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북을 사고 나서, 집에 있는 10년된 컴퓨터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처음엔 그 안에 있는 500기가 하드 디스크 두개를 외장 하드 케이스를 구입해 맥북용 외장 하드로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오래된 IDE 인터페이스 하드용 케이스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예전에 그렇게 쓰다가 하드를 날려먹은적이 있어 선뜩 내키지 않았다. 

 대만의 홍수로 인해 하드디스크 가격도 비싼데, 오래된 하드래도 대용량이라 어떻게든 써볼 생각을 하다, 결국. PC를 버리지 않고. 맥북과 1394파이어와이어 네트워크로.. 파일 공유를 하며, 계속 쓸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동안  PC의 증상이었던. 그냥 멈춰 버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말에 날 잡고 대대적인 분해 조립을 통한 먼지 청소를 했다. 동시에 파워 서플라이도 새로 하나 샀다. 

 컴퓨터를 다시 조립하다 보니. 처음 샀을때 조립하던 기억과..이것을 가지고 과제, 일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청춘의 모든 추억이 이 컴퓨터와 함께 했다. 그동안 메인보드, 그래픽 카드. 파워 서플라이이 등을 교체하고, 램과 하드디스크를 보충하며 수명연장을 하고 있었다. 그저 전자 부품들의 조합인 기계의 컴퓨터로써가 아니라, 생명이 있는 장치로 여기며, 장기이식으로 손때묻고, 정든 컴퓨터를 아꼈다.  이 컴퓨터에 쌓여진 먼지 만큼 내 삶의 시간들이 켜켜히 쌓여져 있었던 것 이었다. 

 그러다 보니 계속 쓸 결정을 잘 한 것 같았다. 맥북이 있어, 패러럴즈로 맥OS 안에서 윈도우를 쓸 수 도 있지만, 그래도 윈도우 PC를 아예 없애버리기엔 찜찜하다. 720p 이상의 동영상을 보진 못하지만 나머지 일들은 다 할 수 있으니..

 그동안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파워 서플라이를 교체 해 주면서, 대대적인 먼지 청소를 했다. 다시 조립하고, 전원을 넣었는데, 모니터에 아무런 화면이 안 나왔다. 이 때부터 정상화 될 때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지나고 나서 결론적으로는 램의 접촉 불량과 그래픽 카드 의 문제였다. 여러가지 변수가 많아, 고장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쉽진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먼지로 인한 접촉 불량과 파워 문제가 큰 것 같다.  
 
 급하게 중고 장터에서 내 컴퓨터의 인터페이스에 맞는 그래픽 카드를 검색했다. 다행히도.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었다. 내가 산 것은 매트록스 밀레니엄 g550 이란 왕년에 2D 그래픽 색감으로 유명한 제품이었다.  판매자와 문자와 통화를 하고, 바로 직거래했다. 만원이 안되는 가격에, 이렇게 살 수 있다는게 매우 고마웠다. 나 같으면 7000원 짜릴 팔기 위해서 이런 직거래를 하진 않을 것 같은데,  현재에 통용되지 않는다고 배제하거나, 돈이 안된다고 무시하지 않는 이런 장터에서 거래를 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동안 갤갤거리던 소음이 그래픽 카드의 팬 때문이란 걸 알았고, 중고로 산 이 제품은 아예 팬이 없는 것 이었다. 너무 조용하고, 팬 때문에 고장도 안 날 것 같아 좋아 보였다. 다시 화면이 나왔고, 색감이 확실히 찐하고 선명했다.. 전설적인 2D 그래픽 카드 다웠다.

 기존에 있던 그래픽 카드 드라이버를 제거 하고 나서, 컴퓨터가 윈도우 바탕화면을 보기가 힘들었다. 포맷하고 재설치를 반복하는데도 윈도우 부팅중 파란색 진행 막대가 중간에 멈춰버리고 동작을 안했다. 안전모드도 될때도 있고, 안되다가, 결국 포기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오기가 생겼다. 이놈의 윈도우는 무엇이 문제인지.. 새로 설치 하면 보이는 초원의 배경 그림이 너무 애타게 그리웠다. 

 뭔가 부품들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해 접촉 불량인 경우와. 윈도우 장치간의 충돌이었던 것 같다. 딱히 원인을 밝혀 내진 못했지만 경험적으로 컴퓨터 고장의 직감이 늘어났다. 그에 비하면 매킨토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일체로 만들어 제공하니 이런 장기이식의 문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니 편하긴 하다. 

 다시 윈도우가 설치 되고, 맥북과의 네트웍을 위해 1394 파이어와이어를 연결하고 셋팅을 했다. 대용량 파일을 이동시키는데에는 와이파이 네트웍은 속도도 느리고 불안해 1394네트웍이 딱 이었다. 이런저런 공부와 시행착오 끝에 연결이 성공했고. 맥북에서 PC로 외장 하드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 경험 해 봤겠지만 디지털 환경에서 그 동안의 파일 자료들은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릴 수 있다. 디지털 의 맹점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예전 기술 방식들은 어느 시점에선 통용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점점 쌓여진 소중한 자료들을 새로운 안전한 매체로 이동시키고 유지하는 것도 참 문제다. 전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0과1의 세계에 대한 천착이 가끔 불안감을 가져온다. 실체가 없는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종속되고 있다. 낑낑대며 디지털의 근간이 되는 컴퓨터와의 싸움은 손끝이 부어오르고 허리가 아픈 아날로그적 진통이었다.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컴퓨터에 추억을 새로 남겼다. 앞으로 3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버리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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