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과 새해초부터 이 앨범을 다시금 아주 감동깊게 듣고 있다. 대중적 멜로디 감각이 천재인 사람들이 있다. 위저의 리더, 리버스 쿼모는 그러한 천재군에 속한다. 대충 생각해봐도. 그린 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 영국으로 넘어가서..노엘 갤러거. 트래비스의 프랜 할리. 스테레오포닉스의 켈리 존스 등이 즉각 떠오른다. 그중 리버스 쿼모가 쓰는 위저의 곡들은 뭔지 모를듯, 애잔한 향수감을 일으킨다. 이 앨범이 나온 스무살에 들어도 그랬고.. 지금 들어도 마찬가지다. 머나먼 고향의 근원적인 그리움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노래는 이와같이, 뭔가 애잔한데, 지금은 잡을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을 어렴풋 인지하게 하는 음악 인것 같다. 그럼으로서 인간의 선한 마음으로 회향하는 감정을 갖게 만드는 음악이랄까.


 너바나의 네버마인드(1991)가 제껴놓은 펑크,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에 가장 대중적이고, 그들만의 풋풋한 색깔을 유지한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훌륭한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로큰롤의 정신은 늙지 않는다란 말이 있듯이. 외모가 나이 들어가도 그들의 음악만은 여전히 청춘의 코어에 근접해 있다. 혈기 왕성.위트와 허세.에너지 과잉. 그리고 어떤 근원적 그리움.

 지금은 그들의 앨범이 몇집까지 나온지 모르지만. 1994년의 데뷔앨범(옆. 블루 앨범이라 부른다) 과 지금 소개하는 이 핑커톤(1996)앨범은 90년대의 젊은이의 감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명작 중의 걸작이다. 


 사실 위저의 2집 핑커톤 앨범은 당시 흥행에 참패한 앨범이었다. 워낙 1집으로 혜성같이 나타나 그린 데이의 두키 앨범과 함께 얼터너티브 씬을 초토화 시킨 앨범의 후속작은 엄청난 기대를 하기 마련. 소포모어 징크스 라고 하나.. 옆의 데뷔앨범 자켓사진 만큼 그냥 동네 청년들의 풋풋한 모습의 그들이 메이저 록 씬에서 엄청난 성공가도를 달릴때, 분명 그들은 초심을 잃지 말자. 록의 본연의 자세를 놓치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2집을 준비한것 같다.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1집의 잘 만들어진 팝,록 보다는 더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사운드로 당혹감을 주지만. 그 소란스러움 속엔 보컬 멜로디들이 보석같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바나의 네버마인드와 인 유테로 앨범의 관계같이, 메이저 레이블 소속이지만 록 밴드 고유의 순수함은 잃지 말자라는 방향성이 느껴진다. 근데 듣다보면. 처음엔 당혹스럽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손이 가는 앨범은 핑커톤 앨범인 것이다. 이런거야 말로 진정한 걸작. 


 위저의 1,2집은 음악도 최고이고 또한 최고의 앨범 커버인것 같다. 파란 배경지앞의 치장하지 않은 인물 사진. 그리고 일본민화의 아기자기하고 오묘한 그림. 특히 일본민화의 사용은 모든곡을 작곡하고 노래하는 리버스 쿼모.(키 제일 작은 사람)의 영향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의 수재였다고 한다. (진짜 천재 맞는거 같음) 그의 아내는 일본인으로. 2집 앨범의 겉표지.안과 뒤의 이미지에는 한반도와 일본이 그려진 고 지도와..찢어진 눈의 일본 여인 사진이 어둡게 새겨져있다. 역시 천재 답게 여자 취향이 고급이다. 그리고 앨범의 후반부 노래 사이에 어느 여성의 한국말이 들린다. " 어느 회사 제품이죠? " 라고.. 앨범 북클릿의 레터링을 김경희란 한국사람이 했다고 써있다. 아마도 이 사람 목소리인듯..



 90년대의 날고 기었던 록밴드들은 이제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몇몇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위저의 최근 활동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 위저만의 특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다. 거친 록 음악속에 아련함을 일구어내게 하는 것. 여전히 풋풋하고 기성세대에 타락하지 않은 중년의 청춘을 만날수 있다. 그래도 오롯한 그들의 청춘의 앨범인 1집과 2집 핑커톤을 강추한다. 


 특히 5번 트랙 어크로스 더 씨 부터 마지막 까지.. 향수어린 멜로디의 향연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ㅋㅋ

 

 어쨌든 지구는 멸망하지 않고 새해가 밝았다. 왠지 덤으로 생긴 새해 같다. 그러니까 선물 같은 날들..뭐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의 의미가 남다르다. 그래서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향을 설정해보고 마음이 가는대로 가보련다. 


 이른 아침. 계단의 눈을 치우고,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가보았다. 백설기같이 새하얀 운동장. 싹둑 가지친 은행나무는 불쌍해보였지만 그게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 봄날의 찬란한 개화를 위하여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뽀드득..뽀드득 작은 설원의 눈부심은 기분을 좋게 했다. 낮게 드리워져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은 눈을 흩뿌려져 반짝이는 보석처럼 보이게 했다. 눈을 처음 보는 대만사람마냥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집에 갈때 돌아보니, 처음의 흰 도화지 같던 운동장이..나의 발자국으로 무언가의 형상이 되었다. 나의 족적은 사랑과 예술의 길에 승차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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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밤 이때만해도 기분좋은 희망이 감돌았다. 소주와 사케를 마시고 3차로 들어온 바에서 테이블이 셋팅될 동안 내일을 생각했다. 오늘밤이 지나면 기분좋은 숙취속에서 승리를 만끽하리라. 저 한병을 다 비우고 일어서니, 꽤 취기가 올라왔다. 밖에는 추운날씨에도 주말의 널부러진 거리 분위기 였다. 다리를 못 가누고 비틀거리는 여인네들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쟤들은 내일 선거나 할 수 있을까. 거리의 많은 젊은이들은 도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늘의 추위와 취기와 쾌락에만 몸을 맡길뿐. 겉으로 보기엔 나또한 마찬가지였을게다. 일행과 헤어져 집에가는 내내 데낄라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술 마실땐 괜찮은데..일어서니 흔들흔들, 아 오랜만에 취해보는구나..


 새벽에 들어와서. 내리 잤다.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데낄라는 내 몸과 마음을 휑하게 내팽겨쳐놓았다. 적당히 잤으면..뭐랄까. 인터넷도 하고 티비도 보고 책도 보면서, 정신을 추슬렸건만. 이상하게도 계속 멍했다. 머리가 아픈것보다. 무기력증에 빠진 숙취였다. 해가 늬읏해질무렵. 오후 네시반..그제서야 투표하러 나갔다. 가는동안. 왠지 마음이 침울해졌다. 텅빈 거리를 지나 구석진 곳에 위치한 투표소는 한산했다. 계속 공허했다. 집에 돌아와서..저녁을 먹으며. 아직 개표 1퍼센트도 진행 안 된걸 보고, 방에서 또 멍하게 있었다. 채 9시도 안 되어서 침대에 누웠고, 내일 아침은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그냥 오늘은 데낄라에 내 영혼을 팔았다 생각하자며 누웠다. 6시 알람이 울리고, 한동안 방안의 어둠을 응시했다.


 티비가 켜져있음에도. 난 쳐다보지도 않고. 아침밥만 먹었다. 어제와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그 다음날도..또 그 다음날도..금요일날까지 성적처리등..학교일을 마무리하고..토요일 내내 내리 잤다. 무엇을 위해 살지..오직 돈..돈 . 정의와 일말의 양심은 돈의 영혼에 구걸해야 하나. 모르겠다. 이도 저도 아닌 나.. 갓 허물을 벗은 나. 채 날개를 펴기 전에 어떤 성충이 될까. 고민해보았자 이미 정해진걸. 어디서 날갯짓을 해야하나..


 삼합에 막걸리 한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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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밝혀두자면, 나는 이 영화의 영화적 완성도나 작품성을 나름의 주관으로 판단할 뿐이지, 배경에 깔린 역사적 사실로서의 사회적인 파급과 그 의의에 대해선 적극 찬동하는 바이다.


 

 ( 일요일 아침 첫 회인데. 사람이 가득. 어제 아는 누님이 갑자기 26년을 예매해준다길래, 머리 긁적이며 그러라고 했는데, 사실 26년이 뭔지도 몰랐다. 보고나서 영화에 대해 검색해보니,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제작과정.. 배급과정이 순탄치 않았는데, 시민 투자 방식으로 진행된 모양이다. 이승환이 이 영화의 1호 투자자 라고. 그 누님은 콘서트 전회를 다 따라다니며 보는..이승환의 광팬. 아 그랬구나. 아무튼 일요일 아침. 집근처 CGV에 갔더니, 내 자리는 맨 앞, 덕다운 파카를 입은 거구의 두 남자들 사이, 그 중 여친이랑 온 놈은 신발까지 벗고 다리를 의자까지 접고 있음. 참 짜장면 스러운 비매너, 그리고 가뜩이나 광고 때문에 짜증나서 되도록 예술전용관에서 하는거 보는 편인데 주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광고가 연실나옴. 티켓에 적힌 시작시간을 넘어 20분여를 했던거 같음. 에휴..)


 영화의 시작은 자막으로.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상자가 총 4112명 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이런 소재의 영화가 개봉이 됐을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라는 사실이. (그 흔한 인터넷 포탈의 짤막한 기사조차도)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의 보이지 않는 힘을 말해주는것 같다. 찾아보니 웹툰의 원작을 영화화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는 것이었다. 돈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투자를 안해서 시민들의 소셜펀딩으로 만들어진. 그 만큼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진 것이어서, 응원하는 마음이 가는 영화이긴 하나..영화의 완성도, 연출력은 좀 미흡하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진 않은데, 다루는 소재가 큰만큼 많이 아쉽다. 이런 역사의 사실을 가지고 만드는 영화중에 명작이 나왔음 하는 바램이 역시나..이창동 감독 같은 분들이 굵직한 현대사의 한면을 담은 명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용기와 연기의 헌신에 박수를 보낸다. 제작 과정의 우여곡절속에 연출 경험이 없는 미술감독이 감독을 맡아서인가. 제작 기간에 쫒겨 허둥지둥 했던 제작자들의 심리가 영화속. 그새끼를 처단하려는 주인공들의 설레발들이 투영되어 안쓰럽게 느껴졌다. 영화 초반에 그들이 모일때는 뭔가..그럴듯한 암살 계획을 세우는가 싶더니. 후반부로 갈수록, " 거 좀..잘 좀 하지..." 그런 심정.. 그래도 진구가. 그새끼를 몸으로 팰때는 어떤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그 개새끼를 처단하려는 동기나 의미는 대다수가 공감할 것이다. 진심어린 사과. 이제 그런것은 인간말종에게 바라지도 않는다. 그 놈이 멀쩡히, 버젓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착하거나,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나라이다.


 나는 광주 사람도 아니고, 그런 아픔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의 기억속 첫 대통령인 그 새끼는 어린이의 마음에도 적잖은? 상처?를 안겨주었더랬다. 평화의 댐이라는 거대한 국민 사기극은 과자 사먹을 돈을 아끼고 아낀 초등학생의 코뭍은 돈까지도 착취했고, 그들의 부정부패속에 사라졌다. 어릴적 반공교육이나 국민교육헌장의 세뇌같은걸 생각하면, 또 이름 함부러 말하면 경찰에 잡혀간다라는 어린이한테까지 미치는 공포심 조장은..다시 생각해봐도 치가 떨린다.

 

 아마도 80년대 후반. 밤에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다큐영상을 보다가..되게 무서웠었다. 그런 자료 화면속 충격적 이미지가 아직도 뇌리에 남는데, 그것을 겪은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악랄한 독재자에 의한 국가권력에 가족이 죽거나 고통받았다면 영화속에서처럼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방가후, 테레비에선 5공 청문회를 해주었다. 분노에 찬 노무현, 이해찬 의원등의 열변이 기억난다. 장세동 같은 개새끼의 똘마니들의 뻔뻔한 얼굴을 보며 다 큰 어른처럼 혀를 차던 모습이 떠오른다.

 

 다시 이 영화를 생각하면, 과정이 치밀하지 못하고, 듬성거려서 문제지.. 요소요소들은 재밌었던 느낌이다. 도가니에 이어. 장광씨의 주리를 틀어주고 싶은 얄미운 연기는, 배우로써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출연 선택에 쉽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영화에 대한 평가가 역사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오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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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개봉시 보았을땐 삐딱한 심정으로 봐서 그런지 지루하고 겉멋든 영화라고 느꼈는데, 다시보니 이 영화 참 괜찮다. 늦게 깨달은 수작 영화의 면모는 이해가 아닌 그냥 스며들어 느껴야 하는 감성의 산물이었다. 


 다수의 여자들이 하정우를 멋지게 생각하듯이 남자들은 탕웨이에게 어떤 본능적 끌림이 작용하는것 같다.(나만 그런가?) 그 사람만의 분위기. 여성의 외면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의 복잡다단에서 올라오는 이미지는 남자들이 여성을 대상화할때 성녀와 요부, 어머니와 창녀라는 극단적인 스탠스를 무마시키는 지점에 서있다. 


 탕웨이와 감독이 열애설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탕웨이를 위한 영화였고, 탕웨이에 의한 영화가 되었다. 상처받은 여인의 내밀한 영혼을 소통하면서 마음을 나누니, 어찌 안 통했겠는가. 


 김태용 감독은 이윤기 감독의 뒤를 잇는듯, 세말한 감성 로맨스를 추구했다. 대사나 플롯 보다는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감정의 무드가 중요했다.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에서의 3일간. 서로를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수도 없지만 옆에 있어주고, 깊은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언어의 소통이 아닌 마음의 보듬어줌이 사람사이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근본적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어머니마저 죽고 잠시나마 마음을 기대 쉴 곳 하나 없는 여인의 내면은 심연의 안개에 빠진 적막한 시애틀의 풍경과 닮아있다. 3일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하는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고 이 지구상에  홀로 남겨진 고독과 외로움은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맞물려 가장 휑한 영혼을 보여준다. 몸으로 먹고사는 현빈의 캐릭터는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상처받고 외로운 자에게 등불이 되고 싶고 기댈수 있는 말뚝이 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 아닐까. 현빈의 캐릭터를 통해 많은걸 배울수 있었다. 사랑이란 꺼져가는 상대의 등불을 어떻게 비추어 밝혀주느냐. 

 되새길수록 그는 고차원적인 제비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를 기다리는 그녀는 그가 안올지라도 그의 마음만은 간직하며 언젠가를 기약하며 살아가겠지. 왠지 그가 못와도 그녀의 달뜬 기분이 내심 여운이 많이 남는다. 

 

 내가 좋아하는 '멋진 하루'와도 비슷한 감흥의 영화였다. 두 영화 다 소리의 섬세함도 무척 훌륭하다.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 서걱거리는 옷깃의 소리, 꾹꾹 눌러담은 탕웨이의 음색 등등. 암튼 가을비의 스산한 감성으로 느껴보아야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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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칠맛나는 영화였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마음이 적적할 때 이런 영화를 본다면 효과 만점일 듯 하다.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거나 의미부여를 하기 보다는 그냥 느슨하게, 배우들이 자잘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내비두는 연출 스타일 같다. 걸작,명작, 아니, 흥행작을 만들어야 하는 욕망이 아닌, 그냥 우리 한번 즐겨보자..그런 느낌. 


 주인공 김인권의 편한 얼굴 마냥 부담없이 낄낄거리며 즐겼다. 마지막 짱께 배달부들의 살신성인이 좀 어거지스럽긴해도 참 재밌는 코미디 영화였다. 


 여유가 뭍어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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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가 개봉한지 13년이나 지났단다. 개봉시 극장에서 두번 보았다. 13년 만에 다시 본 셈인데, 해마다 이 영화의 매니아들은 특별 상영회를 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런 명작 영화는 극장에서 보아야 제맛이니,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에겐 영원한 고전이 되어가는 값진 감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니, 아무쪼록 불멸의 사랑 영화 되시겠다. 

 

 바야흐로 세기말적 분위기의 1999년에 한떨기 희망이 떨구어졌다. 아련,애틋,풋풋,설렘,순수,사랑의 마음을 담은 영화 '러브 레터', 

 일본문화의 개방 초창기, 이 영화가 최초가 아닐지어도. 내 기억속엔 극장에서 감상하는 최초의 일본영화 였던것같다. 비디오로만 보았던. 애니메이션 '아키라'나 '우르츠키 동자?' 의 거칠거나 이상한 소리와는 다른 나긋나긋한 여인의 일본말이 신기하게 들리던 경험. 


 개봉시 꽃다운 나이 때, 감상한 느낌보다 13년 만에 다시본 지금 이 감흥이 훨씬 더 강렬하다. 그때는 이미 첫사랑의 회환이 사그러드는 시점이었고, 지금은 왠지 항상 첫사랑중 이란 심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영화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첫사랑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울랑말랑 웃음짓게 만든다. 



 2년전인지 3년전인지 겨울산에서 조난당해 죽은 애인의 마음을 느껴보기라도 하듯, 참한 분위기의 주인공은 눈밭속에 누워 못다핀 사랑을 그리워한다. 자고로 미련이란 다 주지 못하거나 다 받지 못한 사랑의 앙금일터, 몇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잊지못할, 그는 진짜로 이 여인(히로코)를 사랑했던 걸까..


 죽은 그를 향한 헛헛한 마음은 여전했고 그 마음을 달래고자 중학교 졸업 앨범의 주소를 찾아 편지를 발신한다. 하지만 이 주소는 동명의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주소였다. 

 후지이 이츠키 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히로코와 똑같이 생긴(많이 닮은 이겠지)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생뚱맞은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답장을 받은 히로코는 마음속의 그를 떠나보내지 못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극중 다른 두 여성을 한 배우가 연기를 해서 횟갈렸었다. 머리 스타일조차 똑같았으니 초반엔 좀 이해가 안 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두세번째 볼때가 더 좋은듯하다. 


 그런 오해와 의문 속에서 영화는 더 몰입하게 되고, 이야기의 전모는 차츰 밝혀지게 된다. 두명의 중학생 후지이 이츠키의 과거를 현실속 성인인 여자 후지이 이츠키가 너무나 오랜 기억을 발굴하듯이 담담하게 채집해 들려준다. 히로코와 우리 관객들에게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이 사진을 확인하고는 히로코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신과 닮은 여인.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대뜸 사귀자고 했던 그.  

 직감했겠지. 

 그리고 그렇게 말이 없고,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했던 그의 중학생 과거를 듣는다.  

 다 듣고 나서 그녀의 이 외침은 그냥 그리움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 지내고 있어요..


 히로코의 그런 마음도 안쓰럽지만 그녀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유리공예하는 남자도 그렇고 또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그의 조수도 그렇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언제 어디서나 '잘 지내고 있나요? 를 되묻게 된다. 


 한편, 이런 후지이 이츠키를 보고 안 넘어갈 여학생이 어디 있겠소.



 반한다는 것은 이런 결과를 낳고



 과거속 후지이 이츠키도 실룩샐룩 마음의 감정은 숨기지 못하고 무뚝뚝한 그에게 알듯 모를듯 새침한 소녀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오른쪽의 4차원 소녀는 깨알같은 재미..



 현재의 그녀는 본의 아니게 과거속으로의 여행을 하게 되고, 그 추억을 공유하고자 사진을 찍어주고 동명의 후지이 이츠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인사와 겻들어 죽음이란 삶의 본질은 무던한 그녀의 삶에 새로운 삶의 성찰로 이루어 지고, 묻혀졌던 과거의 기억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처음이어서, 너무 순수해서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지 몰라 꼭꼭 숨겨놓은 그의 마음은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랑에 관한 오래된 고전 푸르스트의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 발견된다.



 그녀의 마음을 뭐라 형용할 수 있을까.

 그저 잘 지내고 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할 뿐..

 잘 지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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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채널을 돌리다 (정)려원이 나오고 있었다. 려원은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 군에 속한다. 여배우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기 때문에, 어중간은 없다. 예스 아니면 노. 드라마 '착한남자' 같은 경우, 문채원은 좋지만 박시연은 아니올씨다.여서 흥미가 없다. 손예진.한가인.한혜진.구혜선.하지원.한효주.고소영.전지현.은 전혀 아니올씨다 과이다.


 려원과 김명민이 나오는 드라마의 제왕이란 드라마인데 초반부이지만 꽤 강렬했다. 왠지 대박 조짐이 보일듯한. 느낌. 김명민의 배우로서의 캐릭터는 하얀거탑과.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캐릭터를 계속 이어가는듯 하다. 려원이나 김명민이나 영화로 별로 뜨질 못하니 드라마라도 대박이 났으면 한다. 왠지 유니클로의 다음 광고 모델은 려원이 될 거 같음. 


 이나영이 나오는 유니클로 광고는 너무 신성시해서 마음이 경건해진다. 여성의 성적매력같은건 인간의 수준이고 그녀는 왠지 지상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인것 같다..ㅋㅋ 유니클로의 벽에서, TV CF에서 나는 그리스 신전을 감상하는듯한 기분에 쉽싸인다. 가보지도 않았지만 왠지 그럴거 같다. 


 언제부턴가 날씨 예보를 하는 기상 캐스터 들이 왠지 섹시하게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건 아닌가 보다. 가슴과 골반이 강조된 의상과 몸매로 기압골의 그래픽 곡선에 눈이 가는게 아니라 그녀들의 S라인에 시선이 집중된다. 이건 기상예보를 보는건지 몸매 감상을 하는건지.. 또 채널을 돌리다 강심장에서 오윤아가 자기는 골반이 커서 애를 몇분만에 순풍 낳았다란 자랑을 해대고 있었다.. 


 골반하면 전지현. 도둑들을 봤는데, 뭐 이런 영화에 천만관객이나 들었나 하는.. 씨껍대는 도둑들 이야기 같은건 백해무익한 짓거리. 그냥 장르 영화의 재미? .. 애들이 팀짜서 그런거 따라할까봐 걱정된다. 물론 그런식의 도둑질이 아니라.. 아무튼 그냥 재미를 위해, 상업적 흥행만을 위해 영화를 만들기엔 그들의 재능이 너무 아깝지 않나. 


 몇일전 친구와 밥먹으로 카레집을 갔다가 바로 옆의 테이블엔 아리따운 아가씨 2명이 식사중이었다. 특히나 한명이 너무 곱게 화장을 해서 피부가 마치 하얀 석고상 같았다. 우리의 식사를 기다리던 와중, 그 공간엔 우리와 그녀들 두 테이블 밖엔 없었는데, 간혹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내가 환청을 들었나 했는데, 그녀들의 소근거리는 수다중. 점점. 저음의 남자목소리가 커졌다. 곱디 고운 트랜스젠더 였다. 기이한 경험속에 밥을 먹었고, 의외로 카레맛은 아주 좋았다.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 사이엔 제 3의 인격이 들어있는것 같았다. 아우 밥맛없어!.가 아니라 밥만 맛있게 먹었다. 

게이는? 글쎄..


 오늘 집에서도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나의 채식주의는 종말을 고했다. 밖에서는 10월 초에 이미 거하게 족발을 먹었고, 또 대부도 놀러가서 바베큐 파티와. 집들이..등등에서 고기를 먹었다.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채식주의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채식주의자의 신념은 내팽개치진 않을것이다. 먹을땐 먹더라도 나는 채식주의자였다 라는 마음가짐은 가슴에 새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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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슴푸레 느즈막히 동이 터오는 비오는 일요일 아침,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조심스레 마시며 씨디 플레이어에 런던 콜링을 집어넣는다. 정신이 번쩍 든다. 일말의 무의식의 파편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나는 명징해진다. 이 순간 나의 존재를 일깨우는 뭔가의 기운을 오롯히 느낀다. 창밖의 서늘함 속에서 귀의 솜털에까지 집중한다. 클래쉬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 조 스트러머의 외침은 그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공허와 자괴가 아닌 확신과 신념이 꽉 들어찬 울림이었다. 


 조 스트러머 1952~2002


 1970년대 영국의 펑크(Punk)록의 시작을 섹스 피스톨스가 열었다면 펑크록의 완성은 클래쉬가 이루었다. 그들은 단순하고 거칠기만 한 펑크록의 형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리듬을 접목했다. 쓰리코드 위주의 신나게 긁어대는 섹스 피스톨스의 원형질 펑크에서 레게,스카,팝,록,R&B 등등의 다채로운 리듬으로 자신들의 펑크적 태도와 정치적 성향을 내세웠다. 치기어린 허무주의자 섹스 피스톨스가 신선한 자극이고 충격이었다면 클래쉬는 프로테스터(protester)로써 대중속으로 파고들었다. 음악을 통해 적극적으로 현실참여적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인종차별, 실업 문제, 불공평한 법과 경찰, 미국의 세계 지배 등 현실에 대한 저항적 목소리를 첨부했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우리들에게 그들의 메시지를 통한 사상을 다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음악적으로 이뤄낸 성과는 대단하고 끊임없이 화자된다. 그들은 저항의 메시지 전달이라는 목표를 유효하게 달성하기 위해 펑크의 세련화를 통해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했다. 굳이 언어의 논리를 떠나 음악으로 그들의 정신이 전달된다는 점이 음악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음반 중 하나이고, 가장 완벽한 이미지의 록 앨범 자켓으로도 유명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앰범 디자인을 패러디 했는데, 이것은 엘비스를 존경하려는게 아니고, 불멸의 로큰롤 이미지를 창조한 이름모를 디자이너를 기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90년대 중반 홍대앞의 허름한 클럽에서 펑크씬을 일구었던 크라잉 넛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동네 음반가게에서 크래쉬(안홍찬이 이끄는 헤비메탈 그룹)를 달라고 했더니, 클래쉬를 잘 못 주었고 그들은 펑크에 빠지게 되었노라고, 나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는데, REM을 달라고 했더니, Ref를 주던데, 이런..


 50의 나이에 고인이 된 조 스트러머를 기리며 비오는 날 런던 콜링을 듣는 이 기분. 

 그의 얼굴에서 왠지 카뮈와 브루스 스프링스턴 이 겹쳐진다. 



‘이 음악은 국가를 휘젓는 거지. 이 음악은 센세이션을 야기시키는 거야. 어머니에게 말해. 아버지에게 말해. 모든 게 잘될 거라고. 이것은 혁명의 록이지. 난 충격의 상태야.’ ‘혁명의 록(Revolution Rock)’


  이게 소설 읽는 맛인거야 ! 대단한 흡인력,  이야기를 풀어내는 입담이 대단했다. 책을 잡으면 400페이지의 분량임에도 하루안에 읽게 된다. 

 단편 소설 하나만 발표했고, 첫 장편소설인데 이 정도라니 역시 소설가는 타고난 뭔가가 있어야 되는듯. 요즘 이 작가의 수식어가 희대의 이야기꾼이던데 꽤 수긍된다.


 이 작가를 알게 된 계기는 소설가 박민규를 좋아한다는 나의 말 때문이었다. 언젠가 소개팅녀와 책 이야기를 하다 박민규를 좋아하시면 천명관의 고래를 꼭 읽어보시라고 강추했고, 헤어지고 의례 하게되는 안부인사도 잊은채 나는 그 책 만은 잊지 앉으려 노력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몇년전에도 대학선배로부터 똑같은 이유로 추천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고래는 그렇게 무의식의 수면을 박차고 나는 이야기가 가진 힘에 무참히 매혹되었다. 


 이야기란 바로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소설속의 한 문장이다. 


 소설의 본질이 무얼까. 문자시대에서 소설은 문학의 위치에 예술작품이 되었고, 지금의 인터넷 시대에선 꽤 고전적인 장르가 되어버렸다.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인터넷의 발달은 문자문화에서 구술문화로 역진화되었다. 구술문화의 액기스는 이야기이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은 소설이 제격이었다. sns가 점령한 우리의 문화에서 소설은 새로운 틀을 갖고 다시 태어난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양상. 그것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

비문학의 원초성에 기댄다. 관념의 묘사보다는 행위를 기술하는 상황의 전개는 영상시대에 맞게 빠르게 흘러간다. 작가의 감성은 최대한 배제되고,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변사가 되어, 구수하고 걸쭉한 입담을 과시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으로써의 소설이기 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이 붙는 이야기의 법칙이었다. 

 


 소설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이 여인들의 인생이야기에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소설읽기의 감동은 타인의 삶의 경험을 내재화 시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일지라도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자신을 성찰할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역사를 통찰하는 경험이자   심심한 삶에 재미와 상상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수시로 여러가지 ~의 법칙이었다.가 등장한다. 그것은 기존의 관념에 조롱을 하는 작가만의 재치였고 전체적으로 이 작품으로 소설의 법칙을 해체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은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복선이 깔리고 인물의 성격이 묘사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것에서 벗어나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입담 좋은 변사가 살을 붙여 너무나 재밌게 이야기 해서 언뜻 무협지처럼 술술술 읽혀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진 않을까 의심할 수 있으나, 그렇게 가볍게 재밌고 말 성질은 아니다. 기욤 뮈소 같은 대중적 소설과는 다른 차원이다. 묵직한데 해학적이라고 할까.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뒤의 심사평만 보아도 평론가와 기존 소설가의 호평과 질투가 드러난다. 


 여인들을 통한 인간의 덧없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판타지 였다. 성적인 표현도 얼마나 구수하고 정겨운지 시각적인 매력뿐만이 아닌 미묘한 후각 혹은 육감으로 전하는 농밀한 성적 표현이 와 닿았다.

이것은 재미난 사람의 법칙이었다. 아무튼 특별하게 재밌었다. 


 소설속의 한 문장들.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되어 있어.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냉동실에 출처가 불분명한 초콜렛이 있는데 맛은 그리 달지 않고 카카오의 농도가 풍부했다. 

내가 파스타를 해먹는 방식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른데, 그날은 그 은은한 초콜렛 맛 때문에 새로운걸 도전해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초콜렛 파스타.

뭐 별건 없다. 올리브 기름에..초콜렛을 녹이고, 브로콜리 와 삶아진 파스타를 넣고 볶아 먹는..

어떨것 같나. 사진을 찍지 않았지만 모양새는 짜파게티와 똑같다고 보면 된다. 

맛은?. 시중의 식당에서 파는 파스타의 양으로 먹자면, 꽤 흥미롭고 독특한 별미 같은 맛이다. 

진하고 달짝지근한 카카오의 맛과 향이. 파스타면에 스며들어 끈덕진 식감을 내준다. 

그런데 나는 판매하는 파스타의 네배 정도를 만들어서 먹는데 이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식을수록 초콜렛은 굳어져 면들이 한 뭉텅어리가 되어버린다. 많이 먹을수록 기름의 느끼함과 카카오는 한숨짖게 만든다. 고로 혼자 배 채울려고 먹기는 그렇고

특별한 날 여친이나 부인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 같이 요리 하기에는 괜찮을듯 싶다. 와인과 곁들여서.. 그 달디한 맛을 상쇄시킨다면 꽤 훌륭하다. 


이런 하이브리드 요리의 최고의 실패는 바나나 떡복이 였다. 

먹는거 가지고 장난친건 아닌데 개도 안먹을 맛이었다. 

간혹 이런 실험을 하다보면 매일 먹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매일 태양을 보고, 씩씩하게 숨쉬고 걷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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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기획의도는 참 좋아보인다. 대중음악을 넘어서 이 시대의 아티스트로서의 라디오헤드를 철학적으로 접목시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저자가 여러명이듯 뭔가 사변적인 글을 모아서 그런지 편집이 산만하게 느껴진다. 내용은 좋지만 임팩트가 없는듯 하다. 철학의 풋내음 같은것도 느껴지고 뭔가 그런(잘난)척 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더더욱 번역서이니, 읽다보면 몰입보다는 흠~ 지루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 

 다행히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라디오헤드 1~6집 앨범을 새로운 기분으로 청감했다. 특히 KID-A 음반 이후는 정말 오랬만에 감상하는 것이었다. 역시나 꽤 예술적이다. 1~3집의 기타팝을 좋아하지만 키드 에이의 Idioteque 라이브의 충격을 잊을수가 없다. 그것들의 가사들을 음미하고 저자들이 제공하는 철학적 상념들을 사유해본다. 그들이 어떠한 철학을 접목시키더라도 라디오헤드 음악은 가사의 메시지를 몰라도 훌륭한 예술이었다. 이 책은 그들의 음악을 좀 더 깊이, 애정어린 시선으로 감상하게 한다.

 

 국내에서 내한공연을 가장 원했던 뮤지션 1위여서 그런지 참 적절한 시기에 책이 출간된것 같다. 지산에 못간 안타까움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음반을 반복청취하며 달랬다. 라디오헤드는 우리시대의 핑크 플로이드이고 대중음악과 예술. 사회참여가 별개가 아니란 것을 알려준다.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내용의 가사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는 '의지'와 '용기'일 것이다.

 어떻게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더 나아가 대중음악이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분류하다 보니 대중음악이 우리의 믿음과 행동에 미치는 효과는 꼭 의도된 게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음악은 우리가 조리 있게 말로 옮기지 않아도 생각했던 것들을 간직할 수 있게 도와준다. 노래를 듣고 인식과 감정이 덜 분리된 어떤 상태의 감성을 간직할 수 있게 한다. 노래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하기도 하고 느슨하게 풀어서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노래와 밴드는 당신이 지킬 수 있는 믿음과 하려는 행동을 지배한다. 대중음악은 거울도, 심리검사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며 번역이 가능한 시 혹은 강력한 연설도 아니다. 대중음악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기는 하지만 대중음악이 하는 일은 단지 당신이 시작한 일들을 자극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아니면 대중음악은 어디선가 일어날지 모르는 어떤 심상을 마련하는 일 따위를 소화하며 대비한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어떤 심상이 음악을 통해 반복되고 일깨워지면서 우리의 삶에 다시 재가동되는 것이다. 81


 음악은 우리가 이미지에게 동의하게 한다. 125

 불행을 예술적으로 묘사하면 행복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의 운명과 그들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도록 도전의식을 북돋는다. 129


 저항은 이성 혹은 정의가 부족할 때뿐 아니라 몰이해로 인해서도 태어난다. 저항감은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저항하면서 우리는 더 나은 것을 가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저항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지키고 그것을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긍정하고 다른 이들에게 그 가치를 물려받으라고 고백하고 싶어진다. 물론 카뮈의 책에서도 함정과 위험이 있지만 그 위험과 함정들도 엄청난 가능성이다.

 카뮈는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상황을 공유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듣고 있다고 느낀다.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운명을 동일시한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가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가치라는 걸 예언하고 우리를 이해하고 우리에게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합류한다. 저항과 단결은 서로 의지한다 단결은 저항을 정당화하는데 이것이 저항의 근원이다. 저항이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인정할때 비로소 저항이다. 부조리함의 고통은 더 이상 개인적인 게 아니다. 저항은 감정과 과업처럼 공유되는 것이다. 결국 저항이 지키려는 궁극적인 가치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일 테니까. 257


 결국 영어를 해야한다는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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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일요일 하루종일 이 책을 읽었다. 완벽한 독서 체험이었다. 몇일전 서점에서 아이쇼핑하다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마음이 떨렸다.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젊은 연인 시절 이야기라니.. 주문한 책은 어제 저녁에 도착했고, 헬스장을 갔다오고 나서 차분하게 차를 마시며 책장을 열었다. (책을 사자마자 바로 읽고 이렇게 후기를 바로 쓰는 것도 참 오랬만에 바람직한 일)


 나는 동반자 동행인이란 말을 좋아한다. 인생에서 완벽한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일 거라 믿는다. 사랑이던 우정이던 나의 반쪽을 만나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고 북돋으면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것. 또는 훌륭한 예술의 경지에 다다르는 과정. 그것이 신이 내린 섭리가 아닐까.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46년생 동갑내기로 20살에 뉴욕에서 만난이후로 89년에 로버트가 에이즈로 죽을때까지 그들이 예술가로서 걸어온 삶의 흔적들을 세밀하게 말해준다. 사랑하는 연인이자 예술의 동지로써 가난한 두 예술가가 뉴욕의 한 복판에서 성장하는 과정은 내가 가장 흠모하던 시대인 60년대 후반과 70년대의 뉴욕에 내가 들어간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의 주인공처럼. 패티 스미스의 눈으로 첼시 호텔의 지미 헨드릭스와 재니스 조플린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어떤 예술가의 자서전 보다도 더 흥분되는 일이었다. 내가 가 보았던 뉴욕의 곳곳에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발자취를 유입시켜 60년대 후반의 뉴욕으로 시간여행을 했다. 워싱턴스퀘어, 세인트마크스, 23가, CBGB 등등..서로 의지하며 예술가로 성장해가는 그들의 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순수하게 설레이는 감정을 느꼈다. 한끼 사먹을 돈이 없어서 핫도그를 반으로 나눠 먹거나 미술관 티켓값이 부담돼 번갈아가면서 한명만 들어가서 보고 전시가 어땠는지 이야기를 해주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작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 둘의 포트폴리오를 담보삼아 첼시 호텔에 입성하고 거기서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은 전후 미국의 문화,예술의 역사를 관통하고 만들어 갔다. 돈벌이의 위기속에서 그들은 예술의 열정을 버리지 않았고 그런 그들을 응원해주고 작은 도움으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후원해주는 마음씀의 풍토가 있었다. 


 시간의 간극이 크지만 뉴욕에 있던 시절 23가 첼시 호텔 앞을 지나 크리스피 크리미 도넛가게를 간혹 가던일이 생각난다. 그땐 거기를 지나치면서 시드와 낸시를 생각했다. 다시 뉴욕에 간다면 패티와  로버트의 발자취를 쫏고 싶다. 그러나 그때의 첼시 호텔은 전설이 되었고, CBGB는 없어졌다고 들었다. 지금의 윌리엄스버그는 또 어찌 변했을지..뉴욕에서 배곪아 보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외로웠다. 뉴욕의 공기는 그런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의 고뇌가 숨쉬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세렌디피디의 그 황홀하게 달디 단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버브의 비터스위트 심포니 를 다시금 듣고 싶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사진작가였다. 지금도 그의 사도마조히즘의 변태 사진을 보면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고전적 미학으로 사진을 가장 잘 찍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마약쟁이에다 게이 남창인 그는 인간의 선과 악을 당시 뉴욕의 가장 하위문화에 극단적으로 대입시킨것 같다. 그 미려한 꽃 정물 사진을 보다가 변태 사진을 보면 기묘하다 못해 선과 악. 추와 미가 다 모호해진다. 다들 예술의 이상향, 이상화를 꿈꿀때, 그 반대편으로 간 사람이 그다. 거칠지만 뭔가 애잔한 발버둥이 느껴진다. 세간의 논란을 떠나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에게 솔직했고 순수하게 표현했다고 본다. 


 로버트가 찍어준 패티의 데뷔앨범 사진은 정말 최고의 인물사진인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가 잘 함축된..



 


 


 


 


 

 처음인것 같다. 산에서 짜증과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겪어보긴,, 여긴 산이라기 보단 그냥 관광지 였다. 그것의 원인은 케이블카에 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몇분만에 산에 오를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자연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멋진 봉우리를 갖추었지만 사람들의 욕망때문에 편하게 오른 산위에서 왁자지껄 찌든 술냄새 풍기는 사람의 냄새가 싫었다. 산위에 술파는 가게가 있는 것도 놀라웠다. 케이블카 구간 위에 정상까지는 꽤 가파른데, 분명 음주실족사고가 빈번해 보일듯 했다. 케이블카가 있는 산은 이 산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산은 산이어야 한다. 산 위가 관광지가 되어선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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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커뮤니티에 아리따운 아가씨 4명의 신록이 생동하는 소백산 산행기를 보고 가을엔 소백산을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소백산의 정상은 여성의 품처럼 포근해 보였다. 1400미터급의 산이지만 정상의 능선은 부드러움의 극치였다. 산의 모양새 만큼 힘들지 않은 오르막 길이 편하게 펼쳐졌다 매우 고즈넉한 산행이었다. 차분하고 기품있는 산 과의 호홉이었다. 



산의 능선을 타고 흐르는 바람의 결은 몸과 마음에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걷고 또 걸어서 하늘의 태양을 향해 마주섰다. 




 이제는 산의 정상은 완연한 겨울이리라. 


 단풍은 낙엽이 되어 산을 덮을 것이다.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차츰 잊혀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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