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에 오랬만에 헌혈 차량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나는 왜 여지껏 헌혈을 한번도 안했나..하는 의문에..봄날의 느즈막한 태양속에 비춰진 헌혈 차량의 모습은 과거의 기억을 들추어 냈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때 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내 또래 한 아이가 눈에서 피눈물을 쏟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런듯했다. 좀 더 큰 다른 아이가..접은 우산을 돌리고 가다..쇠 꼬챙이 같던 우산촉이 다른 아이의 눈을 찔른 것이다. 피와 눈물로 뒤범벅이 된 아이의 모습에 그 주변의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충격적인 이미지였다. 흐린 하늘과 회색의 공간들 속에 뺨을 타고 흘러 내리는 선붉은 피는 강렬했다. 그 아이의 고통이 한 층 배가되어 내게 전달 되었다.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이의 눈에서 흐르는 피는 길게 남았다. 이 기억은 뾰족한 것에 대한 첫번째 시각적 충격이었던듯 싶다.

 주사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있겠지만.( 내 초딩2년 여자 조카는 주사를 아무렇지 않게 잘 맞는다..ㅜ) 나는 아주 끔직히도..무섭고 싫어한다.. 포경수술이나..잇몸에 맞았던 주사는 정말..생각하기도 싫다. 나중에 포경수술에 대한..진실. 또는 말도안되는 유래를 읽었을땐. 얼마나 분노를 했는지..
 
 대학 1년때. 남자들이 한쪽에 귀걸이 하는게 유행이었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유니섹스 코드가 이상하게 들어온 대표적 사례라고 할까..정확히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대학생이 된 멋 좀 부리는 남자 아이들은 꽤 귀를 뚫었다. 나는 그런 대중의 유행에 괸심도 없었거니와..당시 얼터너티브 록 (그런지 룩) 의 영향에서..그런 귀걸이는 번외였다. 내가 좋아했던 뮤지션들이 죄다 귀걸이를 했다해도..나는 못 했을 것이다. 쇠가 내 살을 파고드는게 무섭고..고통스러울것 같아서.. 같은 이유로..문신도 하고 싶은 이미지와. 확실한 이유. 신념이 있긴 한데.. 피가 두렵다..

 헌혈에 대한 좀 더 심정적인 거부감은. 고등학교때 짝사랑 했던 아이 때문이었다. 같은 입시 미술학원을 다녔던 친구 였는데..뭐랄까..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올법한 여고생 이었다고 할까..얼굴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고. 단발의 청순한 이미지였다. 그 아이는 중학교 때 자살기도로 손목을 그었던 적이 있다고 했고..피가 나면 잘 안 멈추는 병?증상이 있다고 했었다. 4녀 1남의 넷째딸 이었는데, 뭔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애틋한 느낌의 아이였다. 

 요즈음 같은 날씨의 토요일 방과 후 미술학원에 가..뎃생을 하고 있었다. 얼마후에 그 아이가 들어왔는데.. 손에 피묻은 휴지를 꾹 눌러쥐고 들어왔다. 이유를 물으니. 신도림 역에서 헌혈 아줌마에게 끌려 헌혈을 하게 되었는데.(아마도 헌혈은 못하고..찌르기만 했었다고 했나? 아무튼) 화실까지 오는 내내 피가 안 멈춘다고 했다. 아..가슴이 많이 아팠다..분노가 치밀기도 하고..바보같기도 해서..그림이 안 그려졌다. 당시 내가 뭐 어쩠겠는가..흡혈귀 아줌마들에게 속으로 이를 갈수밖에..예민한 감수성의 시기였던 만큼 이 기억은..헌혈에 대한 증오심 까지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내가 헌혈을 안 한 거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사실은 단지 주사 바늘이 무서워서 그렇다고 말하기는 너무 단편적이다.. 알다시피 제도적..신뢰성? 염려..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그동안의 부정적 고정관념이 변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내게 바란다. 자신의 피를 기부..나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과연..내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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