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미혼일 경우. 남자나 여자나 참. 심란한 나이가 아닐 수 없다. 생물적으로든 사회적인 관습으로든 뭔가 꺽이는 나이..생명(기운)의 정점에서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그 지점에서 결혼이라는 화두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 독립의 완성. 앞으로 남은 일생의 동반자를 만나.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나누는 삶을 사는 일은 인간의 인생에서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결국 나(자아의 이기)를 버리고. 타인을 나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일이..그 기억이. 자기가 죽을때. 좋은 삶을 살았다는 마지막 안도와 행복의 한 숨이 아닐까. 사랑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타인을 향한 마음가짐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그 마음이 제대로 통할때라야 아름다운 거겠지만. 어쨌든 관습 혹은 거래로써의 결혼이 아닌. 사랑으로 점철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일은. 인생 최대의 관심사이자. 중요점이다. 특히나 지금의 내 나이는 마지막 기로에 서있다. 결혼의 가능성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사회적 나이에 도달한 것이다. 누구나 아저씨를 연상하게 되는 나이에서..그 동안 청년으로 살아왔던 나의 정신계는. 급격히.. 어른의 책임감어린 중압감으로 변모했다. 인생에서 꿈.사랑. 일. 건강. 등이 중요한 거라면..그동안은 나의 꿈을 위해서 나머지 것들은 소흘이 했다면. 이제는 그것들 전부 다 끌어안고 가야하는 긍정적인 긴장감이 다가왔다. 올해가 시작할때, 아니 사실 작년부터 변화의 조짐은 시작했다. 나는 그 동안의 마음의 빗장을 열고. 타인에게로 사회속으로 한 걸음 더 가야겠다는 내면의 출사표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큰 각오가 아니라..마음의 유연함은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면서..내게 부딪히는 우연의 인연은 큰 스승이었다.

 설날 이전에. 평소 대화가 없던 아버지와 크게 언쟁이 붙었다. 결국 빌붙어 사는 나는 독립을 해야 한다는 부끄러운 뒤늦은 자각에 의기소침해졌다. 그 틈을 노려 1월 마지막주 주말에 어머니는 선 자리를 종용했다. 예전같으면..무슨 선 이냐고..내가 알아서 한다고..기세등등이 일설하겠지만, 이젠 큰 소리 칠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조용히 그날 저녁 소개팅이 있다고 얘기했다. 다행히도 정말로..소개팅 약속이 잡혀 있었다. 본의 아니게 어머니가 알게된 이 소개팅은 그 후 지극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날 밤에 내가 집에 들어오고.. 또 주말에 나가는 모든 일거수 일투족이 어머니의 관심속에서..맞이했다. 긴 얘기도 아닌.." 남자가 쪼잔하면 못 쓴다." " 차는 닦았니? " " 있는? 티좀 내라." 등등..내가 주말마다 나가고 밸런타인 데이때도 늦게 들어오니..안심하는 눈치다. 이젠 부모 입장에선..내가 어느날..집에 들어와 " 엄마..저 애 가졌어요.." 그러면..좋아하실 지도 모르겠다.

 20대 후반에 미대입시 미술학원 동기들과의 모임에서..여자애들의 결혼에 대한 하소연 중에 24살 까지는 통금시간도 있고..남자친구 만나는걸..그렇게 부모가 경계하더니. 29이 되니..외박해도 뭐라 안 그러구..오히려 주말에 방에서 뒹글거리면..구박하더라는..웃긴 이야기 였다. 이젠. 정말..어디서 애라도 떨컥 배가지고 남자와 함께 오면.. 그 부모들은 어떤 반응일까..

 의지가 중요하다. 결혼을 하겠다는.. 의지가 변화로의 길로 이끈다. 사회.인류학적.페미니즘적 시니컬한 결혼의 관점은 배제하고 일단. 이 책임감과 당위성에 몸을 맡겨 두련다. 결혼이라는 큰 관문을 넘기 위한. 자기 자신의 변화로의 노력이..인생을 새롭게 창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누가 알랴..인생의 스승은 자신의 부인일지도 모른다는.. 어쨌든 .부모 앞에서. " 엄마. 저 남자를 좋아해요.." 라고 말 할 일은 없어서..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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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마달 라이브홀. 킹스턴 루디스카 / 사진.박군.

 나는 달빛~ 이 밴드를 모른다. 이 밴드의 리더가. 서른 후반의 나이로 뇌졸증으로 죽었다고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잘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감상을 늘어놓진 않겠다. 이 사람은 생전에 인디씬에서 좋은 음악과. 열정으로..살아왔던듯 싶다. 인간성도 좋았는지. 아니면 인디음악씬의(꼭 음악씬 만이랴..) 척박한 현실을. 표상하는. 죽음이어서 그런지..어제 저녁 103개의팀이. 홍대의 라이브 클럽에서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했다.

 안내책자며. 참여한 밴드들 소개며. 싼 입장료.(만원) 에 달빛~의 CD도 하나씩 줬다. 참여한 뮤지션들이나 관객들이나 참 훈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운 좋게도. 처음 들어간 클럽에 남은. 2장의 씨디는 우리가 차지하고 끝이었다. 뒤에 아가씨가 이뻣으면 그냥 줬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들어간 클럽엔. 최고은 이란 여성 포크 가수가 통기타 한대로..좀 우울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객은 가득 찼지만. 노래가 우울해.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살짝 흠모했던 동명의 누님이 생각났다.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나와서..

클럽 에반스에 갔다. 예전부터 한번 와보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발길이 안 닿았던 곳이다. 급조된게 확실한 밴드가 마이클 잭슨의 Beat it 을 연주했다. 리허설이었기 때문에 2번을 들었다. 책자에 보니. 김정배 라는 기타리스트의 솔로 공연인것 같았다. 이 노래의 기타 리프가 환상적 이었다. 원래 명곡이지만.. 기타가 주도하는 풀 편성으로 라이브를 들으니..정말 좋았다. 그리고 이 클럽의 분위기가 나름 좋았다. 무대뒤에 올록 볼록하게 음향적으로 벽을 만들고..한쪽에 네온 싸인으로 클럽 에반스라는 깔끔한 간판도, 멋졌다. 소리는 PA스피커를 자제하고. 드럼 과 기타 앰프에서 바로 나오는 출력을 느낄수 있어서..더욱 자연스럽고 좋았다.
 한명이 더오고. 친구의 추천으로. 킹스턴 루디스카 공연을 보러 상상마당에 갔다. 공연장이 굉장히 좋았고. 관객은 족히 300명 이상 될 정도로 꽉 찼다. 음악은 국내에 흔치 않은 아마도. 거의 유일한..자메이카 풍의 레게.스카 밴드 였는데. 전면에 4명의 브라스 악기를 든, 무대 구성이 흥미로웠고. 기타리스트는 전에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 에서 보았던. 아주 실력있는 기타리스트 였다. 이름은 기억안나고... 특히.보컬의 음색과 창법이 무지 맘에 들었다. 관객들의 호응도가 장난 아니었다. 이런걸 보면..밴드를 하고 싶단 열망이..발가락 끝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진다. 스탠딩 공연의 관람은 오랜만이라..한시간 이었지만. 허리도 아프고..예민한 후각은. 여자들의 샴푸냄새를..구별할 정도 였다. 
 이렇게 실력이 출중하고. 다양한 음악을 하는 팀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업비트에 쨍까쨍까..뿜바뿜바 하는 사운드가..매우 정겨웠다. 소박하고 정겨운? 중남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어쩌면..이런 음악은. 마리화나에 쩔어..범죄와 속세의 고통속에 일말의 희망을 얘기 하는 음악인지도 모르곘다..나는 어쨌거나 밥 말리를 잘 모른다.
나와서..

 이상은 공연의 기나긴 줄을 보고..포기하고. 롤링홀의 이한철 공연을 보러 갔다. 롤링홀은 사운드가 좋기로 유명하다. 역시나. 사운드도 훌륭했고. 이한철의 노래도 좋았다. 그러나..그는. 너무 완숙한 가수가 되어..신선함이 없었다. 너무 자주 밴드 소개 하는식의 재미 없는 잼을 펼쳤고. 중간에 말도 많았다. 내가 공연장에서 제일 싫어하는 가수들의 썰렁한 멘트. 우리는 음악을 들으러 왔지..너의 시시껄렁한 사담을 들으러 온게 아닌데..몇일전에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와서..시차 적응이 안 된다는데..지가 고백하는 연습부족의 실상이었다. 배부른 가수는 스피릿이 부족하다..역시나 자신이 데뷔할때 만든 곡이 제일 좋더라..

 오늘의 대미는..클럽 FF의 갤럭시 익스프레스 공연 이었다. 내가 제일 주목하는 인디씬의 강자는 딱 두 팀. 아폴로 18과.. 내가 본 갤럭시 익스프레스 였다. 둘다. 3인조 록 밴드로써..거칠고..투박한 로큰롤 본연의 자세를 유지한다. 말랑말랑한 소녀 취향의 흔하디 흔한 모던록 밴드와는 완전히 질이 다른..로큰롤 순혈주의자 들이다. 특히. 갤럭시~ 는. 좀더 신나고 달리는 복고적인 면이 좋았다. 땀에 절은 멤버들의 열정적인 연주와 함께.. 좁은 클럽안의 관객은..완전 지랄발광 이었다. 젊은애들의 이런 모습..주체못할 에너지.. 보기 좋다..다만..나는 맨 뒤에 앉아서..혹시나..불이라도 나면..다 죽겠구나 라는..꼰대스러운 일말의 걱정에..나의 나이듦을 여실히 느꼈다. 95년 크라잉 넛이..드럭이란 클럽에서..지랄발광 펑크록을 연주했을때의 그 모습이었다. 그때에 비하면 연주와 사운드가 훨씬 좋아졌고.
너바나 그린데이를 카피하는 수준이 아닌..자신들의 창작곡들의 수준도..해외의 개러지 펑크 밴드들과도..견줘도 손색없을 정도로 좋다.. 특히 관객들이 같이 따라하는..후렴구의 훅이 강한..멜로디들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정말 이것이 록 이었다..거침없이 표현하고 분출하는..좀전의 이한철의 고루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멋진 공연이었다. 
 
 분명..우리나라의 문화 예술인들은. 실력이 좋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민족답게. 정말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언더그라운드 씬에서..척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열정을 가지고.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수명이 짧은 아이돌 댄스 애들만 가지고 한류 할께 아니라..이런. 홍대씬의 밴드들도..키워야 한다. 나는 이날..인디씬의 저변과 희망을 보았다. 문화의 자생적 기능은 적절한 시스템 안에서. 더욱 성장한다. 그러나 정책결정자 들의 개념없음은..어떤 문화도..성장하지 못하게 만든다. 꼭 추모공연이 아니더라도..이런 공연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정부에서 지원해서라도..이 라이브 클럽 문화는 키워야 한다. 어찌 음악..가수가 율동만 하는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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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를 마무리 하기 전에. 내게 뜻깊은 날은 12월 7일 코디최 선생님의 동시대 문화 연구 수업 종강날 이었다. 그동안의 수업으로 충분히 존경하고 감탄할 만한 분 이었는데. 그날 뒷풀이 자리에서. 내 마음속으로 직접. 스승.(나의 선생님) 이 생겼다는 희열과 긴장속에서 집에 오는 내내. 가슴이 무겁고도. 감격스러웠다. 다른 수업 때보다. 홍대에서의 화요일 저녁 수업에선 본인의 이야기를  많이 하셨었다. 그동안. 부자집안의 등을 엎고 80년대 초반 미국으로 이민가, 치열히 공부해서. 작가와 문화 이론가 로써 나름 문화.예술 권력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선생님만의 고생과. 녹록치 않은 이 사회에서의 갈등. 그리고 좀 씁슬한 가정사 까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여태 배우면서 진정한 선생님. 공부하는 예술가. 학자의 진짜 모습을 봐서 너무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럽지만. 선생님이 얘기하는 이 사회에서 자신은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사회 부작용자 라는 말을 하시는 그 심정을 헤아려볼수 있었다. 그 분의 속앓이를 자세히 적을 순 없지만. 아 나라 꼴을 보면.. 그 분의 화병도 짐작이 갈 것이다.

 선생님은 자신이 한평생.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죽는날까지. 어떤 목표를 가질지가 확실하다. 우리나라의 문화 정체성을 살리는 일.. 그것을 위해서 그토록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몸을 망쳐가며 책을 쓰고, 싸우시는 것이다.
 문화지형도를 36권의 장편소설로 만드는 계약을 했다고 하셨다. 강의 몇년만 더 하시고. 나머지 생을 그 책 쓰는데 보내시겠다고 했다. 왠지 그 이야기를 하면서 50대 초반의 선생님이 너무 노교수의 심정으로 얘기하셔서 안쓰러웠다. 안그래도 그날 수업 말미에. 이혼을 당하셨다고 고백아닌 고백을 하셨는데. 평소 수업중에 부인 이야기를 포함한 가정 이야기를 간간히 하셨었다. 그런데 2004년 뉴욕대 교수를 그만 두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혼자 들어오시면서..이혼서류가 날라왔던 모양이다. 10년간 뼈빠지게 노력해서 뉴욕대 교수로 안정을 찾아갈 무렵 느닷없이? 한국행을 택하게 된것도. 우리나라의 문화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란다. 아마 2002년 잠깐 이화여대 교환교수로 왔을때. 대장금을 비롯한 한류 초기 모습을 보시고 6개월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오랬동안 흥분해서 잠을 제대로 못잤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가. 젊은 시절. 미국 문화에 대한 환상으로 이민 갔다가. 느낀. 환멸과. 무시당함등..약소국 청년이 느끼는 비애를 뿌리깊게 느껴서 일 것이다.

 그 날 술자리에서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바삭 마른 스폰지에 물을 뿌려주는 것과도 같았다. 술을 마시면서 말씀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중년의 사내가 그렇게 감성적으로 풍부하며. 다혈질이면서, 눈빛이 초롱초롱 맑은 빛을 발하는것도. 내겐 귀감이 되었다. 스승의 기운을 받아. 매진하는 삶의 길..누가 뭐라하던.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다.. 누구누구의 이론이 아니라. 나의 이론. 나의 이야기를 이제부터 조금씩 시작하는 길..


 최근에 다시 나온 20세기 문화 지형도 개정판과. 동시대 문화 지형도. 강의를 위한 교과서 성격이 강하지만. 문화에 대한 개론서로써..출중한 책. 꼭 20세기 문화 지형도 먼저 읽어야 한다.

 나는 이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스승을 마음에 새기고, 스승의 길을 따라가고픈, 그래서 스승의 뜻을 이어서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 되는 그 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20세기 문화지형도"를 읽으신 분들은 "동시대문화지형도" 읽으신다면, 문화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마무리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4년 초 쓰기 시작했던 "20세기 문화지형도"를 3년반만에 마치면서,

"동시대문화지형도"는 조금 빨리 끝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역시 3년8개월 가량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가는 두 책 내용 모두가 저의 의견보다는 서양 문화의 변천사와 연구의 기록들을 정리하는 것이다보니, 잘못된 정보를 드리지 않기 위해 다시 찾아보고, 기록들을 검증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으며, 흩어져 있던 기록들과 정보들을 하나의 틀로 정리하려고 하니, 구성하는 일이 쉽지 않아 여러번의 시도를 하면서 수십차례 교정을 해야 만 했습니다. 구차한 변명이지만, 그리하여 시간이 오래 걸렸군요. 송구 합니다.

 

"20세기 문화 지형도"가 20세기의 역사의 변화에 따른 서양의 새로운 문화의 변천사와 우리의 관계를 서술했다면,

"동시대문화지형도"는 그러한 변화와 새로운 문화의 출생 속에서 고민하던 서구의 학자들이 문화연구의 필요성을 통감하여

문화연구의 학술적 방법을 찾아가며 정당화시켜가는 과정과 서구의 몇몇 중요한 나라들의 문화연구의 차이점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제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책을 통해 서구학자들의 문화연구 발전 과정을 이해하게 되어,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서구의 문화연구를 흉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연구의 현실을 통감하고,

우리만의 문화연구의 방법론을 각자의 위치에서 찾아 보시게 되길 소망합니다.

 

따라서 이책에 정리 된 기록들은 우리에 앞서 문화연구의 방법론을 찾아 낸 서구의 모습들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서양의 문화연구틀로 5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문화를 제단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만의 문화 연구 방법론을 찾아기가 위한 하나의 비교 대상, 본보기 혹은 이정표가 될 수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간혹 제게 우리문화연구를 위한 대안을 물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아직 본인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구의 문화의 변천사와 연구방법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의 현실의 문화적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 한다는 것은 대안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건강한 한 해를 마무리 하시고, 뜻깊은 새해가 되식를 기원하며...

2010.12.25. 코디최

사진 : 안상수 선생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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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오래된 컴퓨터가 수명이 다 되어가는가 보다. 날씨가 추워지니 쿨링팬은 더욱 겔겔거리는 소음이 난다. CRT 모니터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부팅하고 화면이 안나와서 여러차례 강제로 파워 오프 하고 나서야 화면이 뜬다. 정확한 원인이야 모르겠지만. 전원 키고. CMOS 셋업 화면에서 일부로 모니터 예열했다 부팅하니 정상적으로 화면이 나왔다.

 내 첫 컴퓨터는 중학교 1학년때로 기억하는데, 삼보 트라이젬.XT 컴퓨터 였다. 당시 CPU 가 인텔 8088 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너무나 좋아서. 밤마다 잠자기전, 컴퓨터 친구에게 인사하고 잤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컴퓨터에도 영혼의 숨결이 있다고 믿어 왔다. 전기적 소자와 접합체로 이루어진 다양한 구성의 컴퓨터는 사물들의 기관이지만. 에너지의 사용과 흐름면에서. 단순한 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기와 0 과 1의 세계에도. 감응할수 있는 영혼이 있다고 여전히 믿는다.

 요즘 스마트폰 열풍이 거센데. 그런면에서 나는 디지털 세상의 노인이다. 단지 장난감, 유희 도구로써의 디지털 기기들을 멀리하는 마음이 강하다. 디지털 기기를 작업의 효용성 면에서 다룰 뿐이지. 생활에 과도하게 침범하는 것을 경계한다. 지금 쓰는 2G 핸드폰이 맛이 가면. 스마트 폰으로 갈아 타겠지만, 있어도. 그다지. 활용을 안 할께 뻔하다. 차라리. 다른 기능 다 없어도. 화질 좋은 카메라 기능과.녹음기 기능. 전화 만 잘 터지면. 딱 좋겠다.

 인터넷의 사용조차도. 항상. 후회한다. 처음 컴퓨터를 키고. 여러 포탈을 전전하다. 별 쓰잘데 없는 뉴스들을 보다보면..시간은 어느새 훌쩍. 머릿속엔 가상의 자극만 남는다. 링크를 전전하는 그 시간을 줄이면.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할텐데..휘발되는 세상의 소식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 영혼도 휑 해진다. 인터넷 상의 아무리 좋은 글 이래도. 책을 읽는 것 만큼. 마음가짐이 다르다. 

 컴퓨터.  통칭해서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개인의 습관과. 성찰이 중요하다. 우리는 정신의 감각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몸의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그리고 정보의 가치는 양이 아니라. 수용하는 방법과 질의 문제이다. 인터넷서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지만, 그 시간에 남는건 그리 많지 않다. 조금 남아 있던 정신의 목표와 신념마저. 인터넷 바다에서 휘청거린다. 인터넷은 세계가 아니라 도구일 뿐이다.

 몇일 전, 자주 들락거리는 디지털 관련 포탈 사이트에 엉뚱한? 사진이 올라왔다. 갓 태어나서 울퉁불퉁한. 자신의? 애기 사진이었는데. 그 사진의 제목이. '신상입니다..축하해 주세요..'뭐 이런, 참 기가막힐 노릇이다.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보니까. 자신의 애기 까지..신상이라고 표현하는, 그 닭짓에 디지털화된 물질 만능시대가. 저렇게 병신을 만드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는 상품화된 인간의 삶을 얼리 어댑터 입장에서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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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사진 거장. 토마스 스트루스 첫 한국 전시를 보고 왔다. 우리는 사진 전공자로써. 책에서만 보던 이 현대의 사진 거장의 작품 감상에 앞서..좀 흥분했다. 실망과. 감동 그 사이에서..우리의 입담은 실날하게 씹을지. 혹은 감탄사가 나올지..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들어서자 마자. 와~ 하고..탄식이 흘러 나왔다. 일단 사진 내용 자체가 아니라. 사진의 크기와. 프린트의 품질. 과 색감등등. 사진의 표면적인 보여짐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갤러리에서 감상하는 것이 현대 예술이겠지.. 요즘의 주 출력 방식인. 잉크젯 프린트가 아니라. 화학염료로 프린트 하는, 예전의 칼라 사진 방식인 C프린트 였다. 거기다. 디아섹으로. 액자 처리를 했다. 개인적으로 칼라사진은 C프린트 인화를 좋아했었다. 잉크젯 보다 촉촉하고 투명한 느낌이 있고. 발색도 좀 더 좋은거 같다. 아날로그적 향취가 다분한 방식이. C프린트 였다. 근데 저만한 크기의 C프린트를 뽑을수 있는 장비가 없다. 듣기론. 독일 현지에서. 따로 설비를 제작해 뽑은 것을, 가져온 작품이란다. 디아섹도.독일 기술이니..완전 오리지널 독일산이다. 토마스 스투루스야. 베허 학파의. 일원으로써. 독일 즉물주의 사진의 전통적 계보이다.

 전시 작품중. 가장 큰 사진 앞에서..작가.  사진출처. 구글.

  나는 평소에. 예술 사진에서 이렇게 크게 출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용이 없는데. 사진이 별로 안좋은데. 억지로..크게 뽑는걸 보며..허풍장이 예술가라며 폄하했다. 현대 예술 특유의 가오 잡기 같은..허장성세를 혐오했다. 그리고 내가 예술 사진 처음 공부할때. 우리나라 사진계에선 한창. 독일 유형학적 사진이..유행을 이루고 있었고. 나는 그 단순. 나열식의 수집 채취 방식의 사진을..사진가의 재능없음으로 받아들였다. 독일 사진의 영향을 벗어나는 것이..최우선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토마스 스투루스의 사진을 실제로 보니.. 이러한 생각들이 긍정으로 바뀌었다. 최소한 토마스 스트루스 작품 앞에선. 매우 타당한. 방식이자. 결과 였고. 감탄했다. 현재에 가장 유명한 사진가. 같은 베허 학파 제자인.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또한. (리움에서) 실제 작품앞에선. 탄복했었다. 그들 사진처럼. 완전 크게 보아야 제대로 느낄수 있는 사진이 있는 반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처럼. 작은 사이즈로 감상해야..제맛을 느끼는 사진도 있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대형 카메라를 안 쓰기 때문에 이렇게 크게 출력할 일은 없겠지만. 오랬만에 느껴보는. 이런 대형 사진 작품앞의..사진의 정밀한 재현 능력앞에서..탄식이 흘러나왔다. 사진이 예술로써 기능하는 일련의 요소중. 크기와 디테일을 무시 할 순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5점의 작품중. 평양. 사진이 1개 뿐이어서 아쉬웠지만. 위 사진이 가장 좋았다. 물론. 익숙한 건물 풍경이 아니어서. 좀 더. 색달라서 그런면도 있겠지만. 콘크리트 시멘트 덩어리들이. 질좋은 색감으로 다가왔다. 아래 사진의 흔하게 볼수 있는 고층 아파트 모습도. 실제 작품 앞에선. 새롭게 다가온다.. 사진이 무엇을 담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보여지는 방식과. 색의 표현이. 관람자에게 많은 자극을 준다. 극도로 통제된 모습과. 욕망이 무분별하게..발현되는 모습의 대비.

 그는 "산업화와 기술의 집약.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가는지" 가 관심사 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 보여주는 한국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참. 표현할 께 많은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가 흔하게 보는 풍경이지만. 외국 사진가의 눈과 표현엔. 또다른 이질감도 담겨..다가온다. 사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 하지만, 그 재현의 의미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표면적인 보여지는 것 조차. 대상과 똑같진 않다. 많은 것을 가미 할 수 있다. 재현의 과정에 기운이 서려있다.

 우리나라의 아무츄어 하이엔드 디카 매니아들에겐. 이 전시가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어쩜. 다 저거 나도 찍을 수 있겠다.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럴수도 있지만. 한 작품. 한 예술가를 파악하기에는. 좀 세심한 감성과..꼼꼼함이 필요하다. 서양에 대한 사대주의를 벗어나. 그들의 이성과. 과학적 사고의 시선을 이해해봐야 한다. 어쩌면 그들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를 더 잘 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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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기가 제 소리, 맑은 소리를 내려면. 현이던 기관이던 적당히 조여져 있어야 한다. 텐션과 밸런스는 악기의 정체성이다. 그것의 풀어짐은 악기가 아닌 그저 나무토막이나. 가죽 혹은 쇠붙이에 불과한 것이다. 악기는 그래서 매력이 있다. 다른 어떤 사물 보다도 물성 그 자체의 긴박함이 서려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물성과 물성이 만나..서로..최대한 긴장하고 대치하며. 공존한다. 타자성의 만남에서 밸런스는 악기의 생명이다.

 소리를 만들어 내는일. 공간에 공명을 울리는 일은. 악기라는 사물이 가진 최대치의 하모니(조화) 이다. 제 몸을 깍고 닦고..조여서 공간에 에너지의 파형을 만들어 낸다. 부딪힘의 상호작용. 그 고통스런 몸짓이 눈에 보인다. 그래서 모든 악기는 아름답다. 손가락 끝과 현 사이의 마술은 지난한 고통의 과정이다.

 끌어당기는 힘과 지탱하려는 힘의 조화 속에서 현은 울림을 자아낸다. 너와 나의 궁극적 대척점이 사건을 만들고 여파를 일으킨다. 그 울렁거림은 시간을 거스르는 순간의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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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간만에 리움 미술관을 다녀왔다. 친구가 아는 선생님의 크레딧으로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길래..낼름 그러자고 했다. 무슨 전시 하는지도 모르고. 요즘 너무 갤러리를 안 다녀서..뭐라도 보고 싶었다. 전시를 안 보다 보니까 갤러리 현대에서 하는 토마스 스투르스 전시도 챙겨본다 본다..하면서 아직도 못 보았다. 

 리움 미술관은 몇년전 앤디 워홀 전 이후로 처음이다. 그 땐..참.비호감 이었는데. 티켓을 수령하니..기획전 말고..상설전 모두 볼 수 있는 데이 패스 티켓이었다. 급 호감으로..싸늘해 보이는 까마귀 언니 들도 나름 괜찮아 보였다.ㅋ
 기획전 전시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권오상의 작품을 실물로 처음 본것이. 인상이 남는다. 소피 칼. 도 잘은 모르곘지만. 언젠가 폴 오스터와 함께 한 어떤 작업.(책으로) 보아서..친근한 기분이었다.
기획전은 나름 소박한 전시였다. 한 층에만 전시되어..금방 휙 보고 끝이다..

 그러나..리움 미술관의 진가는..상설전시에 있었다.  뮤지엄1 관에는.. 옛 도자기와..김홍도의 그림등이 전시 되었는데.. 도자기는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고. 김홍도의 그림은..책에서만 보다 실제로 보니..뭔가 오래된 것에서 오는 아우라 가 있었다.  오주석 씨의 옛 그림 특강 같은 책에서만 보다.. 실제로 보니..차근차근 뜻어보는 맛이 있었다. 

 옛 그림을 보다가 언뜻 자각한 바가 있는데. 동양의 그림은. 18세기. 그러니까..서구의 문물. 문화가 들어오기 전까지.. 단일(평면)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서구는 오래 전부터. 3점투시, 원근법이 발달해 2차원 평면에 3차원 입체를 구현하는 기술을 발견해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과학적으로 이용한 반면..동양은..서구 문물이 들어오기 전까지..시점(원근감)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저 멀리 있는 산이나..코 앞의 오두막이나..그냥 한 화면위에 옹기 종기 펼쳐져 있다. 동서양의 내재적 사상관 과도 관련이 있을 듯 하다. 개별적인 것의 가치 추구와. 한 데 아우루는 전체적 통일장을 추구하는. 차이가 엄연히 보인다. 불행히도..이러한 동양적 시각은..서구의 산업문명에..가차없이..시선의 가치관이 소실했다. 이러한 차이는. 우위를 둘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점의 차이가 재미있고. 또 나름 연구할 가치도 있어 보인다.

 뮤지엄2 관은..국내. 국외. 현대 미술 작품들인데.. 나는 여기서 리움 미술관의 진가를 알았다. 우리 홍라희 여사께서..어마어마한 돈으로 구입한. 미술품들은.. 정말..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대표작들을 엄선해서..보여준다. 작가들 마다 한 두 작품이지만..그 작품들이..작가를 대표하는..성질로써..그 한 작품으로도 작가의 세계를 한 눈에 아우를 수 있는 것이었다. 

 미술책에서만 보던.. 폰타나..리히터. 마크 로스코.드쿠닝 제니 홀저.등등.. 오리지날..작품 앞에 서니..감회가 새로왔다. 특히 요즘 내가 좋아하는. 이우환의..작품은..꽤 정겨웠다. 큰 붓으로 점 하나 찍은..유명한 작품은. 붓질한 물감의 질감이 보였다. 맨날..책에 인쇄된 것 만 보다가..진품을 보니..느낌이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뮤지엄 2의 국내 현대 미술관은..동양적 가치관.시점의 상실로 ..무턱대고 서양 미술 따라한 감이 다분하지만.. 한 층 아래..국외의 현대 미술 작품들은..뭔가 본질이 달라 보였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난해한, 대중과 유리된.) 현대미술을 씹을때. 내가 항상. 예시로 든..윌렘 드쿠닝의 추상 미술은. 책에서 본 그냥 막 떡칠한 낙서와는..느낌이 전혀 달랐다. 그 붓이 지나간 선과..유화 물감의..오묘한 섞임이..어떤 느낌을 자아냈다. 아마 이래서 미술관을 와야 하는가 보다.
물론..여기에 걸린 어떤 작가의 정말 막 떡칠한 물감 그림도 있긴 하다..그것도 완전 대형으로..

 이 현대 미술의 백미는 아니..이 리움 미술관의 백미는.. 너무나도 유명한..미술작가와 사진 작가인..데미안 허스트와...구르스키의 작품이었다...둘 다..대형 작품으로..서로 양 편 벽을 마주보고 있다. 좀 압도적이다.. 멋지다.. 역시 작품이란 것은 Wow 와~우.. 하게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 애게게 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집에다 걸고 싶은 작품은...리히터의..촛불 그림 이었다..다른 것에 비해 사이즈 가 집안 거실에 걸기 딱이다.. 나중에 비슷하게 그리던가 찍어서..내 집에 걸어야 겠다..누가오면..리히터 꺼라고..뻥치면서...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유명 명화 묘사를 했었는데..내가 너무 잘해서.. 내 모사 작품이..한동안..학교 로비 에 떡하니 걸려있었다. 매일 아침 등교하면서..자긍심이 있었는데..모네 그림 이어서..멀리서 보면..정말 똑같았다..가까이서 봐도..똑같았고..ㅋ

 나름 눈요기를 잘했다. 몇 번..경고 센서가 울려서 짜증나긴 했지만..대체적으로..아주 만족한 관람이었다. 나중에 미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과 와서..도슨트 해줘야겠다..열라 아는체 하면서..ㅋ 현대미술은 도슨트가 어불성설 이지만..코미디 차원에서.. 또 주차한 차가 나갈때..전혀 주차비 같은거 받는 분위기가 아니어서..아주 쿨하고 유유자작하게 나왔다. 서울에 살면서 흔치않은 느낌이다..

 리움에서 좀 더 주택가 쪽으로 걸어내려와.. 바다 식당에서 존슨탕.(부대찌게) 과 칠면조 쏘세지를 먹었다.. 두번째 방문인데..여전히 기가막힌 맛이다.. 예술 감상에 정신 없었던 눈과..마음은. 이제 실존의 에너지원 앞에서..잠시..넋놓고 있었다. 맛의 백지상태에서..즐기는..이 오묘한 맛의 세계..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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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랬만에. 책을 다량으로 구입했다. 한 두권 구입할 때 랑은, 또 다른 기분이다. 감질맛 나는, 조반 보다는. 풍성한 정찬, 코스요리 같다. 평소에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내가 소유하는 책의 구입은 매우 신중해진다.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여야 하고. 부득이하게 도서관에 없는 책인데..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아니면..어떤..본능적 직감에 의해.. 주문하기 버튼은 눌러진다. 이 과정속에. 집중력은 한없이 높아지고. 기쁨도 비례한다. 우울할 때. 이런 책의 쇼핑은 매우 유익하다. 예전엔. 더욱 우울한 음악에 위로받았는데. 이제는. 삶의 비밀을 간직한 책에서..위로받는다. 책은 삶의 한숨이 사라지지 않고. 죽은 나무의 얇은 표면에 덧입혀진.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진리의 위로이다.


 지금. 도서관에 빌려온 책들이 이리저리 너저분하게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와중에 위 사진속 맨 오를쪽 책을 읽고 있다. 말끔한 새책. 그것도 비닐랲으로 포장되어 있어. 개봉하는 순간. 오롯히 나의 기름기 낀 지문을 받아들이는 이 책은. 청초한 처녀와도 같다. 우연히 알게된 노 미술가의 수필. 나는 천천히 음미하며. 내 짧은 인생을 곱씹었다. 아마도 그만큼 남겨진 인생을 웃으면서 바라볼 수 있게. 이러한 책을 읽고 현재를 깨어나는 것이다. 짧은 수필의 어떤 장에선. 아프다. 섬세함도 배려심도 없었던 내게 한껏 욕짓거리가 목구멍 까지 치밀어 오른다. 또 한편으로는 환상의 떠남에 기뻐한다. 참. 이 책. 미술가 이우환 님의 글의 만남은..우연의 대단한 효과이다.


 위 사진은 비교적 최근에 다시 나온. 비틀즈 리마스터링 전집 셋트이다. 모노판과..스테레오 판 두가지로 나왔는데. 위 사진은 모노판 박스셋. 미니 LP CD로 제작되어서..당시 LP 판의 빈티지한 향수가 드러난다. 아..이것은 구입한것이 아니라.. 구입하면 참 기쁘겠단 생각이 절실히 드는 상품이다. 매우 비싸다. 거의 30만원대였던가..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는 당연히 가격과. 초기 앨범 3장을 빼고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 박스셋트는 이전과 다른. 음질과..질감이 향상됐고. 그 당시의 기술적 한계인 모노 에서 심혈을 귀울인 정성과. 오리지널에 가까운 아트웍. 그리고 비틀즈 팬으로써의 무작정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본질은 음악이다. 무형의 에너지.. 음질이 조금 좋아졌다해도..비틀즈 음악의 본질은..감성 아니던가.. 그래도..그래도..저 사진 보면..설레인다..그래서 오늘도 먼지에 쌓인 비틀즈 CD를 털어내고,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삶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위로 받는다.  친구의 미쉘도 떠나갔다. 우주를 가로질러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내 버려둬..


 오아시스의 지존 노엘 갤러거. 비틀즈의 특히 존 레논의 광팬으로써, 그는 창고 노동자에서 세계적인 록 스타로 발돋음했지. 그(들)의 유명한 히트곡, Don't look back in anger 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지.
 " 부탁이니까, 네 삶을 로큰롤 밴드의 손에 거머쥐게끔 하지 말라구. 뭐든 멀리 내던져 버리는 녀석들이니까.."
 저 유니언 잭이 그려진 에피폰 기타는 맨체스터 출신인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을 느끼게 하지. 나는 기타를 구입할때, 가장 설레여..여자를 만날때 보다 더 떨리는 기분이야..저 기타가 내는 소리, 음색을 상상할때..그리고 내 몸과 결합되어.,울릴때. 행복해져. 마치 추운 겨울날. 그녀의 집 앞에서 부르르 떨며 첫 포옹을 했을때의 느낌이야..상실감이 찾아올때마다..기타를 한대씩 샀으면 좋겠어..그럴려면 돈이 많아야 겠지..빌어먹을 로큰롤 스타나 동경하지 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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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전 아침 인터넷 실시간 검색 순위에 이 키워드가 떳길래. 한 몇 주 전 영국에서의 (거의 같은) 뉴스인가 보다 했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고, 저녁에 친구들과 밥먹다가..그제서야 그 얘기가 우리나라 사건인걸 알았다. 그 순간. 왠지. 모든게 가상처럼 느껴졌다. 미디어가 전하는 모든 소식이. 그냥 소설일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경험(실재)하지 않는한. 어떻게 모든걸 믿을 수 있나. 내 경험조차도. 의심스러운 마당에..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스러운 소식에 우리가 너무 스펙타클하게 느끼는건지 모르겠다. 분명 그 소식은. 현재의 문명사회의 잣대로 봤을때. 개탄스러운 일 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내 안 솔직한 욕망의 표현은. '좋았겠다' 가 흘러나왔다. 15살 중3의 그 혈기왕성한 성적 호기심이 떠올랐다. 몸의 사건이 만들어낸 그 변화는 이성보다는 동물적 본능이 더 우세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몸의 생리적 현상은. 불행하게도. 사회와 가정의 억압 시스템에 의해 금기 되었다. 자연스러운 몸의 소통은 금지 되었고. 관음증적 절름발이 비정상적인 소통만이 횡횡했다. 그 금지에의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가. 욕망의 주체는 결여와 금지에 있다. 누구나 각각의 성적환타지가 있을 것이다. 해서는 안되는 것을 했을때. 오는 희열.. 아마도 이 소식에 대한 크나큰 관심은. 충격과 개탄 이면에 환타지가 이루어진 부러움. 혹은 일탈에 대한 동경 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 나이 싱싱한 풋풋함을 주체못해 좌충우돌. 몸속 욕망 덩어리들은 상처를 입힌다. 춘향,과 이몽령처럼 자연스레 사랑해야 하거늘. 현대를 넘어 이 사이버세상에선..도덕과.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실제의 사라짐을 통해서 자연의 생리적 섭리는 무너졌다. 30대 중반 유부녀 선생의 경우는 어떠한가. 한창 성적 쾌락에 눈 뜰 나이일때. 남편과의 섹스는 (생존의 고단함, 혹은 권태)  소원해졌을 것이고. 식욕과도 같은 그 욕구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니..그 싱싱한 15살 소년과의 유희..음..순전히 성적욕망의 해소 차원에선 10대 남자와 30대 여성은. 꽤 좋은 궁합일 것이다..그러나.. 참 불편한 진실이다.  / (여기 까지는 나의 중3때의 욕망에 비춰봤을때, 딱히 어떤 선생을 흠모하고 연정을 품고 그런것이 아니라. 보편적 욕구의 억압에 의한, 관음증의 과도. 자연스런 이성관계의 단절. 등의 회의적 향수를 품고 쓴 넑두리다. 아마 내가 다시 중3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공상 어린..)

 그 외의 진실이 우리를 슬프고 당혹스럽게 한다. 우리는 사회인이고 .사회 라는 것은 상식과 규범이 통하는 인간사회라는 것일 텐데. 또 문화라는 것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공통의 의식이나 생활 형태일텐데. 이 둘의 육체적 연정은( 분명.나이와 신분을 떠나 그 둘이 정말 사랑해서 그랬어요.라고 하면 지나가던 개도 웃겠지.)  현재의 판단으로 봤을때. 참 아방가르드 하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인과 인 것 같다. 사회에 만연한 니힐리즘. 퇴폐주의 욕망이 만들어낸..과도한 성욕에의 집착이 불러온..불편한 뉴스였다. 분명. 우리 사회는 정상, 상식적 가치기준의 반대편으로 흘러가고 있다. 결국 사회의 구조적, 기능적 문제에서 오는, 징후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건이 불고온. 인터넷의 세계는 또다른 고통과 파멸을 낳게하고... 암튼 이 사건의 도덕적 판단,충격 보다는. 중3때. 미국 펜트하우스 잡지를 보며 흥분했던 과거의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20대 초중반에 지하철역에서 30대 중반 어느 주부의 다이어리를 습득해, 찾으러 올 때까지, 호기심으로 몰래 내용을 본적이 있는데. 그 때 꽤 충격이었었다. 앞장에 애들과 행복한 가족사진이 있었는데..내용은..불륜의 조짐이 스멀스멀 보이더니..뭐 그렇고 그런..이야기.. 그 당시 영화. '해피엔드'나 '세기말'을 보면서..밀레니엄을 앞두고 IMF와 어떤 데카당스한 분위기에 휩쌓였는데..눈앞의 보통 사람의 현실이 그러한거를 보니..참 씁쓸한 감정이었다. 허무의 시간들 이었다. 

 원래 30대 여교사 사건을 듣고. 이런 글을 쓰려고 한게 아니라. 중3때. 영어 선생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여자 선생님 이었는데. 어느날.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안 들어오시고 자습시간으로 몇 번 되더니, 몇일 후 다른 나이든 선생님이..그 영어 선생님이 돌아가셔서..장례식을 갔다왔다는. 짤막한 얘기만 해 주던 기억이 난다. 기차에 치였다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그 영어 선생님이 자살하셨구나 라고 바로 짐작했었다. 하얀 얼굴에. 헤비메탈 뽀글이 파마 머리의 그 선생님은. 그 당시 인기 끌었던. 헤비메탈 밴드 스키드로우 의 광팬이셨다. 아주 이쁘지는 않았지만. 묘한 분위기가 있었고. 몸과 마음이 자주 아픈듯해 보였다. 그 땐 몰랐지만..지금 생각해보면..몸의 허약함과 실연의 상처 같은게 보였던 것도 같고..암튼 멀쩡했던 젊은 사람이..기차에 치였다니..좀 믿기 힘든..소식이었다. 나는 아주 많이 슬프진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생님이..카셋트 플레이어로..스키드로우. 힛트 발라드곡. I Remember you 를 들려주던 기억과. 수업이 끝나고 자주, 나를 지목하며, 교무실로 들고오라는 명령을 내리던 일. 그리고 언젠간. 졸졸 따라가 교무실에 카셋트 플레이어를 놓자. "넌 조용한거 같아 보이는데 의외로 시끄럽구나" 라고 훈계아닌 훈계를 하던 기억이 난다. 자살이던 사고이던. 뒤늦게 그 선생님에..대한 생생한 기억에 이제서야..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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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 추석 마지막 연휴날. 우리 가족들이 모였다. 두 누나들 가족이 모이면. 이제 나름 꽤 대가족이 된다. 애들만 총 셋이니..시끌벅적하다. 이날은 오랬만에 고모와 고모아들이 참석해 푸짐한 점심 만찬을 즐겼다. 이날의 몇몇 단상들이 아직도 떠오르는데. 기억은 이제 글로써 놓아달라고 요구한다. 

 놀랬던것은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조카 지윤이의 학습지를 보고 정신이 움찔했었다. 1학년의 학습수준이 꽤 높아서 였는데, 한창 놀아야 할 애들이..뭐 이런걸 풀고 있나 라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어른이 봐도 분명 머리를 써야 하는 문제들이었다. 국어와 수학 문제집을 보았다. 수능때, 국어는 그나마 나름 자신있었던 종목이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문제지의 띄어쓰기에 관한 문제에서..나도 횃갈렸다. 초딩 조카 앞에서 삼촌이 참 위신없게..이건가 저건가..하며..뭐 문제가 이러냐며..투덜거렸다. 수학은 또 어떤가.. 정말 산수 수준이 아니라..수학을 하더라..오매 골치아퍼..한창 뛰어놀 시절에..이렇게 머리(정신)을 혹사시키면..나중에 정작 공부할때..기력이 소진되지 않을까.. 

 또 내가 느낀건 학습지의 편집 수준이 참 안 좋았다. 집중도에 문제가 있을 만큼.. 좀 난잡한 편집 이었는데.. 거대한 학습지 출판 시장의..전형적인..속전속결 팔아먹기 느낌이 다분했다. 

 보통의 부모. (우리 누나들을 포함해서.) 에서의 보통의? 아이들. 은 그렇게 공부.뇌의 노동을 소비하며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다. 사실.. 조카 지윤이는 내 조카 라는 주관을 버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아도..보통의 아이들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적 감수성과, 자기에의 뛰어난 성취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경쟁 능력이나 의식이 아닌, 자기 목표에의 도전과 성취의 쾌감을 이미 알며..두려움을 넘어서 도전하려는 정신이 탁월하다. 그동안 집앞 초등학교 놀이터에서 지윤이와 달리기 시함을 하고..놀이기구와 술래잡기 등을 하며 깨우친 바이다. 목적와 동기의식만 심어주면..자기가 알아서 성취하려는 노력과 집중도가 지윤이의 큰 덕목이다. 그러나 경쟁에만 내몰리는 보통의 부모와 아이들의 현실에서..어떻게 본연의 덕목을 지켜낼지 내심. 걱정된다.

 또 집안을 시끌벅적 산만하게 만드는, 하지만. 가정의 축복인. 네살 짜리 아들놈 조카 둘이 아직 완전하지 않은 말로..지들끼리..웃기는 대화를 한다. 거의 몸으로 뛰어다니는 동질의 교류인데. 간혹..~~그랬니?. 그랬구나.~ 라는 말을 쓸땐..참 보석과도 같다..말의 순수함은..네살짜리 어린애 에게서 나온다. 그 말들은..보석을 쏟아내는 것과도 같다. 
 우당탕탕 집안의 계단을 뛰어다니는 고것들이.. 조용해서..3층의 베란다를 내다 보았더니..그 두 놈이 나란히 서서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화분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하얀 속살과..조그맣고 뽀얀 고추가. 맑은 햇빛에..그 순간 내 눈에서 그 장면은 정지 되었다. 사진적 시간이었다. 좋은 기억. 삶의 아름다움을 놓쳤다. 사진은 이런 휘발되는 기억. 장면을 붙잡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요즘 난 사진을 잘 안 찍는다.. 조카들한테 미안하다..내가 해줄수 있는 선물을 방기하고 있다.

 윤정미 작가가 작업한 사진. 핑크와 블루..어린이들의 색갈에 대한 취향..을 구성한 작업.은 내 조카들에게도 여실히 적용된다. 신기하게도..여아들은 핑크색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남아들은 블루 에 집착을 보인다. 블루에 집착을 안 보여도..남아들은 자동차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아마 나도 그랬을듯 싶다. 지금의 나는 모든 색상을 좋아하지만..구지 꼽으라면..녹색과..갈색을 좋아한다..내가 핑크색을 좋아할리는 평생에 없으나. 채도가 빠진 살색에 가까운 핑크는 좋아한다. 색의 표현은 자신의 표현이고 내면의 모습이다. 한때 보라색에 유달리 집착이 강했던 분을 좋아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보라색의 광기에 내가 빠져들지 않았나 싶다. 어쩃든 난 연한 핑크색의 입술이 좋다..

 고모의 아들과는 어릴때부터..나이 차가 별로 없는 또래 여서..친근하게 놀았었다. 2명의 아들이 있는데. 나보다. 2살 4살 어린 동생이다. 우리가 어릴떄. 고모는 이혼을 해서. 광명시 철산동의 주공아파트에 두아들과 살아왔는데. 어릴때 엄마는..누나와 나를 데리고. 예전엔 118번 버스를 타고. 자주 철산동에 가서..놀았다.
 네살 어린 동생만이 우리집에 왔는데, 현재는 중국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중국 유학중에 만난. 태국 여자와 사귀고 있는데. 아마도 결혼할 듯 싶다. 우리 아버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여자.(조선족을 의미)와..흑인..전라노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ㅋㅋ

 아버지 형제 중(9남매) 에 아들로썬 우리 아버지. 딸로썬..그 고모가 인물이 가장 좋은데.. 예전에 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에서 고모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보게 되었다. 흑백의 참 잘 찍은 인물사진들 이었다. 지금의 디지털 칼라 사진 졸업 앨범 사진에 비해서.. 증명 사진의 깊은 맛이 있었다. 나는. 고모의 미모에 많이 감탄했다. 원래 미인이라고 생각했지만..그 졸업 앨범속 사진은.. 영화배우 탤런트 같았고. 그들보다 더 뛰어난 아우라가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황신혜의 졸업 앨범 사진을 보고..참..아름답다고 느꼇던 기분 이상의 미모였다. 미인은 팔자가 세다더니..두아들을 낳고. 고모부 였던 사람은 바람이 나서..결국 이혼했다. 여자 혼자. 두아들을 키우며 사는 삶은 세월이 무상하게 고모를 늙게 만들었지만.. 그 깊은 미모를 여전히 간직하고 계신다. 고모의 아가씨와도 같지만. 주름진 얼굴을 보면..졸업 앨범속..그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그 생소한 이름과 함께..

 고모에 대한 일화중에 또 하나는. 어릴쩍. 우리 동네 작은 사진관의 쇼윈도에 전시되 있던. 고모의 흑백 증명사진 이었다. 내가 태어나기전..고모가 결혼하기전..우리집에서 살았던 모양인데.. 그 때 근처 사진관에서 찍었던 모양이다. 내가 태어나고..한 참이 지나 기억할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인데도..그 사진은 여전히 그렇게 쇼윈도에 남아 있었던 것이고. 어린 내가 봐도.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그 앞을 지나다..부모님은 " 이 사진 아직도 있네." 엄마 왈." 여기 사진사가 아가씨(고모)를 좋아했나 보다.." 라고 말했던게 기억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이었다. 그 영화를 처음 볼때도..이 기억이 떠올랐는데.. 다시 생각해도 한편의 영화가 유추된다.. 내막이야 모르지만.. 그 사진은..어느 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사진사의 마음과. 청초한 젊은 여인의 풋풋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아마도 삶은 그렇게 엇갈리는 것일지도..사랑을 쟁취하기 보단 영원한 기억을 담아 간직하겠다는 심정으로 사진사는 그 사진을 찍었던듯 싶다. 그 기억이 내게 푼크툼이 되어..아름다운 여인을 욕망한다..그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추억이 아닌. 생생한 삶을 원한다.

 고모의 삶이 퍽퍽했을지 몰라도..사랑을 간직하고 살았던 사람의 아름다움은 가리지 못한다. 나는 진심으로 누굴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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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오면서 동네 도서관에 들렸다. 학교 도서관에는 없는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의 영도' 가 있나 확인해 볼 참 이었다. 조그만 동네 도서관에는 있었다..배가도서로 책꼿이에 떡 하니 있었다. 학교 도서관 검색에 이 책이 없어서..나름 충격이었는데.. 동네 도서관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한번 대학교 도서관에 대한..실망이 한가득이었다. 서울의 종합사립대학의 도서관에 이 책이 없다니.. 롤랑 바르트 라는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를 잇는 대 학자의 첫 저작 이자.. 후기 구조주의 그러니까 포스트 모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써의 책인데도 불구하고..없었다. 예술로 유명한 대학임에도 불구하고..없었다.
 나는 왜 학교 도서관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어느 한 여름날. 앉아보게 되었는데.. 온돌방 처럼 뜨거워서..앉아 있는 내내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있다.. 암튼 여러모로 욕 나온다.

 잠깐 책만 빌리고 나올려다..신간 코너에서..새책 몇권을 뽑아 읽었다. 저녁이어서 잠깐 속독하고 나올래다가..빠르게 다 읽고 나왔다. 속독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다..지금. 그 책에 대해 생각나는게 하나도 없다.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둔. 내 자전거가 없어졌다.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왜냐면..워낙 낡은 자전거 여서.. 언제부턴가.. 자물쇠로 채워두는 것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계속 내 옆에 붙어 있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달려준 자전거는 외관상 노후화 된거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타이어 트레드는 많이 닳아 없어졌고. 오래되어 자주 바람이 빠졌다. 뭐니뭐니 해도. 몇 번 손 봤음에도, 브레이크가 자주 느슨해져서..제깍 잘 서지 못했다.

 내 다리의 연장인 이 자전거에 대해..서서히 마음이 멀어져갔다. 언제부턴가 이 자전거는 왜이리 고장도 안나지.. 하며. 애써 처음 샀었을때의 마음을 걷어 들였다. 그러나 멀쩡하게 굴러다니는 자전거를 놔두고..새 자전거를 살 수 는 없는 노릇이다..사물에 대한 이런 마음 상태가, 결과적으로 도난.(떠남)을 초래했다. 사물의 타자성은 마음을 쏟는 만큼 내게 도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사물 뿐만 이랴. 사람과 사람은 물론이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나는 자유로웠으나, 그 자유는 외로움의 자유였다. 앞으론 그 자유는 타자에게로 향하리라..

막상 없어지니까. 그동안 묵묵히 내 두 다리의 연장이자. 바람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준 나의 자전거에 대한 감상이..시원 보다는 섭섭에 가까웠다. 집까지 걸어오면서..많은 상념에 빠졌다. 처음 산 날의 기쁨부터. 첫 장거리 라이딩의 추위와 바람과의 싸움..사고날뻔한 아찔함. 눈과 빗속의 라이딩..음주 라이딩. 18만원에 산 베네통 생활 자전거는 자기 몸값의 값어치를 그 이상으로 충분히 남기고 그렇게 추억을 남기며 사라졌다. 
 조만간 새 자전거를 살지도 모르겠다..또 다시 설레이겠지.. 누군가를 만나는 것 만큼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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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초쯤에 우연한 여행을 갔다왔다. 친구들이라 부르긴 성급하고. 동료와. 동료 후배들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동료 후배는 처음 보는 분들인데..남.녀 각1명씩.
 요즘들어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꽤 즐기는것 같다. 남자와는 자전거와 일본 여행 이야기를 많이 했고.(들었고,) 여자와는 영화이야기,그녀의 남친이야기를(철학을 전공하고 진보신당당적을 가진) 많이 했다.
 새벽에 만나. 내 차로. 포천쪽의 산정호수로 출발했다. 운전하기 딱 좋은 흐리고 대기가 청명한 날씨였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오는 설레임이..아침내내 계속됐다.

 산정호수는 초등학교때..여행으로 왔던 기억이 분명 있지만..그 이미지는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어릴때라..비교적 먼 거리여서 차멀미로 고생해서..기억을 잊었을 것이다. 산정호수 옆 명성산은 작년 가을에 한 번 왔었다. 정상 부근에 드넓은 억새밭으로 유명한데..유명세 만큼 멋지고 사람이 많았었다..

 우리가 하루 묵을 펜션은 그림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보라색 파마 머리의 60정도 되 보이시는 분인데..보헤미안 예술가 분위기가 물씬 풍기셨다. 인상이 범상치 않으신..보살의 미소를 품고 계셨다. 해가 늬웃한 저녁에 강아지를 데리고 풀밭을 선책하는 모습은, 꽤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좋은 인생을 사신 분이 틀림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서 이 펜션을 검색하다가..다른 블로그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과거를 엿듯게 되었는데.. 미혼이고..일본에서 큰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엎어져서. 한국으로 돌아와. 도를 닦는 수행을 하셨나..암튼 그렇다고 했다. 저녁에 몇번 집게류를 빌리려..내려갔을때 마다. 온화한 미소와 친절함에 마음이 어리둥절 전염되었었다.


 펜션 뒤에는 넓적한 풀밭의 중간 크기 축구장과..족구장 이 있었고.. 그 뒤는 안개에 휩싸인 명성산이 병풍처럼 펼쳐져있었다. 무엇보다..공기가..상상을 초월한다. 

 다음날 아침에 찍은 펜션뒤 명성산의 모습..저 풍경..여전히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 싶어라....


 짐을 풀자 마자. 바로 명성산으로 향했다. 다들 등산엔 관심 없으니..나만 가벼운 걸음으로..산으로 산으로 줄행랑을 쳤다. 등산로 입구에. 군인들이 여럿이 모여있었는데. 가까이 가니. 코흘리개 이등병이..군대 포 사격 훈련으로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인상을 썻었나.?  곧 소대장으로 보이는 중딩스러운 청년이 좀 더 느끼하게 말했다. 또렷히 쳐다보는 내 눈빛에서 등산에의 욕구를 읽었는지..내가 별 말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입산 통제에서..가능으로 바뀌었다. 다만 어디 폭포 까지만 갔다 오시라는.. 후훗 미소를 날리며,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서..간헐적으로 대포 소리가 났다.


 계곡을 걸을때만 해도..비가 오다 말다..흐린 날씨였는데.. 계곡을 벗어나 탁 트인 평원에 나서자..비 구름은 자취를 감추고..쨍쨍한 햇살이 내비췄다. 이미 어디 폭포까지만 가라는 말은 잊은지 오래였다.


 산속엔.. 나 혼자 뿐이었다..오늘 나만을 위한 명성산 이었다. 명성산의 이름은..우리말로는 울음산 이고..영어로는. Cry Sound Mountain. 국사를 잘 모르지만..왕건과 궁예와 관련된 산이라고 한다. 이름 자체에도 드러나듯이 뭔가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산이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처음 만주벌판에 당도해. 사나이로써 한껏 울어볼만 하구나. 라며. 통곡했듯이..나도 그런 기분에 젖어 보고 싶었지만..울지는 않고 오히려 음탕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이 산속을 에덴동산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은데..이렇게 혼자라니..
 어렸을적 영화 '블루 라군'을 보고, 사랑하는 여인과 단둘이 무인도에서 생활하는 환타지를 자주 상상했었다. 아마 영화를 보기 이전에도 그랬던듯 싶다. 아담과 이브의 원초적 자유. 욕망이 우리안에 조금씩은 남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상상은, 누구나 하지 않나. 가장 완벽한 유토피아.


 궁예 약수터 였나..이 나무 범상치 않다..


구름이 만들어 가는 대지의 빛과 그늘..


 사진속 왼쪽편에 보이는 정자에서 오래 쉬면서. 희망을 품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에 생의 발랄함이 충전되었다.  따스한 햇살에 풍요로운 마음은 외로움을 몰랐다.


 내려오는길,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모래의 질감과. 나무사이로 떨어지는 부서질듯한 햇살. 몸을 휘감는..부드러운 물길. 순간 완벽한 자유가 내게 도래했다. 내 몸엔 아무것도 걸쳐있지 않았고. 정신 또한..아무런 걸림이 없었다. 모든게 완벽했고. 자연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산속의 요정들과 함께..기쁨의 춤을 추었다.


 산에서 내려와..산정호수를 좀 걸었는데. 계곡과 폭포의 모습을 보다가 갇혀있는 호수는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숙소에서..TV영화를 보다가, 저녁에..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맑은 공기는 모기 조차도 없애 버렸나 보다. 술을 자제할려고..와인만 마셨는데..결국..가져온 모든 술을 다 마시게 되었다.. 산의 정기를 받아서 인지..술이 안 취했다..이야기를 계속하다..다들..술에 먼저 떨어져 나갔다. 베란다에 나가...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정말 까만 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이..거리와 공간감이 없이..수놓아 있었다..제일 큰 별을 손으로 잡아보는 시늉으로..마음속에 담았다..별은 그리움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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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새벽에 눈을 뜨긴 하는데, 바로 일어나진 않는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고 멀뚱멀뚱 창밖의 암흑을 잠시 응시하다. 다시 눈을 감는다. 오래지 않아. 창 밖의 베란다 공간에서 키우는 닭이 꼬끼오~ 하고 연실 울어댄다. 어버지가 시골에서 병아리 세마리를 가져왔었는데. 금방 커버려. 그 중 수닭 한마리가..어설프게 울기 시작해.. 이제는..제법 소리가 우렁차다.. 근데..어디 멀리서 들려오는 닭소리는 듣기 좋을 텐데.. 도시 주택가 에서 울어대니..그것도 내 창 바로 밖에서..요즘은 곤욕이다.. 아마 옆집 주민들의 항의가 조만간 들어오지 않을까..그럼..바로..끊는물에 백숙이 되버릴 운명인데..

 시골에서 듣는 다면. 제법 어울릴 소리겠지만.. 도시에서의 닭 울음소리는..뭔가 위태롭고..공허한 메아리 처럼 울린다. 또 집앞에 큰 가로수 나무가 하나 있어서.. 거기가. (새들의 모임 장소 인듯..) 보통 새..참새? 들의 울음소리도 간혹 시끌벅적한데.. 뭐 보통 평화스러운 도시 아침의 소리겠구나 상상하겠지만..정 반대다..도시의 새들은. 뭔가 다 우악스럽다. 평화롭고 다정다감한 소리가 아니라..지들끼리 막 싸우는듯한..새들의 지저귐은 징그러울 정도다..그리고 나무밑 내 차에 새똥을 싸대니까..아무리 좋은 소리로 쨱쨱 되도..성능좋은 BB탄 총이 있으면..베란다에 나가..쏴대고 싶다..

 그리고 비둘기 들..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여전히 안양천에 자전거 타다보면. 무대뽀 비둘기들이 여전하다. 내가 어릴때만 해도..평화의 상징이라고..반공 포스터에 많이 그려지고..그렸는데..그 명예롭던 상징적 표상은 이제 닭둘기, 혹은 날아다니는 들쥐 라는 저주의 대상의 되버렸다. 현재의 비둘기 수난은. 인간이 자초한 것도 있지만. 비둘기 자체도..인간과의 공존의 도를 넘어선 감이 있다.
 88서울 올림픽 개막식때, 성화대에 불이 점화될때..화형당한 수난의 역사가 있어서 그런가..어린 나이 였지만 그 때 그 영상을 보면서..참..인간이 하는 짓거리가 병신 같다고 생각했었다. 

 나이 어리신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평화의 상징, 염원으로..비둘기를 떼거지로 날려보내고..올림픽경기장 지붕을 넘어가지 못한 비둘기들이 성화대에 앉았는데...곧이어. 성화대  점화 행사가 벌어졌는데. 수많은 비둘기들은 그 위에 앉아있었다. 비둘기를 날려버릴 뭐 겨를이나 생각도 없이.. 그냥 확 불을 붙였는데.. 암튼 어린눈에 인간들이나..비둘기들이나..다..쯧쯧쯧...구구구...

위에 글 쓴지가 일주일 된 듯한데..
 드디어..민원이 들어왔다...오늘 내일..백숙과 닭죽을 먹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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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시간의 사랑에 관한 철학적 성찰을 뒤로하고 광명의 여인들이 활개하는 거리로 나섭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서 과거속으로 헤메이게 됩니다.
저마다 빛을 내뿜는 젊음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눈을 밝힘니다.
꼭꼭 숨겨둔 내면의 빛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습니다.
금요일밤 저마다의 불은 불붙은 마그네슘처럼 활활 타오릅니다. 

 낮에는 매미가, 밤에는 개구리의 절박한 구애 소리에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안양천 길의 수풀 속에서, 생명의 염원을 담은 종들의 처절한 사투가 펼쳐집니다.
저마다 다른 울음소리. 꺼억 꺼억. 선택받지 못한 수컷의 아픔은 내게도 전해집니다.
소리의 자살은 드문드문 눈에 띕니다.

 밤새 빗소리에 뒤척이다, 날이 하애졌을때, 잠들었습니다.
우루루쾅쾅, 번쩍이는 빗소리에, 내 의식의 칼날은 불면의 밤을 맞이했습니다.
후두둑 쏴악..쏴.. 태평양의 소금기를 머금은 빗물은 간혹 비 바람에 들이쳐 나의 다리에 노크합니다.
잠을 자기 위한 노력은 창 밖의 그리움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것에 지쳤을때, 내 선명한 의식은 스르륵 무너졌습니다.
다시 깨어났을때,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아낌없이 연소된 그리움은 다음 날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움의 유효기간은 영원합니다. 

 나중에 우연히 안 사실이지만, 그날 저는 애너르기 라는 에너지 음료를 3캔이나 마셨습니다..
자신의 삶과, 사랑을 상상계에 빠트리고 싶다면..그 음료를 꼭 복용하십시오..

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 아트 는 예술에서의 작가 정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숙고 하게 만든다. 분명 그는 고독하고 가난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비지니스 맨, 스타 CEO 로 바꾸었다.
 
 고흐나 세잔이 우리게게 남겨준 예술의 깊이와 진정성은 그에 의해 속되고 얄팍한 것의 추구로 표면성 만을  강조했다. 

 그것은 워홀이 활동하기 시작한 1960년대. 전후 미국 경제의 호황과 힐리우드 영화,텔레비젼의 보급등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본격적인 자본주의 소비문화. 대중사회의 발전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워홀은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해 일했다. '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고, 잘되는 사업은 최고의 예술이다.' 라고 말했으며 이는 그의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표방한 태도였다. 

 그랬던 그였기에 워홀이 현재의 한국에서 매우 잘 나가는 것도 일리가 있다. 부자들의 돈세탁 놀이로, 워홀로 대표하는 팝아트가 각광받는 이유도 그네들의 수준에 딱 맞기 때문이다.(물신숭배,속물근성,허위의식) 몇년전에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보았던 그의 전시는 스타 디~자이너 미술가의 꽤 불편한 성찬이었다. 고학력자 일꺼같은 사람들이 까마귀의 모습으로 판문점이나 되는듯 너무 많이 곳곳에서 감시하는 모습이란..음..
 어쨋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중들이 미술계의 스타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명성과 진정한 예술성에 혼란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술관이 포장한 작가(예술가)의식에 포섭되지 말아야 한다. 부자들의 우아한 돈놀이에 우리가 개미같은 들러리가 되지 말자. 이것이 미술관을 가기전 자신의 오감을 일깨우며 주의해야할 점이다. 
 
 두가 길었는데, 나는 앤디워홀로 대표하는 팝아트 란 것에 어느 정도는 반감을 가지고 이 키스 해링 전시를 보러 갔다. 그것도 팝아트 슈퍼스타 라는.. 아마도 사람들과 여럿이 볼 약속을 안 잡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작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상태였다. 단지 팝아트 라는 카테고리만 있을뿐, 나는 그 선입견 조차 버리고, 완벽한 무지 상태로 어린이의 마음으로 육감을 열고 전시를 보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굵은 선, 원초적 형태. 강렬한 색감. 일단 시각에 강렬한 인상을 선사한다. 원초적 동굴 벽화와 어린이의 순수함이 만나 그림은 기호가 되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얼마나 유쾌한 놀이 인가. 16세기 미술은 귀족들의 궁정 놀이의 그림이었다면. 역사를 거쳐 그림은 1980년대 뉴욕의 벽과 지하철의 낙서로 대중들에게 내려와 있었다. 대중을 향한 그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그림. 그것이 공해이고 범죄일지언정 삶의 표현이고 놀이 였다. 
 
 그는 거리의 화가 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다. 제도권 교육 SVA 를 중퇴하고 뉴욕의 지하철 광고판 교체시의 검은 화면에 그림을 그려 나갔다. 짧은 시간에 급박하게 분필로 그려나간 그림은 그의 고유한 형식이 되었다. 2년간 그는 그림의 형식과 내용에 고심을 했고, 어느 순간 자신이 그림으로써 세상에 기여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만의 상징체계로 세상과 소통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1980년 부터 죽기 전 까지 니까. 딱 10년간이다. 1991년 31살에 AIDS로 죽었으니까. 20대를 왕성한, 성공한 작가활동을 한 것이다. 20대를 멍하게 지냈던 내게는 충격이다. 그의 다큐멘터리 영상 마지막에 31살에 죽었다는 자막에 헐~ 하며 허무했다.
 이 전시장의 영상은 다른 어느 전시보다도. 작가의 삶을 잘 농축해서 보여준것 같다. 이 영상의 인터뷰나..정보 만으로도 그의 예술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작가의 순수한 내면이나 인간성 도 느껴졌는데. 앤디 워홀 전시의 영상과는 극과 극인 느낌이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그림이 더욱 쉽게 다가왔다.


그는 고독한 예술가가 아니라. 사회에 참여하고. 발언하는 공공 미술가. 어린이의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순박한 청년이었던듯 싶다. 그림은 그 사람을 닮는 다 던데, 그의 그림에서 생기발랄한 동심을 느낄 수 있다. 그 동심 이라고 다 밝고 깨끗한 것만은 아니다. 어둡고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그림도. 그의 천진무구한 그림 형식에 의해, 유쾌하게 전달된다.
 그는 그림의 상징체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이용할지 명확히 안 사람이다. 그는 선 의 사용을 확실히 이해한 사람 같다. 어떠한 사전 스케치나, 배치도 그에게는 무용지물 이었다. 주변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단순화해 그 순간 그의 손과 몸으로 그리는 행위는 그 자체가 禪 적이다. 그 명확한 선의 힘이 느껴진다.

 2시간의 육감을 활짝 열어 놓고 본 이 전시는 내게 매우 만족감을 주었다. 전시관의 준비나 환경도 아주 완벽했다. 무엇보다도. 전시 관람 이후. 예술에 관한 애매모호함 ( 고개의 갸우뚱 ) 허무감, 찝찝함  보다는 예술 (그림) 에 대한 용기과 열정. 재미와 순수함. 표현이라는 인간 근원에 대한 생각등. 긍정적인 생각들로 채워진 좋은 전시 였다.
 그는 미술계가 부여한 팝아트의 슈퍼스타 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공공미술, 그래피티의 스타로써 아마도 현재의 뱅크시에 어떤 귀감을 준 뛰어난 대중 예술가 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와 앤디 워홀은 친분이 있었나 본데. 키스 해링이 그린 앤디 마우스 그림들은 아무리 봐도 앤디 워홀을 냉소와 조롱으로 표현한듯 하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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