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게 뛰어난 작품이었다. 신들린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와 런던,바로셀로나,파리,로마에서의 영화를 마치고, 다시 자신의 본고장 뉴욕으로 돌아온 우디 앨런 감독은 커리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정말 그렇다. 우디 앨런은 켄 로치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만큼 존경한 감독은 아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존경까진 아니더라도, 현재 활동하는 최고의 영화 감독이라 생각된다.


 어느 블로거님의 표현이지만, 심각한 드라마와 경쾌한 코미미가 공존하는 신기한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란 말이 너무 정확하다. 우디 앨런 특유의 블랙 코미디적 재능이 얄미운 배경음악과 함께 황망한 재미를 준다. 


 한 여자 인생의 몰락을 그리고 있는데, 꼭 된장녀들에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돈의 거품에 기대어 허우적대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재스민의 불행의 시작은 대학시절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진짜 공부를 한게 아니라, 파란눈 금발머리의 우월한 유전자로 남자의 선택에 의탁해, 자신의 진정한 삶을 저버린게 문제다. 남편의 부도덕한 경제력에 방관하고, 남들처럼 치열하게 살지 못한 삶은 파국 앞에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고 끝없이 좋았던 시절과 현재를 비교하며 자신이 만든 나락으로 떨어진다. 결국, 혼잣말을 하게 되고, 미쳐버리거나, 자살하거나.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은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 재능으로 실상의 대책없는 우울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넌지시 농까듯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입양된 두 자매의 삶은 모든게 이항대립적으로 펼쳐진다. 동생이 말했듯, 재스민은 우월한 유전자 였고, 금발과 흑발의 차이 만큼. 두 남매에 관계된 모든 것인, 사는 곳. 인종. 말의 억양과 톤. 직업. 의 계층적 차이를 풍자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렇게 명품옷과. 가방으로 치장해도. 개털된 현실의 삶 앞에서 겨드랑이가 흥건하고, 이마에 땀이 번질거리는 재스민은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또다시 자신의 곤경을 타개할 남자를 찾아 거짓으로 치장한다. (이런 과정들에서 씁쓸한 웃음을 주지만 그마저도 산통) 


 진짜 불행의 감정은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현재 삶 과의 간극이 클수록 고통이라 한다. 그래서 돈이던, 명성이던. 높이 올랐던 사람은 행복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한다. 남편(알렉 볼드윈)의 사업은 2008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대표되는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업의 파렴치한 탐욕과 파산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에서 여러차례 언급되는데, 가난한 자들의 돈을 제 돈 인양 펑펑 굴리다 망한 파렴치한 사기꾼. 남자에게 돈이 많은 것은 그만큼 여자를 누릴 수 있는 욕망과, 유혹이 산재하다는 것이고, 남편의 모든일에 방관하던 재스민이 그 사실을 알고, 정말 우매하게도 남편에게 단죄를 내린게 결국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인지도 모른다. 


 남의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갖은 교양 다 떨며 남 무시하던 그녀는 몰락한 현실을 인정 못한다. 빈털털임에도 예전 습관대로 비행기 1등석을 타며 제정신 못차리는, 재스민을 보자니 한편으론 쌤통이다란 기분이 어지간히 든다. 점점 신경쇠약으로 미쳐가는 그녀의 모습은 잔인해 보일 정도로 뜨악한 심정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속 남의 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탐욕의 허영어린 결과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모두 돈이 가진 욕망의 탐욕에 놀아날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재스민과 대립적인 동생의 삶도 좋아보이진 않는다. 남자들에게 정흘리면서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그런 반면. 재스민의 아들은 재스민과는 다르게, 다 떨쳐버리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했다. 찾아 온 재스민에게 비수어린 말을 내뱉고 그녀는 망연자실한다. 이런 재스민을 연기하는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연기가 오금이 저린다. 불안정한 심리가 눈으로 순간순간 표출되는데,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따논 당상..


 우디 앨런의 뉴욕으로의 귀환이 매우 반갑다. 정말 의미있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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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인호 님이 작고 했다. 몇일전, 서점에서 최인호의 유작인 '인생'을 읽었다. 되게 많이 아파보였고,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는데, 우연찮게도 그 다음날 뉴스에서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유명인사의  부고 소식에 이렇게 헛헛한 기분이 드는건 실로 오랜만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의 참담함과는 다른 종류의 엄숙함 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예전의 어느 에세이에서 그가 우울증과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침샘암이라니, 마지막 책. '인생'은 죽음앞에 선 한 인간의 절박함을 토로했다. 이전의 글과는 매우 다른 느낌은 이승과 저승의 심판대에 선 인간의 선한 나약함 때문이었다. 그는 천주교와 불교의 가르침을 받들어 인생의 소박한 통찰을 말해준다. 그런 성인의 말씀들은 다른 책에서 많이 들어봤어도, 투병 생활을 하던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귀들은 더욱 심지 깊었다. 



 _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은 소화 테레사의 말처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과거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며, 미래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면 사리분별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불교의 골수인 [금강경]에는 이런 명구가 나온다.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선승 황벽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는 감이 없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이 없다."

 주님도 이에 대해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시지 않는가.

 "...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내가 내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빵을 달라는데 아버지께서 돌을 주시겠는가. 아들인 내가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시겠는가. 내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버지를 믿기보다 내 자신의 의지와 능력을 더 믿어 교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고 계신 아버지께서 내 날개를 꺾어 땅에 떨어뜨리겠는가.

 백척간두에서 유일하게 사는 방법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일이며, 성난 파도를 잠재우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의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지는 길이다. 36-37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렇게 노래했다.


 그가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대답했다.

 우린 두렵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벼랑 끝으로 오라.

 그들이 왔다.

 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과거를 걱정하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벼랑 끝으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가 날개를 가진 거룩한 천사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8-39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저를 붙드신 목적은 제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달음질치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 있는 하느님으로서의 '말씀'능력과 예술로서의 '행동'능력과 성령으로서의 '생각'능력, 즉 '지언행'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렌즈로 햇볕을 모아 초점을 맞추면 불꽃이 일어나 종이를 태울 수 있듯이 분열된 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오직 '사랑'의 초점으로 집중되어 불타오르게 하소서, 저의 말이 곧 저의 생각이며, 저의 생각이 곧 저의 행동이며, 저의 행동이 저의 말임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달려갈 수 있도록 주님 제 영혼을 받아주소서. 아멘. 170-171




 젊은 나이에 데뷔 후,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 했고, 대다수의 작품들이 영화화되며 대중작가로 인기를 누렸으나, 문학 작품 으로의 평가는 야박했다고 한다. 항상 그래왔듯, 잘 팔리는 대중작가에게 아티스트 대접은 언감생심 일까. 하지만 나는 '별들의 고향'은 안 읽어봤지만, 소설집. '타인의 방' 과 여타 에세이글들.. 그리고 '길 없는 길'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글의 리듬이 매끈하여 술술 잘 읽히며 몰입 뿐 아니라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묵직함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는 실로 진정한 작가라고 느낄 것이다.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 작가의 열정과 인내를 두루 갖춘. 


 유림 2권 까지 읽다가 말고, 잊고 있었는데, 몇몇 주요한 작품들은 읽고 싶어진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아직 못 읽고 있지만..


 오늘 오전에 명동성당에서 추모 미사가 열렸단다. 가고 싶었으나 못갔다. 비오는 밤. 마음으로나마 명복을 빕니다. 천주교인 이면서 재가 불자였던, 고인을 위해. 나무아미타불~ 아멘..




 켄 로치 감독의 작품중. 가장 따듯한 여운을 가진 영화다. 전작들에서 소시민들이 궁색한 삶을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을 건드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면, 이 영화는 사회의 낙오자들이 나오는건 마찬가진데, 과정들의 끝이 무겁지 않다. 어쩌면 상큼한 해피엔딩인데, 조금 켄 로치 답지 않다면서도 어쩔수 없이 반기게 된다. ( 켄 로치의 전전 작품일것인 '루킹 포 에릭' 도 따듯한 해피 엔딩 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퍽퍽한 리얼리즘을 벗어나서 좀 놀랬었던 )


 켄 로치의 영화의 배경은 거의 다 스코틀랜드다. 이 영화에서도 글래스고 와 에딘버러가 중심이고 위스키 양조장이 소개된다. 

 스코틀랜드 하면, 스카치 위스키와 퀼트 치마, 글래스고 출신의 4인조 밴드 '트래비스' 와 알렉스 퍼거슨 경.이 대표할수 있으려나. 아.. 헐리우드 영화지만 스코틀랜드 정신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 '브레이브 하트' 도 있었다.

 

 켄 로치의 영화들을 보면, 이 스코티쉬 억양의 영어를 실컷 들을 수 있다. 이전 영화들에 비해 영어가 조금 더 잘 들렸다. 세월이 갈수록 그 억양이 순화된 것인지. 내가 조금 더 귀가 틔인건지..여하튼 미국 영어의 느끼함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매우 강인하게 들렸다. 미국 영어에 익숙한 우리에게 스코치 영어를 실제로 맞닥드리면 멘붕이 오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투박하게 음률이 강한 영어를 익히다보면 재밌기도 하고, 가식없는 솔직한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을것 같다. 


 위스키 술로 대표되는 스코틀랜드의 문화의 일부를 답사한 느낌이다. 캘리포니아 와인 양조장과 포도밭을 둘러 볼 수 있었던 명작 '사이드웨이'가 생각난다. 와인을 마실때마다. 영화속 주인공이 가르친 대로 유리잔에 코를 깊숙히 들이대 향기를 맡는 습관이 생겼다. 와인잔을 돌려 산소와 잘 섞이게 한다거나, 입안에 넣고 혀의 여러 부의에 맛을 감지하도록 머금는다거나. 괜히 본것은 있어서 꼬래 술잔 들고 폼은 다 잡았다. 이 영화에서도 시음회의 과정이 그렇게 묘사된다. 실제 위스키의 제조 과정을 투어 관광처럼 보여준다. 너무나 너무다 위스키가 땡겼다. 



 내가 마셔본 최고의 위스키는 조니 워커 블루 라벨 이었다. 시중에선 30만원대고. 면세점에선 한 17만원 정도였던거 같다. 언젠가 대학동기들과 여행을 갔는데, 그중에 누가 아버지의 찬장에 모셔져 있던 조니워커 블루를 가져왔다. 소설속에서 청탁용 뇌물의 상징으로 유명해서 글로만 들어보던. 그 술.. 이것의 뚜껑도 코르그 마개고. 마개를 열고 닫는 느낌 부터가 꽉 쪼이다 뽕 하고 열리는게 차원이 달랐다. 이 술의 첫맛을 잊지 못하겠다. 그 그윽한 향이 입과 식도를 타고 온 몸에 퍼지는 느낌. 그제서야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년의 사내가 홀로 바에 앉아 술 마실때 왜 그렇게 한없이 그윽한 표정을 짓는지 이해가 되었다. 흔히 위스키를 마시면. 높은 알콜 도수로 인해, 식도가 타들어가듯 캬~ 하며 표정이 찡그러지며 짜릿했든데, 이 술은 쌔긴 쎄도 특유의 향내음이 독한 자극을 감미롭게 했다. 


 시바스 리갈만 되도 양반이지, 대학 초에 몇번 마셨던. 제일 싸구려 캡틴큐는 위스키라기 보다 신나(시너)에 가까웠다. 난 누군가 초딩학교에서 훔쳐온 알코올램프 알콜에 보리차 조금 섞은 것인줄 알았다. 시바스 리갈이나. 잭 다니엘스. J&B 를 흔히 마시게 되는데, 조니 워커 블루는 이런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아마 또 다른 위스키의 세계는 블렌디드 와 ..싱글 몰트 의 차이 일 것이다. 조니 워커 블루만 해도 최고의 맛 이었는데,, 영화속에서 나오는 전 세계 한 통 밖에 없는 유서깊은 몰트 위스키는 그 맛이 어떨지.. 정말. 그런 술은 꼭 한번이라도 마셔보고 싶다. 



 켄 로치의 대부분 영화에서처럼, 하층민들이 주인공이다. 루저들.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는 것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주인공 로비를 포함해 이런 저런 루저들은 보호감찰원인 해리의 인솔아래 갖가지 일을 수행한다. 그러다 해리는 로비의 딱한 처지의 상황을 보게 되고, 진지하게 잘 살아보려는 그와 소통을 하게 된다. 로비는 건달이지만 여자 친구가 아기를 갖게 되자, 아버지가 된다는 책임으로 삶을 바꿔보려 노력하지만, 그 나쁜 환경의 업은 그를 따라다닌다. 폭력의 행사를 뉘우치고 직업을 갖기 위해 모색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고, 우연히 해리의 제안으로 위스키 시음회에 참석해, 감식의 재능을 발견한다. 그러다 그의 순진하고 띨띨한 동료들과 도둑질을 계획한다. 전 세계 하나 남은 위스키통의 위스키를 탈취하는것. 



 이 영화의 제목 '엔젤스 셰어'는 위스키가 오크통에서 숙성될 때, 자연적으로 공기중에 증발해 없어지는 위스키를 부르는 말이다. 천사들에게 나눠주는 양이라고..영화에서 벌어지는 도둑질은 대단한 비유 혹은 은유가 된다. 부자들을 위한 최고급 위스키의 자연 증발 되는 것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인 하층민들이 셰어,몫을 챙기는 것이나. 어짜피 경매에 낙찰된 미국인 부호는 뒤바뀐 위조 위스키도 못 알아보는 그저 기쁜 호구가 됐고, 나름 유쾌한 분배가 이루어졌다. 

 이 영화의 감동은 누구나 색안경 끼고 보게되는, 얼굴의 칼자국 선명한 폭력 전과자 로비에게 인간적으로 대하고 그에게 기회를 제공한 해리에게 도둑질로 습득은 했지만 그렇게 귀한 위스키를 선물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천사들의 나눔.인 것이다. 띨띨한 동료들과 돈을 똑같이 나누고, 그들의 실수에 원망을 하지 않고, 보듬어 우정으로 더 나은 삶을 충고한다. 


 

 폭력의 굴레에 있던 주인공 로비가 위스키를 통해 삶의 반전을 이루게 된다는 단순한 이야기 속에, 천사들의 나눔, 삶의 따듯한 유대와 공유의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퍽퍽한 삶이지만 위스키를 매개로 한 타인 과의 매우 따듯한 소통을 보여줬고, 진정한 선물,증여의 정신을 깨닫게 했다. 

 천사들의 몫이란, 타인을 향한 너그러운 배려의 마음. 


직원 " 증류한 술을 담아놓는 오크통은 숨을 쉬어요. 그래서 나무의 향이 위스키에 스며들죠.
        이 오크통에 담아둔 위스키는 매년 2%씩 흔적도 없이 증발하게 되는데,
        이걸 엔젤스 셰어라고 합니다. 사라지는 만큼이 천사의 몫이라는 거죠."



 자잘하게 웃기거나 어이없는 장면들이 웃기려고 한게 아닌데 웃겨버린, 진짜 웃음을 만들어 준다. 

 

 아~ 몰트 위스키..나중에 꼭 위스키 테마 여행과. 와인 테마 여행을 해봐야겠다. 

 정말 감칠맛나는 스코틀랜드 문화체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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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보는듯 뜨금하면서, 너무 재밌게 봤다. 각각의 인물들에서 나를 발견했다. 이 네명의 인물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단면을 섞어버리면, 내가 되고 우리들이 되는게 아닌것인지. 예술(영화)학교에 국한된 배경이긴 해도, 주변을 보면 너무나 많은 선희와, 이와같은 남정네들이 수두룩하다. 나도 모르게 그랬을테고,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남자, 여자가 있고, 관계맺음이 우리 삶, 사회의 숙명이라면, 이런 끔과 끌림은 인간사 계속되는 자연 현상일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허물은 너무나 잘 보면서, 자신의 결점은 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조금씩 다른 가면으로 내 실상은 꼭꼭 숨겨둔다. 나중에는 진짜 자신을 바라볼 용기 조차 내지 못하고, 내가 믿고 보고싶은 대로만 보게 된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큰 가면인생은 타인에게 관대함을 베풀지 못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성적 인간이 만들어 내는 관계속의 이미지들을 걷어내어 진짜 말을 하게 한다. 매번 취중 대화가 진행되는 것도 이미지화 시키는 이성적 사고의 가림막을 술의 효능?으로 제거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고매한 인간도 술 취하면 개가 되는 것은 피할수없는 술의 숙명이다. 실제 배우들을 취하게 함으로써, 연기조차도 없애 버린다. 인간의 맨얼굴, 욕망에서 바로 건져낸 진짜 말들은 안도감을 준다. 나 말고도 저런 군상들이 있구나. 있을 수도 있구나..라고. 


 선희 역의 정유미를 보고 있자니, 홍상수 영화. 특히 이 영화에는 너무 딱이란 생각이 든다. 얼굴의 밑바탕은 이쁜 얼굴인데, 세파,남자들의 세속에 시달리며 뭔가 찌든 얼굴. 어쩌면 세상을 수월하게 살아나기기 위한 그러한 본능(남자들에게 정 흘리기, 정 주워담기)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맑음을 본의아니게 탁하게 한다. 남자들에 기대어 본연의 자기 자신을 잊은채, 거짓 행복, 거짓 사랑을 믿으려 애써 노력하며 살아가는 그런..  


 이뻣었을 얼굴 말고는 정유미의 본질을 모르겠다. 남자들이 보고 싶은데로 여자는 완성 되간다. 김상중이 쓴 첫번째 추천서와. 두번째 추천서의 차이 만큼, 여자의 흘림이 남자가 여자를 보고 대하는 극명한 차이를 만든다. 이 영화에서 제일 연장자이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니만큼 '쌀쌀맞게 대하기' 노하우도 있다고 할까. 반면 이선균은 한참 멀었고(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미련한 놈), 정재영은 마지막 굳히기가 그렇고.. 

 

 그러나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이 생기면 어쩌지 못하는게 인간의 굴레 아닐까. 김상중이 설레여 하는 감정을 토로하는거 보면, 그렇고 그런 끝이 유추가 되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 니체도 좋아하는 여자한테 그렇게 끌려 다닌거 보면.., 이렇게 문화 예술의 발자취는 여자 때문이 거의 다더라.


 마지막 세 남자들의 멋적은 표정들과 새침한 표정으로 빠져나가는 정유미를 보니 남자들의 어쩔수 없는 우매한 본능을 다시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 선희가 아니라 나의 선희를 찾고 싶다. 


 홍상수 영화에서 제일 선호하는 배우 1위는 김상경이다. 그 밑으로는 이선균, 유준상 정도로 꼽는데, 새로이 정재영을 발견했다. 뭐 다 찌질한 캐릭터 들이지만, 그 와중에 무게감이 장난 아니다. 밤과 낮의 김영호가 그냥 남자라면. 정재영은 거기에 되게 복잡다단한 꼬임이 들어차 있다. 억지스럽지 않은 대단한 리얼. 정말 있음직한 형이다. 


 아직도 나의 투명가면이 보여지길 꺼려하는 마음이 처음 자판을 두드릴때와는 다르게 확연하다. 영화에서처럼 치킨-맥주-소주를 마셔야 하나 보다. 그렇담. 거침없이 과감하게 진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영화속 대사처럼.. 다음에.. 다음 기회에..


 이제는 작품을 다 외지도 못하는 홍상수 영화중에, 근래들어 가장 훌륭하고 재밌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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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킬링 타임이란 말은 보통 부정적 의미로 쓰이게 마련이다.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하듯이. 멍때리며 광탈하는 시간에 자포자기 하는 것. 추석 전날. 점심 먹고, 티비 채널을 돌리다 라디오스타 추석 특집 편집본을 보며 넋나가 낄낄거리며 봤다. 평소에 티비를 거의 안 보다가. 이렇게 추석 특집으로 재밌는 부분만 편집했으니 얼마나 재밌는지.. 그러다 이어서 유재석, 박명수가 진행하는 쉽게 만들수 있는 요리 만드는 프로그램도 너무 재밌었다. 또 연달아서 뭔가를 계속 봤는데 그냥 바보 같이 웃다보니 너무 행복하였다. 


 이 영화도 딱 킬링 타임용으로 보게된 영화인데, 의외로 상당히 재미있고, 영리한 영화였다. 너무 재밌게 봐서 봉만대 감독이 너무 좋아졌다. 그의 연기는 과연 감독보다도 배우에 더욱 딱인것 같다. 에로 영화 전문 감독이래서 싼마이 양아치가 아니라. 의외로 되게 전문적이며, 감독으로써 카리스마와 리더쉽, 그리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확실히 엿볼수 있었다. 에로 전문 감독인 자기 자신을 프로모션하는 엄청 영리한 작품이다. 이름부터가..흥미를 끌지 않나. 봉만대.. 입에 착 달라붙고 잊을 수 없는 이름..낯선 사람들에게 이름만 들어도 경계심이 사라져 쉽게 마음을 열게 만드는..그런. 나도 예명 하나 만들까 보다. 


 영화의 형식은 페이크 다큐 라고 하나.. 영화 제작 현장의 메이킹 필름 촬영 같이 진행되는데. 중간중간에 인터뷰도 들어가고, 일단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고충들이 그려진다. 좌충우돌하는 상황속에서 봉만대의 탁월한 감각과. 열정으로 난관을 헤쳐나가고 영화는 완성이 되지만, 뒷통수 맞는 에로 전문 아티스트의 씁쓸한 비애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임필성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에.. 에로씬의 수위가 높지 앉자 제작자는 성질을 내고 긴급으로 에로 전문 감독인 봉만대 감독을 수혈해 현장에 투입된다. 처음 등장부터 생김새나 말투..표정들이 내게는 얼마나 재밌는지..친한 형님처럼 따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진지하고 전문적으로 체위를 설명하고 지도하는 그의 아티스트 정신. 미묘한 손의 표정 까지도 코치하는 섬세함에 감명받았다.^^



 이 영화의 색기 충만한 재미의 백미는 그 자세를 섬세히 지도하는 봉만대 감독과 여배우의 미묘한 심리에 감독이 휩쓸리지 않고. 반응하는 멋적음? 이라 할까. 이 씬 말고도 자잘하게 재밌는 부분이 많다. 여현수와 곽현화가 막말하며 싸우는 장면도..실감난다. 번지점프를 타다 이외로 별볼일 없던 여현수 에게 곽현화의 너무 리얼한 독설. 여배우들의 노출씬의 수위 보다 더, 에로씬 촬영의 어떤 상황들이 더 흥미로웠다. 


 여기 나온 배우중에서 가장 연기가 어색한 사람은 임필성 감독인데. 이사람은 자신의 연출작들도 그저 그렇고 배우로도 별로고, 생긴것 답게 성격만 좋은 사람인것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실력없는 메이저 감독에게 보내는 조롱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더 뭣한 감독이 떠올랐는데, 청연을 만든. 윤종찬 이란 사람.. 영화 정말 못 만들더라.. 


 봉만대 감독을 중심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았다. 어쨌든 과감한 노출도 좋았고. 나름 킬링 타임용 보다는 인상깊은 영화였다. 여기에 나오는 카메라 조차. 너무 반가운.. 내가 처음 접한 영화 카메라 였던 아리플렉스 16BL 이란 필름 카메라. 400피트 필름 캔 과. 그것을 로딩하기 위해 암백..과 매거진. 카메라가 돌아갈때. 미세한 소리까지 잘 잡아내었다. (후시로 소리를 넣었겠지만) 나중에 필름을 다 날려먹고 핸드폰으로 다시 찍게 되는 과정을 보다보면..어떤 상징적 요소도 있는거 같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시스템 차이에 대한..생각들이..

 오리털 파카 여배우 정말 골 때림..ㅋㅋ

 아무튼 이 영화는 킬링 타임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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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8살에 처음 북한산을 와본 이후로 틈틈히 북한산의 주요한 능선 코스 들은 다 다녀봤다. 얼마전에 장쾌한 북한산의 마지막 백미라고 불리는 (가장 위험 구간) 의상능선을 탔다. 사실 험하고, 위험한 산행 코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겁많고 몸사리는 내게 북한산 의상능선과 설악산 공룡능선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그냥 안 가봤던 코스를 가자는 단순한 심리에 그냥 뭣도 모르고 의상봉으로 가는 길을 나섰다. 의상능선을 따라. 대남문 까지 와서 구기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만 머리속에 그리고 묵묵히 오르락 내리락 걸을 뿐이다. 


 이렇게 험준한 여러 봉우리를 거치게 되는 산행은 암릉 등반의 짜릿한 스릴을 엿보게도 한다. 초반부터 봉긋 솟은 의상봉은 만만치 않았다. 등산화가 오래된 비브람 창이라, 가파른 바위면을 발등을 꺽어 남들처럼 릿지 등반하는 스킬을 못한다. 등산의 묘미는 마치 인생의 축약판 처럼. 한번 산에 들어왔으면. 앞에 어떤 길이 닥치던 어떤 위험한 암릉 구간이 존재하던 끊임없이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내 앞에 산이 있어서, 걷다 보니. 오르락 내리락 잠시 평평한 능선을 걸으며 숨고르다 또 오르락. 내리락.


저 산을 어떻게 넘어왔지. 아찔하군. 


저 암릉의 능선 사진만 봐도, 험해 보이지 않나. 오! 내가 저 길을 걸어왔다니..



 의상 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 백운대 정상.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 이다. 사진에서 보듯이. 삼각 봉우리.. 백운대. 인수봉. ?  이렇게 세 봉우리를 일컽어 삼각산이라 불렀는데, 일제 시대 이후로 북한산으로 표명 한다. 아직도 북한산 일대의 절에선 예를 들어 삼각산 화계사 등등으로 말하는데, 현행 표준은 북한산이다.


삼각산과 나.


향로봉과 서울 시내. 사진에는 표현이 안 되었지만. 저 멀리 서해 바다 까지 보였다. 

보현봉과 서울 시내.


 한강에서 바라보이는 북한산의 모습은. 보현. 문수. 항로봉과 비봉 능선 구간등이다. 그 뒤로 산세들이 이어져 의상 능선의 봉우리들. 산성주능선과 백운대 등이 있다. 험하기로는 칼바위 능선도 있고. 매우 완만하고 편한 등산로인. 진달래 능선도 있다. 


 사랑이 찾아올땐 봄에 진달래 능선을 걸으면 좋고, 실연이 닥쳤을땐. 겨울에 칼바위 능선을 타면 좋다. 친구나 부부의 우애를 위해선 형제봉 능선을 타고 평창동으로 내려오면 좋고. 홀로 인생의 길을 느끼고 싶다면. 빡시게 의상능선. 짝사랑 중이라면, 사모바위가 있는 비봉 능선. 여자가 그리우면 족두리봉..ㅎㅎ



 이 험준한 산세에. 북한산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만든것이라 한다. 한마디로, 백성들이 어찌되건 나라가 풍지박산 되어도 임금이 저 살기위해 나몰라라 깊은 산속으로 도피하기 위한 성이다. 참 서글씁쓰래 하다. 남한산성의 비애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백성들의 노역이 이런 깊은 산중에 시행되었다. 



비봉 능선. 


대남문과 보현봉.


성문.



대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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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지 않고 끝까지 멀쩡한 정신으로 다 봤다. 그런데 뭐가 남는지 도통 모르겠다. 어렵다. 어려우니 재미없다. 하지만 뭔가 내밀한 것들이 꿈틀대는데 그걸 잘 모르겠다. 무의식 내지 트라우마, 인간의 원초적 본성에 대해 말하는것 같다. 프로이트나 융. 라캉, 사이언톨로지? 신흥종교등에 대해 좀 알면  좀 이해할수 있으려나. 


 당연히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찾아 읽으려고 검색해 보니 헤매지 않고도 떡하니 이런 리뷰가 있었다. 


 네이버 마스터 검색에 처음 뜨는 리뷰.


 http://blog.naver.com/cerclerouge/40192928281


 자세히 해설한 이글을 읽으면서 색다른 체험을 했다. 장면장면마다 퍼즐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글로써 영화의 다시보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저 감독의 통찰이 깊다. 인간의 얄팍한 속과 관계들의 내밀함이 잘 모르겠는 어떤 지점을 찌른다. 그것은 관계맺음과. 자아의 자립 같은걸 말하는 것 같다. 


 꽤 지적인 작품이래서 영화의 재미보다는 어려운 공부를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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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실망인걸. 김영하의 글은 단편집과. 수필들만 접했더라도, 와 대단히 글을 잘 쓰는군. 하며 그의 재능에 놀라워 했다. 그래서일까. 기대에 만족하지 못한 뭔가 설익은 이 뒤끝은 뭐지.  


 약속시간이 남아돌아 서점에 들어갔고,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김영하 였으니까. 앞뒤 재보지도 않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40~150 페이지 정도에서 끝이 났고, 어떤이의 해설글이 시작되었다. 


 짧은 단문들이 수월수월 읽히고 책을 잘 안 읽는 요즘 세대들을 위한 스타일인지 짧게 단락으로 나뉜 미니멀한 문장들은 더더욱 빨리 읽히게 되어있다. 


 그런데 불조절 실패한 코펠의 설익고 푸석한 밥 같은 이 느낌. 책 끝에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이 소설을 쓸때, 순탄하지 않았단 일들을 고백한다. 어떤날은 하루에 두 문장 쓰기도 힘겨웠다고, 그렇게 수얼수얼 읽히는 글들을 쓰던 작가가.. 


 작가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 심란했던듯, 습작시절 밤늦게 자고 정오에 일어나는 아들의 수북한 재떨이를 묵묵히 치워주던 아버지의 자상함을 상념한다. 


 소설의 내용은 서서히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린 왕년의 연쇄살인범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신의 딸.(사실은 예전에 자신이 죽인 부부의 딸) 을 또다른 살인자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분투하는 내면을 보여주는데 나중엔,,그 뒤죽박죽된..치매걸린 노년의 살인자의 영혼은 당연하게도 뒤끝이 깔끔하지 못하다. 상황의 공감이나 영혼의 스릴러도 찾기 어려움. 뭔가 불교 경전의 문구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좀 와닿지 않는다.. 해설을 읽으니 좀 더 파악이 되긴 해도, 대중성과 작품성..이도저도 아닌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어. 김영하의 다른 장편소설도 읽어봐야겠단 욕구가 생긴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란 책인가..암튼. 대표작이니 와우~ 하겠지..




 문화센터에 다닐 때, 강사가 미당의 시를 가지고 수업을 했다. '신부'라는 시였다. 첫날밤 뒷간에 가는 신랑의 옷이 문고리에 걸렸는데, 신랑은 신부가 음탕해서 그러는 줄 알고 달아났다가 40년인가50년 후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 들러보니, 신부가 첫날밤 모습 그대로 앉아 있더라는. 그래서 툭 건드렸더니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더라는 얘기. 강사부터 수강생들까지 정말 아름다운 시라며 난리를 피웠었다.

 나는 그 시를, 첫날밤에 신부를 살해하고 도주한 신랑 이야기로 읽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시체. 그걸 어떻게 달리 읽겠는가.?


 나의 이름은 김병수. 올해 일흔이 되었다. 

 

 어릴적 추석에 대한 느낌은 서늘하던가 쌀쌀했더라면, 지금은 한낮의 더위가 가을이라 말하기엔 뭣하다.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는게 실감된다. 예나 지금이나 명절에 대해 별 감흥이 없다. 일년에 두번 보게되는 친인척들과 하나마나한 담소는 5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도 없고, 대신 무럭무럭 자라나는 초,중등생 조카뻘 친척 아이들의 반년새 변해버린 키를 보고 있자니, 무력한 나의 청춘의 소멸이 눈앞에서 참수당하는 심정이 된다. 더디고 더딘 청춘의 유예. 


 극도로 개인화 되고 자본화. 서구화 된 일상의 삶에 일년에 두번 명절은 그나마 잊고 있던 전통 관습에의 접속 같다. 예전의 가족의 개념과. 지금의 가족의 의미는 큰강과 실개천의 차이만큼 굉장히 지엽적이고 협소화 되었다.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의 해체라는 담론은 가족의 해체, 파편화된 일상을 예고했다. 어쩌면 이런 명절 풍습도, 이미 구색맞추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름의 절충. 급격한 변화의 아이러니. 


 예전엔 아무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절하고, 제삿밥 먹고, 산소에 가고 했는데, 요즘에 들어 느껴지는 단상은 이 모든 것이. '귀엽다'. 조상의 영혼에게 진수성찬을 드시라고 상을 차리고, 영혼을 기리며 절을 하고, 산소에 가서 술한잔, 안주 한점 올리고,, 그 의미. 그 행동을 되새길수록. 졸라 귀엽다..

어쩜 이리 귀여운 일들을 예전엔 그토록 기계적으로 행했나. 조상님들에게 부끄러워진다. 순수한 영혼들에게 미안해진다. 이제서라도 뭔가에 접속한 느낌이 드니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갖가지 색깔의 코스모스 꽃에 정신줄 놨다. 노란색. 흰색. 자주색. 분홍색. 파란색. 곱디 고운 색 들의 향연에 마샤 튜더 할머니의 심정이 새겨졌다. 아리따운 꽃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꽃밭에 자유롭게 노니고  있는 나비와 벌 이 내심 부러웠다. 작은새는 벌처럼 유영하며 한동안 꽃에 날갯짓으로 시원한 바람을 보냈다. 꽃은 고마워 진한 향기를 내뿜었고 앉을수 없는 작은새는 그 기억을 간직하며 대양의 바람을 맞서 어디론가 떠났다. 


 작렬하는 햇빛 아래, 고개숙인 볏삭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연하지만. 도정된 쌀은 식물의 열매였다. 가녀린 줄기에 가지런히 줄줄이 영글어 있는 단단한 작은 열매. 토양은 매년 반복되는 수확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생명의 정수는 곡기에 달려있다. 쌀과 밀. 밥과 빵. 엄청난 생명의 신비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려는 논밭이 사랑스러워보였다. 태양에 달구어진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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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흥미를 붙인다는 건, 역사에서 재미를 얻었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역사엔 무식하리 만치 모른다. 애써 공교육 탓 보다는 그저 관심이 없었고 공부를 못했다. 태정태세문단세 란 음귀만 입에 맴돌뿐. 

 그래서 광해를 보고나서도 선조,인조,광해군 등을 검색해보며 알아가는 기쁨을 맛봤다. 


 문종. 단종. 세조 시대로 거쳐가는 시대 배경(역사)을 몰랐기에, 나름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것 같다. 누구나처럼,수양대군이 반역에 성공에 세조가 되는 역사를 알았더라면, 결말을 알으니 재미가 반감의 반감이 됐을거 아닌가. 


 광해때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위 세명의 왕과, 영화속 중요한 인물들인. 김종서,한명회 등을 검색하며 조선의 역사에 흥미를 붙였다. 또 얼마전에 우연히 들린 노량진 사육신공원이, 이 때의 일들과 관련된 사당이래서, 아~! 착착 궤를 맞춰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인터넷 서점으로 기웃거려 보고 있으니, 평소에 사극을 안 좋아했던 내겐 어쨌거나 이 영화가 좋은 발단이 된 것 같다.  


 일단 2시간이 넘는 영화임에도 재미있게 봤다. 중반 넘으면서 조금 지루한 느낌이 살짝 들었긴 해도, 호화로운 배우진과. 탄탄한 연기, 왠지 포근한 조선시대 배경은 기분좋은 집중을 유발했다. 광해랑 비슷한 느낌이나, 조금 못 미치는 감 이다. 영화적인 허술한 점이 몇몇  눈에 띄긴 해도, 대형스크린을 통해 명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에, 그런 자잘한 것들은 상쇄되었다. 


 역시. 배우로써 이병헌이 광해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면, 송강호는 꼭 조선,한국인의 초상의 아이콘 같은 친근함 속에 명연기를 선보인다. 초반 조정석과의 연기 호홉은 명콤비 배우를 탄생시켰다. 그 둘의 연기가 초반 영화 감상의 흡인력을 제공했다. 


 잠깐, 미신이라 치부하는 것들에 썰을 풀자면.. (영화 이야기와는 그다지 상관 없는)

 관상. 얼굴의 생김새를 보고 과거와 미래를 알아본다. 서구 과학의 시대를 거쳐 살아오고 있는 우리들에겐 주역이니,명리학이니, 관상, 풍수지리 등을 아주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미신이라 여기고 어리석은 인간들이나 그런걸 믿는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증명할수 있는 것만 믿기엔 세상은 너무 크고 답하지 못한._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서구의 이분법적 체계가 세밀히 나누어 들어가 원자핵을 쪼개고 또 쪼개어 존재의 신비를 풀고자 했다면 동양의 우주적 관점은 현상에 즉답하는 차원이 아닌, 거대한 순환 궤를 통찰하고 그 이치를 터득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무엇이 옳고 그름이 아닌, 세상을 정확히 그리기 위해선 밑바탕을 그리는 부채꼴 붓과 세밀한 묘사를 하는 세필붓이 필요하듯이, 서양과 동양의 관점과. 그 차이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과학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에  동양의 중추 사상들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미신의 수준으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명리학만 해도 사주팔자란 말만 나와도 인생의 노력을 할 생각않고, 미래의 운명론에 깃대 헛된 망상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인( 凡人)들은 그렇게 협소한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어리석게 믿지만, 존재의 이치에 대한 탐구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획기적인 것이 된다. 나와 남을 우주적 존재로 여기며 더욱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는 이치를 터득하는 일일 것이다. 


 오장육부의 우주적 타고난 기운이 천성을 좌우하고, 그 기운의 다양한 배치들이 삶을 조종하고 관상을 움직인다.? 그 밑바탕에는 유전자의 영향이 전제 되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선 신의 창조물이란  절대 믿음도 있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작은 미립자 세포들로 구성된 기계(하드웨어)에 불구하고, 태어나는 순간, 그 순간의 우주적 기운이 신체에 스며들어 타고난 팔자를 만든다는(개개인의 소프트웨어 버전)역학의, 증명하기 힘든 점을 조물주 신의 작용으로 환원시키는듯 하다. 분명 우리가 보거나 체감할수 없는 현상들. 즉, 음과 양의 순환, 모든 것은 생성하고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며 그 조화의 균형이 무너졌을때, 변화하게 된다는 원리들은 물리학과도 통한다고 한다. 관상은 내 기운의 배치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 보면 될 듯 싶다. 살아온 흔적과, 살아나갈 흔적을 몸 이라는 현재의 표상을 통해서 예측할 수 있다는 것. 몸과 마음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로 본다면, 얼굴은 마음의 도화지일 것이다. 


 사진의 초기 역사를 보면, 빠르게 묘사할 수 있는 사진술을 이용해, 다양한 얼굴의 특징을 분류 도감해, 범죄인의 관상을 밝혀내고자 하는 일들이 벌어졌고, 이러한 면면들은 우생학으로 이어져 인종학살 같은 전쟁 범죄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심리학 과는 다르게 유사과학으로 평가되었고, 결국 도퇴되었다. 

 그렇다고, 관상을 미신으로만 폄하 하기엔 좀 아쉽다. 동양의 관점은 표상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런 민간의 야매 과학 정도가 된 얼굴의 지도는 좀 더 바르게 살고자 하는 표식의 조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역사적으로 이런 것들은 특권 계층에게만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지금도, 전국의 명당자리는 전부 재벌귀족들의 소유이고 대중들에겐 그런 집착은 우매한 짓거리라고 한다. 토정 이지함의 비결은 한갓 저잣거리의 재미로만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책이라는 주역, 동의보감 등의 혜안을 어쩌면 너무 간과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서구의 과학과 기독교관 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영화의 갈등의 축과 긴장의 핵심은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이란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에 기초에 몰락한 양반가 인물인 천재 관상학자 등장은, 대중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가져오지만 관상의 운명론적 관점과. 사실을 기초로한 권력암투의 장에서의 연관성은 조금은 아쉽다. 전반부의 영화의 톤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중반을 넘어서 부턴, 무겁게 확 변한다. 관상의 운명론에 대한 성찰이, 나중에 파도만 봤을 뿐, 그것을 움직이는 거대한 바람을 보지 못했다란 회심의 깨달음으로 정리가 되지만. 그 과정이, 이 영화의 제목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아쉬움. 권력암투 보단. 몰락한 양반인 자신을 통해서 계급투쟁에 대한 운명론으로 다가섰으면 어땠을까 싶다. 


 수양대군 이마에 점 세개를 만드는 씬은 연출이 너무 아쉽다. 가장 긴장과 스릴을 유발하고 관상에 대한 어떤 관점을 잘 드러낼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 씬은 전개가 너무 쌩뚱맞다. 전체적으로 상영시간을 줄여야 하는게 맞지만. 이 씬에서만큼은 디테일 했어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이정재의 악역이 훌륭하다고 하나. 나는 좀 반대의 생각이다. 신세계에서도 칭찬을 많이 하던데, 물론 잘 하긴 하지만 난 뭔가 좀 부족하단 느낌이 계속 든다. 예전에 '태양은 없다'의 양아치 깜냥이 이정재에겐 가장 알맞은 역할인 것 같다. 이 배우의 목소리나 인상이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현이 울릴때 twang 한 공명이 깊지가 않은듯. 뭐 어쨌거나 배우들에 호불호는 당연히 있게 마련. 이병헌은 싫던 좋던. 천상 배우란 각인이 확실히 됐었다. 박해일도 마찬가지고, 이정재는 더 봐야겠음. 

 여하튼, 영화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광해 만큼 흥행은 안 될 것 같다. 


 조선은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 문화의 나라였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팔만대장경.등은 얼마나 찬란한가. 하지만 그 수많은 좋은 글귀들이 민중에게 전승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은 당시 지식인의 언어인 한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란다. 우리 역사에 자부심을 갖지 못한 근본적 원인은 무수한 당쟁과 암투의 탁상공론속 부패의 폐단이나, 외세의 침략에 의한 도탄 보다는, 우리의 다채로운 기록문화의 전승 단절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몸속 깊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p s  초반에 송강호가 조정석 보고 너는 목젖이 나와서 욱하는 성질을 조심하라고, 화를 당한다는 말을 하는데, 이후로 계속 내 목젖을 어루만지며 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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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편의 프랑스 영화에 대한 단상  (2) 2013.08.25

 어둠을 물리친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자, 모든 것이 회색이었다. 어둑어둑하게 드리워진 낮은 구름들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새벽을 내달리는 운전은 고요하다. 저마다 무미건조한 고독을 한웅큼 쥐고 질주한다. 질주의 명상이라고 할까. 노면의 먹먹한 마찰음은 마치 귀에 물이 들어갔을때, 울리는 내면의 웅얼거림 같이 차안과 바같을 나눈다. 그것이 너무 단조로워 경계를 없애기 위해, 창문을 내린다. 바람의 파동이 넘실대어 고요한 기분에 흥을 돋는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런 새벽은 얼마나 지속될까. 이 새벽이 가고, 구름이 걷히면 오늘은 얼마나 아름다운 햇살이 맞이할까. 


 여전히 모든 사물이 회색빛을 드리울때, 내 왼편 차로,(버스 전용 차로)로 큰 버스가 공기압을 전달하며 서서히 내 차를 앞서려고 했다. 창유리가 투명해 미군들이 제각각 불편한 자세로 꼬꾸라져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가 앞서가며, 버스 후미에 앳된 미군 병사와 눈길이 닿았는데, 그는 서서히 뒷걸음 치는 내차를 맞이하려 인사를 준비한듯이,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올려 봤을때, 이미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맑은 그 병사의 웃음은 새벽의 고독을 깨뜨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큰 버스를 옆에 두고 평행으로 달릴 수 없어, 일단 내가 속도를 높여, 첫번째 인사는 얼떨결에 마무리 됐고, 조금 후에, 다시 버스가 앞서가며, 그 병사의 해맑은 미소를 또 보게 되었다. 금새 버스가 앞서가며, 그 병사는 몸을 돌려 멀어져가는 내 차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었다. 너무나 밝은 미소와 함께.  앞유리창을 통해서 크게 손짓의 답례를 안할수가 없었다. 


 기묘했다.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는 그의 얼굴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부풀어 희망으로 점철된 밝디 밝은 웃음을 지었다. 19,20살이나 됐을까. 미네소타나, 다코타, 혹은 아이오와 의 시골에서 자랐을것 같은 순박한 청년은 한번도 고향을 벗어난 적이 없는 청년이었을 것 같다. 


 내가 짧은 미국 자동차 여행을 통해 본 광활한 풍경 속, 인간의 모습은 내겐 대자유의 가슴 뻥 뚫림 같은 거지만. 그들에겐 지독한 무력감 내지, 지극한 소외와 고독을 느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어느 이름 모를 황량한 곳에 위치한 작은 주유소 매점에서 일하는 백인 청년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쟤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어딜가서 들끊는 청춘을 풀까.  이런 곳에선 신 아니면 악당만이 존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릴적 기괴한 미국 드라마 '트윈 픽스'도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조디악'이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은 어떤가. 허허벌판 대륙의 황망함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낳게 했다. 


 나는 그 미군 병사의 고향이 어딜지를 상상했다. 아마도 그는 바다를 직접 못 봤을 내륙의 토박이 일것 같다. 그는 무료한 고향의 소소한 삶을 벗어나 세상을 보기 위해, 군인 직업을 선택했고, 바다를 그리워한 심정으로 다들 널부러져 잠자는 와중에,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창밖을 구경하며 내게 웃음을 건넸다. 마치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세상을 다 가진 얼굴이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해외로 전출되어 기지로 이동중인것이겠지. 그는 호기롭게 분쟁지역인 한반도를 선택했고, 진짜 군인이 되기 위해 사명을 다할 것이다. 그의 군인의 길에 행운과 축복을 빌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이 웃음을 상쇄시킨다. 갖가지 끔찍한 미군범죄들..이 떠오르고, 불공평조약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군에 대한 양가감정은 종속된 땅의 숙명일까. 


 어린 병사의 순진한 미소가 자꾸 떠오른다. 도로에서 그런 웃음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부디 이 땅에서 별일없이 좋은 추억을 가져가길 바란다. 미군은 반갑지 않지만 한 인간으로써 그런 인사를 건네줘서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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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의 현충사를 드디어 방문했다. '칼의 노래'를 인상깊게 읽고 나서,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작은 오해가 있었다. 현충사래서. 스님들이 있는 절에서 충무공을 모신지 알았다. 절들이야 흔하고 대부분 비슷한 배치나 구조니,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래서 언제 한번 가보지 여유부리고 있었는데, 어느 블로그의 탐방기를 보고, 절이 아니라. 그를 추모하는 사당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나는 좀 일찍 이곳을 찾지 않은걸, 후회하는 심정으로 이날의 영묘한 심정을 되새긴다. 분명 거룩했다. 그분의 삶의 행적과. 이곳에서 느낀 기운은.. 그 어느 위대하단? 왕들의 왕릉에서 절대 못 느꼈던 겸허한 숭고함 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분 만큼 위대한 인물은 우리 역사에 없으니까. 그가 죽고 나서 예나 지금이나. 그의 행적은 추호의 의문도 없이, 칭송돼왔다. 난중일기는 이제 유네스코 국제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의 유산이 되었다. 


 너무나 완벽한 유적지였다. 넓게 단정되어 조성된. 현충사는 그분을 기리는 애틋한 심정이 절로 나왔다. 늦여름의 비가 내려 더욱, 운치가 있었다. 



 안에서 나갈때 바라본 정문.



 난중일기 초본. 진짜 보물중 보물. 


 정문을 들어서면. 본당터에 들어가기 전에 기념관을 둘러보게 되있다. 기념관은 딱 적당한 전시 규모였다. 본전에 가기전 너무 진을 뺴지 않도록..다만 11분 짜리 3D 입체 영화, 마지막 타임을 운좋게 시간이 맞아 보게 되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내용을 너무 압축시켜놓아서, 재미가 반감됐고, 쓰리디 영화이면서. 좌석이 진동과 함께 움직이고, 바람도 막 나오는, 이런 극장을 뭐라고 하지?  암튼 그런건데, 영상의 내용과는 너무 동떨어졌다. 너무 형식적이고 인위적인 진동, 영상의 싱크에 맞게 그럴듯한 체험이 아니라. 난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유적지의 격에 안맞게 이상한 쪽으로 상상이.. 성인 전용 극장을 이런식으로 만들면 꽤 장사가 잘 되겠구나란..ㅜㅜ






넓직하고 너무나 잘 정돈된 잔디. 오래되고 기풍있는 소나무 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본전에 들어서게 된다. 웅장하고 기풍있다. 그는 죽어서 이렇게 좋은 땅에 자신을 기리는 후세들에게 어떤 기분이 들까. 또 나는 작게나마 이 세상의 공간을 점유하는 몸뚱아리로 무엇을 해야하나. 유익한 삶을 살 수 있을까나..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중의 많은 일부는 이 세상에 태어나질 못했을 것이다. 




본전에서 바라본 전경. 


 본전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은 바람이 불면 참 좋은 소리가 나겠구나.

 

 오랜 우물을 한 모금 떠 마셨다. 장군의 기운이..




 너무나 아름다운 집이었다. 여기서 문무를 닦던 그의 정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되게 총명했다는 이면 공.의 무덤은 소나무 숲이 둘러쌓여 있었다. 

색이 고운 아름다운 꽃. 


이렇게 넓고 한적하니, 고즈넉하다. 



 

 거룩한 기분으로 주차장으로 나오니 너무 배가 고파서, 번데기를 사먹었다. 어릴적 맛 그대로 였다. 덤으로 오뎅 국물과 같이 한컵 먹으니, 한끼 식사가 되었다. 좀 징그러울순 있어도, 단백질 덩어리..ㅎㅎ


 여기는 한번 와본걸로 끝이 아니라, 두고두고 다시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다들 꼭 가보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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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을 읽고 나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구입했다. 동화와 희곡을 주로 썼던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동성애 혐의로 옥살이를 하고 나와 곧 변변치 않게 죽었으니, 비운의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옥중기'문고판도 함께,


 펭귄클래식 책을 사려고 했는데, 더클래식이란 출판사에선. 원서와 번역서를 합본으로 절반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예술지상주의, 탐미주의를 대표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원문을 번역과 비교할 수 있으니 당연히 선택은 이쪽. 하지만 글의 형식적인 측면보다, 내용적인면에서 탐미주의란 것이지. 

 어쨌든  책의 서문 부터 강렬한 예감이 왔다. 이 책은 천천히 정독을 해야겠다는. 

 대부분 야외에서 책을 읽었는데, 수시로 모서리를 접어 놓은 페이지가 촘촘해졌다. 


 예술에 관한 자신의 입장표명인 서문의 글은 촌철살인의 비수를 드러내면서 마지막 문장의 반전은 결국 이 작품 전체의 주제와. 동시에 오스카 와일드 삶 자체의 비극을 유추하게 한다. 


 내가 원빈이나 젊은날의 정우성 처럼 생겼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상상만해도 즐겁구나. 껍데기의 아름다움 때문에 인생이 평탄치 않을지라도, 내가 저렇게 생겼더라면 이란 상상은 외모 지상주의의 시대에 강렬한 욕망을 대리하게 한다. 


 내가 외모의 아름다움에 대해 인지한 경험은 초등학교 저학년때, 학교 근처 화장품 가게에 붙은 광고 사진이었다. 멍하게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 같은반 여자아이 둘이 웃으며 뭐라고 말하고 지나갔는데,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성의 미모에 대한 첫인상을 그렇게 시작했고, 


 

남자의 미모에 대한 첫인상은 배우 리버 피닉스(1970~1993)가 효시다. 당시 로드쇼나. 스크린 같은 화보 많은 영화 잡지에 실린 그의 사진은 너무나 이상적인 아름다움 이었다. 사춘기의 방황과 반항을 살아있는 조각으로 현현한 그의 얼굴을 보며, 미를 터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출연한 수작 영화들인 '스탠드 바이 미''모스키토 코스트''허공에의 질주''아이다호''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하룻밤'등은 여전히 청춘의 아름다움을 봉인한 아련한 작품들인 것이다. 제2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고, 그가 살아있었다면. 디카프리오, 조니뎁, 브래드 피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텐데..하지만 이런 아름다움 이면엔 마약으로 길거리에서 요절한 시대의 아픔이 있었다. 마치 자신의 최고의 영화 '아이다호'처럼..

 이 소설을 읽으며, 상상하게 된 도리언 그레이의 이미지는 리버 피닉스 였다. 

 검색해보니 영화도 있었는데, 주연배우는 벤 반스다. 이전에 영화 벨아미를 보고나서, 주인공이 벤 반스 였으면 하는 아쉬음을 토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 도리언 그레이 역을 했었군.




 리버 피닉스 이 후 내가 빠지게 된 남자 이미지는 커트 코베인 이었다. 음악도 그렇지만 그의 초상 사진에 오랜 기간 감동을 하게 된 것이다. 27살 최고의 명성과 부를 가졌고, 갓난아이의 아빠였던 그가 자신의 얼굴을 엽총으로 날려버렸단 슬픈 사실. 


 20대 청춘의 나이에 죽어버린 그들의 초상 이미지는 아련하게도 부서지지 않는 청춘의 화석이 되버렸다. 세월에 의해 늙어간다는것, 인생의 풍파에 시달린 초췌한 얼굴을 삶의 나이테처럼 고스란히 간직한 얼굴을 우리는 대표적으로 에단 호크를 통해서 볼 수 있다. 리버 피닉스와 함께 아역 배우로 출연한 것 부터.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뽀송한 얼굴을 거쳐, 지금까지. 그는 있는 그대로 삶의 아름다움을 간직했고, 리버 피닉스는 멈춰버린 청춘의 아름다움을 영원한 상징으로 간직했다. 


 이런 청춘의 아름다움을 유예시키고픈 욕망. 내 삶의 도화지로써의 얼굴이 아니라 그냥 아름다움(쾌락) 그 자체에 대한 감각적 탐미를 도리언 그레이의 욕망을 통해서 보여준다. 


( 이 책은 도서관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커트 코베인 박물관 같은 책이다. 팝업북 형식으로 다양한 자료와 아이템들이 수두룩, 수록된 사진들도..이제까지 못 봤던 희기한 사진이 많다. 표지 사진은 생전에 커트 코베인이 좋아했던 사진이라고 한다. 이 책을 생일선물로 받으면 상당히 기쁠듯, 소장가치 만땅인 특이한 책. 이전엔 못봤던 사진을 좀 더 보자면.)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화가 바질 홀워드의 애정 아래, 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의 치명적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이런 과정중엔 화가의 친구인 헨리 경의 젊음을 찬미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상에서 깨닫게 되어. 이러한 욕망을 발원한다. 

' 나는 항상 젊은 채로 있고 이 그림이 나 대신 늙어 가면 좋을 텐데. 그럴 수만 있다면 뭐든 다 바칠 수 있는데, 그래, 그럴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줄 수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팔더라도, 영원한 젊음을 가지고 싶다는, 자신이 저지르는 부도덕함이나, 매정함등이 얼굴에 쓰여지고, 또 자연스런 노쇠화의 추한 흔적은 초상화 그림의 변화로 투영된다. 그러나 자신의 젊음은 변함없이 유지된다는 쾌락 속에서 그는 점점, 양심의 가책도 없는, 뻔뻔한 탐욕을 행하게 된다. 그 세 인물들의 대화는 희곡처럼 진행되는데, 한마디 한마디가 대단히 예리하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내면은 이 세 인물의 정신에 투영되어 드러나는데, 백여년전 세기말 도적적 위기나 지금의 외모지상주의, 감각, 쾌락주의에 대한 알레고리의 딜레마는 인간의 삶의 가치,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의 본질적 질문을 이끌게 한다. 화가를 통해 예술의 본질이 뭔지, 도리언 그레이와 헨리 경을 통해선  쾌락주의 유미를 일갈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이 그토록 되고 싶어 하던 존재이며, 헨리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화가 바질 홀워드는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304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신적인 자유의 쾌락 보다는 젊음을 온전히 향유하는 감각적 쾌락을 찬미하는 헨리 경의 말들엔 이건 아니다라고 완벽히 반박할수 없는 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선과 악을 다루는 뻔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시각과 감각적 쾌락에 대한 피상적 욕망을 솔직히 고민해 볼 수 있게 된다. 결국. 마무리는 어쩌면 교훈적 반전으로 끝나긴 해도, 헨리 경의 이론과. 그것에 동조되는 도리언 그레이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은 반추하게 된다. 누구나 젊어지고 싶은 욕망에 대해. 지나가 버린 젊음의 특권적 쾌락을 향수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겉모습만을 중시하는 세태에 대한 냉소와 모호한 욕망은 오스카 와일드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도덕성의 경계를 넘어서 예술이 무엇인지 한 발짝 더 나아간 느낌이다. 



뭔가 기묘한 표정의 저 얼굴. 80년대 영국의 명 밴드 스미스의 보컬이자 가사가 시 예술인. 모리세이가 그토록 추앙하는 오스카 와일드.  파리에 간다면. 같은 공동 묘지에 묻혀 있는 짐 모리슨 묘비와 함께. 꼭 들려보리라. 2년 동안 감옥에서 중노동을 하고 썼다는 옥중기는 또 어떤 생각을 보여줄지..심히 기대된다. 


 발췌할 양이 많아 나중에.. 대신 커트 코베인의 초상으로 마무리. 







 








 애플 제품을 좋아하든 싫어하던, 스티브 잡스를 알던 모르던, 이 영화는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잡스의 개인사의 트라우마와. 회사의 창업기,성장기, 그리고 잡스의 몰락. 다시 복귀해서, 화려한 성공. 이른 죽음. 등등. 그 자신의 일생이 마치 영화의 각본 처럼 드라마틱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인물자체가 평면적이거나 일차원적 성격의 캐릭터가 아니라, 다면성의 인간적인 호오를 비교적 객관적 평가와 시선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스마트 세대들에게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게 된 과정부터 아이폰,아이패드(영화에서는 처음에 2001년 아이팟 발표하는걸 시작으로 하지만)출현 까지 대략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한 인물의 전기 영화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개인용 전자기기의 혁명적 역사를 압축적으로 볼 수 있다. 훌륭한 전기 영화는 이름을 남긴 인물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다양하게 그 인물을 받아들이게 만들면서, 시간의 압축을 통해 인물의 삶 뿐만 아니라 시대의 역사를 인지하게 해야 좋은 (전기)영화라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죽고나서 그 두꺼운 전기책이 나왔는데, 그다지 읽을 생각이 없었다. 전기 영화는 좋아하지만, 대부분 두꺼운 전기책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의 대부분 한마디 평은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구나..란 평이 지배적인데, 어쨌거나 그 책을 앞으로도 읽을 생각이 없던 내겐 이 영화의 개봉은 단비 같은 것 이었다.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애쉬턴 커쳐가 잡스 역을 맡았다. 



 말년의 잡스 보단, 젊었을 때 머리 기른 잡스의 모습과 애쉬튼 커쳐의 모습은 정말 흡사하다. 살짝 펄잼의 에디 베더의 분위기도 엿 보이는데, 특히 대학 교정을 맨발로 다니거나 인도 여행과 자연 속에서 영감의 기를 받는 장면등. 70년대를 배경으로 흐르는 클래식 록 음악이 너무나 좋다. 비틀즈 보단 밥 딜런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영화속에 삽입된 밥 딜런의 노래가 너무 좋았다. 나는 70년대의 미국 차들과 음악들이 왜이리 좋은지..푹 빠져서 넋놓고 영화에 몰입했다. 


 이 사람의 근본 뿌리가 버려진 아이 였다는 것에서 출발한 결핍의 내면성이 어떻게 발현되어 성공했고 좌절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출생은 그랬지만 좋은 양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인생의 절대 동반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맺은건 일대일생의 운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이 막 진행될 무렵 여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생기자 철저히 버리고 그 슬픔과 번뇌를 일로 매진하며 승화시켰던 듯 싶다. 나중에 그의 딸 이름을 따서 리사 프로젝트에 올인 하는 모습도 자신이 못다한 아버지로써의 역할을 대신해 새로운 컴퓨터 창조에 집착을 보였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존재 였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기계의 가치에 몰두 했다고 여겨진다. 


 리사 프로젝트가 좌초되고, 궁여지책으로 매킨토시 팀에 가담하게 됐고, 가격이 높게 출시되면서 애플은 하향세를 걷게 된다. 경영 이사진에 의해서 잡스는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쫒겨나게 된다. 그런 성공과 몰락의 와중에. 워즈니악을 비롯해 처음의 친구들도 잃게 되고, 명예는 실추됐고, 곤경에 빠지게 된다. 결국. 자신의 신념과 제품에 대한 가치 창조의 예술가적 외골수의 기질과 열정이. 사람도 잃고 자신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영화 이야기와는 번외로 애플의 침체기에 나의 컴퓨터 역사를 뒤돌아 보며 실제 애플의 역사를 체감해 본다.

 나의 첫 컴퓨터가 1990년 삼보 트라이젬 흑백 XT 컴퓨터였는데, 이건 지금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DOS 시스템이었다. 문자 명령문으로 실행하고 파일을 이동하는 그런것.. 당시 다니던 보습학원(영어,수학,컴퓨터_도스나 GW베이직 을 배우는)에 컴퓨터 관련 잡지의 광고를 보며, 어떤 컴퓨터를 살까 알아보던중 애플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는데, 본체가 피자박스 같이 넓적한 어떤 모델이었다. 그때 그걸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대세는 아니어도 윈도우 95가 나오기 전, 애플의 선구적인 GUI를 맛볼수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처음 GUI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잡스가 매우 만족하며 감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걸 베낀 빌 게이츠에게 엄청난 분노를 하는 장면도. 암튼 마이크로소프트 도스 시절에 최고의 추억어린 게임은 페르시안 왕자 였다. 학원 원장이 텔넷,초기 인터넷을 접속해 보여주며 여기에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던 일. 중1짜리 눈엔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컴퓨터 강사의 보기드문 엄청나게 큰 가슴에 혹 했었지. 그 아가씨에게 찝적대는 원장을 관찰하는 것도 재밌었고..


 그러다 잊혀져 가고 있던 애플 컴퓨터를 다시 인지한 것은 미대를 들어가고서 부터다. 대학 1학년땐, 수강신청도 종이 문서로 하고, 수업중엔 콤파스나 자와 샤프로 제도 수업이 있었으니, 아직 포토샵의 존재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군대 휴학을 했고, 97~98년 사이에 우연히 동기 누나를 만나 학교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애플 컴퓨터를 500만원 넘게 들여서 구입했고, 포토샵이나 전자 편집 프로그램인 쿼크에 대해서 이야기 해줬다. 당시 500만원이면 엄청 큰 돈 이었다. 미대에서 매킨토시를 많이 쓰는 이유가 충무로의 전자 출판. 실무 쪽엔 전부 쿼크를 쓰고 있으니, 그렇게 비싼 애플 컴퓨터를 써야 했던 것이었다. 원래 애플이 비싼것도 있지만, 당시 엘렉스 컴퓨터란 총판업체가 비싸게 공급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애플은 지금의 애플을 상상 못할 정도로 정말 몰락한 회사였다. 


 95년인가 96년에 신촌의 구,신영극장에서 본 '토이 스토리'도 잊을 수 없다. 엄청 재미있고 신기했던 그 작품이 스티브 잡스의 재기의 발판인 것도 몰랐지만, 2000년 초반 다시 학교에 가니, 애플의 컬러풀한 모니터 일체형 누드 아이맥과. 특이한 디자인의 매킨토시 G3가  동기들의 자취방에 종종 보였다. 당시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은 대부분 잘 사는집 자제들이었다. G3를 가진 동기형이 오양 비디오를 비롯해 여럿 동영상 창을 열고 동시에 플레이하는 신공?을 보이며 자신의 매킨토시를 자랑하던 일이 기억난다. 사실 이런 성능 보다는 아이맥 디자인의 혁신 같은거에 감탄했다. 영화에서도 지금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와 스티브 잡스가 아이맥의 가치와 혁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창조적 영감을 발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제품을 실제 처음 보았을때, 그냥 이쁘기만한 물건이 아닌 이걸 만든 사람의 철학이 스며있는, 예술 작품을 본 듯한 묘한 감흥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팟이 나오기 전에 난 국내 엠피 쓰리 플레이어 업체인 새한 엠피맨의 제품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최초의 엠피 쓰리 플레이어를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 이었을 것이다. 당시 휴게실에서 선배들이 허리에 찬 플레이어를 보고 만보기냐고 우스개 섞인 질문을 던지던 일이 기억난다. 곧 애플에서 아이팟을 공개했고, 소니 워크맨의 혁명을 잇는 문화적 사건이 되었다. 엠피 쓰리 플레이어의 이런 과정을 보면서, 애플의 전략을 여실히 느낄수 있었는데, 그들은 물건을 파는 기업이지만. 단순히 물건만을 파는게 아닌, 그 제품을 통해 문화를 일구거나 재편하는, 즉 더 큰 가치창조를 하는 기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대 최고의 뮤지션인 U2의 보노를 만나, 음원제공을 약속받고, 그럼으로써 디지털 음원의 유통과 확산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이후 디지털 음원의 확산 과정에 대한 호불호는 제외하고서라도) 




 나의 첫 애플은 결국 2011년 말 맥북프로 인데, 쓰다보니,나같은 경우는 자잘한 것에 감동을 받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거,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일체형의 은색의 바디에 정밀하고 세밀한 작은 스피커 구멍들. 잠자기 모드일때. 본체 앞쪽에 마치 사람이 숨쉬는듯 작고 하얀 LED 불빛이 점멸하는 모습은 사람같이 살아있는 영혼을 느끼게 한다. 이런 소소한 것들 까지 신경써 디자인한 물건은 단순한 제품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무형의 감각들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 내 정신과 손 끝의 설명할 수 없는 작용. 그리고 이 터치의 촉감은 단순한 사물성 이상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말하니 애플 추종자 처럼 들리겠지만, 난 카메라, 컴퓨터, 자전거, 자동차, 악기 등등의 사물에 어느 정도의 페티시즘이 있다. 자본주의하의 물신숭배의 의미가 아니라, 나랑 밀접한 관계의 사물엔 단지 무생물이 아닌 사물의 영혼이 있다고 믿는 습성이라 할까..

 여하튼 2000년대 이후 최초의 아이맥, 아이팟 이래로 애플은 승승장구 하며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애플. 스티브 잡스의 탁월함은 전자기기 제품만을 파는 회사가 아니었단 점이다. 제품과. 소프트웨어의 일체. 그리고 아름답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통해. 인간의 삶을 혁신하는데 선도했다는 점이다. 그 의도가 비즈니스 차원 뿐이라고 해도,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개척했다. 그 성공과 실패의 고단한 삶에서, 나는 무엇에 확신을 갖고 열정적으로 추구할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간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한곳에 매진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기업의 가치를 드라마틱하게 일구었던 스티브 잡스의 일종의 자화상인데 그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선구적 가치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됐음 좋겠다. 이익창출 + 플러스 뭔가를..


 p.s> 처음 아이맥을 본 감탄의 여파를 이어 당시 애플의 주식을 샀었더라면, 이란 가정이, 요즘 경제 관련 책을 많이 보다 보니.. 자연스레 떠올랐다. 영감이 왔으면. 바로 해야해.. 곧 이 될지. 나중이 될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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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어느해 여름에 대한 추억이 딱히 없다. 좋던 싫던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쥐어짜봐도 여름은 그저 빨리 벗어나고 싶은 나태한 폭염에 대한 원성이었고, 아침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야 안도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미천한 여름 추억은 배제하고, 이 영화속 주인공들의 풋풋한 여름 이야기에 웃음짓고, 가슴아픈 사연에 뭉클해 지는 것이다. 극장 개봉할 때도 그랬었지만, 간만에 한웅큼 그렁그렁 눈물을 움켜지고 가슴으로 꿀컥꿀컥 삼켰다. 아주 좋은 영화임에도 당시 흥행은 별로였던듯. 거의 텅빈 극장에서 왜그리 울음을 참았는지.. 


 아마도 비슷한 시기였을거 같은데,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도 이 영화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안타까운 청춘의 사랑을 그렸던것 같다. 이 영화는 후반부 두 주인공들이 처하게 된 상황을 배제하면 초중반 까지는 일반적인 풋풋하고 순수한 로맨스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농촌에 농활을 간 일군의 대학생중엔, 부유한 집 아들이자 시국상황에는 별 관심없는 주인공(이병헌)이 있었고, 시골에는 너무나도 청초한 수애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풋풋한 감정은 마치 내가 이병헌으로 빙의된듯이..완벽히 수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있었다. 힐링이란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녀의 웃음에는 모든게 힐링이 되어 욕망의 억압과 슬픔의 광기는 스르륵 무너졌다. 여자들이여. 수애처럼. 웃어라..그럼 남자가 생길것이다. 이병헌이 수애한테 빠지게 된 계기, 노래, 허벅지?, 환한 미소는 나 또한 설레임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ㅜㅜ 거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지만 압권은 간이 영화 스크린 반대편, 학교 창문에서 단둘이 앉아 영화 보는 장면 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같이 서울로 온 그들에겐 시련이 급격히 다가온다. 손을 놓지 않았어야 하는 안타까움. 시대의 아픔은 그들의 사랑을 평생 갈라놓을 운명으로 뒤바꿔 놓는다. 두 배우의 출중한 연기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폭풍감동은 아니었을 거다. 두 배우의 눈물을 머금은 웃음은 연기이지만 아름다움의 비수 같았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편백 나무의 향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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