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우리집에 떠돌고 있다. 이사라는 유령이. 요즘 집에 들어가면..매일 무언가가 없어져 있다. 엊그제는 쌀통. 그제는 어항. 오늘은 무엇이 내 놓아져 있을까. 이사를 하려면 내년은 되어야 할텐데. 아무래도 부모님도 버리는 즐거움을 알은 모양이다. 내가 중2때 이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어언..음..암튼) 꽤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쌓였을래나.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역사가..이 집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제는 버리고 시간의 낙인을 음미해봐야 할 때이다.

 떠나야 할 시간이 있으니, 매일 한결같았던 집의 느낌이 새롭다. 구석구석에 녹아든 체취속에, 나의 역사가 담겨있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때, 부모님은 차곡차곡 모아 집을 한 채 더 늘리시는 거였다. 지금은 정말 보잘것 없지만. 그 때는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의 집 이었고. 3층으로 신축된 집이었다. 이사를 하는 날은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이사를 안 해도 벼락치기 공부여서..이사와 상관없었겠지만. 문제는 지금 내가 쓰는 3층에 올라갔을때였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친구와..어마어마한 잡지가 쌓인 방을 발견했고. 대부분. 자동차생활. 일본..논노.그리고 여성지들. 그 와중에..별천지를 보았는데. 미국판 펜트하우스 였다. 처음으로 포르노그래피 사진을 보았고, 많이 얼떨떨했다. 그때는 너무 적나라한 충격에. 사진의 퀄리티를 볼 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당대 최고의 포토그래퍼 들이 찍은게 분명했다. 완벽한 테크닉과..조형성 이었다..바디 아트와 바디 페인팅등..예술적인 사진도 많았다. 다만 적나라한 음부가 문제라면 문제였지..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 보다는, 훠얼씬 아름다웠다.
 예전에 부기 나이트와 래리 플린트 란 미국 포르노그래피 산업에 관한 영화의 기억을 유추해 보면, 내가 본 펜트하우스는 가장 그 산업이 왕성했을때. 나온 잡지 같았다. 여러모로 스펙타클 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상한 충격과 흥분에. 그리고 밤새 여성지를 뒤적거린 끝에..벼락치기 시험은 쏠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 한동안 자동차와..여성잡지를 탐독했다. 아마도 이 때 나의 조형성과..미적 감성은 자리 잡지 않았을까. 명작들의 영향이 아닌. 일본판 논노 잡지의 취향은 유니크한 것을 좋아하는 특이함으로 발전했다. 중1때 본 소피 마르소 라는 환상의 천사가..포르노잡지와 여성지 섹스 정보에 의해..무참히 깨졌다. 펜트하우스가 어느정도 지겨워 졌을 무렵. 섹스 환타지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학교에 가져갔다..종이에 땀자국이 베기도록 돌아다니다가..결국. 이 책의 최후는. 친구네 집 5층 짜리 아파트에서..한장한장 종이 비행기가 되어..지상에 착륙했다. 엄마와 손잡고 지나가던 꼬마가...종이 비행기를 펼쳐보고서 얼마나 놀랬을까.. 친구와 나는 그 여러 놀람들을 키득거리면서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이 포르노 잡지책을 통해서 불상사나운 일은 생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포르노 사진 종이 비행기 행위는 예술적 퍼포먼스라고 여겨진다. 
 또 발견한 책이 피터 드러커의 성공하는 법칙 ~ 같은게 있었는데, 아마 그 때, 이 책을 진중하게 읽었더라면..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을래나..

 이사를 한 후. 나의 삶은 급류 처럼 흘러갔다. 물론 지금에 와 뒤돌아 봤을때. 그렇단 말이다. 우리집과 함께 영원할 것 같은..그 나른한 청소년기가 어느덧 청춘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사이 누나 둘은 결혼해서 지금은 어린 조카들이 집안의 계단을 오르락 거리는 즐거움을 맛본다. 나는 이집을 통해서 독립하지 못했고. 여전히 뭍혀간다. 내년이면..변화의 조짐이 왕성해지는 시기일듯 싶다. 집과 함께. 내 삶의 또다른 챕터가 넘어간다. 
 이 집에 처음 왔을때. 옥상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눈에 선하다..주변엔 다 1층 단독주택이었고. 언덕위 3층이라. 멀리..여의도 넘어 한강까지 보였던.. 그 장쾌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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