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진호 감독의 팬이다. '위험한 관계'가 개봉하자마자 보았는데 지금은 별 기억에 안 남는 영화가 되었다. 장동건만 나올뿐이고 감독이 한국인인 중국 영화이다. 내용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배경만  1930년대 상하이 상류층. 스캔들이나 여타 이 원작의 다른 영화에 비해서 '위험한 관계' 만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장동건은 멋지게 나오지만. 시종일관 여자앞에서 시껍대는 표정은 항상 똑같다. 장백지는 이쁘긴 하지만, 이젠 그런 스타일 별로고, 장쯔이의 연기는 볼만했다. 영화의 공간 배경이나 조명의 화려함이 화장을 떡칠한 듯하다. 이런 것도 이재용의 '스캔들'이 훨씬 좋았다. 극장에서 금새 떨어진것 같은데,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를 잇는 그런 영화는 이제 요원한 일인가..


 '피에타'는 잔인한 장면이 나올까봐 걱정스러웠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좋은 느낌이었다. 그의 영화중..'수취인불명'과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사마리아' 등과 함께, 좋은 영화라 기억이 남는다. 오히려 이정진의 좀 어색한 연기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게 하지 않아서 그 불편한 파급력이 자제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밑바닥의 돈의 굴레와 피의 복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체제의 무서움을 직시하게 한다. 신체 조차도 물질화되어 돈의 가치로 치환되는 그런 세상. 폭력과 감정의 말살은 어머니라는 존재앞에서 어떻게 회복의 기미와 용서를 구하는가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광해'는 천만관객이 넘는 영화들의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좋았고, 개운하게 재밌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당시 역사..선조.광해군.인조.허균. 임진왜란,병자호란 등등에 대해 검색해 읽었고, 허구의 영화를 통해서 우리의 슬픈 역사를 상기시키고 공부하는 힘이 나에겐 있었다. 경복궁을 다시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궁궐 안팍의 미장센들, 조명의 효과들이 아름다웠다. 이병헌의 생김새와 눈빛등도 정말 배우다웠다. 그의 소문이 어떻든간에 배우로선 정말 훌륭하지 않나..반면 한효주는 절망. 여자인데도 여자같이 안 느껴지는 이상함. 굳이 중전과의 로맨스를 보다는 후궁과의 알콩달콩 염문이 어땠을까. 이 나라의 국운은 그 때 부터 꺽이지 않았을까. 상업영화이지만 역사인식을 상기시키는 소재가 좋았다. 허구의 상상을 통한 역사의 재조명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역시 이나영은 살아있었다. 그녀의 연기가 어떻고를 떠나서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의 포스가 작렬한다. 유하 감독의 '하울링'은 감독의 명성에 걸맞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범작으로 치부하기엔 좀 아쉽다. 이나영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객관성을 잃어버린채 그녀의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분명 보통관객에겐 설득력, 공감이 부족한 영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문제의식과 소재의 참신함은 좋았다. 다만 그것의 효과적 연출이 아쉽긴하다. 감독이 유하래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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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여섯시경 신도림 디큐브씨티앞 도로에서 아찔한 일이 있었다. 2차선 주행중. 1차선에서 어물쩡거리던 버스가 갑자기 3차선으로 이동하는 각도로 내 차선을 치고들어왔다. 그런데 3차선에는 행단보도위에 승용차가 한대 정차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회피기동을하며 그 틈사이로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버스가 계속 치고들어와 어쩔수 없이 내차 조수석의 사이드미러와 정차해있던 구형 아반떼 차량의 미러가 충돌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말 살 떨렸다. 다행인건지 모르겠지만 차체가 부딪히진 않았다. 그 차를 지나쳐 정지하자마자, 차에서 내려 버스에게로 갔다. 나는 많이 놀라고 흥분한 상태. 버스기사가 미안하다고 그러며 내 차랑과 간발의 차로 접촉이 안됬기 때문에 그냥 가려는 낌새길래..내리라고 명령했다. 


 정차해있던 아반떼 운전자에게 갔다. 30대 후반 여성인것 같은데 많이 놀랜 상황. 112에 신고를 했고 채 전화벨이 한번이 다 울리기전에 전화를 받았다. 3자 대면한 상황에서 버스기사는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나는 버스기사에게 전화번호를 받았고, 아반떼 여성에게 내 명함을 주었다. 그 아반떼 운전자에게 버스가 무리하게 치고들어오는걸 본 것을 확인시켰고. 그녀는 버스의 블랙박스의 유무를 물어보았다. 이런일은 처음이라 곧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으나 버스기사는 운행때문에 가야한다고 자리를 떳고, 그러는 사이 난 다시 차로 가서 카메라를 꺼내 그 아반떼를 찍었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이 왔고, 또 그러는 사이 그 아반떼 운전자도 무슨 애 이유를 대며 자리를 떴다. 


 경찰은 친절했다. 사건정황을 설명했고, 경찰은 메모를 하며, 내가 처리해야할 차선책의 경우를 설명해줬다. 피해가 경미하기때문에 버스기사와의 합의가 가장 좋고, 보험처리로 간다면 버스기사의 과실이 크겠지만. 나의 방어운전과. 아반떼의 불법 주정차 위반 위치의 과실이 나올거라했다. 시간이 지체됬기 때문에 그렇게 마무리 하고 출발했는데 조수석 백미러 알맹이가 충격으로 떨거져 나가서 오른쪽으로 차선 변경하기가 번거로웠다. 차안에서 생각해보니..그 떨어져 나간 백미러를 찾을 생각도 못하고 출발했다. 


 남의 차와 부딪힌건 2번째 인데, 첫 번째는 보험처리나 경찰을 부를일이 없는 각자 수리한 일 이었고, 이번에는 피해야 경미하지만 정말 교통사고 다운 일 이었다. 그 긴박했던 찰나의 순간. 아슬아슬하게 큰 충돌은 빗겨갔다. 하지만 백미리어의 충격소리와 그 빗나간 충돌의 서늘함은 간담을 놀래켰다. 


 낮에 그 버스기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새끼는 모르는 일 같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난 큰소리를 냈고, 블랙박스며 CCTV며 다 있을테니 경찰한테 신고 접수하고 보험 처리 한다고 끊고 보험사 직원과 통화를 하는 사이 계속 그 작자한테 전화가 왔다. 결국. 지가 보상을 해 준다는데, 8:2 로 그 아반떼의 보상문제로 언성이 높아졌는데, 전화가 와야 합의할 상황이라. 일단 내 건은 그렇게 됐다.


 보험사 직원말로는 가해자.(교통사고 유발자) 와 미접촉 사고일 경우 6:4의 판례가 있다는데, 난 그딴거 모르겠고, 돈 몇푼이 오가고 끝날 일이 아니라. 제대로 과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은 심정. 왜냐면. 그 작자는 그런 일이 별거 아닌 투로.. 도로에서 그런 무개념적인 행태를 벌일놈이고 발뺌을 할게 다분하기 때문에.. 차라리 그 버스와 충돌이 있었으면 본 때를 보여줄텐데.. 


 오늘 이 사고를 통해 느낀건, 차량 블랙박스의 필요성과.. 항시 차량에 손쉽게 꺼낼수 있는 위치에 카메라를 소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1년 마다 보험회사를 바꾸니.. 현재 보험사가..흥국인지..동부인지..횟갈려..작년 보험사에 먼저 전화해서 어이없었다는 것. 

 내가 아무리 방어운전이다..안전운행을 해도, 사고는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일. 워낙 무개념 인간들이 많은것 같다. 정직하게 살자. 네비게이션 보다는 블랙박스, 블랙박스의 중요성을 확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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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면 썸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묘사하는 초반의 몽타지 화면중, 그녀가 알바를 하는 가게의 매출이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같은일이 친구네 집 근처 BR31 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전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연찮게 금요일 밤 그 가게에 들르게 되었다. 멀리서부터 환했다. 얼마나 이쁘길래..평소에 여자에 대해 별 논평이 없는 그가(이쁜 부인을 둔 유부남이어서?) 그렇게 거품?을 물며 이야기를 했을까. 


 난 항상 서서 주문받는 방식에 대해 다소간 스트레스와 긴장을 동반한다. 뭔가 빨리 선택을 강요받는 입장이 무의식에서 항상 내심 불쾌하다는걸 이젠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복잡하고 선택할께 많은 주문 방식을 극도로 싫어한다. BR31이나 서브웨이. 카모메식당 같은 곳에서 간혹 멘붕이 찿아온다. 그래서 그냥 동행인과 같은걸 시킨다. 서울촌놈이자 되게 구닥다리 인물인 것이다. 어디 다방같은데 없나..


 BR31은 내가 주문해서 사먹은 적이 한번도 없는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 썸머에게 어떻게 주문하는거냐고 물어봤다. 옆에 있던 친구는 그걸 왜 물어보냐고 면박을 주었다. 그런거 물어보는사람 처음일 거라며..난 정말 몰라서 그런건데.. 참고로 그 썸머는 미인이긴 하나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냥 따라나섰던 동행인이 대단한 미인이라고 극찬을 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손님들은 꽤 많았고, 알게모르게 썸머의 효과인것도 같았다. 그 가게 안은 어쨌든 매우 밝았다. 같은 브랜드 점포를 운영하는 큰누나에게 알바생을 잘써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잔인한일. 하여튼 썸머는 빛이 나며 친절했고 아이스크림은 맛있었다. 눈이 예상외로 쌍커풀눈이어서 그랬지 실로 근래 보기드문 순수한 미인이긴 했다. 자주 가서 카운터앞 울렁증을 극복할까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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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관념이고 환상이래지만 평생에 한번이자 마지막일 이렇게 확실한 감정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 표현할까. 이렇게 멋지고 가슴저민 이야기는 사랑을 책이나 영화로 탐닉하지 말자라는 나의 기조를, 흔들리게 한다. 언젠가 무심코 무장해제되어 들이닥칠 사랑의 파급을 조금은 대비라도 하듯 허구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느끼고 상념하게 한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는 내 나이가 파릇파릇한 꽃청춘의 계절, 중년의 우중충할 듯한 불륜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에겐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어디 줄리 델피 같은 여자 없나, 중구난방 기웃거리던 시절. 어느새 서른이 넘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을 섭렵하면서 보게된 이 작품에 늦게 서야 큰 감명을 받았다. 줄리 델피의 큐트함 보다 메릴 스트립의 깊은 미소와 눈매에 찡한 감동을 받으며 나도 모르게 성숙?해 가고 있었다. 


 한 여인의 삶 속에서 결혼, 사랑, 가족, 희생 같은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숙고하게 한다. 삶의 선택과 그 행동에의 용기는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안다. 내 일상. 나를 구성하고 있는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 사랑을 위해 변화를 위해 발걸음을 나서기란 너무 가혹한 선택. 상대를 100% 확신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겨진 가족을 위한 가슴아픈 배려이자 희생이었다. 어머니란 말에 함축된 그 지고지순한 사랑은 나의 욕망을 취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회쳐서 자식과 남편에게 바치는 일식집의 정찬 테이블 같은 것이었다. 


 프란체스카의 선택은 자신을 넘어서지 못했지만 개인을 넘어 사회의 통념에서는 칭찬받을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삶에서 행복이란..그리움과 추억속에 사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이고, 자신이 되어야할 존재로서 변화가 아닌 되어야 만 했던 존재로의 고착은 인내의 삶을 숙고하게 된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녀에게 짧지만 강렬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사랑의 선택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욕망보다는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매순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준다. 대단히 매력적인 남자이자 본받아야할 남성상이다. 특히 이 장면. 프란체스카가 2층에서 가방을 꾸리는 동안 그가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녀의 눈으로 그녀의 전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듯 하다. (대사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지만 대사가 없는 이 부분이 특히 감동 받았음)



 이 영화의 구조는 '그을린 사랑'과 거의 똑같다.두 남매가 막 죽은 엄마의 과거의 일을 알아나가는 것. 그럼으로써 점점 진실을 깨닫고, 한 여인의 강렬한 인생 경험으로 사랑과 깨달음으로 충만해지는 삶의 유산을 전수한다. 근데 이 작품은 진부하고 뻔한 불륜이라는 금기에 돌을 던질수가 없다. 그 안에는 사랑과, 결혼.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마음이 무너지는 평생에 올까말까하는 사랑의 진면목을 간접적이나마 느낄수 있다. 주인공의 해피한 사랑의 결말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가치가 숭고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 마음에 품고 죽을수 있는 그런 사랑은 어쨌든 행복한 것 아닌가..




 영화의 초반 뚜껑이 있는 다리를 안내하러 같이 갔다가 로버트가 들꽃을 뽑아 주려고 하자 프란체스카가 태연하게 '그거 독초인데요' 라고 장난치니 바로 경끼하며 떨어뜨리는 로버트. 서로 파안대소하며 웃음으로 통하는 순간.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여자의 마음세계를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내면의 감정에 따라 변화 무쌍해지는 그녀의 연기는 대단한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분명 이 영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전해지는 감동이 무한할 영화이다. 한 5년후에 다시보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걸 이 영화에서 새롭게 깨우칠 수 있을까 더욱 궁금해 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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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초,중반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금 보는 재미가 있다. 다시 본다는 것 보다도 새롭게 본다는 것이 더 맞는것 같다. 장면하나하나가 소소한 재미로 가득하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는, 같은듯 다른듯, 영화를 보는 시간의 간극만큼, 몰랐으나 아는 만큼 보이고 새로운 진실을 찾는다. 


 내가 숭배하는 이상형의 여자를 꼽자면 우마 서먼 이라고 딱 말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건 변함없다. 최근작인 벨아미에 나온 우마 서먼을 보면서 자글자글한 피부에도 불구하고 '오! 아름다워라'를 연발했다. 어릴적 부터 여신 같은 존재였다. 왜 이런 이미지에 끌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뻔하지 않은 외모에서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순수, 백치미와 팜므파탈의 여전사 이미지, 물과 기름이 오묘하게 섞인듯한 이상 야릇함.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키가 무려 182란다. 부부였을때 에단 호크 보다 더 큰 키, 그리고 우마 서먼의 아버지는 유명한 불교학자이다. 서양인 최초의 승려였었고 달라이 라마의 친구라고 한다. 컬럼비아대학 교수인데, 미국내에서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이란다. 수행하다가 환속해서 우마 서먼을 낳은듯.. 우월한 유전자임이 틀림없다.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은 내가 우머 서먼에 빠지게 된 영화중 하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첫 주연작 '형사 매드독' 인데 이건 다음에 따로 포스팅 할 예정. 둘 다 아주 대단한 영화는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고 우마 서먼의 풋풋한 시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외모는 별로지만 지적이고 똑똑한 여자(에비)여서 나랑 잘 통하는 여자와.. 외모는 이쁘지만 텅빈 머리의 여자(노엘_우마 서먼) 중. 남자의 선택은.. 


 이 영화는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짐작하다시피 겉모습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인품이 중요한거고 제 눈에 안경이래서 아무리 눈길이 안가는 사람도 사랑하는 순간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 진다고, 겉모습이 어떻든지..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영화의 결말에서 남자주인공은 진심을 다해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두 여주인공의 장점(이쁘고 착하고 지적인)만을 합쳐놓은 대상(우마 서먼)에 푹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가 에비로 착각하며 노엘(우마 서먼)을 처음 봤을땐, 그의 눈에선 뿅~ 사랑의 마법이 일어났고, 그 후로 그녀를 대할때, 안절부절 설레이는 그를 볼 수 있다. 남자들은 진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뭐 마려운 똥개처럼 입은 말라가고 눈빛은 미세하게 요동친다. 진짜 아름다운 여자는 카오스를 선사하고 남자는 그 마음을 숨길수 없다. 어떠한 대화보다 한번의 마주침이 중요한 거고 그 이미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게 (남자)사람이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각에 특화되었고, 점점 더 그런 사회에서 이것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외모도 무척이나 아름다운데 전화 통화의 대화도 자신과 너무나 잘 통한다는 것이다. 외모에 자신감 없는 에비때문에 본의아니게 노엘은 에비로 행사하게 되고, 남자는 이쁘고 지적이기도 한 에비(우마 서먼)에게 올인하게 된다. 그래서 위에 남자의 진심은 내가 느끼기엔 ' '거짓말 하고 있네' 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남자는 허탈하게 술집에 앉아 있을때, 진짜 에비가 사과하러 나타나자 쳐다도 안보고 실의에 빠진다. 이것이 진실일 것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하고 그러니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중요한게 아니고 내면의 소통이 중요한거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째 좀 동의엔 미흡하는..


 이런글에서 벤야민을 언급하기엔 웃기지만 아름다움이란 겉모습(외양)과 이데아의 긴장이 어우러졌을 때라고 말했다. 이데아의 긴장이라..(표현이 참 고상하시다..)


 그러면 노엘(우마 서먼)이 이데아의 긴장이 없는 그냥 텅빈 껍데기에 불과하냐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 노엘은 멍청한듯 하지만 착한 여자다. 내 생각엔 (제 눈에)이쁘고 착하면 게임 끝. 모델일을 하며 남친이자 매니저에게 갈굼을 당하지만 자신의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도약을 위해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한다. 남자주인공이 준. 어려운? 책. 시몬드 보봐르가 샤르트르에게 쓴 편지책. 을 사전을 찾아가며 세번이나 읽고, 마음이 상한 에비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진심을 전하려 노력한다. 이 영화의 맹점은 이 우마 서먼의 캐릭터에 있다. 이쁜데 착하기까지 하고, 관념이나 편견없이 그 순간의 마음에 솔직하고 순수한 반응을 보인다는데 있다. 된장스러운데가 하나도 없다. 단지 지적이지 않다는 것 뿐, 그래서 처음에 언급했던 두 여자의 대비의 도식이, 남자의 선택이, 지금의 나에겐 공감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 영화는 극과 극인 두 여자의 우정에 더 감동하는 면이 있다. 사심없는 노엘이 행동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맹한 구석에 영화는 따듯해진다. 


 뭔가 많이 알수록 순수성은 파괴되고 영악해진다가 내 생각이다. 주인공 에비 박사는 지적이고 재치있을지 모르지만 착하지는 않다. 자기 방어적이다. 외모 컴플렉스때문에 상처를 받아온 영혼이래서 '뭐! 내가 항상 그렇지' 하는 심정이 '안 쓰럽다' 라기 보다 자신이 가진 매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헛 똑똑이 같은 면이 답답하다. 자신의 단점을 개선시키려 노력하기 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누군가가 사랑해 주길 바라는 자포자기적 캐릭터, 반면. 노엘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단점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자신의 외모를 가꾸기 위한 금욕적 노력도 단지 지식을 많이 아는 것 보단 좋아보였다. 

 아름다움은 껍데기의 조건만을 말하는게 아니다. 마음의 밑바닥에서 부터 드러나는, 순간의 삶에 대한 열정일 것이다. 


 진부하고 뻔한 결말일 수 있지만 내게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의 대답은, 못생겼는데 똑똑한 여자를 골라서 성형수술을? 보단, 이쁜데 착하기 까지 한 여자를 잘 이끌어 주고 맟춰가는게 훨 자연적이다. 라는게 내 생각. 결국 여자는 이뻐야 한다? 이쁜게 착한거다. 라고 돌맞을 소리를..지껄이지만 나는 마음이 착한 모든 여자는 이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가치를 모를 뿐이지 그것은 눈빛과 피부로 드러나고 남자들은 그 미세한 빛에 감응해 더욱 환한 빛으로 반응해 그녀를 밝혀준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밝혀줄 깨끗한 거울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재미있는 장면.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에비와 노엘의 사진을 차례로 찍어주는데 에비의 얼굴에 몰두하며 눈빛에 반응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노엘이 질투하고, 노엘을 찍을때, 에비가 옆에서 말을걸어오는 것도 모른채 너무 촬영에 몰두해, 에비는 상처를 받는다. 카메라를 통해서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선택과 집중의 무아지경. 분명 더 좋아하는 대상에 더 집중하고 더 많이 찍게 된다. 


 우마 서먼이 케익 먹는 장면. 너무 황홀했음. 평상시 백인 여자가 섹시하다고 느껴지지 않지만, 이 장면은 예외..


 남자가 전화 통화로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 읽어 주는 장면.

 현대자동차의 지오란 차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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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때 TV에서 했는데 중간부터길래 다시 다운 받아 보았다. 아 뭐냐면 이현승 감독의 '푸른소금' 이 영화는 '카페 느와르' 처럼 포스터 사진도 올리지 않을 정도의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글에서 검색하고 저장해서 올릴정도의 수고를 하기엔 귀찮다. 내가 신세경을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오히려 처음부터 모든게 형편없는게 아니라, 이야기 외.. 영화의 모든게 너무 훌륭한데 이야기가 병맛이라 더더욱 안타깝고 아쉽고 화가나는 지경이다. 아니 저렇게 훌륭한 배우진과..촬영, 색감, 미술 등등등 너무나 훌륭한데, 마치 카스테라 빵 없이 크림위에 데코레이션만 잔뜩한 케익 같은..영화가 되버렸다. 


 감독의 전작인 '그대안의 블루' 나 '시월애'는 그래도 좋았던 기억이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장편영화를 만드셔서 그런지 장편 연출의 감이 학생들 졸업작품처럼 어설프다. 개별씬들의 완성도는 그럴듯한데 그것들은 모아서 뭉쳐보면 이야기가 개연성이 없어, 납득이 안된다. 그러니 공감도 없고, 영화속에서 송강호가 천정명과 이종혁에게 도미를 넣은 라면을 끊여주는데 딱 이게 뭥미? 그런 심정. 


 감독이 너무 열심히 준비한것 같긴 한데, 전혀 수습이 안 된 것 같다. 이 영화의 실패 요인을 분석해 보면, 영화 공부 많이 될 것 같다. 물론 조명이나, 미술은 훌륭히 참조할 만 하고..


 신세경은 영화에 캐스팅 되기 좀 어려울 듯, 시트콤 하나 떳다고 바로 영화 주연배우에 캐스팅하기엔 성급했다. 드라마로 더 실력을 다지다가 영화로 가야했는데, 생각할수록 다 아쉽고 아쉽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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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집에서 한국 영화 한 편씩 보았다. 예전에 다운 받았다가 그냥 지우긴 아쉽고 해서 별 기대없이 보았는데, 역시나 기대이하였다.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나고, 더이상 영화나 책에 탐닉하지 말아야 겠단 생각이 드는건, 무슨 효과이지.? 부정적인 쪽으로 확실한 임팩트가 있으니 그냥 기억에도 안 남을 그냥그런 영화보단 의미가 있는걸까. 하여간 실로 엄청나게 안좋은 영화였다. 덕분에 다른이들의 감상글들을 읽어보니, 남의 분노의 폭발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러다 개판인 영화를 보고 남들의 욕들을 읽으며 킥킥대는 이상한 취미가 생길라 몰라..


 이 영화의 제목을 밝히기가 망설여진다. 왜 사람들은 그거 진짜 보지마. 완전 쓰레기야 그러면 더 보고 싶어지고..궁금해지고 그러지 않나. 하지말라고 하는거, 나쁜것에 대한 금기는 하고싶다.란 욕망을 낳게 만든다. 그렇다고 정말 그지 같은걸, 대충 보통으로 말하는건 내 성격상 그러질 못하고, 영화가 아무리 별로여도, 그래도 만든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을 가상히 여겨 좋은쪽으로 보려 하지만, 그 인내의 한계치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았다. 짜증과 화가 솟구치다가 그냥 제풀에 지쳐 자포자기되는, 극장에서 보았다면 중간에 나갔을 테지만, 이건 언제라도 중단할 수 있으니 그래 어쩌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다 보긴 했다. 

 한편으론 사람마다의 취향 차이도 있는 거고, 누군가의 평이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해석이 다양하니까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절대 부정은 한편으론 긍정과도 통하니까..보시려거든 뭐 어쩔수 없지만, 정말, 3시간 18분 동안 낮잠을 자거나 공원에서 사람들 구경하는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이 영화에 대해 잘 쓴 글 하나,,

http://blog.naver.com/careercenter/50103892623  


 재밌게 본 글 하나..

http://blog.naver.com/nicemonk/90103813663


 영화라는 장르는 대중예술이니까, 보편적 공감대의 형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자위하는 영화는 골방에서 해야지. 멀쩡한 배우들 데려다놓고 자기 위안거리 삼아 기만하고 위선떨었으면 양심이 있어야지. 그걸 극장에 걸다니 정말 사회적인 패악이다. 문화의 다양성 존중. ㅎ 이걸 보았다면, 그런말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이걸 극장에서 본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후유증이 오래 남을듯 하나, 광해나 피에타를 보고 제자리로 와야겠다. 


 삶은 관념속에 사는게 아니라는, 그래서 관념의 괴물이 되지 말자라는 참 힘겨운 교훈.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정말 최악인 영화에 대해서 인데, 가을이래서 이래저래 순화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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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랬만에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 갔다. 이런저런 얘기 와중에 친구의 회사 대표가 고인이 되었단 이야길 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올해 초에 친구가 부탁한 일로 잠깐 그 대표와 인사를 나눈적이 있다. 젊고 패션 감각이 남다르게 보였고, 겸손한 분 같았다. 친구를 통해 대략의 약력을 들으니, 내 자신이 내심 부끄러워졌다. 4D 디지털 미디어의 새로운 개척자이고 전도유망한 기업인 이었다. 죽은 이유는 자살이란다. 내가 디지털 테마파크에서 찍어야 할 주 피사체였던 그는 시기적으로 얼마 후 고인이 된 것이다.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서 그를 놓치지 않고자 매우 집중하며 관찰했다. 잘은 모르지만 그 사람의 끼와 열정이 부럽기도 했지만 왠지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기도 했다. 성공의 정점, 혹은 문턱에서 그런 욕구나 이행이 이해하긴 힘들지만 왠지 성공은 말못할 고민과. 고독을 수반하고, 고립을 가져오는지도 모른다. 믹 재거가 이런 말을 했다지.. " 너무 높은 곳에 있으려니 매우 고독하더군요.." 


2

 평소에 피우지 않는 담배를 세까치나 피웠다. 예전에 담배 같이 피우던 친구래서일까. 아니다. 여자 이야기를 하다 담배에 손이 갔다. 

 

3

 연휴를 맞아 한가할 것 같은 카페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요즘 새로 사서 항상 들고 다니는 카메라로 친구의 모습을 2컷 찍었고, 그도 내가 찍는걸 알고 시선을 맞춰 주었다. 사진 찍는 순간이야 모기가 사람의 손바닥에 으깨질때 내지르는 비명소리 보다 더 짧은 순간이지만 사진가에겐 그 일상의 사소한듯한 찰나의 순간이 소중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오늘 찍은 스냅 사진들은 리뷰해보니 친구를 찍은 사진 2장이 없었다. 그가 카메라안의 사진을 재생해 보면서 그 사진을 지운 것이다. 내 동의도 없이, 미묘한 문제였다. 지금 화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결론은 디지털 사진 문화의 경솔함과 사진의 인식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작지만 중요한 오류였다. 친구의 초상권의 발휘는 친구니까 구체적 동의 없이 행해졌다. 내가 언어적 동의 없이 찍었기 때문에.. 친구니까 그럴 수 있는 거지만, 찍고 찍히는 소중한 의미를 사람들이 알아갔으면 좋겠다. 디지털세상의 이미지는 너무 쉬워졌다. 그냥 버튼 두번 누르면 지워진다..말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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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말 그대로 개 고생 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노인네가 몰던 자전거에 이끌려 흰색 털을 휘날리던 애완견은 작은 몸집과 다리로 있는 힘을 다해 주인의 자전거 속도에 맞췄다. 

주인은 그 개가 큰 견공이라도 되는줄 아나.

말 못하는 개는 주인의 속도에 죽기살기로 뛰었다. 

마주오던 거리가 가까워질 찰나.

나는 개의 표정을 똑똑히 보았다. 

혀를 늘어뜨린채 

 한계에 다다른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찰나이지만 개의 영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개,개,개,개,같은..

내 인생.

그렇게 지나쳤지만 

유유자작히 자전거 페달을 돌리던 주인은 이내 곧

한 줌의 무게를 느끼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인내하며

아스팔트 위에서 죽어갔을 작은 영혼을 위로하며

한계를 넘어 승화하는 정신을 기린다.


사진의 진정성은 그런 순간이 찍힌 것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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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아라키가 아주 싫지도 좋지도 않았었다. 항상 흥미롭고 대단한 사진가라고 여겼다. 좀 나쁜? 취향의 별종이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걸 과감히 하는 걸 보고 멋지게 느껴졌다. 전세계적인 아라키의 인기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언제부턴가 아라키 사진의 매력을 알았다. 


 우리는 사회적인 도덕이나 불문율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성에 관한 말이나 표현이 항상 억압돼있다. 그래서 간혹 혈기 왕성하던 어릴적 친구들은 만나면 과도하게 음담패설을 지껄이고, 그 억압된 말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그런것과 마찬가지로 아라키의 사진은 보통사람들에게 인간이 가진 본질적 에로틱함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 같다. 포르노그래피를 포르노만은 아닌 것으로 만든 천재라고 이제는 서서히 느낀다. 


 아랫도리를 벗은 여인이 찍혀진 사진은 어떠한 속박의 굴레도 없다. 수도 없이 많은 여자들을 찍으며 그는 섹스를 모델과의 친밀함, 유대의 과정으로 여기는 듯 하다. 일본이란 나라가 가진 성의식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지만, 어떤 면에선 가식없는 그들의 솔직함이 맘에 들기도 한다. 


 집에 타쎈에서 나온 아라키의 컴필레이션 성격의 두꺼운 사진집이 있는데, 나는 간혹 어머니나 조카가 내가 없는 사이 우연히라도 볼까봐 걱정된다.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변태 사진보다야 훨씬 낫지만, 그 두꺼운 사진집의 대다수가 여자의 가랑이 사이라던가 벗겨놓고 끈에 묶여 있던가..라면 좀 정상은 아니라고 볼 것이다. 


 2000년인가 2002년 초반에 일민미술관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아라키의 전시가 크게 열린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 신문 기사를 통해 듣게 되었는데, 세계적인 사진가여서 오프닝때, 사회의 내노라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이 모였는데, 그들의 충격이 만만치 않았던, 아이러닉한 광경이었다고 한다. 아라키의 그런 사진들이 대형 액자에 걸려있는 와중, 젊잔빼고 있으나 욹그락붉그락 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아라키가 멋진건 그런점이다. 가식과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지점에 그의 사진에 있다. 원초적 욕망의 추구. 사진으로써의 소통. 노골적인 순수함.. 그런 것이 점점 마음에 와닿는 중에, 이책을 읽으니 그의 대단함이 책제목과 같이 되었다. 하나의 걸림도 없는 자유인이다. 말하는 듯한 문체는 투명한 내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진의 시작은 패션


 어깨에 가방을 멘 채로 찍으면 안 된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맨몸으로, 몸으로 찍어야 합니다.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거리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어야 합니다. 염탐꾼이 되든가, 찍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든가,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삼각대를 세우고 4X5 인치 대형 카메라로 일부러라도 확실히 찍어야 합니다. 어중간한 모습은 좋지 않습니다.


 그리고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은데, 예를 들어 차라도 한잔 권할 수 있는 관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복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진은 관계의 문제이거든요...그러니까 ‘어!’ 사진가가 왔네’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지 않겠지요.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 사진의 시작은 자기 자신과 가까운 대상부터 관계를 만들고 차근차근 해나가면 됩니다. 알아챈 걸 계속해 적용해나가면 사진의 여러 가지 기술과 방법을 알게 되지요. 방법론이란 건 현장에서 나옵니다. 즉흥적인 아이디어랄까, 그런 걸 과감하게 해나가는 게 좋습니다. 

사진에서는 사건이 없는 쪽에 드라마틱하고 중요한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불이야’ 보다 ‘마음의 불이요’ 가 더 중요한 것을 담게 마련입니다. 사진으로 사건을 표현하기는 쉬워요.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내면까지 도달할 수 없게 됩니다. 사건이란 것은 표층이 대단하니까요. 물론 표층도 내면을 담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나쁘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나쁜 사진이 나온다는건 결국 찍은 사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부족한 거지요. 그만큼 사진에는 자기 자신이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정말 사진을 하다 보면 자기가 탄로 나니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추는 거지요.. 성기에도 껍데기를 씌워 보이지 않게 하듯 말입니다. 진실이 보이지 않게! 


 사진이란 묘사하고 찍는 데 여러 가지  기술을 필요로 하지만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 사람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돌아서는 타이밍 - 셔터를 누를 때는 다가서는 타이밍도 필요하지만 끝낼 때의 타이밍도 절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대목이 미움을 받을지 사랑을 받을지 나뉘는 갈림길이지요. 어렵지요. 뭔가 좋은 기운을 남긴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내 사진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동시에 들어가 있어요.  한 장의 사진 속에 그걸 집어넣어서, 느껴지게 해야 되는 거지요. 과거, 미래 , 현재를 한 장으로 보여주어야 해요. 


 사진은 공동 작업- 사진은 일종의 인터뷰입니다. 인터뷰라는 것이 상대로부터 무엇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사진은 인터뷰와 똑같습니다. 표현이 아닌 표출. 그러니까 상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무엇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닮게 그리는 게 데생은 아니잖아요. 기분을 데생해야지요.



 좋은 의미에서 들춰내는 폭로랄까 피사체랄까 상대가 모르고 있던 점을 찾아내서 가르쳐줄 수도 있고요. 그런 게 사진 작업입니다. 당신 부인이 이렇게 매력적이랍니다. 매일 밤 마주하면서도 모르고 계셨죠?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으면 여자를 바꾸고, 남자를 바꾸고 장소를 바꾸세요. 자기 사진을 바꾸고 싶다면 카메라를 바꾸면 됩니다. 카메라를 바꾸면 사진이 달라지거든요. 


 인간은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가지요. 사진은 과거를 질질 끌어와 현재를 찍으니까요. 과거를 끌어오지 않는 사진은 좋지 않습니다. 

 중요한 과거는 어머니 같은 겁니다. 노스탤지어라고 하고 센티멘탈이라고도 말들 하는데 그게 없다면 인간이 아니니까요. 


 혹시라도 사람들이 제각각이고, 관계성이 전혀 없더라도 나는 관계성을 만들고 싶어요. 인간관계는 이어져야만 합니다. 


 대상은 처음부터 이미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사진 찍히는 대상이란 건 그런 거예요. 음 하지만 그 이야기를 눈앞에 생생히 되살릴 수 있는 사진을 찍는 것이 관건인 거죠. 그래야 좋은 사진이랄까. 재미있는 사진이 됩니다. 


 역시 솔직한 기분으로 찍으면 좋게 나와요. 자신의 마음렌즈로 찍는 것처럼요..


 한낮의 스트로보 같은 느낌.


 프레이밍을 정확히 하는 건, 틀에 집어넣는 거잖아요. 그렇게 상자 안에 넣는 게 아니고 ‘ 이 사진은 프레이밍이 없군!’ 하는 기분이어야 하는 거지요. 


 언제까지나 영원히 종점은 없다고 할 정도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끝나버립니다.  완성이란 건 멈추는 것이고, 그건 죽음이니까. 


 사람에게 끌리는 친근감을 가졌다는 건 실은 사진가가 되기 위한 최대의 요소일지도 몰라요. 인간성의 문제니까 말이죠.

 사람을 찍을 때는 역시 찍는 사람의 매무새 같은 것도..

 사랑받을 수 없다면 피카츄처럼 되지 않으면 안 돼요. 좀도둑도 아니면서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는 하지 마세요.


 대개 아래쪽이 알몸이 되면 얼굴도 꾸밈이 없어집니다



 

 좋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할 것이다.

 악처를 만나면 철학가가 될 것이다. _ 소크라테스


 책의 표지를 보고 책에 처음 읽게 되는 위의 문장을 읽고 나면, 역시 한대수 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실로 나는 그동안 한대수(존칭을 쓰고 싶지만 편의상 여기선 생략)의 책들을 오래전부터 읽어왔었다. 이전에는 뮤지션으로써, 지식인으로써 존경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인간적인 존경을 넘어서 어떤 삶의 숭고함 까지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알콜 중독에 빠진 아내와 어린 딸을 돌보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TV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가감없이? 보여준 그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고충과 따듯한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연민 혹은 공감을 일으켰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 또한 그의 삶의 진면목을 엿볼수 있었다. 그의 굴곡진 삶에서 우러나오는 연륜은 문장 하나하나가 관조적이고 절제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자상한 할아버지의 생각은 우리나라 최초의 히피라는 수식어 처럼 자유롭고 부드럽다. 


 갑부집 아들로 태어난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이야기는 이미 이전의 자서전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의 부친의 일화도 인상깊었었고, 참고 기사 _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11222000217


 보헤미안으로써 늦게 아버지가 된 그의 삶의 이야기들과 세상을 보는 관점은 어떤 유명한 학자의 글보다도 진솔하다. 사진 수필집인데, 나는 수필 부분이 확실히 더 마음에 든다.

 정말 양호한 책이다. 한대수 1집 '멀고 먼 길'을 들으며 나는 양호한 생각을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다. _ 찰리 채플린

코디 최 선생님의 주옥같은 칼럼이다.

 

나의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는 죽음을 앞 둔 남자가 바쁜 일 상 속에서 평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인생의 마지막에 해보기 위해 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하는 어느 외국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듯하다. 하지만 그 영화의 주제는 버킷리스트 자체에 의미가 없다.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가운데 진실한 친구를 만났다는 결론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렇다, 이 영화 속에 감동은 버킷리스트가 아니고, ‘진실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갓난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지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부모, 친구, 사회의 동료들을 통해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성장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모습을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거울의 욕망이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나는 항상 남을 의식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은 남에 의해 비춰진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의진실에 목마르다. 따라서 나의 버킷리스트는 설령 찾지 못한다 해도 나의진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진실을 찾아보는 구체적 방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고, 확실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해오던 일들의 삶 속에서 그 길이 있지 않을 까 생각한다.

 

교수와 작가 그리고 문화이론가라는 직업으로 살아왔기에,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아마도 구체적인 작품정리를 할 것 같다. 없애야 할 작품과 간직해야 할 작품 그리고 가족에게 물려줘야 할 작품과 사회에 환원 시켜야 할 작품을 분류하는 일. 아마도 그리하다보면 내가 보지 못했던 내 작품의 진실이 다시 보이지 않겠는가.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함께 수학했던 제자들 중에 진정 훌륭한 작가와 학자가 나와 주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나의 가르침에 진실한 면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 번째 버킷리스트는 나 자신의 삶을 글로써 정리해 보는 것이다. 결단코 이 글은 남에게 보여 진 내 모습을 정리하기 위함이 아니며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에서 쓰는 자전적 글이 될 수 없다. 스스로 내가 어떤 사람이며 내 속에 나의 진실은 무엇이었는가를 알기위해 가족, 친구, , 사랑, 기쁨, 슬픔, 미움, 욕망, 좌절 그리고 못남과 괴로움까지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들을 정리해 보고 싶다.

 

아마도 이러한 일들을 해 나가다보면 사회와 남들이 규정한 도덕과 규범 그리고 평가 속에서 나 자신도 견디기 힘든 추함이 들어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진실을 찾고자하는 힘없는 늙은이가 감당하기 힘든 후회가 밀려 올 지도모르겠다. 그렇기에 노년의 나에게는 남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괴리로부터 위로가 필요하며, 그 위로를 받기위해 종교에 몰입하려한다. 라캉이 말했듯이 남들에 의해 만들어진거울의 욕망을 벗어나는 길은 종교이다. 종교는 남들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고, 절대 주 을 의식하기에 그것이 가능하다.

코디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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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탁스 G2를 가지고 있던 일년동안 많은 스냅 사진을 찍었었다. 그 때, 100피트 짜리 롤 필름을 사서 현상소에서 얻어온 쓰고 버린 빈 필름 카트리지에 말아서 썼다. 이것을 당시 마끼필름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때에도 필름을 쓰는 일은 꽤나 아날로그적 일이었는데, 내가 쓸 필름 카트리지를 손 수 테잎 붙여 말아가는 일은 아마도 한땀한땀 손뜨개질 하는 심정과 비슷할 것 같다. 

 이것을 다시 팔면서 필름 로더기도 곧 팔았다. 더 이상. 35미리 필름은 사용할 일이 없단 결단이었다. 아쉬울 건 없었지만, 뭔가 시원섭섭하긴 했다. 필름의 사용이 점점 줄어들면서 이젠 저런 카메라가 구석에 쳐박혀 먼지를 쌓여 가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한낱 기계의 운명은 풍전등화 같다. 


 칼 짜이스, 빨간색으로 T* 코팅을 알리는 저 렌즈를 쓰면 정말 멋드러진 흑백 톤의 사진이 나올거 같은 환상에 빠졌다. 실제로 매우 좋은 성능을 내주는 렌즈 였다. 라이카 렌즈 외로 가장 성능이 좋은 렌즈가 아닐까. 과학적 수치야 관심없지만. 암실에서 인화를 하거나, 필름 스캔을 해보면 그 느낌이라는게 있다. 훌륭한 렌즈와 함께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바디의 모양새. 




 샴페인 골드 색상의 바디와 렌즈 모양새는 완벽하다. 기계식 수동 카메라 보다는 전자식 자동 카메라에 가까운 기종이다. 조리개 우선 모드의 자동노출과. 오토포커스. 필름 자동 감김. 등등.. 필름 RF카메라의 기술 집약체가 이 카메라가 아닐까. 오토포커스 가 느리다지만 쓰지 못 할 정도는 아니고, 뷰파인더가 작고, 시차가 있지만. RF에선 어쩔수 없는 것이고, 적당한 크기와 무게. 무엇보다 훌륭한 렌즈 시스템. 필름의 몰락이 아니었으면 가지고 있었을 텐데. 이제는 이 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바라보며 추억으로 콘탁스 G2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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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처음 봤을 땐, 조금 길고 살짝 지루한 듯 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영화였다. 가 첫인상이라면 최근에 다시 본 이 영화는 '아 감동적이다.!' 조금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아침,저녁 선선한 공기의 가을이 오는 전조는 노총각의 심리를 님의 침묵의 한 구절에 울컥하게 만들고, 진부하고 전형적인 스토리의 이 영화에 몰입해, 가슴이 스산해지는 사랑을 엿보기도 한다. 



 다시 보려고 한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 잭 화이트의 출연 때문이었다. 영화가 개봉한 2003 년이면 화이트 스트라입스가 최고의 절정기를 보낼 때, 이 영화가 촬영. 개봉 된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잭 화이트와 르네 젤위거가 염문설이 돌았고, 멕 화이트와 결정적으로 법적인 부부관계를 깨게 된 시점이, 밴드의 성공의 정점과 영화 출연에 따른 외도 일 것 같다는 내 나름의 추측이다.

 어찌되었건. 영화속에서 잭 화이트는 전통 노래를 부르고, 이 영화의 유일하게 아이러닉한 코믹 씬을 유발한다. (그의 극중 이름은 조지아)


 이 영화에서 사소한 단역 조차도 배우들이 어마어마 하다. 나탈리 포트만 조차도 조연으로 짧게 출연했고, 나탈리가 나오는 씬의 나쁜 북군 쫄병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의 주인공. 유럽의 명감독들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유명한 배우인데 이름은 잘 모름. 배우들의 면목이 그러하니 감독은 누군가 했더니 안소니 밍겔라 .. 


 '더 리더'''리플리' 의 감독이었다. 2008년에 54의 나이로 타계. '잉그리쉬 페이션트'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앞의 두 작품과 이 '콜드 마운틴'이 가장 좋다.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엔 못다핀 꽃 한송이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50대 나이면 감독으로써 한창 일 할 나이일텐데. ㅜㅜ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전쟁속에 피어오르는 두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 너무 뻔한가. 하지만 감독은 그렇고 그런 삼류 감독은 당연히 아니다. 초반의 전쟁씬만 보아도 감독의 의도와 탁월한 시각을 엿볼수 있었다. 


 대부분의 명작 전쟁영화들을 보아도 전쟁씬의 박진감 넘치는 생동감은 있어왔다. 심지어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 등에서도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전쟁의 오락적 시각은 있었다. '글래디에이터' 같은 경우는 전투의 호쾌함이 전쟁의 참혹성을 넘어서 관람자에게 마치 내가 그 전투속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우는 듯한 스펙타클한 시각을 제공한다. 아마도 헐리웃 영화, 아니.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매체의 난센스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이 '콜드 마운틴'의 초반 전쟁씬은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참혹하게 연출되었다. 전쟁 액션

의 드라마틱함은 온데간데 없고, 마치 인간지옥 같이 진창에서 뭉게지고 처절하게 살육 되어진다. 나는 감독의 이러한 의도와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의 시각에서 벌어지는 박진감 넘치는 전쟁의 보여짐이 아니라. 정말 전쟁은 저렇게 끔직한 거구나 란 걸 심지있게 보여줬다. 당연히 영화 내용상. 주인공이 탈영을 하게 되는 납득할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니 그렇겠지만, 더 넒게는 감독의 세계관과 이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초반 대규모 전쟁 장면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단연코 전쟁이 화려할 수가 없듯이..


 결국 전쟁속에 피어오르는 사랑과. 삶의 가치들을 말하는 영화다. 전쟁터에 나간 군인뿐만 아니라  남겨진 민간인들 또한 그에 못지 않게 고통을 받는다. 어쩌면 더 막막한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게 남은자의 몫이 아닐까. 어느 전쟁이나 그렇듯이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이고, 더욱 악랄하게 설친다. 이 영화는 그런 전쟁 내.외면의 모습들을 남,녀의 애틋한 마음을 통해 감동적으로 잘 보여준다. 결국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일 수 있지만,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삶의 평화와 아름다움의 가치를 말한다. 맛있는 음식과 음악, 그리고 아이들.. 새로운 가족들 속에서 다시 삶은 찬란한 태양같이 피어오르고 평화와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저릿하게 일깨운다. 




 주인공 인만(주드 로) 과 에이다(니콜 키드맨)가 서로 사랑하게된 계기가 될 만한 큰 사건이나 이야기가 없다. 목사의 딸인 에이다가 콜드 마운틴 이라 불리는 고장에 이사와, 말수가 적은 시골 목수인 인만과 인사하게 되고, 서로를 향한 설레임은 눈빛으로 덤덤히 전해진다. 별다른 이유 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은 순수한 사랑의 발로일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그 이유 조차도 없는게 옳다. 그냥 그대로 끌리는 마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인만은 어느날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며, 꾹꾹 눌러 놨던 감정을 어렴풋이 발설한다. 아침에 깨어날때 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뭇친 그리움을 무엇이라 말해야 하나. 시적이고 아름답고 진솔하다. 투박하지만 진실이 담긴 그의 표현은 정말. 감언이설의 사랑의 방정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음은 서로의 첫 대면에 한순간에 통한다. " 아무말 없이 마주 서 있는 걸로도 충분하다면요.." " It is ! " 


 좀 다른 이야기인데, 주드 로를 보면 참 완벽한 남자의 이미지다. 최근에 보게된 영화 '벨아미'를 보면서 느낀건, 주인공이 전혀 벨아미스럽지 않아, 나는 오히려 주드 로 가 떠올랐는데, 혹 그가 지금 벨아미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벤 반스가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서로 잘 알지 못한채, 사랑이 무르익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없이, 인만은 전쟁터로 떠난다. 서로의 사진을 전달한 것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들은 깊은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인내한다. 사진의 초창기 시절. 다게레오타입 초상 사진을 볼 수 있다. 영화 곳곳에서 초상 사진의 의미가 아주 절절히 드러난다. 1860년 그 시절. 초상 사진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 사진을 준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단면을 전달한 것일게다. 


 전쟁터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죽음의 사경에서 에이다의 편지를 듣고, 그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깨달아 탈영을 감행한다. 이때부터, 고향으로 가는 그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오로지 그녀를 향한 마음만을 품은채, 그는 어떠한 시련과 욕망에도 견뎌내어 꿋꿋이 나아간다. 염소를 키우는 할머니의 외딴 오두막에서 그녀가 자기를 잊었을거란 불안에 감정이 북받치지만, 그는 끝끝내 일말의 그 마음을 잊지 않았다. 에이다도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상속에서 꿋꿋하게 삶을 견디어내고 개척했다. 여기서 르네 젤위거의 탁월한 캐릭터와 연기가 인상 깊었다. 

 

 염소를 잡으면서 인만에게 말해주던 할머니의 대사가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전쟁터에서 수도 없이 살인을 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은 " 이렇게 살아있다니..." 

 "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제 역할이 있어. 자연을 둘러봐. 새가 씨를 쪼아먹고 새똥에 섞였던 씨가 나무로 자라나지. 새도 똥도 또 씨도 제 역할이 있는거야. You've got a job ! "




 전쟁터에서 황폐화된 자신의 영혼을 그녀를 향한 마음만으로 간신히 부여잡고 끝끝내 도착해 그들은 해후한다. 하지만 단 하루의 사랑의 달콤함도 운명 앞에서 비극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힘들게 마음의 끈을 놓지않고 기다렸건만 역시 영화의 대미는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이렇게만 들으면 전형적인 진부한 사랑이야기지만 이 영화의 뭉클함은 보이지 않아도, 지금 여기 없어도, 현실이건  상상이건,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씀에 있다. 그는 갔지만 세상 곳곳의 만물의 사소한듯한 경이 속에서 그의 마음을 발견하는 에이다의 멘트로 영화는 끝난다. 


 뭐 전형적인 로맨티스트다운 영화다. 가을에들어 그런 감정에 치우쳐 이 영화를 감상했지만,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겉으로 드러난 사랑이야기의 배경에 깔린, 전쟁의 참상을 어떤 정치나 이념의 치우침 없이 보여준다는데 있다. 마치 반전 영화의 명작 '지옥의 묵시록' 에서 로드무비식으로 전쟁의 광기를 보여주듯이, 전쟁이 가져오는 다양한 비극을 주인공들의 기나 긴 여정에서 드러내준다. 그리고 그것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더 특별한 반전영화가 되었다. 

 다시금 감상한 이 영화는 아주 훌륭한 영화라 생각된다. 잭 화이트가 나오는 영화 답게 음악이 아주 훌륭하다. 왠지 신혼부부가 주말에 부둥켜안고 감상하면 좋을 영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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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데니스 호퍼가 죽었을 때, 단연 생각나는 영화 '이지 라이더'.  코폴라 감독이 죽었을 때, 공중파 티비에서 더빙판으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 를 방영하는걸 찜질방에서 보고, 역시 대단한 감독과 영화라고 찬탄을 했다. 마찬가지로 데니스 호퍼 감독이 죽었을 때, kbs에서 이 영화의 더빙판을 해줬던 모양이다.  (코폴라 감독은 아직 안 죽었다 함.. 착각하고 있었음)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비디오 테입 대여 시절이었다. 사막을 가르는 두 대의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사진은 남자들에게 무의식 깊숙이 뭔가를 자극하고 갈망하는 방아쇠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자유라는 이름의 도달하기 힘든 이상 일 것이다. 


 다음 글귀들은 스크랩글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 : 파국이 예정된 자유와 평등을 향한 질주

  데이스 호퍼(Dennis Hopper) 감독

 

  1960년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으로 얼룩진 20세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매카시즘으로 얼어붙었던 19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도착한 미국은 좌파 경향의 사회운동(흑인, 여성의 권리운동과 반전운동)과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으로 흥분과 혼돈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회운동은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날로 심각해져 가는 베트남 전쟁과 거듭되는 암살사건(케네디 형제,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은 1970년대의 패배를 암시하고 있었다. 장르-스타-스튜디오 시스템의 공식으로 운영되던 할리우드 영화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발표된 1967년은 ‘혁명의 해’로 불릴 만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1960년대 젊은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영화로 담아낸 결과였다.

 

  데니스 호퍼의 1969년 작 <이지 라이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결정판이었다. 빌리(데니스 호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찾아서’(캡틴 아메리카의 가죽 점퍼와 헬멧과 모터사이클에는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올리언스까지 여행을 떠난다. 돈은 마약 밀매로 마련했고, 일용할 양식은 마약과 마리화나이다. 그들의 여정에 히피들과 변호사 조지 핸슨(잭 니콜슨)이 스쳐 지나간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면서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새로운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를 꿈꾸고, 조지(조지 워싱턴?)는 전쟁과 빈곤, 지도자와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버린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자유와 평등을 명시한 미국 독립선언의 실현 불가능성,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역사에 대한 회의로 빠져 들어간다. 모래땅에 씨를 뿌리는 히피들은 이상주의자들이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 조지는 허무주의자일 뿐이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는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마르디그라(사육제의 마지막 날)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지만, 축제의 제물로 바쳐진 것은 기성세대(또는 보수주의자들)의 총에 맞아 죽는 그들 자신이었고, 남은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이었다.

 

  노예시장으로 악명 높았던 뉴올리언스에서, 실패했다고 고백하는 두 사람은 미국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에 할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에서 벗어난 방법이 영화의 주제를 뒷받침한다. 스타를 배제하고, 카메라를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옮기고, 장르를 패러디하는 저예산의 독립영화. 서부영화의 와이어트 어프와 빌리 더 키드는 캡틴 아메리카와 빌리가 되고, 서부에서 동쪽으로 무대를 옮긴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패배자가 된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버디 무비와 가정이 없는 로드 무비의 형식, 록 다큐멘터리와 뮤직 비디오를 예견하게 하는 반전 무드의 록 음악 사용……. 고전적 영화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한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미국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기수 케네스 앵거의 <떠오르는 전갈궁>은 참고서가 되었다.

 

  “위대한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 때 오류가 발생한다”는 고다르의 예언처럼 데니스 호퍼와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1970년대의 보수주의 물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모두 빼앗기고 덧없이 시들어갔다.

 

  ㅡ김경욱(영화평론가)


「이지 라이더」는 한 편의 예술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토리는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 빌리(데니스 호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라는 별명의 젊은이가 큰 돈을 벌게 되어 멕시코에 가서 마약을 구입한다. 이들은 부자가 된 기분으로 참회 화요일에 뉴올리언즈를 방문하겠다던 오랜 꿈을 실현하기로 하고 오토바이 두 대를 사서 국토 횡단을 시작한다. 도중에 모뉴먼트 밸리와 타오스 푸에블로를 비롯한 서부의 유명한 아이콘을 지나친다. 

그들은 히피의 코뮨에도 들르고 감옥에도 갇히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 나오고, 또 두 명의 매춘부와 함께 뉴올리언즈의 한 묘지에서 마약파티를 벌인다. 이 모든 것이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진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는 1968년 이후 세대의 할리우드 영화의 발생단계에 속하는 영화이며, 처음으로 스크린에 ‘대안사회’를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쓰고 인디언 목걸이를 한 호퍼와 성조기가 그려진 헬멧과 오토바이를 탄 폰다, 두 오토바이족은 아이콘적 인물이다. 

사용한 마약의 양도 엄청났다(영화 속에서뿐 아니라 배우와 제작진이 소비한 양도 많았다고 한다). 두 주인공은 히피 여자들과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변호사 친구 조지와 마리화나를 피우며 캠프파이어를 하고 철학자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다. 잭 니콜슨이 처음으로 맡은 큰 역할인 조지는 부잣집의 아들로 경직된 사회를 거부하며, 미국이 관습을 벗어난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파멸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물건이 되어 있는데도 자유롭다고 느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야.” 조지가 내뱉은 이 말은 곧바로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이지 라이더」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관습에 도전한다. 젊은이에 의한, 젊은이를 위한 영화이며(이 영화를 감독할 당시 호퍼는 32세였다), 반문화의 기수인 스테펜울프,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등 음악이 등장한다. 주 인물(니콜슨, 호퍼, 폰다) 중에 스타는 없었고, 서사는 인물만큼이나 제멋대로다. 전통적인 사랑이야기도 없으며, 결말은 잔인할 정도로 비극적이다. 아주 적은 제작비로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렸고 그럼으로써 할리우드의 관습에 반항하는 새로운 영화의 길을 닦아놓은 셈이다. 그중에는 다시 잭 니콜슨이 등장하는 「잃어버린 전주곡」과 「마빈 가든스의 왕」도 포함된다.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누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호퍼는 자신이 단순히 연출과 출연만 한 것이 아니라 대본까지 책임진 이 영화의 ‘작가’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달리 보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주인공들과 조지의 대화 같은 영화의 가장 굵직한 장면은 사전에 테리 서던—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대본작업에도 참여했던—이 써놓았던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모두 동의하는 사실도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목이 서던의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_ 네이버캐스트


그들은 자유를 찾을 수 있었을까?


  1960년대 후반의 미국. 그 곳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좌파경향의 사회운동, 즉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이 일어나고 있었고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이 있었으며 날로 심각해져가는 베트남전, 그리고 거듭 일어나는 암살 사건 등이 가세하여 더욱 불안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불안 가운데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혼란 가득한 상황 속에서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어 하는 탈출에의 욕구를 담아낸 영화가 ‘Easy rider’라고 생각한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 이 두 젊은이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그들의 양식은 마리화나와 마약이었고 오토바이 두 대가 그들이 가진 재산의 전부였다.  비단 이 두 사람만이 자유를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오토바이 여행 여정중 만나게 되는 히피와 변호사 조지 또한 그러하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함과 동시에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로의 회귀를 꿈꾸었으며, 조지 또한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지만 두려워하며, 전쟁과 빈곤,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 버린 평등한 사회가 되기를 지향한다.

 

  이들은 그럼 그렇게 원했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을까? 환각제를 일삼으며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찾아온 것은 어이없는 죽음뿐이었고 남겨진 건 성조기와 고장이 나버린 오토바이 뿐이었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끝까지 따라다니는 성조기는 이들의 머리위에서 항상 억압세력으로 작용하는 미국의 힘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죽어버림으로써 꿈이 모두 무산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해석해 보면 그들은 실제의 삶에서 얻지 못한 자유를, 죽음이라는 잘못된 해결을 통해서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삶에서의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꼭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무언가의 혁명이 일어나려면 꼭 그만큼의 선동 세력이 있어야 하고, 얼마만큼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그 다음에야 무언가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정반합 구도가 아니던가. 공산주의를 밀어내고 자유주의가 이 세상을 다질 때까지의 과정이 그러했으며, 모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설 때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희생까지도 감내하면서 나서는 선동주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소수일 뿐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겁이 나서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다. 그들을 겁나게 하는 대상은 차마 대항할 수 없는 지배 권력 체제이다.

 

  영화는 처음의 독립선언서 정신을 망각한 채로 점점 자유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미국에 대한 반기를 들며 체제전복을 꿈꾸고, 점점 사람들을 위협하는 시대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다룬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변호사 조지가 다 그러했다. 그러나 이 세 사람은 자기 목소리를 높여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들을 죽인 건 기존의 보수 세력들이었다. 데니스 호퍼 감독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폭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도리어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들이 꿈꾸었던 건 어떻게 보면 모든 이들의 이상과도 동일할 것이다. 불안이 없는, 빈곤이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고 무참하게 세 명의 이상주의자들이 죽는 장면을 통하여 그 현실의 실현 가능성이란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_ 네이버 리뷰어


1960년대 후반 미국은 공포의 매카시즘이 사라지고 나서 한쪽에서는 베트남전쟁 확산을 본질적으로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인권운동을 필두로 하는 사회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다른 한쪽에는 보수주의 세력도 있었다. 이러한 진보와 보수주의 논리 속에서 젊은이들에게는 기성 세대의 권위를 부정 또는 저항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의식 구조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마약을 판매하여 모터사이클을 구입한 와이어트(피터 폰다)와 빌리(데니스 호퍼)는 남부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중 뉴올리언스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데 독특한 방식으로 생활하는 히피족을 만난다. 히피족의 철저한 무소유적인 공동체 생활방식에 관심이 끌려 얼마 동안 같이 생활하지만 자신들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라고 훌쩍 떠나 어느 도회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변호사 조지 한슨(잭 니콜슨)을 만나는데 한슨은 기존 질서의 억압과 권위주의에 신물이 나 이들과 같이 여행을 떠난다. 한슨이 여행 중 청년들에게 살해되자 와이어트와 빌리는 허무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환각의 세계에 빠진다. 그러나 그들도 뉴올리언스에서 사육제의 마지막 날에 농부들의 총에 사살된다.

196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American New Cinema)의 대표작으로 영화계에 충격을 던졌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계의 흐름까지 바꾸어놓은 걸작이다. 영화에서 젊은이들은 새로운 것을 향해 떠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는, 나약한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무모함과 충동적인 감정의 대가가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죽음 자체가 하나의 시대적인 아픔이다.

[출처] 이지 라이더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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