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으스스.. 겨울이 원래 이렇게 추웠나. 몸과 마음이 모두 사그러든다. 집에 빨리가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싶을뿐. 그리곤 따듯한 차 한 잔과 음악,  이불속에서 웅크려 보는 책 한 권의 나태,  그 이불속이 어릴적 온돌방의 절절 끊는 뜨거움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뼈속까지 데펴지는 그 훈훈한 겨울의 맛을 어찌 전기 장판이나..관속을 흐르는 뜨거운 물이 알까.
 최근에 읽은 어떤 글에서 온돌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 했다. 말기 암 치료를 선고 받은 사람이..6개월 온돌에서 지내면서..많이 호전 되었더라는.. 겉만 뜨겁게 달구는 것이 아닌.. 뜨거움을 품은 돌이 은은히 뼈속까지 전달돼, 몸 속의 찬 기운을 없애는..그런 자연의 원리를 말했다. 뜨거운 피가 순환이 안되고..어떤 부위에서 온기를 잃어가는게 질병의 과정 이라 한다. 점점 차가워지는 세포속에서 암은 발전된다.
 차가움은 독이다. 외부가 차갑다면. 내부가 더욱 많은 열을 내야 한다. 내면의 열정. 겨울은 내면을 돋구는 계절이다. 하지만. 밖과 안이 꽁꽁 얼어 붙는 날이면, 겨울은 혹독한 시련을 가져온다. 웅크리다 못해 겨울잠이라도 자고 싶은 심정.

 이틀전 새해 둘째날. 대전에서 정오에 일이 끝나고 계룡산을 찾았다.  여러번 와봤기 때문에 친숙한 산이다. 겨울산의 웅장함은 풍미를 자아냈다. 남매탑 쪽으로 올라가며. 아이젠을 안 챙긴것에 대해 자책했다. 겨울산엔 무조건 아이젠을 준비해서 가야하는데, 올라가는 건 그리 문제가 없지만.. 내려올때가..참 어렵다. 몇 번 미끄러질 각오로.. 더욱 느리게..한 발 한 발 집중하며 내려오는 수고를 해야 한다. 뭐 어짜피 산행 이라는게 이런 수고를 즐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미끄러지면서 어떤 부상이라도 당할까 봐..걱정과 불안이 바로 앞의 길의 운치를 없앴다. 걷는 그 행위에 오로지 집중해야만 하는 하산길. 어쩌면.. 이게 좀 더 완벽한 산행이 아닐까. 미래의 불안과 과거의 후회가. 사라진 지금 당장의 문제에 열중하는..

 세번째 온 남매탑은 여전히 영묘하다. 오후였기 때문에, 더이상 가질 않고, 남매탑에서. 좀 오래 머물었다. 생각지도 않은 촛불에 불을 붙이고.. 기원을 담아 소원을 빌었다. 촛불을 응시하다.. 유달리 내가 붙인 촛불만..요동을 치는게 아닌가. 아직은 차분함의 때가 아니라는 듯. 안정과 평화는 아직은 요원한가. 촛불 같이 마음이 울렁거렸다. 내 마음은 이렇게 돌 탑이 되가고 있는데 어디서 이렇게 바람이 부는지 모를일이다.  서로 마주 앉은 돌 탑은 따듯해 보였다.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지만. 아직은 나의 따듯함을 충분히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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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하루였다. 동이 트는걸 보면서, 대전을 내려갔다. 오전에 일이 끝나고, 계획했던, 계족산 자전거코스를 위해, 용화사에 도착했다. 차와 사람이 아주 많았고, 팥죽을 먹으려 기다리는 사람을 통해서 오늘이 동짓날 이란걸 알았다. 한그릇 얻어먹었다. 따듯하고 맛있었다.  곧바로 차에서 자전거를 꺼내, 왼쪽편 언덕으로 끌고 올라갔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몸은 설레였다. 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비포장 산길. 페달에 발을 얹고..다리에 힘을 주었다. 알싸한 공기가..얼굴을 강타한다. 초행길. 그리고 처음으로 산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문제는, 산악 자전거가 아닌 일반 도로용 사이클이란 점에서, 불안했다. 언제 타이어가 터질지, 브레이크 성능도 좋지 못한 심리가 아슬아슬했다.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마운틴 바이크가 급 땡겼다. 왜냐면, 코스 절반도 못 가서.. 뒷 바퀴가 터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원없이 걸었다. 걷는것 또한 좋았지만. 초반 한적한 산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 기쁨이 잊혀지지 않았다. 바퀴가 터지기 전에, 계족산성에 올랐다. 자전거를 가지고.. 진짜 산길을 올라갔다. 초행길이라 무지의 수고였다. 

 멀리 보이는 계족산성과..그 위에서 보이는 대청호.


 매우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몸에 열이 나니 외부의 차가운 공기와 내부의 열기가 피부에서 맞닿아  어떤  막을 형성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몇 시간 안 남았지만,  긴 순환 코스의 절반도 못 미친 지점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계속 진행하느냐, 계족산성에 올라간 것만으로 만족하고 다음을 기약하느냐,, 신기하게도 길에 들어서면..멈출 수 가 없다. 계속 가게 하는 힘이 용솟음 친다. 좋은 길을 보면 설레이고 길 위에 선 나를 충동한다. 나는 이미 이 길을 달리고 있었다. 해가 떨어진다 해도,  그리 위험한 길은 아니기에,  신나고 조심스레 자전거를 달렸다. 야트막한 업힐과 다운힐이 굽이굽이 펼쳐지는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 뒷 바퀴에 문제가 생겼다. 바람이 빠져.. 결국..절반도 못 온 지점에서 부터 걸었다. 꽤 긴 길이었다. MTB 가 필요하긴 하구나.. 자전거를 좋아하는 김창완과 김훈씨가 생각났다.. 그들도 분명 이 길을 달렸을 거라 생각하면서..  또 언제 오지 하는 생각에 걷도 또 걸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마음은 점점 청명해지고 이성의(분별) 기능은 마비되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절로 내 눈에 펼쳐졌다.
 


 
  걷다보니, 이런 저런 단상들이 떠오르는데, 재미난 일화들이 자꾸 연상되었다. 뭐랄까 자꾸 글감이 떠올랐다. 녹음기는 이럴때, 써야 하는데,, 내껀 핸디 녹음기 이긴 한데,  너무 크다. 영화에서 간혹. 배우들이..자기의 말을 녹음하는 거는 멋져 보이는데.. 막상..내 말을 녹음하고..다시 재생하려면.. 이상한 닭살돋음을 경험해야 한다. 겨울 산 소리라도 담고 싶었다.
 해가 가장 짧은 날. 부지런히 걸어 해가 지기전 원점에 도착했다. 마음을 비우고 걷다보니, 두려움도 사라지고, 환상도 사라지고..지금 여기만 남게 된다. 즐거운 고독감 만이..자연만이 남게 된다. 조선 시대 같으면. 어슥해지는 산속에서 호랑이나 쳐녀귀신의 맞닥드림이 제일 무섭겠지만,  나는 간절히 처녀귀신이라도 나와 놀고 싶었다..

 원점에서.. 지름길인...어깨에 자전거를 메고 산길로 내려왔다. 즐거운 산행. 트레킹.. 자전거 주행 이었다. 오전엔 일하고..오후엔 놀고.. 저녁엔 기분좋은 피로에 찜질하고.. 추어탕으로 보신하고.. 정말 잘 논 하루였다. 나중에..친구들하고..자전거 타러 와야겠다..강추하는 자전거 산림욕 코스다. 대전엔 갈 때가 없다지만.. 찾아보면..좋은 곳이 많은 것 같다. 역시 근방의 산을 가 봐야..그 도시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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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처음 계룡산 남매탑 에 왔을때, 이 곳에서 묘한 안식을 얻었었다. 그 때. 물이 없어서. 여기의 약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안정을 찾은 탓도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다른 유적지나 보물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영묘한 기운이 있다고 느꼈었다.

 남매탑의 전설은 이렇다고 한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하여 패망 하자 백제의 왕족 이였던 한 사람이 계룡산으로 들어와 현재 남매탑이 있는 청량사지 터에서 스님이 되어 한 칸의 초암을 짓고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스님은 나라 잃은 설음을 모두 잊고 부처님에게 귀의하여 여생을 보내고자 하루하루를 불공을 드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계절은 겨울로 접어들어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좌선을 하며 삼매에 들어 있는데 밖에서 큰 동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몸을 푼 후 밖을 나가보니 송아지 만한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린 채 고통스러워하며 시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님이 가까이 가보니 호랑이가 동물을 잡아먹다가 갈비뼈가 목에 걸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이였다.

 스님은 호랑이에게 "네가 살생한 까닭으로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호랑이 목에 손을 넣어 갈비뼈를 빼주었는데 호랑이는 연신 고마운 몸짓을 하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호랑이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간혹 나타나 산돼지도 물어다 놓고 노루도 물어다 놓고 가곤 했다. 스님은 호랑이가 동물들을 물어다 놓자 "내가 그토록 살생을 하지 말라고 했거늘 또 살생을 했단 말이냐?"하며 호랑이를 크게 꾸지졌다.

 그리고 나서 몇 일이 지난 어느 날 밤,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밖을 나가 주위를 살펴보니 이게 웬일인가.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에 아리따운 묘령의 여인이 쓸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인의 머리에 가르마가 단정하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제 갓 시집온 처녀 같았다.

 이 깊은 밤 산중에 묘령의 여인이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스님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면서 여인을 초암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정성을 다해 극진한 간호를 했다. 그러자 여인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스님은 여인이 의식이 돌아오자 여인에게 야밤에 이 곳에 온 연유를 물었다. "낭자는 뉘오신대 이 깊은 밤에 산중에 와 계신 것입니까?"

 그러자 여인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으며 겁에 질린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스님이 여인을 가까스로 안정시키자 그녀는 비로서 입을 열었다. "소저는 경상도 상주 땅에 사는 처자이온데, 혼기가 되어 이웃 마을 양반 댁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밤에 들기 전에 소피가 마려워 잠깐 밖을 나왔다가 갑자기 송아지 만한 호랑이가 앞에 버티고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한 끝에 그만 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바로 이 곳이옵니다."

 여인은 결혼 첫날밤에 소피를 보려 나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이 곳까지 오게 된 것 이였다. 이 때부터 여인네들은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방에서 일을 보기 위하여 요강이 생겨났다고 한다. 스님은 여인을 초암에서 며칠 머물게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여인은 말하기를 "고향에서는 이미 죽은 목숨이온데 이 몸으로 어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스님께서 저를 구해 주셨으니 저는 스님을 평생 지아비로 모시겠나이다." 하며 청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스님은 "나는 불제자인데 어찌 여인과 혼인 할 수 있겠소." 라고 거절하며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오누이처럼 같이 살아가자고 하여 오누이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비구, 비구니로서 수행을 하다가 말년에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 이들 두 사람이 세상을 뜨자 사람들은 두 사람의 아름다운 행적을 후대까지 기리고자 석탑 2기를 쌓고 남매탑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근데 이 전설에서..그 묘령의 여자가 아닌 절세가인의 여인 이었다고 하면. 더욱 그 스님의 수행과 불도에 감동했을 텐데.. 혹시 여자가 못생겨서 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든다.. 묘령의 여자는 20대 안팍의 젊은 여인을 말하는 말이니..이쁠수도 아닐수도 있겠지만. 묘령이라는 말에는 그래도 이쁘단 의미가 포함되니.. 아무튼 감동적이다. 나도 그럴수 있을까...그럴 수 있다..ㅎㅎ
 마음이 이쁜 사람이야 어딘들 안 이쁘겠는가..ㅋ
 아무튼 다시 찾은 남매탑에서..누군가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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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게 위 사진속 새 자전거를 구입했다. 친구가 알려준 정보에 같이 주문을 하고. 이틀 전, 매장에 직접 가서 가져왔는데, 보는 순간. 크기에 한번 놀라고, 무광 블랙의 엄청난 자태에 또 놀라고. 타이어의 굵기에 조금 놀라고. 무게를 들어본 순간 보기보다 그리 무겁지 않다는거에 다시 놀랐다. 아무튼 놀람의 연속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실제로 보면. 누구나 이게 12만원대의 자전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보통 이런 비치 크루저 모델은 40만원대. 더더욱 트렉 이라는 해외 유명한 자전거 브랜드의 제품을 저 가격으로..^^ 

 자전거의 롤스로이스 또는 할리 데이비슨 이라고 불리는 비치 크루저 모델.
 이 자전거는 1950년대 미국의 서부 해안에서 서퍼들이 보드를 싣고 해변가로 가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튼튼한 프레임과. 굵은 타이어, 고장날 일이 없는 싱글 기어와 페달을 뒤로 돌리면 제동이 되는 코스터 브레이크 방식을 가진 이 자전거는 세월의 역사를 품은 클래식함을 보여준다. 산악용 자전거MTB 도 이 비치 쿠루저에서 기반했다고 보면 된다. 

 쇠붙이가 가진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자전거라고 생각한다. 보디 프레임의 매끈한 선과 바퀴의 살. 체인으로 구동되는 저 단순함. 자전거 마다 고유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나는 자전거의 클래식한 면에 빠져들었다. 광고 그림속 저 아이들 처럼. 자전거는 유년 시절을 환기 시킨다.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해외의 연예인들도 다양한 비치 크루저 자전거를 탄다. 예전에 이 블로그에 올렸던 안젤리나 졸리가 타던 것도. 이거와 거의 흡사한 자전거 였다. 

 평소에 타던 사이클 형 자전거에 비해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자전거다. 상체를 세우고 허리를 펴서 타기 때문에 속도를 내긴 힘들지만. 반면에 무척 편안하고 바람과 경치를 더욱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어디를 빨리 가야하는 이동 수단의 목적성 보다. 유유자작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좀 더 만끽할 수 있는 그런.. 한마디로 동네 마실용 이다. 앞에 쇼핑 바구니나.뒤에 짐 받이를 설치 하면 더욱 완벽한 생활 자전거가 된다. 안장은 또 얼마나 푹신하고 편한지, 전립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집에 까지 오는데 네 시간은 걸려.. 겨우 한밤에 도착했다. 정말 3월의 한파와 맞바람은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색다른 새 자전거를 타는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하계역에서 집까지..40키로가 넘는 거리였다. 다리가 조금 더 굵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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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여행지에서의 완벽한 하루가 지나고 비교적 덜 뻐근한 몸으로 일어났다. 탄산온천의 효과가 꽤 효험이 있었나 보다. 오늘은 원래 계획 대로 올레 코스 하나를 혼자 걷기로 했다. 처음이래서 20개 되는 코스중. 제일 대중적이고 좋다는? 7 코스를 선택했다. 서귀포시 쪽. 외돌개 란 곳에서 시작되는 13.8 키로의 길이었다. 안내지에 보니..난이도 상 이라고 적혀있었다.
 제주시에서. 남쪽 서귀포 쪽으로 넘어오는 5 16 도로를 탔는데. 한라산 기슭엔 눈이 많이 내리고. 으슥했다. 그러나. 서귀포쪽으로 넘어오자. 날씨는 맑아지고. 좀 더 따듯한 바람이 불었다. 친구는 외돌개에 나를 내려주고. 중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어제 바보같이 노천온탕에서. 수영복과 함께. 핸드폰도 같이 입수 시켰었다. 탕 속에 들어간지. 3분후. 물속에서 진동이 울리는, 괘이한 경험은. 아이폰으로 바꾸라는 계시인가..

 대략 오전 열시 부터 걸었던듯 싶다. 제주도 올레 길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예시삼아. 서명숙 이란 분이. 만든 이 길은. 렌트카로 비싼 요금의 관광지로만 다니던 제주도 여행객들에게. 또다른. 여행의 선택을 선사하는 멋진 것이었다. 제주도의 자연을 그대로 만끽하는. 길에서 느끼는 삶의 풍류는 여행의 참맛을 일깨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은 2권 정도 보았지만. 올레길은 그냥 나서는 것이다. 첵에서 본 산티아고 길 처럼,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어제 힘든 등산의 피로를 회복하는 트레킹 정도의 난이도와 함께. 혼자 사색하기 좋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위 사진속 길 처럼. 리조트 산책로 같이. 너무 쉬운 길만 있는거 아냐 라고. 실망했지만. 이 내 곧. 이런 길이 펼쳐졌다. 아마 요 구간 때문에 7 코스가 난이도 상 이었나 보다. 요 구간만 빼면 힘들지 않은 길이다.


 우리는 죽음으로 가고 있지요..억겁의 우주속에서 작은 티끌같은 우리의 존재는 거듭 태어나지만. 이 삶의 의미를 깨닫기에는 우리는 너무 바보같이 서성되기만 하지요..
 올 한해. 겉으로는 변함없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많은 걸 느끼고. 깨우치게 한 계기가 된 한 해 였다. 유약했던 내 영혼이 아주 조금씩 한뼘한뼘 자라는 걸 느낄수 있었다. 삶의 고달픔은 내 실존을 더욱 각성하게 하였고. 용기를 가지게 하였다.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플것도 없이 죽음이 오기전까지. 힘차게 헤쳐 나아가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살다보면 더욱 더 많은 상실의 감정이 휘몰아 칠 것이다. 버리고.버려지고. 버려야 하는 것이 삶 이니까..
 세포는 점점 생명의 기운이 퇴색할 것이고, 부모 형제. 친구는. 차츰 내게서 떠날 것이다. 다만. 갑작스레 뜬금없이 떠날 일은 없기를 기원한다. 반면. 아기들의 웃음소리와. 여인의 미소는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길을 걷다가, 수시로. 이런 표식과. 리본이 나타나는데. 간혹. 길을 놓쳐 엉뚱하게 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너무 멀리만 벗어나지 않으면. 이런.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말을 나누게 된 여성분이 있었는데. 이 코스의 종점까지 같이 걸었다. 말을 나누기전.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호기심이 갔고, 올레길의 길을 헤메는 사소한 실수 때문에.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아마. 길을 잃어버릴 걱정없이 쭉. 한 방향으로만 가는 길이었다면. 모르는 사람과 말을 나누는 것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4시간여를 같이 걸었으면서..여전히 그 분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딱히 내 얘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 대전에서 왔고. 짐작에 내 또래 나이란것 빼고는. 그냥 깊지 않은 이야기만 했다.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의 심리에서 인지. 내 말들은 왠지..영화 베니와 준에서..조니뎁같이. 좀 엉뚱했고. 겉돌았다. 내심 비포 선라이즈를 기대했으나. 왠지. 자꾸. 홍상수 영화의 김상경처럼. 느껴지는 심리가 발목을 잡았다. 전화번호를 받긴 받았지만. 지금 생각엔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졌어야 하는 후회가 든다. 요즘들어 어이없게도. 타인에게 다가가는 기본기가..와해되는데..다시 정신좀 차려야겠다. 내가 여행지에서 껄떡대는 남자로만 비춰질까봐..마음이 아프다..ㅎ


 유독 이뻣던 이길. 유난히 바닷 바람이 억세게 불어왔던 저 해변길. 사진속의 기억으로만 남겨질 추억이 되어. 공기속을 둥둥 떠 다닌다.
 휘청휘청 정말 강력한 바닷바람에 " 우리 대머리 되겠어요.." " 큭.~" 짧고 뭉뚝한 야자수 나무보고. " 이 나무 이름이 파인애플 나무일껄요..파인애플 안 먹고,,땅에 심어두면. 이렇게 큰답니다.." " 큭. 설마요." 어떤 선인장을 보고. " 이거 하나 뜯어다 집에 가져가면 천연 알로에 일텐데요.." " 큭~" 정말 아저씨 스런 멘트구나..ㅜㅜ

 아무튼 저녁에 찜질방에서 찜질하면서. 예전의 과묵하고 진중하며 사려깊었던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가볍고. 키치적이며. 설렁설렁한 사람이 된 것에 깊이 반성했다. 좋게 말하면 고독한 정서에서 유희한 정서로 탈바꿈이지만..에단호크는 되지 못할망정. 김상경스럽게 되진 말자. 어쨌든 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좀 더 좋은 방향으로..나 다운 방향으로..
그러면 됐다. 

 다음날 이른 아침.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마지막 날인데. 이른 아침이라. 월드컵 경기장에서 시작하는 올레 7-1 코스를 시작했다. 어제와 다르게 사람도 없고. 너무 고즈넉한 휴일 아침이었다. 비교적 이ㅣ 코스는 사람들에게 인기 없는 코스같다. 내륙으로 들어갔다 엉또 폭포와. 고근산을 찍고 내려오는 코스인데. 중간중간. 계속. 감귤 농사 하는 전형적인 서귀포 민가가 나왔다. 길가 넘어 주렁주렁 달린 차고 맛있는 감귤덕에..배고픔도 가셨다. 나중에 제주올레 안내지에 쓰인 에티켓을 보니까. ' 길 옆에 매달린 귤이 탐스럽다고 욕심내지 않기 ' 이 글을 읽었더라면 양심에 좀 찔렸을텐데..너무 늦게 읽었다. 덕분에 천혜의 자연이 선사해준. 감귤에 넋을 잃었다.

감귤밭 넘어 멀리 보이는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고근산. 오름속 분화구는 평평해 보이는, 갈대숲.아래.

 그리고 이 코스의 종점인 다시 외돌개 해안가. 이른 아침 부터 걸어서..점심때 이전에 끝마쳤다. 혼자 걷는다 해도. 별로 사색다운 사색은 하지 않는다. 그냥 생각을 비우고, 좀 쉬고 싶다는 다리와 배낭에 짖눌린 어깨를 이끌고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종점에 다다른다. 서귀포의 날씨는 참 변화무쌍했다. 속을 알수없는 여자처럼. 바람은 내 마음을 할퀴고 지나갔다. 가느다란 빛의 선을 남기고..

 다시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고. 중문 관광단지안의 신라 호텔에서 산책했다.

 쉬리 언덕. 영화 쉬리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이 곳 또한 올레 8코스 중에 지나치게 돼 있었다. 간간히 올레꾼들이 지나갔다. 그들과는 대비되는 고급 호텔의 럭셔리하고 인위적인 휴양지. 자연의 즐김은 이토록 다른 것이다. 3일 내내 자연속에서 걸었더니. 이런 호텔 산책로가 너무 편할수 없다. 쉽게 질리겠지만..그래도.아늑하다.


 우리의 마음은 저 바다처럼. 수시로 모든게 변한다. 같은 하늘. 같은 태양 아래. 마음은 제각각 이다. 어느 누구나 자연의 법칙에 반 할 수는 없다. 그저 바람이 불고. 마음이 흔들리고. 휘날려 작은 씨앗이 내게 발화했다. 사랑이라는.. 
 저 바다를 보는 것처럼..

 음.. 내가 썻지만 좀 닭살돋는..ㅋ


 북쪽의 한파속으로 제트 엔진은 돌진했다.

 항상. 여행을 갔다오면.. 뭔가 환기되고. 생각이 정리되어 온다지만. 사실.그 때 뿐이다. 텁텁한 공기 속에서 터벅터벅 다시 걷는다. 이 피곤이 삶의 충전일지 몰라도. 여행은 한떨기 아쉬움을 남기고. 여전히 번뇌하는 마음을 남기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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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에서 보아하니 국립제주박물관 뒤에는 별도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었다. 제주시 동쪽 끝자락에 위치에 있어. 제주시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올듯 싶었다. 내 안에는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아마 인간의 본능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의지가 좀 더 강한 것 같다. 좀 더 걷다 보니까. 박물관 뒤에 우당 도서관이 있었다. 잠시 들어갔다. 그러나 금방 나오지 못했다. 여행지에서 도서관을 가는 것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몇시간 책을 읽고 나오는 여행객은 내 생각에도 좀 이상했다. 도서관의 분위기는 너무 가라앉았다. 치열한 자기계발과 학문의 정신. 서울의 도서관에서도 느끼기 힘든 분위기를. 제주도에선. 어림도 없겠지. 그래도 이 도서관은. 정말. 어둡고 무기력한 느낌이다.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열의도 느낄 수 없었다.
 밖에 나오니 이제 어두워져서. 달빛이 휘황찬란했다. 좀 더 위쪽으로 가보니, 40분 코스의 산책코스가 있었다. 친구가 오기로한 시간과 딱. 맞아서.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걸었다. 보름달이 풍만한 음기가 가득찬 제주도의 밤 이었다. 별도봉이란 곳에 올라서니. 어두운 바다와. 불빛이 달빛에 울렁거리고 있었다. 



 첫날 제주도의 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친구와 후배를 만나. 이마트에 가서 내일 산에 가서 먹을 간식과. 맥주등을 사서 마시며, 일찍 잠들었다.
 7시쯤 동이틀 무렵 일어나서. 서둘러,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우리가 오늘 오를 코스는 관음사 ~ 성판악 코스로. 한라산 종주 코스라 불리우는 가장 길고. 힘들 코스였다. 사실 다른 산에 비해. 별로 어렵지 않은 등산로 이지만. 1950미터의 높고 거리가 긴 산이라.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등산로에는 눈이 다져져 딱딱히 굳어져 있었다. 준비해 간 아이젠이 아주 유용했다. 그러나. 아이젠 때문에 평소보다 좀 더 체력 소모가 되는 점이 있었다. 오랬만에 등산을 해서 인지. 좀 힘들었다. 내가 입고 온. 거위털 파카는. 고등학교2학년때 입고 장농에 쳐박아둔. 색도 바랜 구닥다리 점퍼였다. 이 파카의 보온력이.. 등산을 하기에는 참 애증 이었다. 걷다보면.. 열이 나서 더워 땀이 나고.. 쉬다보면. 급속히 체온이 떨어져. 곧 다시 입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기 때문에 등산용 의류를 입어야 하는데, 어쨌거나. 있는 옷 활용하자는 내 생각은 불편을 감수할만 했다. 

 정상 까지 8.6 키로. 매우 길다. 1년전 성판악 코스로 오를 때보다. 훨씬 힘들다. 우리 보다 조금 앞서 출발한. 빨간모자여자가 홀로. 분투하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벼운 인사 조차 건네지지 않았다.
 남자 신체능력이 33살 정점으로 꺽인다던데..그래서 인지. 그리고 배낭의 무게 때문에라도 꽤 힘들었다. 아침도 안 먹고. 건빵과. 스니커즈바. 물로. 에너지원을 보충하니. 칼로리가 쏙쏙 소비되는 느낌이었다.

백록담. 얼마 없는 물이 얼어붙어 있다.

사진 C.H.Park

 백록담이 내려다 보이는 정상은, 매우 바람이 거셌고. 추웠다. 조금은. 설경으로 뒤덥힌. 정상을 기대했지만. 눈은 거의 없었다. 다만. 성판악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득실득실했다. 1년전의 한산함 속의 사색의 추억은 뒤로하고. 춥고 배고파서. 서둘러 내려갔다. 두번째 래서 그런지 처음 처럼 신령스런 기운을 잘 못 느꼈다.

 내려오는 길에. 뉴발란스 커플 신을 신은 젊은 한 쌍을 보았다. 내리막길에 얼음이 박혀 있어 꽤 미끄러운데. 아이젠 없이. 여자가. 머뭇거리자, 앞에 선 남친이. 손 잡아줄 생각은 안하고. 머라고 구박을 하고 있었다. 지나치면서 속으로 저런애랑 왜 사귀냐고..중얼거렸다. 내 마음속 의견이 그녀에게 전달되었기를 기원하면서. 우리는 아이젠 덕분에 빨리 내려가고 있었다.

 내려가는 중턱 진달래 휴게소에서. 육개장 사발면과. 나머지 간식을 먹고. 그 동안 참았던. 대장속을 비우고, 쉬고 있었다. 어느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친구에게 누구 아니냐고 반갑게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래서 눈길을 피했다. 그런데 곧. 대학원 몇기라고..우리에게 더욱 아는 체를 했다. 그제서야. 알아봤는데. 내가 알던 그 후배와는 너무나 분위기가 바뀌어서 못 알아보았던 것이었다. 고등학생 같은 용모에 전혀 멋부리지 않은 안경쓴 외모에, 조용해서 눈길이 안갔던 후배였는데, 어느새 얼굴이 활짝핀 아가씨가 되어 우리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참 착한 후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외모도 참 착해졌다. 남친이랑 같이 왔다던데. 역시..여자의 미모는 남자가 완성하는 거라 생각한다.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나자..우리는 조개속에 진주를 품은 후배라는 것에 동의를 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후배의 이름이 생각이 안 났다. 결국 몇일 후. 친구가 기억해 냈다. 속이 후련했다. 인사를 잘해서. 나도 항상?. *미 구나 라고 대꾸해줬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성은 기억이 안 난다. 

사진속 사슴 궁뎅이가.. 숨은 그림 찾기.

 내려오는 길은 9.4 키로, 올라가는 것보다..훨씬..체감적으로 길게 느껴졌다. 아이젠 때문에 무릎에 가중되는 충격이 누적되어. 피로감이 상당했다. 내려갈수록. 흐릿한 안개에 쌓이더니. 눈발도 간간히 내렸다. 신묘한. 산의 늬앙스와 톤이. 피로감을 달랬다. 아까 뉴발란스 커플은 손잡고 내려가고 있다. 역시나 그 여인네는 남자를 고를줄 모른다. 여자가 너무 착한건지..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숙소로 와서, 영양보충하러. 흑마가든 이라는 말고기 전문점을 갔다. 처음 먹어보는 말고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말인데. 들어가기전에..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회를 먹을걸 하며 갈등했으나. 식사를 마치고는. 감동의 따~봉을 연발했다.


 말고기의 다양한 코스. 육회. 사시미. 장조림.. 구이. 불고기..말고기국.. 아아~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은 말 이었다..ㅜㅜ
 이 집은. 관광객 상대로 하는 식당이기 보다.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이었다. 역시 이런집이 최고야...

 배도 부르고 허리가 다리는 천근만근 뻐근한데. 친구의 후배가 산방산 탄산온천을 가자고 강추를 날렸다. 제주도에 사는 이 후배의 추천은 왠지 신뢰가 갔다. 역시나. 관광객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 였다. 야외 수영장과 온천이 있는데. 밤이고 겨울이래서.. 우리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후배는 친구한테..비키니 여자 없다고 구박받았다. 이 탄산온천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허리와 다리의 뻐근함이 많이 풀렸다.  더더욱. 그날밤. 좀 야릇한 꿈을 꾸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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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 30여년만에 최저 기온을 기록한 매서운 한파가 몰아칠 때, 제주도 남쪽 서귀포 쪽 해안을 걷고 있었다. 바람만 불지 않으면. 비교적 따스한 날씨 속에서. 하염없이 걸었다. 어제 저녁에 서울에 돌아온 이 후. 4일간 길에서 보고 만났던. 모든것이 눈에 선하다. 이 추억은, 아직도 뻐근한 다리와 어깨의 피곤에 모두 담겨 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의 각오?를  다짐하는, 한 껏 부푼마음으로 여행의 의미부여를 했다. 그러나 기분좋은 여행을 하고 왔다해도. 삶은. 출발선과. 종료점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일상은 마음가짐에 따라. 여행자의 기분이기도 하고. 감옥이기도 하다. 어디서건 현재에 충실한것이 중요하지만. 여행은 그 현재를 색다른 것으로 꽉 채운다. 경험의 수용 범위를 넓히는 것이. 여행의 순기능이 아닐까. 


 제주도를 3번째로 여행하는 것이라. 공항을 내렸을 때의 공기와 야자수나무의 신기함은 무뎌졌지만. 한라산이 정 가운데에 떡 버티고 있는 제주도의 설레임은. 언제나 영원할 것이다. 오고 가는 여정의 이동 시간 외로 온전한 2일간의 시간을 한라산 등산과. 올레길 한 코스를 걷는데. 쓰자는 계획 밖에 없었다.
 
 첫 날. 도착하자 마자. 공항에서 돌하르방 식당을 검색해서. 버스 타고 찾아갔다. 오기전 고등어회를 먹어보란 추천의 식당이었다. 허름한 식당안에는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이 식당은 점심 시간만 장사하는데래서. 3시면 문을 닫는다. 그래서 고등어회가 이미 다 팔렸는지. 고등어회는 안 되고. 식당의 대표음식인. 각재기국을 시켰다. 밥과 국이 나오기전. 고등어 조림 두도막과. 갈치젖. 오징어회 무침. 푸짐한 배추잎등이 나왔다. 식당안의 오래되고 허름한 운치를 감상하는 동안. 국이 나왔는데. 허연 국물에 익은 배추잎이 한 가득이었다. 수저로. 내용물을 휘젓다 희고 맑은 국물속에서 생선머리와 몸퉁아리가 둥~ 떠올랐다. 어릴적.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의 미역국 속에서 하얀 갈치가 떠올랐던 기억이 났다. 무지 비려서,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라서, 내심 움찔했지만. 이 각재기국의 국물맛은 기가막히게. 시원하고 맑았다. 배추와. 된장푼물, 그리고 각재기란 생선과 기본 양념만으로, 이런 국물맛을 내다니..역시 소문난 맛집 다웠다. 그러나 맛집의 기준이, 진한맛과. 깔끔하고 정갈한 것에 두는 분들은. 이 맛집이 의아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오래되어. 지저분해 보일 수 있다. 뚝배기 그릇도 오래되어. 때 탄듯 보이나. 그런 투박함 속에. 오묘한 맛과 향취가 살아났다. 고등어회를 못 먹어 봤지만. 이 집의 대표음식인 각재기국 한그릇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가격 또한. 6000원에 넉넉한 반찬..여러모로 배부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저녁에 올 친구를 기다리려. 제주시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걸어서 민속 박물관에 갔고. 또 걸어서, 국립박물관을 갔다. 보통 여행와서. 잘 걷지 않는 도심의 거리와 박물관을 가게 되었지만. 나름. 괜찮았다. 의외로 박물관은 모두 공짜. 기억 남는 것은 별로 없으나. 국립박물관의 티겟팅 하던 젊은 여자가 나를 보던 시선이 기억에 남는다. 전형적인 이방인을 보는 시선이었는데, 뭐랄까. 삶의 무료함이 큰 귀와 작은얼굴의 귀여움속에 한가득이었다. 큰 배낭과. 등산화. 중절모를 쓴 전형적인. 여행자의 모습과 극명히 대비되는, 그녀의 답답함은. 내게 전달이 됐다. 배낭보관 때문에 여러차례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친절은 하지만. 뭔가 의욕이 없다. 여기서 일년 동안 교사일을 한 친구의 후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주도민. 특히 젊은층의 삶이 육지 사람들의 삶과는 많이 다르다고 했다. 경쟁과 물질적 성공에 내몰리지 않은 삶의 의식이 주로 자리잡지만. 반면에 꿈과 목표등..삶에 대한 의욕이 서울 사람에 비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게 없고. 그냥 섬생활에 안주하며 사는 의식이 팽배하다고 하나..아무튼 잘은 모르겠지만. 육지와는 다른 섬나라? 만의 독특한 정서가 있는 모양이다. 역사적으로 봐도..제주도민의 피해의식은. 충분히..공감이 간다.

 그나저나. 관람을 마치고. 나가면서. 나를 관찰하던 무료한 눈과 마주쳤을 때, 속으로..이따 저녁에 한잔 하실래요..라고 상상했다. 마치. 홍상수 영화의 배우 김상경이 되고 싶었으나, 영화는 영화 일 뿐. 상상은 자유이다.. 이틀 후. 영화를 연출할뻔 했다. 그러나..
 친구와의 접선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어디를 가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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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참 아름다운것 같다. 사진속 안젤리나 졸리의 자전거 타는 모습은 나를 설레이게 한다. 검은 자전거에 검은 의상. 전형적인 뉴요커가 선호하는 모양새다. 혼잡한 뉴욕에서 고급 자동차를 안타고. 저렇게 아기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는게..위험해 보이긴 해도. 졸리의 또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서..좋다. 



 예전에. 내 자전거 바퀴가 휘어서. 수리하는 와중에.. 전시되어 있는 자전거를 둘러 보던중. 아래 사진의 자전거를 보게 되었다. 무광 블랙의 색상에..싱글 기어. 가벼운 무게의 접이식. 원래 클래식한 프레임을 좋아하지만. 저 자전거의 모양새에 빠져버렸다. 몬태큐 보스턴.모델.


 역시 견물생심의 이치다. 사람이던 사물이던.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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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일요일날..형들하고 일산을 자전거 여행하고 돌아 왔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아침의 쌀쌀함속의 낮은 구름사이로 서서히 햇빛이 비추며 포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일산 킨텍스에서 그날 까지 하는 자전거 박람회를 목적지로 삼았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환상적 이었다. 행주대교를 넘어..잠깐 시골길로 들어섰다가..자전거들이 질주하는 이상한 길을 보았다. 그 길에 올라서자, 텅 빈 고속도로가 펼쳐졌다. 말끔한 아스팔트가 쭉 펼쳐진..그 길위에 서자..기분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천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상상하는 것처럼.. 알고 보니..그 길은..제 2자유로. 오늘. 오후 2시부터 개통한다고 전광판에 쓰여 있었다. 아마 일반인이 이렇게 자전거로 이길을 질주하는 것은.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몇 시간 후면..차들이 점령할, 갓 태어난 도로를 우리는. 자전거로 한없이 음미했다. 지금 이순간이.. 언젠가 좋은 인생의 순간이었다고 추억할 마커를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킨텍스로 단숨에 달려갔다. 2010/10/24 - [사진 일기] - 일산 킨텍스를 가다.

 
 사진. 이승환.

 킨텍스에 도착하니..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날씨가 좋아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자전거 자체가 삶속의 어떤 문화로써 자리잡는 단초가 보이는듯 했다. 남녀노소 많았다. 다만 이쁜 여자들은 별로 눈에 뛰지 않았다. 보통 박람회 하면..나레이터 모델이나 도우미 언니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는데, 별로 없었다. 자동차와 자전거는 역시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자전거는 몇개 되지 않아..좀 허탈했다. 이미 나의 자전거가 있으니까..눈에 안 들어오는 것인지..그다지 고가의 자전거에 관심이 없다. 자전거는 자전거 일 뿐..왠만한 소형차 가격하는 자전거는..자전거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전거는 몸과 정신의 순수성을 끄을고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자전거가 돈과 물질의 욕망에 지배당할때, 그것은 자전거가 아니다. 내겐 천만원이 넘는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라 생각한다. 

 늦은 점심을 거하게 먹고..돌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허해 형들이 하자는 데로 따라하자며 멍 때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연히 내리게 된 대곡역에서..우리는 한강길을 찾으러 시골길을 달렸다. 아이폰 지도를 참조하며....
 그러나 갈림길에서 수시로 어디로 갈지 갈등하게 되고. 지도로 검색을 하며..우리가 가는 길은 그 자리.같은 지역을 돌고 도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해는 떨어지고..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같은 곳을 돌게 되고..한강으로 나가는 출구는 없는듯 보였다. 뭔가 대곡역의 첫 발을 내 딛는 순간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이미 이렇게 된 이상..이 먹먹한 환경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이런 요상한 삶의 작은 사건을 같이 즐기고 있는 지인들이 있었다. 내 자전거의 앞바퀴가 펑크 난 것도. 어쩌면, 이미 없는길..그러니까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을 좀 더 빨리 단념하게끔 한 사건 인지도 모른다. 바퀴가 펑크 안 났다면..우리는 어떻게든..서울쪽으로 자전거를 몰았을 것이고..야간에 처음 가는 지방도로를 달린다는 것은..참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미리 더 큰 사고를 방지하는 액땜을 했다고 믿는다. 
 4시간 여를..엄한 곳에서..버렸다. 시간은 버렸을지 몰라도..내면의 어떤 감성이..나를 자극했다. 아주 어렸을때. 멀리 다른 동네 까지 놀러갔다가. 저녁 시간을 놓치고 깜깜해져..집에가면 엄마 한테 혼나겠구나 라는 걱정어린 어린 마음이 떠올랐고. 영화 '스탠 바이 미' 도 생각났다. 그리고 미국 자동차 여행의 그 황량함과 먹먹함. 모두 과거와 미래가..현재의 어떤 지점에서 조우 하는 느낌이었다.  현재의 나는 이날 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는 답답함 속에.. 나도 모르게 내면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길의 사유는 인생의 사유였다. 나는 더욱 다양한 길을 맛보고자 한다. 


사진. 권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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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햇살. 등뒤의 봉우리가 만들어내는 그림자.


북한산 혹은 삼각산 이라 불리는. 봉우리들. 눈부신 햇살. 그리고 나.




 내려오다가..벼랑끝에서..발걸음을 잘못 옮겨. 길이 아닌 곳으로 한참을 내려왔다. 누군가 걸어가지 않은 산길을 걷기란..참 힘든일이다. 산이 가르쳐준 것이 많았다. 결국. 군부대 까지 들어가게 됐는데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중심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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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속 고독한 남산에서..산을 타고 바퀴 두개 구루니 산타구니..


자물쇠 트리..저 바보같은 미신에 징글징글했다. 돌아오는 길. 저절로 생각들이 정리 되었고. 진짜 공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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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애마가 생겼다. 새 자전거를 알아보던중. 정말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코렉스 인피자 ZCR 프레지던트. (아래사진) 사진만 보구도..이건 딱 내 스타일이군..첫 눈에 알아봤다. 클래식한 느낌의 로드 바이크. 프레임의 접합방식이 러그 방식으로 대량 생산의 용접 방식과는 다른 고전적인 방식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은..손이 더 가는 제작 방식이라.. 흔치 않다. 하지만..가격이 제일 싼 가격을 찾아봐도..65만원..난 50만원 이상의 자전거는 비싼 자전거란 인식이 있기 때문에..선뜻 구매하기 힘들었다..그리고 관리 차원에서도 문제였다. 아파트의 실내에 보관하지 못하고.. 주택의 야외에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새벽 이슬과..여름의 습기..겨울 한파등..비싼 자전거를 보관해둘 환경이 못된다. 아쉽게도..눈에서 떨쳐내려 해도..너무 멋지다..


 그러던중..선배와 통화중..자전거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니까..대뜸..자신의 자전거를 데려가라고 했다..그것도 파격적인 가격..6만원.. 작년에 새거 14만원 정도에 산걸.. 이름은 코렉스 미라지 09년산. 나한텐 딱 맞는 조건이었다. 싸고..간지나는..비싸서 부담스럽지도 않고..ㅎㅎ
오늘 강남가서 받아오는데..간만에 봐서 너무 반가웠고. 나름..나의 새 애마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홍대까지 오는데..앞으로 숙이는 자세의 드롭바 핸들이 적응이 안되서 힘들었고.. 안장의 높이가..공구가 있어야 조절할 수 있는데..내 다리 길이에 비해 너무 높아서..버거웠다. 다리좀 길어봤으면..핸들 바의 폭도 기존에 타던 생활자전거 보다 좁고, 앞으로 숙여 어깨와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스타일 이라..나름 가슴 근육의 골이 생길듯 싶다.ㅋ 집에 오는길 새로은 자전거에 적응하느라..몸이 힘들었다. 그래도 전철타고,다니는것 보단 낮다..사람구경이 재밌긴 해도.. 이 가을 바람의 맛은 맛있다.


오늘 빨간 셔츠를 입었었는데.. 저 흰색 프레임과..핸들의 빨간 테이핑과 참 조화가 잘 됐을..첫 셀프 기념샷이라도 찍을걸 그랬나..6만원에 업어온거 치곤 너무 아름답다..고맙습니다..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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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의 기록2  (0) 2009.10.07

  아직도 다리가 뻐근하고, 무겁다. 평소에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로 하체를 단련하던 내게, 모처럼의 등산은 매우 고된, 그러나 등산의 묘미가 잘 어우러진 인상깊은 산행이었다. 

 20대 중후반에 형님들 따라 가끔 등산을 따라나섰던 내게 저질 체력은 산행의 즐거움을 앗아갔었다. 아마 서른이라는 나이을 앞둔 어느 흐린 겨울에 난 혼자. 북한산 정상 (백운대 836m) 에 가보겠다고, 길을 나섰다. 산행 경험도 많지도 않거니와, 혼자 가는것도 그렇고, 모든게 처음이었다. 그 때. 청바지에 캐주얼 단화를 신고 멋모르고 두려움에 떨며 올랐던 백운대 정상의 그 느낌과 희열. 바람과 추위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 등산은 나의 취미가 되었고, 그제서야  내 몸과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서울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북한산의 다양한 코스를 거의 다 다녀보아도,(어디든 다 좋다.) 백운대는 너무 자주 가지 않았다. 제일 맛있는 부분을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놓는 어린아이의 마음이랄까. 그 희열이 너무 좋아, 천천히 아껴 녹여 먹는 초콜렛의 마지막 한 조각 같은 것이 백운대의 전망 이었다. 생각해 보니 북한산을 많이 다녔음에도. 백운대를 오른것은 어제까지 총 네번에 불과하다. 등산의 묘미를 전수하고자 사람들을 데려가기도 했고, 후배를 데려갔다 오르지도 못하고, 운명의 장난처럼. 꼬이기만 했던 추억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제처럼 사람이 드문 이른 시간에 나 홀로 백운대 정상위 바위에 선 그 느낌은 살아있음의 극치였다.

 이틀전의 큰 장맛비로, 대기는 맑고 선명했으나, 공기 가득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장마구름을 끊임없이 드라마틱하게 움직이게 했다. 구름들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아기자기한 도시의 조그만 사각형 들을 밝혔다. 저 멀리 강남의 빌딩들을 넘어 동남쪽 검단산 사이로 한강 상류인 팔당수원지 까지 보였다. 남쪽으로 남산을 넘어 관악산의 연주대는 물론이고, 지구가 둥글어서 못 보이는 거 빼고는 다 보였다. 바로옆 북한산과 불암산.수락산 사이의 강북구 수유,노원,우이동 등 일대는 다른 곳보다도 더 아파트 촌이 많아 보였다. 의정부를 통해서 서울로 진입하는 통로래서 군사적 목적에서 그런 건지도 모를일이다. 

 이 높은 곳에서 조망하다 보면, 마치 내가 제갈량이나 된 착각에 천지를 호령하는 포부가 생긴다. 내 삶의 공간을 멀찍히 떨어져서 조망하는 것은 나와 내 삶의 모든 것을 타자화 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관계의 집착을 넘어서 좀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백운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너무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오래 정상에 있기 힘들었으나. 어젠 은은한 햇빛과. 적당한 바람에 사람까지 없어 나는 땀에 푹 젖은 상의를 벗고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겼다. 웃옷을 벗으면서 순간 바람에 옷이 날라갈 뻔했는데, 옷을 놓쳤으면 참 난감할뻔 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산에선 항상 방심하면 안된다. 산은 순간순간 깨어있음을 요구하고, 한발한발 잘못 짚거나, 정신이 딴데 가있으면 위험은 도처에 도사린다. 생명의 실존은 바로 그 순간순간에 갱신된다. 작년 눈이많았던 겨울에 도봉산 정상 봉우리에서 내려오다가  죽음의 '악' 소리를 내뱉은적이 있다. 눈덮인 바위에 내 몸무게를 지탱하던 두손이 무방비로 미끌어졌는데 그 순간 짧고 깊은 '악' 소리 밖에 나오지 않더라. 다행히도. 눈과 몸통의 마찰로 더 미끌어지지 않고 멈춰섰지만, 그때.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마치 우리 삶은 죽음의 집행유예인듯. 메멘트 모리. 피할수 없는 죽음이 항시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길에 대한 사유의 모든 것을 산에서 경험할 수 있다. 등산 행위는 인생의 굴곡들을 축약해 놓은 듯이  희노애락의 연속이다. 내 몸이 만들어 내는 사건은 정신을 정화 시킨다. 고독하고 적막한 숲은 사랑과 타인의 관계를 일깨우게 하고 치유케 한다. 편하지 않은 길을, 위험이 가득한 경사진 길을 오른다는 것은 강한 생명충동의 발현이다. 

 이 날의 등산길은 일반적인 등산로가 아닌 사람이 다니지 않은 깊은 계곡길이었다. 원래는 자주 갔던 숨은벽 능선길로 갔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길을 헤맸고, 여자 다리 사이 같은 계곡의 음기에 나는 허우적 댔다. 깊은 계곡의 습도는 환상적이었고, 소금물에 절여진 자반고등어 같이 땀 범벅에 몸은 축 늘어졌다. 계속 되는 너덜바위와 급경사는 오지에 떨어진 막막함을 느끼게 했다. (마치 디스커버리 채널의 Man VS Wild 와 같은) 

 계곡을 빠져나와 백운산장.위문을 거쳐 백운대에 도착했다. 백운대의 그 위험했던 바윗길 구간은 철 계단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몇몇 곳에 쇠 밧줄이 더 설치되었다. 좀 편해지긴 했지만 예전 특유의 그 스릴은 이제 없어졌다. 만인을 위한 산이니. 키가 작은 여성이나 애들의 권리도 존중해줘야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이런 바위 봉우리에는 오르지 못할 것 같다. 예전 조선시대 선비의 덕목중에는 이 백운대를 올라갔다 와야 기상을 가진다 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바위에 설치된 쇠 밧줄도 없었을거니,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용기 였을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물이 떨어져 중년의 사내에게 물 동냥을 했다. 한모금만 마시고 물병을 건넸는데 더 마시라고 했다. 홍삼달인 귀한 물인데도.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역시 산에 혼자 오시는 중년 남자는 어떤 부류보다더 친절하고 눈매가 깊다. 경마장이나 강원랜드에서 본 중년 과는 차원이 다르다. 산을 닮아가는 그들의 얼굴은 아름답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백운대에 한마리 나비가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즐거이 노니고 있었다. 내가 나비가 되어 춤추는 기분이었다. 나비는 바람이 세게 불어 오래 있지 못하였지만, 그 나비의 마음을 충분히 느꼈다. 내가 나비였고. 나비가 나 였다.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또 한 쌍의 원앙? 이 바위에 왔었다. 도시의 비둘기 와는 다른 아주 깨끗한 깃털과..눈망울을 가진 한 쌍이었다. 그 새가 부러웠다. 그 새 부부는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 같이 날아갔다.. 

 예전에 읽었던 책(아마도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에서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배낭여행으로 가라고 조언한 저자의 설득에 심히 공감되었던 적이 있다. 긴 인생의 동반자로써. 서로 힘들고 지칠때.상대를 정말 배려하고 사랑하는지 볼 수 있고, 진짜 성격을 볼 수 있다고..인생의 어려움에 맞서 미리 손발을 맞춰 볼 수 있다고.. 고급 호텔과 휴양지 에서 맛있는거 먹고 섹스만 하다 오는 신혼여행은 앞으로의 인생의 굴곡에 하등의 도움이 안된다는 논리 였다. 나는 그 순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히말라야라니. 상상만 해도 멋지다. 그런데. 이런 신혼 여행을 꿈꾸다간. 평생 결혼 못 할수도..상대의 생각도 배려하는게 마땅한데. 여자들이 무드에 약하고..일생의 한 번 뿐인 신혼여행을 낭만적으로 보내고 싶은것도 이해가 가긴 하지만...궁극적인 신혼여행은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어쩜 찍소리 못하고 가슴속에 뭍을 꿈일지도.. 

 부산에서 올라온 중년 부부를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등산이 아니더라도. 자연을 즐기는 취미를 서로 공유하는 그런 삶을 꿈꾼다..이 부부는 서울로 여행을 와. 북한산을 처음 올랐는데, 백운대 정상에 서서 감탄을 연발했다. 서울 사람들이 지리산이나. 설악산 한라산을 그토록 동경하듯. 그들은 북한산의 매력에 탄복을 했다. 서울사람으로써 뿌듯했다..ㅋ  또 이쁜 두 딸을 둔 가족이 기억에 남는다. 부모는 지식인 같아 보였고, 딸중의 한명은 영화 러블리 본즈에 나온 여자애 같이 생겼는데, 보다 더 이뻤다. 이쁘기도 하고 총명하기도 했는데. 어린나이에 한 두번 올라온 솜씨가 아니었다. 역시 부모의 취향은 건강하고 이쁜 어린이를 만든다. 젊은 여학생들도 싱싱한 기운으로 꺄르르 웃으며 야호를 연발했는데. 듣기 싫진 않았다. 산에서 소리 지르는것이 산에 사는 동식물에 실례이긴 해도, 그 순박한 젋음이 귀여웠다. 

 어느새 피부의 물기가 다 말랐다. 바람은 쎄지만 포근하게 피부를 감싸고 지나간다. 순간 내 피부가 젊은 여인의 피부처럼 너무 보드라워져 있어서. 순간 깜짝 놀랐다.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 뱃살이 야들야들한 것처럼. 내 피부 또한 그렇게 됐다. 

 사진 한 장 찍지 않았지만. 내 눈과 가슴속에 꼭꼭 그 풍경과 바람의 맛을 간직했다. 사진은 이 공기의 느낌. 바람의 맛을 담지 못한다. 자연 앞에서 사진이라는 매체의 한계다. 차라리. 폴 세잔의 회화가 이런 느낌을 잘 구현해 냈다. 세잔은 평생의 화두가 이것이었다. 대상의 본질에 대해서, 눈으로 보이는 대상의 이면을 그림으로 구현했다. 햇빛에 의해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북한산 자락을 보면서. 세잔을 생각했다. 그는 하염없이 생투빅투아르 산을 보며, 상념과 명상에 젖었다. 그의 생각이 맞다. 그는 대상이 내뿜는 에너지를 그렸다. 고정 불변하는 것은 없다. 심지어 내 손의 피부색 또한 수시로 변한다. 내 마음 또한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쉽게 변하지 않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바람에 펄럭이는 백운대의 태극기 아래에서 나는 무엇을 누구를 사랑하는가.. 남쪽의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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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밑에 비브람 이야기 말미에 한바그 알라스카에 대해 리뷰를 쓰겠다고 예고했는데 이제서야 펜을 들었다. 단지 이름만 언급했을뿐인데 그동안 인터넷 검색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 그 허무한 낚임에 심심하게 유감을 표한다. 짧게나마 헛탕친 시간에 대한 보답으로 글을 시작한다. 객관적인 정보의 사용기에 치중하기 보다 이 등산화와 함께한 시간의 주관적 회상속에서 리뷰는 기능할 것이다.


 1921년 독일 뮌헨에서 가죽 신발을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한바그란 성을 가진 남자로부터 시작된 나의 등산화는 건장한 아리안족의 기풍이 느껴진다. 2010 년 현재의 싸이버적 늬앙스와는 정 반대로 1900 년대 초 중반 알피니즘(알프스에서 유래된 근대 산악운동으로서의 등산) 의 정점에서 이어진 투박한 멋을 간직한다. 짐작하건데 이 한바그란 회사는 나찌 독일군의 군장품을 만들기도 했을것이다. 히틀러의 지시에 의해 나찌 독일군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첨단의 기능 요구, 알피니즘의 국가 대항전(영화,'티벳에서의 7년' 참고)의 경쟁 속에서 이 등산화의 성능은 진일보 했던 것이다. 전쟁을 통한 과학의 발달이 이 특수한 신발에 기술이 접목되었고,  대중들의 야외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특수한 목적의 기능적 등산화는 더욱 진화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서 그러던데  독일인은 처음 사귀기는 힘드나 한 번 친구가 되면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신의가 깊다고 한다.(하도 어릴때 읽어서 지금도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나와 이 독일산 등산화의 관계가 그랬었다. 거금을 들여 장만한 육중하고 투박한 이 신발은 처음엔 뮌헨의 우중충한 기운으로 내 발에 고통을 주었다. 고급 등산화의 소유에 이미 자연의 오지를 다 경험한듯한, 명품족 환상은 고사하고, 등산의 다짐과 이 신을 신고 밡을 자연의 설레임은 가차없이 깨졌다. 걷는게 아프니까. 매순간 실존의 자각이 욱신거린다. 한발 한발. 직립보행의 인간이 제대로 걷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날 수도 없다는 걸 깨닫는다. 반전이었다. 자연속에서 내면의 평화와 건강증진의 기대는 산 기슭에 도착하기전 도시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 사라졌다.

 길들여지지 않아 여전히 아픔이 남아있던 어느해 2월. 눈덮인 설악산을 올랐다. 북한산만 종종 다닌 초보인 내게 첫 도전이었다. 전문 등산 배낭. 바지, 스패츠, 고어텍스(방수)자켓없이 평상복과 등산화, 한쌍의 스틱으로 감행한 눈길 산행은 결국 이 신발이 내 신체의 일부처럼 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춥고, 외롭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구간인 오세암-봉정암 코스에서 난 진심으로 신발에게 감사했다. 다른 등산객도 전혀 없었고, 눈은 퍼붓는데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은 내리는 눈에 점점 희미해졌다. 길을 잃으면 바로 죽음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오세암에서 봉정암으로 출발하는 길의 문턱에 끈으로 가지말라고 얽기섥기 대충 설치돼 있었고 A4용지에 한 달전 2명이 조난당해서 사망했다는 경고가 씌여 있었다. 용감하게 그 선을 넘은 것이 후회막심 이었다.


 헉헉대며 철퍼덕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면서 쉴때, 체온은 급격히 내려가 추워졌지만 등산화 속의 발만은 온기가 지속됐다. 또 무릅까지 쌓인 눈과의 오랜 사투에 열이 난 발은 양말이 땀에 젓지도 않고 외피 가죽이 눈에 젖었으나 방수는 확실했다. 고어텍스의 확실한 성능이었다.
 눈보라 치는 내설악의 엄청난 장관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사이 머리가 아니라 본능적인 발길에 의지해야 했다. 그 발을 감싼 이 등산화는 지극한 신뢰가 되었다. 무생물인 사물에 친구처럼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설악산에서 인상깊은 산행 이후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발과 고착됐다. 착화감이 매우 좋다. 무거운 중등산화이지만 걷다보면 무게도 잊고 그저 발을 자연스레 앞으로 내밀어주는 느낌이다. 마치 도베르만 핀세르가 윤기있는 가죽을 실룩거리며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는 것 같다.

 그 후 어느해 가을에 첫 지리산 종주를 위하여 대형 배낭을 샀다. 3일치 식량과 물품을 챙겨 어깨에 짊어지어 등산화를 신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척추를 타고 내리는 무게는 다리를 거쳐 등산화 고무창에 전달되었는데, 이 때 또 이 신발의 숨은 가치를 알게 되었다. 평소 가벼운 산행에선 못 느꼈던 밑 창의 탄성이 무거운 배낭무게에 의해 살아났다. 이 신발의 진짜 목적(backpacking)이 드러났다. 장거리 산행에서 진가가 발휘됐다. 오래 걸어도 발의 피로감 보다는 다리 전체의 뻐근함이 등산의 즐거움을 준다. 중창의 안정적 구조, 튼튼함이 발의 피로를 최소화 해 주는것 같다. 그리고 이 신발의 기능중 하나가 에어 펄스 시스템 (신발 내부의 더운 공기가 발목쪽으로 순환되어 빠지는 구조) 이 있는데 이런 것은 과장광고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과학이 적용되었는지 산행 후 신발 윗 단 양말은 땀으로 많이 젖어 있는데 발등 발목 등은 뽀송했다. 물론 종아리에서 타고 내리는 땀이 양말 윗단을 젖게 했겠지만, 홍보 문구의 기능인 에어 펄스 시스템의 작용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이제 나는 이 등산화를 단지 신발(shoes)로 불리어지기 보다 장비(equipment)라고 말해지게된다. 가장 중요한 등산 장비. 신발의 선택이 등산의 범위를 넓힌다. 언젠가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꿈꾼다. 독일인의 무뚝뚝함이 느껴지는 이 말없는 가죽 장비는 내 꿈을 견인하는 소중한 동반자이다. (www.baedonghak.com)

P.S.저 밑에 비브람 이야기가 어느 등산 카페에 무단으로 출처없이 게재된걸 보았다. 발췌된 글의 크레딧 조차 지우고 올렸더라.

 나의 second 등산화는 로바 Lowa 중등산화이다. 좋은 등산화이긴 하나 한바그 알라스카에 비해 이건 등산화를 신었구나 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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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 이어서..

 시내를 벗어나니 공기는 더욱 좋아졌다. 내가 오늘 하루 묵을 게스트하우스는 동.북부 위치의 일주도로상에 있었다. 작고 아담한 집에 젊은 여행객들이 우글거렸다. 군대 침상같은 마루에 자리를 배정받고, 곧 있을 저녁을 기대하며 그냥 반 쯤 누워 제주도 관련 책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는 사이 더욱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왔다. 대부분 서울에서 온듯한 젊은 여행객들이었다. 일을 보는 젊은이들 또한 서울에서온 장기 체류자들인것 같았다. 암튼 어수선한 분위기속에서 내일 뭘 할까를 생각해보았다. 다시 시내로 나가서 스쿠터를 빌려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는 매우 흐렸고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두툼하고 흰기름띠가 적당히 박힌 돼지고기가 모닥불에 달궈진 솥뚜겅 위에서, 바삭한 기름 알맹이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워낙 두툼해서 다 익어서 먹기 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오늘밤에 묵는 사람이 무려 40명이 넘었다. 거의 매일 이 정도라면 숙박비가 싸다 해도 꽤 괜찮은 수익인 셈이다.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면서 어느 연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중에 서울의 옆동네에 살고 고등학교 동문인것을 알았다. 서로 눈치껏 나이는 묻지 않았다. 나보다 어릴것이라 확신했는데, 상대방은 내가 외모적으로 더 어려보여서, 내심 옥식각신하는것 같았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난, 동문과 선후배 따지는것이 우습지 않은가..그저 참 세상이 좁구나 란 생각뿐..아니 우리나라가 좁구나일뿐.. 다음날, 숙소를 떠날때, 인사하며 어짜피 헤어지니까, 서로 물었는데, 그는 2년 후배였다. 제주도에서 그렇게 만난 인연이라면, 언젠가 동네에서 우연히 볼 인연이 또 있겠지.

 고기는 환상적이었다. 사냥 후 숫사자처럼, 엄청난 포식을 한 후, 마을을 거쳐 해변가 쪽으로 산책을 갔다. 500미터를 걸어가니 조그만 해변의 월정해수욕장이 나왔다. 배도 부르고 바다를 마주보니 제주도에 온 것이 온 몸으로 체험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캄캄한 바다를 두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바다쪽으로 깊숙히 쭉 뻗은 방파제의 끝에 앉아 명상을(좌선)했다. 거세지는 바람과함께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잡생각은 힘을 잃었다. 서울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몇시간만에 이렇게 파도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내 감각들에 주는 선물같았다. 귓볼을 감싸 흐르는 바닷바람이 내 영혼을 쓰다듬는다. 한 시간정도 앉아있다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유독 반짝이는 별 하나만이 하늘에 놓여있었다. 

 숙소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일찍 누웠다. 누군가의 코걸이에 중간중간 깼지만, 새벽 5시에 일어났을떄는 너무나 상쾌했다. 새벽에도 그리 춥지 않기에 다음에 제주도 여행은 침낭과 매트리스로 비박을 해도 되겠단 생각을 해보았다. 6시에 전원 기상해서 승합차 두대에 나눠타고 다랑쉬 오름앞에서 내렸다.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다랑쉬오름은 안 올라가고 대신에 그 앞에있는 낮은 갈대숲 오름을 올랐다. 흐린아침에 하늘이 개일 기미가 안 보인다. 고급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중년사진쟁이들이 많이 띄인다. 김영갑의 책이 영향이 큰 듯하다. 롤라이플렉스로 몇장찍긴했는데 빛이 그리 좋지 못하다. 롤라이플렉스는 역시 여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오래된 쇳덩이 치곤 크나큰 영광이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다들 제각각 흩어졌다. 시내에 나가 스쿠터를 빌려 탄다고 해도. 비도 올것 같고, 사진을 찍더라도 빛이 안 좋아, 스쿠터 투어는 포기했다. 월정해수욕장에서 시내쪽으로 해안도로를 걸었다. 2년전 엠티에서 매우 맑았던 그 길을 걸었던것 같은데 반대로 걸어서 인지 새로웠다. 2년만에 내가 무엇이 변했나 생각해보기도 하고, 후회에 몸서리 치기도 했다. 일요일이라 다음이 주최하는 국제 마라톤 대회의 참가자들이 씩씩거리며 도로를 내 달리고 있었다. 비바람이 흩날리고 에메랄드빛 파도는 거셌다. 비바람이 몰아쳐 해변의 정자에 누워 달콤한 잠을 자기도 하며 배낭에 눌린 어깨를 쉬게했다. 제주도 동,남부 여행을 포기한게 그리 후회롭지 않았다. 보고,찍는 것보다. 이 순간의 느낌이 더 중요했다. 



 오후에 시내의 바닷가 쪽의 해수랜드 찜질방에 들어갔다. 시설이 매우 좋다. 해수욕, 찜질방 수면실 등등 모든게 지대로다..2년전 첫 제주도방문시 숙박했던 모텔이 바로 뒤에 있었다. 냉장고에 촬영된 필름을 놓고가 다시 찾으로 온 기억이 있다. 다시 그곳이다. 내일의 한라산 등산을 위해 일찍 쉬었다. 바다가 내려보이는 큰 유리창앞에서 가지고온 탐라견문록이란 책을 읽었다. 여행길에 선택받은 두권의 책중 하나인데..그저 그렇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버릴 수도 없이, 배낭무게에 일조해야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느긋하게 목욕을 했다. 버스터미날서 6시에 성판악행 첫차여서 여기서 5시에는 나가야한다. 택시를 못잡을 생각에 걸어갈 것을 염두해두면서 새벽부터 서둘렀지만 5시에 딱 문앞을 나서니 택시가 딱 문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게 왠 행운이람.. 그리고 택시탈때까지 비가 사정없이 내렸는데, 비도 뚝 그쳣다. 덕분에 버스터미날에서 무료한 40분을 보냈다. 근처에 편의점도 식당도 없다.
 성판악으로 가는 버스는 새벽의 안개를 뚫고 5 16 도로를 달렸다. 동이 트면서 서서히 안개가 걷혔다. 성판악 휴게소서 간단히 김밥을 먹고, 7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백록담까지 9.6km 긴 길이다. 그러나 코스의 2/3 까지는 마치 리조트의 산책로 같은 아주 편한 길이었다. 그래도 어느 순간 해발 1000 미터가 넘더니,, 공기의 느낌이 점점 틀려진다. 진달래 휴게소에서 아주 맛나게 사발면과 초코파이를 먹었다. 혼자온 젊은 여인이 눈에 띄었는데,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산에 다니는 복장도 아닌것이, 사연이 있는듯했다. 뭐 어쨋거나 정상에 다가올수록 멋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나무가 없어지는 고원지대가 나타나고 구름이 시선 밑에서 뭉게진다. 바람은 차고 칼칼해지고, 처음보는 자연의 모습에 온 몸이 열린다. 이제는 배낭의 무게도 잊었다. 


 파랗고 깊은 호수를 상상했지만, 백록담의 물은 거의 말라 있었다. 운무속에 갇힌 백록담 정상은 이내 점점 날씨가 개이더니, 하산할때는 뙤약볕이 내리쬤다. 백록담이 보이는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는 사이, 아까 그 혼자 온 여인이 올라와서 새침이 사진찍길래 사진찍어줬다. 공주과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서, 한라산 정상의 영험한 분위기와는 상반되었다. 그나저나 체코에서 온 청년이 먹고있는, 식빵에 참치캔을 언져서 먹는 그 기름 향기가 아주 죽여줬다. 나도 나중에 꼭 산에가 먹으리라 다짐하며.. 초코파이로 허기를 달랬다.


 관음사 코스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경치는 정말 죽여줬다. 그러나 내려오는 길이 8.6 km 인데,너무 길어서 지루했다. 1950 미터의 산이니 내려오는데만도 한 나절이 걸렸다. 무릎에 부하가 많이 걸리면서 이번여행도 급격히 마무리 되고 있었다. 이 글 또한 지루해졌다. 해수욕탕에 담근  내 두 다리는 꽤 뚜꺼워져 있었다.
  멀리 나아가리라.. 오래동안 길의 참맛을 알아가리라..
서울 아침의 창공은 희뿌연 안개로 혼탁했다. 아마도 바로 아래 사진의 저 구름들이 많이 그리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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