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수업을 하기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박찬호의 첫 선발 경기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나의 팀. 두산 베어스와의 대결.. 장소는 청주야구장.. 오후6시에 대전에서 일이 끝나니..맘만 먹으면 올라오면서 들를 수 있었다. 피곤한 몸 이었지만.. 핸들은 청주로 빠지는 곳으로 향했다. 

 생각이 많을때. 사우나탕과 야구장이 생각난다. 야구장은 고작 일년에 한두번 갈까말까 이지만, 일상의 환기차원에서 매우 유효하다. 그것도 혼자가는 야구장은 더더욱.. 무라카미 하루키는..외야에서 야구를 보면서..어느날 소설을 쓸 생각을 했다는게 생각났다. 물론 그는 생각이 바로 실천으로 이어졌지만..


 아주 오랬만에, 청주로 들어서서 그 유명한 가로수길을 달렸다. 그러나 청주 시내로 들어서자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렸다. 이 정체가..단지 퇴근시간에 겹쳐서 인지.. 박찬호 효과인지 잘 모르겠으나, 나는 이때까지 조금 늦게 도착해도..당연히 야구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약간, 지방 야구장이라 만만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시간과 돈을 들여 야구장에 도착했지만.. 헐..완전매진.. 난감한 상황이었다.  역시 박찬호의 첫 선발 경기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자아냈다. 허탈하게 뒤돌아서며 차를 세워둔 청주 예술의 전당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차로 가기전 화장실을 찾아 기웃거렸다. 어둠이 내리깔렸고. 그나마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은. 지하였다. 사람들이 몇 왔다갔다 하길래.. 지하 건물 안으로 일단 들어갔다. 강당에서 뭘 하는 모양샌데, 급한 볼일을 보고.. 나와 두리번 거리니.. 팜플랫을 주었고.. 자연스레 다름 사람들처럼. 입장하게 되었다. 


 객석이 ㄷ 자로 된 소극장. 무대 안개가 홀 전체를 휘감았다. 자리에 앉자 팜플렛을 보니 클래식 공연 이었다. 제목은 클래식 스캔들. 콘서트 가이드라 불리는 사람이 나와 사회를 보았다. 사회를 꽤 능수능란하게 잘 했다. 김제동도 티비에 나오기 전 저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다. 


 공연장의 조명과 시설이 딱 적당했다. 소극장이어서.. 어쿠스틱 소리가 자연스러웠다. 대형 스피커를 통한 전기적 증폭 소리가 아니어서 되게 편안했다. 소리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꼈다. 여성 합창. 남성 합창..하프 연주.. 소프라노..등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펼쳐졌다. 


 음악을 감상하면서,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전혀 계획에도 없는 예상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상한 우연들이. 내 발걸음을 여기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삶은 우연들의 연속이고.. 정말 내일이 어떻게 펼쳐질지 매일매일이 궁금해졌다. 나의 작은 선택이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다. 삶은 작은 선택들의 연속.. 주저하고 망설이지 말자. 움직여야 한다는 진리..


 허무를 품고 청주를 뜨지 않아 다행이었다. 신은 내게 작은 선물을 준 것이었다. 복제된 소리가 아닌, 진짜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려주었다. 하프 독주를 언제 들어보겠는가.. 실제 하프를 본 것도 처음인 것 같다. 그리스의 신전 기둥을 하나 뽑아다 악기를 만든것 같았다. 소리 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손과 팔 동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팔뚝을 보고 감명받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탑 스폿 조명이 연기에 부드럽게 산광되며 하프와 연주자를 비추었다.  나는 내 기타 마샬앰프가 여기서 울린다면..소리가 어떨지 궁금했다. 그 조명 아래서 일렉기타를 마구 쳐보고 싶었다. 


 나와서..다시 야구장을 가 보았다. 야구장은 8회 이후론 공짜로 입장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출입구 바닥엔 반입못한 주류들이 산더미 였다. 들어가보니..김현수 자리 뒤편의 외야석.. 관객은 만원.. 한화가 8대 1로 이기고 있어서 인지..관객들의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박찬호는 한국에서의 첫 승리투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두산이 졌지만.. 박찬호의 승리에 경의를 보냈다. 98.99.2000년에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투구는 큰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바로 좀전의 클래식 공연장과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 지방 야구장엔.. 구수하며 적나라한 군상들의 반응이 재밌다. 야구장의 묘미는 이런것이었다. 작고 흰 공 하나에 애걸복걸하는..희노애락..


 탁트인 잔디밭 만큼, 내 마음도 초롱초롱 해졌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쿠스틱 클래식을 뒤로하고, 레드 제플린과 화이트 스트라입스를 들었다.. 쌀밥과 김치를 먹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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