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공원 소마 미술관에서 하는 키스 해링 전시를 볼 약속에 앞서, 바로 옆, 한미약품 건물 20층에서 하는 워커 에반스 사진전을 보았습니다. 그다지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간만에 올림픽 공원 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가 내심 찜찜해, 키스 해링 전시의 오프닝 겪으로 미리 보았죠..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사진 예술의 역사는 매우 짧죠. 170 여년의 사진의 역사에 비춰, 사진이 예술로써 가치가 상승하게 된 계기는 얼마 되지 않으며, 그것도 정크 포스트모던 미술의 혼란기 에, 미술 작품 거래의 대용품으로 사진이 미술시장에서 거래가 되면서 부터 소위 예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됩니다.

 1900년대 초반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시작으로 사진만의 표현, 사진적 예술의 가능성을 견지했고, 곧 사진만의 정밀한 묘사성을 바탕으로한, 다큐멘터리 사진이 세상의 눈의 되었죠. 워커 에반스는 그 다큐멘타리 사진의 시작을 대표하는 사진가 입니다.

사진을 사회의 기록 이라는 측면에서 보지 않고 개인의 표현, 예술 표현의 한 장르라고 본, 워커 에반스 와는 대척점임 만 레이가 있지만, 이 당시(1930) 사진의 주요한 기능은 다큐멘터리. ( 말 그대로 기록성 ) 에 있었습니다. 

 유럽으로 가면, 사회의 모든 직업, 인물 군상들을 유형화해 (아카이벌./ 도서관의 색인 자료 만들듯이.) 찍은 아구스트 잔더 란 사진가 가 있었고, 파리의 골목골목을 기록한 (원래 목적은 삽화가들에 팔려고 찍은 사진 이었지만. 그 후, 새벽의 고요한 파리 모습이나. 쇼윈도의 모습이 초현실적으로 보여, 그 당시,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의해 각광을 받고.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유진 앗제가 있었지요.

 그리고 미국의 대 공황기. (1930년대.) 미국농업안정국 FSA 란 곳에서 미국의 피폐한 농촌 현실을 알고자 사진가들을 고용해..찍은 사진들이, 이 전시회의 주가 된 워커 에반스사진전 입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효시격이죠. 워커 에반스 말고도 여러 사진가들이 작업에 고용되었는데, 그 중 유명한 도로시아 랭의 척박한 사진이 유명하고, 아래 옆. 이주민 어머니 /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대해서 많이 화자됐었죠.)



 사진의 예술성? 보다는 (고사하고)  정부에서 공문서 만들듯, 그렇게 (다큐멘터리) 사진은 모더니즘의  총아 같은 근현대 문명의 대표적 유산이죠, (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 아시다시피, 디지털 세상이니까요. 흑백 은염 사진은 이제 시대의 유물로 사라졌고. 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어쩜 이 전시는 의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의 디지털 문화에서 인쇄도 아닌 진짜. 작가의 오리지널 흑백은염 사진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삶의 진솔한 기록들이 이제는 예술적 지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감동을 줍니다. 돌아갈수 없는 생생한 시간의 흔적이 현재의 우리에게 울림을 줍니다.

 그 후, 1950년대에 들어서야. (양차세계대전 후) 다큐멘터리 사진은 진화하게 됩니다. 사회적, 전쟁 고발 사진으로써의 역할은 인간의 내면성에 촛점을 맞춰지게 됩니다. 세계 대전을 치르는 동안, 인간성은 말살되었고, 예술가들은 모던니즘이 이룬 이 끔직한 전쟁을 반성하고 인간성에 대한 실존적.개인적 자각을 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대규모 사진 회고전 ' 인간 가족전'은 그러한 의도로 기획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대단한 파장과 성공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사에 가장 중요한 사진집인 로버트 프랭크의 ' 미국인들 '이 발표됩니다.

 로버트 프랭크의 ' 미국인들 '은 내면의 심상이 농축된 다큐멘터리 사진 이었습니다. 이전의 사진과는 느낌이 다른 한편 한편의 시 였고, 전후, 겉으로는 경제적 풍요속의 미국을, 그 이면의 아주 적나라한 실상을 시적으로? 드러내었죠. 사진이 예술로써 발돋움하게 되는 디딤돌을 놓았다고 할까요. 기록으로써만의 사진이 아니라, 내면의 심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 사진적 표현의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위에쓴 사진 역사적 사실은 학자들과, 역사가 그랬다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누구의 말이 아닌, 자신이 직접 감상하고, 느껴보는 것이겠죠.. 10년전 제가 ' 미국인들 '을 처음 보았을때, 별로라고, 못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몇년 후 다시 보았을때, 첫 느낌과는 달랐고. 또 몇년 후, 사진이 서서히 다가왔죠. 아주 가끔 볼때마다, 울림이 다르더군요..

 워커 에반스의 사진에서도, 개인의 심상은 느껴집니다. 아무리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도. 사진가가 어떤 빛과 공기에서, 피사체를 선택하고. 구도를 잡고. 현상, 인화 하는 모든 선택의 과정이 개인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니까. 사진이라는 차가운 매체에도, 개인의 내면성은 뭍어납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대적 유물로써, 다큐멘터리 사진의 예술적 가치는 점점 높아 갈 것입니다. 시간을 머금은 흑백 은염 사진의 촉촉한 공기감은 한 번 느껴볼만 합니다. 다만 사이즈가 작습니다. 8x10 inch 이하..

 사실 이 전시 이후, 곧 바로 본 키스 해링 전시의 천진난만함과 재미에 워커 에반스의 흑백 사진은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습니다.  

위의 도로시아 랭 사진이나..아래의 워커 에반스 사진이나..하지만 좀 더 많은 사진을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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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 아주 화창한 날의 오후. 오랬만에 종로에 나갔다. 드로잉 강좌 사람들과 단체로 로댕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를 위해 특별히 초대된 분이 계셨다. 파리의 로댕 갤러리에서 관광가이드를 하시는 40대의 평범한 한국인 이었다. 선생님 말로는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 아닌데. 파리에서 혼자 미술 이론, 작가론,을 독파하여, 한국인 상대로 스타 가이드가 되셨단다. 직업적 예술 가이드. 근데 막상 이분의 가이드.를 들어보니. 전문적인 큐레이터(학예연구사) 보다 더, 깊이 있고, 예리하며, 조리있고, 재미있게 설명을 너무 잘 하신다. 그 동안 나는 어느 전시장을 가더라도, 누군가가 설명해주는 작품 감상법을 혐오했었다. 하지만 이 분의 조근조근한 말을 열린 마음으로 집중해서 듣다 보니, 나의 무지의 소치를 여실히 깨달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정확했다. 내게는 아는 만큼 더 잘 볼려고 노력했다. 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로댕에 대해 아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때문에, 양동이에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는 것과 같은 쾌감을 눈과 귀로. 느꼈을 것이다. 어쨋거나 이 정도의 도슨트 라면 나는 충분히 귀를 열고 들어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의 도슨트는 감상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이제는 갤러리에서 일하면 누구나 다 큐레이터라고들 한다. 이거는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큐레이터라고 하기엔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우리 일행을 옆으로 미술관 측의 젊은 도슨트가 마이크와 확성 장치로 우르르 사람들을 끌고 다녔다. 소리가 커서 안 들을려고 해도 들렸는데, 달달 외워서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었다. 매우 안 좋은 목소리로.. 나는 소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 정도는 내용을 떠나서 완벽한 소음 공해 였다. 내용 또한 우리의 스타가이드? 분에 비해서 유치원 수준의 것이었다.

 우리의 가이드님이 말하기를. 여기 전시는 대략 구색만 맞춘, 거의 B급(소품) 작품들만 왔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처음으로 보이는 '신의 손' 이란 작품과 한 두개 빼고는 파리의 로댕 갤러리의 주요 작품과는 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소품이지만. 구색을 맞추려고 했는지.. '청동시대''지옥의 문''생각하는 사람''입맞 춤' 등 학창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들어봤던 작품들은 거의 다 있었다.   
 입장료가 성인 12,000원 인데. 난 항상 이런 관제 미술관의 요금이 항상 불만이었다. 이런 20세기 서양미술 대가들의 전시는 그냥 서울시 차원에서 무료로 해야하지 않나 항상 생각한다. 현대 미술의 대가들이라지만 외국에 비싼 개런티 주고, 시민한테 장사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조각 작품을 제대로 감상 해봤던 기억이 없다. 봤더라도 감흥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무엇을 감상한다는 것은 지극한 애정을 가지고 봐야 하는데, 알다시피 현대사회에서 무엇을 본다는 것은 다분히 표면적인 감상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주 오랬만에 미술관에 왔기에, 그리고 근대 조각의 선구자..현대의 미켈란젤로..등등 대단한 수식어가 붙는 천재 조각가의 전시이기에 그 어느때 보다 집중력이 높았다. 


 첫 작품인 '신의 손' 부터 그동안 많이 보았던, 회화나 사진 전시의 허접함?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 이었다. 로댕 조각의 세가지 재료. 대리석,청동,석고, 중 아주 하이얀 대리석(화강암?) 으로 만들어진, 대단히 매끈하고 투명한 우윳빛의 색깔이 빛을 발한다. 손의 디테일한 묘사는 경이롭다. 마치 생명이 깃든 듯하다. 조각가에게 또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돌을 어루만지는 손은.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를 창조하는 손. 예술(창조)이란 것의 근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사람의 손은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거울에 비친 얼굴보다도 자신의 손을 더 자주 보지 않을까. 키보드 위의 내 손을 한 번 유심히 쳐다본다. 이 이쁘장한 손이 이룩할 것은 무엇인가?.. 현재 이 손의 표정은 우울한 열정이다.

 '청동시대' 이 작품은 미술 교과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로댕이 37살때 세간에 주목받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이 작품에 대한 의심, 비난 때문이었다. 너무 사실적이고 정교해서 모델의 몸에서 직접 주물을 뜬 작품이라는 오해의 논란에 빠졌다고 한다. 로댕은 천부적 재능과 열정으로 40세 이후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고 한다. 

 분명. 조각은 거친 노동이다. 이러한 점이. 작품의 덩어리에서 고단한 노동의 열기가 느껴진다. 이 실제 사이즈의 남자 조각을 보니. 18살때 친구의 집에서 본 여자 누드 조각상이 떠올랐다. 친구의 누나가 홍대 조소과에 다녔는데 졸작으로 자신의 실제 사이즈 누드 전신조각상을 만든 것이었다. 매우 아름다운 조각이었다. 자신의 젊은날의 아름다운 몸을 조각으로 빚어내는 일. 시간을 정지시키는 그 작업은 누드사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멋지고 감동적인 일이다. 손재주가 있다면 평생 사랑할(같이 살) 사람의 젊음의 미를 조각으로 봉인해 거실의 한 모퉁이에 세워두면 얼마나 멋질까..

 가이드님이 많은 걸 이야기 해 주셨는데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리고, 그 때 느꼇던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회상만 남는다. 결국 내게 남는건 작품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경험 그 자체의 느낌이다. 이 작품이 더욱 아름다웠던 것은 우리 신체와 거의 같은 비율인 1:1의 스케일을 지니고 있어서 였다. 그리고 뭔가 오묘한 표정과 몸짓, 마치 자아의 본질을 깨달은 듯한 자의 모습이었다. 저 포즈 아주 섹시한거 같아서 거울앞에서 해 보았는데, 내가 코믹한 데오드란트 광고 모델 처럼 보였다. 푸쉬업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다음에 우리가 본 것은 '지옥의 문' 이었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생애 최대의 역작 이라고 한다. 우리가 아는 '생각하는 사람'도 이 작품의 일부로써, 다양한 인간 형상들이 표현되 있다. 원래 작품은 거대한 스케일 인거 같은데. 여기 전시된 것은 그냥 맛보기로 작은 독립된 조각들이 몇개 전시됐을 뿐 이었다. 대신 (맨위 사진) 독립된 '생각하는 남자' 는 채색된 석고상 조각으로 그동안 우리가 봐오던 청동상과는 느낌이 다르다. 청동으로 만든 '생각하는 남자'는 총 7개의 진품 에디션이 있는데 그중 5번째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한다. 어렸을때. 덕수궁인가 어딘가에서 그것을 봤던 것 같다.
 거칠고 투박한 고뇌의 기운이 넘쳐난다. 다른 신체 비율에 비해서 손이 꽤 크다. 손이 말하는 표정이 저 포즈의 핵심인것 같다. 자아의 돌아봄, 내면의 자각, 그것은 평생에 걸쳐 행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인간인 이상..


 '노블리스 오블리제' 이 말을 설명할때, 항상 이야기하는 '칼레의 시민' 의 연유가 되는 실화를 기리기 위해 칼레 시에서 의뢰한 작품이란다. 자세한 이야기는 검색으로 공부하시길. 이런거 공부해두면 일거양득일 것이다. 자신한텐 물론.. 이성한테 지적인 면을 보일때, 우리 가이드님처럼 소근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를 한다면 아주 성공적 일 것이다. 이야기에 흡입력이 있어, 점점 우리 일행 말고도 다른이들이 같이 귀기울이고 움직였다. 전시된 작품은 작은 크기의 소품 구성이었는데. 위 사진 처럼 실제 사이즈 의 작품은 인물들의 제각각 표정이 압권이라고 한다.
 역사의 가슴아픈 기억을 이렇게 완벽한 조각으로 영원히 기리는 것. 이것이 예술의 진정한 가치이고 기능이지 않을까. 그 희생의 숭고한 정신은 로댕의 조각 작품을 통해서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죽음 앞에선 인간의 본능적. 고뇌, 두려움. 망설임. 회환, 분노의 다양한 감정들이 로댕의 손에 의해 고스란히 살아났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이 조각 앞에서 연민을 느끼지만, 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가슴속에 새겨봐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나..?  참 가슴아픈 역사다. 백성들 등골만 빨아먹은 우리의 역사. 그러한 역사를 가진 현재의 우리 사회 모습에선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슬프게도 요원한 말일 수 있겠다.  

 이 작품 '입 맞춤' 또한 사진으로 많이 보아온 작품이다. 마음속에 염장을 지르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큰 스케일의 석고상 이었다. 여자 골반에 얹힌 남자의 손이 왜이리 자꾸 눈길이 가는지.. 이 작품이 발표됐을때. 꽤 논란이 됐다고 한다. 여자의 포즈가 너무 도전적 이어서 남자들이 불쾌했었나 보다. (자세히 보면  수동적인 포즈 같으면서도. 남자의 목을 휘감은 저 적극적인 팔과. 키스의 역동성은 여자로부터 나온다.)
 20세기 이전, 초 까지의 여성은 남자와 동격조차도 아닌 인간 이하의 대상으로 봤다고 한다. 그러한 사회상. 가치관 에서 저 여자의 포즈는 대단히 도발적인 것이었고, 20세기의 새로운 여성상의 시작을 예고하는 작품이 되었다.
 사진속에서도 저 남자의 손의 표정에 자꾸 시선이 간다. 왠지 긴장한 듯한 저 손이 심금을 울린다. 어떤 그림이던 조각이던 손의 묘사 처리가 미숙하면 맥이 빠지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로댕의 조각 작품은 손의 표현에 있어서 압권이다. 조각에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는 로댕의 솜씨야 말로 신의 손 이라고 불릴 만 하다.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왼쪽의 '안드로메다' 라는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이다. 작은 사이즈의 작품인데 어떠한 큰 조각상 보다 더 내 가슴을 울렸다. 저 여인의 등을 보면서 무한한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뭐 이런 요상한 기분이 다 있나..
나도 잘 모르겠지만, 저 등의 표정? 극 사실적인 등의 묘사를 보면서 삶의 환희와 비애를 동시에 느끼는 그럼 감정이었다고 할까. 등의 미세한 굴곡들과 섬세한 근육 표현은 여성의 육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엉덩이나 가슴, 혹은 손이나 허벅지가 아니라 등 이었구나 라는 확실한 자각을 일깨웠다.
 저 덩어리의 아름다움. 더 정확히 말해서 여체의 아름다움은, 이 지구상의 어떤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어떤 근원적인 그리움에 대한 소망이나, 미의 본질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계절의 몸매가 아름다우면서 노출이 심한 여인을 보는 것은 도시 라는 미술관의 살아있는 조각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여자들이 오해하는 것이 남자가 조건반사 처럼 길거리의 늘씬한 다른 여인에게 고개를 돌리게 되는 상황인데, 내가 보기엔 그런 시선은 남자의 본능적인 잠재의식의 발로이고, 통제 할 수 없는 유전자의 뿌리깊은 영향인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신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대해서 유미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 같다. 솔직히 9할 이상은..또 사람 또는 사물이 내 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 의 아름다움도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되지 않는 눈의 입 맞춤은 도처에 있지만, 마음의 잠식, 정신계의 충격은 안드로메다 만큼 초월적이다.

 이 방에 전시된 작품들은 에로틱한 작품이 많고, 로댕의 여자 누드 드로잉, 스케치 들도 전시 되 있다.  여체는 미의 본질인 것인가..예술의 영감은 여체의 아름다움에서 시작하는가...

 다음 방에는 로댕의 연인인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들이 전시 되 있다 그 둘은 대단한 사랑이었던듯. 한 사람이 미칠 정도였으니. 그리고 로댕의 원래 부인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는데, 로댕이 너무 부러웠다. 아무리 까미유 끌로델과의 사랑이 깊어도. 본 부인을 내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들은 이야기를 잊어버려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자벨 아자니 가 주연한 영화 까미유 끌로델을 추천한다. 꼭 다시 챙겨 봐야 겠단 생각을 그 때 했었으나.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다. 곧..감상을. 젊은 이자벨 아자니를 보는 기쁨도 함께..

 마지막 방에는 프랑스의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의 조각이 인상 깊었다. 특히 발자크의 조각은 구상(똑같이 닮게 만든 조각)을 넘어서 작가의 독자적인 해석. 표현이 가미된 추상의 영역으로 진화된 조각을 선보인다. 발자크는 대단한 추남이었던 모양인데,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졌던 사람인 모양이다. 오후 4시에 잠을 자서 밤 12시에 일어나. 활동하고, 하루에 마시는 커피 양이 어마어마 했고, 그래서 일찍 죽었나.. 아무튼 꽤나 기인 이었던 모양이다. 이 사람의 글에 매우 관심이 가는데 로댕이 만든 조각을 보니, 사람의 형상 보다는 사람을 본뜬 두꺼비를 만들어 놓은거 같아 보였다. 외모가 어쨌거나, 이 대단한 추남의 영혼은 정 반대로 아름다울 것 같다. 그러니 대문호라는 호칭이.. 사람을 외모의 잣대로만 평가하기는 참 섭섭한 일 일 것이다. 
 


 위 사진은 로댕의 '성당' 이란 작품인데, 전시된 작품은 아니고 인터넷서 사진을 검색하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소개해본다.  솔직히 말이 필요없는 울림을 전달한다. 저 부드러운 형상 속에 모든게 담겨 있는것 같다. 우리의 존재 근원 자체도..

 나는 조각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느끼며, 앎과 직관사이의 간극을 좁혔다. 미술 관람의 뿌듯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예를 들자면 배*우의 사진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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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여섯시에 달리기 복장을 하고 투표소에 갔더니.. 이런. 줄이 꽤 길다. 죄다. 중,장년층. 묻지마 한나라당 일꺼 같은 사람들을 보며 좀 짜증이 났다. 나는 아침의 청아한 고요속에서 유유자작하게 투표하고 올라했드만.. 줄을 서 있으면서 60세 이상으론 투표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내 나름의 논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앞으로의 한국을 이끌고 살아야하는 날이 많지 않으니까. 투표의 비중을 젊은층에게 많이 배분해야 한다고..아직도 반공이데올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현재의 사이버리아 시대에는 시대착오적 오류라는..역사의 뒤안길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발전은 없다는.. 아직도 빨갱이~ 하는 이 나라를 맑스가 알면 무덤속에서 똥구멍이 간지러울듯 하다. 한마디로 말같지도 않은 말이란..소리.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을 찍을까 한명숙을 찍을까 고민하다. 그래도 오세훈과 경합하라고 한명숙을 찍었다. 왠지 인상이 우리 엄마와 비슷하기도 해서..ㅋ 뭐 나도 노친네들과 그다지 다를 바는 없다. 나는 그 네모칸 선 에 동그라미 표시가 닿을까봐 마치 고딩때, 미대입시 구성(포스터물감으로 칼칠하기 경합) 할때 그 심정으로 신중하게 찍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투표를 하고 집앞 초딩 운동장에서 그야말로 조깅을 했다. 근데 왜 저녁의 달리기는 석깅이라고 안 하지.. 조깅이 내가 생각했던 아침의 달리기 가 아닌가.. 난 한문에 관해선 꽤 무식하다. 중딩때 무식하고 무책임한 한문 선생때문에 호기심을 잃었었다. 상형문자는 참 배우기 재밌는 것 이었을 텐데..근데 써놓고 보니 조깅이 영어일꺼 같은 난감함이..나는 우리말이 북한처럼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문을 많이 알면. 중국이나 일본인과 연애를 할 기회가 그나마 있지 않았을까..ㅋ 최근에 상해에 사는 진짜 중국인과 연애하는 친구를 보아서 연애도 이제 글로벌 하게 하는구나 라는 현실이 피부에 와 닿았다. 참 그 인터넷상의 인연이란 신기하기도 하지.. 아이폰 국제 채팅으로 실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다니..6월에 그 중국여자가 우리나라에 온다던데 우리에게 보여줄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난 그 중국여인이 색계에서의 탕웨이처럼 겨털이 있을지 없을지 심히 궁금하다..ㅋㅋ 중국에 대한 관심은 그 정도 뿐이다. 탕웨이 같은 몸매의 소유자라면. 겨털이 무슨 상관이랴..그것 조차 섹시할텐데.. 

 막연하게 국제 연애에 대한 상상을 해보면 캐나다 퀘벡에 사는 영어와 프랑스 말을 하며, 백인과 인디언 과 몽골리안 의 피가 섞인 그러니까 머리는 노란데 나머지 털은 까맣고? 눈은 너무 움푹 들어가지 않은데 눈동자는 은빛에 푸른 눈동자..골격은 우리네 몽골리안.. 아바타로만 있을까..내가 오리지널 금발에 파란눈의 백인과 결혼하면 자식이 그렇게 나올 확률이 좀 있지 않을까..친구들끼리 하는말..좀 짜증나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여자가 제일 이뻐..나도 공감은 한다. 특히 요즘 같이 눈부신 날들엔..

 어제 호미화방에 들렸다가  토요일날 리치몬드 제과점 앞 행단보도의 그 착각?이 다시 기억났다. 나는 상상마당의 어떤 포럼을 들으러 갔었고, 저녁 약속이 취소돼 모처럼 깔끔하게 입고나온 옷 차림이 무색해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그냥 화방에서 재료를 사고 지하철역을 가려고 리치몬드 제과점 앞 행단보도에 섰다. 아마도 나의 표정은 이방인의 뫼르소 같은 표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반대편에 나처럼 홀로 서 있는 어느 여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계속 미소가 넘쳐흘렀다. 그 미소가 보기 좋아서 나도 계속 쳐다보았다. 그 미소가 전염됐는지 나의 표정도 어느정도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어느새 사람이 많아졌고 초록불이 켜졌다. 하늘거리는 원피를 입은 그 여인은 계속 엷은 웃음을 흘렸다. 거리가 가까워 질수록 그 환한 얼굴은 요즘의 우리나라에선 보기드문 삶의 환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인생 최고의 행복한 시기를 보내는듯한, 얼굴만을 유심히 보다가, 나와의 거리 3미터 앞 지점에서 순간 바람이 불었다.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몸에 딱 달라붙어서 두 허벅지와 야트막한 비너스의 똥배?.골반의 각도등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 얼굴만 보던 나의 시선이 순간 본능적으로 잠깐 아래로 향했다. 성모 마리아의 미소를 보다가 마를린 먼로의 사타구니를 잠시 훔쳐본 것이었다. 내 시선이 아주 잠시 내려갔다 올라온 그 순간, 여인의 얼굴에선 엷은 미소가 아닌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 옆을 지나칠 때까지 계속 웃었다. 카뮈가 창조한 뫼르소의 표정이 그 짧은 순간 심슨가족의 바트가 된 표정이어서 그렇게 웃지 않았을까..감정이 들키기 쉬운 나의 두 눈, 앞으로 단속을 해야겠다. 그래도 싫지 않은 웃음이었다고 착각 해본다.
 역시 여자나 남자나 웃어야 이쁘다. 나도 그 순간 머슥해서 웃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 짧은 바람이 웃음을 안겨주었다. 아니 여인의 미소가 짧은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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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 친구가 호프집에서 맥주마시며 한일전 축구를 보자는 제안을 마다하고 퇴근시간 차가 막히기 전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어두워지기 전에 비를 맞으며 달리기를 하고 싶어서 였다. 친구가 이 글을 본다면 몇 번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참 지지리 궁상떠는 이유에 대해 한마디 할 듯 싶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가 오늘 같이 기온은 낮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바람이 적당이 부는 날씨와, 비에 젖은 운동장의 흙은 폭신거리고 한 명의 사람도 없는 적막함이 최상의 조건이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맑고 시원하며, 풀 냄새와 약간은 비릿한 비내음도 좋다. 폐 깊숙히 호홉은 깊어지고 무릎의 충격은 비에 젖은 폭신한 흙에 완화되어 평소보다 더욱 많이 뛴다. 땀과 비가 엉키고 눈으로 스며드는 빗물과 눈에서 나오는 땀은 비,땀.눈물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비오는날 달리기의 즐거움은 흠뻑 젖었을때, 이제는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말리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부정과 긍정의 대비에서 오는 희망이 또 다른 자극을 준다.

 요즘들어 비가 자주 오는데, 이제는 비오는 날이 너무 싫다. 예전과는 정 반대가 되버렸다. 어느새인지도 모르게 비가 오면 마음이 급격히 가라앉는다. 몸이 어딘가 쑤시고 시큰시큰하고 그러진 않지만 마음이 가라앉으니 몸 또한 축축하니 무거운 느낌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비틀즈 보다 비치 보이스가 더 좋아라 한다. 대중음악역사에서 천재중의 천재라는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의 진가를 최근에서야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계속오니, 런던에 산다면 우울한 음악만 듣고, 만들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영국쪽 음악이 감성적으로 더욱 다운된 것도 날씨 탓이 크리라. 오늘 같은 날 브리스톨 출신의 Potishead 의 음악은 절대금물이다. 비오는날 달리기의 즐거움을 빼면 차라리 사막이 그립다. 

 집으로 들어오는 찻길위에 택배박스 몇개가 떨어져 와해되어 내용물이 널부러져 있는걸 보았다. 운전중이라 짧은 순간 지나쳐 본 것이지만, 왠지 되게 슬퍼보였다. 전달 되지 않은 상품의 운명. 도로위의 위험인자가 되버린 기구함. 수신인의 기다림. 발신인 과의 분쟁. 또다른 사고? 분명. 지방 국도에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의 사체보다 더 드라마틱 하고 슬펐다. 도로에 널부려진 택배 박스 잠깐 보고 이런 생각 하는 내가 이상한건가.. 되게 사진적이고 시적인 장면이었기에.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다. 또 막히는 서부간선도로 이동가판대의 나이든 노부부의 웃는 모습도 눈을 꿈벅하며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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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주전에 만난 대학 후배가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었지만, 솔직히 나도 남자 주인공에 매우 밀착되어 공감했기도 하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미 나는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잠시 뿐인?) 후배가 말하기를 나의 투명한 매력?이 발휘될 날이 곧 올꺼라고, 투명한 매력은 왠지 불편한 친절 같은 말이 아닐까.
 이 글 제목이 My Brightside인데 점점 다크사이드로 흘러 간다. 나는 캘리포니아의 태양을 꿈꾸며 의식적으로 양지를 탐구한다. 그 후배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여유로운 태양 처럼. 그녀는 연애에 관해서 달관한 듯 싶다. 어쨋든 결론은 나는 요즘 보기드문 감성의 소유자. 좀 더 느끼하게 표현하자면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ㅋ

 친구의 결혼식에는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대학교때 사람들. 알지만 모르는 사이가 더 편한 사람들. 그 중에 눈길이 닿자 자석처럼 서로 확 다가선 여인이 있었는데 나랑 동갑의 후배(3~4수?). 아주 오랬만에 본 건데 우리는 세월이 무색하게 급격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사실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오래전 3D그래픽 업체에서 일하다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리포터를 준비한다고 내게 프로필 사진을 부탁하며 좀 더 알게 된 사이였다. 그녀는 몇년 전에 결혼을 했고 몇달 전에 애기를 낳았다고 했다. 여전히 리포터 스러움에 아줌마의 요소를 다 갖춘 그녀는 왠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옆에 남편도 있었는데 요상하게 우리만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이름이 기억이 안났다. 대화 도중 '근데 너 이름이 뭐였지' 라고 초를 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녀는 대학때 나의 꿈 까지 기억하던데,, 나는 이름을 말 할 필요 없는 대화를 계속 이어 나갔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결혼생활은 어때?' 라고 물어 보았다. 그녀는 정색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리포터 스러운 오버에 나는 장난치지 말고 솔직히 어떠냐고 다시 물었다. 내 특유의 행복하니? 라는 늬앙스..그녀의 표정은 행복은 개뿔.. 이라는 찡그림에 마지못해 산다는 답이었다. 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뭐 결혼 2년 지나면 다 그렇다더라.쩝.'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특히 처.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을 보자 뭔가 하나같이 빠져(상실)있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열정과 꿈이 사라진 쓰고 달콤한 책임감이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대학때의 그 무모한 활기는 아빠라는 단어의 차분함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문제는 결혼한 커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다는 것에 있었다. 내 시선이 삐딱해서 일까. 나는 그 자리서 충분히 이성적이었고 객관적이었다. 내 나이에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칼로 내 허물을 여지 없이 벗겨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 결혼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정말 좋아해서 사랑해서 결혼한건 아니었다. 근데 왜? 결혼을 담보로 인생을 살아갈까. 결혼 차수가 한 5년 된 동기형은 대놓고 애인을 찾고 있었다. 점점 부고 소식이 늘어 나듯이 누구누구 이혼했데 라는 소식도 이제 들린다.

 나는 적당한 사람과 결혼은 절대 못하겠다. 참 이기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사랑)은 적당한 중립상태가 아니라 저단 기어와 고단 기어가 왔다 갔다 하는 그래서 어디론가 떠나는 그런 것 이어야 한다. 서로의 톱니바퀴가 서로를 아프게 하더라도 이미 출발했으면 기어를 뺄 수는 없다. 맞물려 간다는거, 갈 수록 더욱 부드러워지는  자동차의 진리 속에서도 결혼의 원리는 발견된다. 나는 여전히 사랑은 서로의 스파크(점화)이고, 결혼은 부르릉 시동걸림 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서로에게 저당잡힌 인생이다. 내게 있어 좋은 결혼(사랑)의 표본은 존 레논과 오노 요코 부부의 경우이다. 그들의 사랑은 서로를 변화, 발전 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사랑을 통해 좀 더 이상화에 도달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처럼 당신은 내가 더 나은 남자가 되고 싶게끔 만들어요. 그 마음 상태가 궁극적 진리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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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학 친구의 결혼식 참가를 끝으로 결혼 의식 3부작의 막을 내렸다. 1부는 약  10일전의 동기 모임. 2부는 토요일 저녁의 스튜디오 웨딩 촬영. 3부는 천호동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결혼식.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긴 지하철 노선속에서 대략 한 달간의 내 삶을 돌아보았다. 마치 요즘의 이상한 날씨 처럼 나는 여전히 변덕스러운 마음의 기후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학 동기들은 나보고 언제나 설레임중이라고 말했다. 미스터 셀레임. 나쁘지 않은 말이다. 단지 마침표가 없다는게 문제 라면 문제다. 나는 여전히 진흙속에 핀 연꽃이 되기를 갈망하며 크고 부드러운 솜털을 가진 연잎으로 빗방울들을 모으고 있다. 넓적하고 투명한 물방울은 영롱하게 나를 비춘다.

망망대해는 깊고 푸를 지언정 아무것도 아니다.

변덕스러웠던 4월에 내가 깨달은 것은 삶에서 실패,실수라고 여겼던 점에 대해 집착? 하면 모든 것은 부정성의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성공의 기억은 성공을 낳게 한다. 누구나 자신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지만 자신의 장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면이 발달되고, 어떤 일이든 성공에 가까워진다. 어떤 일에 성공하는 사람은 그 순간순간. 자신이 성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 좋은 경험이 또 밑거름이 되고, 되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의 이성문제는 핑크 플로이드의 명반 <Darkside of the Moon> 이다.  달의 어두운 저편을 탐구하는 꼴이었다. 우울하고 회의적 이었다. 언젠가 영국의 소설가 닉 혼비의 <High Fidelity>(영화로도 나왔는데 국내 제목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영화보단 소설이 더 밀도 있음) 를 읽으면서 소설속의 주인공 이 깨달은 바를 나도 역시 가슴 깊이 끄덕대고 있었다. 그것은 첫사랑? 첫 이성관계의 잘못된 시작이었다. 첫 단추 부터 잘 못 끼운 셔츠의 구겨진 모양새 였다. 어느 정도 구겨질 때 까지 자신의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는지를 모른다. 소설속에서는 주인공이 옛 여인들을 한 명씩 찾아가서 그 때 왜 그랬냐고 물어가면서 자신의 문제를 찾아가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현실에서 내가 그런다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 결혼해서 엄마가 되어있을 그 모습을. 19살 고3의 나는 이상한 짝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혔었다. 그것이 첫 단추의 심각한 오류였다. 그 때 왜 그녀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 <줄 앤 짐> 처럼 그랬는지 묻지 않아도 이제 나는 알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소심함에서 오는, 표현할줄 모르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나를 시험했고,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소설 '소나기'처럼 애틋하게 쓸수도 있지만 세월은 나를 여기도 아닌 거기도 아닌 곳에 놓았다.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아이는 중학교때 자살시도를 했던적이 있고,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 병?을 좀 앓고 있었다는,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상했었고..

 마침표를 못 찍고 도망쳤기 때문에 답습은 계속되었다. 21살 때에는 한 여인에게 다가가 마음을 열었다. 여인이 대뜸 했던 말은 '저 서른 이에요'. 내 눈엔 25살로 봤기에, 용기내어봤지만, 그 당시 서른이라는 말은 왜이리 충격적이었는지..지금은 아니지만 그 말은 '저 노처녀 에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아무렴 어때. 하지만 나는 말을 잊어버렸고, 10분간 같이 걸으면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뒤 한 달 정도 매일 같은 시각에 마주쳤는데, 그저 눈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내 눈은 여전히 아무렴 어때 였지만, 그 여인의 눈은 노처녀의 슬픔과 새파랗게 젊은놈한테 고백을 받은 기쁨이 살짝 공존하는 듯 했다. 나는 이미 서른이 넘었고, 간혹 그 여인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을지, 여전히 노처녀일지 궁금하다.

 그 뒤 숱한 찌질함의 기억이 엄습해 오지만 아까 말했듯이 나는 이제 좋은 기억?만을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가려 한다. 잠시 기억을 들추어보니, 이런, 내가 왜 그런 여자애들에 시큰둥했는지 지금의 판단으론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생각할 수록/생각 보다/ 많다. 타율 3할7푼5리?ㅜㅜ 그렇게 야무닥지고 이쁜 실밥의 하얀 공들을 쉬크하게 뻥뻥 외야로 날려 버렸다. 왜 그랬을까. 누군가 내게 다가오는 것을 나는 왜 애써 방망이를 휘둘렀을까. 연애의 보수적 성향?. 그럴지도 모르는 것이 나는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감정의 여파에 꽤 오랬동안 휘둘려 왔다. only one 의 정신이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한상태에서 유통기한을 갱신하고 갱신했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책이나 영화를 많이 봐서 어떤 미디어적 허상이 나를 잠식했던듯 싶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눈과 눈길의 대면에서 오가는 것이다. 나는 침묵이 두려워 많은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 침묵 조차도 대화의 여백의 되어 소통의 요소가 되는 것을 안다. 이심전심의 묘는 진실한 마음속에서 흐른다는 사실을 이제 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음은 내 자신의 고유한 투명함을 유지하는 길이다. 진실한 마음은 어떠한 언어로 발설되는 순간 탁해진다. 나는 이제 그것을 간직한다. 그 동안 내 타율의 핵심은 본의 아니게 시큰둥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감정의 줄다리기는 무의미하다. 감정의 줄다리기는 정치가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개개인의 자립과 민주주의 원칙을 고수할때에 진정한 사귐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왜 그녀가 엷은 미소만 짓고 있었는지를 이제 좀 알 것도 같다.

 몇주전에 만난 대학 후배가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05 05 10 작성.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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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바람은 속절없이 봄날의 꽃을 흩날려 버린다.
한밤의 거친 소용돌이는 밤새 콜록거리는 어린애 마냥 애처롭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듯 변화의 바람은 모든것을 핡퀸다.
4월의 어느밤 바람의 뒤척임은 창문을 들썩거리며 혁명을 말한다.
너는 단 한 번 살 뿐이라고.
찬란한 여름을 시샘하듯 변화의 바람은 겨우새 단단한 나뭇가지를 뚫고나온 여린 잎사귀를 가차없이 꺽어버린다.
초록이 채 익기도 전에 나뭇잎은 연두색으로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널부러졌다.
구름의 속도는 남자의 달리기 보다 빠르고
꽃잎의 떨어짐은 한 줌의 호홉보다 가볍다.
무엇이든 물어봐주오. 두렵지 않다고.

봄날의 태양은 바람에 흩날리는 연한 꽃잎을 비추며 마음의 양지에 사뭇친다.
그것은 낙화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꽃눈 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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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차가 생긴 이후로 사치스런 취미중 하나가 가끔 자유로를 드라이빙 하는 것이다. 이동 수단이 자전거가 주가 되면서 차량 건강 관리 차원에서 적어도 2주에 한번은 운행을 해 줘야 하는데, 이럴때. 언제 부턴가 나는 새벽 5시에 차를 끌고 나오는 것이다. 새벽의 낮게 깔린 공기속에서 그르렁대는 엔진의 공회전 소리는 내면에 잠자고 있던 질주본능을 예고 한다. 새벽의 도시 소리는 맑고 청명하게 들린다. 쓰레기를 치우는 소리, 봉고차를 타고 어디론가 일하러 가는 노동자들의 낮게 깔린 잡담소리등이 내 짧은 한 숨 소리와 섞여서 새벽을 이룬다.

 신도림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을 산다. 왜냐면 뻔한 클리쉐처럼 새벽의 운전과 커피는 한 몸이다. 새벽에 갈 때마다 맥도날드에는 항상 한 테이블 정도는 손님이 있다. 밤 새 데이트한 연인들, 실연한 남자, 혹은 집나온 가장인지도 모를 그들을 나는 유령처럼 스쳐간다. 엔진은 이제 데펴졌고 내 머리는 뜨거운 커피로 눈과 귀, 코와 피부를 깨운다. 단지 입만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서부간선도로를 바로 타면 이제 길위엔 신호등은 없다. 순전히 나 와 차가, 바람과 아스팔트를 가르는 공간속으로 돌진하는 일만 남아있다. 성산대교를 넘어 계속 직진해서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북한산 언저리에서 새벽산행을 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축축한 겨울 안개가 수북히 꼈을 때에는 자유로가 안성맞춤이다.

 강변북로 일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RHCP의 음반이나 Libertines의 음악을 튼다. 리버틴스 우리말로 하자면 한량? 말 그대로 한량 놀음이다. 자아에 듬뿍 물을 주는 긍정적인.. 리버틴스 음악 특유의 정서인 젊음의 환희와 자조는 특유의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자유로의 감성과 어울린다. 이 길은 끝이 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 있는 것이다. 이 남한 땅은 대륙에 연결된 땅이면서 섬 아닌 섬이다. 새끼 발가락에 실을 칭칭 감아버려 검붉은 피가 응어러진 땅이다. 썩을 수 밖에 없다. 아플 수 밖에 없다. 임진각의 철조망이 뚫려 개성. 평양을 거쳐 만주 시베리아 모스코바 파리 까지 갈 수 있는 이 길의 자유를 차단 당하고 있는 것이다. 썩은 위정자들 때문에. 불가능한 상상이 아닌데 우린 상상조차 안하고 살아왔다. 나는 먼동이 트는 자유로를 달리며 파리를 상상한다. 이 땅들은 이어져 있다. 군락을 이루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철새때 처럼 내 마음은 한결 자유로워 진다.

 예전에 자유로는 왕복 4차선인데 양 방향의 중간에는 넓적한 평지 였다. 확장을 염두해 둔 녹지였다. 마치 미국 고속도로를 달릴때의 느낌과 풍경이 비슷했다. 그 여행의 절대고독도 자유로를 타다보면 간혹 환기된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풍경의 자유로는 십장 대통령의 우라질에 어느 고속도로나와 비슷해졌다. 파주,교하 신도시를 위한 것 이겠지만 옛 모습이 아쉽다.
 한 번은 아는 분의 포르쉐911 터보를 타고 시속 250키로 미터? 아님 더 이상으로 자유로를 달려본 경험이었다. 창 밖의 풍경은 모네의 그림이 되었고 아스팔트와 소리는 지진이 일어나는 듯 했다. 어렸을때 즐겨 보았던 천재소년 앤드류의 한 장면 같았다고 할까. 2억5천이 넘는다는 이 독일산 스포츠카는 어릴때 추억, 환상을 매개하는 끈 이었다. 근데 다 멋진데, 시끄럽고 허리가 아프다.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자동차 드래그 레이스로도 유명했고, 초지에 세워둔 차들의 들썩거림으로도 유명하기도 했다. 철조망 초소 경비병으로 근무 했던 친구의 경험으로는 밤에 야간 투시경으로 전방감시가 아니라 후방주시를 주로 했다고 한다. 지금은 헤이리 아트 밸리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교하 출판단지. 영어 마을등 데이트 할 때는 나름 많은 것 같다. 뭐니 뭐니 해도 새들이 군락을 이루며 활공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요즘에야 그 멋을 알았다. 눈을 감고 그 새의 기분을 투사해 보는 짧은 순간. 행복하다.

 그야말로 멋진 이름을 가진 자유로를 달리며 진짜 자유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자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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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를 중학생으로 맞이한 동시대인 에겐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기억은 행운이다. 아마도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였을 그를 우리는 정말 좋은 시기에 누렸다. 축구 황제 펠레. 복싱의 무하마드 알리. 골프의 타이거 우즈. 등도 마이클 조던의 위업과 예술적 경지에는 못 미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아마 현재는 바로셀로나의 축구 선수 리오넬 메시가 마이클 조던 처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는 농구의 신 이었고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는 교인 이었다. 공간을 휘젓는 전지 전능한 경지. 인간 신체 움직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등은 그 당시 내 인생 처음으로  본 포르노의 충격과 맞먹었다. 단지 마이클 조던의 아름다운 충격은 고등학교때 까지 계속 이어졌었다. 뽀르노는 그 후 야동이란 이름으로 오양 비디오로 다시 한번 충격을 겪게 되었을 거다.

 고 1 때. 한 친구가 기억이 난다. 이름은 현영. 얼굴은 나보다 더 하앻다(?). 그는 여자에는 관심없었고 오직 음악듣기에만 몰두했었다. 그와 나는 팝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친해졌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매일 듣는 애들이 한반에 한 5명 정도 됐었다. 그중에 Guns N' Roses 의 보컬 액슬 로즈 (Axl Rose) 를 유독 좋아했던 우리는 절친한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공동의 우상을 간직했던 우리는 곧 머지않아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조국이 남 북으로 분열 되더니 6.25가 터지는 비극을 겪게 된다. 적어도 그 친구의 섬세한 내면에선 그랬을 것이다.

 나는 건스 앤 로지스 와 동시에 그 당시 최신 음악인. 그런지 / 얼터너티브 ( 너바나, 라디오헤드. 스매싱 펌킨스 ) 등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고, 그 친구는 메탈리카를 정점으로 헤비메탈 / 트래쉬 메탈 / 데쓰 메탈 ( 슬레이어, 세풀투라..등 ) 에 중독되고  있었다. 그가 자주 들어보라고 건네는 워크맨의 이어폰은 공포였다. 왜냐면 슬레이어나 세풀투라 (기억은 안 나지만  더 한 밴드도 많았다) 의 음악을 들어보시라 록음악 좋아하는 나 로써도 충격과 무서움 이었다. 극단적인 소리로 공포를 자아낼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에게 메탈리카는 신 이었다. 메탈리카도 Trash 메탈의 범주 이지만 그 즈음에 발표한 그들의 5집 음반은 아주 대중적인, 록 음악 역사에 남을 명반이었다. ( 엔터 샌드맨. 넛띵 엘스 매러, 언포기븐 등은 이제는 메탈 음악의 고전이다.)
 메탈리카의 그 음반이 아무리 명반이었다 해도 나는 절대 헤비메탈 키드는 아니었다. 내게 맞는 범주는 펑크, 뉴웨이브, 아방가르드, 얼터너티브 같이 정통에서 어긋난 탐미적인 비주류의 감성이었다. 그 친구에겐 내가 마치 해방 이후 양키 들에 힘없이 겁탈당하는 양공주? 같았을 것이다. 반면 그 친구는 레닌 (메탈리카) 이라는 정신적 지주를 모시고 스탈린 (슬레이어,세풀투라) 이라는 폭압적 헤비메탈 주체사상에 경도 되었다.
 서서히 음악적 취향의 골이 깊어 질수록 우리가 공통으로 좋아했던 건스 앤 로지스의 예찬이 극에 달했다. 지구상 최고의 밴드라고..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액슬 로즈와 기타리스트 슬래쉬는 우리에게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였다.

 제 2 외국어가 스페인어라 돌구르듯이 R~R~R~R~R~을 재미나게 연습하던 차에 주변의 곳곳에서 마이클 조던 이야기와 고작 비키니 입은 구겨진 사진의 잡지를 헐떡대며 넘기는 소리들. 성경험의 진보주의자가 워크맨으로 녹음한 야릇한 카셋트 테이프가 재생되는 소리. ( 나는 이런 괴짜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미디어 아트, 사운드아트의 선구자이다. 너무 날 것 이었지만 말이다. ) 그 시절 내 책상 속엔 아마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문열의 소설 사람의 아들과 소설 여명의 눈동자의 야한 부분만 너덜거리며 있었을 것이다.

 친구 현영이가 메탈리카와 마이클 조던 중에 누가 더 유명하냐 라는 질문을 아해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해들의 답변은 당연히 마이클 조던이었지. 현영이는 속이 상했는지 그 유치한 질문은 더 노골적으로 되었다. "메탈리카와 마이클 조던 누가 더 유명해? 엄창?"  이런! 그래도 내 책상속엔 도서관서 빌린 사람의 아들이 있었는데.. 메탈리카를 신으로 모시는 그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거북이가 토끼보다 빠르다고 우기는 꼴이었다. 결국 그 질문은 나에게 까지 왔다. 현영이의 메탈리카 사랑은 10전 전패였다. 현영이에겐 내가 마지막 보루 였다. 한 명이라도 메탈리카에 손을 들어주면 그의 독실한 신앙심의 상처는 회복되었다. 현영이는 학창시절 빼동 이라 불리는 나의 애칭을 버리고 정색하며 동학이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나랑 생각이 같을 거야 하면서 다시 그 유치한 질문을 했다. 나는 진지한척 정확하게 질문을 되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마이클 조던과 메탈리카 중에 누가 더 세상 사람들이 많이 알까? 이지.." 응!. 열명 정도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내 답변을 들은 그는 원래 하얀 얼굴은 더 하얘졌고 눈에는 분해서 살짝 물방울이 맺혔다. 땀이 아니라 눈물이었겠지. 그 순간 현영이에겐 6.25의 발발이었고,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금방 울것 같은 그 얼굴. 유치하지만 순수했던 열정이 사뭇친다. 여태 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결과와 내 주관이 중요한게 아닌데 말이다.

 메탈리카를 인정 안 한 나는 커트 코베인을 지주로 모시고 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현영이는 메탈리카는 자장가 였을 정도로 더 극단적인 메탈에 빠져들었다. 그 때 일렉트릭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가 어느 대학을 갔는지 모르겠지만 검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액슬 로즈 흉내내며 노래 불렀을거 같은 모습이 눈에 훤하다. 하얀 얼굴에 눈물이 맺혔던 그 모습도.. 

 다음 노래는 다들 보통 대학 축제때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노래 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보컬 액슬 로즈와 정말 아름다운 기타 소리와 연주를 들려주는 슬래쉬. 이것은 난폭한 액슬 로즈가 사랑에 빠져 만든 노래란다.
 Guns N' Roses _Sweet child O' mine 1992 일본 도쿄돔 라이브. 같은 시각 도쿄 어디가에서 너바나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는데. 역사의 변곡점 이었구나. 요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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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서른을 넘은 한 남자는 새벽의 바로셀로나 축구 클럽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보고 정오에 일어났다. 몽롱한 정신으로 아.점을 먹고 그는 어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에 산책 나갔다. 따스한 봄바람 마냥 온화한 어머니는 겨울내내 죽은 나무 처럼 갈색의 생기 없는 나뭇가지지만 곧 개화할 나무들을 가리키며, 아들에게 '긴장하는 모습이 보이니?' 라고 따스한 숨결로 물어보았다. 오랜 겨울을 참고 이겨낸 나무가지가 봄의 기운에 충만해 살갖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고통스레 푸른 이파리가 삐쭘 내밀기 전, 그 긴장을 어머니는 아들에게 모정의 온기를 듬뿍 담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둔 그 남자는 머지 않아 곧 개화할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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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빼고는 그리 이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머리 스타일 또한 촌스럽고  패션도 미국 중부 출신 여자같은, 보수적인, 신선한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영화 500일의 썸머 초반부를 볼 때까지 이런 무덤덤한 감정으로 영화의 내용에 몰두하려 했다. 나는 남자 주인공 톰 핸슨 같이 우울한 영국 음악에 빠져지냈고 영화 졸업을 잘못 이해한게 아니라 제대로 끝까지 보지 못했던, 한마디로 내 평생의 여인이 어딘가에 있을거란 믿음으로 오랜 시간 지내왔던 남자 였다. 톰 핸슨에 감정이 팍팍 이입됐다. 그가 입은 티셔츠의 그림이나 노래방에서 부르는 픽시스의 곡(Here comes your man), 특히 스미쓰의 노래들에서 지나간 삶의 향수 냄새가 났다.

내가 톰 핸슨 처럼 여 주인공 썸머 핀(Zooey Deschanel) 에 반하게 된 건 그녀의 외모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목소리, 말투, 발음 이었다. 정확히 영화의 초반부 엘리베이터 씬 에서 그녀가 Smiths 를 말할때 th번데기 발음이었고 비음섞인 음색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또 다시 엘리베이터 에서 톰이 하우 워즈 위켄드 ? 하니까 그녀가 잇 워즈 구우~웃 할때 난 이미 그녀의 소리에 빠져버렸다. 음악과 소리 자체에 관심이 많았던 내겐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목소리, 노래 때문에 이성에게 끌린적이 몇 번 있었다. 어쩔땐 가느다란 팔뚝을, 또 다른땐 굵은 종아리를, 간혹 틀어올린 머리 밑의 얇은 머리카락 만 보고도 마음이 동하지만 소리만은 절대적 이었다. 제시카가 박경림 같은 소리를 낸다면 음.. 생각만 해도 싫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여자들의 소리는 좋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이 멋진 목소리를 가진 주이 디샤넬은 뮤지션 이었다. 노래 부를때의 음색은 더욱 매력적이다. 500일의 썸머를 인상깊게 본 이후 짐 캐리와 주연한 예스맨을 찿아 보았는데 그 영화 에서 인디 가수로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가수 이겠다' 라는 생각에, 사실은 그녀의 묘한 색깔의 눈동자에 빠져 인터넷으로 그녀의 사진을 검색 하던중 이미 그녀가 She & Him 이름으로 밴드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듀엣으로 활동하는데 최근에 2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처음 그들의 볼륨 1 음반을 들었을때, 나릇하고 몽글몽글한 그녀의 음색에 봄 까지 겹쳐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다. 너무나도 봄이랑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앨범 재킷 그림도 아름다운데 씨디를 사고 싶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그녀가 떠버려 있지 않을까.)

이제는 그녀의 모든게 이뻐 보였다. 검은 앞머리를 길게 내려 이마를 가린 그녀의 머리 스타일은 크고 깊은 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딱 안성맞춤 이었다.

생각해보면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해프닝 에서도 이 배우의 눈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또 올모스트 페이머스 에서도 짧지만 인상깊었었고.. 그리고 그녀가 출연했으나 내가 보지 못한 작품들을 조금씩 찾아 보았다. 그 중에 윈터 패싱과 거대한 Gigantic 이 좋았다. 영화속에 흐르는 음악에서도 그녀의 노래를 들을수 있는데 거의 그녀가 작곡한 노래였다. 그녀의 밴드 에서도 그렇고 단지 노래만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내가 선망하는 싱어 송라이터 였던 것이다. 또 그녀는 괜찮은 인디밴드 Death Cab For Cutie 의 멤버와 최근에 결혼했다고 한다.
내 생각엔 키이라 나이틀리(키이라도 매력적인 억양과 소리를 가졌고 턱이 매력적이다.)

보다 더 많이 뜰 거 같다. 아님 이미 그렇던가. 연기 면에서도 얼마나 완벽한가. 500일의 썸머에서 그녀의 얼굴 근육이 좀 더 움직였거나. 덜 움직였다면, 영화의 감상이 달라졌을 것이다. 광고 카피 처럼 '누구나 썸머와 사귄적이 있다.' 라는 문구는 그녀의 연기가 완벽했기에 공감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으로써 헐리우드 리포터 같은 가쉽으로 알려지는 것 보다 진지한 뮤지션으로, 작품성 있는 영화로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그나저나 She & Him 의 두번째 음반을 들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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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집에서 해먹는 음식중에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떡복이가 최근에 들어서 스파게티로 바뀌었다. 인기 드라마 파스타가 방영하기 이전에 우연찮게 방송에서   파스타 레시피를 소개하는걸 귀담아 보았었다. 쉽고 간단하고, 재료값도 그다지 많이 들지 않으면서, 떡복이 처럼 별식이라기 보다 영양가 풍부한 한 끼 식사로써 충분한 것이었다.
 처음 내가 만든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는 엄마에게 감동을 드렸다. 나중에 좀 더 나은 실력으로 스파게티를 만들었을때 엄마는 처음 내가 시도했던 스파게티가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내가 만들어주기 전까지 스파게티를 드셔 보지 못하셨던것이다. 아마 나이드신 어른들은 뷔페식 잔칫집 에 올려진 면 따로 소스 따로인 음식을 선택하질 않으실 게다. 가뜩이나 엄마는 소화기관이 안좋아 면 음식을 좋아하시면서 못 드셨으니.. 내가 처음 만든 완전 자연산 홈 스파게티는 첫 느낌이 남 달랐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첫 스파게티는 소스가 미완성인 채 시식을 한 셈인데 오히려 강한 맛의 소스가 아니라 밋밋한 소스에서 면의 고소함 이 살아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아님 삶는 면의 시간이 초심자의 행운이 작용해 완벽했을런지도..

 신기하게도 집에서 만든 스파게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고 소화가 잘 된다. 고질적 소화불량인 엄마도 마찬가지다. 떡복이나 라면, 국수와는 그  배부름의 질이 다르다. 이태리산 면의 차이 인지, 올리브 오일의 효능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행복의 음식이다.
 면 한 봉지, 혹은 한 박스를 삶으면 성인기준으로 4~5인분 나온다. 한 번에 다 삶고 남는 면은 물기를 빼 냉장고에 넣었다가 나중에 다양한 방법의 파스타 요리를 해 먹으면 된다.

 어제는 오징어 먹물 먹인 스파게티면으로 삶았는데 맛 차이는 모르겠지만 왠지 몸보신한 느낌이었다. 엄마와 내가 먼저 먹고 예고 없이 큰누나와 조카들이 들이닥쳤느데, 4살과 8살 조카들은 내가 만든 먹물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를 맛있다고 회를 치며 먹었다.ㅎ 분명 어린아이들은 음식의 맛에 대해 거짓말 할 줄 모른다. 조카들은 남김없이 싹싹 비웠고, 나는 흐뭇하게 그들의 입을 닦아 주었다.

 내가 수선떨며 벌인 요리를 완벽히 깔끔히 맛있게 먹어 치웠을때, 시원한 희열이 있다. 어렸을때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윽박질러 다 먹이던 엄마가 조금은 이해된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었는데 이제는 내가 다양한 스파게티를 만들어 권한다. 맛없는데 억지로 권하진 못할테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모두 맛있게 먹는다.

새로운 요리는 삶의 기쁨이자 마음의 소통이다. 

 다음번엔 핫케익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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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지났지만 눈은 많이 오고 기온은 차갑다. 하지만 해는 한겨울 보다는 더욱  길어졌고 따듯한 온기가 서려있다. 나즈막한 햇살 속에 실려오는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살을 에이는 겨울 바람이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찌 할 도리 없듯이 한결 부드럽게 내 볼을 휘감는다. 정말 겨울답게 추웠던 이 계절은 왕성한 푸르름의 생명력을 기약하고, 희망한다.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온전한 바람을 한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형,무색의 에너지 속에서 나란 실체의 존재를 끊임없이 느낀다. 강한 맞 바람을 맞으며 내 얼굴에 닿은 거친 파열음을 듣는다. 바람 자체는 소리가 없다. 내가 역동하는 에너지의 흐름의 한 가운데서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실존. 이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바람의 맛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의 즐거움이다. 변화를 생각하는 모든 이는 바람을 꿈꾼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다는 바람의 속성은, 바람을 피운다. 라는 중의적인 부정성도 내포하고 있다. 내면의 바람이 우리를 일깨우기를.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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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꿈 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눈을 떳어도 현실과 꿈과의 경계 안에서 오래 서성거린다. 꿈은 꿈 답게 말도 안되게 오락가락 황당무개 해야 하거늘, 오늘 새벽의 꿈 같은 경우 완벽한 한편의 장편 영화였다. 꿈속에서 이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다짐했었다. 그러나 지금, 거의 모든 꿈 속의 기억이 망각으로 유실되고 있다. 아, 이 아련한 망각의 슬픔이여... 분명 매트릭스를 능가하는 경험이었고, 마음에 되새기고 있었는데, 망각의 늪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의식과 무의식, 잠재의식의 완벽한 통합이었다.

폴 매카트니가 예스터데이를 작곡한 일화처럼, ( 한밤에 잠에서 갑자기 깨서 피아노 치면서 뚝딱 만들어낸 ) 신의 계시와도 같았지만, 나는 그것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안심인것은 나의 무의식과 잠재의식은 뒤틀어지고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진리를 얻기 위해 한마음으로 덩어리 졌었다. 요 몇일 사이 참선 이 매우 잘 됐었는데 그것의 미미한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주인이자, 스펙타클 속에서 주인공이었다.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꿈의 자동 기술법이라도 있었으면..

 영혼이 그저 딱딱한 뼈속의 단백질 에 불과하다면 얼마나 초라한가..그것이 현실의 갇힌 세계라면, 꿈은 영혼의 해방구 이다. 의식이 만들어낸 모든 가치의 무장해제 이다. 현실에서의 바람 처럼 그것은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대 자유의 세계이다. 흩어진 바람을 일념으로 뭉쳐서 이끈다면, 지구위의 모든것을 날려버릴 무서운 태풍도 될 수 있다. 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혁명을 꿈꾸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꿈은 무의식에 각인 시키는 것이다. 그 무의식은 한 밤의 꿈을 통해 자유롭게 현현되어, 우리의 의식의 경직성에 자극을 준다. 그럼으로써 거듭 태어난다. Born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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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국내에서 인기끌었던 팝송이 있었다. 국내에서만 이름이 알려진 영국 밴드 리알토가 부른 monday morning 5:19 이었다.  가사 내용은 모르지만 친숙한 멜로디와 제목이 주는 상상력이, 핸드폰의 알람 이후 이불 속에서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내게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나의 월요일 아침 5:19 는 잘라내야할 망상이 널브러져 있었다.

 정신은 육체를 이끌지 못했다. 새벽의 달콤함을 즐기는 육체는 포근함 속에 이미 함락되었고, 목표를 잃은 의식은 우왕좌왕 사색으로 점철될 뿐이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사색은 결국 헛된 망상일뿐, 삶의 부스러기 와도 같다. 마치 헬률가스 가득한 풍선을 마신듯, 결코 진정한 자신의 소리를 가질 (낼) 수 없다.
 
 일요일 아침과는 전혀 다른 긴장이 서려있다. 곧 고요의 파괴는 이루어지고 지체없는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몰릴 것이다. 시간의 속성은 원래 그러하니 슬퍼할 일은 못 되나, 그 속절없음에 모든 세포들은 깨어있어야 한다. 이 순간의 점들이 결국  나  이다. 아무것도 아닌, 텅빈 마음으로 무언가를 행하고 있을 뿐인..

 정상을 앞둔 가파른 산길의 한걸음, 한걸음 같이 ..   해는 이미 떠올랐다. 이제 아침 밥을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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