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떡국 먹고 하이네켄 오백 캔 한잔 하고 따스한 겨울 햇살 받고 있자니 트림이 꺼억 나오는데 배시시 웃게 되고, 그렇게 아버지가 아닌 아저씨가 되어 가나 보다. 


 뭐 암울해서 이런 문장으로 2014년을 시작한건 아니고 그냥 약간의 술과 햇살에 기분이 좋아져서 헤밸레 거리고 있다. 


 어제 잠 자기전 유투브에서 이런 것들을 보고 잤는데, 오늘 아침 뉴스에 그네 소식 부터 주구장창 떠들어대니 밥맛을 잃었다. 



캘리 수업으로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 홍대앞 거리엔 향수 냄새가 넘쳐나는걸 물끄러미 음미하고 있자니 23살 짜리 아이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거짓 냄새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럴까. 위선이나 위악이 아닌 위색?한 거리의 내음에 소외된 자의 불만이었다. "냄새가 진동을 해. 진동을.." 속으로 짐짓 웃기다고 생각했다. 


 진짜 마음은 무색무취인데, 점점 향수같은 사회가 되어서, 아니 나 조차도 마음에 내가 보고자 하는 색으로만 채우려 한다. 새해에는 형 과 색에 끌리는 마음을 버리고자 한다. 진정한 무념무상의 향기가 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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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 감상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 감독의 주된 테마는 가족인데, 일관되게 각 작품마다 가족의 여러 양상을 다룬다. '아무도 모른다''걸어도 걸어도''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리고 이 영화까지, 이젠 세계적인 명품 영화 감독이고 정말 멋진 작가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극찬했다던데, 실로 그는 21세기의 오즈 야스지로가 된 것 같다. 일본 만의 영화적 전통과 뿌리가 내심 부럽다. 구로사와 아키라,오즈 야스지로,기타노 다케시 등등등..서양의 거장들이 찬탄해 마지않던 명맥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어가고 있다. 


 물론 나는 한국 영화의 자부심도 크다. 90년대 중반 이후로의 한국영화의 과정을 상기해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영화의 질과 양적 다양성 면에서 그야말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다만 그 전통의 맥의 중심에 임권택 감독만이 상징적으로 존재하는것이 못마땅하다. 군바리 놈들이 정권을 잡고, 모든 문화,예술계가 암흑기 였듯이, 그 단절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을 비롯한 그 이전 시대 여타 영화들에 전통의 끈이 닿아있질 않다. 이런 영화들을 발굴하고 계속 알리며 끈을 이어야 한다. 프랑스에선 누벨바그 작가들의 작품을 끊임없이 상영한다고 하던데, 그런점이 부럽다.


 102번째 작품이라는 멍청한 수사를 붙여가며 한명의 거장을 만들게 아니라 한 두 작품 이라도, 시대성을 잘 보여주는 것 이라면 끊임없이 연결고리로써 상기시켜야 한다.  참고로 최근에 임권택 감독의 1981년작 '만다라' 를 봤는데, 괜찮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옛날 영화에서 보여지는 도심의 배경과 벌판의 풍경은 그 자체로 아련해진다.




 이 영화는 성별이나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은근히 혹은 꽤 저릿한 마음으로 감상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아들.딸 들 이었고, 또 아빠나 엄마가 될 것이고, 됐을 것이며 그렇게 가족으로서 사랑의 정을 내리 받는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뻔한 과정에서 내리사랑의 의미와 방법을 가슴아프게 전환하게 될 결정적 계기가 온다. 주인공 료타가 받게 되는 전화는 언뜻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신파의 전형적 소재이나,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에게 건네지는 여러 상념은 생각 외로 강렬하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우린 누군가의 자식들 이었고, 부모의 관점. 아이의 관점. 다른 경제적 기반의 환경은 사랑의 방법. 그러니까 부모와 자식의 소통에 대해서 많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6년이나 키운 내 자식이, 내 아이가 아니라 남의 자식과 바뀌었다는 한통의 전화, 참 아침마당의 기구한 사연 같은 소식이다. 

 영화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주인공 부부의 삶의 모습과 내면의 동요를 뒤따르고 관찰하며 감상자의 내면에 공감의 동요를 불러온다. 일본 영화, 아니 일본 국민성의 특징인, 감정의 북받친 표출이 아닌, 그걸 내면으로 삭이며 함구하듯한 타자와의 관계는 장단점이 있을것이나, 한국 영화. 한국성의 특질과는 참 비교가 많이 된다. 이런 경우 우리의 경우는 감정의 극단으로 치달아 뭘 어떻게 표현하든 격앙된 양상이 전개됐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국민성, 사회의 헤게모니의 밑바탕에는 먹는 음식의 영향이 크지 않나. 란 의문이 든다. 원래 자극적인 음식이 많은 한국음식문화인데 점점 현대로 올수록 매운맛에 대한 엽기적 추구는 삐뚤어진 사회성의 반영이고, 스트레스의 과잉이라고 보여진다. 이런 점이 드라마틱하게 상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현대 한국 영화라 본다. 

 최근에 본, 전혀 다른 가족이야기인 '화이'와 이 영화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무교동 낙지나 아구찜 같은 한국음식과 일본 가정식 백반의 차이 처럼, 영화의 전반적 스타일, 표현 방식에서도 드러난다고 본다. 박찬욱,김기덕,김지운 감독의 영화들은 위에 말한 한국 요리와 흡사한 반응이고 홍상수의 영화는 숙취 후 먹게 되는 시원한 북어국 같은 느낌이다. 고로 매운 음식에 대한 반응이 땀으로 범벅되는 나의 애증은 한국영화에도 투사된다. 


 그렇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들은 전통 일본 가정식 백반을 먹는 기분이다. 고전 명작 '도쿄이야기'에서 부터 이어지는 다다미 연출의 전통과 정서가 이어지고 있다. 고레에다 감독의 특장점은 감독의 주관이 연출에 개입되는 것 보다는 그저 사건의 정황을 자연스레 보여주고 배우의 내적 연기를 통해 그 상황의 의미들을 각자가 나름대로 반추하게 한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객관적 보기를 통해 더 많을걸 느끼게 한다. 함축된 의미의 '시'와 같은 일상의 장면들은 한장의 사진처럼 다가온다.  천천히 음미해서 보는 영화 감상의 즐거움을 가져온다. 한국영화의 우악함에 익숙하다면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는 매우 건조하고 지루하게 다가오겠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 삶의 태도나 어떤 관점이 변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면, 예술 감상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판에 박힌 휴머니즘의 강요나 감상주의가 아닌, 예술의 그런 효용에 가장 근접한 영화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아닐까 싶다. 


 남의 행복을 시기했던 간호사의 순간의 과오가 얼마나 두 가정의 당사자들에겐 큰 고통을 초래했는지, 모든 잘못된 선택과 행동은 그 파장의 여파를 가늠할 수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두 가정의 구성원들이지만 그래도 제일 큰 마음의 반향을 겪게 되는 료타와 그의 아들 케이타를 통해 큰 감동을 자아낸다. (마지막 료타 부부를 본 케이타가 도망가는 장면은 마음이 찢어짐) 분명 신파적인 연출이 아닌데도, 그런 상황을 묵묵히 억누른 감정은 관객에게 큰 여운을 남긴다. 상영 내내 곳곳에서 사람들이 훌쩍이는 소리가 계속됐다. 양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이고 파장이기 때문에 내적 긴장감이 대단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굳이 아이를 바꾸지 않고, 양 가정이 키우던 대로  계속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다가 아이들이 20살이 됐을 때, 사실을 알리고 그 둘이 다 서로의 자식이 되는 걸로 하겠다. 어찌됐든 쉽지 않은 선택이고 영화의 포스터 카피문구마냥 내가 알던 모든 것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잘나가는 직장인 료타, 좋은 집과 차, 전형적인 성공지향의 엘리트. 누구나 봤을 때  성공한 가장이라고 보이지만 그는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다. 아버지 역할의 제스쳐만 취할뿐, 부인이나 아들과 진짜 대화나 사랑의 온기를 나누진 않는다. 반면 허름한 동네의 전파사를 하는 아버지는 세속에 욕심이 없어 가난하고 철들지 않아 보이지만 아이들에게 온몸으로 헌신하고 서로서로 부대끼며 산다. 같이 목욕하고 장난치며, 어른아이같은 그의 양육 방식은 일에 치여 료타와 같은 현대 생활의 많은 아버지들에게 자각의 귀감이 된다. "당신은 어떤 아버지의 모습으로 있는가?" 하지만 무엇이 옳다라기 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고 못 살고를 넘어서 가족이란 따듯한 가치가 뭔지를 질문하게 한다. 두 아버지는 조금씩 변화하는데 그 변화의 중심엔 료타의 아버지의 관계도 짧지만 중요한 점으로 유추된다. 자식사랑의 대물림 내지 정반향은 어찌됐든 대상이 받아들이는 상처를 최소화해야 한다. 


 아버지로서, 아들로서의 사랑의 방식을 추억하며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많은 아버지들이 이 영화를 보고 주인공 료타와 같이 자식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달라졌으면 좋겠다. 아들이 자신을 찍은 사진을 보는 료타의 충격에 어느 아버지든 뜨금할 것 같다. 낮에 죄다 자는 모습뿐인 아버지 료타. 

 정말 좋은 영화였다. 부부가 꼭 같이 봐야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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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화를 볼 때, 대략 25분 30분 단위로 영화의 현재 러닝 타임 위치를 확인 한다. 그냥 그런 습관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얼마만큼 시간, 혹은 공간을 밀도있게 압축하고 어떤 호홉인지를 큰 덩어리로 인식하는 무의식에 가까운 버릇 같은 것이다. 적당히 영화를 낮설게 보고 있는 셈이다. (소격효과) 그러나 변호인을 보면서는 아예 시간 관념이 없어져 버렸다. 이 영화가 짧았는지, 두시간이 넘는 긴 영화 였는지, 전혀 감이 없이 영화에 빠져들어 느꼈다. 


 그만큼 대단히 재미있게 보았다. 배우들의 연기에 완전 몰입되었다. 감정이입으로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얼굴의 근육이 욱신각신 다채롭게 움직이는 걸 느꼈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힘은 말할것도 없지만, 그것의 구현을 넘어서 배우의 연기자체가 숭고하다는 느낌은 처음이다. 특히 송강호는 무형 문화재로 등재해도 될 듯 싶다. 


 특정한 인물을 연상하는 것을 넘어서, 최소한의 상식과 정의가 어떤 과정들을 통해서 그나마 쟁취했었는지를 아주 뭉클하게 볼 수 있다. 개인의 삶에서 소소하게 시작한 편린들을 중반 이후, 급격히 무거운 화두로 몰아간다.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마음속에 본질적으로 스며든 그 가치들은 내 안을 용트림 하게 한다. 

 뜨거운 영화였다. 속으로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대단히 뜻깊은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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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주 전, 일요일에 대림 미술관 앞에서 모이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중 하나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는데, 갤러리 앞에 길게 줄을 선 인파들의 모습이었다. 곧 도착해서 보니 전반적으로 짜증이 일었다. 우린 그냥 전시 관람은 포기하고, 서촌엘 가보기로 했다. 무지 배고파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에, 일행들이 서촌엔 어디어디가 좋고 뭐가 맛있다고 그러면 무조건 어디곤 빨리 가자고 보챘다. 

 

 서촌엔 처음 와보는것 이었다. 라고 쓰고 있는 와중에 스물셋인가.넷쯤에 미팅으로 만난 아이집이 여기 였고, 바래다 준 기억이 났다. 그 아이한테 왜 그렇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는지 당췌 당시의 나를 이해할 수 없구나.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았지만 도통 내 마음은 울적하였다. 자연스레 해야할 과정에서 빗나가니 꼬락서니가 이 모양이다. 정확히 말하면 효자동 이었다. 


 휴일이고, 저녁시간에는 아직 일러 문이 많이 닫혀 있거나, 영업 개시전 이었다. 골목을 기웃거리다가 누군가 서촌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누하의 숲' 이란 일본 가정식 식당을 찾아 갔다. 난 뭐래도 좋아.란 심정으로 해가 급하게 어둑해지는만큼 배고픔에 필사적이었다. 근데 저녁 타임 개시는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고, 우린 궁여지책으로 어떤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통인시장?) 유명한 떡볶이 집이 있다길래 나는 어딘지 길도 모르지만 앞장섰다. 


 하나는 간장? 에 쫄인 떡볶이고 다른 하난, 고추가루에 버무린 것인데, 맛이 쬐금 톡특하긴 해도 줄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이런 떡볶이도 있구나 란 정도. 서빙해 주던 아저씨는 자기네 집이 원조란 자부심이 대단했다. 떡볶이 주제에 오늘 하루치 양 다 떨어져서 일찍 가게 닫는다고, 떡볶이를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떡볶이가 전복이나 꽃등심도 아니고..


 그렇게 나왔음에도 아직 시간이 남아,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으며 죽 때렸다.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나를 누나가 아이스크림 사 준 꼴인데, 우리가 편의점을 사수하고 있자니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19년전 편의점 사발면 한끼에 배고픔을 달래가며 낄낄대던 그 모습으로..


 그렇게 해서 드디어 대로변의 작은 식당인 누하의 숲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네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딱 하나 있었고, 나머진 둘이 온 커플들이 자리를 채우니 작은 가게가 금새 꽉 찼다. 일본 정통 가정식 백반 이란다. 네가지 정도 메뉴가 있었고, 다 맛있어 보였다. 다시금 느끼게 된 건데, 내 음식 취향은 딱 일본 가정식이 맞는거 같다. 짜고 맵고 뜨거운거 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은 소박한 식단. 모든 음식이 대단히 맛있었다. 간도 알맞고, 보기에도 훌륭했다. 홍대앞의 델문도 보다 괜찮은듯 싶다. 여긴 눈오는날, 좋아하는 사람과 오면 딱 좋겠다. 


 나갈때 보니, 너무나 일본 아줌마스런 일본인?이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환하게 맛있게 먹었다고 답례하며, 속으론 혹시 일본산 식자재 쓴거 아냐? 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했다. 나는 총각이니까. 혹시 모를 2세를 위해 관리해야 한다. ㅋㅋ


 빈티지한 어느 까페를 찾았으나 영업을 안해서 다음을 기약하며, 서촌의 초행길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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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되고
당신의 삶을 결정 짓습니다.


내 생각과 내 말이 
내 삶을 결정합니다.
진정 이러한 것을 안다면
생각과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함부로 했던 불평 불만의 마음,
부정적인 말들 
오늘, 
깨끗하게 다 지워버립니다.


축복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 
상대를 세워주는 말을
함으로써
삶의 주름이 점점 펼쳦는
아름다운 축복을 경험해 
보시지 않으실런지요?


분명히 패배할 상황에서
승리를 고백하세요
분명히 모자란 상황에서
풍부함을 고백하세요
자기가 말한 대로 됩니다.
자기가 말한 대로 이루어 집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가득찬 말들이
사랑으로 충만한 말들이
당신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당신의 소망대로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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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합시다!

대학가에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유령이. 새누리당과 국정원,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언론, 일간베스트저장소는 이 유령을 퇴치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지만 유령은 계속하여 다양한 형태로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던 자신을 반성하거나, 관심이 있었더라도 표명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는 등, 그야말로 재 위에 앉아 옷을 찢는 회개의 행렬이 이어지는 실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최근 7천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을 직위해제한 코레일에 대한 규탄과,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정부에 대한 불같은 분노 역시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그 동안 안녕하지 못했던, 누구도 대표해주지 않았던 얼굴 없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한국 현대사 역시 비극으로 시작되었고, 지금은 그것이 다시 희극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딸이, 서북청년단에 대해 일간베스트저장소가, 1972년의 유신에 대해서는 국정원 사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리고 공안정국으로 이루어진 정세 속에서 바로 그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숭배는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숭배의 열화 버전으로 서울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계속 공안 정국을 이끌어 나가게 된다면, 언젠가 국립 5.18 민주화 묘지는 한낱 역사적 희생양들의 공동묘지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은 한국사회의 시계를 30년쯤 뒤로 돌린 듯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이후로 계속 자신과 똑같은 정통성을 부여받은 야당과도 성의 있는 대화나 합의를 시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있습니다. 정권 초부터 지속되고 있는 인사파동은 이러한 통치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산적한 정치 현안들, 특히 국정원 선거개입과 같이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고장난 축음기처럼 아무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여,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박근혜 정권 이후 본격화된 공안통치와 종북몰이를 보면 이 나라가 정말 권위주의 시절로 돌아간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박 대통령이나 그 하수인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원주의(Pluralism)를 그 기반으로 합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3대 절대 자유’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곧 다원화된 사회라고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론 분열’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특정한 ‘국가관’이나 ‘안보관’따위를 가져야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특정한 국가관, 특정 사안에 대해 특정한 입장을 모든 시민이 공유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로 비판적 발언에 대해 ‘국론분열 용납하지 않겠다.’ ‘조국이 어디냐.’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없는 ‘열린 사회의 적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념을 동원해 시민들을 둘로 나누고, 그 절반의 지지에 기반하여 나라를 통치하려는 전략을 정치학에서는 ‘두 국민 전략(two nations strategy)’이라고 합니다. 두 국민 전략은 권위주의 정권들의 전형적 수법입니다. 이들은 시민 다수의 다양한 정치적 판단을 ‘우리편이냐, 아니냐’는 단순한 질문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자유로운 정치적 사유를 위축시키는 자기 검열을 강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종국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인 자유로운 시민사회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자신의, 그리고 곁에 있는 동료 시민들의 안녕하지 못함에 분노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일은 분명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대통령은 국론 분열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전체주의적 엄포를 가증스럽게 늘어놓고 있지만, 우리의 다른 목소리야 말로 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원동력입니다. 확신에 찬 하나의 의견만 있다면, 안녕한 자들의 목소리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지상의 독재국가 내지는 천상의 신정국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나 안녕하지 못한 다른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죽은 반인반신이 다스리는 위대한 목적의 왕국을 거부하겠다는 살아있는 시민들의 민주적 의사 표명입니다.

하지만 함께 분노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고백을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과연 안녕해질 수 있을까요? 잠깐 이야기를 돌려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해 봅시다. 얼마 전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끔찍한 차별 속에서 안녕하지 못한 흑인들의 안녕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분노하고 이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변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의를 실현한 의인으로 칭송받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현실은 전혀 정의롭지 못합니다. 여전히 많은 흑인들이 안녕하지 못하며, 빈곤과 궁핍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하나의 악을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을 지속적으로 안녕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해서는 손을 쓰지 못하였고, 자신의 동료들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확립하지 않아 그들의 부패와 타락을 막지도 못하였습니다. 결국 말년의 만델라는 여전히 안녕하지 못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안녕을 가장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는 처지라는 평가에서부터 백인들로부터 평화의 사도로 인정받기 위해 흑인을 팔아먹었다는 비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흑인을 아파르트헤이트에서 구원하고자 했던 만델라의 시도는 실패하여 결국 다음 세대의 과제로 남게 되었으며, 흑인들은 여전히 압제에 고통 받고 있습니다.

만델라의 실패 사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금 여기의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 내지는 새누리당, 국정원, 보수언론과 같은 암흑의 핵심만을 타도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돕는 안녕한 세상이 올 것이라는 생각 역시 착각에 가깝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이 없던 시절에도 대추리와 각지의 크레인과 굴뚝 위에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하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과거의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하였던 인물들 역시 모두의 안녕을 지켜주는 데에는 실패하였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좋은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일은 더욱 풍부하고 심도 있는 참여와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입니다. 이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변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며, 악에 대한 순수한 분노 대신 타협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라는 질문은 현재 우리가 좋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의미가 있는 자극제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단순히 집단적 고해성사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미학적인 거부감을 표출하는 정념 발산에 그친다면 이는 힐링 열풍의 좌파적 버전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왜 안녕하지 못한지, 어떻게 해야 안녕해질 수 있는지 질문을 확장시켜 나가야 합니다. 서로의 안녕을 물으며, 안녕하지 못한 현실과, 그 현실을 만든 대표자로 지목된 개인이나 집단에게 분노는 표출하는 일은 쉽고 통쾌합니다. 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은쟁반에 여왕의 목을 담아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안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 시민들을 안녕하게 만든 것은 찰스 1세의 목이 아니라, 전후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은 베버리지 리포트였습니다. 원수에게 도끼를 내려치는 통쾌한 일과, 통계와 씨름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는 재미없고 골치 아픈 일 중 어떤 일을 할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구약성서의 다윗왕은 좋은 통치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왕인을 절멸시키고 원수를 자신의 손에 붙여줄 것을 더욱 자주 기도하였습니다. 그만큼 명쾌한 악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모든 사고의 책임을 말소시키며 분노만을 발산하는 것은 엄청난 유혹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을 확인하고 타도하는 데에 몰두하기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의 실현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적과 전쟁을 벌이며 피와 살육 속에서 지고의 쾌락을 느끼는 발할라의 광전사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안녕은 서로가 서로를 돕고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화두는 누군가에 대한 반대와 투쟁을 넘어,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비단 정부 뿐 아니라 일각에서도 철도노조의 파업과 집회에 기성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참여하며, 연속된 자보에도 학생운동단체들이 참여한다는 이유로 순수성이 결여되었다는 비난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이는 정치는 순수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이라는 반정치주의에 편승한 비난으로 명백히 민주주의와는 배치되는 주장입니다. 타협과 양보 혹은 갈등이라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결여된 '순수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체제는 전체주의 체제밖에 없습니다. 순수함은 정치에서 결코 바람직한 가치가 아닙니다.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타협과 양보를 요구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을 우회하여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자신의 목소리만이 정치에 반영되길 원하는 투정에 불과합니다.

어떤 정치적 주장에 대해 순수성을 원한다면 모든 정치과정을 부정하고 반민주주의 무장투쟁을 하거나 수도원에 홀로 들어가 참회록을 서술하며 고고한 삶을 살아가면 될 일입니다. 이들의 주장과 같이 수많은 '외부세력'의 참여를 부정한다면, 나의 행동이 타인의 의사에 의해 제한되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가 지적했다시피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입니다. 나아가 민주주의는 혼종과 다양함을 그 본령으로 하며, 집단적 결정은 항상 타협과 양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혼종과 다양성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사회적 목소리로 만들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사적 관계에서 힘을 가진 기득권자들의 승리만을 보장하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들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주의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확실한 구심점이 없는 거리의 정치는 그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안정적으로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조직된 목소리에 한정됩니다. 현재진행형 상태인 '대자보 운동'이 어떠한 경로로 귀결될 지 지금으로서는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운동이 당장에 조직된 정치세력으로 결속되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에는 여러 제약요인이 따를 것임이 분명합니다. '우리 모두의 안녕하지 못함'에 공감을 표했던 수많은 청년들 역시 저마다 다른 정치적 이상을 지향하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 사회가 그들의 호소에 부응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보다 넓고 관용적이고 자유로운 정치적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장에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보다는 우선 청년들에게 정치적 삶을 되찾아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일차적인 책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신에게 악인이 흥하고 선인이 고통을 겪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표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문호 푸쉬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우리를 속이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하지만, 저희가 보기에 최소한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불의에 대해 여러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모여 하나의 새로운 운동으로 조직 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번 ‘안녕들하십니까’ 자보는 그러한 조직화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정국은 결코 안녕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베버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강조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안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안녕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안녕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갑시다. 그러므로 저희도 역시 다시 한 번 강조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세대학교 인문·사회과학회 목 하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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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다. 강좌의 절반이 지난 이 시점, 어젠 숙제검사를 받다가 선생님이 내가 대한민국이라도 된 양, '총체적 난국'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인정한다. 아직 감도 못 잡고, 그냥 평소의 악필 습관대로 휘날리는 필치를 끄적댈 뿐이다. 근데, 오히려 점점. 오기도 생기고, 붓과 화선지와의 마찰과 먹물의 스며듬을 몸이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는 걸 안다. 아직은 밑바닥을 헤매지만 내 안에 명필의 가능성이 꿈틀댄다는 걸, 아니 그것이 있다는 것 만은 확실히 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게 된 계기는 표면적으론 우연인데, 이게 따지고 보면 필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이너인 친한 선배가 어느날 내가 뚝딱 만든 어떤 쪽지를 보게 됐고, 너가 캘리그래피를 배우면 되게 도움이 될 것이다. 란 말을 했다. 이때까지 내 마음속엔 캘리그래피가 조금의 감각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로 보였다. 그래서, 뭐 한번 배워나 볼까.란 마음이 처음엔 앞섰다. 내가 이 분야를 얕본 이유를 생각해보니, 어릴적 서예를 따로 배운적은 없지만, 학교에서 배운만큼만 붓을 잘 다루긴 했다. 먹물로 대나무나 국화 같은것도 곧 잘 그렸다. 평소 글씨는 악필이지만 그래도 붓글씨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바로 무참히 깨졌고, 지금은 이 분야에 대한 탐구 정신에 설레이기도 한다. 


 캘리그래피는 영어로는 서예로 통칭되는데, 현대적인, 실용적인 서예로 말할 수 있다. 문자 정보를 읽는 것에서 이미지화(연상)시켜 보여질 수 있도록 하는 현대 조형 예술의 하나다. 선생님께 서예와 캘리그래피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클래식과 가요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하셨다. 서예는 확고한 법(칙)이 존재하지만 캘리그래피는 법칙 보다는 용도에 맞는 컨셉트가 중요한,, 

 내가 선생님을 믿고 좋아하는건 기본 뿌리가 확실하고, 기본기를 강조하는데 있다. 무려 서예학 박사이시고, 캘리그래피 초창기를 이끈 1세대 캘리그래퍼다. 그러니까 서예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캘리그래피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일상에 파고드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강좌가 진행되면서 느끼는 건, 글씨라는게 자신의 인성,인품의 반영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좋아야(져야) 좋은 글씨가 나온다는 것, 서예를 통해 수신,수성하는 옛 선비들의 덕목을 엿 볼 수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 사람하고 글씨는 같이 늙어간다고 한다. 


 캘리그래피를 배우는데 있어서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고히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취미냐, 작품이냐, 실전이냐, 처음의 그냥 호기심이 아닌 어떤 목적의식이 뚜렷해지고 있다. 


 캘리그래피는 과학이다. 공간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글자,한글자 마다의 조형성 뿐만 아니라. 전체 문장의 조형도 중요하다. 한글은 상형문자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원리와 법칙이 있는 체계를 무너뜨리면 안된다. 물론 컨셉이 그러하다면 어쩔수 없지만. 그리고 전통 서예의 도제식 교육으로 스승과 제자의 글씨가 똑같아 지는걸 매우 우려하고 경계하셨다. 배우는 입장에서 스승의 글씨에 영향받는건 어쩔 수 없는데, 자신의 글씨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캘리그래피에서도 어느 학원, 어느 선생의 글씨만 보인다고 했다. 


 여기서 핵심을 정리해 보자면.

1. 글씨 공간 똑같이. 

2. 실획, 허획의 구분

3. 먹물이 뭉치는것, 가시나무 처럼 날리는것 조심

4. 예각 조심

5. 가로획 짧게

6. ㄴ,ㄷ,ㄹ 중성 ㅡ 가 올때 짧게

7. 글씨 엮기

8. 착시현상 (막힌공간 크게 열린공간) ㅂ,ㅕ,ㅛ,ㅠ

9. 초성보다 중성 짧게 

10. 받침 끼워넣기. 

 무엇보다 글씨의 정성과 자신감 있는 필치가 중요하다. 



 숙제 검사 하면서 수강생들이 써온 문구를 다시 써주면서 설명. 내 인생의 봄날~ 의 봄날을 쓸 때 필치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던지..



 어느 삼십대 여자분의 보고싶어요 원빈.. 솔직하고 귀여움에 우린 잠시 뿜었다. 


 붓이 먼저 가는게 아니라, 이미 글씨의 형상, 위치를 다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붓을 움직여라. 

 천천히..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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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크 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은 영원한 고전이다. 1973년에 발표된 이후로 팝음악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빌보드 앨범 차트에 올랐었다고 한다.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의 범주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의 밴드다. 이젠 그런 장르 구분없이, 그냥 전설이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등등.. 영국의 찬란한 문화 유산이다. 

 처음 이 음반을 들었을 때도 충격이었고, 간간히 꺼내 들을때 마다 역시나 감탄하게 된다. 여전히 소름돋는 전율을 느끼게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음반을 들으며 인류의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진보의 힘을 느낀다. 

 단지, 멜로디와 리듬으로 마음을 사로잡는게 아니다. 소리의 구성으로 오묘한 세계를 탐험하는듯 빠져들게 만들고 묵직한 메시지들을 전달한다. 70년대 초 신디사이저, 스튜디오 레코딩 기술의 발전과 발 맞추어 지금 들어도 여전히 신선한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음반을 만들어 냈다. 천재 집단이 만들어 낸 최상의 결과물이다.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보컬겸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길모어의 솔로 연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펜타토닉 스케일의 단순한 솔로 주법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다니.. 초창기 멤버인 시드 배럿이나. 길모어와 분리되어 핑크 플로이드의 또다른 축 로저 워터스에 대해선 잘 모르고, 핑크 플로이드의 다른 음반도 많이 들어보지 않았지만, 이 음반만은 특별하다. 


맨 오른쪽. 데이비드 길모어


 우선 앨범의 표지 자켓 이미지 부터가 남다르지 않나. 단순하면서도 오묘하고 심오한 표현. 디자인 그룹 힙그노시스의 작품이다. 언젠가 내집의 거실엔 저 작품이 걸려 있을 것이다. 고해상도로 프린트 하던지, 내가 모사 작품을 만들던지 해서.. 리히터의 촛불 그림과. 몬드리안,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이우환의 작품도 모사 해서 걸어놔야 겠다. ㅋㅋ


 이 음반은 음악의 벡터를 넓힌 경이로운 작품이다. 일상의 소리가 음악의 질료가 되고 우주적 차원의 몽환적 신디사이저 소리부터, 일상의 소리 감각이 음악의 리듬에 녹아든다. 대표적으로 모니 의 금전출납기 소리의 리듬은 모든 소리가 악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를 깨닫게 한다. 샘플러 기기의 대표적 예시다. 

 단지 듣기 좋은 노래들의 나열이 아닌, 뭔가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달의 어두운 이면으로의 초대 같다. 고전은 끊임없이 영감을 제공한다란 말이 있는데, 딱 이 음반이 그렇다. 일상의 경계를 찔러 지루하고 무료한 삶에 표현하기 힘든 자극을 준다. 핑크 플로이드는 위대한 밴드이고 이 음반은 실로 경이롭다. 


멋진 패러디 작품.




 



 요즘 유독 해가 짧아져 마음이 쉬이 적적해져서 인지, 맥주 한두병 마시는 습관?, 아니, 맛이 들렸다. 원래 하이네켄 옹호자 였는데, (왜냐, 하이네켄은 물이 좋아서 인지 마시고 나면 피부가 좋아짐, 나만 그런가?) 홈플러스에서 수입맥주 5개병에 만원 행사를 하고 있어서 사게된 파울라너 밀맥주의 맛에 빠졌다. 맥주를 잘 모르지만, 다른이들이 기네스와 파울라너 만 사오면 된다고 해서 위사진의 맥주를 알게 되었다. 가보니 기네스는 행사에 없었고, 파울라너 와 그래도 안 사면 섭섭한 하이네켄 500ml 캔 4개 를 사왔다. 


 원래 파울라너 한병 가격이 3,460원 이었는데, 한병에 2,000원에 산거니, 꽤 할인된 셈이다. 그런데 행사용으로 무더기로 쌓아둔 것과. 정식 주류 코너에 있는 병의 라벨이 차이가 있었다. 위사진의 맨 오른쪽에 있는 병만 다른 것과 라벨 위치가 틀린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식 주류 코너에 있는 건, 제조일이 최신인 것 같고. 행사용은 좀 오래된 재고 같았다. 병맥주래서 그렇게 맛이 차이가 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정식 코너에 있는걸 쓸어 담았다. 


 맥주의 최고봉은 역시나 흑맥주의 대명사 기네스 고, 

 라거 맥주(일반의 익숙한 맥주)의 최고이자 레퍼런스한 맥주는 하이네켄. 그리고 국내 제조 버드와이저가 아닌, 미국에서 마셨던 버드와이저 

 밀 맥주의 파울라너 헤페바이스


 위 세~네 종의 맥주가 내가 볼때는 최고의 맥주들인것 같다. 


 언젠가부터, 단체로 놀러가거나 호프집에서 500cc 나 피쳐로 시키지 않는한, 가끔 칭다오는 먹긴해도 국산 맥주나 일본 맥주를 절대 안 먹는다. 물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나란 지하수 오염이 심각할테고, 일본은 뭘 들이대도 방사능 오염일테니,, 내가 하이네켄을 좋아하고 피부에 효험이 좋다는건, 네덜란드의 원료 물 자체가 깨끗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한 대학원영어선생님이 술을 좋아하는 분이었는데 자기는 기네스 맥주를 피로회복겸 건강을 위해서 마신다고도 했다. 워낙 기네스를 만드는 아일랜드의 물 자체가 좋은 거라고. 그래서 전세계 어딜가나 가장 비싸다고, 믿거나 말거나인데, 영국에서 오래 유학했었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이것저것 아는게 많아서 그 말을 신뢰하게 되었다. 

 물도 마찬가지다. 간혹 마트에 가면 수입산 생수를 일부러 사 마시는데, 다양한 원산지의 미네랄 워터를 섭취하기 위해서다. 가보진 않았지만, 유럽의 청정지역의 물을 마시면, 그곳의 자연을 마시는 기분이 든다. 

 파울라너 맥주는 독일 뮌헨이 원산지다. 밀맥주래서 향이 더 풍부하고, 목넘김이 부드럽다. 반쯤 마시다, 밑에 가라앉은 효소?효모?를 흔들어 주면 더욱 맛이 깊어진다. 거품이 걸쭉한 느낌도 드는데, 일반 라거 맥주의 산뜻함 과는 다른 종류의 맛있음 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맥주는 병맥주가 진리다 란 소리를 했다. 편리해서 500ml 캔 맥주를 마시다 보면 병맥주의 옹골참이 참맛이란걸 느끼게 된다. 영화속 최고의 맥주씬은 '쇼생크 탈출' 에서다. 한여름 땡볕에서 수감자들이 노역하다가, 주인공의 능력으로 교도관에게 선사받은 얼음이 든 양동이에서 버드와이저 병맥주를 꺼내 마시던 수감자들의 행복한 모습은 그 자체로 맥주의 진리였다. 

 요근래에 어느 교양 의학 정보 프로그램에서 얼핏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에 섭취하면 좋은 음식이나 요소중에 맥아도 포함돼 있었다. 어쩌면 독일이 맥주로 유명한 것도 그들의 기후환경과 관련이 있을거란 추측이 든다. 독일인들은 맥주로 적적감을 달래가며 그리 취하지 않고, 이성적 정신으로 밤새 철학 혹은 과학 공부를 그렇게 하셨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 파울라너 독일산 맥주를 마시고 똑똑해졌으면 좋겠다. 다시금 위 사진을 보니 풍족감이 든다. (배 나오는 소리가 메아리쳐.)

 연말이라 앞으로 이런저런 술자리가 많을텐데, 이제 소주란 화학 술은 꺼려진다. 되도록 절제하고 집에 와서 이 한병의 맥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대형마트는 잘 안가지만, 간혹 이런 기회는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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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토요일에, 롤링홀에서 게이트 플라워즈 라이브 공연을 처음 보았다. 단독 공연은 아니고 여러팀이 나오는 공연이었는데, 탑밴드 출신의 실력파 밴드 톡식,해리빅버튼,게이트 플라워즈가 순차적으로 나왔다. 사실상 게이트 플라워즈의 라이브를 보러 간 건데, 덤으로 다른 팀들도 보게 된 것이다.  

이 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본 세곡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처음부터 뻑갔고, 충격이었다. 진짜 로큰롤. 제대로된 록을 하는구나 라고 느꼈다. 기타리스트의 실력이 해외 어느 록 밴드에 견줘도 손색없었다. 그들의 실력과 방송에 힘입어 곧 게이트 플라워즈의 앨범이 나왔다. 바로 이 앨범.



단언하건데, 국내 대중음악사에 실로 역사적인 앨범이 될 것이다. 노래와 연주의 훌륭함은 물론이고, 녹음의 질과 전체적인 음반 제작의 결과가 너무 훌륭하다. 어차피 서양의 음악이 원조이고 나의 경우 무수히 많은 록 명반들을 들어봐와서 비교하자면, 게이트 플라워즈의 앨범은 명반의 반열에 올려도 손색없다. 우리나라의 모던록 밴드의 시작인 델리 스파이스의 데뷔앨범 같은 경우, 기타 녹음의 질이 무척 조악했었던 느낌이라면, 이 앨범의 기타 연주와 녹음은 너무나 완벽하다. 

록의 전성기 였던 시대 70년대와 90년대의 장점만을 수혈해 게이트 플라워즈 만의 화학작용을 이룬다. 보컬의 박근홍씨는 처음 들었을땐. 펄잼의 에디 베더와 흡사한 창법이라고 느꼈으나, 자주 듣다보니 그건 박근홍만의 색깔이었다. 물론 90년대 얼터,그런지 록의 유산이 그에게 많이 깔려 있는듯 하다. 

특히 기타리스트 염승식군은 1기타의 4인조 밴드에서의 기타 플레이를 무척 맛깔나게 들려주고, 기타연주의 몽롱한듯 빈티지한 톤은 게이트 플라워즈 사운드의 핵심이라고 여겨진다. 짧게 맨 왼손잡이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연주하는 모습은 되게 새침하고 도도한 모습이다. 공연할때도 되게 시니컬해 보이던데 원래 스타일이 그런듯하다. 외모에서 풍기듯이 록 기타리스트지만 마초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선이 고운 여성적인 풍모가 눈에 띈다. 

라이브 공연의 실력은 앨범에서 듣던 그대로였다. 다만 롤링홀의 특성인지 베이스 출력이 너무 과도해 뭉개진다는 것만 빼곤, 앨범의 베이스 연주는 라인이 명확하다. 레드핫칠리페퍼스의 플리 스러운 독보적 베이스 라인을 가졌다. 

아무튼 뭐 하나 빠지는게 없다. 대부분 장점만이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을 이룬다. 지미 헨드릭스부터 화이트 스트라입스 까지의 찬란한 록의 유산의 핵심을 잘 계승했다. 그들이 세번째 앨범을 발표했을때, 한국을 대표하는 록밴드로써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으면 좋겠다. 연예가 아닌 음악으로만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음반을 좀 더 낸다면.. 

이게 진짜 록이야..!!!




 메탈리카 란 현존의 전설적인 위대한 밴드는 내가 완전한 팬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헤비메탈, 정확히 말하면 트래쉬메탈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탈리카는 음악을 좋아한다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밴드이고 음악 역사에 아로새길 경력을 30년 넘게 이어나가고 있다.


 그래서 올해 현대카드 시티브레이크 행사에 초대된 메탈리카의 공연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주오는 기회도 아니고, 이제 그들도 나이가 들어 전성기때의 퍼포먼스를 더 이상 보기 어렵겠단 판단하에. 대중음악역사에 남을 그들의 라이브를 봤다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지나쳤고, 이 콘서트 영화 또한 거의 끝물에 남은 상영관을 찾아서 보고 왔다. 


 이수역에 위치한 아트나인이란 독립 상영관인데, CGV의 무비꼴라쥬처럼 메가박스의 예술관 같은 개념인데, 건물 꼭대기에 위치한 독립적인 극장이었다. 극장의 내외부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외부의 테라스 공간은 한 여름에 오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영관 안도 작지만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3D 콘서트 영화인데, 화면이 작은편이라 쓰리디의 효과가 아이맥스처럼 크지 않다는 아쉬움과. 심야 시간이래서 그런지. 음량이 작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빠방한 기타 톤과 베이스 드럼의 댐핑을 기대했건만,, 예전에 용산 CGV에서 본 마틴스코시즈가 만든 롤링 스톤스 콘서트 영화 '샤인 어 라이트'와 아니 비교할 수 없었다. 그 때 세번이나 봤는데, 진짜 공연 보다 더 너무 활홀했었다. 여전히 섹시한 할배들에게 그렇게 감동을 했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있어도 재밌는 관람이었다. 크로니클에 나왔던 배우 데인 드한 이란 얘가 나오고 딱히 주된 이야기는 없지만 몽롱하게 메탈리카 공연에 빠져들게 되있다. 공연의 무대 연출이 어마어마 했다. 정말 아이맥스 상영관이었다면. 정말 콘서트 현장에 와 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제임스 햇필드 가 눈 앞 무대위에서 다운 피킹을 빡시게 하는 장면등등, 기묘한 가상체험 이었다.. 워낙 유명한 그들의 노래 '마스터 오브 퍼펫''낫씽 엘스 매터''엔터 샌드맨' 을 연주할 때 압권이었다. 


 몇일전 종로 3가의 굴보쌈집을 갔다가, 종각으로 걸어가면서 YBM 건물 앞을 지나가면서 추억에 잠겼다. 1991년 메탈리카 5집이 나왔고. 그 건물 지하의 대형 음반 매장서 끊임없이 울려퍼지던 '엔터 샌드맨' 이 생각났다. 내가 중1때 였던가. 무려 2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80년대의 밴드 스미스를 듣고 있지만 바로 전에 오랬만에 메탈리카의 단 한장 소장한 5집 앨범을 먼지털어 들어봤다. 역시 라이브가 더 좋다. 음반으로 듣기엔. 스미스의 음악 같이 모던록의 정형이 좋다. 그러고 보니 80년대의 록 음악의 극과 극이. 메탈리카와 스미스로 비교할 수 있겠다. 제임스 햇필드의 묵직한 다운 피킹과. 자니 마의 징글쟁글 피킹 아르페지오 톤. 무료한 일요일의 오후에 스미스의 음악은 묘한 기분을 불러온다. 모리세이의 낭랑한 목소리는 슬프면서 아름답다. 


 언젠가 소개받은 여성분중에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먼저 데프 레파드를 좋아한다고 했고, 메탈리카나 판테라 같은 쓰래쉬메탈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좀 색다르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음악취향을 숨기려고만 했다. 클래식을 좋아한다고도 했던것 같다. 헤비메탈이던 클래식이던 음악을 좋아하는 열정이 중요한거지. 생각해보니 스콜피언스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두번다, 헤어지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음악 취향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취향은 다르고 삶의 지향점이 같은게 좋은 것 같다. 의외로 혼자 보러 온 여성들이 좀 있어서 든 추억이었다. 


 




 코엔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훌륭하지만 이 영화는 가난한 포크 가수의 이야기래서 인지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어쩌면 한없이 우울하고 슬픈 영화일수 있음에도 코엔 형제는 특유의 재능으로 삶의 비극을 희극적인 면모로 바꾸어 헛헛한 웃음을 제공한다. 그러나 제목 그대로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을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나, 아니 감독은 그것을 그려내고나 있나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의 삶은 한갓 구경거리에 불과했고 영화는 그의 춥고 배고픈 겨울을 뒤따르며 엄정한 시선을 유지한다. 거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 카메라이고 어쩌면 이 영상 미디어(매개체)의 한계는 결국 구경에 불과하다는 점 일 것이다. 그런 점을 특유의 연출로 잘 활용하는 감독인 것이고, 우리는 신파나 과도한 주관성으로 점철된 영화가 아닌, 각자가 느낄 수 있는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을 알게 된다. 

 재능은 있지만 인생이 뜻대로 안풀려 난관에 봉착한 모든 예술가 에게 보내는 씁쓸한 위로? 같다. 남의 불행을 보며 나의 불행의 무거움을 덜고, 감내할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선 경고 일 수도 있다. 예술의 끈을 잡고 있는 아슬아슬한 생존의 장 은 고난길이 훤하고, 스타가 되는 것은 예정된 운명 같은 자에게 수락된 운 일 수도 있다. (마지막 부분에 미래의 슈퍼스타가 될 밥 딜런의 등장을 예고하는 장면) 자기 삶을 경영하는데 있어, 예술로의 도피나 일상성을 제쳐둔 몰입은 삶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작가 스티븐 킹도 그런 점을 경고했다. 네 삶의 한가운데에 책상과 타자기를 놓지 말라고..

 영화에서 그려지는 르윈 데이비스의 인간 관계는 파탄났다. 착하디 착해보이지만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벌레 취급 받는다. 전 여자친구가 퍼붓는 욕은 얼마나 찰지게 귓속에 와 닿는지, 마치 내게 하는 욕 같이 들렸다. 캐리 멀리건 이란 배우, 가시가 촘촘히 박힌 장미같이 참 이쁘면서 무섭게 나온다.  그가 그런 지경까지 내몰린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의 허물과 단점을 고쳐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음악에의 외곬수의 삶은 다른 면에서 고통을 가져왔다고 본다.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문제들을 타파하려는 노력 부재가 예술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더욱 커지게 했다. 



 인생은 어쩌면 타이밍 일 수도 있다. 운 때에 잘 들어맞는 삶이 성공의 관건인것 같다.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운을 만났을때,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키우는 것. 밥 딜런의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어보면, 성공과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 얼마나 영민한지 알 수 있다. 반면 영화속 르윈 데이비스의 삶은 뭔가가 다 빗나가 있다. 착하고 순수한 영혼이지만 그것의 결과는 분노와 멸시로 되돌아 온다. 자기의 재능을 경영하는일. 그리고 어떤 여자와의 관계, 시대의 타이밍, 운 같은 것이 밥 딜런과의 차이라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빙산의 일각처럼 성공의 이면엔 수면에 잠긴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무명의 용사들이 자신의 삶과 싸우며 쓰러져갔다.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수많은 이름없는 예술가들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빵을 위해 포기해갔던 수많은 예술가의 눈물을 위로와 공감으로 느낀다. 이러한 삶의 단면을 위트있게 보여준 코엔 형제의 능력에 감탄한다. 

 결말의 연출은 진퇴양난에 빠진 삶의 알레고리를 잘 표현했다고 본다. 과연 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우리들 각자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적극적으로 탐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회색의 바랜듯한 영상의 톤과 색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꽉 찬 극장에서 보는 감상은 다른이들의 반응 포인트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시작하기전에 김지운 감독을 봤는데, 옷을 캐주얼하게 잘 입는 다는 생각이 대뜸 들었다. 초기작은 좋아하지만 놈놈놈 이후로, 관심없는 감독이라 별 감흥이 없었다. 옷차림만 보이는 감독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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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근래, 코트를 사기 위해 집중적으로 쇼핑을 했다. 신세계 상품권이 생겨서 신세계 백화점을 근거로 본점, 영등포점, 파주 신세계 아울렛을 둘러 봤다. 적당히 합리적인 구매를 했고 만족하지만, 쇼핑을 하면서 느낀점은 코트 한벌을 산 기분 이상의 다채로운 감흥이었다. 


 옷 값이 참 비싸다. 몇십만원은 기본이고, 좀 괜찮다 싶으면 오십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코트를 보다보면 캐시미어 100% 원단의 제품이 눈길이 가게 되는데 은은한 윤기와 부드러운 감촉은 절로 최고급 이다. 를 알게 해준다. 정가가 백만원이 넘고. 할인한 가격이 보통 80만원대에 형성되 있다. 니나리찌는 200이 넘었고, 몇몇 잘 모르는 브랜드도 초고가를 형성했다. 사실. 캐시미어 코트를 입을 생각이 아직은 없다. 그렇게 비싼 옷은 옷을 입고 다니는게 아니라 옷을 모시고 다니는 것과도 같다. 실용적인 면에서 일상 생활에서 활용도도 높지 않고, 그렇게 부드러운 고급 원단에 스크래치라도 나면 참 속쓰릴듯 싶다. 중후한 중년이 되었을 때, 그에 어울리는 차와 어울릴 만 하지, 어중간하게 입으면 무슨 ...맨 같아 보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질레리의 캐시미어 100 7부코트 할인된 가격 82만원, 킨록앤더슨 69만원, 다반 59만원 캐시미어 코트는 내 머릿속에 가격과 입었던 이미지가 남아 있다. 


 울이나 모 원단의 제품이 나름 합리적인 것이다. 원단을 넘어서 디자인이 더욱 관건인 것이고 울이나 모 원단 제품에서 너무 올드하지 않고 너무 캐주얼하지도 않은 적당한 제품을 찿을 수 있었다. 집중해서 보는 와중에, 요즘 유행하는 패딩 코트 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아주 비싸다. 클래식한 느낌의 헨리코튼 제품이 괜찮아 보였다. 파일럿 코트 종류인것 같은데, 고급 한정판 버전, 할인된 가격이 49만원, 정말 잘 만들어진 옷이라 이거 하나 세게 지르려다가, 순간 욕심을 내려놓고, 예산 안에서 좀 더 합리적 소비를 하기로 했다. 노스페이스는 여전히 세일을 안한다는 고자세가 있었고,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캐나다 구스는 정말 어이없음. 그놈의 유행. 남들의 이목.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결과 인지    잠바가 백만원이 넘고 날개돋힌듯 팔린다니..ㅜ 중국산이 아닌 캐나다인 인건비가 비싸서 비싼거라고 하던데..그런 유행이라면 공짜로 생겨도 입기에 별로 탐탁치 않을듯.. 


 내 코트를 구입하는것도 일이었지만 8살 조카의 패딩 잠바를 사는것도 녹록치 않았다. 애들 옷은 또  왜이리 비싼지, 어른 옷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았다. 리바이스 키즈에서 적당한 제품을 골랐고, 나의 안목은 적중했다. 또 아디다스에서 월척을 건졌다. 아디다스 오리지널 라인의 고급 패딩 잠바인데, 사이즈가 작은 것만 재고가 남아있어서인지 원가격에서 터무니없이 할인된 가격으로 팔았다. 이건 어머니용으로 샀다. 그리고 다반 매장에서 찜해두었던 코트를 사니 가지고 있던 예산에서 다 해결되었다. 비싼 옷의 욕심을 내려두었더니, 다다익선의 효과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름 발품팔은 보람이 있었다. 많은 옷들을 입어 보면서 옷에 대한 생각, 몸에 대한 생각, 나이듦에 대한 생각, 소비에 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세계 본점의 명품관을 둘러보면 일제시대 최초의 백화점 건물이래서 인지 기풍있는 건물에 내부의 매장도 호화로운 분위기다. 고급품에 둘러쌓인 매장 직원들의 사소한 태도, 몸가짐, 눈빛들은 자신도 명품인생인양 은근히 도도하다. 내가 그들을 관찰하듯이, 그네들도 나의 옷차림을 훝어본다. 그나마 왠지 거부감이 덜한 폴 스미쓰 매장은 꼼꼼히 체크해 본다. 다른 남성복과 비슷한 듯 해도, 폴 스미쓰 만의 색깔이 있었다. 브랜드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안목으로 어떤 룩을 추구하냐가 중요하다. 넥타이 가 멋진게 많았는데, 너무 비싸다. 에잇 세컨드에서도 잘 고르면 비슷한 걸 구할 수 있다..


 다음에 양복을 사게 된다면 팔 질레리 파주 아울렛에서 사야겠다. 너무 친절해서 예산 초과임에도 캐시미어 코트를 지를뻔 했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보다보니 눈만 높아졌다. 옷보단 몸이 먼저고, 올바른 개념이 먼저다. 


 내가 산 코트 ㅎㅎ


 영화 만추의 현빈 코트와도 비슷한 ㅋㅋ 얼굴과 키를 비교하자면 좌절이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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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주전, 시골에서 가져온 은행열매 자루를 차안에 실었다가 그것이 가죽 시트에 좀 뭍었고, 냄새로 인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은행열매의 악취는 강력했다. 몇억년에 걸친 종의 번식의 핵심은 고약한 악취로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역사를 아우르는 생존본능의 냄새에 당해낼 재간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이런 저런 검색을 하며 냄새 제거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고, 실행을 해봤다, 사과를 쪼개서 놓아 보기도 하고, 향초를 피우고, 무엇보다도 선루프와 창문을 열어 추위를 맞서가며 운전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 냄새는 여전히 어디선가 잠복해 있다가 내음을 발산했다. 이젠 좀 익숙해진것도 같다. 그 냄새가 역겨움 보다는 구수움에 더 가깝다. 사람은 환경의 적응에 민감히 변화한다. 차문을 처음 열었을때, 그 냄새를 맞닥드리면 이젠 정겹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나의 자동차 생활은 망했다. 추위와 미세먼지와의 싸움보다 더 냄새가 중요하다. 오늘도 내일도 활짝 창문을 열고 달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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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비티에 이어 이 영화 또한 짜릿하게 감상했고,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인도양의) 망망대해에서 펼쳐지는 생존의 사투기 인데 그래비티 보다 더 건조하게 감정을 눌렀다. 완벽한 1인극 이래서 처음의 짧은 나레이션 빼고는 대사란게 없다. 갓~ 이나 뻑~ 을 탄식으로 뱉는거 말고는 시종일관 좁은 배 안에서 차분히 분투하는 그의 행동을 관찰할 뿐이다. 


 그러나 이게 대단히 집중하는 효과를 유발했고, 감독의 의도도 철저히 리얼리즘에 입각해 그저 한 인간 (인물에 대한 어떠한 배경적 설명이나 단초가 없다. 이름조차도. 그저 제목 같이 모든걸 잃어버린 늙은 한 남자) 이 겪는 고난에서 대처할 수 있는 당위적 행동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뿐이다. 

 무인도에 표류한 삶을 보여주는 '캐스트 어웨이'에서 혼잣말을 하거나. 배구공과 대화하는 주인공의 과장된 모습과는 정 반대의 지점에 있다. 또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의 상상속 환영. 또는 이야기와는 정 반대이기 때문에, 저게 뭐야 란 반응이 나올수 있는데, 그래비티의 감동과 비슷하게 대 자연에 고립된 한 인간의 내면을 간접체험하거나, 자신의 내면의 어떤 경험을 등가시켜서 느껴야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위대한 배우겸. 감독으로서의 로버트 레드포드의 늙은 주름과 명민하진 않지만 진중한 행동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일지라도 살기 위해선 어떻게 대처하고, 최선이란 뭔지를 보여준다. 여태 살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많은 껍데기들..돈.사회적 지위.명예.경험. 등은 바다를 표류하는 곳에선 허물에 불과하고 극한의 실존에 당면한 인간의 행동은 숙연하게 만든다. 어떠한 허세나 과장이 없는 담담함. 혼자 고립되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란 무엇일까. 추억을 되새기기 보단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묵묵히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이 아닐까. 


 예전에 영화속에 나오는 요트와 비슷한 배를 탄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같이 타고 있음에도, 저멀리 동해 바다 한 가운데 나가 육지가 안 보였을때, 기분이 괴로웠다. 사방이 바다인 망망대해의 무의식적 공포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나오는 와중에 배멀미로 이미 토할만큼 토해서.. 더 게워낼게 없다는 막막한 배멀미의 공포. 선착장의 콘크리트에 발을 내딛고서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던지..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와 걸신들린듯 먹어치웠던 추함도 다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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