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타를 좋아하는걸까. 77년 산울림이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아니 벌써' 를 부르며 텔레비전에 나왔을때, 요람에 누워있던 내게 계시와도 같이 잠재의식에 각인되었을까.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4~5살 정도 됐을까. 텔레비전에 드럼과 기타를 든 밴드들이 나오면 그렇게 멋있게 보였었다. 나미가 백댄서와 춤을 추며 노래 부르는 모습은 왠지 촌스럽게 보였다. 고작 세상이 처음 보이기 시작할 무렵일텐데..나는 송골매 같은 밴드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음악도 모르면서 괜히 좋았다. 불교의 윤회를 믿는다면 아마도 전생에 60년대 아마추어 기타리스트이자 히피였을지도 모른다. 마약과 섹스에 빠져 요절하지 않았을까.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발에서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와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낯설어 보이지 않다. 그 영상을 보고 있자면 왠지 포근한 느낌마저 든다.

 또한 77년은 영국에서 펑크의 효시인 섹스 피스톨스가 나오지 않았나. 그 당시 변방의 한국에서 산울림은 미8군 에서 연주하는 밴드들의 영향과 일본 엔카의 트로트 등. 주류 음악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성과 사운드의 노래를 선보였다. 어짜피 현대의 대중음악이란 서구의 흑인 노예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산울림은 좀 더 한국적 펑크로써 대한민국에 발 내딛고 선 우리네들의 일상과 사랑을 담았다. 그 때 부터가  진정한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시발점 이라고 본다. (물론 이전에 한대수 씨 등등도 있었겠지만..)
 어쨋든 갓 태어났을때 이불보에 쌓여서, 나는 '아니 벌써'의 독특한 퍼즈(fuzz) 이펙터 걸린 기타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큰 영향을 받은게 분명하다. 지글거리고 찌그러짐 속의 달콤하고 쫀득쫀득한 퍼즈 기타소리에 내 영혼의 정체성은 위임받았다. 혼돈의 소음. 부글거리는 마음을 대변하는 기타 소리는 현재에도 여전히 나를 사로잡는다.

 위 사진속의 기타는 작년 2009년 초에 중고장터에서 택배거래로 구입한 에피폰 JA(제퍼슨 에어플레인.조마 카우코넨 시그네쳐) 리비에라 이다. 구입 과정에서 판매자는 모르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돈을 입금한 후 배송이 계속 늦어지고 하루 내내 전화를 안 받길래, 사기 당한걸로 잠정적으로 결론 짓고 '더 치트' 사이트에서 대응방안을 고민했었다. 그 때 안 사실은 소액 사기 사건이 진짜 무수히 많다는 것이었다. 사례를 읽고 있자니 내 일 보다도 더 속이 끌었다. 문제는 소액 사기건은 경찰에서 제대로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악용해 더욱 사기꾼들이 기승하는 것이다. 돈 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사람사이에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이 무너지고 법치국가의 기본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심히 걱정되었다. 웨하스 과자로 만든 성의 밑단을 개미들이 득실대며 갉아먹는 꼴이었다. 아마도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명박 같이 암담했었다. 그런 좀벌레 같은 것들은 짓이겨 눌러 없애야 하는데..금액이야 36만원 이었지만, 사기 당한건가 라는 기분이 매우 치명적이었다.
 결론은 내가 성급했었다. 판매자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전화를 못 받을 수도, 늦게 보낼 수 도 있었겠지.. 택배로 받은 기타 박스를 뜯는 순간 조금의 맘고생과 기다림은 기타의 화려한 자태속에서 팔랑대며 노니는 두마리 호랑나비가 되어 내 마음을 기쁨으로 간지렵혔다. 하드웨어에 비닐도 뜯지 않은 완전 새 기타 였다. 기스하나 없고, 먼지는 매끄러운 도장에 뭍을 새가 없었다. 아마도 나중에 500백만원짜리 깁슨을 사도 이 때 기분을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사기 당했다고 생각했으나, 중고거래였는데 완벽한 신품이 내 눈 앞에 있었으니까..

 헤드 뒤에 made in Korea 라벨이 찍힌 이 기타는 2006년에 부산의 피어리스 기타에서 만들어진 것 이었다. 보낸 곳도 피어리스 공장에서 인데, 내부 사정이야 잘 모르겠지만 에피폰 과의 OEM 계약이 끝나고 나온 제품인듯 하다. 아무리 보아도 어떠한 하자도 없고, 외관 상태와 생소리도 버징없이 완벽했다. 전에 쓰던 빨간색 에피폰 'The Dot'세미 할로우 기타가 듣보잡 이라면 이것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훤칠하고 총명한 양반가 서자 느낌이다.
 깁슨과 대적하던 전통있는 기타였던 에피폰은 깁슨 기타에 넘어간 이후로, 일본,한국, 지금은 중국의 기타 공장에서 OEM으로 만들어진다. 이 기타는 에피폰 한국 제품으로는 거의 끝물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기타를 잘 만드는 나라이고, 아치탑 기타는 피어리스가 잘 만들다던데 매우 수긍된다. 정보를 찾아보니 이 모델은 에피폰 중에서도 고가 라인으로 해외 에선 출시될 당시 700불 이상의 가격이었다.(현재의 깁슨 에피폰 가격이라면 말도 안되는 가격이겠지.) 셋팅을 맡기러간 기타 리페어 샵에서도 넥이 여태 보아온 에피폰 중에서도 제일 좋다고 한다. 기타는 넥이 생명인데 매우 건강하고 잘 났다는 진단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왜 이 클래식한 모양의 기타를 좋아하냐면, 90년대의 영국 밴드 스웨이드의 초기 기타리스트 버나드 버틀러 때문이었다. 그의 분신 같은  빅스비 트레몰로 암과 체리레드 색상의 깁슨 ES-355가 기타중에서 제일 멋져 보였다. 물론 스웨이드의 음악과. 버나드의 과격한 아밍의 퍼포먼스 등이 작용했겠지만 기타의 외관 자체가 상당히 엘레강스 하며 고혹적으로 다가왔었다. 그게 스웨이드의 특징이기도 하다. 버나드는 자신이 흠모했던 스미쓰의 기타리스트 자니 마 와 같이 빨간색 세미 할로우 기타로 쟁글쟁글한 클린톤이 아니라 디스토션 잔뜩 먹인 톤으로 탐미적이고 유려하게 연주했다. 내가 첫 기타를 빨간색 에피폰 'the Dot'을 산것도 그의 절대적 영향이었다. 그 외 이 F홀의 아치탑 기타를 쓰는 유명한 뮤지션 들은 척 베리, 비틀즈, 롤링 스톤스 의 키스 리챠드 이후로 스톤 로지스의 존 스콰이어, 폴 웰러, 오아시스, 스트록스, 리버틴스, 악틱 몽키즈, 등등.. 록 음악 씬에서 무수히 많이 사용되어 진다.
 존 레논의 에피폰 카지노 가 깁슨을 넘어서 유명해 졌다면 오아시스 초기의 에피폰 쉐라톤 이나 스트록스의 에피폰 리비에라 P94는 현재에도 에피폰의 건재함을 알린다. 비싼 깁슨 기타에 비해 중,저가 정책의 에피폰은 기타를 접근하고 대하기가 편하다. 그렇다고 브랜드의 위상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생산지가 어디건 존 레논이 연주했던 기타와 똑같은 로고를 가진 기타를 친다는 건 기분이 좋다. 나는 이 기타의 컨셉을 스트록스의 닉 발렌시와 스티븐 말크머스 로 잡았다. 

 아래곡은 스티븐 말크머스 솔로 1집의 곡인데 기타 톤과 연주가 환상이다. 레스폴에 P90 사운드.


 크런치한 톤이 발군인 P90 싱글 코일 픽업이 필요했다. 기존의 에피폰 57 험버커 픽업은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저음부가 답답했다. 닉 발렌시가 쓰는 험버커 사이즈 P90인 깁슨 P94 픽업을 일단 리어 부에 달았다. 이 기타를 위해 나온 픽업 인 것 처럼 너무도 잘 어울린다. 동시에 본 넛 과 브릿지와 새들을 갈았더니 기타 본체 만큼 비용이 들었다. 나머지 업그레이드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이렇게 1년 정도 써보기로 했다.
 역시 깁슨 픽업은 해상도 가 달랐다. 각각의 현의 울림이 뭉게짐 없이 또렷히 탱글거리며 내 주었다. 출력도 쎈 편이어서 드라이브도 무지 잘 먹었다. 싱글과 험버커의 중간 느낌이 특징이라는데 좀 더 험버커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앙칼진 엣지녀 같은 느낌이랄까.. 1시간 정도 달아오른 펜더 블루스 주니어에서 볼륨  높이고 치는 크런치 톤은 내가 꼭 U2의 엣지가 된 기분이었다. 좀 더 객관적으론 애비로드 라이브에서 프라이멀 스크림의 기타 톤과 매우 흡사한 톤이다. 나는 딱 그 정도의 드라이브 양이 좋다. 하이 게인을 쓰지 않기 때문에 싱글 코일 픽업을 좋아한다. 블러의 그래함 콕슨 솔로 앨범에서와 같은 느낌의 즁즁이도 매우 잘 된다. 리버틴스나 베이비샘블스 의 피트 도허티 톤 과도 비슷하기도 하다. 기존의 프론트 험버커 픽업과의 하프톤의 궁합도 매우 좋다. 몽글거림과 카랑거림의 적절한 조화를 다양하게 만들수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프론트 픽업을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이 기타와 시간을 보낸지 1년 정도 지났다. 역시 기타는 6개월 이상 1년 정도는 쳐봐야 그 기타의 진면목을 알수 있다는 말을 공감 한다. 확실이 울림이 좋아 졌지만 두꺼운 우레탄 피니쉬가 맘에 들지 않는다. 피부에 닿는 이 플라스틱 도료는 나무 세포와의 교감을 차단하는 듯 하다. 검정색이고 표면이 너무 글로시 해서 잔기스가 쉽게 눈에 띈다. 자연스런 레릭화는 거리가 전혀 멀다. 비싼 깁슨 ES-335를 사면 부품을 바꿀 일이 없겠지만 에피폰은 나만의 사운드를 찾아가는 여지가 많다. 그런면에서 일단 성공적이고. 앞으로의 사운드가 더욱 기대된다. 시간이 된다면 피니쉬를 셀락으로 내가 공들여 다시 칠하고 싶다. 클래식한 모양의 바디에는 은은한 도장이 어울리고 이 에피폰 리비에라는 추억을 담아 평생 가지고 갈 거니까. 버나드 버틀러 와 노엘 갤러거의 체리 레드 색 깁슨 ES-355를 공연서 멀리서 보고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지만 아직은 에피폰에 깁슨 픽업 만 해도 충분하다. 버나드 처럼 기타를 치거나. 노엘 처럼 곡을 만든다면 모를까.. 언젠가는..그날이..

 건조된 나무 토막은 깍이고 파이고 갈려지며 일렉트릭 기타 라는 아름다운 형체로 변신한다. 보호색을 입히며 금속 부분이 서로 닿아 울리면 매우 아날로그 적인 소박한 전기 장치로 증폭 시켜 스피커를 통해 쩌렁쩌렁 하게 울린다. 지구상의 기본 원소인 나무와 철은 새 생명을 얻어 언제까지 일지 모르는 울림의 세포를 키운다. 이 울림의 세포는 나와 같이 호홉하고 생활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슬플때나 기쁠때나 언제나..나와 같이.
 
 사주팔자를 공부한 친구가 내 사주를 보더니 나를 대표하는 성질이 木 이라고 했다. 높고 긴 甲 목(?)인 소나무 (아마도 리기다 소나무과) 라고. 쉽게 말하면 구브러지고 휘어진 관상용 외로 쓸데없는 소나무가 아니라 세상에 유용하게 쓰일 인재 사주라고..  그래서 내가 기타를 좋아하는가 보다. 

'Guitar, Sound, Camer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렉트릭 기타  (0) 2011.04.24
It Might Get Loud (2008)  (0) 2010.09.29
나의 기타 나의 뮤즈  (2) 2010.04.27
꾹꾹이  (0) 2009.10.28
기타 이야기  (0) 2009.09.0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