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KBS2에서 방영한 X-파일 을 마지막으로 외화시리즈를 본 적이 없다. 더 어릴 때에는 많은 미국 드라마를 티비에서 해줬으니까 어떤 향수어린 추억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케이블 채널이 생기면서 더 많은 외국드라마 들이 밀물처럼 방송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전혀 관심이 안 갔다. CSI나 프랜즈, 프리즌 브레이크가 유행일 때도 별 흥미가 없었다. 난 사람들이 미드. 미드 그러길래 심야에 하는 방송, 미드나잇을 줄여서 미드 라고 그러는줄 알았다. 그러니까..야한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럼 일드는(yield?) 착한 방송을 말하는 것이냐..이런 미련한 놈. 


 쓰다보니 비슷한 곰탱이 같은 일화가 생각나는데, 예전에 얼마간 만나던 분이 핫요가를 다닌다고 했다. 강남거리를 걸으면서 붉은 네온 싸인으로 핫요가 간판이 많이 보였고, 나는 핫의 의미를 섹시한 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야시시한 동작을 하거나, 야시시한 옷을 입고 하는 신종 요가인가 보다 했다. 얼마후에 나의 오해가 민망하게 풀어지긴 했지만. 간혹 나의 센스없음은 비참을 부른다. 


 어쨌거나 얼마전 지인들과의 대화중, 미드 이야기가 나왔고, 식스핏 언더를 허벌나게 강추했다.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은 분인데. 자기는 2시간 짜리 영화가 담아낼 수 없는 어떤 묵직한 감동을. 이 식스핏 언더의 최종회 까지를 보면서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하지만 최종 시즌6까지.. 1시간 짜리 총 70여편의 분량이었다.(이게 맞나?) 좀 망설여졌다. 


 아무튼 제목이 시사하듯이..장의사 가족의 이야기 란다. 어쩌면 오히려 별로 흥미롭지 않은 소재로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최고의 미드 라고 칭찬이 자자했고, 그 당시 주요상을 휩쓴 유명한 작품이었다. HBO제작 이었고, 일단 시즌1, 13편을 다운받아 보았다.


 


 쭉~ 연달아 본 것은 아니고, 나름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보았다. 나름 이것도 좋은 휴식이었다. 장의사 가족의 이야기이니까. 어떤이의 죽음으로 항상 시작한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불현듯 찾아온다. 삶과 죽음은 밀착해 있다. 그래서 어둡고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죽음이 일상이 된 가족의 세밀한 이야기들이다. 매일 자신의 삶의 고민에 힘겨워하고 가족들과 부딪히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사연은 나름 재미와 어떤 자각을 준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우리네의 모습은 그 장의사 가정의 독특한 정서 구조와 사연과 다를게 없고, 오히려 삶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한다. 


 간혹, 얼굴이 함몰된 시신의 모습같은, 내겐 보기 힘든 장면이 나오나, 정서상 전혀 공포를 조장하는게 아니라서 봐줄만 하다. 오히려 둘째 아들 데이빗의 동성애 장면이 좀 오글거리게 만든다. 

 죽음을 대하는 미국의 장례문화를 통해 인간의 삶을 더욱 이해할수 있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앞으로 더 보게 된다면 무엇이 느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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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버튼의 가위손이 생각나는 영화였다. 가위손은 어릴때 보아서인지 감동과 여운이 많이 남았는데, 이 영화는 거리두기를 하게 되는 영화였다. 내가 동심을 잃어서라기보다, 동화적 내용이 어떤 영화, 미술적 장치로..구현되는게. 감독의 개성이 뭍어나지 않는, 그냥 그런 상업영화라 느껴졌다. 여심을 사로잡는 마케팅 전략에 충실한 느낌 뿐, 가위손 같이 독특한 작가적 역량과 개성이 느껴지지 않은게 내심 아쉬웠다. 너무 기대가 큰 걸까.. 

 이 영화의 영상은 시종일관 소프트 포커스 필터로 뽀사시한 영상을 보여주려 노력하는데, 너무 안이하게 과용한것 같다. 뽀얗게 부서지는 빛의 효과는 박보영이 기타치며 노래 부를때나 어울리지, 일반적인 장면에서도 남발하면 좀 눈이 답답해진다. 


 여성과 남성의 극명한 관람차이. 남자는 시종일관 벙쪄하고, 여자는 눈물바다를 이루었단,, 그 눈물 포인트를 이해못하는건 아니지만 좀 뻔하지 않나. 너무 대놓고 작위적으로 눈물을 유발하는.. 그런 여자들의 욕망의 환타지를 (말잘듣게 가르치고 훈육시켜 평생 자기만을 바라보고 충성을 다하는) 꽃미남으로 포장한 한편의 동화로... 나름 재밌게, 살짝 감동적으로 보았으나..내겐 킬링타임용 이상은 아니었다. 그나마 박보영이 주인공이래서 므흣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송중기의 눈빛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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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이 레미제라블은 감동을 넘어 전율이 돋게 했다. 나의 영화 편력은 그동안 공포나 환타지 영화 그리고 뮤지컬 영화를 제외한 모든 것 이었으나 이 영화를 통해서 뮤지컬 영화의 편견을 깼다. 기존의 뮤지컬 영화 감상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야기에 집중될라치면, 막 환타지성으로 노래부르고 춤추고..억지 과대 감정의 발산으로 인해 자연스런 감정이입,몰입이 안되었더랬었는데 이 레미제라블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와 감정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참혹한 시대상황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꿈꾸고 행동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는 무한한 사랑과 열정이 묵직한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시궁창속에 피어난 사랑의 힘. 각각의 개인이 자신을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나와 세상을 위한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의 존엄심. 그것에 대한 열망과 쟁취는 결국 사람이 먼저다.란 말을 떠올리게 하고, 민주화된 선진국들의 자유.평등.박애 정신을 새삼 일깨우게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토지나 태백산맥정도가 될 듯한. 빅토르 위고의 대작 소설은. 1985년 영국에서 뮤지컬로 초연되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뮤지컬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긴 것인듯. 난 어떠한 뮤지컬 공연을 한번도 못 봤지만. 영국에서 이 뮤지컬을 보고온 친구의 말로는 영화도 무지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뮤지컬 영화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두시간이 훌쩍넘는 이 영화를 볼까말까 했었는데, 안 봤더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지금은..몇번이고 다시 보고 싶은 의욕이 솟구친다. 


 imax 관의 soundx ? 에서 봤는데 상영관이 정말 큰거 말고는 영상과 사운드의 질이 훌륭한지는 잘 모르겠다. 영등포CGV의 스타리움? 관이 아시아에서 제일 큰 관이라고 하던데..정말인가.. 화면이 너무 커서 그런지 스크린의 핀트가 조금 안 맞는 느낌이었다. 사운드도 사방에서 꽝꽝 울려주는 입체  서라운드 느낌보다는. 모노 사운드의 느낌이었다. 왕십리 아이맥스에서 본 다크나이트 라이즈와는 반대의 느낌인데. 이런 기술적 아쉬움을 빼더라도. 영상의 질과. 음악의 감동은 대단했다. 오히려 영화기술이 스펙타클의 화려함으로 치장하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나는 앤 헤서웨이가 꽤 많이 나오는지 알았다. 비교적 초반부에 일찍 죽는게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대단히 슬펐다. 연기가 쩐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원래 좋아했지만. 이쁜 외모를 넘어서는 진정한 배우였다. 머리 자른 모습을 보니..시네드 오커너와..위노나 라이더가 잠시 떠올랐다. 그리고 동공이 확장되는 새로운 비주얼 발견.. 아만다 사이프리드. 너무 아름다워서 헤벌쩍 마른침만 삼켰다. 목소리도 천상의 목소리. 집에 가면 맘마미아를 필히 찾아봐야지 하는 다짐..


 






 위 사진들은 당대 최고의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가 보그의 의뢰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도 역시 쩔어주신다. 


 레 미제라블 : 불쌍한 사람들


빅토르 위고의 서문 전문

사회에는 법률과 풍습으로 말미암은 처벌이 존재하여
그것(그 처벌)이 문명 속에 인위적으로 지옥을 만들어내어
신성한 운명을 불행으로 뒤얽히게 하는 한,

그리고 이 시대의 세 가지 문제,
프롤레타리아 탓으로 남자가 낙오되고, 굶주림으로 여자가 타락하고,
어둠 때문에 아이들이 비뚤어지는 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또 어떤 지역에서 사회의 질식상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한,
다시 말해
좀 더 넓게 보아 이 지상에 무지와 비참이 있는 한,
이러한 책들이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교수님의 주옥같은 글. 링크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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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한 번 더 보고 글을 써야 할 것이니 첫 소감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보는 내내 시 공간이 왔다 갔다 해서 적응이 안되고 당혹스러웠지만 중반 이후로는 개개의 이야기의 얼개가 대략 파악?이 되었다. 감독의 연출력이나 뚜렷한 세계관이 없다면 그 이야기들은 높은산의 모래알같이 되버렸겠지만 세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결국 하나의 주제로 통일되는 감독의 세계관을 엿볼수 있다. 비교적 선행구조의 리얼리즘 영화를 좋아하는 내겐 색다른 경험이었다. 초반 이야기에 몰입이 안 되어도. 너무나 뛰어난 비주얼과 탄탄한 연출 때문에 그 긴장의 끈이 놓이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그 집중을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운 영화도 아니나. 이야기.주제를 말하는 형식이. 단일적이지 않고 별개의 이야기인듯 하나 결국 그것이 별개가 아닌 다 연결되어 작용한다라는 명확하게 와닿지 않은 어떤 진리를 말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어떤 종교적 진리를 끌어다 얘기해도 설명이 될텐데 나는 불교의 연기법이나 윤회사상같은게 떠올랐다. 


 다시 보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을것 같다. 명 배우들의 1인 다역한 분장에 감춰진 걸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거 같다. 영화에 대해 딱 뭐라 말하지 못하겠지만 내겐 명불허전 같은 영화였다. 워쇼스키 남매 만세.. 배두나도 헐리웃 영화에서 자주 보았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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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밝혀두자면, 나는 이 영화의 영화적 완성도나 작품성을 나름의 주관으로 판단할 뿐이지, 배경에 깔린 역사적 사실로서의 사회적인 파급과 그 의의에 대해선 적극 찬동하는 바이다.


 

 ( 일요일 아침 첫 회인데. 사람이 가득. 어제 아는 누님이 갑자기 26년을 예매해준다길래, 머리 긁적이며 그러라고 했는데, 사실 26년이 뭔지도 몰랐다. 보고나서 영화에 대해 검색해보니,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제작과정.. 배급과정이 순탄치 않았는데, 시민 투자 방식으로 진행된 모양이다. 이승환이 이 영화의 1호 투자자 라고. 그 누님은 콘서트 전회를 다 따라다니며 보는..이승환의 광팬. 아 그랬구나. 아무튼 일요일 아침. 집근처 CGV에 갔더니, 내 자리는 맨 앞, 덕다운 파카를 입은 거구의 두 남자들 사이, 그 중 여친이랑 온 놈은 신발까지 벗고 다리를 의자까지 접고 있음. 참 짜장면 스러운 비매너, 그리고 가뜩이나 광고 때문에 짜증나서 되도록 예술전용관에서 하는거 보는 편인데 주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고가 연실나옴. 티켓에 적힌 시작시간을 넘어 20분여를 했던거 같음. 에휴..)


 영화의 시작은 자막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상자가 총 4112명 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이런 소재의 영화가 개봉이 됐을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는 사실이. (그 흔한 인터넷 포탈의 짤막한 기사조차도)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해주는것 같다. 찾아보니 웹툰의 원작을 영화화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는 것이었다.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투자를 안해서 시민들의 소셜펀딩으로 만들어진. 그 만큼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응원하는 마음이 가는 영화이긴 하나..영화의 완성도, 연출력은 좀 미흡하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진 않은데, 다루는 소재가 큰만큼 많이 아쉽다. 이런 역사의 사실을 가지고 만드는 영화중에 명작이 나왔음 하는 바램이 역시나..이창동 감독 같은 분들이 굵직한 현대사의 한면을 담은 명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용기와 연기의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제작 과정의 우여곡절속에 연출 경험이 없는 미술감독이 감독을 맡아서인가. 제작 기간에 쫒겨 허둥지둥 했던 제작자들의 심리가 영화속. 그새끼를 처단하려는 주인공들의 설레발들이 투영되어 안쓰럽게 느껴졌다. 영화 초반에 그들이 모일때는 뭔가..그럴듯한 암살 계획을 세우는가 싶더니. 후반부로 갈수록, " 거 좀..잘 좀 하지..." 그런 심정.. 그래도 진구가. 그새끼를 몸으로 팰때는 어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 개새끼를 처단하려는 동기나 의미는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진심어린 사과. 이제 그런것은 인간말종에게 바라지도 않는다. 그 놈이 멀쩡히, 버젓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착하거나,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나라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그런 아픔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의 기억속 첫 대통령인 그 새끼는 어린이의 마음에도 적잖은? 상처?를 안겨주었더랬다. 평화의 댐이라는 거대한 국민 사기극은 과자 사먹을 돈을 아끼고 아낀 초등학생의 코뭍은 돈까지도 착취했고, 그들의 부정부패속에 사라졌다. 어릴적 반공교육이나 국민교육헌장의 세뇌같은걸 생각하면, 또 이름 함부러 말하면 경찰에 잡혀간다라는 어린이한테까지 미치는 공포심 조장은..다시 생각해봐도 치가 떨린다.

 

 아마도 80년대 후반. 밤에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다큐영상을 보다가..되게 무서웠었다. 그런 자료 화면속 충격적 이미지가 아직도 뇌리에 남는데, 그것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악랄한 독재자에 의한 국가권력에 가족이 죽거나 고통받았다면 영화속에서처럼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방가후, 테레비에선 5공 청문회를 해주었다. 분노에 찬 노무현, 이해찬 의원등의 열변이 기억난다. 장세동 같은 개새끼의 똘마니들의 뻔뻔한 얼굴을 보며 다 큰 어른처럼 혀를 차던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이 영화를 생각하면, 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듬성거려서 문제지.. 요소요소들은 재밌었던 느낌이다. 도가니에 이어. 장광씨의 주리를 틀어주고 싶은 얄미운 연기는, 배우로써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출연 선택에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역사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오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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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개봉시 보았을땐 삐딱한 심정으로 봐서 그런지 지루하고 겉멋든 영화라고 느꼈는데, 다시보니 이 영화 참 괜찮다. 늦게 깨달은 수작 영화의 면모는 이해가 아닌 그냥 스며들어 느껴야 하는 감성의 산물이었다. 


 다수의 여자들이 하정우를 멋지게 생각하듯이 남자들은 탕웨이에게 어떤 본능적 끌림이 작용하는것 같다.(나만 그런가?) 그 사람만의 분위기. 여성의 외면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의 복잡다단에서 올라오는 이미지는 남자들이 여성을 대상화할때 성녀와 요부, 어머니와 창녀라는 극단적인 스탠스를 무마시키는 지점에 서있다. 


 탕웨이와 감독이 열애설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탕웨이를 위한 영화였고, 탕웨이에 의한 영화가 되었다. 상처받은 여인의 내밀한 영혼을 소통하면서 마음을 나누니, 어찌 안 통했겠는가. 


 김태용 감독은 이윤기 감독의 뒤를 잇는듯, 세말한 감성 로맨스를 추구했다. 대사나 플롯 보다는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감정의 무드가 중요했다.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에서의 3일간. 서로를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수도 없지만 옆에 있어주고, 깊은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언어의 소통이 아닌 마음의 보듬어줌이 사람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근본적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어머니마저 죽고 잠시나마 마음을 기대 쉴 곳 하나 없는 여인의 내면은 심연의 안개에 빠진 적막한 시애틀의 풍경과 닮아있다. 3일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하는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고 이 지구상에  홀로 남겨진 고독과 외로움은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맞물려 가장 휑한 영혼을 보여준다. 몸으로 먹고사는 현빈의 캐릭터는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상처받고 외로운 자에게 등불이 되고 싶고 기댈수 있는 말뚝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 아닐까. 현빈의 캐릭터를 통해 많은걸 배울수 있었다. 사랑이란 꺼져가는 상대의 등불을 어떻게 비추어 밝혀주느냐. 

 되새길수록 그는 고차원적인 제비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를 기다리는 그녀는 그가 안올지라도 그의 마음만은 간직하며 언젠가를 기약하며 살아가겠지. 왠지 그가 못와도 그녀의 달뜬 기분이 내심 여운이 많이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멋진 하루'와도 비슷한 감흥의 영화였다. 두 영화 다 소리의 섬세함도 무척 훌륭하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 서걱거리는 옷깃의 소리, 꾹꾹 눌러담은 탕웨이의 음색 등등. 암튼 가을비의 스산한 감성으로 느껴보아야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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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칠맛나는 영화였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적적할 때 이런 영화를 본다면 효과 만점일 듯 하다.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거나 의미부여를 하기 보다는 그냥 느슨하게, 배우들이 자잘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내비두는 연출 스타일 같다. 걸작,명작, 아니, 흥행작을 만들어야 하는 욕망이 아닌, 그냥 우리 한번 즐겨보자..그런 느낌. 


 주인공 김인권의 편한 얼굴 마냥 부담없이 낄낄거리며 즐겼다. 마지막 짱께 배달부들의 살신성인이 좀 어거지스럽긴해도 참 재밌는 코미디 영화였다. 


 여유가 뭍어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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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개봉한지 13년이나 지났단다. 개봉시 극장에서 두번 보았다. 13년 만에 다시 본 셈인데, 해마다 이 영화의 매니아들은 특별 상영회를 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런 명작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 제맛이니,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에겐 영원한 고전이 되어가는 값진 감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니, 아무쪼록 불멸의 사랑 영화 되시겠다. 

 

 바야흐로 세기말적 분위기의 1999년에 한떨기 희망이 떨구어졌다. 아련,애틋,풋풋,설렘,순수,사랑의 마음을 담은 영화 '러브 레터', 

 일본문화의 개방 초창기, 이 영화가 최초가 아닐지어도. 내 기억속엔 극장에서 감상하는 최초의 일본영화 였던것같다. 비디오로만 보았던. 애니메이션 '아키라'나 '우르츠키 동자?' 의 거칠거나 이상한 소리와는 다른 나긋나긋한 여인의 일본말이 신기하게 들리던 경험. 


 개봉시 꽃다운 나이 때, 감상한 느낌보다 13년 만에 다시본 지금 이 감흥이 훨씬 더 강렬하다. 그때는 이미 첫사랑의 회환이 사그러드는 시점이었고, 지금은 왠지 항상 첫사랑중 이란 심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첫사랑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울랑말랑 웃음짓게 만든다. 



 2년전인지 3년전인지 겨울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애인의 마음을 느껴보기라도 하듯, 참한 분위기의 주인공은 눈밭속에 누워 못다핀 사랑을 그리워한다. 자고로 미련이란 다 주지 못하거나 다 받지 못한 사랑의 앙금일터, 몇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잊지못할, 그는 진짜로 이 여인(히로코)를 사랑했던 걸까..


 죽은 그를 향한 헛헛한 마음은 여전했고 그 마음을 달래고자 중학교 졸업 앨범의 주소를 찾아 편지를 발신한다. 하지만 이 주소는 동명의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주소였다. 

 후지이 이츠키 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히로코와 똑같이 생긴(많이 닮은 이겠지)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생뚱맞은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답장을 받은 히로코는 마음속의 그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극중 다른 두 여성을 한 배우가 연기를 해서 횟갈렸었다. 머리 스타일조차 똑같았으니 초반엔 좀 이해가 안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두세번째 볼때가 더 좋은듯하다. 


 그런 오해와 의문 속에서 영화는 더 몰입하게 되고, 이야기의 전모는 차츰 밝혀지게 된다. 두명의 중학생 후지이 이츠키의 과거를 현실속 성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너무나 오랜 기억을 발굴하듯이 담담하게 채집해 들려준다. 히로코와 우리 관객들에게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이 사진을 확인하고는 히로코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과 닮은 여인.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대뜸 사귀자고 했던 그.  

 직감했겠지. 

 그리고 그렇게 말이 없고,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했던 그의 중학생 과거를 듣는다.  

 다 듣고 나서 그녀의 이 외침은 그냥 그리움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히로코의 그런 마음도 안쓰럽지만 그녀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유리공예하는 남자도 그렇고 또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그의 조수도 그렇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언제 어디서나 '잘 지내고 있나요? 를 되묻게 된다. 


 한편, 이런 후지이 이츠키를 보고 안 넘어갈 여학생이 어디 있겠소.



 반한다는 것은 이런 결과를 낳고



 과거속 후지이 이츠키도 실룩샐룩 마음의 감정은 숨기지 못하고 무뚝뚝한 그에게 알듯 모를듯 새침한 소녀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오른쪽의 4차원 소녀는 깨알같은 재미..



 현재의 그녀는 본의 아니게 과거속으로의 여행을 하게 되고, 그 추억을 공유하고자 사진을 찍어주고 동명의 후지이 이츠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인사와 겻들어 죽음이란 삶의 본질은 무던한 그녀의 삶에 새로운 삶의 성찰로 이루어 지고, 묻혀졌던 과거의 기억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이어서, 너무 순수해서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지 몰라 꼭꼭 숨겨놓은 그의 마음은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랑에 관한 오래된 고전 푸르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발견된다.



 그녀의 마음을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그저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할 뿐..

 잘 지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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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허진호 감독의 팬이다. '위험한 관계'가 개봉하자마자 보았는데 지금은 별 기억에 안 남는 영화가 되었다. 장동건만 나올뿐이고 감독이 한국인인 중국 영화이다. 내용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배경만  1930년대 상하이 상류층. 스캔들이나 여타 이 원작의 다른 영화에 비해서 '위험한 관계' 만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장동건은 멋지게 나오지만. 시종일관 여자앞에서 시껍대는 표정은 항상 똑같다. 장백지는 이쁘긴 하지만, 이젠 그런 스타일 별로고, 장쯔이의 연기는 볼만했다. 영화의 공간 배경이나 조명의 화려함이 화장을 떡칠한 듯하다. 이런 것도 이재용의 '스캔들'이 훨씬 좋았다. 극장에서 금새 떨어진것 같은데,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를 잇는 그런 영화는 이제 요원한 일인가..


 '피에타'는 잔인한 장면이 나올까봐 걱정스러웠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그의 영화중..'수취인불명'과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사마리아' 등과 함께, 좋은 영화라 기억이 남는다. 오히려 이정진의 좀 어색한 연기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게 하지 않아서 그 불편한 파급력이 자제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돈의 굴레와 피의 복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체제의 무서움을 직시하게 한다. 신체 조차도 물질화되어 돈의 가치로 치환되는 그런 세상. 폭력과 감정의 말살은 어머니라는 존재앞에서 어떻게 회복의 기미와 용서를 구하는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광해'는 천만관객이 넘는 영화들의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좋았고, 개운하게 재밌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당시 역사..선조.광해군.인조.허균. 임진왜란,병자호란 등등에 대해 검색해 읽었고, 허구의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상기시키고 공부하는 힘이 나에겐 있었다. 경복궁을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궁궐 안팍의 미장센들, 조명의 효과들이 아름다웠다. 이병헌의 생김새와 눈빛등도 정말 배우다웠다. 그의 소문이 어떻든간에 배우로선 정말 훌륭하지 않나..반면 한효주는 절망. 여자인데도 여자같이 안 느껴지는 이상함. 굳이 중전과의 로맨스를 보다는 후궁과의 알콩달콩 염문이 어땠을까. 이 나라의 국운은 그 때 부터 꺽이지 않았을까. 상업영화이지만 역사인식을 상기시키는 소재가 좋았다. 허구의 상상을 통한 역사의 재조명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이나영은 살아있었다. 그녀의 연기가 어떻고를 떠나서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의 포스가 작렬한다. 유하 감독의 '하울링'은 감독의 명성에 걸맞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범작으로 치부하기엔 좀 아쉽다. 이나영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객관성을 잃어버린채 그녀의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분명 보통관객에겐 설득력, 공감이 부족한 영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의식과 소재의 참신함은 좋았다. 다만 그것의 효과적 연출이 아쉽긴하다. 감독이 유하래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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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관념이고 환상이래지만 평생에 한번이자 마지막일 이렇게 확실한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표현할까. 이렇게 멋지고 가슴저민 이야기는 사랑을 책이나 영화로 탐닉하지 말자라는 나의 기조를, 흔들리게 한다. 언젠가 무심코 무장해제되어 들이닥칠 사랑의 파급을 조금은 대비라도 하듯 허구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느끼고 상념하게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는 내 나이가 파릇파릇한 꽃청춘의 계절, 중년의 우중충할 듯한 불륜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에겐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어디 줄리 델피 같은 여자 없나, 중구난방 기웃거리던 시절. 어느새 서른이 넘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을 섭렵하면서 보게된 이 작품에 늦게 서야 큰 감명을 받았다. 줄리 델피의 큐트함 보다 메릴 스트립의 깊은 미소와 눈매에 찡한 감동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성숙?해 가고 있었다. 


 한 여인의 삶 속에서 결혼, 사랑, 가족, 희생 같은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숙고하게 한다. 삶의 선택과 그 행동에의 용기는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내 일상. 나를 구성하고 있는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 사랑을 위해 변화를 위해 발걸음을 나서기란 너무 가혹한 선택. 상대를 100%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겨진 가족을 위한 가슴아픈 배려이자 희생이었다. 어머니란 말에 함축된 그 지고지순한 사랑은 나의 욕망을 취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회쳐서 자식과 남편에게 바치는 일식집의 정찬 테이블 같은 것이었다. 


 프란체스카의 선택은 자신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개인을 넘어 사회의 통념에서는 칭찬받을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삶에서 행복이란..그리움과 추억속에 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이고, 자신이 되어야할 존재로서 변화가 아닌 되어야 만 했던 존재로의 고착은 인내의 삶을 숙고하게 된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녀에게 짧지만 강렬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사랑의 선택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보다는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매순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대단히 매력적인 남자이자 본받아야할 남성상이다. 특히 이 장면. 프란체스카가 2층에서 가방을 꾸리는 동안 그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녀의 눈으로 그녀의 전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듯 하다. (대사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지만 대사가 없는 이 부분이 특히 감동 받았음)



 이 영화의 구조는 '그을린 사랑'과 거의 똑같다.두 남매가 막 죽은 엄마의 과거의 일을 알아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점점 진실을 깨닫고, 한 여인의 강렬한 인생 경험으로 사랑과 깨달음으로 충만해지는 삶의 유산을 전수한다. 근데 이 작품은 진부하고 뻔한 불륜이라는 금기에 돌을 던질수가 없다. 그 안에는 사랑과, 결혼.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평생에 올까말까하는 사랑의 진면목을 간접적이나마 느낄수 있다. 주인공의 해피한 사랑의 결말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가 숭고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 마음에 품고 죽을수 있는 그런 사랑은 어쨌든 행복한 것 아닌가..




 영화의 초반 뚜껑이 있는 다리를 안내하러 같이 갔다가 로버트가 들꽃을 뽑아 주려고 하자 프란체스카가 태연하게 '그거 독초인데요' 라고 장난치니 바로 경끼하며 떨어뜨리는 로버트. 서로 파안대소하며 웃음으로 통하는 순간.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여자의 마음세계를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내면의 감정에 따라 변화 무쌍해지는 그녀의 연기는 대단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분명 이 영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전해지는 감동이 무한할 영화이다. 한 5년후에 다시보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걸 이 영화에서 새롭게 깨우칠 수 있을까 더욱 궁금해 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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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초,중반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금 보는 재미가 있다. 다시 본다는 것 보다도 새롭게 본다는 것이 더 맞는것 같다. 장면하나하나가 소소한 재미로 가득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는, 같은듯 다른듯, 영화를 보는 시간의 간극만큼, 몰랐으나 아는 만큼 보이고 새로운 진실을 찾는다. 


 내가 숭배하는 이상형의 여자를 꼽자면 우마 서먼 이라고 딱 말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건 변함없다. 최근작인 벨아미에 나온 우마 서먼을 보면서 자글자글한 피부에도 불구하고 '오! 아름다워라'를 연발했다. 어릴적 부터 여신 같은 존재였다. 왜 이런 이미지에 끌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뻔하지 않은 외모에서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순수, 백치미와 팜므파탈의 여전사 이미지, 물과 기름이 오묘하게 섞인듯한 이상 야릇함.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키가 무려 182란다. 부부였을때 에단 호크 보다 더 큰 키, 그리고 우마 서먼의 아버지는 유명한 불교학자이다. 서양인 최초의 승려였었고 달라이 라마의 친구라고 한다. 컬럼비아대학 교수인데, 미국내에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란다. 수행하다가 환속해서 우마 서먼을 낳은듯.. 우월한 유전자임이 틀림없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은 내가 우머 서먼에 빠지게 된 영화중 하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첫 주연작 '형사 매드독' 인데 이건 다음에 따로 포스팅 할 예정. 둘 다 아주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고 우마 서먼의 풋풋한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외모는 별로지만 지적이고 똑똑한 여자(에비)여서 나랑 잘 통하는 여자와.. 외모는 이쁘지만 텅빈 머리의 여자(노엘_우마 서먼) 중. 남자의 선택은.. 


 이 영화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짐작하다시피 겉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인품이 중요한거고 제 눈에 안경이래서 아무리 눈길이 안가는 사람도 사랑하는 순간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 진다고, 겉모습이 어떻든지..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영화의 결말에서 남자주인공은 진심을 다해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두 여주인공의 장점(이쁘고 착하고 지적인)만을 합쳐놓은 대상(우마 서먼)에 푹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가 에비로 착각하며 노엘(우마 서먼)을 처음 봤을땐, 그의 눈에선 뿅~ 사랑의 마법이 일어났고, 그 후로 그녀를 대할때, 안절부절 설레이는 그를 볼 수 있다. 남자들은 진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뭐 마려운 똥개처럼 입은 말라가고 눈빛은 미세하게 요동친다. 진짜 아름다운 여자는 카오스를 선사하고 남자는 그 마음을 숨길수 없다. 어떠한 대화보다 한번의 마주침이 중요한 거고 그 이미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게 (남자)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각에 특화되었고, 점점 더 그런 사회에서 이것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외모도 무척이나 아름다운데 전화 통화의 대화도 자신과 너무나 잘 통한다는 것이다. 외모에 자신감 없는 에비때문에 본의아니게 노엘은 에비로 행사하게 되고, 남자는 이쁘고 지적이기도 한 에비(우마 서먼)에게 올인하게 된다. 그래서 위에 남자의 진심은 내가 느끼기엔 ' '거짓말 하고 있네' 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남자는 허탈하게 술집에 앉아 있을때, 진짜 에비가 사과하러 나타나자 쳐다도 안보고 실의에 빠진다. 이것이 진실일 것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고 그러니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중요한게 아니고 내면의 소통이 중요한거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째 좀 동의엔 미흡하는..


 이런글에서 벤야민을 언급하기엔 웃기지만 아름다움이란 겉모습(외양)과 이데아의 긴장이 어우러졌을 때라고 말했다. 이데아의 긴장이라..(표현이 참 고상하시다..)


 그러면 노엘(우마 서먼)이 이데아의 긴장이 없는 그냥 텅빈 껍데기에 불과하냐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 노엘은 멍청한듯 하지만 착한 여자다. 내 생각엔 (제 눈에)이쁘고 착하면 게임 끝. 모델일을 하며 남친이자 매니저에게 갈굼을 당하지만 자신의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도약을 위해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한다. 남자주인공이 준. 어려운? 책. 시몬드 보봐르가 샤르트르에게 쓴 편지책. 을 사전을 찾아가며 세번이나 읽고, 마음이 상한 에비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진심을 전하려 노력한다. 이 영화의 맹점은 이 우마 서먼의 캐릭터에 있다. 이쁜데 착하기까지 하고, 관념이나 편견없이 그 순간의 마음에 솔직하고 순수한 반응을 보인다는데 있다. 된장스러운데가 하나도 없다. 단지 지적이지 않다는 것 뿐, 그래서 처음에 언급했던 두 여자의 대비의 도식이, 남자의 선택이, 지금의 나에겐 공감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극과 극인 두 여자의 우정에 더 감동하는 면이 있다. 사심없는 노엘이 행동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맹한 구석에 영화는 따듯해진다. 


 뭔가 많이 알수록 순수성은 파괴되고 영악해진다가 내 생각이다. 주인공 에비 박사는 지적이고 재치있을지 모르지만 착하지는 않다. 자기 방어적이다. 외모 컴플렉스때문에 상처를 받아온 영혼이래서 '뭐! 내가 항상 그렇지' 하는 심정이 '안 쓰럽다' 라기 보다 자신이 가진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헛 똑똑이 같은 면이 답답하다. 자신의 단점을 개선시키려 노력하기 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누군가가 사랑해 주길 바라는 자포자기적 캐릭터, 반면. 노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단점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한 금욕적 노력도 단지 지식을 많이 아는 것 보단 좋아보였다. 

 아름다움은 껍데기의 조건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마음의 밑바닥에서 부터 드러나는, 순간의 삶에 대한 열정일 것이다. 


 진부하고 뻔한 결말일 수 있지만 내게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의 대답은, 못생겼는데 똑똑한 여자를 골라서 성형수술을? 보단, 이쁜데 착하기 까지 한 여자를 잘 이끌어 주고 맟춰가는게 훨 자연적이다. 라는게 내 생각. 결국 여자는 이뻐야 한다? 이쁜게 착한거다. 라고 돌맞을 소리를..지껄이지만 나는 마음이 착한 모든 여자는 이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를 모를 뿐이지 그것은 눈빛과 피부로 드러나고 남자들은 그 미세한 빛에 감응해 더욱 환한 빛으로 반응해 그녀를 밝혀준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밝혀줄 깨끗한 거울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장면.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에비와 노엘의 사진을 차례로 찍어주는데 에비의 얼굴에 몰두하며 눈빛에 반응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노엘이 질투하고, 노엘을 찍을때, 에비가 옆에서 말을걸어오는 것도 모른채 너무 촬영에 몰두해, 에비는 상처를 받는다. 카메라를 통해서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선택과 집중의 무아지경. 분명 더 좋아하는 대상에 더 집중하고 더 많이 찍게 된다. 


 우마 서먼이 케익 먹는 장면. 너무 황홀했음. 평상시 백인 여자가 섹시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이 장면은 예외..


 남자가 전화 통화로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읽어 주는 장면.

 현대자동차의 지오란 차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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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때 TV에서 했는데 중간부터길래 다시 다운 받아 보았다. 아 뭐냐면 이현승 감독의 '푸른소금' 이 영화는 '카페 느와르' 처럼 포스터 사진도 올리지 않을 정도의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글에서 검색하고 저장해서 올릴정도의 수고를 하기엔 귀찮다. 내가 신세경을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처음부터 모든게 형편없는게 아니라, 이야기 외.. 영화의 모든게 너무 훌륭한데 이야기가 병맛이라 더더욱 안타깝고 아쉽고 화가나는 지경이다. 아니 저렇게 훌륭한 배우진과..촬영, 색감, 미술 등등등 너무나 훌륭한데, 마치 카스테라 빵 없이 크림위에 데코레이션만 잔뜩한 케익 같은..영화가 되버렸다. 


 감독의 전작인 '그대안의 블루' 나 '시월애'는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장편영화를 만드셔서 그런지 장편 연출의 감이 학생들 졸업작품처럼 어설프다. 개별씬들의 완성도는 그럴듯한데 그것들은 모아서 뭉쳐보면 이야기가 개연성이 없어, 납득이 안된다. 그러니 공감도 없고, 영화속에서 송강호가 천정명과 이종혁에게 도미를 넣은 라면을 끊여주는데 딱 이게 뭥미? 그런 심정. 


 감독이 너무 열심히 준비한것 같긴 한데, 전혀 수습이 안 된 것 같다. 이 영화의 실패 요인을 분석해 보면, 영화 공부 많이 될 것 같다. 물론 조명이나, 미술은 훌륭히 참조할 만 하고..


 신세경은 영화에 캐스팅 되기 좀 어려울 듯, 시트콤 하나 떳다고 바로 영화 주연배우에 캐스팅하기엔 성급했다. 드라마로 더 실력을 다지다가 영화로 가야했는데, 생각할수록 다 아쉽고 아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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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집에서 한국 영화 한 편씩 보았다. 예전에 다운 받았다가 그냥 지우긴 아쉽고 해서 별 기대없이 보았는데, 역시나 기대이하였다.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나고, 더이상 영화나 책에 탐닉하지 말아야 겠단 생각이 드는건, 무슨 효과이지.? 부정적인 쪽으로 확실한 임팩트가 있으니 그냥 기억에도 안 남을 그냥그런 영화보단 의미가 있는걸까. 하여간 실로 엄청나게 안좋은 영화였다. 덕분에 다른이들의 감상글들을 읽어보니, 남의 분노의 폭발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러다 개판인 영화를 보고 남들의 욕들을 읽으며 킥킥대는 이상한 취미가 생길라 몰라..


 이 영화의 제목을 밝히기가 망설여진다. 왜 사람들은 그거 진짜 보지마. 완전 쓰레기야 그러면 더 보고 싶어지고..궁금해지고 그러지 않나. 하지말라고 하는거, 나쁜것에 대한 금기는 하고싶다.란 욕망을 낳게 만든다. 그렇다고 정말 그지 같은걸, 대충 보통으로 말하는건 내 성격상 그러질 못하고, 영화가 아무리 별로여도, 그래도 만든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을 가상히 여겨 좋은쪽으로 보려 하지만, 그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다. 짜증과 화가 솟구치다가 그냥 제풀에 지쳐 자포자기되는, 극장에서 보았다면 중간에 나갔을 테지만, 이건 언제라도 중단할 수 있으니 그래 어쩌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다 보긴 했다. 

 한편으론 사람마다의 취향 차이도 있는 거고, 누군가의 평이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해석이 다양하니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절대 부정은 한편으론 긍정과도 통하니까..보시려거든 뭐 어쩔수 없지만, 정말, 3시간 18분 동안 낮잠을 자거나 공원에서 사람들 구경하는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이 영화에 대해 잘 쓴 글 하나,,

http://blog.naver.com/careercenter/50103892623  


 재밌게 본 글 하나..

http://blog.naver.com/nicemonk/90103813663


 영화라는 장르는 대중예술이니까, 보편적 공감대의 형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자위하는 영화는 골방에서 해야지. 멀쩡한 배우들 데려다놓고 자기 위안거리 삼아 기만하고 위선떨었으면 양심이 있어야지. 그걸 극장에 걸다니 정말 사회적인 패악이다. 문화의 다양성 존중. ㅎ 이걸 보았다면, 그런말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이걸 극장에서 본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후유증이 오래 남을듯 하나, 광해나 피에타를 보고 제자리로 와야겠다. 


 삶은 관념속에 사는게 아니라는, 그래서 관념의 괴물이 되지 말자라는 참 힘겨운 교훈.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정말 최악인 영화에 대해서 인데, 가을이래서 이래저래 순화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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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처음 봤을 땐, 조금 길고 살짝 지루한 듯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영화였다. 가 첫인상이라면 최근에 다시 본 이 영화는 '아 감동적이다.!' 조금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아침,저녁 선선한 공기의 가을이 오는 전조는 노총각의 심리를 님의 침묵의 한 구절에 울컥하게 만들고, 진부하고 전형적인 스토리의 이 영화에 몰입해, 가슴이 스산해지는 사랑을 엿보기도 한다. 



 다시 보려고 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 잭 화이트의 출연 때문이었다. 영화가 개봉한 2003 년이면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최고의 절정기를 보낼 때, 이 영화가 촬영. 개봉 된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잭 화이트와 르네 젤위거가 염문설이 돌았고, 멕 화이트와 결정적으로 법적인 부부관계를 깨게 된 시점이, 밴드의 성공의 정점과 영화 출연에 따른 외도 일 것 같다는 내 나름의 추측이다.

 어찌되었건. 영화속에서 잭 화이트는 전통 노래를 부르고, 이 영화의 유일하게 아이러닉한 코믹 씬을 유발한다. (그의 극중 이름은 조지아)


 이 영화에서 사소한 단역 조차도 배우들이 어마어마 하다. 나탈리 포트만 조차도 조연으로 짧게 출연했고, 나탈리가 나오는 씬의 나쁜 북군 쫄병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의 주인공. 유럽의 명감독들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유명한 배우인데 이름은 잘 모름. 배우들의 면목이 그러하니 감독은 누군가 했더니 안소니 밍겔라 .. 


 '더 리더'''리플리' 의 감독이었다. 2008년에 54의 나이로 타계. '잉그리쉬 페이션트'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앞의 두 작품과 이 '콜드 마운틴'이 가장 좋다.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엔 못다핀 꽃 한송이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50대 나이면 감독으로써 한창 일 할 나이일텐데. ㅜㅜ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쟁속에 피어오르는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 너무 뻔한가. 하지만 감독은 그렇고 그런 삼류 감독은 당연히 아니다. 초반의 전쟁씬만 보아도 감독의 의도와 탁월한 시각을 엿볼수 있었다. 


 대부분의 명작 전쟁영화들을 보아도 전쟁씬의 박진감 넘치는 생동감은 있어왔다. 심지어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 등에서도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전쟁의 오락적 시각은 있었다. '글래디에이터' 같은 경우는 전투의 호쾌함이 전쟁의 참혹성을 넘어서 관람자에게 마치 내가 그 전투속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는 듯한 스펙타클한 시각을 제공한다. 아마도 헐리웃 영화, 아니.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매체의 난센스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이 '콜드 마운틴'의 초반 전쟁씬은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참혹하게 연출되었다. 전쟁 액션

의 드라마틱함은 온데간데 없고, 마치 인간지옥 같이 진창에서 뭉게지고 처절하게 살육 되어진다. 나는 감독의 이러한 의도와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의 시각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전쟁의 보여짐이 아니라. 정말 전쟁은 저렇게 끔직한 거구나 란 걸 심지있게 보여줬다. 당연히 영화 내용상. 주인공이 탈영을 하게 되는 납득할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니 그렇겠지만, 더 넒게는 감독의 세계관과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초반 대규모 전쟁 장면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단연코 전쟁이 화려할 수가 없듯이..


 결국 전쟁속에 피어오르는 사랑과. 삶의 가치들을 말하는 영화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뿐만 아니라  남겨진 민간인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고통을 받는다. 어쩌면 더 막막한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게 남은자의 몫이 아닐까. 어느 전쟁이나 그렇듯이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고, 더욱 악랄하게 설친다. 이 영화는 그런 전쟁 내.외면의 모습들을 남,녀의 애틋한 마음을 통해 감동적으로 잘 보여준다. 결국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일 수 있지만,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삶의 평화와 아름다움의 가치를 말한다. 맛있는 음식과 음악, 그리고 아이들.. 새로운 가족들 속에서 다시 삶은 찬란한 태양같이 피어오르고 평화와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저릿하게 일깨운다. 




 주인공 인만(주드 로) 과 에이다(니콜 키드맨)가 서로 사랑하게된 계기가 될 만한 큰 사건이나 이야기가 없다. 목사의 딸인 에이다가 콜드 마운틴 이라 불리는 고장에 이사와, 말수가 적은 시골 목수인 인만과 인사하게 되고, 서로를 향한 설레임은 눈빛으로 덤덤히 전해진다.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한 사랑의 발로일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 이유 조차도 없는게 옳다. 그냥 그대로 끌리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인만은 어느날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꾹꾹 눌러 놨던 감정을 어렴풋이 발설한다. 아침에 깨어날때 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뭇친 그리움을 무엇이라 말해야 하나. 시적이고 아름답고 진솔하다. 투박하지만 진실이 담긴 그의 표현은 정말. 감언이설의 사랑의 방정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음은 서로의 첫 대면에 한순간에 통한다. " 아무말 없이 마주 서 있는 걸로도 충분하다면요.." " It is ! " 


 좀 다른 이야기인데, 주드 로를 보면 참 완벽한 남자의 이미지다. 최근에 보게된 영화 '벨아미'를 보면서 느낀건, 주인공이 전혀 벨아미스럽지 않아, 나는 오히려 주드 로 가 떠올랐는데, 혹 그가 지금 벨아미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벤 반스가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서로 잘 알지 못한채, 사랑이 무르익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이, 인만은 전쟁터로 떠난다. 서로의 사진을 전달한 것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들은 깊은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인내한다. 사진의 초창기 시절. 다게레오타입 초상 사진을 볼 수 있다. 영화 곳곳에서 초상 사진의 의미가 아주 절절히 드러난다. 1860년 그 시절. 초상 사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 사진을 준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단면을 전달한 것일게다. 


 전쟁터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죽음의 사경에서 에이다의 편지를 듣고, 그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깨달아 탈영을 감행한다. 이때부터, 고향으로 가는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오로지 그녀를 향한 마음만을 품은채, 그는 어떠한 시련과 욕망에도 견뎌내어 꿋꿋이 나아간다. 염소를 키우는 할머니의 외딴 오두막에서 그녀가 자기를 잊었을거란 불안에 감정이 북받치지만, 그는 끝끝내 일말의 그 마음을 잊지 않았다. 에이다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상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견디어내고 개척했다. 여기서 르네 젤위거의 탁월한 캐릭터와 연기가 인상 깊었다. 

 

 염소를 잡으면서 인만에게 말해주던 할머니의 대사가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전쟁터에서 수도 없이 살인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은 " 이렇게 살아있다니..." 

 "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제 역할이 있어. 자연을 둘러봐. 새가 씨를 쪼아먹고 새똥에 섞였던 씨가 나무로 자라나지. 새도 똥도 또 씨도 제 역할이 있는거야. You've got a job ! "




 전쟁터에서 황폐화된 자신의 영혼을 그녀를 향한 마음만으로 간신히 부여잡고 끝끝내 도착해 그들은 해후한다. 하지만 단 하루의 사랑의 달콤함도 운명 앞에서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힘들게 마음의 끈을 놓지않고 기다렸건만 역시 영화의 대미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이렇게만 들으면 전형적인 진부한 사랑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뭉클함은 보이지 않아도, 지금 여기 없어도, 현실이건  상상이건,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씀에 있다. 그는 갔지만 세상 곳곳의 만물의 사소한듯한 경이 속에서 그의 마음을 발견하는 에이다의 멘트로 영화는 끝난다. 


 뭐 전형적인 로맨티스트다운 영화다. 가을에들어 그런 감정에 치우쳐 이 영화를 감상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겉으로 드러난 사랑이야기의 배경에 깔린, 전쟁의 참상을 어떤 정치나 이념의 치우침 없이 보여준다는데 있다. 마치 반전 영화의 명작 '지옥의 묵시록' 에서 로드무비식으로 전쟁의 광기를 보여주듯이, 전쟁이 가져오는 다양한 비극을 주인공들의 기나 긴 여정에서 드러내준다. 그리고 그것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더 특별한 반전영화가 되었다. 

 다시금 감상한 이 영화는 아주 훌륭한 영화라 생각된다. 잭 화이트가 나오는 영화 답게 음악이 아주 훌륭하다. 왠지 신혼부부가 주말에 부둥켜안고 감상하면 좋을 영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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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데니스 호퍼가 죽었을 때, 단연 생각나는 영화 '이지 라이더'.  코폴라 감독이 죽었을 때, 공중파 티비에서 더빙판으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를 방영하는걸 찜질방에서 보고, 역시 대단한 감독과 영화라고 찬탄을 했다. 마찬가지로 데니스 호퍼 감독이 죽었을 때, kbs에서 이 영화의 더빙판을 해줬던 모양이다.  (코폴라 감독은 아직 안 죽었다 함.. 착각하고 있었음)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비디오 테입 대여 시절이었다. 사막을 가르는 두 대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사진은 남자들에게 무의식 깊숙이 뭔가를 자극하고 갈망하는 방아쇠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자유라는 이름의 도달하기 힘든 이상 일 것이다. 


 다음 글귀들은 스크랩글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 : 파국이 예정된 자유와 평등을 향한 질주

  데이스 호퍼(Dennis Hopper) 감독

 

  1960년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으로 얼룩진 20세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매카시즘으로 얼어붙었던 19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도착한 미국은 좌파 경향의 사회운동(흑인, 여성의 권리운동과 반전운동)과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으로 흥분과 혼돈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회운동은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날로 심각해져 가는 베트남 전쟁과 거듭되는 암살사건(케네디 형제,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은 1970년대의 패배를 암시하고 있었다. 장르-스타-스튜디오 시스템의 공식으로 운영되던 할리우드 영화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발표된 1967년은 ‘혁명의 해’로 불릴 만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1960년대 젊은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영화로 담아낸 결과였다.

 

  데니스 호퍼의 1969년 작 <이지 라이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결정판이었다. 빌리(데니스 호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찾아서’(캡틴 아메리카의 가죽 점퍼와 헬멧과 모터사이클에는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올리언스까지 여행을 떠난다. 돈은 마약 밀매로 마련했고, 일용할 양식은 마약과 마리화나이다. 그들의 여정에 히피들과 변호사 조지 핸슨(잭 니콜슨)이 스쳐 지나간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면서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새로운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를 꿈꾸고, 조지(조지 워싱턴?)는 전쟁과 빈곤, 지도자와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버린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자유와 평등을 명시한 미국 독립선언의 실현 불가능성,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역사에 대한 회의로 빠져 들어간다. 모래땅에 씨를 뿌리는 히피들은 이상주의자들이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 조지는 허무주의자일 뿐이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는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마르디그라(사육제의 마지막 날)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지만, 축제의 제물로 바쳐진 것은 기성세대(또는 보수주의자들)의 총에 맞아 죽는 그들 자신이었고, 남은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이었다.

 

  노예시장으로 악명 높았던 뉴올리언스에서, 실패했다고 고백하는 두 사람은 미국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에 할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에서 벗어난 방법이 영화의 주제를 뒷받침한다. 스타를 배제하고, 카메라를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옮기고, 장르를 패러디하는 저예산의 독립영화. 서부영화의 와이어트 어프와 빌리 더 키드는 캡틴 아메리카와 빌리가 되고, 서부에서 동쪽으로 무대를 옮긴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패배자가 된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버디 무비와 가정이 없는 로드 무비의 형식, 록 다큐멘터리와 뮤직 비디오를 예견하게 하는 반전 무드의 록 음악 사용……. 고전적 영화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한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미국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기수 케네스 앵거의 <떠오르는 전갈궁>은 참고서가 되었다.

 

  “위대한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 때 오류가 발생한다”는 고다르의 예언처럼 데니스 호퍼와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1970년대의 보수주의 물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모두 빼앗기고 덧없이 시들어갔다.

 

  ㅡ김경욱(영화평론가)


「이지 라이더」는 한 편의 예술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토리는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빌리(데니스 호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라는 별명의 젊은이가 큰 돈을 벌게 되어 멕시코에 가서 마약을 구입한다. 이들은 부자가 된 기분으로 참회 화요일에 뉴올리언즈를 방문하겠다던 오랜 꿈을 실현하기로 하고 오토바이 두 대를 사서 국토 횡단을 시작한다. 도중에 모뉴먼트 밸리와 타오스 푸에블로를 비롯한 서부의 유명한 아이콘을 지나친다. 

그들은 히피의 코뮨에도 들르고 감옥에도 갇히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 나오고, 또 두 명의 매춘부와 함께 뉴올리언즈의 한 묘지에서 마약파티를 벌인다. 이 모든 것이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는 1968년 이후 세대의 할리우드 영화의 발생단계에 속하는 영화이며, 처음으로 스크린에 ‘대안사회’를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쓰고 인디언 목걸이를 한 호퍼와 성조기가 그려진 헬멧과 오토바이를 탄 폰다, 두 오토바이족은 아이콘적 인물이다. 

사용한 마약의 양도 엄청났다(영화 속에서뿐 아니라 배우와 제작진이 소비한 양도 많았다고 한다). 두 주인공은 히피 여자들과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변호사 친구 조지와 마리화나를 피우며 캠프파이어를 하고 철학자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잭 니콜슨이 처음으로 맡은 큰 역할인 조지는 부잣집의 아들로 경직된 사회를 거부하며, 미국이 관습을 벗어난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파멸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물건이 되어 있는데도 자유롭다고 느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조지가 내뱉은 이 말은 곧바로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이지 라이더」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관습에 도전한다. 젊은이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영화이며(이 영화를 감독할 당시 호퍼는 32세였다), 반문화의 기수인 스테펜울프,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등 음악이 등장한다. 주 인물(니콜슨, 호퍼, 폰다) 중에 스타는 없었고, 서사는 인물만큼이나 제멋대로다. 전통적인 사랑이야기도 없으며, 결말은 잔인할 정도로 비극적이다. 아주 적은 제작비로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렸고 그럼으로써 할리우드의 관습에 반항하는 새로운 영화의 길을 닦아놓은 셈이다. 그중에는 다시 잭 니콜슨이 등장하는 「잃어버린 전주곡」과 「마빈 가든스의 왕」도 포함된다.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누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호퍼는 자신이 단순히 연출과 출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본까지 책임진 이 영화의 ‘작가’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달리 보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들과 조지의 대화 같은 영화의 가장 굵직한 장면은 사전에 테리 서던—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대본작업에도 참여했던—이 써놓았던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모두 동의하는 사실도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목이 서던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_ 네이버캐스트


그들은 자유를 찾을 수 있었을까?


  1960년대 후반의 미국. 그 곳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좌파경향의 사회운동, 즉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있었으며 날로 심각해져가는 베트남전, 그리고 거듭 일어나는 암살 사건 등이 가세하여 더욱 불안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혼란 가득한 상황 속에서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어 하는 탈출에의 욕구를 담아낸 영화가 ‘Easy rider’라고 생각한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 이 두 젊은이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들의 양식은 마리화나와 마약이었고 오토바이 두 대가 그들이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비단 이 두 사람만이 자유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오토바이 여행 여정중 만나게 되는 히피와 변호사 조지 또한 그러하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함과 동시에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로의 회귀를 꿈꾸었으며, 조지 또한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지만 두려워하며, 전쟁과 빈곤,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 버린 평등한 사회가 되기를 지향한다.

 

  이들은 그럼 그렇게 원했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을까? 환각제를 일삼으며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어이없는 죽음뿐이었고 남겨진 건 성조기와 고장이 나버린 오토바이 뿐이었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성조기는 이들의 머리위에서 항상 억압세력으로 작용하는 미국의 힘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죽어버림으로써 꿈이 모두 무산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해석해 보면 그들은 실제의 삶에서 얻지 못한 자유를, 죽음이라는 잘못된 해결을 통해서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삶에서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꼭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무언가의 혁명이 일어나려면 꼭 그만큼의 선동 세력이 있어야 하고, 얼마만큼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그 다음에야 무언가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정반합 구도가 아니던가. 공산주의를 밀어내고 자유주의가 이 세상을 다질 때까지의 과정이 그러했으며, 모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설 때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희생까지도 감내하면서 나서는 선동주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소수일 뿐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겁이 나서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다. 그들을 겁나게 하는 대상은 차마 대항할 수 없는 지배 권력 체제이다.

 

  영화는 처음의 독립선언서 정신을 망각한 채로 점점 자유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기를 들며 체제전복을 꿈꾸고, 점점 사람들을 위협하는 시대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다룬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변호사 조지가 다 그러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높여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들을 죽인 건 기존의 보수 세력들이었다. 데니스 호퍼 감독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폭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리어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들이 꿈꾸었던 건 어떻게 보면 모든 이들의 이상과도 동일할 것이다. 불안이 없는, 빈곤이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고 무참하게 세 명의 이상주의자들이 죽는 장면을 통하여 그 현실의 실현 가능성이란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_ 네이버 리뷰어


1960년대 후반 미국은 공포의 매카시즘이 사라지고 나서 한쪽에서는 베트남전쟁 확산을 본질적으로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을 필두로 하는 사회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다른 한쪽에는 보수주의 세력도 있었다. 이러한 진보와 보수주의 논리 속에서 젊은이들에게는 기성 세대의 권위를 부정 또는 저항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의식 구조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마약을 판매하여 모터사이클을 구입한 와이어트(피터 폰다)와 빌리(데니스 호퍼)는 남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뉴올리언스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생활하는 히피족을 만난다. 히피족의 철저한 무소유적인 공동체 생활방식에 관심이 끌려 얼마 동안 같이 생활하지만 자신들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라고 훌쩍 떠나 어느 도회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변호사 조지 한슨(잭 니콜슨)을 만나는데 한슨은 기존 질서의 억압과 권위주의에 신물이 나 이들과 같이 여행을 떠난다. 한슨이 여행 중 청년들에게 살해되자 와이어트와 빌리는 허무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환각의 세계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도 뉴올리언스에서 사육제의 마지막 날에 농부들의 총에 사살된다.

196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American New Cinema)의 대표작으로 영화계에 충격을 던졌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계의 흐름까지 바꾸어놓은 걸작이다. 영화에서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을 향해 떠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 나약한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무모함과 충동적인 감정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죽음 자체가 하나의 시대적인 아픔이다.

[출처] 이지 라이더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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