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이발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상이 이뻤다면. 혹은 머릿결이 얉았다면. 스킨헤드나 장발로 다녔을 것이다. 볼품없는 두상에 어쨌든 머리에 붙어있는 머리카락만으로도 감사하며, 최대한 결점을 커버한다. 잡초같은 머리카락이라도 얼마나 감사한가..
 이발하는걸 싫어하는 이유가. 타인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길지 않은 순간이 싫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은 나의 모습을 뿌연 눈으로 쳐다보는 것도 싫고, 미용사가 나를 구석구석 쳐다보는 느낌? 도 싫다. 아마도 어렸을때의 나름 트라우마? 일 수도 있다. 동네 미용실에서 구렛나루 부분을 면도칼로 밀다가..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 어쩌면 남이 들이대는 칼과 가위에 대한..공포가..무의식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턴가..내가 알기론..작년까지는 > 홍대앞의 미용실들은 굳이 예약없이 가도 자를 수 있었다. 그런데. 몇몇 군데에서..예약안했다고..거절 당하면서..상당히 기분이 나뻣다..예약문화가..좋은점이 많겠지만..나로썬. 여태 살아온 데로.. 생각났을때. 그냥 아무데나 들러서.. 잠깐 잡지보며 기달려 깍는 유목민적 방식과 충돌을 빚으니 참 성가셨다. 12~15000 을 받으면서..옛날의 이발사 보다도..더 실력은 없는거 같은데, 예약하셨냐고 꼬박꼬박 물어보고..안 했다면. 무식한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가 옥죄었다. 

 그래서 그렇치 않은 분위기의 미용실을 찾다가. 합정동에 주택을 개조한 작은 동네 미용실을 찾았었다. 이름도..이쁜 '풀잎 미용실' 중년의 아줌마가 혼자 지키는 딱 동네 미용실. 젊은 미용사 보다 맘도 편하고. 별 말이 없어도..불편하지 않았다. 참고로. 난 미용사랑..머리 깍으면서 말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간혹 미용사랑 수다떠는 손님을 보면..특히 남자..되게 신기하다. 이쁘고 젊은 미용사가 내 머릴 깍아도..난 눈을 꾹 감고..명상한다..제발 빨리 끝나라고..간혹 미용사의 보드라운 손이 내 귀나 목덜미에 닿으면, 나는 더욱 돌부처가 된다. 그래서 매번 듣게 되는 소리.."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네." 쓱싹쓱싹...끝...

 그리고 머리 감겨주는 것도..뭐랄까..민망하다..두피마사지의 대단한 스킬 때문에 깨운하긴 해도..머리감는걸 서비스 라지만..누군가에 맡겨 하는것 자체가 불편하고..간혹 얼굴에 올려놓은 수건이..내려와..눈이 오픈될때..참 난감하다. 웃기는 모습을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보이는것..돈을 지불하는 거지만..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남이 내 머릴 감겨주는것..그 교환가치가..나한텐 이상하다.. 그리고 안좋은 기억.사실 쪽팔린 기억중 하나가. 고등학교때. 처음 이렇게 누워서 머리 감는 미용실을 갔다가..쪽당한 안좋은 추억도 있고..알다시피 잘못 누워서..

 그러다..몇달전부터..친구가 추천해준..홍대앞의 깍새란 곳을 알았다. 여기서 처음 머릴 깍고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동안의 미용실에대한 고민이 일거에 사라졌다. 가격도 6000원이고..머리는 예전 블루 클럽처럼 내가 알아서 감는 방식이고...이발사 분의 실력이 꽤 좋았다. 보통 홍대앞 미용실들의 어중간한 스타일링 차원이 아니라..그냥..정직한..이발사 방식이었다. 대부분..프로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있었고.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처음에 대략 짧게 잘라달라고 말하면 알아서..내가 원하는데로 깍아주신다. 

 어제 간게 세번째 인데..영화 '아저씨'의 원빈 머리 스타일로 잘라 달라고 말했다.. 오호 나로썬 장족의 발전이다..근데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면..그렇게 말했을지는 의문이다. 갑자기 쌀쌀한 날씨 만큼이나..머리가 시원해졌다. 참 맘에 들었다. 어짜피 맘에 들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에..더욱..
시원한 옆구리 만큼 머리도 시원해지니..날아갈것 같았다. 사실 추위에 짧은 머리는 닭벼슬이 스는것 같았다. 옆구리에 내 날개는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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