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물리친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자,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어둑어둑하게 드리워진 낮은 구름들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새벽을 내달리는 운전은 고요하다. 저마다 무미건조한 고독을 한웅큼 쥐고 질주한다. 질주의 명상이라고 할까. 노면의 먹먹한 마찰음은 마치 귀에 물이 들어갔을때, 울리는 내면의 웅얼거림 같이 차안과 바같을 나눈다. 그것이 너무 단조로워 경계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내린다. 바람의 파동이 넘실대어 고요한 기분에 흥을 돋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런 새벽은 얼마나 지속될까. 이 새벽이 가고, 구름이 걷히면 오늘은 얼마나 아름다운 햇살이 맞이할까. 


 여전히 모든 사물이 회색빛을 드리울때, 내 왼편 차로,(버스 전용 차로)로 큰 버스가 공기압을 전달하며 서서히 내 차를 앞서려고 했다. 창유리가 투명해 미군들이 제각각 불편한 자세로 꼬꾸라져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가 앞서가며, 버스 후미에 앳된 미군 병사와 눈길이 닿았는데, 그는 서서히 뒷걸음 치는 내차를 맞이하려 인사를 준비한듯이,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올려 봤을때, 이미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맑은 그 병사의 웃음은 새벽의 고독을 깨뜨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큰 버스를 옆에 두고 평행으로 달릴 수 없어, 일단 내가 속도를 높여, 첫번째 인사는 얼떨결에 마무리 됐고, 조금 후에, 다시 버스가 앞서가며, 그 병사의 해맑은 미소를 또 보게 되었다. 금새 버스가 앞서가며, 그 병사는 몸을 돌려 멀어져가는 내 차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너무나 밝은 미소와 함께.  앞유리창을 통해서 크게 손짓의 답례를 안할수가 없었다. 


 기묘했다.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는 그의 얼굴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부풀어 희망으로 점철된 밝디 밝은 웃음을 지었다. 19,20살이나 됐을까. 미네소타나, 다코타, 혹은 아이오와 의 시골에서 자랐을것 같은 순박한 청년은 한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는 청년이었을 것 같다. 


 내가 짧은 미국 자동차 여행을 통해 본 광활한 풍경 속, 인간의 모습은 내겐 대자유의 가슴 뻥 뚫림 같은 거지만. 그들에겐 지독한 무력감 내지, 지극한 소외와 고독을 느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느 이름 모를 황량한 곳에 위치한 작은 주유소 매점에서 일하는 백인 청년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쟤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어딜가서 들끊는 청춘을 풀까.  이런 곳에선 신 아니면 악당만이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적 기괴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도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조디악'이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은 어떤가. 허허벌판 대륙의 황망함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낳게 했다. 


 나는 그 미군 병사의 고향이 어딜지를 상상했다. 아마도 그는 바다를 직접 못 봤을 내륙의 토박이 일것 같다. 그는 무료한 고향의 소소한 삶을 벗어나 세상을 보기 위해, 군인 직업을 선택했고, 바다를 그리워한 심정으로 다들 널부러져 잠자는 와중에,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창밖을 구경하며 내게 웃음을 건넸다. 마치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해외로 전출되어 기지로 이동중인것이겠지. 그는 호기롭게 분쟁지역인 한반도를 선택했고, 진짜 군인이 되기 위해 사명을 다할 것이다. 그의 군인의 길에 행운과 축복을 빌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이 웃음을 상쇄시킨다. 갖가지 끔찍한 미군범죄들..이 떠오르고, 불공평조약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군에 대한 양가감정은 종속된 땅의 숙명일까. 


 어린 병사의 순진한 미소가 자꾸 떠오른다. 도로에서 그런 웃음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부디 이 땅에서 별일없이 좋은 추억을 가져가길 바란다. 미군은 반갑지 않지만 한 인간으로써 그런 인사를 건네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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