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느낌이 그 증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 엄살도 심하고. 오버스러운면이 없지 않아, 뻥카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요 몇일 사이의 우울감 가지고..내가 우울증이라도 걸린게 아닐까 하는..설레발.. 

 전시가 끝나고 오는 약간의 허탈감과. 앞으로의 기대치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에 의한 고독감,  낙엽이 수북한 텅 빈 운동장에서의 달리기. 최근에 본 영화 두 편의..심상적 기억. 근원적 그리움..결핍과 억압기제..말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는 당혹감..멀게만 보이는 이상향. 그 모든게.. 가을비와 함께..낙엽이 되어 딍굴었다. 내일이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될 것을.. 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마냥. 궁시렁 대는지..진짜 그 증상이라면 이렇지도 않을 것이고..최소한 이러고 있는게..그냥 지나가는 생채기 정도 일 것이다. 

 내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면. 이런 생채기는 수시로 겪어야 할 테다. 감성의 촉수가 예리해 작은 것에도 영감과 자극을 받고 간혹 세상의 본질이 너무 힘겹게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응축해 나만의 창조물로 내보내는것.. 그리고 공허와 재충전.. 나는 필터같은 존재다..지식과 예술의 매개자 이길 바란다.
 
 이러한 상태에서.. 오늘 수업은 나한텐 매우 힘들었다. 단어들이 바로바로 입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자꾸..머리속 언저리에서 맴돌다...겨우..튀어 나오긴 하는데..로또 당첨번호 처럼..원하지 않은 번호들만..연달아 나오는 느낌이었다.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보니. 시간은 시작한지. 한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학생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나는 벽에 나혼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은 알아차렸을까..미친 가을 남자가 된 이 유약한 강사의 심리를..내 미천한 경험에 비추어..그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심어주려한..이 세치혀의 나약함을.. 한명한명. 사진작업의 진행에 대해 면담하며. 표현을 즐기는 기쁨에 대한 동기부여를 한 나의 행동은 결국 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나의 강의는 아직 완숙히 익지 않았다. 반숙이 되려는 과정인데, 어쩌면..그런 유동성이. 매너리즘이나 도식에 빠지지 않고..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지금은 완숙을 지향해야 한다. 스승들이 아른거린다.

 강의실에 들어가기전. 뒤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에 과연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했는데..나였다. 반가운 얼굴 이었다. 평소같은 상태였으면..더 반가워 해 줬을텐데. 내 불안은 그 제자에게 비춰진것 같고..그녀의 얼굴에서 내 불안을 보았다. 가면이라도 쓸걸..내게 주었던 그 환한 미소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것이라니..어쩌면. 20대의 신선한 고뇌가 나의 불안과 상응한 것일지도.. 그 제자의 건승을 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아시스 1집을 들었다. 록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밴드의 패기 넘치는 데뷔앨범은 내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오만할 정도의 자신만만함. 재능과 패기. 노엘 갤러거는 내게 큰 디딤돌이 되어준다. 삶을 위로하는 음악이었다. 지금 이 순간. 파헤쳐진 땅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겨울을 앞둔 대비였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과 겨울  (0) 2011.11.24
다시는  (0) 2011.11.19
구름이  (0) 2011.11.06
구경꾼.  (0) 2011.11.02
쯧쯧.  (1) 2011.11.0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