜 같은 한국음식과 일본 가정식 백반의 차이 처럼, 영화의 전반적 스타일, 표현 방식에서도 드러난다고 본다. 박찬욱,김기덕,김지운 감독의 영화들은 위에 말한 한국 요리와 흡사한 반응이고 홍상수의 영화는 숙취 후 먹게 되는 시원한 북어국 같은 느낌이다. 고로 매운 음식에 대한 반응이 땀으로 범벅되는 나의 애증은 한국영화에도 투사된다. 


 그렇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들은 전통 일본 가정식 백반을 먹는 기분이다. 고전 명작 '도쿄이야기'에서 부터 이어지는 다다미 연출의 전통과 정서가 이어지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특장점은 감독의 주관이 연출에 개입되는 것 보다는 그저 사건의 정황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배우의 내적 연기를 통해 그 상황의 의미들을 각자가 나름대로 반추하게 한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 보기를 통해 더 많을걸 느끼게 한다. 함축된 의미의 '시'와 같은 일상의 장면들은 한장의 사진처럼 다가온다.  천천히 음미해서 보는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가져온다. 한국영화의 우악함에 익숙하다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매우 건조하고 지루하게 다가오겠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 삶의 태도나 어떤 관점이 변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면, 예술 감상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판에 박힌 휴머니즘의 강요나 감상주의가 아닌, 예술의 그런 효용에 가장 근접한 영화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닐까 싶다. 


 남의 행복을 시기했던 간호사의 순간의 과오가 얼마나 두 가정의 당사자들에겐 큰 고통을 초래했는지, 모든 잘못된 선택과 행동은 그 파장의 여파를 가늠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두 가정의 구성원들이지만 그래도 제일 큰 마음의 반향을 겪게 되는 료타와 그의 아들 케이타를 통해 큰 감동을 자아낸다. (마지막 료타 부부를 본 케이타가 도망가는 장면은 마음이 찢어짐) 분명 신파적인 연출이 아닌데도, 그런 상황을 묵묵히 억누른 감정은 관객에게 큰 여운을 남긴다. 상영 내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됐다. 양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이고 파장이기 때문에 내적 긴장감이 대단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굳이 아이를 바꾸지 않고, 양 가정이 키우던 대로  계속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다가 아이들이 20살이 됐을 때, 사실을 알리고 그 둘이 다 서로의 자식이 되는 걸로 하겠다. 어찌됐든 쉽지 않은 선택이고 영화의 포스터 카피문구마냥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잘나가는 직장인 료타, 좋은 집과 차, 전형적인 성공지향의 엘리트. 누구나 봤을 때  성공한 가장이라고 보이지만 그는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다. 아버지 역할의 제스쳐만 취할뿐, 부인이나 아들과 진짜 대화나 사랑의 온기를 나누진 않는다. 반면 허름한 동네의 전파사를 하는 아버지는 세속에 욕심이 없어 가난하고 철들지 않아 보이지만 아이들에게 온몸으로 헌신하고 서로서로 부대끼며 산다. 같이 목욕하고 장난치며, 어른아이같은 그의 양육 방식은 일에 치여 료타와 같은 현대 생활의 많은 아버지들에게 자각의 귀감이 된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의 모습으로 있는가?" 하지만 무엇이 옳다라기 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못 살고를 넘어서 가족이란 따듯한 가치가 뭔지를 질문하게 한다. 두 아버지는 조금씩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중심엔 료타의 아버지의 관계도 짧지만 중요한 점으로 유추된다. 자식사랑의 대물림 내지 정반향은 어찌됐든 대상이 받아들이는 상처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버지로서, 아들로서의 사랑의 방식을 추억하며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많은 아버지들이 이 영화를 보고 주인공 료타와 같이 자식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달라졌으면 좋겠다. 아들이 자신을 찍은 사진을 보는 료타의 충격에 어느 아버지든 뜨금할 것 같다. 낮에 죄다 자는 모습뿐인 아버지 료타. 

 정말 좋은 영화였다. 부부가 꼭 같이 봐야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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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화를 볼 때, 대략 25분 30분 단위로 영화의 현재 러닝 타임 위치를 확인 한다. 그냥 그런 습관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얼마만큼 시간, 혹은 공간을 밀도있게 압축하고 어떤 호홉인지를 큰 덩어리로 인식하는 무의식에 가까운 버릇 같은 것이다. 적당히 영화를 낮설게 보고 있는 셈이다. (소격효과) 그러나 변호인을 보면서는 아예 시간 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이 영화가 짧았는지, 두시간이 넘는 긴 영화 였는지, 전혀 감이 없이 영화에 빠져들어 느꼈다. 


 그만큼 대단히 재미있게 보았다. 배우들의 연기에 완전 몰입되었다. 감정이입으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얼굴의 근육이 욱신각신 다채롭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힘은 말할것도 없지만, 그것의 구현을 넘어서 배우의 연기자체가 숭고하다는 느낌은 처음이다. 특히 송강호는 무형 문화재로 등재해도 될 듯 싶다. 


 특정한 인물을 연상하는 것을 넘어서,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가 어떤 과정들을 통해서 그나마 쟁취했었는지를 아주 뭉클하게 볼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 소소하게 시작한 편린들을 중반 이후, 급격히 무거운 화두로 몰아간다.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마음속에 본질적으로 스며든 그 가치들은 내 안을 용트림 하게 한다. 

 뜨거운 영화였다.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대단히 뜻깊은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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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엔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훌륭하지만 이 영화는 가난한 포크 가수의 이야기래서 인지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어쩌면 한없이 우울하고 슬픈 영화일수 있음에도 코엔 형제는 특유의 재능으로 삶의 비극을 희극적인 면모로 바꾸어 헛헛한 웃음을 제공한다. 그러나 제목 그대로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을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나, 아니 감독은 그것을 그려내고나 있나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의 삶은 한갓 구경거리에 불과했고 영화는 그의 춥고 배고픈 겨울을 뒤따르며 엄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거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 카메라이고 어쩌면 이 영상 미디어(매개체)의 한계는 결국 구경에 불과하다는 점 일 것이다. 그런 점을 특유의 연출로 잘 활용하는 감독인 것이고, 우리는 신파나 과도한 주관성으로 점철된 영화가 아닌, 각자가 느낄 수 있는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을 알게 된다. 

 재능은 있지만 인생이 뜻대로 안풀려 난관에 봉착한 모든 예술가 에게 보내는 씁쓸한 위로? 같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의 불행의 무거움을 덜고, 감내할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선 경고 일 수도 있다. 예술의 끈을 잡고 있는 아슬아슬한 생존의 장 은 고난길이 훤하고, 스타가 되는 것은 예정된 운명 같은 자에게 수락된 운 일 수도 있다. (마지막 부분에 미래의 슈퍼스타가 될 밥 딜런의 등장을 예고하는 장면) 자기 삶을 경영하는데 있어, 예술로의 도피나 일상성을 제쳐둔 몰입은 삶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작가 스티븐 킹도 그런 점을 경고했다. 네 삶의 한가운데에 책상과 타자기를 놓지 말라고..

 영화에서 그려지는 르윈 데이비스의 인간 관계는 파탄났다. 착하디 착해보이지만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벌레 취급 받는다. 전 여자친구가 퍼붓는 욕은 얼마나 찰지게 귓속에 와 닿는지, 마치 내게 하는 욕 같이 들렸다. 캐리 멀리건 이란 배우, 가시가 촘촘히 박힌 장미같이 참 이쁘면서 무섭게 나온다.  그가 그런 지경까지 내몰린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의 허물과 단점을 고쳐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음악에의 외곬수의 삶은 다른 면에서 고통을 가져왔다고 본다.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문제들을 타파하려는 노력 부재가 예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더욱 커지게 했다. 



 인생은 어쩌면 타이밍 일 수도 있다. 운 때에 잘 들어맞는 삶이 성공의 관건인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운을 만났을때,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키우는 것. 밥 딜런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어보면, 성공과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 얼마나 영민한지 알 수 있다. 반면 영화속 르윈 데이비스의 삶은 뭔가가 다 빗나가 있다. 착하고 순수한 영혼이지만 그것의 결과는 분노와 멸시로 되돌아 온다. 자기의 재능을 경영하는일. 그리고 어떤 여자와의 관계, 시대의 타이밍, 운 같은 것이 밥 딜런과의 차이라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빙산의 일각처럼 성공의 이면엔 수면에 잠긴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무명의 용사들이 자신의 삶과 싸우며 쓰러져갔다.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수많은 이름없는 예술가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빵을 위해 포기해갔던 수많은 예술가의 눈물을 위로와 공감으로 느낀다. 이러한 삶의 단면을 위트있게 보여준 코엔 형제의 능력에 감탄한다. 

 결말의 연출은 진퇴양난에 빠진 삶의 알레고리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과연 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우리들 각자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적극적으로 탐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회색의 바랜듯한 영상의 톤과 색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꽉 찬 극장에서 보는 감상은 다른이들의 반응 포인트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시작하기전에 김지운 감독을 봤는데, 옷을 캐주얼하게 잘 입는 다는 생각이 대뜸 들었다. 초기작은 좋아하지만 놈놈놈 이후로, 관심없는 감독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옷차림만 보이는 감독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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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비티에 이어 이 영화 또한 짜릿하게 감상했고,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인도양의) 망망대해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사투기 인데 그래비티 보다 더 건조하게 감정을 눌렀다. 완벽한 1인극 이래서 처음의 짧은 나레이션 빼고는 대사란게 없다. 갓~ 이나 뻑~ 을 탄식으로 뱉는거 말고는 시종일관 좁은 배 안에서 차분히 분투하는 그의 행동을 관찰할 뿐이다. 


 그러나 이게 대단히 집중하는 효과를 유발했고, 감독의 의도도 철저히 리얼리즘에 입각해 그저 한 인간 (인물에 대한 어떠한 배경적 설명이나 단초가 없다. 이름조차도. 그저 제목 같이 모든걸 잃어버린 늙은 한 남자) 이 겪는 고난에서 대처할 수 있는 당위적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뿐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삶을 보여주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배구공과 대화하는 주인공의 과장된 모습과는 정 반대의 지점에 있다. 또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의 상상속 환영. 또는 이야기와는 정 반대이기 때문에, 저게 뭐야 란 반응이 나올수 있는데, 그래비티의 감동과 비슷하게 대 자연에 고립된 한 인간의 내면을 간접체험하거나, 자신의 내면의 어떤 경험을 등가시켜서 느껴야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위대한 배우겸. 감독으로서의 로버트 레드포드의 늙은 주름과 명민하진 않지만 진중한 행동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일지라도 살기 위해선 어떻게 대처하고, 최선이란 뭔지를 보여준다. 여태 살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껍데기들..돈.사회적 지위.명예.경험. 등은 바다를 표류하는 곳에선 허물에 불과하고 극한의 실존에 당면한 인간의 행동은 숙연하게 만든다. 어떠한 허세나 과장이 없는 담담함. 혼자 고립되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란 무엇일까. 추억을 되새기기 보단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묵묵히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예전에 영화속에 나오는 요트와 비슷한 배를 탄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같이 타고 있음에도, 저멀리 동해 바다 한 가운데 나가 육지가 안 보였을때, 기분이 괴로웠다. 사방이 바다인 망망대해의 무의식적 공포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나오는 와중에 배멀미로 이미 토할만큼 토해서.. 더 게워낼게 없다는 막막한 배멀미의 공포. 선착장의 콘크리트에 발을 내딛고서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던지..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와 걸신들린듯 먹어치웠던 추함도 다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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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소룡 세대는 아니다. 성룡과 이연걸에 끼인 세대랄까. 동네 형님들이 여전히 이소룡을 울부짖을 때, 주성치 와 성룡, 홍금보 는 무술을 배운 찰리 채플린 처럼 희극인이 되어 있었다. 90년대에 이연걸이 부각된 이유도 그런 성룡표 코미디 무술이 판을 치다가 정통 무술인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으로 알려졌다. '일대종사'의 마지막 장면의 사진(위)에서 양조위(엽문) 옆의 꼬마가 어린 이소룡이다. 


 중국문화를 가장 대표하는 것이 이소룡으로 상징되는 쿵푸..(무술) 이다. 동양의 정신과 몸의 세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고 서구가 못가진 보이지 않은 기의 세계, 찰나의 순간을 몸소 체득한다. 칼은 칼집이 있어야 한방향으로만 쓰이지 않듯이 무술은 자기 수련이자, 관계의 가장 강렬한 드라마 이다. 


 예전에 동유럽 배낭 여행을 했던 선배가 강도를 만났던 일화가 생각난다. 밤에 작은 나이프를 들이댔던 청년에게 가진것 다 털릴수가 없어, 20대 혈기의 순간 미친 호기로, 피우던 담배 불똥을 바닥에 팍 튀기고 기합(고함)을 지르며 무술 자세를 취하자, 그 백인 청년 강도가 부리나케 도망가더란..

 서양에서는 동양인 남자에 대한 선입견중에 무술을 잘 한다. 할 수 있다. 라는 선입견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도 브루스 리 (이소룡)의 막대한 영향력이다. 정말 그런거라면 강력한 문화의 전파이고, 동양문화의 자부심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중국 무술 문화의 전통이 부러웠다. 진정한 문화의 전파는 이런 영화들의 힘 일 것이다. 와호장룡이나. 일대종사 는 문화예술의 궁극적인 점이다. 

 강호의 세계, 무술인의 굴곡은 격정의 근대사를 겪으면서 무도의 궁극적 경지에서 현실의 비루한 삶으로 곤두박질의 과정을 보여준다. 무술의 흥망성쇠를 엽문을 중심으로 삶의 배신과 복수. 비껴가는 사랑을 그려내 보인다. 



 화려한 것에는 내실이 부족하다지만 이 영화는 영상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찰나의 시간을 밀고 당기며 몸과 정신의 몰입 미학을 만든다. 왕가위 감독은 90년대의 자폐적 상실, 공허의 감성에서 벗어나 새롭게 진화한듯 싶다. 왕가위 세대인 나로써는 홍콩 느와르의 끝물에서 그의 등장은 학창시절의 정점과 종점을 모두 그의 영화와 함께 했다는 감흥이 있다. 화양연화 이후로 열정적인 관심이 시들해 졌지만, 90년대 감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왕가위 영화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본 이 영화에 대한 감동이 더욱 크고 묵직하게 다가온듯 싶다. 


 양조위 와 장쯔이는 제일 멋지게 나이 드는 남.여 배우 같다. 그들의 얼굴과. 음성만으로도 감동을 받는다. 중국말 음성이 아름다울수도 있다. 시끄럽고 팔랑거리는 거부감이 아닌.. 영화에서 일선천(장첸)은 주된 이야기에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나, 너무 엽문과. 궁가의 무술에만 집중하는 효과가 아닌, 다양한 무술 분파가 있었다.란 정도로 보는게 맞는것 같다. 또한 장첸의 너무 잘생긴 얼굴을 보는 맛과, 조금은 다른 개성의 무술의 힘을 보는 맛도..


 이 영화를 통해서 감수성의 일부를 돌아본다. 왕가위가 그랬듯, 진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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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잔잔한 멜로영화를 처음 보았을땐, 좀 지루하게 여겼었다. 청춘의 한 시절, 삶과 죽음에 대한 상념보다는 마냥 젊음의 열기에 들떠있던 시간이 많았다. 무한할듯한 열기가 식기 시작했을때, 이 영화를 다시 보았고, 너무나 숙연해졌다. 삶에 대한 비관도 낙관도 아닌, 살아간다는 건 저런것이구나. 를 담담하게 전해 줬다. 사랑이 꼭 어떤 관문을 통과하고 인증을 받아야 하는게 아니라 막 시작하려는 설레이는 사랑의 마음 자체를 너무나 잘 그려내었다. 하지만 엇갈림에서 오는 안타까움과 생의 진리는 나날이 아니 순간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위엣글은, 언젠가 이 영화에 대해 쓰다 만 글의 앞 부분이다. 
 
 어제 이 영화가 15년만에 다시 극장에서 개봉했다. 개봉날 저녁에 목동 메가박스에서 봤다. 보통 CGV에 많이 가다가. 메가박스는 극장 로비 부터 많이 생소했다. 로비의 조명이 너무 밝고, 티켓 부쓰는 은행의 창구 처럼 바뀌었다. 너무 어두컴컴한 CGV 극장의 인테리어에 익숙해져서 더 낯설게 느껴진듯.. 조금은 어리둥절. 극장 처음 온 사람도 아닌데 적당히 설레임 상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이자, 매년 한번씩은 학생들과 보아오던 영화를 처음으로 정식 극장에서 보게 된 것이다. 
 
 동행인과 나는 과도한 극장 광고의 해악에 대해 동감한 바였지만, 메가박스의 광고는 처음 보는게 많았고 되게 재밌었다. 성형외과.치과. 광고들은 거의 개그 콘서트를 보는 듯했다. 저런 광고라면 봐줄만은 하군 하던 찰나, 센스 없게. 8월의 크리스마스 광고가 나왔다. 몇 분 후면 이 영화를 볼건데..참나..

 역시나 극장에선 빛의 질감, 암부의 디테일, 일상의 섬세한 소리들이 더욱 잘 느껴져, 그동안 비디오나 동영상 파일로 감상하던 송구스러움을 감격의 찬탄으로 뒤바꿔 놓았다. 

 최고의 작품은 자신의 나이듦,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느 시절에 다시 보아도 끊임없이 새로운 말을 건네는 작품이다. 22살의 내가 본 감흥과. 30의 내가 느낀 감정.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나는 매번 다르고, 이 영화는 항시 똑같지만, 저마다의 감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작품들의 특성은 표현이 단선적이거나 너무 친절하지 않음에서 온다. 직접 말하고 드러내는게 아닌, 상상하고 유추하게 만들어 은은한 울림을 자아내게 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성에 생의 기쁨이 담겨있고, 유한한 삶에 깃든 슬픔이 사랑을 재촉한다. 또다른 사랑을..

 장면마다 사진적 일상성의 특별함이 배어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나의 시로 만드는 것. 사각 프레임과 빛의 비춤은 사건이나 이야기를 쫏아가는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모습들, 행동들이 사진적 프레임 안에 들어오고 나간다. 빛과 어둠 그리고 학교 운동장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얼마 안 남은 정원의 심리를 아스라히 전해준다. 결국, 다림과 정원이 처음 만난 무더위의 8월이 그들에겐 크리스마스 였다. 8월과 겨울 사이, 정원은 어쩔수없는 죽음이 예고됐고, 다림은 삶의 최고의 기쁨일, 사랑의 완성을 기대했지만, 어긋남은 사진이라는 좋았던 순간의 추억만을 남기며 전달되지 못한 말 보다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사랑의 설레임만이 오롯히 사진으로 봉인된 채. 

 자꾸 보다 보니까 모든 장면이 인상적인데, 몇몇가지만을 말해보자면 정원이 여동생과 마루에 앉아 수박 먹으며 동생이 "아직도 지원이 좋아해?" 하니까 말 대신. 수박씨 뱉기로 응답하는 장면. 말보다 하나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헛헛한 표현이 너무나 좋다. 또 해가 늬웃한 오후에 정원이 마루에서 발톱을 깍는데 골목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소한 소리들.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그 둘이 운동장에서 달리기 할 때다. 나는 이 장면에서 심은하란 배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그 벅찬 기분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이 각자 사우나를 끝내고 나와서 정원이 다림에게 귤 하나를 건네는 장면이다. 이 얼마나 풋풋하고 사랑스러운지. 이 시퀀스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게 다 있다. 운동장 달리기. 동네 사우나.. 귤 건네기.ㅋㅋ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는 매우 소심해졌다. 감동의 말들은 옹알거렸고 왠지 계속 슬프다. 이제 겨울이래서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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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전율케한 영화로 평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먹먹한 감동에 상영관을 나와서도 한동안 어딘가에 앉아서 내가 발딪고 있는 이 곳, 이 숨결을 고요히 음미했다. 왕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철학적으로 인간의 존재, 기술미학을 탐구했다면, '그래비티'는 아주 명징하게 혼자 남겨진 자의 근원적 내면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기존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방식이 아닌, 3D 구현된 이미지텔링. 이미지 체험의 효과는 새로운 영화의 지평을 연 느낌이다. 이미 '아바타'에서의 감동도 있었지만. 그런 환타지성 감탄 보다는 이런 리얼리즘에서 오는 체험적 감동은 비할 바가 못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지구 600Km 상공의 대기권 밖 우주에서 본, 지구의 풍광은 그야말로 감탄을 연실 자아내게 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거리. 도시의 불빛들이 또다른 은하수 처럼 펼쳐진 지구는 객체가 객체를 관통하여 저마다의 우주를 간직하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가왔다. 무중력상태에서 유영하는 우주인의 모습은 보는 내내 아름답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몸을 쭈삣거리게도 했다. 한치의 지루할 틈도 없이, 이미지와. 음성. 음향효과에 빠져들었다. 카메라가  우주의 광할함을 보여주는 설정샷에서 주인공의 시점샷으로 자연스레 변화하는 것도 너무 멋지다. 


 보통 남자들이 이 영화에 대해 극찬하는데 반해, 여자들은 남자들보단 반응이 미적지근한 것 같다.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하고, 호불호가 나뉘는데, 시각중심의 사고 방식과, 이야기중심의 내적 구조의 차이에서 감흥의 결과가 다른 것 같다. 또한, 남자들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자동차나. 카메라. 오디오의 다양한 버튼, 다이얼에 둘러쌓여 뭔가를 움직여 조정하는 상상을 어릴적. 애니메이션의 영향이나 여타의 배경으로 익숙하고, 선망한다. 우주선안의 콘트롤 패널에 둘러쌓여 어딘가로 이동하는 꿈. 영화 '트랜스포머'를 나이를 불문하고 남자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그런 차이를 불구하고, 누구나 홀로 남겨진. 아니 혼자일수 밖에 없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외로움을 너무나 여실히 체험하게 해주어, 자기안에 숨겨진 존재의 근원에 대해 살짝 닿은 느낌이다. 숨을 쉬고, 두발로 땅을 밞아 내딛은 자의 경이로운 감정이 아름답고도, 너무나 외로운 우주의 절대 공포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난 기쁨을 향유한다. 

 너무나 너무나 벅차다. 저멀리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이나, 자신과 유일하게 대화하며 이끌어준 서로간의 연결고리(끈)가 끊어진 아득함. 희박해가는 산소의 담담한 절박함, 폭발의 파편. 대기권 진입 후, 산과 강의 지구의 모습. 산드라 블록의 너무나 멋진 다리... 영화 '스피드'에서의 징징댐이 아닌 너무나 차분하고 멋진 음성. 


 영화의 진화에 진짜 감동을 엿봤다. 아이맥스 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 좋아하는 이와 같이 공감,체험 하면 더욱 좋겠지만, 인간의 개별성은 존중해야하는 법. 누구나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이니까. 


 이런 영화 극장 개봉 놓치면 절대 후회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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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 막히게 뛰어난 작품이었다. 신들린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와 런던,바로셀로나,파리,로마에서의 영화를 마치고, 다시 자신의 본고장 뉴욕으로 돌아온 우디 앨런 감독은 커리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정말 그렇다. 우디 앨런은 켄 로치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만큼 존경한 감독은 아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존경까진 아니더라도, 현재 활동하는 최고의 영화 감독이라 생각된다.


 어느 블로거님의 표현이지만, 심각한 드라마와 경쾌한 코미미가 공존하는 신기한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란 말이 너무 정확하다. 우디 앨런 특유의 블랙 코미디적 재능이 얄미운 배경음악과 함께 황망한 재미를 준다. 


 한 여자 인생의 몰락을 그리고 있는데, 꼭 된장녀들에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돈의 거품에 기대어 허우적대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재스민의 불행의 시작은 대학시절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진짜 공부를 한게 아니라, 파란눈 금발머리의 우월한 유전자로 남자의 선택에 의탁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저버린게 문제다. 남편의 부도덕한 경제력에 방관하고,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지 못한 삶은 파국 앞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고 끝없이 좋았던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며 자신이 만든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혼잣말을 하게 되고, 미쳐버리거나, 자살하거나.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은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 재능으로 실상의 대책없는 우울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넌지시 농까듯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입양된 두 자매의 삶은 모든게 이항대립적으로 펼쳐진다. 동생이 말했듯, 재스민은 우월한 유전자 였고, 금발과 흑발의 차이 만큼. 두 남매에 관계된 모든 것인, 사는 곳. 인종. 말의 억양과 톤. 직업. 의 계층적 차이를 풍자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렇게 명품옷과. 가방으로 치장해도. 개털된 현실의 삶 앞에서 겨드랑이가 흥건하고, 이마에 땀이 번질거리는 재스민은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또다시 자신의 곤경을 타개할 남자를 찾아 거짓으로 치장한다. (이런 과정들에서 씁쓸한 웃음을 주지만 그마저도 산통) 


 진짜 불행의 감정은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현재 삶 과의 간극이 클수록 고통이라 한다. 그래서 돈이던, 명성이던. 높이 올랐던 사람은 행복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한다. 남편(알렉 볼드윈)의 사업은 2008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업의 파렴치한 탐욕과 파산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여러차례 언급되는데, 가난한 자들의 돈을 제 돈 인양 펑펑 굴리다 망한 파렴치한 사기꾼. 남자에게 돈이 많은 것은 그만큼 여자를 누릴 수 있는 욕망과, 유혹이 산재하다는 것이고, 남편의 모든일에 방관하던 재스민이 그 사실을 알고, 정말 우매하게도 남편에게 단죄를 내린게 결국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지도 모른다. 


 남의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갖은 교양 다 떨며 남 무시하던 그녀는 몰락한 현실을 인정 못한다. 빈털털임에도 예전 습관대로 비행기 1등석을 타며 제정신 못차리는, 재스민을 보자니 한편으론 쌤통이다란 기분이 어지간히 든다. 점점 신경쇠약으로 미쳐가는 그녀의 모습은 잔인해 보일 정도로 뜨악한 심정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속 남의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탐욕의 허영어린 결과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모두 돈이 가진 욕망의 탐욕에 놀아날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재스민과 대립적인 동생의 삶도 좋아보이진 않는다. 남자들에게 정흘리면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그런 반면. 재스민의 아들은 재스민과는 다르게, 다 떨쳐버리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찾아 온 재스민에게 비수어린 말을 내뱉고 그녀는 망연자실한다. 이런 재스민을 연기하는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연기가 오금이 저린다. 불안정한 심리가 눈으로 순간순간 표출되는데,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따논 당상..


 우디 앨런의 뉴욕으로의 귀환이 매우 반갑다. 정말 의미있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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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로치 감독의 작품중. 가장 따듯한 여운을 가진 영화다. 전작들에서 소시민들이 궁색한 삶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을 건드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면, 이 영화는 사회의 낙오자들이 나오는건 마찬가진데, 과정들의 끝이 무겁지 않다. 어쩌면 상큼한 해피엔딩인데, 조금 켄 로치 답지 않다면서도 어쩔수 없이 반기게 된다. ( 켄 로치의 전전 작품일것인 '루킹 포 에릭' 도 따듯한 해피 엔딩 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퍽퍽한 리얼리즘을 벗어나서 좀 놀랬었던 )


 켄 로치의 영화의 배경은 거의 다 스코틀랜드다. 이 영화에서도 글래스고 와 에딘버러가 중심이고 위스키 양조장이 소개된다. 

 스코틀랜드 하면, 스카치 위스키와 퀼트 치마, 글래스고 출신의 4인조 밴드 '트래비스' 와 알렉스 퍼거슨 경.이 대표할수 있으려나. 아.. 헐리우드 영화지만 스코틀랜드 정신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브레이브 하트' 도 있었다.

 

 켄 로치의 영화들을 보면, 이 스코티쉬 억양의 영어를 실컷 들을 수 있다. 이전 영화들에 비해 영어가 조금 더 잘 들렸다. 세월이 갈수록 그 억양이 순화된 것인지. 내가 조금 더 귀가 틔인건지..여하튼 미국 영어의 느끼함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매우 강인하게 들렸다. 미국 영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스코치 영어를 실제로 맞닥드리면 멘붕이 오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투박하게 음률이 강한 영어를 익히다보면 재밌기도 하고, 가식없는 솔직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것 같다. 


 위스키 술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의 문화의 일부를 답사한 느낌이다.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장과 포도밭을 둘러 볼 수 있었던 명작 '사이드웨이'가 생각난다. 와인을 마실때마다. 영화속 주인공이 가르친 대로 유리잔에 코를 깊숙히 들이대 향기를 맡는 습관이 생겼다. 와인잔을 돌려 산소와 잘 섞이게 한다거나, 입안에 넣고 혀의 여러 부의에 맛을 감지하도록 머금는다거나. 괜히 본것은 있어서 꼬래 술잔 들고 폼은 다 잡았다. 이 영화에서도 시음회의 과정이 그렇게 묘사된다. 실제 위스키의 제조 과정을 투어 관광처럼 보여준다. 너무나 너무다 위스키가 땡겼다. 



 내가 마셔본 최고의 위스키는 조니 워커 블루 라벨 이었다. 시중에선 30만원대고. 면세점에선 한 17만원 정도였던거 같다. 언젠가 대학동기들과 여행을 갔는데, 그중에 누가 아버지의 찬장에 모셔져 있던 조니워커 블루를 가져왔다. 소설속에서 청탁용 뇌물의 상징으로 유명해서 글로만 들어보던. 그 술.. 이것의 뚜껑도 코르그 마개고. 마개를 열고 닫는 느낌 부터가 꽉 쪼이다 뽕 하고 열리는게 차원이 달랐다. 이 술의 첫맛을 잊지 못하겠다. 그 그윽한 향이 입과 식도를 타고 온 몸에 퍼지는 느낌. 그제서야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년의 사내가 홀로 바에 앉아 술 마실때 왜 그렇게 한없이 그윽한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되었다. 흔히 위스키를 마시면. 높은 알콜 도수로 인해, 식도가 타들어가듯 캬~ 하며 표정이 찡그러지며 짜릿했든데, 이 술은 쌔긴 쎄도 특유의 향내음이 독한 자극을 감미롭게 했다. 


 시바스 리갈만 되도 양반이지, 대학 초에 몇번 마셨던. 제일 싸구려 캡틴큐는 위스키라기 보다 신나(시너)에 가까웠다. 난 누군가 초딩학교에서 훔쳐온 알코올램프 알콜에 보리차 조금 섞은 것인줄 알았다. 시바스 리갈이나. 잭 다니엘스. J&B 를 흔히 마시게 되는데, 조니 워커 블루는 이런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아마 또 다른 위스키의 세계는 블렌디드 와 ..싱글 몰트 의 차이 일 것이다. 조니 워커 블루만 해도 최고의 맛 이었는데,, 영화속에서 나오는 전 세계 한 통 밖에 없는 유서깊은 몰트 위스키는 그 맛이 어떨지.. 정말. 그런 술은 꼭 한번이라도 마셔보고 싶다. 



 켄 로치의 대부분 영화에서처럼, 하층민들이 주인공이다. 루저들.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 것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주인공 로비를 포함해 이런 저런 루저들은 보호감찰원인 해리의 인솔아래 갖가지 일을 수행한다. 그러다 해리는 로비의 딱한 처지의 상황을 보게 되고, 진지하게 잘 살아보려는 그와 소통을 하게 된다. 로비는 건달이지만 여자 친구가 아기를 갖게 되자, 아버지가 된다는 책임으로 삶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그 나쁜 환경의 업은 그를 따라다닌다. 폭력의 행사를 뉘우치고 직업을 갖기 위해 모색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고, 우연히 해리의 제안으로 위스키 시음회에 참석해, 감식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러다 그의 순진하고 띨띨한 동료들과 도둑질을 계획한다. 전 세계 하나 남은 위스키통의 위스키를 탈취하는것. 



 이 영화의 제목 '엔젤스 셰어'는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될 때, 자연적으로 공기중에 증발해 없어지는 위스키를 부르는 말이다. 천사들에게 나눠주는 양이라고..영화에서 벌어지는 도둑질은 대단한 비유 혹은 은유가 된다. 부자들을 위한 최고급 위스키의 자연 증발 되는 것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인 하층민들이 셰어,몫을 챙기는 것이나. 어짜피 경매에 낙찰된 미국인 부호는 뒤바뀐 위조 위스키도 못 알아보는 그저 기쁜 호구가 됐고, 나름 유쾌한 분배가 이루어졌다. 

 이 영화의 감동은 누구나 색안경 끼고 보게되는, 얼굴의 칼자국 선명한 폭력 전과자 로비에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그에게 기회를 제공한 해리에게 도둑질로 습득은 했지만 그렇게 귀한 위스키를 선물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천사들의 나눔.인 것이다. 띨띨한 동료들과 돈을 똑같이 나누고, 그들의 실수에 원망을 하지 않고, 보듬어 우정으로 더 나은 삶을 충고한다. 


 

 폭력의 굴레에 있던 주인공 로비가 위스키를 통해 삶의 반전을 이루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천사들의 나눔, 삶의 따듯한 유대와 공유의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퍽퍽한 삶이지만 위스키를 매개로 한 타인 과의 매우 따듯한 소통을 보여줬고, 진정한 선물,증여의 정신을 깨닫게 했다. 

 천사들의 몫이란, 타인을 향한 너그러운 배려의 마음. 


직원 " 증류한 술을 담아놓는 오크통은 숨을 쉬어요. 그래서 나무의 향이 위스키에 스며들죠.
        이 오크통에 담아둔 위스키는 매년 2%씩 흔적도 없이 증발하게 되는데,
        이걸 엔젤스 셰어라고 합니다. 사라지는 만큼이 천사의 몫이라는 거죠."



 자잘하게 웃기거나 어이없는 장면들이 웃기려고 한게 아닌데 웃겨버린, 진짜 웃음을 만들어 준다. 

 

 아~ 몰트 위스키..나중에 꼭 위스키 테마 여행과. 와인 테마 여행을 해봐야겠다. 

 정말 감칠맛나는 스코틀랜드 문화체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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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보는듯 뜨금하면서, 너무 재밌게 봤다. 각각의 인물들에서 나를 발견했다. 이 네명의 인물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단면을 섞어버리면, 내가 되고 우리들이 되는게 아닌것인지. 예술(영화)학교에 국한된 배경이긴 해도, 주변을 보면 너무나 많은 선희와, 이와같은 남정네들이 수두룩하다. 나도 모르게 그랬을테고,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남자, 여자가 있고, 관계맺음이 우리 삶, 사회의 숙명이라면, 이런 끔과 끌림은 인간사 계속되는 자연 현상일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은 너무나 잘 보면서, 자신의 결점은 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조금씩 다른 가면으로 내 실상은 꼭꼭 숨겨둔다. 나중에는 진짜 자신을 바라볼 용기 조차 내지 못하고, 내가 믿고 보고싶은 대로만 보게 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큰 가면인생은 타인에게 관대함을 베풀지 못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성적 인간이 만들어 내는 관계속의 이미지들을 걷어내어 진짜 말을 하게 한다. 매번 취중 대화가 진행되는 것도 이미지화 시키는 이성적 사고의 가림막을 술의 효능?으로 제거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고매한 인간도 술 취하면 개가 되는 것은 피할수없는 술의 숙명이다. 실제 배우들을 취하게 함으로써, 연기조차도 없애 버린다. 인간의 맨얼굴, 욕망에서 바로 건져낸 진짜 말들은 안도감을 준다. 나 말고도 저런 군상들이 있구나. 있을 수도 있구나..라고. 


 선희 역의 정유미를 보고 있자니, 홍상수 영화. 특히 이 영화에는 너무 딱이란 생각이 든다. 얼굴의 밑바탕은 이쁜 얼굴인데, 세파,남자들의 세속에 시달리며 뭔가 찌든 얼굴. 어쩌면 세상을 수월하게 살아나기기 위한 그러한 본능(남자들에게 정 흘리기, 정 주워담기)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맑음을 본의아니게 탁하게 한다. 남자들에 기대어 본연의 자기 자신을 잊은채, 거짓 행복, 거짓 사랑을 믿으려 애써 노력하며 살아가는 그런..  


 이뻣었을 얼굴 말고는 정유미의 본질을 모르겠다. 남자들이 보고 싶은데로 여자는 완성 되간다. 김상중이 쓴 첫번째 추천서와. 두번째 추천서의 차이 만큼, 여자의 흘림이 남자가 여자를 보고 대하는 극명한 차이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제일 연장자이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니만큼 '쌀쌀맞게 대하기' 노하우도 있다고 할까. 반면 이선균은 한참 멀었고(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미련한 놈), 정재영은 마지막 굳히기가 그렇고.. 

 

 그러나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이 생기면 어쩌지 못하는게 인간의 굴레 아닐까. 김상중이 설레여 하는 감정을 토로하는거 보면, 그렇고 그런 끝이 유추가 되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 니체도 좋아하는 여자한테 그렇게 끌려 다닌거 보면.., 이렇게 문화 예술의 발자취는 여자 때문이 거의 다더라.


 마지막 세 남자들의 멋적은 표정들과 새침한 표정으로 빠져나가는 정유미를 보니 남자들의 어쩔수 없는 우매한 본능을 다시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 선희가 아니라 나의 선희를 찾고 싶다. 


 홍상수 영화에서 제일 선호하는 배우 1위는 김상경이다. 그 밑으로는 이선균, 유준상 정도로 꼽는데, 새로이 정재영을 발견했다. 뭐 다 찌질한 캐릭터 들이지만, 그 와중에 무게감이 장난 아니다. 밤과 낮의 김영호가 그냥 남자라면. 정재영은 거기에 되게 복잡다단한 꼬임이 들어차 있다. 억지스럽지 않은 대단한 리얼. 정말 있음직한 형이다. 


 아직도 나의 투명가면이 보여지길 꺼려하는 마음이 처음 자판을 두드릴때와는 다르게 확연하다. 영화에서처럼 치킨-맥주-소주를 마셔야 하나 보다. 그렇담. 거침없이 과감하게 진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속 대사처럼.. 다음에.. 다음 기회에..


 이제는 작품을 다 외지도 못하는 홍상수 영화중에, 근래들어 가장 훌륭하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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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2013)  (2) 2013.09.14



 킬링 타임이란 말은 보통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마련이다.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하듯이. 멍때리며 광탈하는 시간에 자포자기 하는 것. 추석 전날. 점심 먹고, 티비 채널을 돌리다 라디오스타 추석 특집 편집본을 보며 넋나가 낄낄거리며 봤다. 평소에 티비를 거의 안 보다가. 이렇게 추석 특집으로 재밌는 부분만 편집했으니 얼마나 재밌는지.. 그러다 이어서 유재석, 박명수가 진행하는 쉽게 만들수 있는 요리 만드는 프로그램도 너무 재밌었다. 또 연달아서 뭔가를 계속 봤는데 그냥 바보 같이 웃다보니 너무 행복하였다. 


 이 영화도 딱 킬링 타임용으로 보게된 영화인데,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고, 영리한 영화였다. 너무 재밌게 봐서 봉만대 감독이 너무 좋아졌다. 그의 연기는 과연 감독보다도 배우에 더욱 딱인것 같다. 에로 영화 전문 감독이래서 싼마이 양아치가 아니라. 의외로 되게 전문적이며, 감독으로써 카리스마와 리더쉽, 그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확실히 엿볼수 있었다. 에로 전문 감독인 자기 자신을 프로모션하는 엄청 영리한 작품이다. 이름부터가..흥미를 끌지 않나. 봉만대.. 입에 착 달라붙고 잊을 수 없는 이름..낯선 사람들에게 이름만 들어도 경계심이 사라져 쉽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그런. 나도 예명 하나 만들까 보다. 


 영화의 형식은 페이크 다큐 라고 하나.. 영화 제작 현장의 메이킹 필름 촬영 같이 진행되는데. 중간중간에 인터뷰도 들어가고, 일단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고충들이 그려진다. 좌충우돌하는 상황속에서 봉만대의 탁월한 감각과. 열정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고 영화는 완성이 되지만, 뒷통수 맞는 에로 전문 아티스트의 씁쓸한 비애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임필성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에.. 에로씬의 수위가 높지 앉자 제작자는 성질을 내고 긴급으로 에로 전문 감독인 봉만대 감독을 수혈해 현장에 투입된다. 처음 등장부터 생김새나 말투..표정들이 내게는 얼마나 재밌는지..친한 형님처럼 따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진지하고 전문적으로 체위를 설명하고 지도하는 그의 아티스트 정신. 미묘한 손의 표정 까지도 코치하는 섬세함에 감명받았다.^^



 이 영화의 색기 충만한 재미의 백미는 그 자세를 섬세히 지도하는 봉만대 감독과 여배우의 미묘한 심리에 감독이 휩쓸리지 않고. 반응하는 멋적음? 이라 할까. 이 씬 말고도 자잘하게 재밌는 부분이 많다. 여현수와 곽현화가 막말하며 싸우는 장면도..실감난다. 번지점프를 타다 이외로 별볼일 없던 여현수 에게 곽현화의 너무 리얼한 독설. 여배우들의 노출씬의 수위 보다 더, 에로씬 촬영의 어떤 상황들이 더 흥미로웠다. 


 여기 나온 배우중에서 가장 연기가 어색한 사람은 임필성 감독인데. 이사람은 자신의 연출작들도 그저 그렇고 배우로도 별로고, 생긴것 답게 성격만 좋은 사람인것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실력없는 메이저 감독에게 보내는 조롱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더 뭣한 감독이 떠올랐는데, 청연을 만든. 윤종찬 이란 사람.. 영화 정말 못 만들더라.. 


 봉만대 감독을 중심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았다. 어쨌든 과감한 노출도 좋았고. 나름 킬링 타임용 보다는 인상깊은 영화였다. 여기에 나오는 카메라 조차. 너무 반가운.. 내가 처음 접한 영화 카메라 였던 아리플렉스 16BL 이란 필름 카메라. 400피트 필름 캔 과. 그것을 로딩하기 위해 암백..과 매거진. 카메라가 돌아갈때. 미세한 소리까지 잘 잡아내었다. (후시로 소리를 넣었겠지만) 나중에 필름을 다 날려먹고 핸드폰으로 다시 찍게 되는 과정을 보다보면..어떤 상징적 요소도 있는거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스템 차이에 대한..생각들이..

 오리털 파카 여배우 정말 골 때림..ㅋㅋ

 아무튼 이 영화는 킬링 타임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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