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집에서 김장을 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다. 수원 시골집에서 배추와 쌀을 나르고 김장하는데 일손 거드는 일. 정말 한 해가 금방 간다. 일년에 두어번 이지만, 시골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기분이 상쾌해진다. 순수한 육체노동은 희열이 있다. 푹신한 흙을 밡고 배추밭에서 일을 하는 동안, 땅의 정기가 내 몸에 스며들어, 몸을 가볍게 한다. 고무장화 밑으로 파고드는 흙의 느낌은 마치 존재 근원에 맞닿아 나의 살 같은 느낌이다. 흙과 태양..바람..그 속에서 약간의 자유를 얻었다.
 
 김장을 한 뒤에는 절인 배춧잎과 것저리 등과 함께. 수육을 먹던가.. 아님 오늘 같이 오리 고기를 곁들여 먹는게 꿀맛이다. 꼬돌꼬돌한 햇쌀의 맛은 또 얼마나 담백한지..요즈음 돌잔치 두군데 갔다와서, 영양과잉이었는데, 오늘은 추운 날씨를 뒤로하고 집에 들어오니..허기가 장난아니었다. 아마도 체온 유지하느라. 칼로리를 다 소비한듯 했다. 아무리 뷔페 음식이 다양하더라도. 기본적인 밥과. 김치. 고기 반찬, 조합의 경이로움은 따라가지 못한다. 거기다가 담백한 김치찌게나. 된장찌게 까지 포함된다면.. 또 겨울의 참맛은 뜨끈한 곰탕에..김장 김치의 어울림.

 겨울이다. 갑자기 머리가 얼얼해지고. 뺨이 깨질듯 하다. 아직은 초록을 유지한 나무들이 떨구어낸 이파리들이 겨울의 야속함을 성토하는듯 하다. 겨울은 빈약한 영혼을 살찌우는 좋은 계절이다. 다른데 살찌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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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날 차를 끌고 밖에 나가지 않는다. 다시는!!. 최악의 교통상황 속에서, 자전거가 얼마나 그리운지..
오후내내 정체된 도로에서 정말 힘들었다. 20대 때는 아무리 운전을 많이 해도..끄떡 없었는데, 이제는 장시간 운전은 정말 힘들다. 특히 오늘 따라, 초보 운전들이 왜이리 많은지, 흐름을 못 타는 차들이 너무 많다.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때..피로에 쩔은 한숨을 쉬었다. 
 살다보면...다시는 뭐뭐 하지 말아야지..하는 경우가 많은데..요즘 그런 다짐이 많이 늘었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 라는..회환과 다짐. 후회와 반성은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 두자. 잊지는 말고. 막히는 도로. 차안에서...다시는..다시는..을 많이 읊조렸다. 그러나 개념없고 무례한 차들에게는..다시는 욕을 하지 말자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욕을 먹어도 싸다.
 돌잔치 갔다오고서 이렇게 녹초가 될 줄이야..영양가 있는 음식들 잔득먹은거. 운전하느라 다 소비했다. 화요일 날 저녁에 또 돌잔치가 있는데..필히..대중교통을 이용해야지..왠지. 그땐..만원 전철에..낑겨서...또 이러한 글을 쓸지도..ㅜㅜ

 어제 지인들과 신림동에서 삽겹살을 먹고. 휘황찬란한 신림동 거리를 걷고, 우드스탁 이란 바를 갔다. 신림동 번화가에 어울릴만한 컨셉의 바는 아니지만..내가 좋아하는 올드록 음악 취향의 뮤직 바 였다. 예전엔 홍대나 신촌에 이런 바가 있었는데..신림동에도.이런 바가..어쨌든 오랬만에 좋았다.
 비오는 날 밤의 화려한 네온싸인과..옛날 록음악들의 정취..영화 블레이드 러너 속의 공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림동은 참 오묘한 공간이다. 그 많고 많은 네온싸인들..곳곳에 들어차 있는 모텔들..젊었을때..순대촌에 처음 왔을때나 지금이나..비슷한 이 느낌..천박한 청춘의 들끓음..왠지 사진을 찍고픈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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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를 완벽히 공감하는 노래들이 있다. 이런 노래들은 아프고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창작자의 고통은 대중예술로 승화되어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 내가 진정한 뮤지션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다. 또한 모든 창작자의 성취를 존경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중의 한명인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의 노래말은 요즈음 특히나 심금을 울린다. 진솔한 본인의 우울한 경험에서 오는 삶의 애달픔은 청자에게, 깨달음을 준다. 창작자 본인은 노래를 통해서 구원받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너무 현학적이지도 않으면서.. 비수같은 노랫말들.. 큰 위로를 얻었다. 음악이 위대한 건, 꼭 노래말의 내용을 몰라도.. 그 정서가 전달 된다는 점이다.



 
 리차드 애쉬크로프트의 가장 최근의 앨범에서 이 노래는 현재 본인의 삶에 더욱 구체적이고 진솔하게 들려준다. 중년으로 접어든..그의 삶에서 성공한 록 스타와 결혼 생활의 위기와 극복을 이야기 하는 이 노래는 그의 삶과 음악 세계가 더욱 진솔하고 성숙해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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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 다시 읽어봐도 재밌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서양인의 개고기 시식과 노래방 탐사같은, 글을 통한 상상도 재미있다. 왠지 라이브한 노래방은 의심이 간다. 여성이 껴 있긴 하지만..
여하튼 말크머스의 음악은 천재적이다. 다시 페이브먼트를 재결성해 공연을 하던데..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스티븐 맬크머스, 메리 티모니 인터뷰,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한 4박 5일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 contributor
 
2002년 1월 5일 토요일 오후 5시 25분

인천 공항. 전방 3 미터 경에 회색 재킷 군청색 코듀로이 바지를 걸친, 회갈색 머리칼과 눈동자를 한 백인 남자 등장. 1990년대 후반 [ATN(Addicted To Noise)]에서 본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어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스티븐 맬크머스(Stephen Malkmus). [ATN] 화보를 빼면 "Shady Lane" 뮤직 비디오 클립이 그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비주얼 데이터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다행이었다(그 뮤직 비디오에서마저 그는 '목 없는' 사나이로 출현하지 않는가). 반듯한 꽃미남형 얼굴에 꺽다리형 체구. 환호하는 그의 팬들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리로 발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미스터 스티븐 맬크머스. 이어지는 꽃다발 증정식(?)과 사인 공세, 사진 촬영에 친절하고 익살맞게 포즈를 취해주는 것을 보니 긴장이 좀 풀렸다. 심하게 말해 외골수 '환자'가 전설이 되는 이 동네(?)에서 그런 민간인적(?) 온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접대하는 '진짜' 민간인 입장에서 반갑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쯤 해 가서 아는 척. 신심 어리고 얌전한 팬들은 조용히 물러가고. 악수를 한 후 공항 라운지의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의 있게 걷는 것은 귀찮다는 듯 발을 질질 끄는 그의 걸음걸이에 일순 '이것이야말로 슬래커(slacker)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팬 서비스용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

불고기 정식을 메뉴에서 고른 그는 "기내식도 이걸 먹었는데 별로 맛이 없었는데, 여기는 맛있다"며 능숙한 젓가락질 솜씨를 보여주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두어 달 전 휴가차 하와이에 갔을 때도 잊지 않고 한국식당을 들렀었다고. 그러나 식성에 비해 상당한 소식가(한국 체류 내내 밥 반 공기 이상을 넘기는 그를 보지 못했다). 마타도어(Matador) 레이블의 공동사장인 크리스 롬바르디(Chris Lombardi)와 인터내셔널 마케팅 팀장인 제스퍼 에클로우(Jesper Eklow), 힐리엄(Helium)의 리더이자 이제는 마타도어 소속 솔로 뮤지션인 메리 티모니(Mary Timony)는 9시 55분 비행기로 도착 예정이기에 맬크머스만을 태운 채 서울로 향했다. 첫 방문객다운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인천 공항이 멋지다며 새로 지은 것 같다고.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사 관련 책을 읽었다는 그는 일본과의 정치적 문화적 관계가 여전히 민감하냐는 질문부터 한국 전쟁에 대한 것까지, 한때의 역사학도다운(?) 질문을 하기도 했다. 서울의 평균 인구는 물론 서울과 평양간의 거리 등을 묻기도 해서 그에 대한 수치적 정보가 미진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으나 동행한 알레스 뮤직의 이응민씨 덕에 모면. 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배철수 목소리를 들으며 웃은 그는 "일본 사람 억양 같다"고 한 마디. 더불어 중국어도 들어 봤는데 한국어가 더 듣기 좋다는 이야기도 한다.

알레스 뮤직과 마타도어 레이블과의 전격 계약이 성사될 즈음, 맬크머스와 티모니의 중국 공연 소식이 들려오고 겸사겸사 해서 한국 공연도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맬크머스 측에서 흘러나오게 된다. 예스 사인을 보낸 알레스 뮤직 측은 맬크머스와 티모니의 앨범 라이선스는 물론 마타도어와의 계약 체결 기념을 명목으로 한 공연 기획을 추진하지만 중국 정부의 공연 금지로 맬크머스 일행의 중국 행은 좌절되고 만다. 그래서 남은 것이 한국행. 공연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관광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희망 관광 코스 중에 "크레이지"한 한국 음식 시식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소의 내장이나 뇌. 그는 자신의 배와 머리를 번갈아 가리키며 씩 웃는다. 개고기는 어떤가? 불쑥 물었다. 요새 여긴 개고기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될 만큼 떠들썩한데. 정말인가? 전혀 몰랐다. (잠시 생각 후) 월드컵 때문인가? 그렇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개고기 식문화를 정말 몰랐나? 전혀 몰랐다. 그렇군. (잠시 또 생각하던 그) 넌 먹어봤니? 아뇨;;(*.*) 한 번 먹어보고 싶은데. 같이 가서 먹자. 헉!!! 농담이지? 설마아(...가 사람 잡은 이야기는 곧. 개봉박두!) 우여곡절 끝에 명동 R 호텔에 도착한 일행. 필요한 게 있으면 어쩌구 운을 떼는데 "난 잘해 나갈 수 있을 거야." 웃으며 손을 내민다. 내일 오전 9시에 로비에 픽업하러 오겠다고 말한 후 호텔을 나왔다.


1월 6일 일요일 오전 9시

명동 R 호텔 라운지 도착. 맬크머스 외 세 명의 백인 발견. 대륙형 체구의 맘 좋게 생긴 털보 아저씨 둘과 고딕 풍으로 화장시키면 멋지겠다 싶은 브루넷의 처녀. 크리스 롬바르디와 제스퍼 에클로우, 그리고 메리 티모니였다. 그들을 밴에 태운 후 삼청각 쪽 한식집에서 아침. 알레스 뮤직의 김효진씨는 한겨레신문에 나온 관련기사 ([링크]) 를 맬크머스에게 건네주었다. '미 인디 록의 전설'이란 타이틀을 통역해 주자 미소. 효진씨가 맬크머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에클로우는 익살맞게 "전설!"하며 환호한다. 맬크머스 역시 익살맞은 미소로 카메라 응시. 식사 후 '역사적 비감이 교차하는 곳' 삼청각과 경복궁을 들러 여의도로 간다.


오후 4시 30분

Stephen Malkmus Interview

최초의 인터뷰는 [weiv] 측과 이루어졌다. 신현준 형이 롬바르디와 에클로우를, 이용우와 내가 맬크머스와 티모니를 대상으로 각개 인터뷰를 벌이기 시작했다. 송창훈은 사진을 찍었다.

10년 간 함께 하며 미국 인디 록의 지형도를 바꾼 페이브먼트(Pavement)가 해산한지 1년 후인 2000년, 맬크머스는 포틀랜드로 거주지를 옮긴다. 밴드 생활에 있어서 음악적 열정의 공유 못지 않게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하는 것이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새로운 행보를 위해 평소 좋아하던 포틀랜드 출신의 밴드 직스(Jigs)와 손을 잡는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솔로 앨범 [Stephen Malkmus](Matador, 2001)는 페이브먼트 시절 때와는 다른 매끈한 사운드 텍스처에 대한 논란과 함께 마타도어의 상업적 고려 때문에 솔로로 탈바꿈해 나온 결과물이라는 루머를 낳기도 했다.

사진: 스티븐 맬크머스
"그렇지 않다. 이것은 엄연히 나의 솔로 앨범이다. 페이브먼트의 업적에 대해서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10년 간 한 밴드에 있다보니 음악적으로는 진퇴양난이 되었다. 페이브먼트에서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가장 컸던 건 멤버들이 전부 다른 지역에 떨어져 산다는 점이었다. 처음 4, 5년간은 열정만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그 후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직스는 그런 면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페이브먼트와 달리 직스는 나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닐 영의 백 밴드)'라 말할 수 있다. 뭐랄까, 페이브먼트 때가 멤버의 개념이었다면 직스는 보스의 개념으로 일한다고나 할까(웃음)."

반농담조로 [Swedish Reggae]라 이름했던 솔로 앨범의 타이틀은, 페이브먼트 때와는 차별 화된(=진중한?)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 [Stephen Malkmus]로 바뀌어 나오고 유럽과 미국 전역을 중심으로 투어를 시작한다. 향수에 차 공연장을 찾은 팬들은 그가 페이브먼트 시절을 완전히 잊은 듯 솔로 앨범 수록곡만으로 세트 리스트를 채운 것에 다소 실망하기도 하는데.

"페이브먼트 시절의 공연과는 사뭇 다른, 이상하기까지 한(even strange) 분위기를 맛봤다. 앞으로도 페이브먼트 시절의 노래는 연주하지 않을 예정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썰렁했던 건 아니었다. 할로윈을 맞아 일리노이에서 벌인 공연은 지난 1년 간 치른 공연 중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었다. 직스의 기타리스트가 헨리 롤린스처럼 짝 달라붙는 반바지에 온 몸에 문신을 그린 채 격렬하게 연주하는 진풍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웃음)."

그런데 이곳에서 페이브먼트 커버 밴드와 함께 페이브먼트 시절을 재현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내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솔로가 되어서도 페이브먼트 시절의 노래를 공연 리스트에 올린다는 것은 옛 친구들에 대한 예우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내 솔로 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제안이 가령 뉴욕에서 온 것이었다면 당연히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한국 방문의 목적은 즐기는 것(have fun)이었고 공연도 그런 마음으로 치를 생각이었다. 팬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가급적 들어줄 의향으로 왔다. 내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그런 의미에서 행운이다(웃음)."

1992년 노이즈와 팝이란 씨실과 날실이 불협하게 얽힌 음역 위로 달콤하게 휘청대는 음색이 기이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Slanted & Enchanted]가 나왔을 때 맬크머스는 가령 커트 코베인 같은 사람이 죽어라 추구하며 동시에 고민했던 모든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행복하게 절망하면서 가끔 신랄한 비판의 날도 내세울 수 있는. 유명담이 되어버린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나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등에 대한 실명 비판은 어떠한가?

"스톤 템플 파일럿츠 같은 경우는 물론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아냥거림에 가까웠지만 '공격'이라기보다는 '장난'이었다. 스매싱 펌킨스도 마찬가지고. 공격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대규모 레이블이나 빅 밴드의 반대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매싱 펌킨스의 경우 몇몇 곡은 좋아한다. 가령 "1979" 같은 곡."

"하지만 그 사람(빌리) 창법은 정말이지..."

"징징대는(whining)?"

"그렇다(미소). 그런 창법은... R.E.M.의 경우는 물론 좋아한 밴드였고. 그 노래("Unseen Power Of The Picket Fence" - [No Alternative](Arista, 1993))도 헌사보다는 장난에 가까웠지만."

창법! (에클로우의 코멘트에 의하면) '캘리포니아 특유의 느긋한 스타일(Californian laidback style)의 한 유형으로 넌피니토(non-finito)한 연주 스타일만큼이나 풀려있고 비틀거리는 창법은 어떠한가?

"캘리포니아적이다. 팔세토나 고음의 가창력에 신경 쓰지 않는. 루 리드나 로빈 윌리엄슨(Robin Williamson),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솔로 앨범의 경우 팔세토나 고음의 창법에 신경 쓰지 않고, 루 리드처럼 말하는 듯한 창법을 취했다."

그 모든 것과 함께 1990년대 로파이의 미학을 일구었다는 평가에 대해서, 다시 말해 로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더불어 사운드 텍스처나 가사 면에서 그것과는 많이 달라진 솔로 앨범에 대해서는.

"첫 앨범 [Slanted & Enchanted]는 로파이라는 말에 들어맞는 앨범이었다. 로파이는 기본적으로 DIY 정신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 면에서 [Terror Twilight]은 DIY가 아닌 레코딩, 프로듀싱에 보다 많은 신경을 썼다. [Stephen Malkmus]가 페이브먼트 시절 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의도하지도 않았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 세월, 그리고 음악적 취향이다. 페이브먼트 마지막 앨범과 솔로 앨범간의 시간차만 해도 2년이다. 여러모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기간이다."

페이브먼트 시절을 포함, 지금까지 마타도어나 드랙시티와 같은 인디 레이블이 아닌 대규모 레이블의 계약 제안을 받은 적은 없는지? 있었다면 그런 제안에도 불구하고 인디로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인디 레이블은, 마타도어를 예로 들면, 소속 밴드에 대해 매우 충직하다. 사업적 관계 이전에 우정을 쌓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음악적 이해에 있어서도 대규모 레이블의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 폭이 넓다. 예술을 우선으로 한다고 할까(Art First!). 그리고 내가 대규모 레이블로 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내 음악이 기본적으로 적은 수의 청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힙합과 같은 음악에 비할 때 말이다."

그 말은 동시에 살만하다는 뜻도 될텐데. 이런 질문은 실례가 될지도 모르지만 호의적인 인터뷰 분위기에 용기를 내 묻기로. 인디 뮤지션으로 다른 일 할 필요 없이 살만한가? 솔로 앨범의 경우 얼마나 팔렸는지?

"살만하다. 물론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살만하지 않았다면 아마 대규모 레이블의 빅 밴드를 꿈꿨을 것이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미국 밴드들에게 주요 수입원을 좌우하는 것은 투어다. 소닉 유쓰(Sonic Youth)가 대표적인 예다. 소닉 유쓰의 앨범 판매량은 실제로 보잘 것 없다. 5만 장이나 팔릴까. 하지만 공연장에서 그들을 찾는 관객들의 수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 솔로 앨범의 경우 매우 성공적이었다. (정확한 수치를 묻자) 십만 장 이상이 팔렸다. 물론 미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 정도면 인디 뮤지션으로선 아주 성공적인 판매량이다. 그리고 나 또한 백 회가 넘는 공연을 했고. 아까도 말했지만 대규모 레이블의 빅 스타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재닛 잭슨(Janet Jackson)의 경우 제작비와 홍보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백만 장이 팔려 나가도 실패라고 여긴다."

어느 정도면 인디 뮤지션에게 엄청난 성공이라고 여겨지는지?

"한 오십만 장?(웃음) 그거면 충분하다. 쉽지는 않지만. 많이 안 팔려도 맥도널드에서 한 끼 때울 정도만 된다면 인디 뮤지션으로 사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다(웃음)."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맬크머스는 이곳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이 홈페이지에 직접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디지털 문화에 대해 무관심한 문외한으로 사는 몇몇 '인디' 뮤지션들과 조금 달라 보였다. 팬들과 채팅도 두어 번 해 봤다는 이야기가 인디 앨범 판매량 이야기와 겹치면서 MP3나 저작권 공유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상관없다. 얼마든지 들으라고 하지, 뭐. MP3가 나타났다고 해서 공연장으로 오는 사람들의 수가 줄진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실제 앨범 판매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줄어든다고 해도 한 만 장? 만 장 조금 더 될까? 그 정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수치다. 공연 티켓, 티셔츠 같은 것에 돈을 들이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물론 내 앨범을 사는 것이 좋은 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사진: 크리스 롬바르디, 메리 티모니, 제스퍼 에클로우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두 번째 취재팀이 왔을 때까지 티모니의 인터뷰는 시작도 못한 상태. 체류 기간동안 붙어 다니는 이점을 이용, 틈틈이 인터뷰하기로 티모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인터뷰가 끝난 후 63 빌딩의 한식당에 도착, 갈비와 냉면으로 저녁을 마무리. 한식당 스피커에서 내내 흘러나오던 가야금 연주에 맬크머스, 에클로우는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사운드 사이사이의 여백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고 한 마디. 맬크머스는 가야금 연주 앨범을, 에클로우는 가야금 구입을 쇼핑 리스트에 추가하며 안내를 부탁하기도.


1월 7일 월요일

일행을 태운 밴이 대학로 SH 클럽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경. 리허설 일정은 맬크머스 - 티모니 - 언니네 이발관 순으로 잡혀 있다. 그때까지도 셋 리스트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 이에 대한 맬크머스의 변명(?)은 "페이브먼트 넘버들은 커버 밴드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고 솔로 넘버의 경우도 마찬가지. 리허설동안 정하겠다"는 것. 기타 튜닝이나 이펙트 문제 등을 언급하기 위해 잠시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제외하면 맬크머스와 커버 밴드의 호흡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제대로 맞아 들어갔다. 해체 이후 페이브먼트 노래는 흥얼거려본 적도 없다는 맬크머스는 커버 밴드가 준비해 온 모든 곡들의 가사를 막힘 없이 불러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Vague Space"와 같은 솔로 곡은 물론 "Shady Lane"이나 "Major League", "In The Mouth Of A Desert"와 같은 곡들을 부르는 것을 보다가 백스테이지로 가 어제 못한 티모니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Mary Timony Interview

목소리만 들었을 때와는 달리 실제 보니 얼굴이 귀엽게 보인다. 그런 소리 종종 듣나.

"(웃음) 모르겠다! 어쨌든 칭찬해 주어서 고맙다."

음악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

"1990년 워싱턴 DC 출신 오토클레이브(Autoclave)와 연주를 하면서 처음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그 후 1992년 힐리엄(Helium)을 결성했다. 8년 동안 힐리엄에서 두 어장의 앨범을 발매한 이후 그 다음부터는 쭉 솔로로 활동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힐리엄은 해체한 것인가?

"그렇다. 공식적으로 해체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힐리엄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이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워싱턴 DC에 있는 듀크 엘링턴 예술 학교(Duke Ellington School of the Arts)에서 비올라를 전공했다던데. 비올라를 공부하면서 동시에 아마추어 펑크 밴드를 한 건가, 아니면 클래식을 전공하다 어떤 계기로 인해 펑크에 빠진 건가. 뮤지션이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가까이 접해 있었고 음악 하는 것이 좋았다. 클래식 기타와 비올라 등 여러 종류의 악기 연주 교습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암튼 많은 악기들과 많은 음악들 속에 살다보니 나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록 음악에 경도된 시기는 고등학교 때(1980년대).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펑크 씬이 형성되었다. 그들의 공연을 찾아보러 다니고 하면서 서서히 록 음악이 좋아졌다."

1980년대 펑크 씬이라면 라이엇 걸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힐리엄은 'radical feminism과 punk rock을 믹스했다'는 평이 있다. 동의하는가. 펑크 씬에서 혹은 인디 씬에서 여성 밴드로서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는가. 혹시 이런 페미니즘 어쩌구 하는 질문들이 짜증나는가.

"그렇지 않다. 그 점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 당시 라이엇 걸은 굉장한 씬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 시절에 들은 페미니즘 강의나 책으로부터 얻은 것과 함께 나를 관련 문화에 깊이 빠져들게 했다. 초기 힐리엄의 가사들은 그런 것들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나온 것들이다. 짜증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런 식의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보다 자연스럽게, 그때 그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더 좋다."

당신은 매우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타나 드럼은 물론 키보드 종류는 거의 다 섭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음악 교습을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악기들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는지?

"기타를 맨 처음 시작한지 얼마 안돼 키보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와는 다른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매혹됐다. 지금은 키보드보다 피아노 쪽에 치중하는 편이지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다(웃음). 그냥 스튜디오에 있으면서 어떤 악기의 소리가 괜찮다 싶으면 그걸 집어들고... 그렇게 시작됐다(웃음)."

힐리엄의 음악 스타일에 대해서 스스로 정의하는 바는? 싸이키델릭 하드 록부터 심지어 프로그레시브까지 포괄하고 있는데?

"이것도 대답하기가 참 곤란한 질문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큰 영향을 받은 음악 스타일 중엔 1960년대 초반의 영국 포크 씬도 있는 반면 몇 백년 전의 클래식 음악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신의 음악에 대해 프로그레시브 록(prog-rock)적이라는 평이 있다. 그것을 당신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애정, 혹은 영향으로 읽어도 괜찮을지?

"물론(웃음)."

공식 사이트가 없는 것 같다. 힐리엄 팬 사이트도 현재는 운영이 안 되는 곳이 많고.. 스스로 자신의 사이트를 만들 생각은 없나.

"옛날에 한 번 들른 적은 있는데 그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다. 조만간 만들 계획이긴 하다."

이쯤해서 티모니의 리허설 차례가 왔다. 맬크머스와 다른 일행은 건너 편 카페로 쉬러 가고. 티모니의 리허설 시간은 예정보다 30분 가량 더 늘어났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키보드의 톤이나 음정이 문제인 듯.

지켜보는 관계자의 입장에선 무대 위의 공연에 비할 때 더디고 지루하기까지 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7시, SH 클럽은 관객들로 꽉꽉 들어 차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공연. 리허설을 거의 다 봐 버렸기 때문에 다소 김빠진 공연 관람이 되겠다 싶었던 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공연이란 역시 뮤지션에게나 관객에게나 한 쪽이라도 부재하면 의미가 없는 '현장의 놀이' 아니겠는가. 티모니의 음울하게 가라앉은 첫 공연이 끝나고 흰 와이셔츠에 파란 코듀로이 바지 차림의 맬크머스가 무대에 올랐다. 진지하고 탐구적(?)이었던 리허설의 맬크머스는 즐겁게 재롱을 피우기까지. 솔로 넘버가 끝난 후 뒤에 선 페이브먼트 커버 밴드를 아우르며 "우리는 페이브먼트입니다. 무덤에서 돌아왔죠."라고 말했을 때 내 마음은 1998년 여름, "AT&T"를 들으며 저토록 흥겹고 무심하게 '아무라도 와서 날 구원해 주겠지' 염원할 수 있는 마인드는 무엇인가 감탄했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이 많은 이야기들은 다른 웨이버의 공연 후기에 맡기자. 사인회를 위해 팬들에게 둘러싸인 그들을 뒤로하고 내일 일정을 위해 귀가했다.


1월 8일 화요일

아침 10시에 있는 인터뷰를 위해 로비에 도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피곤 때문에 눈도 뜨지 못하는 맬크머스가 좀비처럼 비틀 비틀 걸어 나왔다. 괜찮냐고 물으니 똑같이 물으며 등을 두들겨 준다. 그래도 눈은 여전히 못 뜬다. 아침에 잠깐 만난 에클로우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미국에서의 인터뷰도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한 인터뷰는 자신이 아닌 드러머를 내보내는 바람에 작은 마찰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포틀랜드의 경우, 내가 하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개가 컨트리 음악을 듣는다. 인터뷰는커녕 거리에서 사인을 하는 경우도 없다. 스타 대접을 받고 싶으면 대도시로 나가면 되지만 그건 농담이고(웃음).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인터뷰(스케줄로 잡힌 것만 11건)를 하게될 줄은 몰랐다."

이만하면 관광치고는 좀 가혹하군.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그를 데리고 원음 방송국 인터뷰까지 강행했다. 방송국을 가는 도중, 용산 중간에서 그가 관심을 보이는 건물에 대해 미군기지라고 대답. 아직까지 미군이 주둔해 있는지 몰랐다고. 유감이라고. 그가 본 서울 시민들은 어딘가 조용하고 일면 침체돼 있는 듯해서 나름대로는 북한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는데. 음...

라디오 방송에서 맬크머스는 자신의 노래들을 직접 선곡했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한 손을 이마에 짚고 신중하게 한 음절 한 음절 경청하는 '대가(?)'의 자세를 보이기도. 한 록 바에서 자신의 음악이 나오자 황망해 하며 일어나 화장실로 사라진 후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던 작년의 마크 코즐렉(Mark Kozelek)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밝혀진 이유는 힘 빠질 정도로 간단. "이 노래("Trojan Curfew")는 6개월만에 처음 듣기 때문이다(미소)."

인터뷰가 다 끝났다는 것을 알자 기사회생한 맬크머스는 자신을 버리고 회현동을 전전하며 자신이 차지해야할 바이닐들을 모조리 긁어모으고 있을 에클로우와 롬바르디를 저주하며 발을 굴렀다. 셋 모두 엄청난 바이닐 콜렉터들이라는 정보에 관광 일정에 회현동 및 (가능하다면) 황학동 쇼핑을 넣긴 했었다. 무엇을 사고 싶냐는 말에 "한국의 1960-70년대 싸이키델릭, 포크 록 앨범을 사야 한다"며 추천 리스트를 부탁한다. 호텔 로비에 내려준 후 일단 굿바이.

신촌에서 만두 전골을 저녁으로 한 일행은 8시가 다 되어 클럽 '빵'으로 갔다. 페이브먼트 커버 밴드의 일원이었던 '잠'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소식을 듣고 몰려든 맬크머스 팬들과 클러버들이 조촐하게 모인 그 공연은 맬크머스, 티모니, 에클로우가 무대에 올라가 즉흥 연주를 하면서 더욱 흥겨워졌다. 싸이키델릭 임프로바이제이션으로 무궁무진하게 버전업한 "I'm Looking For My Man"을 필두로 티모니의 기타 버전 "Want U"까지, 어제로 끝이 난 줄 알았던 감동적인 여흥이 계속 되었다. 티모니의 솔로 긱(gig)이 펼쳐질 동안 맬크머스와 롬바르디는 클러버들과 함께 뉴욕 테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에클로우와 잠의 기타리스트는 체스를 벌이는 등 '진정한 화합의 장(?)'을 연출하기도. 마지막 코스로 '벨 앤 세바스찬'에 들러 알레스 뮤직과 마타도어 레이블의 계약 성사를 축하하는 축배를 들고 끝.


1월 8일 수요일

어제 호텔 로비에서 헤어지기 전에 맬크머스와 롬바르디는 오늘 일정 중에서 반드시 확보해야할 것들을 부탁했다. 그것은 보신탕과 노래방, 그리고 레이브 바였다. 세 코스를 롬바르디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로 쏘겠다는 것이다! 저녁때마다 도합 소주 예닐 곱병을 비운 사람들의 호언장담을 믿어도 될지? 어쨌거나 밤이면 밤마다 맥주 집과 노래방을 전전했다는 그들이 원하는 노래방은 유형이 좀 다른 것이었다. 좀더 '라이브(?)'하고 술을 함께 마실 수 있는 곳. 이것은 세 남자의 월권에 가까운 선택이지 사실 티모니의 심중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 아닐까? 하며 티모니의 안색을 살피니 마냥 즐거워 보인다. -.-;

농담으로 "그렇다면 맬크머스와 티모니는 약속해라. 다음 번 앨범에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래를 만들겠다고"라고 말하니 "긍정적인 가사로 꽉 채워주마!" 호언장담하는 맬크머스. 한때 채식주의자였다더니 저리 달라질 수 있을까 싶어 물으니 "옛날 여자 친구가 채식주의자여서 좀 따라했지만 관계가 끝나면서 채식주의 인생도 끝났다"고 멋쩍게 미소.

이미지: 티모니의 '강아지 그림'
해서... 이태원을 들른 후 강남의 커다란 보신탕 집으로 직행했다. 넓은 온돌 방 홀(?)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네 명의 건장한 백인 남녀들이 문에 들어서자 종업원 아줌마들의 표정이 일순 긴장한 것도 진풍경이라면 진풍경. 쭉 둘러앉아 수육과 전골을 시킨 후 서로의 몬도가네 경험담이 펼쳐지고. 마침내 수육부터 등장! 주저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수육을 집어든 그들은 역시 축배. 에클로우가 카메라를 꺼내 수육을 든 맬크머스와 티모니를 찍었다. 맬크머스는 미소 지으며 "이걸 브리짓 바르도에게 보내 주겠다"고 농담^^; 먹어보자마자 소고기보다 부드럽다며 탄성. 티모니는 "개고기 정말 맛좋아요(Dog Rules)"하며 즉석에서 강아지 그림을 그려 보였고 맬크머스는 롬바르디가 집어든 수육에 소금을 뿌려주는 다정다감함을 보여주기도 해서 걸작. 마냥 쳐다보고만 있는 나와 이태원, 황학동 관광을 위해 특별히 온 한 친구에게 그들은 곧 어서 먹어 보라고 강요(?)했다. 한 점 집어드는 순간 에클로우의 카메라 셔터가 찰칵하고. 친구와 나는 서로를 응시하다 "우리 몇 달 후 [쇼킹 아시아3] 에 얼굴 나오는 거 아니냐?"하고 공포에 떨기도. 마지막 날 밤이니 다 잊으라며 맬크머스는 한국인 일행들에게 계속해서 원샷을 요구했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보신탕이 국제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된 때문일까?"하며 의문하는 맬크머스. "아마도"라고 말했지만 틀렸다. 오후 5시라 저녁 시간치곤 일렀기 때문. 6시를 넘어서자마자 넓은 식당 안은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들어찼다. 더불어 벽안의 네 손님들이 계속해서 희한한 구경거리가 되었음은 물론이고. 기분이 좋아진 티모니가 "소주 정말 좋아"라며 따뜻한 온돌방에 벌렁 드러눕자 멀찍이 서 있던 아줌마 종업원 군단의 분위기는 험악해지기도. 하이트 로고가 박힌 유리컵을 가지고 싶다며 두 개씩 무료로 선물 받은 일행들은 곧장 '라이브'한 노래방으로 갔다.

넓은 룸형 노래방에 미디 사운드와 와이키키 브라더스 백밴드가 함께 하는 그런 곳. 낱말 맞추기 놀이를 열심히 하던 그들은 노래방 기계와 밴드(라곤 하지만 기타리스트 한 명)가 세팅되자마자 음주가무 돌입 준비. 스웨터를 훌러덩 벗어 던진 채 핑크와 갈색 셔츠 바람으로 나선 맬크머스의 첫 곡은 척 베리(Chuck Berry)의 "Johnny B. Goode". 한 다리 개 다리 떨기 율동과 함께 말 울음소리 애드립까지 일사천리, 전천후 DIY 공연(?)이 이어졌다. 티모니의 선곡은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 뿐이랴. "Hotel California"부터 "Surfin' USA"까지 섭렵한 후 노래방을 나왔을 때는 열 시를 넘어섰다.

그 다음 일정은 홍대앞 '벨 앤 세바스찬' 카페. 그들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맬크머스와 티모니는 각각 하회탈과 징과 같은 특산품을 선물 받았다. 보다 '리얼'한 코리아를 맛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 둘은 받은 선물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하회탈은 우스우면서 어딘가 섬뜩하다고.

DJ 롬바르디 (레이브 바 타령을 하는 롬바르디에게 에클로우가 즉석에서 붙인 별명)의 재촉으로 홍대 부근의 한 레이브 바를 찾았다. 바 안은 한산. 네온 요요나 팔찌를 휘두르며 춤을 추는 레이버들 너머로 후드 재킷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스피커 앞에서 노숙자처럼 건들거리던 맬크머스는 일정 내내 내가 목격한 것 중 최고의 진풍경이었다.


1월 9일 목요일

5일간의 빡빡하고 정신없는 일정을 끝으로 그들이 한국을 떠나는 날. 짐을 한가득 이고 나온 일행은 서로가 산 쇼핑 품목을 내보이고 있었다. 플라스틱 팩 소주를 두 병씩 선물. 자기가 산 바이닐들이 괜찮은지 봐 달라며 맬크머스는 가방을 풀었는데 거기엔 산울림, 양희은, 가야금 연주곡, 신중현 등의 바이닐들이 빼곡이 담겨 있었다. 한국의 밥 딜런(한대수)의 바이닐 값은 상상을 초월해서 포기했다고 한다. 복각 씨디가 있다고 했으나 역시 바이닐 콜렉터들에겐 무용지물인 듯. 양희은은 한국의 조운 바에즈란 소개에 샀단다. 티모니는 한국 전통 인형, 호랑이 민화, 모자 등등 최다 쇼퍼였음을 보여주고.

안개가 자욱하게 낀 영종도를 지나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맬크머스 티모니 둘다 다음 번 앨범 발매를 기념으로 한 번 더 찾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알 수가 없는 것을. 비행 일정은 온 것과 마찬가지로 맬크머스 따로, 롬바르디와 에클로우와 티모니는 함께. 오사카를 경유해 포틀랜드로 돌아간다며 가라데 포즈를 취해 보인 맬크머스는 힘차게 출국. 바이~

나머지 셋은 공항 뷔페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뭐냐는 물음에 통일되게 나온 답은 "Dog & Show" 노래 제목 같다고 하자 영감을 얻을 것 같다며 티모니가 미소.






작별의 순간은 맬크머스와의 그것만큼 짧고 명쾌했다. 재공연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나게 되면 뮤지션에게나 청중에게나 양자 모두에게 각별할 듯. 좋은 만남, 좋은 공연, 좋은 시간이었다. 20020114

행복의 비밀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 앤드류 매튜스

1. 자신이 느끼는 Reality에 관한 그리고 구조에 대한 입장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아니면 모호한 지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할 듯하고,

2. 누구의 이론을 끌고 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의 관점과 너의 관점의 차이를 발견하고,

3. 학자들의 개념을 끌고온다 해도 너의 관점을 말하기 위한 근거로 비교 분석 또는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4. 어느 학자의 이론을 보니,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더라가 아니라, 그는 그렇게 보지만 나는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로 연결 해야 한다.

5. 작품 속에 공부하고 이론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결국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며, 자신의 얘기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 이란다.

네 작품의 고민은 페르소나로 접근 할 수 도 있으며, Panopticon으로 접근 할 수 도 있으며, 프로이트의 강박으로, 유교적 전통의 계율주의로, 또 라캉의 상징계와 리얼리티 속에서 이동하는 거짓 자아로 접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너의 고민들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선별하는 것(가면?구조?강박?전통?사회?가족? 기타 등등...)이 큰 과제이며, 그 다음은  과제를 풀어가기위해 학자들의 이론들을 활용하는 것이란다....

이론 속에서 너를 찾지 말고 네 속에서 너를 찾기 위해 이론을 탐구하며 필요에 따라 인용 또는 활용하거라.

 코디최 선생님의 답변..

이승훈 _ 한양대 교수/시인


데리다(J. Derrida)는 1930년 알제리에서 태어난다. 그는 1959년부터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를 역임한 유대계 학자로 1965년 역사와 글쓰기를 다룬 책에 대한 장문의 서평을 발표하면서 대중의 시선을 끈다.

그는 1967년 세 권의 저서 《문자학(of grammat-ology)》, 《목소리와 현상(speech and phenomena)》, 《글쓰기와 차이(writing and differenc)》를 동시에 출판하면서 소쉬르, 후설,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적 읽기를 통해 이른바 해체적 읽기 혹은 해체적 접근을 철학에 도입한다. 특히 1969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를 발표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이른바 해체주의 선풍을 일으킨다.


말과 글을 초월하는 글쓰기


위의 세 저서 가운데 《문자학》은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강조하고 그것은 크게 소쉬르의 구조 언어학을 대상으로 한다. 물론 루소, 레비-스트로스, 하이데거, 니체 등도 대상으로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주로 소쉬르의 언어 개념을 해체하는 그의 글쓰기 개념을 간단히 살피고 그가 강조하는 글쓰기와 장자의 언어 혹은 글쓰기를 비교하기로 한다.

그는 세 가지 수준에서 소쉬르를 비판한다. 첫째는 언어에는 차이만 존재한다는 소쉬르의 명제이고, 둘째는 언어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ie)가 자의적 관계에 있지만 소쉬르의 경우 궁극적으로 기의, 그것도 초월적 기의를 강조함으로써 이성중심주의를 지향한다는 것. 셋째는 문자 체계의 2차성이다. 소쉬르에 의하면 문자 체계의 기능은 언어를 표기하는 2차적 기능이고 언어는 음성 언어를 대상으로 하고 문자 체계는 배제한다. 따라서 소쉬르는 문자 체계, 글쓰기보다 음성 체계를 강조하고 결국 음성중심주의를 지향한다.

첫째로 언어의 본질이 차이에 있다는 소쉬르의 주장. 그에 의하면 언어 속에는 오직 차이만 존재하고 이 차이는 실체적 항목들의 차이가 아니라 이런 항목들이 존재하지 않는 차이이다. 말하자면 기표든 기의든 언어는 언어 체계 이전에 존재하는 관념이나 소리를 소유하는 게 아리나 오직 체계가 환기하는 개념적 차이와 음성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F. D. Saussure, Course in General Linguistic, trans. w. Baskin, Philosophical Library, New York, 1959, 120).

이런 주장은 요컨대 언어는 체계이고 체계는 요소들의 관계, 곧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띠라서 기표와 기의가 의미를 소유하는 것도 체계 밖의 사물과는 관계없고 오직 체계에 의해, 그러니까 각 요소들의 차이에 의해 의미를 생산한다. 예컨대 ‘나’라는 낱말은 실체를 지시하거나 그런 실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칭 체계 곧 ‘나/너’의 차이에 의해 의미를 생산한다. ‘나’라는 낱말이 기표의 수준에서 그렇다면 ‘산’이라는 낱말은 기의의 수준에서 ‘산/들’의 차이가 의미를 생산한다.

그러나 데리다에 의하면 이렇게 구조적 차이로만 존재하는 요소들 역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차이에 의해 각 요소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차이에 앞서 존재하는 혹은 차이를 가능케 하는 어떤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음성적 요소가 감각적인 것은 이 요소에 형식을 부여하는 차이 혹은 대립을 전제로 한다. 쉽게 말하면 차이에 앞서는 순수한 차이, 운동이 있다는 것. 한 요소가 음성적 실체로 환원되는 것은 이런 차이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기원적 종합을 전제로 하고 이런 종합을 기원적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적 경험의 최소 단위 속에는 언제나 과거 파지(retention)가 있고 이렇게 타자를 보유하는 흔적이 없다면 차이도 없고 의미도 나타날 수 없다. 따라서 문제는 구성적 차이가 아니라 오히려 내용이 결정되기 전에 순수한 운동이 차이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순수한 흔적이 차연(differance)이다. 차연은 감각과 지성을 초월하며 기호의 분절을 허용하고 기표와 기의, 표현과 내용, 말과 글의 분절을 허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는 이미 글쓰기(ecriture)이다. 한 마디로 차연은 형식을 형성한다(J. Derrida, Of Grammatology, trans. G. C. Spibak, The Johns Hopkins Univ. Press, 1974, 62~63).

이런 주장을 통해 데리다가 강조하는 것은 소쉬르가 말하는 언어에는 차이만 있다는 주장을 해체한다. 그는 소쉬르에 기대 소쉬르를 뚫고 새로운 개념/비개념에 도달한다. 소쉬르는 차이를 강조하고 데리다는 이 차이 너머 있는 것, 이런 차이를 형성하는 것, 곧 차연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차연은 순수한 운동이고 순수한 흔적이고 그가 말하는 광의의 글쓰기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글쓰기는 협의의 글쓰기가 아니고 그가 애용하는 차연, 흔적, 텍스트 등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흔히 말과 글, 말하기와 글쓰기를 구분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강조하는 것은 이런 구분, 차이, 형식을 가능케 하는 글쓰기이고 그런 점에서 광의의 글쓰기이고 원-글쓰기(arch-ecriture, arch-writing)이다.

이런 글쓰기는 기원적 흔적이고 차연이고 협의의 말과 글을 초월하고 협의의 말과 글 이전에 있다. 차연은 시간/공간의 2항 대립이 해체되는, 그런 점에서 존재·사물·언어는 자기동일성이 없고 있는 건 오직 시간적 지연과 공간적 차이이다. 앞에서 낱말의 의미는 절대적으로 현존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과거의 의미를 파지한다고 했거니와 이제 좀더 자세히 데리다가 말하는 글쓰기, 곧 광의의 글쓰기가 협의의 말/글 속에 어떻게 기원적 흔적으로 드러나는가를 살피기로 한다.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어버려라


일본 철학자 도시히코는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를 다음처럼 분석한 바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협의의 글쓰기, 소쉬르의 용어로는 문자 체계의 경우 공간성은 존재하고 시간성은 완전히 부정되지 않는다. 예컨대 a-b-c-d의 순서로 글을 쓰는 경우 공간성은 그대로 존재하고 시간성, 곧 계기적 질서 역기 완전히 소멸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a를 적고 다음에 b를 적을 때 a는  앞에 존속하고 c를 적을 때도 앞에 b가 존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협의의 글쓰기는 전통적으로 인식된 것처럼 공간성만을 특성으로 하는 게 아니다.

한편 말, 소쉬르의 용어로는 발화(parole)의 경우 공간성은 소멸하고 시간성의 지배를 받는다. a를 말하고 다음 b를 말할 때 a는 소멸하고 c를 말할 때 다시 b가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소멸은 기표의 경우에 해당하고 기의의 경우에는 a를 말하고 다음 b를 말한다고 해서 a의 의미가 완전히 소멸하는 게 아니라 b는 a의 의미의 흔적을 거느리고 c를 말할 때 역시 c는 b의 의미의 흔적을 거느린다. 그러므로 말에도 공간성이 있다. 요컨대 글은 공간적이고 말은 시간적이라는 2항 대립은 해체된다. 왜냐하면 글에는 시간의 흔적(기표)이 남고 말에는 공간의 흔적(기의)이 남기 때문이다.

도시히코가 강조하는 것은 말의 경우 기표의 계열 a-b-c-d는 시간적 순서를 유지하지만 기의 a,b,c,d는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는 것. 그것은 고정성이 없고 이런 가동성, 흔적이 데리다의 원-글쓰기에 해당한다(이즈쓰 도시히코[井筒俊彦],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론에 대해》, 의미의 깊이, 이종철 옮김, 민음사, 2004, 128~132).

그런 점에서 원-글쓰기는 협의의 글과 말의 경계를 해체한다. 데리다의 원-글쓰기, 기원적 흔적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말에도 있고 글에도 있다. 그리고 말과 글을 초월한다. 요컨대 원-글쓰기는 말과 글을 가능케 하고 밀과 글을 구분한다. 글의 시간적 흔적(기표)이 차연이고 말의 공간적 흔적(기의) 역시 차연이다. 이런 흔적은 실체가 없지만 실체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구분·차이·대립 이전에 있으며 구분·차이·대립을 가능케 하고 생산한다. 그러므로 이런 글쓰기는 글을 생략한 글쓰기이고 따라서 언어뿐만 아니라 존재·세계·사물의 흔적으로 존재한다.

소쉬르는 차이를 강조하고 데리다는 이런 차이를 가능케 하는 차연, 흔적, 말/글의 차이를 가능케 하는 원-글쓰기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장자는 무엇을 강조하는가? 장자는 외물(外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발(筌)은 고기를 잡는 것으로 고기를 잡으면 그 발은 잊어버리고 토끼올무(蹄)는 토끼를 잡는 것으로 토끼만 잡으면 잊고 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이란 사람의 생각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것이므로 생각할 줄을 알면 말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찌 저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할 수가 있을까?(《장자》, 이석호 역, 삼성출판사, 1976, 448)


장자에 의하면 말, 언어는 통발에 비유되고 토끼올무에 비유된다.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으면 토끼올무는 잊어야 한다. 말도 생각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전하면 잊어야 하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말을 잊는다는 것. 부처는 말을 뗏목에 비유하고(‘금강경’) 비트겐슈타인은 말을 사다리에 비유한다(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이영철 옮김, 천지, 1991, 143). 뗏목은 강을 건너면 버려야 하고 사다리도 목표물에 도달하면 버려야 한다. 장자 역시 사용한 다음엔 잊고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생각할 줄을 알면 말은 잊어버리고 마는 것(得意而忘言)’이다. 뜻을 알면 말을 잊고 거꾸로 말을 잊으면 뜻을 얻는다. 선불교에서는 이심전심·교외별전·불립문자(以心傳心 敎外別傳 不立文字)를 강조하고 장자가 말하는 것 역시 크게 보면 비슷하다. 요컨대 그의 주장은 말을 잊으라는 것. 말을 잊기 때문에 글도 잊으라는 것. 아니 내가 읽은 바로는 장자의 경우 말과 글에 대해 별도로 말한 바는 별로 없고 따라서 글에 대한 장자의 생각는 말에 대한 그의 사유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그러나 나는 어찌 저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장자의 질문과 관련되는 바 뒤에 가서 살피기로 한다.


텍스트 바깥엔 아무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장자가 말하는 잊기, 망각의 의미이다. 앞에서 나는 데리다의 소쉬르 비판을 세 가지로 요약한 바 있고, 그 둘째는 언어 기호를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 관계에 있지만 암암리에 소쉬르는 기의, 그것도 초월적 기의를 강조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먼저 기표와 기의는 자의성의 원리에 따라 결합된다. 예컨대 ‘산’이라는 기표(말소리)는 ‘산’이라는 기의(개념)와 결합할, 이 개념을 지시할 아무 필연성이 없다. 자의적으로 제멋대로 결합된다. 왜냐하면 같은 ‘산’이라는 기의가 영어에서는 mountain, 불어에서는 mont이라는 기표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쉬르는 이런 자의성을 강조하면서도 도형으로는 기의를 위에 놓고 기표를 아래 놓는다(소쉬르, 위의 책, 66). 

이런 도형이 암시하는 것은 기의가 기표보다 우위에 있고 기표를 지배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라캉은 이런 도형을 거꾸로 그려 기표의 우위를 주장한 바 있다. 결국 표면상으로는 기표와 기의가 상호의존적 관계로 나타나지만 그 심층에는 기의가 강조되고 이런 기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기표를 지배하고 기표를 끌고 간다. 결국 그는 암암리에 초월적 기의를 지향하고 이런 기의는 서양 형이상학을 지배한 이성중심주의와 통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소쉬르는 은연중에 초월적 기의, 이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이성중심주의를 지향하고 아무튼 언어에 무슨 중심이 있다는 사유를, 사유의 흔적을 드러낸다. 데리다의 경우 언어는 차연이고 흔적이고 원-글쓰기이고 이런 언어는 시작도 끝도 없고 물론 중심도 없다. 그런 점에서 언어는 텍스트이다. 텍스트는 책이 아니다. 책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중심이 있지만 흔적, 차연, 원-글쓰기, 텍스트에는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다.

그의 텍스트 개념을 요약하자. 그에 의하면 흔적은 경험의 시간화(temporalization), 그러니까 경험이 시간을 매개로 형성될 때 나타나고, 그런 점에서 경험은 세계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빛도 소리도 아니고 시간 속에도 없고 공간 속에도 없다. 이 경험의 시간화에 의해 차이들은 요소들 사이에 나타나고 아니 요소들을 생산하고 요소들을 나타나게 만든다. 이 차이들이 텍스트들, 연쇄들, 흔적의 체계들을 구성하고 이런 연쇄와 체계들은 흔적의 조직 속에서만 그 윤곽을 그릴 수 있다. 나타남(appearing)과 나타난 것(appearance)의 차이, 세계와 경험의 차이는 다른 모든 차이들의 조건이고 다른 모든 흔적들의 조건이고 이미 하나의 흔적이다. 이 흔적이 의미의 절대적 기원이고 다시 말하면 의미의 절대적 기원은 없다(데리다, 위의 책, 65).

데리다의 문장이 난해한 것은 그만큼 그의 주장이 기존의 논리나 사유로는 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역을 피하고 가능한 의역을 하면서 다시 요약한 그의 텍스트 개념은 ‘우리는 오직 기호에 의해서만 생각할 수 있다’(데리다, 같은 책, 50)는 그의 명제를 발전시킨 것. 기호를 통해서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소쉬르가 강조하는 초월적 기의는 존재하지 않고 나아가 객관적 현실, 사물, 지시물,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기호이고 이 기호는 그의 경우 시작도 끝도 없고 중심도 없는 흔적이고 놀이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 곧 이성중심주의를 부정하고, 존재-신학과 현전의 형이상학을 전복한다.

살아 있는 경험은 세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시간적 질서 속에 있고, 시간적 질서는 예컨대 1분-2분-3분의 순서로 전개되지만 살아 있는 경험은 이 질서 어디에 있는가? 결국 경험의 시간화에 의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1분과 2분의 차이이고 1분, 2분 3분의 차이들이고 이 차이들이 1분, 2분이라는 요소들을 생산하고 텍스트, 연쇄, 흔적들을 구성한다. 이 흔적이 의미의 절대적 기원이고 그런 점에서 의미의 절대적 기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텍스트들, 흔적들의 체계이다. 세계 역시 흔적이고 놀이이다.

그러므로 텍스트 바깥엔 아무것도 없다. 텍스트 바깥이 텍스트 안이고 안이 아니다. 텍스트는 언어의 기원이고 기원 없음이고 또한 텍스트는 직물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세계에 산다는 것은 텍스트 속에 살면서 텍스트를 짠다는 의미이고 존재는 글쓰기이고 글쓰기는 텍스트 짜기이다. 요컨대 텍스트, 세계, 존재, 쓰기, 짜기, 흔적은 등가 관계에 있다. 이런 글쓰기가 원-글쓰기이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그렇다면 시작도 끝도 없고 중심도 목표도 없는,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 지연만 있는 이런 글쓰기-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객관적 현실, 지시물, 세계가 소멸한 다음의 기호들의 놀이? 기표와 기의의 순수한 놀이? 이 놀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장자의 꿈인가, 나비의 꿈인가


도시히코는 이 놀이를 마르소(M. Marceau)의 팬터마임에 비유하면서 다음처럼 말한다. 어두운 무대. 마르소의 손이 조명을 받으며 암흑의 저 밑에서 떠오른다. 손가락이 섬세하게 떨리면서 나비가 갑자기 춤을 추며 날아오른다. 마르소의 손가락이 나비의 꿈을 꾼다. 관객은 이 나비가 손가락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나비라는 것도 알고 있다. 손가락은 나비를 의미한다. 그러나 나비는 손가락이라는 기호의 지시물이 아니다. 나비는 현전하지 않고 현전하는 나비는 나비의 환상일 뿐이다. 지시물, 현실, 세계가 소멸한 뒤에는 기표와 기의만 남고 현실에서 해방된 기표와 기의의 놀이, 상호 얽힘이 존재라는 이름의 텍스트를 계속 짜고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데리다의 경우 나비를 환상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마르소의 손가락까지 환상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도시히코, 위의 책, 118~121).

손가락이 나비의 꿈을 꾼다? 데리다 식으로 말하면 손가락은 기호이고 따라서 기호의 꿈이다. 문제는 데리다의 경우 나비는 환상이지만 손가락까지 환상은 아니라는 지적이고, 이런 지적 후에 도시히코는 데리다의 차연, 장자의 꿈, 나가라주나의 공(空), 선불교의 무(無)一물(物)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도시히코의 이런 지적은 암시하는 게 많고 내 생각을 말하면 디음과 같다. 데리다의 경우 나비는 환상이지만 손가락은 환상이 아니고 장자의 경우에는 나비도 환상이고 손가락도 환상이라는 것. 데리다가 목적은 없지만 텍스트를 계속 쓰고 짠다면 장자는 이런 행위도 버리라고 말한다. 다 같이 현실, 초월적 기의, 세계를 부정하지만 데리다는 텍스트를 쓰고 짜는 주체, 쓰고 짜면서 태어나는 주체, 곧 텍스트적 주체를 인정하고 장자는 이런 자아마저 잊으라고 말한다(데리다의 텍스트적 주체에 대해서는 이승훈, 《탈근대주체이론-과정으로서의 나》, 푸른 사상, 2003 참고 바람). 다음은 장자의 말.


전에 장주(莊周)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나는 것이 분명히 나비였다. 스스로 줄겁고 장주인 줄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금 뒤에 문득 깨어보니 분명히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정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이 있을 것이니 이를 물화(物化)라고 한다(장자, 위의 책, 208).


마르소의 팬터마임에서는 손가락과 나비의 경계가 해체된다. 이때 해체란 손가락과 나비, 현실과 환상의 2항 대립이 깨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손가락은 나비이고 나비가 아니고 나비 역시 손가락이고 손가락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손가락이 나비가 되는 것이지 나비가 손가락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점을 강조하자. 물론 손가락은 나비가 되면서 손가락도 아니고 손가락이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장자의 나비 꿈은 다르다. 무엇보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중요하다. 과연 이 꿈은 누가 꾸었는가? 물론 장자가 꾸었다. 그러나 장자가 강조하는 것은 꿈의 주체가 누구냐는 문제. 장자의 꿈인가? 나비의 꿈인가? 손가락과 나비의 경우는 주체가 손가락이고 장자의 경우는 이런 주체 문제가 소멸한다. 이른바 물화는 주체를 망각하고 객체를 따라 변화하는 삶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물화는 말 그대로 주체, 자아, 나를 잊고 대상, 객체, 사물이 되는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른바 망아(忘我)가 물화이다. 한편 자아를 잊고 사물이 된다는 것은 자아를 망각했기 때문에 사물도 망각하는 경지이다. 왜냐하면 자아, 곧 의식이 없기 때문에 사물이 된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화는 물망(物忘)이다. 사물이 되면서 사물을 잊는 경지. 그러므로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장자 자신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물화는 물아양망(物我兩忘)이다.

장자는 언어를 고기 잡는 통발에 비유하면서 통발은 고기를 잡으면 잊어야 한다고 말하고 나는 앞에서 이 잊음, 망각이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강조하는 잊음은 망아이고 결국은 물아양망이고 이런 경지는 ‘스스로 즐겁고 뜻대로’인 삶을 지향한다.

요컨대 물아양망은 물아해체이면서 해체 이상이고 망아는 차연이면서 차연 이상이다. 무슨 말인가? 물아해체는 주체와 객체의 2항 대립을 해체하고 이른바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인 이성중심주의를 전복한다. 물아양망 역시 이런 2항 대립을 해체하고 이성중심주의를 전복한다. 그러나 물아양망은 해체가 아니라 망각이다. 주체도 객체도 망각하라는 것. 차연은 절대적 자아, 현존을 부정하고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 지연만 강조한다. 망아 역시 절대적 자아, 현존을 부정한다. 그러나 망아, 곧 자아를 망각하는 것은 물화, 곧 사물이되는 것이고 이 사물 역시 망각하는 것, 곧 물망과 통한다. 그러므로 차연도 초월하는 경지이다. 이 경지가 유(遊)이고(소요유) 심제좌망(心齊坐忘, 제물론)이다.

데리다가 텍스트, 원-글쓰기를 강조한다면 장자는 텍스트 너머를 추구하고 말, 언어, 문자, 글쓰기를 버리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장자는 어찌 저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을 할 수 있을까 ?


글쓰기의 모험은 놀이의 모험이다


데리다의 소쉬르 비판 세 항목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겨둔 것은 문자체계와 언어의 관계이다. 다음은 소쉬르의 말.


언어와 문자체계(글쓰기)는 구별되는 두 개의 기호체계이며 글쓰기의 유일한 목적은 언어를 재현함에 있다. 언어적 대상은 쓰여진 낱말과 발음된 낱말의 결합이 아니다. 언어적 대상을 구성하는 것은 발음된 낱말이다. 그러나 발음된 낱말은 쓰여진 낱말의 이미지와 밀접히 결합되기 때문에 쓰여진 낱말이 중심 역할을 빼앗고 따라서 우리는 기호 자체보다 음성 기호의 쓰여진 이미지에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런 실수는 마치 사람을 직접 보는 것보다 그의 사진을 볼 때 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소쉬르, 위의 책, 23~24).

 

요컨대 소쉬르가 강조하는 것은 발음된 낱말과 쓰여진 낱말 가운데 발음된 낱말이 중요하다는 것. 언어는 개별적인 발화의 심층에 존재하는 법칙을 의미하고 따라서 발음, 음성을 토대로 하고 이 발음을 옮겨 적는, 재현하는 문자체계, 글쓰기는 2차적이라는 것. 그러나 데리다의 글쓰기는 이렇게 발음된 낱말을 옮겨 적는 글쓰기가 아니다. 말하자면 데리다의 글쓰기는 언어적 대상이 아니고 언어적 실체가 아니고 문자로 재현되는 그런 글쓰기가 아니고 흔적, 텍스트, 원-글쓰기이고 언어로 생산된 것이 아니라 언어의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글쓰기는 소쉬르가 말하는 문제체계가 아니다. 그의 글쓰기는 소쉬르기 말하는 언어/문자체계, 발음된 낱말/쓰여진 낱말의 경계를 해체하고 나아가 이런 경계가 나올 수 있는 근거로서의 글쓰기를 강조한다. 다음은 데리다의 말.


지각되는 것은 아니지만 간신히 지각된다고 가정하면 글쓰기는 일반적으로 언어의 특수한, 파생적, 보조적 형식(의사소통, 관계, 표현, 의미작용, 사고나 의미의 구성으로 이해되는)을 지시하는 게 아니고, 주요 기표의 비실체적 이중성, 곧 기표의 기표를 지시하는 게 아니고 그것은 언어의 외연을 넘어 발생하기 시작하며 언어를 포괄한다. 글쓰기라는 낱말은 기표의 기표를 지시하며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기표의 기표가 우연한 이중성, 전락한 2차성으로 정의되지 않는 상태로 나타난다. 이와 반대로 기표의 기표는 언어의 운동을 기술한다. 그 기원에 있어서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조가 기표의 기표로 표현될 수 있는 기원은 자신을 생산하면서 자신을 은폐하고 지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기의는 언제나 기표로서의 기능들이다. 글쓰기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2차성은 모든 기의들에 영향을 주고 기의들을 이미 있게 하고 순간적으로 기의들을 놀이에 참여케 한다. 도망가고 다시 잡히는 단일한 기의는 없다. 언어를 구성하는 것은 의미작용의 놀이이다. 따라서 글쓰기의 모험은 놀이의 모험이다(데리다, 위의 책, 6~7).


데리다는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명확한 판단을 보류하면서 계속 망설이면서 계속되는 그의 주장은 명확한 논리, 이성, 개념을 거부하는 논리이고 이성이고 개념이다. 그가 말하는 글쓰기는 언어 너머 있지만 언어를 포괄한다. 그것은 언어의 기원이지만 자신을 은폐하고 지우는 기원이다. 말하자면 글쓰기는 흔적이다. 글쓰기는 기표의 기표로 나타나고 기표의 기표가 언어의 운동이다. 그가 기표의 기표를 강조하는 것은 기표/기의의 관계가 소쉬르처럼 1 대 1로 고정되지 않고 한 기표의 기의는 다시 다른 기표가 되고 이런 기표의 기표가 언어의 운동이라는 것. 그러므로 기표의 기표는 언어의 기원이지만 언제나 흔적, 차이로만 존재/부재한다.

결국 글쓰기는 기표의 기표이고그러므로 단일 기의는 없고 기의들의 놀이가 있고 글쓰기의 모험은 놀이의 모험이다.

예컨대 낱말 놀이를 생각해 보자. 낱말 놀이는 낱말이 지시하는 사물이나 지시물과는 관계없이 이런 지시물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러니까 기호 자체만을 강조하면서 수행된다. 어떻게 수행되는가?

‘연못’을 보기로 들면 다음과 같다. ‘연못’이라는 기표(1)의 기의(1)는 ‘연을 심은 못’이다. 그러나 이 기의(1)는 다시 기표(2)가 된다. 왜냐하면 ‘연’의 기의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표(1)는 기의(1)를 매개로 기표(2)가 되고 그러므로 기표의 기표가 되고 기표의 기표의 기표로 발전한다. 어디 그뿐인가? 기의(1)는 다시 ‘심다’라는 기표(3), ‘못’이라는 기표(4)로 분열된다. 또한 ‘연못’은 순수한 기표의 수준에서는 ‘날아가는 연이 있는 못’이고 ‘날아가는 연과 벽에 박는 못’이고 이런 기표의 연쇄는 한이 없고 이런 식의 글쓰기가 놀이와 통한다.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하기 


그렇다면 장자는? 장자는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리듯 말도 쓰고 나면 버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어찌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말을 잊으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이른바 물아양망(物我兩忘)을 목표로 한다. 이런 경지는 데리다가 말하는 놀이의 경지이면서 그런 놀이를 초월한다. 장자가 말하는 물아양망은 이른바 ‘소요유’의 유(遊)와 통하고 이 유는 놀이이면서 놀이를 초월한다. 물론 유는 놀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말하는 놀이(play)와는 다른 의미이다. 아니 같으며 다르고 이런 놀이 개념을 수용하며 초월한다. 다음은 장자의 말.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 나무라고 부르네. 그 밑둥은 혹투성이라 먹줄을 댈 수 없고, 그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규구(規矩, 자)에 맞지 않네. 그것이 길가에 서 있으나 목수가 돌아보지도 않네. 지금 그대의 말은 이 나무와 같아 커도 소용이 없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돌보지도 않을 것이네.” 장자는 이에 대답했다. “이제 자네는 큰 나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쓸 데가 없는 것이 걱정이지만 왜 그것을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인 광막한 들에다 심어 놓고 그 곁을 방황하면서 무위(無爲)로 날을 보내고 소요하다가 그 밑에 드러눕지를 않는가? 그러면 그 나무는 도끼에 베어지지도 않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해를 입을 염려가 없네. 쓰일 데가 없으니 또 무슨 괴로움이 있겠는가?”(장자, 위의 책, 192)


그 유명한 무용의 용이라는 명제. 쓸모가 없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는 이 명제에서 장자가 강조하는 것은 참 쓸모는 세속의 쓸모를 초월하는 것. 세속적 가치를 잊는 것. 참된 유용성은 세속의 가치를 벗어나는 것이고 이렇게 참된 유용성을 발견하여 홀로 즐기고 홀로 소요하라는 것. 무하유지향은 어디에도 없는 고향, 인공을 가하지 않은 낙토(樂土), 말하자면 유토피아이다.

장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이상향에서의 소요(逍遙), 곧 슬슬 거닐며 한가로이 돌아다니는 것. 이런 소요가 놀이와 통한다. 데리다의 글쓰기가 놀이, 무용성을 강조한다면 장자는 이 놀이, 무용성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그런 점에서 데리다가 예술을 강조한다면 장자는 예술과 삶이 하나가 되는 그런 경지를 지향한다. 말을 잊은 사람과 더불어 말한다는 것은 결국 밝힐 수 없는 것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세속적 가치를 지탱하고 세속적 가치를 생산하는 언어를 버리는 일과 통한다.

 

요컨대 데리다의 경우 텍스트가 세계이고 산다는 것은 쓰기이고 텍스트 짜기이고 이 텍스트는 시작도 끝도 중심도 없지만 아무튼 우리는 세계라는 텍스트를 쓰고 짜며 산다. 이렇게 글이 생략된 글쓰기, 원-글쓰기가 데리다의 글쓰기라면 장자는 이런 텍스트로서의 세계를 인정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런 텍스트도 잊으라고 주장한다. 장자의 물아양망은 주체/객체의 2항 대립을 해체한다는 점에서 데리다와 비슷하지만 중요한 것은 장자의 경우 이 망각도 망각하라는 것. 왜냐하면 망각의 망각이 깨달음, 도(道)와 통하기 때문이다. 장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도 망각하자.


대저 큰 도(道)는 이름 부를 수가 없고 위대한 변증은 말하지 않으며 위대한 인(仁)은 인자하지 않고 크게 청렴함은 사양하지 않으며 크게 용감함은 남을 해치지 않는다. 도가 밝혀지면 도가 아니고 말로 변증되면 도달하지 못하고 인이 계속되면 이루어지지 못하고 청렴이 결백해지면 미덥지 못하며 용기가 해치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 다섯 가지는 원래 원만한 것인데 지금은 거의 모난 데 가깝다. 그러므로 앎이 그 알지 못하는 데서 그치면 최고다(장자, 위의 책, 202).


출처 :니체와 모더니즘 원문보기

과골삼천(踝骨三穿)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말을 한동안 화두로 들고 지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강진 유배시절 제자인 황상(黃裳)의 글 속에 나오는 말이다. 70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해 가며 책을 읽는 황상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이에 어디다 쓰려고 그리 열심히 공부를 하느냐고 비웃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 선생님은 귀양지에서 20년을 계시면서 날마다 저술에만 힘써 과골,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났다. 선생님께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런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처음 이 글을 읽고 어안이 벙벙했다. 책상다리로 앉아 20년 세월이 가는 동안 바닥에 닿은 복사뼈 자리에 구멍이 세 번 뚫렸다는 것이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는 말을 들었고, 추사가 벼루 여러 개를 먹을 갈아 밑창을 냈다는 말도 들었지만,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뚫렸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다산은 40대 초반 한창 뜻을 펼칠 나이에 급전직하의 나락으로 떨어져 강진으로 유배 왔다. 그 절망의 20년 세월 동안 곁눈질 한 번 하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했다. 나중에는 뼈가 시어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벽에 시렁을 매어 놓고 서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광경을 떠올리며 《다산시문선》을 수 십 번 통독하다 보니 도대체 우리네 공부란 것이 그 앞에 서면 초라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산의 그 초인적인 노력도 대단하지만, 10대에 들었던 스승의 가르침을 70이 넘은 나이에도 마음에 되새겨 잊지 않은 제자의 도타운 마음도 참 고맙다. 그래서 지난 번 강진 답사 때는 일부러 황상이 살던 천개산 아래 일속산방(一粟山房) 터를 물어물어 찾아갔었다. 25년 전 저수지가 생겨 집터가 있던 자리 바로 아래턱까지 물이 차 있어 건너갈 수 없었지만, 건네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뭉클했다.


15살 난 소년은 아전의 자식이었다. 다산이 유배 초기 강진 읍내 주막집 한 켠에 열었던 서당에 쭈볏쭈볏 나아가 “저 같이 머리 나쁜 아이도 공부할 수 있나요?”하고 물었다. 스승은 오로지 부지런히 노력하면 안 될 것이 없다며 저 유명한 ‘삼근계(三勤戒)’의 가르침을 글로 적어 소년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소년은 스승의 격려에 크게 고무되었다. 말씀에 따라 평생을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스승이 귀양이 풀려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그는 세상에 눈길을 주지 않고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다시 몇 십 년이 지났다. 제주도에 귀양 가 있던 추사가 우연히 그의 시를 보았다. 추사는 그 시의 높은 경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귀양이 풀려 뭍으로 오르자마자 추사는 황상의 집부터 찾았다. 스승 다산은 이미 세상을 뜬 뒤의 일이다.


이후 시골 아전의 자식은 평생 농투성이 농사꾼으로만 살다가 일약 세상이 알아주는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다산의 아들 정학연 형제와 추사 형제 등이 다투어 그의 시를 칭송하고, 그의 시집에 서문을 써주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우쭐대지 않았다. 추사 형제와 정학연 형제가 차례로 세상을 뜨자 그는 또 다시 야인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잊혀진 사람이 되었다.


진솔투박한 그의 인간과 시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75세 나던 해에 쓴 〈임술기(壬戌記)〉는 스승에게 첫 가르침을 받은지 60년이 되던 해에 쓴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스승이 15세 때 자신에게 준 글을 옮겨 적고 나서, 평생 이룬 것은 보잘 것 없지만 생각해 보면 스승이 남기신 가르침을 지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삶의 끝 자리에서 그가 남긴 이 말을 나는 오래 잊지 못한다.


다산이 강진에 내려와서 거둔 것이 단지 학문의 성취뿐이었다면 우리의 외경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는 역경의 세월을 자신과 싸워 이겼을 뿐 아니라 자신감 없던 시골 소년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꿔 놓았다. 학문의 위대함은 인간의 위대함에서 나온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얄팍한 세상에서 이 아름다운 사제간의 만남은 늘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정민교수의 홈피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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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이 느낌이 그 증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에 엄살도 심하고. 오버스러운면이 없지 않아, 뻥카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요 몇일 사이의 우울감 가지고..내가 우울증이라도 걸린게 아닐까 하는..설레발.. 

 전시가 끝나고 오는 약간의 허탈감과. 앞으로의 기대치에 대한 긴장감. 그리고 깊어가는 가을에 의한 고독감,  낙엽이 수북한 텅 빈 운동장에서의 달리기. 최근에 본 영화 두 편의..심상적 기억. 근원적 그리움..결핍과 억압기제..말과 행동의 불일치에서 오는 당혹감..멀게만 보이는 이상향. 그 모든게.. 가을비와 함께..낙엽이 되어 딍굴었다. 내일이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될 것을.. 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년마냥. 궁시렁 대는지..진짜 그 증상이라면 이렇지도 않을 것이고..최소한 이러고 있는게..그냥 지나가는 생채기 정도 일 것이다. 

 내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다면. 이런 생채기는 수시로 겪어야 할 테다. 감성의 촉수가 예리해 작은 것에도 영감과 자극을 받고 간혹 세상의 본질이 너무 힘겹게 다가오더라도 그것을 응축해 나만의 창조물로 내보내는것.. 그리고 공허와 재충전.. 나는 필터같은 존재다..지식과 예술의 매개자 이길 바란다.
 
 이러한 상태에서.. 오늘 수업은 나한텐 매우 힘들었다. 단어들이 바로바로 입으로 튀어나오지 않고..자꾸..머리속 언저리에서 맴돌다...겨우..튀어 나오긴 하는데..로또 당첨번호 처럼..원하지 않은 번호들만..연달아 나오는 느낌이었다.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다보니. 시간은 시작한지. 한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학생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나는 벽에 나혼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은 알아차렸을까..미친 가을 남자가 된 이 유약한 강사의 심리를..내 미천한 경험에 비추어..그들에게 용기와 열정을 심어주려한..이 세치혀의 나약함을.. 한명한명. 사진작업의 진행에 대해 면담하며. 표현을 즐기는 기쁨에 대한 동기부여를 한 나의 행동은 결국 내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나의 강의는 아직 완숙히 익지 않았다. 반숙이 되려는 과정인데, 어쩌면..그런 유동성이. 매너리즘이나 도식에 빠지지 않고..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지만..지금은 완숙을 지향해야 한다. 스승들이 아른거린다.

 강의실에 들어가기전. 뒤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소리에 과연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했는데..나였다. 반가운 얼굴 이었다. 평소같은 상태였으면..더 반가워 해 줬을텐데. 내 불안은 그 제자에게 비춰진것 같고..그녀의 얼굴에서 내 불안을 보았다. 가면이라도 쓸걸..내게 주었던 그 환한 미소에 대한 보답이 고작 이것이라니..어쩌면. 20대의 신선한 고뇌가 나의 불안과 상응한 것일지도.. 그 제자의 건승을 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오아시스 1집을 들었다. 록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밴드의 패기 넘치는 데뷔앨범은 내게 많은 자극이 되었다. 오만할 정도의 자신만만함. 재능과 패기. 노엘 갤러거는 내게 큰 디딤돌이 되어준다. 삶을 위로하는 음악이었다. 지금 이 순간. 파헤쳐진 땅을 다지고 있는 중이다. 겨울을 앞둔 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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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잔뜩꼈고, 비가 오고. 난 그루미 하다. 비가 잠깐 그친 틈을 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왔다. 그래도 여전히 가라앉는다. 나는 앞으로 영국같은 나라에선 살기 힘들것 같다. 영국산 록 음악을 무지 좋아하고..지금도 스웨이드의 음악을 듣고 있지만. 왠지 마음 한켠엔 이런 찐덕한 감정..마음의 상태가 싫다고 외친다. 해바라기 마냥 태양을 그리워한다. 내 머리는 균사류의 그것처럼. 응달에서 살찌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태양속에서 찬란한 태양속에서 나는 활활 타오른다..

 평소에 매운걸 싫어하지만. 오늘같은 날은..낙지볶음이나. 매운 떡복이가 땡긴다. 뭔가 화끈한게 필요하다. 핫.. 섹시..블루드.. 매직..  그동안 파스타만 너무 해먹었다.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럴때 옆에 누가 있으면..혼자 찌질한 감정에 헐떡이지 않을텐데.. 뭔가 각오가 필요하다. 결혼이 부럽단 생각이 든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부족과 결핍을 느끼는 이 순간. 난 변화한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심각한 오류다. 머리는 뻥 뚫린채로..구름이 잔뜩 낀 창 밖 하늘만 보고 있다. 구름이 걷히면. 고개숙인 해바라기는 활짝 웃을 것이다.

 결국 떡복이 해먹었다. 땀을 많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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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굉장한 영화였다. 대단한 데뷔작들이 생각난다. 류승완의'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빈센트 갈로의 '버팔로 66' 등등..그 새로움과 놀라움을 선사한 영화들의 대열에.. 이 영화도 당연히 포함된다. 내게 있어 아마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영화다. 

 이 영화는 인간의 관계에서..돈(자본)이 영향이 안 미치는..그래서 가장 순수한 미시 권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우정?을 이야기 한다. 가장 예민하며.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감정의 시기에서..친구라는 관계들이 어떻게 와해되고..파멸로 치닫는지. 너무나 사실적이고. 깊이있게 파고든다.

 이 영화에서 여자들이 나오는 비중이 높지 않지만..결국. 주인공들이 상처받고..분노하고..마음에 균열이 생기게 된 원인은 여자 문제가 시발이었다. 
 주인공 기태의 경우는 엄마의 부재가 가슴속 깊은 상처로 남아..인정받고 싶고..주목받고 싶어.. 모래성 같은 폭력의 성좌를 이룬다. 이러한 것은 가식적이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자존심(학교짱)이 결국, 친구에게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폭력을 행사하게 한다. 또한 희준(베키)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기태를 좋아하는 열등감에. 감정적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며, 결국. 이 갈등은..또다른 친구 동윤과 기태의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동윤이 결정적으로 분노하게 되는 지점도..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사건이었다.
 생각해 보면. 남자는 여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감정적 파급, 파괴의 힘은 여자에 의한 것이리라.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래나. 한 영혼을 지배할수 있는.힘은. 소통의 진실성일 것이다. 우정을 넘어선 그 무엇.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하기에는 어려운 그 무엇 말이다.

 마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활화산 같은 이 시기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그려냈고. 끝까지 친구란..우정이란 관계의..근본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당연히 내 학창시절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과  함께. 좌충우돌의 그 시절을 마음속에 다시 그려 보게 되었다. 

 불안하니까, 폭력을 통한 권력과..그것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에 올인한다. 결국. 친구와의 우정도 그 미시권력 사이에서..소통의 거침사이에서. 메꿀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기태가 마지막 절박한 마음을 동윤에게 내밀었을때, 그 소통의 완벽한 차단은. 참 가슴아팠다. '뭐가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을 해 본적이 있나..나와 너 사이의 문제에 대해..

 기태역을 한 이제훈 이란 배우는 앞으로 대성할 배우다. 마치 박해일과 류승범을 섞은듯한 분위기인데, 젊으면서 연기의 내공이 탄탄해 보인다. 고지전에서 처음 보고 기억에 남았는데..역시나 될성부를 떡잎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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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유령이 우리집에 떠돌고 있다. 이사라는 유령이. 요즘 집에 들어가면..매일 무언가가 없어져 있다. 엊그제는 쌀통. 그제는 어항. 오늘은 무엇이 내 놓아져 있을까. 이사를 하려면 내년은 되어야 할텐데. 아무래도 부모님도 버리는 즐거움을 알은 모양이다. 내가 중2때 이 집으로 이사를 왔으니..(어언..음..암튼) 꽤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쌓였을래나.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역사가..이 집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제는 버리고 시간의 낙인을 음미해봐야 할 때이다.

 떠나야 할 시간이 있으니, 매일 한결같았던 집의 느낌이 새롭다. 구석구석에 녹아든 체취속에, 나의 역사가 담겨있다. 처음 이 집에 이사왔을때, 부모님은 차곡차곡 모아 집을 한 채 더 늘리시는 거였다. 지금은 정말 보잘것 없지만. 그 때는 동네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의 집 이었고. 3층으로 신축된 집이었다. 이사를 하는 날은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이사를 안 해도 벼락치기 공부여서..이사와 상관없었겠지만. 문제는 지금 내가 쓰는 3층에 올라갔을때였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친구와..어마어마한 잡지가 쌓인 방을 발견했고. 대부분. 자동차생활. 일본..논노.그리고 여성지들. 그 와중에..별천지를 보았는데. 미국판 펜트하우스 였다. 처음으로 포르노그래피 사진을 보았고, 많이 얼떨떨했다. 그때는 너무 적나라한 충격에. 사진의 퀄리티를 볼 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당대 최고의 포토그래퍼 들이 찍은게 분명했다. 완벽한 테크닉과..조형성 이었다..바디 아트와 바디 페인팅등..예술적인 사진도 많았다. 다만 적나라한 음부가 문제라면 문제였지..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 보다는, 훠얼씬 아름다웠다.
 예전에 부기 나이트와 래리 플린트 란 미국 포르노그래피 산업에 관한 영화의 기억을 유추해 보면, 내가 본 펜트하우스는 가장 그 산업이 왕성했을때. 나온 잡지 같았다. 여러모로 스펙타클 함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상한 충격과 흥분에. 그리고 밤새 여성지를 뒤적거린 끝에..벼락치기 시험은 쏠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뒤 한동안 자동차와..여성잡지를 탐독했다. 아마도 이 때 나의 조형성과..미적 감성은 자리 잡지 않았을까. 명작들의 영향이 아닌. 일본판 논노 잡지의 취향은 유니크한 것을 좋아하는 특이함으로 발전했다. 중1때 본 소피 마르소 라는 환상의 천사가..포르노잡지와 여성지 섹스 정보에 의해..무참히 깨졌다. 펜트하우스가 어느정도 지겨워 졌을 무렵. 섹스 환타지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학교에 가져갔다..종이에 땀자국이 베기도록 돌아다니다가..결국. 이 책의 최후는. 친구네 집 5층 짜리 아파트에서..한장한장 종이 비행기가 되어..지상에 착륙했다. 엄마와 손잡고 지나가던 꼬마가...종이 비행기를 펼쳐보고서 얼마나 놀랬을까.. 친구와 나는 그 여러 놀람들을 키득거리면서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이 포르노 잡지책을 통해서 불상사나운 일은 생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포르노 사진 종이 비행기 행위는 예술적 퍼포먼스라고 여겨진다. 
 또 발견한 책이 피터 드러커의 성공하는 법칙 ~ 같은게 있었는데, 아마 그 때, 이 책을 진중하게 읽었더라면..인생이 다르게 흘러갔을래나..

 이사를 한 후. 나의 삶은 급류 처럼 흘러갔다. 물론 지금에 와 뒤돌아 봤을때. 그렇단 말이다. 우리집과 함께 영원할 것 같은..그 나른한 청소년기가 어느덧 청춘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사이 누나 둘은 결혼해서 지금은 어린 조카들이 집안의 계단을 오르락 거리는 즐거움을 맛본다. 나는 이집을 통해서 독립하지 못했고. 여전히 뭍혀간다. 내년이면..변화의 조짐이 왕성해지는 시기일듯 싶다. 집과 함께. 내 삶의 또다른 챕터가 넘어간다. 
 이 집에 처음 왔을때. 옥상에서 보여지는 풍경이..눈에 선하다..주변엔 다 1층 단독주택이었고. 언덕위 3층이라. 멀리..여의도 넘어 한강까지 보였던.. 그 장쾌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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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풀거리는 마음을 다잡아 현실을 직시해야한다. 나의 덕목중 하나는 자기반성적 성찰이 강하지만. 그와 반대로. 주제넘음 같은 감정의 과잉도 종종 발견된다. 뭔가 실수를 하고 반성을 하고..고민하고 가슴아파 하며 사뭇친 감정에 허우적댄다. 간혹 마음의 재채기는 주체못할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b형 혈액형의 특질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보통 그것을 책을 읽음으로써, 해소하거나 내재화 시켰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턴가 독서량이 줄거나. 아예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욕망의 굴레에서 휘청대는 나를 상상하게 됐고, 삶의 기반이 연약해진다는 걸 느꼈다. 좋은 글은 나를 각성하게 하고. 깨어있게 만든다.
 자기를 객관화해서 보는 일. 은 사람만이 가진 특질이라고 한다. 나는 매일매일 진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뭔가를 계속 읽고, 쓰고 싶어 한다. 제 3자의 눈으로 나를 보고자 한다.

 파수꾼 이란 영화를 보았다.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영화는 질문을 던졌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관계의 성찰을 근본적으로 파고든다. 우정, 사랑, 마음의 통로는 진실한 것인가. 가식과 진실은?. 이 세상에 기댈 곳(마음)이 하나도 없다면.. 사람은 살 희망이 없어진다. 마음을 열었으나 알량한 자존심과 기만이 넘실댄다.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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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으로 홍대앞을 어슬렁거리다 마주오는 커플?을 보았다. 눈에 뛰는 외모라 번뜩 눈빛이 갔는데 눈길이 마주쳤다. 연예인 이었다. 이름은 동행인이 그러는데..박*혜. 시라노연애조작단에 나왔던..꽤 연기를 잘했던 여배우였다. 연예인 답지 않은 자연스런 모습과 표정이 좋았다.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듯 했고, 풋풋해 보였다.  
 지나침과 동시에 우리는 뒤돌아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전체적인 자태에 대해서 의견이 오갔고, 동행인은 자신과 눈길이 마주쳤다고 했다. 엥?. 나랑 눈이 마주쳤다고 반론했고. 아마도 내가 그 커플쪽에 가까운 쪽에 있어..나와의 눈맞춤을 머리너머 착각한 거라고..주장했다. 결국 그녀의 오른쪽 눈은 동행인이, 왼쪽 눈은 나와 마주친 거로 매듭지었다.

 집에 와서 구글링을 하면서..다시한번 이 글의 제목을 몸소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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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전시를 마무리하고 오늘까지 하루종일 피곤했다. 그동안의 긴장이 확 풀려서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다시 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내일 부터 다시 뛰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의 선거 결과도 긍정적이다. 내 전시 성과 또한 매우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더욱 내일이 희망차다. 대부분 재미있다. 위트있다..란 말들이 많았다. 마지막 날에는 학교강의때문에 부모님과 누나가 자리를 지켰는데, 직접적으로 내 작품에 대한 호의들을 느낄 수 있었나 보다. 외국인들이 작품 가격을 많이 물어보았다던데. 내가 없었기 때문에 판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마지막날 관람객들이 부모님에게 좋은 에너지를 선사한듯 하다. 평소에 내가 말하지 못하는 걸.. 자연스레 체득하게 했다.

 짧은 전시 기간이었지만, 꽤 인상깊에 감상하고.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분들이 기억난다. 진지하게 바라봐준 그들에게 고맙다. 오랬만에 얼굴을 본 친구들. 동료..지인들..다 고마운 마음 가득이다. 3층까지 올라와준, 생각보다 많았던 일반 관람객들 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전시장 전경.
 

                                         
전시장 입구


 큰누나네 가족사진인데..작품속 사진과 함께 기이한 가족사진이 되었다. 작품속 아이는 둘째 누나 아들이고.. 사진의 사진속 사진은 아버지의 군시절 사진인.. 이상한 가족사진이다.


 다음 제목도 구상해 두었다. 방명록에서 작게나마나 소통한 소중한 결과이다. 어떤 이름들이 보이질 않아 슬프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마음으로 느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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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극장에서 봤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넘친다. 왜냐면..영상이 정말 끝내준다. 영화 장르의 환상적 영상이 아닌.. 정말 그 시대 (18세기?) 의 고증에 완벽해 보인다. 전기가 없던 시대의 밤 공간의 묘사는 촛불이나..모닥불 ..뿐이다..  촬영 하는 입장에서..굉장히 어려운 조명 기법인..촛불로만 킨 공간이되.. 필름에 노광시킬 충분한 룸(앰비언스) 조명을 넣는. 그러니까..조명을 치긴 치되 전혀 안 한거 같은.. 화면속..촛불 이나 태양으로만 조명을 한것 같은..그 기술... 여자들의 화장도 마찬가지 일래나...암튼 컴퓨터로 보기엔..참 미안한, 영상이었다.

 무엇보다도..주인공 제인 에어가 참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차가워 보이는데..내면은 외로움과 사랑이 가득한..한마디로 분위기가 있는 여인.. 좋은 피사체와...좋은 조명과 공간의 만남은..내용을 떠나서..황홀하게 만든다. 내용은 요즘의 러브 스토리에 비해..좀 뜬금없다고 느낄 수 있는데..그래도..고전 만의 응축된 시간과..그 감정의 억누름과..폭발은..여전히 뭉클하게 만든다. 오만과 편견도 그랬었고...

통신이 없던 그 시절의.. 남,녀 간의 사랑은...얼마나..애틋한가...오랜만에 만나서..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짧은 눈빛과..몸짓..보이지 않는 공기(기)로 소통하는 그런 사랑을 요즘의 우리는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어쩌면 우리 세대는 그러한 사랑의 숭고함..을 다채널의 통신으로 희석 시켰다. 벤야민 식으로 말하자면 기술의 발전으로 사랑의 아우라가 파괴되었다.
 학창시절..삐삐 시절이나 그 이전엔.. 참 어떻게 친구를 만났나 싶다. 오로지 집 전화로만..약속을 해야 하는..그 시절의 사랑과 연애는..?  나야 잘 모르지만..그 때가..좀 더..만남의 희열이 더 높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여자애 집에..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고 ...그 어머니가 받으면...나는 누구누구 라고 상세히 밝히고. 갸가 집에 있냐고..바꿔줄수 있냐고..정중히 부탁하는..그런...

 격세지감 이랄까..내 어릴적 컴퓨터와..지금의 디지털 환경은..엄청난 차이다..스티브 잡스의 죽음으로..그러한..차이를 다시금 환기해 본다. 지금까지 애플사 제품을 한번도 소유한 적은 없지만.. 초기 퍼스널 컴퓨터의 역사의 흐름을 쭉 알 수 있는 나이였다. 아마 당시 첫 컴퓨터를..매킨토시를 선택했다면..나도 애플빠 였을지도 모르겠다..좀 전에도. KBS 스페셜로 스티브 잡스에 대해 방송 프로그램을 봤다. 내가 그 사람에게 감명 받은건..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었다. 그 사람의 음성에서..녹록치 않은 내면을 느꼈다. 자기 성찰 하는 사람만의..깊은 울림을 느꼈다.

 암튼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서..역시 남자와 여자의 뇌구조는 완연히 다른가 보다. 여자들은 보통..줄거리를 꿰고 있어..이야기로 술술술 풀어내는데.. 나는 아니 대부분의 남자들은..그런 이야기 전달력이 여자보다 현저히 떨어지는것 같다. 순차적 논리 구성력이 아닌 어떤 순간의 강렬한 자극에 더 치중하는게 남자의 특성인가.. 전체 내용보다는 어떤..부분. 어떤 표정들만이 기억된다. 절제된 감정 표현의 제인 에어의 연기는..너무나 완벽해 보인다. 툭 하면 무너질듯한..투명한 양파 껍질 같은 그녀. 
 영화만 보면..참 쉬어보인다..전지전능한..제 3자의 관찰자의 시선이니까..그래서 가상의 매체에 중독되거나 현혹되면..현실에선 참 난감해진다. 어쨌든 사랑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부딪힘에 의해서..자신의 영혼이 조금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일 테니..
 환영에 만족하면 안된다. 이런 영화도..너무 많이 보면..좋지 않은거 같다. 사랑의 숭고한 영혼은 현실에서 발현되어야 한다.

 이런 류의 고전은 읽어본게.. 폭풍의 언덕과..채털리 부인의 사랑..(이건 좀 급이 다른가..암튼) 밖에 없다. 책으로 읽었으면..좀 무게감이 다를 것도 같다. 그러나 아마도 평생 책으론 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직접 쓸 것이다. ( 러브 스토리 영화를 많이 보면 이렇게 된다..ㅋ ) 

 그런면에서 시가 사라진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이성복 시인의 시집 그 여름의 끝에서.. 발 이란 시를 소개한다. ㅎ

 이렇게 발 뻗으면 닿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늘 거기 계시니까요. 한번 발 뻗어보고 다시는 안 그러리라 마음먹습니다. 당신이 놀라실 테니까요. 그러나 내가 발 뻗어보지 않으면 당신은 또 얼마나 서운해하실까요. 하루에도 몇 번 씩 뻗어보려다 그만두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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