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테잎 대여점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 되게 기분 좋았다. 대학에 들어가고 입시의 억눌림에 해방되어 마음껏 영화를 탐닉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고전 영화의 느낌이 다분하지만 그 때는 최신작에 위치한. 따근따끈한 영화였다. 

 스무살의 내가 보기엔 그냥 재밌는 노처녀? 이야기 였다. 영화속 파니의 나이가 곧 서른을 앞둔 나이인데 그 땐 정말 멀고 먼 세대의 나이였다.당연히 공감이나 자잘한 재미를 놓쳤겠지. 그래도 참 좋은 영화였다. 사랑에 울고 아파하는 그 심정은 지금이나 스무살이나 무게가 다르지 않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있자니 세월이란 것이 묘하게 다가온다. 장면 하나하나가 유쾌한 재미와 공감(이해)로 가득하다. 비디오 테잎의 저화질에서 못 느꼈던 미장센들이 LCD 티비에 USB를 꼿고 플레이 하는 디지털 화면에서 파니의 속마음까지 속속 들여다 보는 것 같이 생생하다. 스물과 서른 중반의 나이는 이 영화를 다르게 보이기에 충분하다. 그때의 서른과 지금의 서른의 간극이 명확하듯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서른의 의미는 강력하다. 심지어 홀로 외로움 가득차 넘기는 서른은 더더욱..
 
 영화속 파니는 다른건 별로 부족하지 않지만 남자의 부재에 의한 외로움이 지극한 여자다. 나이를 떠나 노처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해골이 주렁주렁 귀걸이 부터, 외모는 그럭저럭 멀쩡하지만 정신 상태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죽음에 관한 이상한 모임에 나가,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시니컬한 이야기를 듣고 죽음에 대비하는 이상한 짓들을 한다. 외로운 사람들의 전형적 특징들, 그 만의 정신세계의 구축? 소통의 부재는 당연히 독특한 취향을 만들어 낸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은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 같다. 특정한 음식이나 맛에 집착하거나 무언가에 빠져지낸다. (억지로라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상한 점술사이면서 클럽의 립싱크 가수인 오르페오에게 자신의 점 괘 를 받은 파니는 자신의 운명의 남자를 기대하게 된다. (남자를 만나게 된다는 점 이야기를 들을때 파니의 표정은 정말 사랑스럽다. 여자가 미소지을땐 왠만하면 다 이쁜듯)  점 괘 대로 금발에 파란눈, 비싼 양복, 검정 자동차. 23의 숫자의 번호판을 가진 새로운 건물 관리인은 그녀의 운명이라고 마음먹고.. 그를 향한 애꿋은 정성을 들이게 된다. 마지막 기회라기에 더더욱..무작정 돌진한다. 사실 오르페오의 모든 것은 사기에 다름없어 보이지만, 파니에겐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사기를 당해도 남자의 손길이 닿고 싶은 절박함이랄까.. 그 막무가내 절박은 나중에 큰 절망을 안겨오지만, 영화의 재미는 상승한다. 

 짐작하듯이 이 영화의 재미는 파니의 구구절절한 솔로의 삶이다.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가 은근 재미로 다가온다. 이렇게 재미있다니 나도 영화속 캐릭터와 다르지 않다는 반증이다. 
 서른살때. 처음으로 점을 봤는데, 신점이라 유명한 곳 이었다. 35살에 동갑이랑 결혼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후 나랑 동갑이나 그 언저리의 여자를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다. 점의 미래 예측은 이래서 나쁘다. 기대하는 마음을 만드니까.. 만 나이로 치면 아직 지나지 않은 것이니 희망을 가지자..ㅋ 또 한 해가 넘어간다면 미국 나이식으로는 유효하니까..(12월생이여서)

 오르페오는 반이 채워진 와인 잔을 파니에게 보여 주면서 물어 본다. 상태가 어떻냐고?  파니는 반이 비워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자세는 부족한 것. 잃은 것을 보는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것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 게이인 오르페오 자신도 연인에게 버림 받고 아마도 에이즈로 추정되는 병으로 죽어가는 와중에. 파니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그는 죽음?에 앞서 파니에게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이 현재 같이 존재하는데. 뒤돌아 보며 헛된 믿음에 빠지지 말고, 시간만 알려줄 뿐인 시계도 차지 말고. 미래만 바라보며 지금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오르페오와 파니가 사랑과 우정의 애매한 지점에서 삶을 공유하는 모습은 참 포근했다.  예전에 친했던 모델아이가 항상 게이친구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 욕망이 이해가 갔다.
 더더욱 둘 다 사랑에 실패한 아픔과. 성적 욕망이 배제된? 관계는 정신적으로 더 밀착된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파니에게서 금을 건네 받은 오르페오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그를 통해서 파니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을.. 그리고. 23숫자의 운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영화는 끝나게 된다. 

 서른이 넘은 여자가 결혼하기는 원자폭탄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하는 영화 초반부의 나레이션은 이 영화가 꽤 오래된 영화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젠 서른의 미혼이 너무 흔해졌으니까..  
 에디트 피아프의 그 유명한 노래는 가사 내용이 이 영화와 너무 딱 들어맞는 내용이었다. 음악과 소리의 사용이 참 인상깊은 영화였다. 다시 보아도 너무 재밌는 영화였다. 노처녀 분들 꼭 보아야 할 영화..ㅋ  
 스무살땐. 파니가 정말 노처녀 아줌마 처럼 보였는데, 지금 보니...파니가 귀엽기만 하다. 통통한 허벅지도 귀여운거 보니, 내가 나이를 많이 드신게 맞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아마도 비슷한 시기의 바그다드 카페도 다시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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