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이다. 새로 나오는 영화 소식을 수시로 챙기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에 영화가 지나쳐 버리는게 요즘의 극장 환경이다. 뜬금없이 짐 자무쉬의 신작을 알게 되었고, 바로 달려가서 봤다. 평소 길눈이 그리 어두운건 아닌데, 지하 주차장에서 만큼은 엘리베이터를 찾거나, 다시 내 차를 찾을때 꽤나 헤매는 타입이다. 그래서 광고 시간을 지나, 영화가 조금 시작한 지점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거 되게 싫어하는데, 차타고 편하게 온게 시간절약 보다는 시간 관념을 상쇄 시켰고 결국, 그렇게 주차장에서 소비된 시간들은 현대 생활의 아이러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짐 자무쉬 영화이고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는 것만 알고 들어가서 바로 앞 줄 빈 자리에 앉으니, 뮤지션으로 보이는 퀭한 남자가 고풍스런 음악 작업실에서 멋드러진 기타들을 상대 남자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기타를 매우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나 설레이는 장면인 것이다. 주인공이 그레치 기타의 챗 에킨스 모델을 꺼내 설명하고 튕길 때에는 이미 영화속으로 무한 몰입 됐다. 


 짐 자무쉬의 영화들이 그렇듯, 느릿한 템포, 한량의 호홉속에 깨알같은 재미가 녹아 있다. 음악과 문학, 예술에 대한 탐미적인 애정의 시선 뒤에는 그것에 대한 조롱과 냉소의 함의가 깔려 있다. 어쩌면 감독의 내적 자화상 같이 느껴진다.


 이건 추측인데, 주인공 아담의 캐릭터의 모티브는 잭 화이트

2012/05/28 - [음악] - Jack White 잭 화이트

에서 나온것 같다. 배경이 디트로이트이고 빈티지 악기와 아날로그 음향 장비에 둘러쌓인 뱀파이어 뮤지션. 이전 작품인 '커피와 담배'에서 잭 화이트가 출연하기도 했고, 톰 웨이츠나 이기팝 같은 뮤지션의 출연이나 음악 사용, '데드맨'에서의 닐 영의 영화음악 등등으로 봤을때, 짐 자무쉬의 음악 취향이 유추된다. '리미츠 오브 콘트롤'에서는 기타에 대한 애정을 엿 볼 수 있었다. 


 언젠가 잭 화이트의 창백한 얼굴과 천재적 음악 재능을 보면서 '저 사람은 뱀파이어가 아닐까?' 란 상상의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특히 음악 분야에서 외계인이나 뱀파이어 일 것 같은 천재가 많이 포진해 있는거 같다. 이런 생각들이 영화 보는 동안 의식의 저변에 흐르는 도중, 너무나 반갑게도 진짜로 잭 화이트가 언급되는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 아담이 애인 이브(틸다 스윈튼)에게 자동차로 디트로이트 를 구경시켜주는 장면에서 작고 평범한 어느 미국 주택을 가리키며 '저기가 잭 화이트의 어릴적 집이다. 저 곳에서 7번째 아들로 자랐다'고 이브에게 설명해 준다. 그 순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나만의 감동이겠지만, 짐 자무쉬 감독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말 나온김에 하나 더 말 해 보자면, 이브의 동생 에바가 아담의 집을 깽판쳤을때, 1902년산 깁슨 L2 란 어쿠스틱 기타가 부서졌는데 이브가 부서진 기타를 주워들고 무심히 보다가 '기타 보디 안 쪽 의 디자인이 너무 아름답다'라고 뜬금없이 찬탄 하는 장면에서 진심으로 감독을 존경 했다. 저런 애정어리고 능청스런 은은한 유머는 짐 자무쉬 만의 개성 이다. 


 이 영화의 일면은 이렇듯, 나를 매혹시키는 것들로 포진 돼 있다. 아니 문학과 음악, 예술에 관심있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어떤 로망같은 존재로 뱀파이어 주인공들은 그려진다. 그들은 인간세계에 있지만 현재의 삶에서 유리된, 먹고 사는 일에 빗겨나 있는 매우 나이브한 예술 탐미주의자들이다. 

 아담은 하루종일 전위적 음악을 작곡하고 이브는 독서에 빠져있다. 뱀파이어의 본능인 피에 굶주려 사람을 포악하게 잡아먹는 생존을 추구하지 않는다. 고정 거래처에서 편리하게 돈주고 사먹는 피도 앙증맞은 잔에 빼갈 마시듯 흡입하고 마약에 취한 모습을 보인다. 또 피로 만든 아이스바를 먹는 장면도 밥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엿볼수 있다. 아담과 이브란 이름에서 유추되다싶이 오랜 영생을 누린 뱀파이어의 정체성은 염세적인 고상함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뱀파이어의 원초적 본능인 피에 대한 욕구는 어쩔수 없이 반응하게 되는데, 그들에겐 사람을 직접 잡아먹는 짓은 천박한 것이다. 




 예술과 역사에 달관한 그들에게 현재의 삶은 가치없는 무상함 이다. 그래서 철저히 인간을 좀비라 부르며 현재의 삶의 행태를 저주하고, 과거속의 예술의 영광에 빠져 지낸다. 특히나 아담의 집 배경의 유명 예술가들 사진들이나, 모든 소품들을 보면 노스탤지어의 추구가 물씬 풍겨난다. 시간이 가진 흥망성쇠의 아련함을 깊이 천착한 그는 역사의 유명한 뮤지션들이 그랬듯 자살을 꿈꾸며 유일한 인간 조력자에게 나무로 만든 탄환을 세세히 설명해 가며 주문한다. 자기 음악의 팬이 집앞에 서성이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인간의 클럽에서 썬글라스와 가죽장갑으로 우스꽝스럽게 스스로 유리시킨다. 점점 나를 매혹시켰던 영화속 주인공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의문이 가기 시작한다. 


 아담과 이브의 이러한 여러 정황들이 현실의 본능에 충실한 이브의 동생 에바의 등장으로 극명히 대비되는데, 그들의 삶의 행태가 예술가, 지식인들의 허세어린 표정들이란걸 점점 깨닫게 해준다. 그것의 확실한 단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의 제목과는 상반되는 장면이 연출되며 영화가 끝나는걸로 확인된다. 

 에바가 죽인 인간의 시체를 처리하고, 어쩔수 없이 모로코로 돌아온 아담과 이브는 이브에게 피를 공급했던 뱀파이어 조력자 말로가 상한 피를 마시고 죽어버리자, 정말 대책없어진다. 남은 돈을 아담에게 줄 악기를 사는데 써버리고, 허기져서 기운 없어진 그들 앞에 키스를 나누고 있는 인간 연인의 사랑스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사람을 잡아먹는 포악한 그들 본래의 모습으로 화면은 정지되고 영화가 끝나는데, 여기서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속물근성이 들통난 기분.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의도했던 지점이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면서도 그것의 허세와 진짜 삶의 문제를 자기도 각성하고 말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진짜 사랑은 현실의 삶의 사랑이지, 예술속의, 책을 따라하는 삶이 아닌 것이다. 기름종이의 이면 같이 빤히 보이는 원초적 욕망은 예술이고 나발이고 지금 내가 살고자 하는 욕망 앞에선 모두 다 허세에 불과한 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예술을 부정하고 폄훼하는게 아니라, 예술에 내포된 위험성을 말하는 것이다. 실존의 문제를 망각한 삶의 모습은 블랙 코미디인 것이다. 

 그리고 오직 사랑하는 사람만이 순혈의 생명성을 강조하는것 같다. 언어유희의 수수께끼 같은 결말, 역시 멋진 작가다. 


 자칫 이 영화의 나른한 분위기에 취해 감독의 메시지를 놓칠 수 있었다 라는게 내겐 함정이었다.

 너무나 재밌는 영화 관람이었다. 틸다 스윈튼의 외모를 유독 감탄하며 보게 되었다. 얼굴의 골격이 참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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